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해..
'사찰기행'을 읽다가
떠나고 싶은 맘이 일어 발길 나선다.
전라북도 순창군 복흥면 영구산에 자리한 "구암사!"
내가 가진 지도에는 표시가 되어있지 않았지만
내장사와 백양사 사이쯤이라는 설명만으로 길을 나선다.
가난하고 초라한 그러나
한때는 한국 불교의 주름을 잡으면서 여러 대강백(大講伯)들을 배출한 명실상부한 교학(敎學)의 중심지였던 구암사!!
하지만 지금은 고독한 자존심으로 법맥을 이어가는 한 스님만이 구암사를 지켜가고 있다고 한다.
서대전 IC를 지나
호남고속도를 한시간 반 남짓 달려 정읍 IC를 통하자 곧바로 길은 내장산으로 이어지고 흐린 듯 습기먹은 날씨는 초록의 가로수를 더욱 짙게 해준다.
산뜻하게 잘 다듬어진 길은 예전 모습이 아니었다.
단풍철이면 크지 않은 내 한몸 끼일 곳 찾기 어려울만큼 붐비는 길일진데 휴일이면서도 오히려 한가함은 초록이 홍엽보다 못함인가 ?
그래도 내게는 그저 좋을 뿐이다.
조바심 눈길에 이윽고 복흥면 이정표가 보이고 내장산을 오른 쪽으로 두고 굽이굽이 가파른 산길을 올라 고개마루를 막 지나는가 싶었는데 구암사 이정표가 보인다.
반가움!
이정표를 보고 이렇게 기쁨에 설레여 본적이 있었던가?
차를 멈추고 내려서 이정표 앞에 서본다.
'보물 제 745-10호 월인석보 제 15"
아래 쪽에서 올라온 거리가 한참이었는데 널따란 평지를 이루는 것을 보면 이곳 사람들은 흔히 말하는 고지대 생활을 하고 있는가 보다.
여기저기 논마다 물을 채우면서 모내기에 한창인 농부들의 모습이 정겹게 다가온다.
여기서부터는 갈림길마다 구암사 이정표가 세워져 있다.
지나는 길, 산마을에는 나이먹은 정자나무와 낮선 객을 말없이 바라보시는 연로하신 할머니 할아버지들만이 한가로이 고향을 지켜내는 모습이고 이윽고 산아래에 이르러 눈을 들어 위를 보니 꽤 높은 곳까지 숲 사이로 하얀 포장길이 가파르게 이어져있다.
급한 경사길이라 오르는 차가 많이 힘들어 한다.
고요한 산사의 한나절을 내 소음아 방해되어서는 아니된다는 생각에 중간 쯤에 공간하나 자리를 찾아 차를 세워놓고 걷기 시작했다.
책에서 보았던 선사의 부도밭을 지나 1392년에 중창하면서 심었다는 커다란 은행나무가 발길을 잠시 쉬게 한다.
우리나라의 많은 사찰과 보물이 그렇듯이 구암사도 임진왜란, 6.25전쟁을 거치면서 불에타고 중수하고 이전되어 본래 모습을 잃어버렸고, 지금은 단청이 없는 대웅전과 삼성각, 그리고 요사채만이 오히려 단정하고 소박함으로 자리하고 있었다.
법당을 찾아 예를 드리고 한쪽에 자리를 하고 앉는다.
지금 이순간 만큼이라도 분별과 집착을 벗어버리기 위해서...
안목이 초라한 나는
보여주는 것 만큼 보지 못하고, 보는 것 만큼 느끼지 못함이 항상 안타까움일 수 밖에 없다.
어떻게하면 안목을 높일 수 있을까?
책에서 말한 대웅전 앞뜰에 노오란 수선화는 보이지 않지만
새소리와 바람소리만으로도 내 가슴은 뭉쿨해진다.
"無音의 공간"
"영구산, 구암사"
거북을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
"휴거(休去).헐거(歇去) 철목개화(鐵木開花)"라 했던가?
쉬고 또 쉬면 쇠로 된 나무에 꽃이 핀다..
구암사를 지켜가고 있는 지공스님은 한 5년쯤이라 하셨다지만 안목이 보잘 것 없는 나는10년쯤 속세를 떠나 이곳에서 밥도 하고 빨래도 하면서 고독과 무료를 벗삼아 살다보면 지금의 보잘 것 없는 안목에 꽃이 피게 할 수 있을까?.
거짓과 가식으로 살아온 날을 부끄러워하면서
"진실해지기 위해서는 타인을 의식하지 않아야 한다.
진실한 사람은 상대방의 호의를 사려고 하지 않는다..또한 자기를 드러내기 위해 노력하지도 않는다...바로 여기에서 절제의 미학이 나온다" 말씀하신 지공스님은 출타중이시라 뵙지 못하고
되돌아 오는 길이 아쉬워 못내 뒤를 돌아본다...
출처 http://planet.daum.net/rhodonggi/ilog/221308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