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 글은 Phaidon사에서 발간된 책 Durer에서 'Self-portrait at
22'에 대한 설명을 번역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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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세 때의 자화상
이 그림은 1493년에 제작된 뒤러의 첫번째 채색 자화상입니다.
유럽 미술계에서 제작된 독립적인 그림으로는 알려진 것 중에서
최초의 자화상입니다.(더 이전의 화가들이 종종 자신의 모습을
제단 벽화나 프레스코 벽화의 일부분에 그려 넣기는 하였습니다)
이 유화를 그리기 위해 1493년에 제작된 소묘 자화상도 있습니다.
뒤러는 장인으로 그의 여행이 끝났을 무렵, 아마도 Strasboug에서
이 유화를 마무리하였습니다. 이것은 송아지 피지에 제작된 것으로
비교적 가지고 다니기에 간편하게 만들어진 것 같고 이것은 곧
Nuremberg로 보내진 것으로 생각됩니다.
뒤러는 자화상의 윗 부분에 다음과 같이 새겨넣었습니다:
나에게 있는 것들은 하나님이 정하신 대로 된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의 표시입니다. 젊음으로 가득찬 뒤러의 모습은 술이 달린
빨간색 모자와 가는 생강빛 머리로 빛나고 있습니다. 빨간색으로
끝이 장식된 회색빛 망토 밑으로 그는 빨간색 장식 띠가 있는
우아한 주름잡힌 셔츠를 입고 있습니다. 그의 곧은 코, 하트 모양의
윗 입술과 긴 목은 이 그림에서 강조되고 있습니다. 거울을
사용하였기 때문에 항상 자화상 그릴 때 애먹는 손과 눈을 그리는데
뒤러는 분명히 어려웠을 것입니다.
뒤러는 엉겅퀴와 비슷한 모양의 식물인 sea holly(역주 미나리과에
속하는 다년초) 가지를 거친 손으로 들고 있습니다. 이 식물의
독일어 이름은 '남자의 정절'을 뜻하며 때때로 최음제로 여겨졌다는
사실을 참고하면 이 그림은 그의 약혼녀에게 준 선물로 추측이
됩니다. 뒤러가 여행 가고 없을 때, 그의 아버지는 Agnes Frey를
뒤러의 부인으로 정하였으며 그가 Nuremberg로 돌아온지 2달 후인
1494년 7월 7일에 둘은 결국 결혼하였습니다. 그러나 이 그림은 거의
4년의 여행기간동안 못 볼 부모님에게 준 선물일 수도 있습니다.
아들의 긴 부재기간 후에 이 그림을 받았을 때의 놀라움과 기쁨을
누구나 쉽게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여하튼 이 그림은 그의 멋진
모습과 만발하는 그의 재능을 증명하는 표시임에 틀림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