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사하는 일은 아름답다 .여성의용소방대 문예지 -
여성의용소방대 문예지 - 한정찬 연재 >> 1회
봉사하는 일은 아름답다
2000년도 창간호
▶ 隊員作品 ◀
〈 詩 〉
해 금 강
박학재 / 아산소방서 여성의용소방대장
태초의 침묵
바다, 그 밑그림으로
나무와 바위,
그리고 풀이 바람에 아우성치고
바다와 하늘은 맞닿아 있다
해일처럼 이는
저 무수한 생의 고뇌 안고
억만년을 하루같이 살아 온
이처럼 정교한 풍파 형상을 고이 다듬어 온
아, 우리의 저 해금강
눈이 부시게 시리 아름다운
저기 저곳 좀 봐
푸른 바다에 섬이 떠있는지
섬을 바다가 감싸 안고 있는지
분간이 영영 안 되고 있네
누구나 해금강에 와 바라보라
누구나 해금강에 와 목놓아 소리쳐 보라
누구나 아름다운 빈 마음으로
어느새 해금강을 빼어 닮아 있으리라
촛 불
강경숙 / 예산읍 여성의용소방대장
심지가 타오르면서
나의 인생은 시작됩니다
차가운 바람을 이겨내면서
나는 세상사는 법을 배워갑니다
내 몸이 타들어 가면서
떨어지는 눈물들이 굳어
내가 살아오면서 겪은
고통의 흔적이 되었습니다
한 순간의 실수로 꺼져버린
나의 인생은
서랍 한편에서 후회하며
새로운 삶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그 삶을 말입니다
사랑의 모금함
신숙자 / 아산소방서 여성의용소방대 반장
제각기 다른 모습의 사람들이
오고가고 머무는 곳에서
고운 마음, 착한 마음으로
보시하는 모금함에
땡그랑 동전 몇 개
그 위대한 위력의 힘이
실의에 빠진 어린 가장들에게
희망의 미소를 피울 수 있는
원동력이 될 수 있다
홀로되신 외로운 노인들의
잃어버린 생의 한가운데에서
그 환한 미소를 되찾아 줄 수 있다
적지만 모아져 쌓여 가는
그 높이 만큼이나
온 세상 밝음의 빛
지피는 사랑의 모금함엔
나 아닌 우리의 고운 손길이
행복한 마음으로 머물러
감사의 마음으로 빛나고 있다
온정으로
사랑의 온정으로
강당골에서
홍혜숙 / 아산소방서 여성의용소방대 반장
울울 창창한 거목 아래
장엄한 바위를 휘감아 돌아가는
물길처럼 나의 삶 나의 사랑도
시원(始原)처럼 흘러만 가고 있네
오랜 삶에 잊고 살아왔던
고전 생모래의 고뇌
그 삶의 언저리 같은
생활의 무게도
저 시원한 물줄기에 씻기우고
나의 사랑은
나의 삶은
오로지 저 흐르는 물소리로
소리없이 웃고 있는
한 송이 들꽃이 되고 있네
계곡물
강정자 / 아산소방서 여성의용소방대 반장
높은 곳에서 내려와
늘 낮은 곳으로만 흘러가는
저 아리아리한 시원의 물
삶이 늘 저 물길 같다면 얼마나 좋으랴
늘 삶의 가장자리에서
일고있는
언어(言語)의 공해
행동(行動)의 공해
아, 저 흘러가는 시원한
골짜기의 물을 바라보라
아래로 아래로 흘러가는
저 계곡물을 바라보라
우리 모두도 한 세상 살아가면서
저 정갈한 물처럼 살아봤으면 얼마나 좋으랴
사 랑
김성완 / 예산읍 여성의용소방대 반장
모래 위에
새긴 사랑
파도치면
사라지고
나뭇잎에
새긴 사랑
바람불면
떨어지고
마음속에
새긴 사랑
영원하리라
사이렌 소리
김영춘 / 삽교읍 여성의용소방대 반장
앵- 앵-
밤의 적막을 깨는
사이렌 소리는
가슴을 조이는 구원의 소리
앵- 앵-
사람들의 생명재산 지켜주는
사이렌 소리는
누구나 어서 빨리 와
도와 달라는
구원의 소리
보아라,
숨가쁘게 달려가는
소방차의 사이렌소리는
다급한 일 당해 두 발 동동 구르며
애타는 절규의 목소리를
잠재우러 가는 수호천사의 목소리
앵- 앵-
울리며 달려가는 사이렌 소리는
기다림에 목말라하는 사람들에게
가장 소중한 희망의 소리
아침마다 봄이었으면
김인배 / 아산소방서 여성의용소방대원
아침마다 늘 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언제나 봄같았으면 좋겠습니다
지난밤엔 악몽으로 헤맨 일
아주 싹 가신 듯 아주 잊어버리게
아침에 눈을 뜨면 언제나 늘 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눈앞의 베란다에 자라고 있는 콩란(杜蘭)이 겨우내
이렇게 곱디고운 연둣빛은 결코 아니었습니다
저 마치 바라보이는 울타리 개나리가
언제나 동면하고 있을 줄로만 알았는데
노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습니다
봄은 기억 속의 작은 소망과 바램으로
실다운 훈향(薰香)을 안고 오듯이
진정으로 사랑의 불꽃을 지피게 합니다
이다지도 고운 생명이 하늘거리는 봄봄봄…
그렇게 아침마다 눈만 뜨면
늘 봄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독백(獨白)
이영근 / 아산소방서 여성의용소방대원
조금한 화분의 흔들림이
한 우주의 흔들림을 알게 하는
조용한 이 여름 한나절
하루의 작렬한 태양이 낮잠을 잘 때
몸을 움츠리는 햇빛
이런 때는
'여름이니까 덥지…'하는 평범한 언어에도
힘껏 보내는 당연한 귀결의 박수
고요함에도 분명 흔들림이 있다는 건
분명,
내일을 위한 알찬 준비가 있기 때문이리라
나, 너 그리고 우리가 더불어 산다는 것은
그 무게와 깊이도 알 수 없는
행복한 사랑의 미소 뒤에 숨은 생명의 숨결이 있음이리라
보아라, 나를 가장 사랑하는 일은
우리의 울안에 평화의 꽃 피우는 일이리라
하루의 작렬한 태양이 낮잠을 잘 때,
햇빛도 몸을 움츠리고 있는 이 한때에는
하얀 파도
유순덕 / 아산소방서 여성의용소방대원
끝없이
부서지는 파도가
육중한 배와 싸우고 있다
물거품
갈매기
외로운 섬…
나는 바다를 노래한다
보라, 저 광활한 바다를
보라, 저 푸른 하늘을
나는 도전하리라
이 좋은 날의 삶을
이 좋은 날의 행복을
영원히 가슴에 담아두고
기억하리라
기억하리라
하얀 파도에
내 해맑은 가슴펴고
〈 隨筆 ·斷想 〉
작은 봉사 큰 보람
황종찬 / 덕산면 여성의용소방대장
봉사단체로는 우리 여성의용소방대와 비슷한 단체는 더러 있지만 사회의 그늘진 곳이나 소외된 계층을 둘러보면 아직도 따뜻한 손길이 필요한 곳이 너무나 많다는 생각이 든다.
아무리 세상이 많이 발달했다고 해도 더더구나 디지털시대에 맞이한 우리들의 일상적인 삶이 앞으로 어떻게 바람직한 방향으로 나아갈지는 예측할 수 없으나, 이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방향으로 정책이 옮겨지지 않는다면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지나친 기우일까?
여성의용소방대일을 하면서 간혹 이런 생각이 든다. 우리가 어차피 소방과 지역사회에 대해 봉사하기 위해 모인 이상, 일상적인 삶의 경험과 지식을 손길이 필요한 여러 곳에 미칠 수 있게 하는 것은, 단순한 미담의 사례를 넘어 더불어 살아가는 이 사회를 더더욱 밝게 하는 것이기에 참 소중한 일이 아닐까.
훌륭하신 전임대장에 이어 제4대 덕산면 여성의용소방대 후임 책임을 맡고 보니, 걱정이 앞서기만 했다. 그러나, 이 기회를 통하여 더더욱 열심히 봉사하라는 채찍으로 알고 최선을 다하기로 결심했다.
특히, 우리 덕산면 지역은 온천지역으로 관광호텔 및 위락시설이 산재해 있고, 일년 내내 관광객이 끊이지 않고 있는 관계로 화재 취약지구다.
모든 소방관계일을 소방관서에서 잘 처리하고 있지만 우리 여성의용소방대에서도 의용소방대원들과 함께 하는 일이 적잖게 많다.
더군다나 화재다발시기인 월동기가 끝나면 봄철 화재예방기엔 너무 바쁘다.
월동기에 화재예방캠페인은 일년행사 중 빼어 놓을 수 없는 일이다.
그리고 우리 덕산면 지역은 수덕사가 위치한 덕숭산, 남연군묘가 있는 가야산, 그리고 수암산이 소재하고 있어, 산불예방홍보 및 방송활동 이외에도 자연보호활동, 거리질서 캠페인 등에 주력해 오고 있다.
또한 매년 개최되는 매헌문화제가 있다. 지난 행사 때는 행사의 일환으로 불우이웃 돕기 기금마련을 위한 일일찻집운영 등을 실시하여 마련한 기금으로 관내 낙성1리 최재학(여·72)할머니, 옥계1리 이재봉(남·46)씨 댁에 백미 각 2포와, 라면 1상자씩을 지원했다.
어느 글에서 보았는데 '인생의 기본단위는 오늘 하루'란 말이 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 여성의용소방대원들의 행복은 오늘 하루의 행복 집합이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바로 이러한 여러 가지 아름다운 봉사활동의 참뜻을 통하여 우리 여성의용소방대원들의 화합과 자부심으로 보다더 내실 있고, 보람된 봉사활동을 하고자하는 작은 다짐이 앞선다. 왜냐하면 내일이라는 막연한 약속어음보다는 오늘이라는 주어진 현금으로 우리는 기꺼이 여성의용소방대원으로서 봉사하는 일을 생활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화재초기, 소화기의 그 중요성
김영순 / 아산소방서 여성의용소방대 부대장
앞만 보고 보내 온 여성의용소방대 생활을 조용히 뒤돌아보니 어느덧 입대한지 14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그 동안 활동내역을 보면 각종 소방활동, 불우이웃, 소년소녀가장돕기, 고아원, 양로원 등 항상 사회로부터 소외된 이웃을 돕기 위해 대장님 이하 우리대원들은 열심히 일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에 남는 것은 주민들을 직접 찾아다니며 소화기 사용법을 가르치고, 또한 가르친 보람이 실제로 가시적인 효과를 보고 있음을 확인하고 그로 인해 아주 가까운 인간관계가 된 일은 내 생애에 있어 가장 보람된 일 중의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보게 된다.
우선 내가 겪은 한 가정 한 소화기 갖기 운동에 대해 활동한 사례를 소개해 보기로 한다.
소화기사용에 대한 열정으로 소화기 사용법을 설명하고 있는데 일부 주민들의 무관심으로 별로 효과를 거둘 수가 없었기에 나는 많은 생각 끝에, 우선 3.3㎏ 소화기 30대를 구입해서 집에다 갔다 놓고 이사, 개업, 생일 때에는 늘 소화기로 선물을 했다.
소화기가 거의 다 나갔을 무렵 1995년 어느 날, 가전제품 대리점을 운영하는 친지 집에 생일이 있기에 여느 때와 다름없이 소화기를 선물하고, 사용법에 대해 상세히 일러 주고, 식구들 모두가 관심 있게 사용법을 숙지한 일이 있는데 불행히도 어느 날, 그 친지 집이 있는 용화동 정우빌라 1층에서 전기누전으로 화재가 발생했다.
아들 내외와 손자들이 없는 사이에 갑자기 화재를 당한 할아버지 할머니는 너무나 순식간에 당한 화재여서 어찌할 바를 모르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던 차에 여든이 넘은 할아버지는 일전에 손자가 꼼꼼히 일러 준 소화기가 생각나서 그 소화기의 안전핀을 뽑고 얼굴을 옆으로 돌리면서 사용했는데, 그로 인해 그 화재는 1층에서 머물고 말았다. 그러는 동안에 119로 신고해서 소방차가 현장에 곧 도착하여 곧바로 진화됐다.
그때서야 한 숨을 돌린 할아버지께서는 '그 조그마한 것이 몇 초간만 소화를 한 것 같은데 참 신기합디다.' 하며 늘 소화기를 사용했다는 데서, 자부심으로 신기해하고 자랑스러워했다.
나는 그때의 일을 생각하면 늘 보람과 긍지를 느낍니다.
나 하나의 작은 봉사의 보람이 그 소중한 인명과 재산을 구했다는 점에서…
지금도 그분들은 저만 보면 친형제처럼 생각하며, 요즘도 소방에 대한 홍보를 더욱더 열심히 해달라는 격려를 아끼지 않고 있다.
그 일로 인해 나는 도지사 표창을 받게 되었다.
저는 맹세합니다. 앞으로도 우리 아산소방서부녀소방대 위상을 위해 꼭 없어서는 안될 봉사자가 될 것을 다짐해 봅니다. 화재초기, 소화기의 그 중요성에 대해서…
저의 글을 끝까지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작은 일이지만 소중한 일
김영춘 / 삽교읍 여성의용소방대 반장
아카시아 향기와 장미꽃이 만발한 계절의 여왕 5월에 불어오는 훈풍에 취해 지긋이 눈을 감고 생각해 보니 세월이 참 빠르다는 생각이 든다. 세월이 유수 같다는 옛 성현의 말씀이 새삼스럽게 떠오르고 있다. 왜냐하면 내가 여성의용소방대원으로 입대 한지도 벌써 11년이라는 세월이 훌쩍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 동안 대원으로 일해 오면서 여러 가지 재미있고 보람있는 일도 많았고 괴로운 일도 참 많았기 때문이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정말 세월이 참 빠르기만 한 것 같다. 맨 첨에 입대했을 때 이상하기도 하고 참 쑥스러워 제복을 입고 다니기가 부끄러웠을 때를 생각하면 지금도 웃음이 절로 나온다.
기실 말하자면 짜리 몽땅한 키에 볼록하게 나온 내 배를 내려다 볼 때마다 참 우스워 보이기만 했었다. 그때 우리 대원들은 서로의 얼굴을 번갈아 바라보며 이십 대의 처녀들처럼 깔깔대며 웃고 야단법석을 떨었던 기억이 난다. 그럭저럭 여성의용소방대 생활로 세월을 보내다 보니 어딘가 모르게 제복이 멋있어 보였고, 또한 자긍심도 높아져 열심히 일해왔다고 생각된다.
삽교소방파출소가 개소되기 전에는 화재가 발생하면 응당 의용·여성의용소방대원들은 소방관들과 함께 현장으로 달려가 화재를 진압하고, 부녀소방대원들은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으며, 현장상황을 전달하는 임무도 거의 도맡아했었다. 늘 기억에 오래 남는 것은 어느 겨울인가 몹시 추웠던 엄동설한 속에서 화재를 진화하고 돌아온 대원들에게 따뜻한 커피를 나누어주며 함께 흐뭇해하곤 했든 일이다. 그 당시 돌아온 대원들의 얼굴은 마치 굴뚝에서 나온 사람처럼 얼굴과 전신에 검은 그을음이 묻어 있었고, 또한 옷가지는 물에 젖어 추위에 떨고 있는 대원들을 볼 때 불쌍하다는 생각과 함께 고맙다는 생각이 교차하기도 했다.
우리는 부부 의용·여성의용소방대원이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소방대에서 하는 일이라면 열심히 뛰어 다녔다. 일을 하다가도 사이렌 소리가 울려 퍼지면 하든 일을 그대로 두고 낮과 밤을 가리지 않고 열심히 뛰어 다녔다. 그때마다 이웃 사람들은 「지성이다, 지성이야 한 사람도 아니고 둘다 뛰어나가면 집안 일은 누가하고」하면서 소방대 일에만 전념하다가 굶어 죽겠다는 말을 하는 사람들도 있었고, 누가 밥을 주는 것도 아니고, 돈이 생기는 일도 아닌데, 왜 그 고생을 사서하느냐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물질적으로 남는 것은 없을 지언정 손발으로나마 지역사회에 봉사한다는 마음 하나로 우리 부부는 열심히 일해왔다.
우리 부부는 시어머니를 모시고 두 남매를 두고 목공소 일을 하고 있다.
찬바람이 소진하고 따뜻한 햇빛이 도는 봄철이 되면 바쁜 생활을 해야한다. 그런데 봄철이 되면 우리 목공소 일만 바쁜 게 아니다. 왜 그렇게 봄만 되면 불이 많이 나는지, 봄이 되면 산불이 제일 많은데 산불 원인의 대부분은 나이 드신 할아버지들께서 자식고생 덜어준다고 논두렁, 밭두렁을 태우다가 그만 힘에 부쳐 불을 초기에 진화하지 못하면 바람을 타고 산으로 번져 산불로 변해 버리기 일쑤다.
언젠가는 밤 10시경에 불을 끄고 온다고 나간 남편이 새벽 4시경에 돌아온 일이 있었다. 참 기가 막혔다. 옷은 다젖어 꽁꽁 얼어붙었고 얼굴에는 숯 검댕이 투성이고 몸은 동태가 되어 돌아온 남편을 보며, 나는 울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너무 불쌍하고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저 고생을 하고 다니는지 불쌍하지 못해 원망스럽기까지 했다. 신도 벗지 못하고 문 앞에 서 있는 남편의 신을 벗겨 씻기고 아랫목 이불 속으로 밀어 넣고 이불 속에서 곤히 잠든 남편의 모습과 세상 모르고 잘 자고 있는 남매 아이들을 번갈아 보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하지만 결코 후회는 하지 않았다. 남편은 부장으로 일하면서 누구보다 소방활동에 대해 경험도 많았고 항상 솔선수범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이었다.
작년 5월 1일 개인적인 사정으로 인해 남편은 의용소방대를 그만두게 되었다. 남편은 아쉬움이 채 가기도 전에 나에게 계속 남아 열심히 일해줄 것을 당부했다.
우리 삽교읍 여성의용소방대는 소방활동 이외에 환경보호운동, 불우이웃 돕기, 고아원 봉사활동, 농촌일손돕기 등 이웃에 대한 봉사활동을 많이 하고 있다. 덕산신생원에 봉사활동 갔을 때 부모 없이 자라 가는 아이들의 모습을 볼 때 나도 모르게 눈물을 주르륵 흘린 일이 있다. 까만 눈동자에 초롱초롱한 눈매를 보니 왜 그런지 마음이 아프고 눈물이 났던지, 고맙게도 그곳 수녀님들이 잘 보살펴 주시며 학교교육까지 맡고있는 것을 보았을 때는 참고마운 분들이라는 것을 새삼 알게 되었다. 이런 저런 일들이 인연이 되어 우리 삽교읍 여성의용소방대에서는 대장 이하 전대원들이 한 달에 한 번씩 신생원에 들러 청소도하고 준비해간 음식을 어린이들에게 먹이며 하루의 엄마가 되어주고 있다.
또한 화재를 당해 아무 것도 건지지 못한 집에는 침구류와 식량등 생필품을 사다주고 따뜻한 마음으로 위로하며 도와주고 있다.
요 근래부터 가난한 노인의 집을 방문하여 힘없고 의지할 곳 없는 노인들을 위로하고 목욕도 시켜주고 청소도 해주고 있다. 마치 각자대원들은 자신의 부모처럼…
이처럼 봉사활동을 하는 일은 체육대회 등에서 나타나는 대원들의 협동심에서 보듯 대원들 모두가 하나같이 한 마음으로 활동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남을 위해 봉사한다는 것은 참으로 힘들고 어려운 일임에 틀림없다. 그것은 누가 시켜서 하는 것도 아니고 이익이 있어서 하는 것도 더군다나 아니다. 단지 나보다 더 어려움에 처해 있는 이웃을 위해 봉사한다는 마음 하나로 인내와 긍지를 가지고 일하는 사람들이 바로 여성의용소방대원들이기 때문이다.
우리 삽교읍 여성의용소방대원들은 여태까지 해 온 일들을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해나갈 작정이다.
외롭고 힘든 일이지만 내 힘이 남아있는 한 이를 계속해서 훗날 나의 손자들에게 말해주고 싶다. 너희들의 할아버지 할머니는 아주 작지만 남을 위해서 소중한 일을 하였노라고…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기옥 / 아산소방서 여성의용소방대 반장
나는 지금도 지난해 12월 31일 새벽 우리 집에 불이 났던 일을 생각하면 늘, 감사할 수밖에 없다는 마음을 가지게 한다.
요즘도 나의 일과는 새벽 4시에 어김없이 일어나, 거울을 보며 몸을 추스른 후 성경책을 가슴에 꼭끼고 걸어서 10분 거리인 교회로 예배를 보러 간다.
찬송과 말씀과 기도로 나의 하루 일과는 시작된다.
이렇게 생활한지도 어느덧 이십년이 되었다.
화재가 난 그날은 1900년대를 마지막 보내고 2000년, 즉 새천년을 맞이하려는 새로운 각오와 결심으로 기도를 했는데, 그날 따라 나의 기도는 간절한 감사와 눈물의 기도였었다. 우리집은 비록 작으나 늘 행복하기만 했다.
예배를 마치고 집에 다다랐을 때 우리 집밖에는 소방차와 이웃집 사람들의 웅성거림과 창문 밖을 내다보며 '엄마 빨리 오세요.'하는 딸의 놀란 모습과 목소리는 나의 가슴을 철렁내려 앉게 했고, 눈앞이 캄캄하게 했다. 직감으로 아마 남편이 연말이라 과로로 인해 구급차에 실려 병원으로 실려 가는 줄로만 생각했다.
아무튼 잘 떨어지지 않는 발길로 1층 계단을 들어서니 검정 물이 질벅했고 1층 아주머니는 우리 집에 불이 났다고 알려주었다. 떨리는 다리를 이끌고 3층까지 올라가니 이웃 사람들이 많이 모였고, 소방서에서도 직원이 나와 있었다.
남편과 딸의 얼굴에서는 불이 나서 놀란 모습이 역력히 드러나 보였다. 불이난 것은 내가 교회로 집을 비운 20분쯤 후 전자밥통 코드에서 전기누전으로 일어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했다.
성급히 계단을 올라올 때 흘러내린 검정 물과는 비교도 안될 만큼 집안은 뒤범벅이된 가재도구며, 검게 그을림의 흔적들이 비참하기 그지없었다.
남편의 얼굴을 바라보는 순간 미안하기 이루 말할 수가 없었고, 이웃들에게도 부끄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그 순간 나는 망연자실한 사람처럼 넋을 잃고 멍하기만 했다. 그러나 남편은 놀란 모습을 감추고 되려 나의 두손을 꼭 잡고 '당신 있었으면 큰일 날뻔했어. 없었길 망정이지'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렇게 위로하는 남편의 말에 마음이 더 아팠고 가족의 소중함을 느꼈다. 날이 밝아 대낮에 바라보는 우리 집은 말이 아니었고, 겨울에 더욱 추위를 느끼게 했다.
이런 화재로 인해 당장 전기며, 수도를 사용할 수 없었고, 의식주를 해결할 수가 없어 같은 아산시에 사는 동생의 집에 머무르게 되었다.
모든 분들의 위로와 도와준 보람으로 힘과 용기를 잃지 않고 집수리에 온 힘을 다하였다.
집수리를 시작한 날 보름만에 제 모습을 찾아 새로운 마음으로 2000년의 새생활을 하게 되었다.
보는 사람들은 모두 말했다. 불이 나고 나면 모든 일이 더 잘된다고 위로와 감사의 말이었다. 이 지면을 빌어 진심으로 모든 분들에게 다시 한번 감사를 드린다.
그러나, 우리 가족은 실망하지 않고 화재가 일어난 가운데서도 생명을 건져주신 하나님께 감사의 기도를 드리며, 하루하루를 믿음으로 극복했고, 모든 분들께서 물심양면으로 도와주셔서 추운 겨울을 따뜻하게 보낼 수 있었다.
내가 여성의용소방대에 입대한지 11년째 되는 해에 막상 집에 불이 나고 보니 나에게도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나 남의 일같기만했고 부끄럽기도 했다. 더군다나 비치해 두었던 소화기를 남편이 당황한 나머지 불 가운데 던지고, 옆집에서 날라다 주는 물로 불을 끈 것이다. 대단히 부끄러운 일이지만 침착하게 소화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교육을 시키지 못한 일이 나의 큰 책임이다. 만약 소화기를 사용했더라면 상황은 크게 달라질 수도 있었으리라. 화재는 정말 무서운 존재며, 남의 일이 결코 나의 일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십 년을 보낸 지금, 그리고 내일
천명자 / 삽교읍 여성의용소방대원
내가 여성의용소방대원이 된지도 올해로 벌써 십 년째가 되었다. 나보다 5년 먼저 의용소방대에 입대한 남편의 권유로 처음엔 그저 호기심에 시작한 부녀소방대원이라는 일이 벌써 강산이 한 번 바뀔만한 세월을 넘겼다니 나 자신조차도 놀라지 않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싶다. 살고있는 삽교읍이라는 읍내에서 가끔씩 들려오는 사이렌 소리에 하던 일을 멈추고 소방파출소로 달려가는 것이 이제 너무나 익숙해져 있고, 내 생활의 일부가 되어 버린 듯한 느낌이다. 처음 시작했을 때 허름하다면 허름하다고 할 수 있었던 사무실이 십 년이라는 세월을 거쳐가면서 새롭게 단장한 것을 볼 수 있고 몇 년 전에는 완벽한 시설을 갖춘 구급차가 새로 도입되어 배치되기도 했다. 이것만 보더라도 정말로 격세지감을 느낄 수 있다. 막내 아이가 기어다닐쯤 처음으로 아이를 업고 소방대를 드나든 것 같은데 그 막내아이가 벌써 초등학교 5학년이 되었으니 말이다. 10년 동안 긴 세월동안 소방대원으로 활동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이 무엇이었는가 하고 묻는다면 나는 밤을 세워 이야기를 해도 다하지 못할 듯 싶다. 여성의용소방대원 30여명의 단합대회, 선진지 견학 또한 소방의 날 식후 행사의 체육대회, 노래자랑에서 노래를 부른 일, 표창장 받는 일 등 열 손가락으로 꼽을 수 없이 많은 추억이지만 그 중 언젠 가부터 모르게 나의 일상이 되어버린 매월 1일은 정말 잊을 수가 없다. 매월 1일 아침 10시에 모여 친목도모도 하고 봉사활동에 대한 의견은 비로소 내가 여성의용소방대원으로서의 책임감을 느끼고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내 자신이 흐뭇해짐을 느낀다.
각설하고, 지난 1년 동안 해온 일을 이야기 하고자 한다. 지난 9년 동안은 특정한 대상을 정해두고 주기적으로 찾아가 봉사활동을 한 일은 거의 없었다. 지난해 대원들이 모여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제 의미 있는 일을 해보자는 한 대원의 말에 그 일이 시작된 것이다. 이는 1999년도 소방관서 특수시책의 일환으로 사랑의 119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삽교소방파출소 직원, 의료진, 미용사들과 합동으로 각자 역할을 분담해서 실시하게 된 곳은 덕산면에 자리하고 있는 덕산 신생원이었다. 덕산 신생원은 주로 고아인 어린이들이 살고 있고 수녀님들께서 아이들을 보살펴 주시는 곳이었다. 우리 여성의용소방대원들은 위의 행사에 구애받지 않고 한 달에 한 번 토요일에 음식을 정성껏 만들어서 아이들을 찾아갔다. 처음에는 어색해하고 쑥스러워 하던 아이들도 날자가 지나가고 얼굴이 익어 갈수록 하나씩 밝고 순수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여 우리를 엄마처럼 따르고 있었다. 엄마, 아빠의 사랑이 부족한 아이들에게 우리가 더욱 필요한 존재라고 느낀 것도 그 때 부터였다. 신생원 아이들 중 아직도 기억의 한 구석에 자리하고 있는 아이들은 두 남매였다. 7살인 누나와 5살인 남동생이었는데 눈의 너무 크고 맑아 그 아이들은 내 마음을 어느 샌가 송두리째 빼앗아 가고 있었다. 한 달에 한 번 찾아가는 그곳에서 난 그 두 아이들을 찾게 되고 어느 누구보다도 더욱더 잘 대해주고 싶으며 더 신경이 쓰여지는 것을 느꼈다.
봉사하는 즐거움
임명희 / 삽교읍여성의용소방대 반장
봉사(奉仕)란 어원을 사전에서 찾아보면 대략 다음과 같이 구분된다. '첫째, 웃어른을 받들어 섬김. 둘째, 남을 위하여 자기를 돌보지 아니하고 노력함. 셋째, 국가나 사회를 위하여 헌신적으로 일함.(무료봉사) 넷째, 상인이 손님에게 헐값으로 물건을 팖.(무료요금)'이라고 되어 있다.
굳이 이러한 뜻을 상기하지 아니하더라도 봉사란 어떤 대상을 위해 자기 몸을 돌보지 않음이나 다른 사람이나 대상을 위해 자기 목숨이나 어떤 것을 바친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이러한 이야기는 거창한 일을 의미하지 않더라도 우리는 봉사하는 일에 대해서 대단히 경외하지 않으면 안될 것이다.
왜냐하면 봉사하는 일은 어떤 의미로든 간에 자기 희생을 마땅히 치른 부산물의 결과와 기결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희생하는 일과 봉사하는 일은 바늘과 실처럼 불과 분의 것이어서 시행한 후에는 분명 그 일에 대한 자긍심과 보람이 되기도 한다.
내가 봉사하는 일에 대해서 눈을 뜨게 된 것은 아마 십 년전 여성의용소방대에 입대하면서 부터라고 생각된다.
여성의용소방대에 입대한지 십 여년이 지나는 동안 알게 모르게 크게 또는 작게 나보다는 우리 이웃을 살펴보는 계기가 되었고 또한, 그 동안 대장이하 전대원이 합심하여 지역사회 발전을 위해 크고 작은 일에 하나같이 나서서 관심을 갖고, 여성의용소방대에 소속감을 갖고 자부심과 사명감이란 이름 앞에 다 나열하지 않아도 될 일(?)에 좋은 일 궂은 일 마다 않고 자기 일처럼 맡은 바 일에 충실을 기해왔다고 생각한다.
아직도 일부의 사람들은 소방서장의 지휘 감독을 받고 소방관의 보조인력으로 활동하면서 유사시에 화재진화 등 소방업무와 또한 봉사활동을 하는 유일한 여성소방단체인 여성의용소방대원이 있는지 무슨 일을 하는지도 잘 인식되지 않은 채 그저 가볍게 보아오고 있는 게 현재의 주소다. 굳이 여기서 우리 여성의용소방대를 높게 평가해 달라는 주문은 아니다. 단지 바라고 싶은 작은 소망은 우리들이 하는 일이 거창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대로의 투명한 원칙아래 우리가 사는 지역사회의 밝은 내일을 위해 불우한 이웃 등의 지킴 이가 되고자 노력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간 여러 해가 지나는 동안에 보람된 일을 많이 해 왔지만, 각설하고 소방과 관련된 일은 접어 두기로 하고 여태까지 일해 온 몇 가지만 소개하기로 한다. 지난해 우리가 소속된 삽교읍 여성의용소방대에서는 덕산면에 소재하고 있는 신생원에 한 달에 한 번씩 찾아가서 아이들을 돌봐주기, 청소 등을 실시하는 일을 하기도 했고, 금년도에는 양로원을 찾아 목욕, 청소 등을 해주고 있다. 처음에는 인식부족으로 보람과 긍지가 앞서지 않았지만 횟수가 늘어나고 하는 일이 익숙해지면서 또한 모든 일이 내일처럼 느껴지고 부터는 마냥 즐겁고 기꺼이 하고자하는 의욕으로 모두들 열심히 일하고 있다.
산불예방캠페인, 자연보호운동은 특히 인상적이다. 봄 불은 여우불이란 말이 있듯이 해마다 봄철만 되면 왜그리 산불이 자주 발생하는지, 우리 여성의용소방대에서는 산화현장에 출동해 직접적인 진화는 하지 않지만 간접적인 지원을 하기도 한다. 산불조심에 대해서는 더이상 언급하지 않아도 너무 잘 아는 사실이다.
자연보호운동캠페인 또한 참으로 중요한 일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우리고장을 각종 환경오염으로부터 보존하기 위해서 쓰레기 등을 줍고, 청결운동을 벌이고, 등산객·행락객 등에게 주지시키고 홍보하는 일도 연례 행사처럼 실시하고 있다.
또한 명절 때가 되면 삽교역에 나가 귀향하는 손님들을 위해 따뜻한 차를 대접하는 등 작지만 '고향사랑'이란 보람된 일을 실행함으로 인해, 인정과 충절이 살아 숨쉬는 우리고장 가꾸기에 전 여성의용소방대원들이 노력하고 있다.
봉사하는 일은 얼마나 아름다운 일인가! 왜냐하면 아무런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작지마는 자기의 희생을 봉사의 정신으로 승화시키는 일은 얼마나 아름답고 행복한 일인가.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이러한 일을 해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여성의용소방대란 순수한 민간봉사단체의 일원으로 내가 소속감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굳게 믿는다.
내게 남은 작은 소망, 그것은 내 체력이 다할 때까지 작은 일이지만 봉사하며 살아가고 싶은 일이다. 우리 삽교읍 여성의용소방대원들과 다함께 …
▶ 隊員家族 招待席 ◀
이혼해! 내가졌다.
박상대 / (주) 충남케이블 TV 예산방송·예산신문사 대표 여성의용소방대원 가족
내 기억에는 1964년 지금부터 36년 전. 그러니까 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내 고향이 광시면 웅산초등학교 운동장에서 훈련을 받으시던, 우리 아버지 복장 때문에 관심이 많았었다. 수동식 완용펌프를 단 구르마 바퀴를 앞세우고 검정색 학생복에 둥그런 철사를 넣은 모자와 누런 독수리마크가 왜 그리 멋이 있었는지 …
내가 성장하고 군 제대를 한 후 예산에 와서 지금은 고인이 된 최동악 대장의 추천으로 의용소방대원이 되어 10여 년 봉사했던 시절이 있었기에, 의용봉공정신으로 반관반민의 의용소방대원으로 긍지를 갖고, 우리 군민의 재산과 생명을 화마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이라며, 그 혹한 기에도 훈련을 강도 높게 받았기에, 아직도 사이렌 소리에 친근해 지는 아련한 추억이 남아 있다.
소방청사가 이전되는 서로의 이기주의도 있었고, 수많은 사연도 있었지만 지금은 정말 행복한 의용소방대원이라 생각한다.
내가 아닌 우리 아내 말이다.
여성의용소방대원이 예산에 탄생하기 전 현 남자 소방대원 중 젊은 부인들을 영입해 여성의용소방대를 탄생시켰으며, 우리 아내(현 예산읍 여성의용소방대장)가 창단멤버로 10여 년간 활동한 지금에는 충청남도 여성의용소방대연합회장으로 먼길 마다하지 않고 전국을 다니며 소방과 부녀의용소방대의 견문을 넓히고 봉사하는 걸 보면 세상 이 격세지감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내가 10여 년 동안 의용소방대원으로 봉사한 일이 있었기에, 그를 이해하고, 밀어주어 끝을 마무리 할 수 있게 보필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없는 일이기에 더더욱 잘 대해주고 때로는 조언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 또한 나에게 실망을 주지 않고 야무지게 1인 3역을 하면서 잘 견뎌내는 걸 보면 역시 장가는 잘 갔나 보다. 아니 시집을 잘 온 건가.
의용소방대 명예에 관한 한 나보다 더 솔직히 낫다.
소방에 관하여 조금이라도 부정적인 기사나 방송이 나가면 '이거 안 빼주면 이혼을 하던지 아니면, 여성의용소방대장을 때려칠거니까 택일해요.' 하면서 떼
쓰는걸 보면 기도 안 막힌다.
내가 할 수 있는 건 그가 크게는 국가와 국민을 위해, 작게는 우리 지역과 우리 군민들을 위해 여성의용소방대장으로서 봉사하는 참모습을 심어 줄 수 있도록, 그 일을 잘 끝낼 수 있도록 잘 도와주는 일 그것뿐이다.
앞길에 영광이 ······
슬픔 딛고 일어서도록
강수진 / 대학생·여성의용소방대 가족
웃음 속에 가려진
슬픈 그림자
아무 것도 법접 할 수 없는
좁디좁은 공간에서
그들은 천진스런 삶이 넘나드는
그런 모습으로 삶을 아주 힘들게
가슴 찬 숨 고르며 살아가고 있다
이 세상 태어나 사는 동안
그들에게 주어진 건
오로지 숙명처럼 가냘픈
목숨 하나 뿐이지만
우주보다 더 광활하고
지구보다 더 무거운
이상이 있다는 걸
우리는 진정 알아요
오로지 이 세상사는 동안
그들에게 슬픈 목숨에
환한 웃음 안겨주는 일,
슬픔 딛고 일어 설 수 있도록
우리는 할 수 있어요
슬픔에 젖어있는 그들에게 희망의 빛 심어주는
그런 일은 우리들의 몫이라는 걸 알 수 있어요
영접(迎接)
정원영 / 고등학생·여성의용소방대 가족
오늘도 창가에 기대어
그대 향해 경건히 노래합니다
그대는 늘 내 희망의 메시지로
내게 다가와
믿음과 소망,
그리고 사랑을 올곧게 일러줍니다
그리하여, 내가 이 세상 살아가는 동안
저 수 많은 별들 중 으뜸별처럼
저 수 많은 꽃들 중 으뜸 꽃으로
나를 인도해 주는 그대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나는
흐린 안경 유리창 속에서
나를 이끌어 주고
탈출한 그대 모습을 신기해 여깁니다
여전히 영접해야 할 그대는
누구도 아닌 주님 당신입니다
왜냐고요, 나는 그대를 노래할
그대의 사람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 地域元老文人 特別招待作品 ◀
〈 시 〉
무너지지 않는 하늘
홍병선 / 시조시인·한국예총 아산시지부장
이 찬란한 세상이
어둠으로
채워지고
밤 새워 쏟아지는 비
불안했던 저 하늘은
천둥 벼락 쳤는데도
날이 밝아오자
아무렇지도 않았다.
온 힘으로 떠바치는
나의 하늘은
밝은 대낮에
왜 그리 쉽게 무너지고
실망을 주는 것일까
부족한 의지인가.
허술한 꿈인가.
오늘도 나는
그 문제를 생각하며
무너지지 않는 하늘을 떠바쳐 본다.
시련(試鍊)
한경구 / 시인·한국예총 예산군지부장
가파른 정상(頂上)으로
끊임없이 끌어 올려야 할
무거운 짐 때문에
하염없는 푸념을
마냥 시달려야 하는
골백 번의 좌절(挫折)을 더불어
끝내
초조(焦燥)한 불안 속으로
절대(絶對)된 외로움
필경(畢竟)
초월(超越)해야 할
이 숙명(宿命)의 한계(限界)에서
어쩌면
충실(充實)한 까닭처럼
시련(試鍊)에 의지(依持)하리니
〈수필〉
고향 하늘
곽세근 / 수필가·충북소방본부 소방행정과장
한국문인협회 동두천시지부장
내가 자란 고향은 심심 산골이면서 무엇하나 특징적인 것 없는 너무나 평범한 전형적인 한국의 농촌이면서 마을 뒤에는 백마산이 높이 솟아있는데 그 산자락중턱에 터를 잡고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이루고 그 산봉우리에 비가 내려 앞산으로 떨어지면 금강의 시발점이요 산 뒤로 떨어지면 남한강의 근원지로 지대가 상당히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바다가 없는 유일한 내룩 도(道)인 관계로 어려서 자랄 때만 해도 비린내 풍기는 바다생선 맛보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으며, 남북으로 갈리는 큰 강의 근원지가 이곳임을 보면 지대가 상당히 높은 곳으로 양지바른 뒤편에 산을 끼고 마을을 형성한 조상네들은 소박하기 이를 데 없이 기차 구경하기가 어려웠던 대신 하늘에 떠가는 비행기 보기가 쉬운 것을 오히려 다행으로 생각하여 살아온 곳이다.
시오리를 족히 걸어서 초등 학교를 다녔으니 그때의 고생은 이루 말할 수 없었으며 요즘 아이들이 버스 한 구간도 걷지 않고 갈 것을 고집하는 것을 보면 그때의 어려움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며 지금같이 풍족한 물질 속에서보다도 더 큰 웃음을 주고받을 수 있었으니 어찌 눈감으면 그때 생각이 나지 않으리오.
오늘 이렇게 모든 일에 자신감을 보이며 별 어려움 없이 건강하게 지낼 수 있었음은 그렇게 먼길을 걸어다니면서도 튼튼히 키운 인내의 부산물이 아니었나 생각해보며 그 때의 고마움을 영영 잊지 못한다.
그 때에도 함께 학교를 다닌 친구는 여럿이었지만 상급학교 진학 반을 편성하고부터는 친구와 단둘이 남아서 학교 수업을 마치고 보충수업까지 끝내고 나면 벌써 사방은 어두워져 캄캄해진지 오래고, 정문까지는 한참을 돌아가야 하는 것을 생략하고는 뒷문을 통해 한 걸음 빠져 나와서는 전날과 다름없이 매점에 들려 망치로 때려도 쉽게 깨어지지 않는 하양 알사탕 두 개를 사서 하나씩 나누어 입에 물고는 걸음아 날 살려라 줄달음쳐 고개를 몇 개 넘고, 동네를 지나 냇가를 건너고, 서낭당을 지나면 멀리 동리에서 비치는 불빛이 시야에 들어오면 무서움에 앞서 등줄기에 식은땀이 내리 흐르고 한숨을 몰아쉬며 멀리서 부모님의 마중소리를 듣고서야 이제 안심을 해도 되는구나 생각이 들면 긴장이 풀리며 다리에 들었던 힘이 자전거튜브 바람 빠지듯 빠져나가고 있음을 금새 알 수 있다.
지금에 생각하면 참으로 신통하였다는 생각밖에 들지 않는다. 보자기에 책을 싸 가지고는 등허리에 질끈 동여매고 달리기 시작하면 쉬어갈 줄도 모르고 뛰어도 뛰어도 힘든 줄 모르고 달렸다. 특히 겨울철에는 얼음판 위로 가로질러 건너다 얼음이라도 깨지는 날이면 무릎까지 빠져 꽁꽁 얼어붙은 양말을 벗어 꼭꼭 눌러 짜 다시 주워 신고는 논둑 길, 밭둑 길을 따라 쥐불놀이를 하여, 불장난에 바짓가랑이를 태우고는 하루도 꾸중을 듣지 않으면 소화가 되지 않았으니 말이다.
언제나 철이 들는지 걱정이라는 부모님의 얼굴을 애써 외면하면 무던히 속을 썩이던 그때를 생각하면 지금에 와서는 그저 죄송한 마음밖에 달리 드릴 말씀이 없음이다.
어쩌다 동네에 자동차라도 한 대 들어오기라도 하면, 마을 회의를 한다고 동네 이장이 몇 바퀴를 돌아도 얼굴 한 번 내밀지 않던 사람도 자동차 소리만 나면 구경꾼이 모여들던 것을 생각하면, 명절이 되어 고향에 한 번 들러보면 골목마당에 꽉 들어찬 자동차들을 볼 때마다, 참으로 변해도 너무 변해버린 세상이, 무작정 좋기만 하지 않은 건 왜일까?
가진 것 없어도 마음 편하고 이웃과 왕래가 더욱 잦았던 옛날로 돌아갈 수 없음이 원망스러울 뿐이다.
고향이란 언제나 그랬듯이 내 어린 잔뼈를 키워준 넉넉한 어머니의 품 속 같아서 좋은 것이, 이유가 없고 자랑거리가 없어도 고향을 사랑함에도 변함없으니, 특이한 고장이 아니더라도 나무 한 그루, 풀 한 포기, 돌멩이 하나에 이르기까지 어느 것 하나 버릴 것 없는 숨결이 배인 고향으로, 눈만 감으면 한시라도 찾아갈 수 있는 꿈속의 고향은 그래서 더욱 좋은 곳인지도 모른다.
유명관광지를 고향으로 둔 사람들이 언제나 시끌벅적해서 안타까워하며 점점 멀어지는 것을 보면 이렇게 조용한 시골은 그래서 자연 그대로를 보존시킬 수 있음으로 해서 더욱 좋지 않을까?
세상이 그대를 버리는 한이 있어도 고향은 절대 그대를 버리지 않으리라. 동물이고 사람이고 누구나 마지막 숨을 거둘 때에는 고향을 향하여 마지막을 고하는 순리는 그래서일 것이다. 출세와 명예, 부귀영화가 어찌 고향의 진한 마음속을 헤아릴 수 있단 말이던가.
철부지를 이렇게 키워준 지금에도 또 그 자식이 아비를 닮아 흉내내고 있었고 동심으로 돌아간 그때를 못내 그리워하며 언젠가는 꼭 올 것이라는 희미한 기억을 토해내 버리면서도 대자연 앞에 무기력한 자신의 옹졸함을 꾸짖어 본다.
초여름 초생달이 앞산자락에 걸치기도 전에 앞내 울에서 목욕을 대충 마치고는 으레 약속이라도 한 듯이 참외밭으로 기어들던 여름밤.
학교에 다녀와서는 소들을 몰고 들 길가에 나와 쇠풀을 뜯기면 점잖지 못하게 서로 엉켜 싸움질하는 소들을 뜯어말리며 소등에 올라타 천군만마를 호령하던 계백 장군이 되어 본다.
담 자락에 호박을 심어 노랗게 애호박이 호박접붙이기 알맞게 주렁주렁 열릴라치면 덩이덩이마다에 말뚝을 박아놓던 일, 이사를 가버린 동네어귀 빈집에 봄볕 따뜻한 날 찔레를 꺾어다 소꿉장난을 하면 의례 엄마담당을 하던 순희는 지금 어느 하늘 아래서 누구의 엄마 노릇을 하고 있는지….
정월 대보름날 누구보다도 먼저 둥근 달을 맞이하여 소원선취를 빌고자 앞산에 올라 정신없이 절을 하며 빌고 빌었던 저 보름달.
설날이 지나고는 대보름날까지 으레 어느 집 앞마당에 모여 윷놀이로 밤새우며 청포묵 내기에 정신을 빼앗기던 어린 시절.
잠시 잊으려면 더더욱 달려드니 어린 시절의 고향은 어떻게나 심심 산골에 묻혀 있었는지 구석진 골짜기마다 들녘이름이 "골"로 이어지는 곳이 무던히도 많았다. - 갈 골, 어동 골, 창골, 문박 골, 싸 골, 도장 골, 국골, 중골, 농박 골, 증산 골, 시누 죽은 골, 삭 골, 오리 골 지금에도 고향하늘엔 흰 구름 둥둥 산 등선을 넘어가고 있건만 가지 못해 애태우는 이내 마음은 어느 누구에게 하소연 할 것인가?
긴 겨울이 지나고 새봄이 오면 앞산의 진달래는 또 필 것이고 개천가 버드나무 위 까치는 새끼를 칠 테고….
그래서 고향은 그냥 좋다네.
▶ 119 救助·救急 活動事例 ◀
젖소의 눈물
지방소방교 조은호
119 구조대
올해는 유난히도 눈雪이 많이 내리고 있다. 마치 새 천년을 축복으로 맞이하려는 듯 … …. 그러나, 눈이 오면 그에 못지 않게 우리 119구조·구급대원들에게 있어서는 도로가 미끄러져 그 만큼 교통사고가 곳곳에 복병처럼 일어 날 수 있기 때문에 늘 긴장의 고삐를 늦추지 못하고 근무하기가 부지 수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고 있는 데 예나 다를까? "구조출동." "구조출동." '아산시 염티읍 염성리 00목장.' 조용한 사무실 기류를 흔들며, 사무실 문을 성급히 열어 젖히고 출동했다. 미끄러운 눈길을 조심스레 달리며, 지령실로 연락을 취한 바 상황은 이러했다 - 젖소가 사료를 먹다가 파이프로 된 강관 울타리에 몸체가 끼어 옴짝달싹도 못하는 상태라는 것이다. 아무리 바쁘지만 우리 구조차량도 여느 차량과 다름없이 서행으로 00목장에 닿을 때까지는 미끄럽고 협소한 길 탓도 있긴 하지만 그보다도 워낙 오지여서 시간이 꽤 걸렸다.
구조현장 도착하니 마을의 많은 사람들이 이미 여러 손을 거쳐 젖소를 빼내 보려고 안간힘을 쓴 흔적이 곳곳에서 보였다. 다행히 목장주인은 현장상황을 정확하고 또렷하게 다음과 같이 들려주었다. "인공수정을 시키기 위해 사료를 주고 인공수정을 실시하려하자 젖소가 놀라 좁은 울타리 사이로 튀쳐 들어간 후 나오질 못한다."했다.
우리 대원들이 생각하기에도 저렇게 덩치 큰 젖소가 저 좁은 곳을 통과했다는 데 눈을 의아하게 하기에 충분했다. 울타리 강관의 재질을 살펴보니, 지름 약10센티미터의 강한 철재강관 이었다.
우리는 우선 신속하게 일을 처리할 수 있는 동력절단기 장비를 고려해 보았으나, 요란한 엔진 소리가 젖을 생산하는 젖소에게 스트레스를 주게 되면 젖의 생산에도 차질을 줄 것을 고려해 작업은 좀 더 힘들지만, 소음 등 일체 소음이 없는 유압전개기와 유압절단기를 사용하여 작업을 하기로 하고, 유압전개기로 철재강관을 벌리면서, 유압절단기로 몇 개를 절단했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매우 협소하고 장애물이 많아 작업을 하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마지막 한 개 철재강관을 자르는데 그 강관은 젖소의 살과 맞닿아 있었기 때문에 무척 신중과 세심함을 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 때는 젖소도 우리 구조대원들의 고마움을 알았는지 우리 구조대원들을 쳐다보며 큰 두 눈에 눈물을 흘리다가, 끔벅거리고 있었다. 드디어 구조작업이 완료되었다.
구조장비를 철수하고 귀대하는 차량 안에서 조용히 생각해 보았다.
말 못하는 짐승도 우리가 자신을 구해준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는 듯 생각하니, 아니 우리 구조대원들이 사람들의 구조 이외에도 휴머니즘이 내재한 한 편 연극을 했다는 자부심을 떠올리니 벌써 구조차량은 차고에 멈추고 있었다.
아기 콧구멍에 콩이 들어갔어요
지방소방사 최인규
삽교파출소
세 살 된 영은이가 집안에서 놀던 중 콧구멍에 콩이 들어가게 되자 놀라고 당황하여 어찌할 줄 모르고 있는 가운데 119에 신고가 되었다. 영은이 엄마는 아이를 끌어안고 겁에 질린 채 조그마한 눈을 동그랗게 치켜 뜨고 있는 영은이의 놀랜 가슴을 진정시키느라 안간힘을 쓰고 있었고 이를 목격한 이웃집 젊은 아주머니가 똑같은 자식을 키우는 입장에서 남의 일이 아니라는 듯 주저 없이 도움을 요청하게 된 것이다.
출동한 119구급대원들은 우선, 얼굴 가득 미소를 머금고 귀엽고 예쁜 아이에게 나이 등을 물으며 아이의 긴장이 풀리도록 유도했다. 아무런 영문도 모르는 체 주변환경에 쉽게 동요될 수 있는 것이 유아기적 심리상태라 할 수 있기 때문에 느닷없이 방문한 119구급대원들의 섣부른 행동에 행여나 아이의 마음이 더욱 불안해져 발버둥치게되면 이러 지도 저러치도 못하는 상황에 봉착할 수도 있기 때문이었다. 콩 한 알이 비강으로 들어갔다고 해서 금방 어떻게 되는 응급상황은 아니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콩의 크기가 불어나게 되면 제거하는데 더 어려움이 따르게 되고, 이에 따라 아이의 불안감도 그만큼 더 가중될 것이므로 대원들은 비강 점막의 손 상없이 안으로 콩이 더 들어가지 않도록 조심하여 신속하게 제거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였다. 일단은 아기의 어머니로 하여금 의료보험카드를 소지하게 한 후 아이를 안고 구급차에 탑승하도록 했다. 구급차량에 비치된 석션기로 가느다란 팁을 이용, 비강 깊숙이 자리한 콩을 코 입구까지 빨아냈고 핀셋을 이용하여 제거하는 데, 두 세 번의 처치를 반복한 결과, 예상외로 쉽게 해결되었다. 두어 살쯤 더 위로 보이는 영은이의 언니가 이를 보고 더 기뻐하였고 주변에 있던 보호자 및 신고자 그리고 모여든 어린아이들과 구급차량을 배경으로 사진 한 장 찍는 것을 마지막으로 구급대는 귀소 했다. '노랑 병아리, 움직이는 빨간 경광등이라 했던가! 조금만 주의를 게을리 해도 언제 어떤 상황이 발생할지 알 수 없는 것이 아이들이다. 좁다란 농로를 따랄 귀소중인 구급차 차창 밖 삽교 벌판엔 8월의 한낱, 따가운 뙤약볕을 받으며 검푸른 벼들이 무럭무럭 자라나고 있었다, 거기 잠시 조금 전 영은이의 티없이 고운 모습이 아련 거리며 투영되다가 사라졌다.
어린이의 신음소리
지방소방사 이은석
119 구조대
우리가 살다보면 만은 크고 작은 많은 일들을 겪게된다. 특히, 원인이야 어찌됐건 간에 자력으로 어찌할 수 없는 안전사고를 당해 있는 사람들을 보게 되면 더더욱 가슴을 아프게 한다.
지난 1월 중순 저녁 6시 30분 경 요란한 사이렌 소리와 함께 스피커에 흘러나온 출동지령 소리는 "구조출동, 00면 소재 00호텔 현관 회전문에 어린이 발이 끼어 빼지 못한다는 상황"이었다.
생경한 목소리, 이러한 출동은 1996. 11. 12 아산소방서 119구조대가 발대한 이래 처음 들어보는 출동지령의 유형 사건이었다.
우리 119구조대원들은 구조차량에 올라 가상으로 머릿속에 떠올리며 구조작업에 필요한 기본 소요장비를 한 가지 한 가지 머릿속에 정리하며 신속히 사고현장으로 출동을 했다.
출동 중 상황실과 무선으로 교신하며, 계속 연락을 취하면서 구조계획을 세웠다.
출동 잠시 후 먼저 도착한 인근대기소 00구급차에서 무선연락이 왔다.
'상황은 어린이의 오른쪽 발목부분이 회전문과 문틀사이에 끼어 꼼짝도 않는다는 내용이었고, 어린이의 상태는 양호한편이라는 것'이었다.
우리 119구조대원들은 우선 어린이의 상태가 양호하다는 편에 무게의 중심을 두고 다소 안도의 한숨을 몰아쉬며, 00구급차의 구급대원에게 어린이를 우선 안심시키고 움직이지 말고 그대로 있도록 조치해줄 것을 당부하고 얼마 후 사고현장에 도착하게 되었다.
현장 상황을 정리해 보니 어린이가 회전문을 밀고 들어가다 미쳐 오른쪽 다리가 들어오기 전에 문이 회전하면서 열 십자 모양의 회전문과 스텐인레이스틀로 만들어진 두께 약8㎜정도 되는 곡면 유리벽에 끼어 발목까지만 밖으로 나와 있는 상태였다.
이는 마치 덫에 걸린 연약한 한 마리 토끼 같았고, 사고를 당한 어린이는 왼쪽다리로 몸을 지탱하기 힘들었는지 잔잔한 신음소리를 토해내고 있었다.
우리 119구조대원들은 어린이의 발을 안전하게 빼내기 위해 적용장비를 사용해 가장 빨리 구조해 보려고 시도해 보았지만 문이 유리로 만들어져 깨어질 우려가 있고 해서 차선의 방법인 회전문에 설치된 스테인레이스를 절단하여 분리한 뒤 어린이가 신고있는 운동화와 양말 그리고 내복과 바지를 칼로 잘라내어 발목부분의 압박을 느슨하게 풀어주어 편안하게 만들어준 후 회전문을 역회전시켜 어린이를 안전하게 구조했다.
이번 사고는 회전문의 안전도에도 문제는 있지만 그보다도 보호자의 관심과 시야를 벗어난 한 어린이의 안전사고였다. 이는 보호자로서의 의무도 다하지 못한 안전부주의에서 비롯한 교훈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정확하고 안전한 응급처치의 중요성
응급구조사 서기남
둔포파출소
우리는 각종 안전사고에 대해서 자칫 소홀해질 수가 있다. 평소 사고에 대해서 주의를 한다면 많은 사고를 줄일 수 있을 것이고, 또한 사고를 당했다고 하더라도 최소한에 그칠 수 있으리라 본다.
안전이라는 용어가 새삼 생각나게 한 구급사례가 있게 한 것은 지난 0월 24일 오전 10 40분 경 아산시 00면 00리 00산업인데 손가락이 잘렸다는 다급한 신고가 접수되었다. 우선 뇌리에 스치는 것은 절단된 부위가 시간이 경과하면 봉합에 어려울 뿐만 아니라 불가능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우리대원들을 바짝 긴장시키게 했다. 출동하는 길은 오전10시가 되었는데도 차량의 복잡함이 왜 그렇게 많았던지 달리는 구급차 안에서 다급한 마음을 보태어 보니 차는 늘 그대로 정차해 있는 것만 같았다. 줄지어 달리는 차량의 행렬을 비켜 곡선을 그리며 현장에 도착해서 확인한 바 왼쪽 손의 새끼손가락이 절단되어 있었다. 잘려나간 부분은 너무 작아서 찾을 수가 없었다. 잘려진 부위는 손수건으로 덮여진 채 혈액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긴장의 몇 분이 지났을 무렵 보호자가 손가락은 회사 직원이 가져간다고 해서 우리 구급대원은 ' 통증이 있는 타박상이나 움직이기 힘든 부종이 있는 경우에는 찬찜질과 적당한 압박으로 가라앉힐 수 있고, 얼음은 치료에 필요한 것보다 더 온도를 하강시켜 조직을 얼릴 수 있고 더 해로울 수 있어서 연부조직 손상을 치료하는 경우 상처부위를 주의 깊게 살펴야한다. 따라서 몸 일부가 절단된 환자처치의 경우 최근 경향은 마른 상태로 차게 하여 빨리 이송하는 방법을 취하고 있다는 것과 절단 부위를 넣은 비닐 봉지를 담은 물에 얼음 조각은 넣어도 되지만 얼음이 직접 절단조직에 닿지 않도록 하여 신속히 보내 줄 것을 당부'하고 환자의 동의하에 이송 중 손상된 부위를 주위 깊게 관찰하며 남서울병원로 먼저 이송했다. 이송 중환자는 ' 평소 잘 다루던 기구였는데, 지난밤 꿈자리가 이상해서 주의를 했는데도 이런 일이 생겼다'고 투덜거렸다. 병원에 도착하여 담당 의사에게 인계후 환자의 수술이 잘되고 빠른 쾌유를 바라는 인사를 하고, 구급차 안에서 생각해 보았는데, 다행히 '이번 사고는 환자가 당황하지 않고 침착한 행동을 보여줬기에, 구급대원들도 당황하지 아니하고 임무를 완수할 수 있었을 일이 아닌가' 하고.
▶ 1999년도 어린이 불조심 공모 優秀 作品 ◀
(최우수상)
경주의 산불
송남초등학교 6학년 임예슬
초등학교 4학년 겨울 방학 때 우리가족은 모두경주로 2박3일 여행을 다녀온 적이 있었다. 그때 불국사, 석굴암, 경주박물관을 견학하며 우리민족의 우수성과 긍지를 느끼는 등 배우는 점이 많았다. 그런데 그 여행에서 우리가족은 이것 말고도 배운 것이 또 있었다.
둘째 날 저녁, 경주시내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느라 지쳤었는데 아버지께서 저녁은 감포에 가서 먹자고 하셨다. 지도상으로 가까워 보이는 거리였기 때문에 우리가족은 모두 신나서 감포로 향했다. 그런데 주위 산들이 대부분 벌거숭이 산이었다. 아버지께서는 요즘 날씨가 건조해 산불이 많이 난다고 말씀하셨다. 산들은 산불로 모두 벌거숭이산이 된 것이었다. 그런데 감포 까지의 길은 꽤 멀었고 저녁을 먹고 나니 시간은 9시가 넘어서고 있었다.
우리는 다시 숙소로 가는 길을 접어들었다. 그런데 갑자기 차가 서게되었다. 늦은 시각이고 한적한 길이기 때문에 무슨 일로 이렇게 차가 막힐까 의아해 했는데 갑자기 오른 쪽이 확 밝아졌다. 우리 차안에서 얼마 안 되는 지점에 산불이 난 것이었다. 소방차가 오더니 5∼6대의 차를 정지 시켰다. 우리는 꼼짝없이 발이 묶이고 말았다. 이 산불은 어느 차가 과속으로 달리다가 커버에서 산에 박으며 사고가 났는데 거기서 불이 붙기 시작한 것이었다. 불은 마른 낙엽과 나무를 태우며 산을 타고 올라가기 시작했다. 나는 불이 난 것을 실제로 보는 것이 처음이었는데 불이 그렇게 빠른 줄은 몰랐다. 소방차에서 계속 진화작업을 펼쳤지만 불길은 수그러들지 않고 계속 번져 금방 산꼭대기에 올랐다. 우리 가족은 혹시 산너머에 마을은 없나 걱정이 되었다.
긴장된 순간 불길이 점차 수그러들기 시작하더니 얼마후 작은 불꽃만 남기고 불은 꺼져갔다. 그때서야 우리가족은 20여분만에 숙소로 돌아갈 수 있었다. 나는 활활 타오르던 불꽃이 머리 속에서 쉽게 떠나가지 않았으나 잠이 들었다.
다음날 우리가족은 계속 여행을 했다. 김유신 장군 묘에도 갔었는데 주위가 새까맣고 소나무들도 다 죽어 있었다. 겨울이라서 그런 줄 알았는데 김유신 장군묘 근처에도 산불이 나서 주위 나무들과 풀들은 다 죽었고 장군 묘에 옮아 붙기 직전에 간신히 불을 껐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잘못했으면 소중한 조상의 유산인 김유신 장군묘가 새까맣게 탈 뻔한 것이었다. 그 주위의 오래된 소나무가 탄 것도 아까웠다.
나는 차안에서 어제의 산불과 김유신장군묘 주위의 모습을 생각했다. 산불은 공기도 정회시켜주고 목재도 제공하는 소중한 자원 나무도 몽땅 태우고 주변 경관도 해치고 잘못하면 인명피해도 낸다. 또 김유신 장군묘에서처럼 문화유산까지 태워 버릴 수도 있다. 비단 산불만이 아니라 모든 불은 잘만 사용하면 인간에게 많은 도움을 주지만 잘못하면 엄청난 피해를 낸다.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산불은 교통사고와 같은 경우로 일어나기도 하지만 대부분 불장난, 담배꽁초 하나에서 일어난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우리의 부주의 하나가 엄청난 피해를 내는데 우리는 왜 그런 일을 할까?
6학년 수학여행 때 김유신 장군묘를 다시 찾았다. 장군 묘 근처에는 새로 심은 어린 소나무들이 꽤 자라 있었다. 어린 소나무들을 보여 이 소나무는 인간의 부주의로 인해 타게 하지 말아야겠다는 각오를 다졌다. 부주의로 생기는 불은 이 세상에서 존재할 수 없도록 해야지!
(우수상)
수철리 산불이 준 교훈
금곡초등학교 4학년 정수아
작년 이맘때의 일이다.
친구들과 신나게 떠들며 집으로 가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들려왔다.
"응, 저기 소방차잖아. 어디 불리 났나봐."
그 순간 소방차는 벌써 우리 옆을 지나 어디론가 사이렌을 울리며 급히 달려가고 있었다. 그것도 한 대가 아닌 여러 대가 달리는 것을 보며 우린 어디서 불이 났는지 몹시 궁금해졌다.
"얘들아, 우리 어디서 불이 났는지 옥상에 올라가 볼까?"
"그래. 그게 좋겠어."
우린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어른들 몰래 우리가 초원 아파트의 옥상으로 뛰어 갔다.
그 순간 우린 산 쪽에서 시커먼 연기가 솟아나는 광경을 볼 수 있었다.
"야, 저기 산에 불이 났나봐."
"그래, 다행히 소방차가 갔으니까 이제 괜찮을 거야."
우린 불이 난걸 알고 얼른 부모님께 알리기 위해 옥상을 내려왔다.
그러나, 막상 불이 난 걸 보니 마음도 두근두근 떨렸다.
집에 들어서자마자 어머니께 말씀드리니 깜짝 놀라시며,
"저런, 큰 일이구나."
하시며 안타까운 표정을 지으셨다.
저녁 늦게 들어오신 아버지께서도 오늘 우리 학교 근처의 수철리 산에서 불이 났다고 하시며 다행히 불길은 잡혔지만 산이 제법 탔다고 걱정하셨다.
다음날 학교에 가니 친구들도 온통 어제 난 산불에 대해 얘기하고 있었다.
산불이 났던 동네의 친구는 산이 타는 모습을 직접 봤다며 산아래 밭에서 일하시던 할아버지께서 쓰레기를 모아 태우시다가 불이 산으로 번져 그렇게 된 것이라고 말해 주었다. 불이 나자 소방차가 여러 대 왔지만 계속 산 위로 불이 번져 제대로 끌 수가 없었다는 이야기도, 또 헬리콥터가 저수지의 물을 퍼 날라 겨우 껐다는 이야기를 실감나게 들으면서 그 산이 어떤 모습으로 변했을까 걱정이 되기도 하였다.
1교시 수업이 시작될 무렵에 들어오신 선생님께서도 어제 난 산불에 대해 말씀하시며 더욱 불조심을 강조하셨다.
선생님께서
"할아버지의 잘못을 무엇이지요?"라고 물으시자
"쓰레기 태운 것이 잘못이에요."
우리는 모두 소리 높여 대답했다.
"쓰레기는 태워야지. 태우지 않고 어떻게 하니?"
선생님 말씀에 우리는 대답을 못했다. 그러자 선생님께서는 또 우리에게
" 쓰레기 태우는 장소가 알맞은 곳이었다고 생각하니?"하고 질문하셨다.
"아니요."
"왜 그렇게 생각하지?"
"바람이 불면 산으로 불씨가 옮겨가서 그래요. ?
우리들 대답에 선생님께서는 빙그레 웃으시며 고개를 끄덕이셨다.
"불을 다룰 때는 첫째로 불이 옮아 붙을 위험이 없나 생각해야 해. 그게 바로 불조심이야. 말로만 하는 불조심은 소용없어. 할아버지께서는 그 생각을 못하신 것 같구나."
하시며 안타까워하셨다.
그날 오후 선생님과 우리 반 친구 모두는 수 십 년 자란 나무들이 순간의 실수로 타버린 수철리 산을 가까이 서서 바라보며 정말 불조심을 해야겠다는 걸 실감하게 되었다. 지금도 내 머릿속에는 검게 타버린 수철리 산의 모습이 생생하게 떠오른다.
(우수상)
고마운 불을 화나게 하지 마세요
예산초등학교 4학년 이지영
불이 없다면 우리는 맛있는 밥을 먹을 수 없고, 추운 겨울날 따뜻하게 지낼 수 없습니다. 그리고 깜깜한 어둠 속에서 지내야 합니다.
불은 우리 곁에 없어서는 안될 친구입니다.
전깃불, 가스 불, 난로 불, 연탄불 우리는 이런 친구들과 함께 살아왔고 지금도 살아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불은 영원한 친구입니다. 하지만 불은 우리들을 행복하게 해 주기도 하고 불행하게도 합니다.
사회 발전에 참여한 불.
전쟁에 사용된 불.
불이란 친구를 사랑하며 잘 사용하면 우리에게 불은 종은 친구가 되고 관심 없이 함부로 사용하면 우리에게 나쁜 적이 되지요.
지난여름 방학 우리 가족은 텔레비전을 보면서 눈물 흘린 적이 있지요. 나라의 꿈나무인 유치원 어린이들이 캠프를 갔다가 불에 타서 많이 죽었다는 것이 텔레비전에 나왔거든요. 그런데 그 상처가 낫기도 전에 얼마 전 뉴스에 맥주 집에서 불이 나 고등학생 언니 오빠들이 많이 죽었다는 것이었습니다. 학생들이 술집에 간 것도 잘못이지만 어른들이 양심을 갖고 조금만 관심은 가졌다면 이런 불행한 일은 없었을 텐데… 어른들은 참 나쁜 것 같아요.
우리들이 잘 배우고 자라야 우리 나라가 발전 할 텐데, 왜 자신의 이익만 생각하고 자신의 자식만 생각할까요?
우리 나라 어른들께서 모든 어린이들을 내 자신의 자식으로 생각하며 소중히 대해 주신다면 우리의 장래는 아주 멋지게 어린이들이 가꾸어 나갈 텐데요.
혼자만이 이기심을 버리고 서로간의 관심 속에서 작은 불씨 하나도 소중히 하여 앞으로는 불행한 일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조심하고 또 조심하여 우리친구 불이 화내지 않고 좋은 일 행복한 일 발정하는 일에만 사용되고, 우리의 마음까지 따뜻하게 해 주는 친구로 남아 앞으로는 모든 사람의 마음에 따뜻한 빛으로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조심하면 할수록 좋은 불조심을 실천합시다.
(우수상)
불조심
월랑초등학교 6학년 신봉준
"오빠, 불났어 불!"
편지를 부치러 갔던 동생이 황급히 뛰어 왔다. 나는 옥상으로 올라갔다. 정말 한 길 건너 한 곳에서 검은 연기와 붉은 불꽃이 치솟고 있다.
"왜 ∼ 앵."
한기 저 편에서 소방차가 몇 대 달려오고 있었다.
"야! 이젠 됐다."
소방대원들이 물을 뿌리자. 불길도 약해지고 연기도 점점 하얗게 변해갔다. 나는 그 희게 되어 가는 연기 속에서 내가 이 월랑에 오기 전 고향에서의 일을 생각해냈다. 몇 년 전, 추석 전이라 과일이 판치던 때였다. 그런데 우리 면에서도 제일 큰 과일 상점에 불이 났던 것이다. 밤 9시쯤, 잇달아 들린 -
"불이야!"
소리에 밖으로 뛰쳐나갔다. 밤이었지만 불빛을 받은 마을은 대낮이었다. 소방서가 없는 마을이라 면민들이 양동이로 물을 퍼서 불을 껐다. 몇 분만에 꺼진 불은 많은 슬픔을 남겼다. 몇 해 동안 피땀 흘려 모은 돈으로 사들인 과일이 모두 …….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슬픈 것은 아장아장 걸어다니던 아기가 불에 타서 그만 …….
"야! 불이 다 꺼졌다."
동생의 고함에 나는 정신을 되찾았다.
불꽃은 다 사그라지고 이젠 흰 연기만이 보일락 말락 나고 있었다. 층계를 내려오면서,
오늘 난 그 불도 많은 피해를 남겼겠지!. 하고 생각하니, 불이 괘씸하기 짝이 없었다. 서울, 인천, 부산 여기저기서 오늘도 내일도 쉬지 않고 일어나는 화재사건, 인명 및 재산피해.
방에 들어와서
"저렇게 무서운 불을 막는 방법은 없을까?"하고 생각해 보았다. 그러다가 나는 한 가지 결론을 얻었다.
불을 막는 방법은 조심 뿐이야. 불이 날 수 있는 모든 물질에 세심한 관심을 쏟는 것 외에는 … …. " 나는 마음속으로 크게 외쳤다. " 불조심 "이라고 ……
여성의용소방대 문예지 창간호
봉사하는 일은 아름답다
발행인 / 충청남도아산소방서 여성의용소방대
발행일 / 2000. 11.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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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번호 / 등록 제10-51-98-7호
등록일자 / 1998년 4월 25일
첫댓글 한정찬 문학서재에서 읽은적이 몇번 있습니다 충남 의용도 이곳이면 OK 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