김성주 "부잣집 공주에서 성공한 여성기업가로"
해외에서 명성이 더 자자한 김성주(48) 성주인터내셔널 사장은
"노블레스 오블리게이션", "노블레스 오블리제"(nobless oblige)를몸소
실천하는 CEO로 통한다.
"가진 자"들의 사회적 책임과 도덕적 규범이 21세기 글로벌 시대에 필요한
덕목임을 수년째 외치고 있는 그는 대성산업 그룹총수인 아버지의 든든한
품에서 보란듯이 뛰쳐나와 홀로서기에 성공한 여성기업인이다. 성년이
되기까지 부족함이라고는 모르고 자랐지만 여느 부잣집 막내딸과 달리
"공주"처럼 살기를 거부한 것도 철이 들고 난 뒤 "가진 자의 의무"에 눈떴기
때문이란다.
"여성들의 다보스포럼"으로 불리는 "세계여성지도자회"(Global Summit of
Women) 서울대회를 준비하고 있는 그를 만나려고 들른 강남구 역삼동
성주인터내셔널사장실은 의외로 볼품없었다. 지난해 700억 원의 매출실적
을 올린 성주인터내셔널과 성주디앤디(D&D)의 브랜드 이미지와는 달리 3
평 남짓한 그의 사무실은 컴퓨터와 팩시밀리가 놓인 사무용책상과 책장,
의자만으로 꽉 차 두 사람이 지나 다니기에도 비좁았다. 100여 평되는 직원
들의 사무실 귀퉁이에 자리잡은 김 사장의 방에는 유리문이달려 있어 안이
훤히 들여다보일 뿐 아니라 사장실이란 표지조차 없었다.
1980년대중반 미국의 블루밍데일이란 백화점에 근무할 당시 7평에 불과한
회장 집무실을 보고 크게 깨우쳤다는 그다.
미국앰허스트대, 영국런던정경대(LSE)를 거쳐 당시 하버드대에 재학중이
던 그는 가족의 반대를 무릅쓰고 캐나다출신 하버드 동문과 국제결혼해
생계를 이어가기 위해 취직한 곳이 블루밍데일이었단다. "우리 나라의
가진 자들은 자신들이 가진 모든 것을 제 것으로 착각하잖아요. 자기 자신
을 위해서는 돈이나 권력을 마구 남용하면서 사회나 나라를 위해서 목숨을
바쳐야 할 때는 제일 먼저 도망갔어요.
가진 자의 의무가 우리 사회에서 제일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 그가 가진 자의 의무에 눈뜬 것은 영국 유학시절인 1980년대초 포클랜드
전쟁이터지자 비행기를 몰고 앞장서 출격하는 앤드류 왕자의 모습을 현지
톱 뉴스를 통해접하고부터다. 우리 사회가 선진 사회로 나아가기 위한
또 하나의 요체로 그는 내부지향적 사고방식의 타파를 꼽았다.
"중국이 뜨고 있고, 일본은 기술력이 우리보다 50년 앞서 있는데도 우리는
보수,진보로 갈려 싸우고 있어요. 경쟁대상이 밖에 있다는 것을 깨우치지
않으면 3-5년후 우리는 걷잡을 수 없이 낙후될 겁니다." 1997년 우리 나라
의 외환위기를 정확히 예측한 외국 유수의 컨설팅사들이 우리나라에 대해
또 다시 경고음을 보내고 있다고 우려한 그는 "그런데도 우리는 이데올로
기 싸움과 명분싸움, 정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자칫 헤어나지 못할
구렁텅이에 빠질지도 모른다"고 했다. "투명성 확보 또한 나라발전의
관건"임을 강조하며 사업차 자주 들른다는 스위스가 지구상에서 가장 잘
사는 나라가 된 것도 투명성에 기반하고 있기 때문이라는설명을 곁들였다.
"스위스에서 벤치
마킹할 게 참 많아요. 대통령은 경호원도 없이 자전거 타고 다니죠. 여러
민족이 모여 살지만 대통령이 누군지도 몰라요. 하지만 지구상에서 제일
잘 사는 나라예요. 전세계가 믿고 맡기는 돈이 그 곳에 다 모이고 국제기구
도 집결해 있어요. 비결이 투명성입니다. 우리 나라도 투명성을 회복하는
게 시급합니다.
" 1997년 세계경제포럼이 선정한 "차세대지도자 100인", 2003년 CNN이
뽑은 "새시대지도자"답게 스위스, 싱가포르, 네덜란드 등 투명하고 효율적
인 정부조직을 갖춘나라들의 강점을 일일이 열거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이들 나라에서는 국민의 혈세로 운영되는 정부는 봉사단체에 불과해요.
대통령은 봉사단체의 단체장일 뿐이죠. 국무총리와 장관은 단체장의 보좌
역이요, 참모입니다. 낫싱 엘스(nothing else)! 우리는 아직 과거 왕정시대
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대통령을 국왕처럼 모시고 있는데 이해가
안 가요. 미래의 정부 모습은 가장 작은 정부, 가장 효율적인정부여야 합니
다. 그래야 더 많은 복지가 국민에게 돌아올 수 있어요. 굉장히 도발적으로
들릴 수 있으나 우리는 하루 빨리 정치를 없애야 해요. 정치를 개혁할 게
아니라 없애는 것만이 우리가 살 길입니다." 정치무용론을 주창하는 그에게
17대 총선 전에 여야정당들은 아이러니컬하게도앞다퉈 러브콜을 보냈단
다. 때문에 4.15총선을 계기로 여성정치 시대의 막이 오른데 대한 그의 소
회는 남다르지 않을까? "저는 너무 직선적이라서 그런 시스템에 들어가면
아마 5분도 숨을 쉬지 못할겁니다. 개인적으로도 정치에 관심이 없어요.
이번에 정치권에 진출한 여성들은 모성애에 근거해 국민의 발을 씻겨주고
없는 자를 보살펴 주고, 공평하게 나눌 수 있는 강점으로 경쟁력을 키워야
합니다. 부패정치를 청산하고 봉사자의 입장에서 (의정활동을) 하면 나라
의 미래가 밝다고 봅니다." "여성해방론자"가 아니라고 스스로 선을 그으면
서도 일찍이 "Girls, be ambitious!"(여성들이여, 야망을 가져라)란 말로
여성들의 사회참여를 독려해 온 그는 요즘도 잠자는 여성들을 깨우느라
바쁘다고 했다. "여성들이 잠을 자고 있으니 인구의 절반의 브레인 파워가
잠자는 격입니다. 여성들이 사회에 나와서 일하고 봉사하는 것은 권리가
아니라 의무입니다. 저의 의무는 (의무를 다하도록) 한국여성의 잠을 확
깨워놓는 것이죠." 그러면서 동 시대 한국여성에 대한 비판도 서슴지 않았
다. "남자 만큼 일하지않으면서 남자들과 똑같은 임금을 요구하는 것은
"역차별"이자 언어도단입니다. 여자, 남자가 경쟁할 게 아니라 서로 강점을
조화시켜 더 큰 시너지를 만들어 나라밖경쟁자를 이겨야 합니다. 사정이
이런데도 우리 나라는 성형수술이 제일 잘돼요. 성형수술이야말로 남성전
유물 시대의 사고예요. 일의 세계에서는 남녀노소가 따로 없고 실력이 제일
입니다. "성형수술의 시대"가 아니라 "실력수술의 시대"가 돼야죠.
인구의 절반인 여성을 활용하라는 조언은 매킨지 보고서에도 담겨 있어요.
그래야만 2010년대까지 한국이 10대 경제대국으로 진입할 수 있다고 했어
요." 전문경영인으로서 한국경제의 현주소는 어떻게 진단하고 있을까?
"중국쇼크나 국제유가불안 등은 일시적인 거예요. 근본적으로 한국경제의
경쟁력이 우려됩니다. 우리 나라로 유입돼야 할 외자가 상하이로 다 갑니
다.
기술과 시장도 그 곳으로 따라 갑니다. 우리 나라로는 들어오는 게 없어요.
한국의 엄청난 자원인 브레인 파워를 활용해 21세기 지식산업, 온라인산업,
서비스산업을 살려야 합니다. 따라서 최고의 브레인들을 각료로 포진시켜
야지 정치적 인사가 들어가선 안됩니다. 우리 나라는 임금상승 등으로 말로
만 (동북아) 허브지, 어느 나라도 우리 나라를 허브로 생각하지 않아요.
미국 등이 중국이나 러시아, 동남아로 들어갈 수 있는플랫폼으로 우리 나라
를 격상시켜야 합니다. 성숙한 시장과 고도의 기술, 아이디어가 있는 반면
생산력이 없는 유럽과 아시아는 보완적 입장인 만큼 유럽의 기술을 들여와
R&D(연구개발)센터를 우리 나라에 만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북한을 생산기
지로활용해야 남북한이 함께 살 수 있습니다." 또한 우리 나라를 아시아의
교육센터로 만들면 "일거오득"이 될 것이란다. "영어를 배우기 위해 학생들
을 해외로 내보내는 바람에 매년 엄청난 국부가 유출되고있다"고 안타까워
한 그는 "교육시장을 개방해 전세계의 유명학교 분교를 설립하면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 교육개혁이 저절로 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교육개방
후 정보통신 강국의 면모를 살려 중국과 북한의 학생들을 유치해 IT교육을
시키면 한반도 평화정착에도 음양으로 기여하는 효과가 나타날 수 있다고
내다봤다. 14년 전 외국유학을 마치고 귀국해 사업에 첫발을 내디딜 당시만
해도 그는 "술잘 마시고, 흰 봉투 잘 바치고, 거짓말 잘 해야 한다"는 당시의
사업관행에 정면으로 반기를 든 업계의 "왕따"였다. "투명경영을 하고도
성공할 수 있을까 하는 의구심을 갖고 사업을 시작했어요. 굉장히 힘들었
죠. 그러나 관행을 따르지 않고 남이 가지 않은 길을 개척하고도 실패하지
않았어요.
" 어려움을 딛고 성공을 거머쥔 여성기업인으로서 그가 그리고 있는 그랜드
디자인은 어떤 것일까? "회사이름도 제 이름을 땄어요. 지금까지 제가 중심
이 된 경영을 해왔다면 앞으로는 시스템에 기반해 제가 없어도 돌아갈
수 있는 회사를 만들고 싶어요. 한국의작은 중소기업이지만 세계 어디에
내놓아도 경쟁력있는 기업으로 키우고 싶어요. 그리고 은퇴하기 전에 동양
적인 것과 한국적인 것으로 서양사람들을 "미치고 환장하게"만드는 글로벌
브랜드를 만드는 게 마지막 꿈입니다. 꼭 할 겁니다." 글로벌 브랜드를
국제무대에 선보이는 것 외에도 어릴 때 그림을 잘 그렸다는그는 노후에
화가의 길을 걸어보고 싶은 개인적인 욕심도 있단다. 그 뿐이 아니다.
"다이어트를 못해 난리인 우리와 달리 먹을 게 없는 북한의 형제자매들을
보면 너무마음이 아프다"는 그는 은퇴 후 대북 봉사활동에 나설 수도 있다
고 했다. 대북 의료지원단체인 "등대 복지회"의 이사로는 이미 활동하고
있다. 오는 27-29일 "21세기 성장을 위한 기술과 리더십"이란 주제로 롯데
호텔에서 열리는 "여성지도자회의" 준비는 잘되고 있느냐는 질문에 1시간
반 이상의 인터뷰 내내 자세하나 흐트러뜨리지 않고 막힘없이 답변을 쏟아
내던 그는 이렇게 답했다. "분단국이고 북한 핵문제로 시끄러운 서울에서
전세계 여성 리더들이 모인다는데 큰 의의가 있어요. 벌써 85개국 800여
명의 인사들이 등록을 마쳤어요. 정ㆍ재계리더 외에 장관급이 40-45명,
대통령ㆍ수상급이 4명 옵니다. 이번 기회에 각국 여성지도자의 횡적 네트
워크를 통해 남북문제를 평화적으로 해결할 수 있도록 후원을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일회성 행사에 그치지 않도록 온라인으로 이 대회를 지속시켜
나갈 프로젝트를 생각 중입니다. 이 대회를 절호의 찬스로 활용해야 합니
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