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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의 뜰(cafe글쓰기) 스크랩 왕관을 쓰고 - 함혜자
scrap 추천 0 조회 12 08.04.17 19:0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왕관을 쓰고 함 혜 자
     
    
      3천세대가 넘는 아파트 단지에 딸린 상가만 하더라도 시골 장 한 개 규모는 족히 될 터이다. 그런데도 
    우리 동네는 환승 역세권이여서인지 상가를 3미터 가량을 사이에 두고 노점 또한 열댓 군데는 족히 된다. 
    호떡, 옥수수, 붕어빵, 떡볶이, 전, 어묵, 샌드위치, 후라이드, 닭꼬치, 과일 등등...음식 종류 역시 열댓 
    종류가 넘을 만큼 우리 동네는 노점 천국이다.  
    상가에 딸린 열 개가 넘는 부동산가게, 인테리어가게, 떡 가게, 빵가게를 지나며 손님이 있나 없나를 
    관찰하는 것은 오래된 나의 버릇이다. 그렇다고 매상을 올려주는 쇼핑을 즐기는 것도 아닌데도 말이다. 
    간혹 인테리어를 새로 하는 가게가 있기라도 할 때에는 그 앞에서 걸음을 머뭇거리게 되는 것은 번듯한 
    내 가게를 해보려던 꿈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 때문일게다. 
    
    며칠 전에 부동산 가게 하나가 없어지고 그 자리에 떡볶이 가게가 들어섰다. 아버지가 만든 튀김, 
    딸이 만든 떡볶이라는 모토의 체인점이 생긴 것이다. 지나면서 보자니 첫 월급타서 사드린 엄마 내복보다 
    더 빨간 양념의 떡볶이, 겨울 외투만큼이나 두툼한 튀김옷을 입고 기름통으로 몸을 던지는 모습이 낙화암에 
    몸을 던지는 삼천궁녀 모습을 연상시킨다. 처녀의 젖가슴처럼 오동통한 순대, 원색적인 인테리어와 입간판
    마저 시각, 미각, 청각을 사로잡기에 손색이 없어 뵌다. 
    
    술 담배를 안 하는 이유인지 아니면 습관적으로 주전부리를 즐기는지는 모를 일이지만 귀가 길에 남편의 
    손에는 곧잘 군것질거리가 들려있다. 나는 별난 성미 때문에 외식도 거리음식도 즐기는 편이 아닌 터라 
    내 반응은 늘 시들한 편이다. 
      며칠 전, 늘 같은 반응인 줄 알면서도 남편은 비닐봉지에다 어묵국물과 떡볶이를 또 사와 슬며시 식탁에 
    올려놓는다. 역시 싸늘한 반응인 나를 향해 
     ‘동네 경제에도 일조를 해야 되는 게야’ 
    하며 넥타이를 힘껏 잡아당기는 모습이 짐짓 뭔가 불만이 있음을 알 수 있었다. 
    ‘ 가게를 내려면 좀 떨어진 곳에나 내던지...’ 
    남편의 그 말은 떡볶이 노점과 마주보면 코가 맞닿는 상가에 떡볶이 체인점을 두고 하는 말이었다. 
    그랬다. 불과 3미터도 안 떨어진 곳에다 같은 업종을 차렸으니 남편의 말도 지나친 말은 아니다. 시쳇말로 
    게임이 안 되는 게임을 시작한 셈이다. 
    나는 꽃샘바람처럼 시린 음성으로 비아냥댄다. 
    ‘1005호 아줌마하고 단체로 오지랖 좁히는 수술이나 하러가~, 잘하는 성형외과 내가 소개해 줄게~’ 
    평소 자기 앞가림도 제대로 못하면서 남의 일에 관심이 더 많은 남편에게 하는 비아냥이었다. 
      
    며칠 후 해질 무렵이었다, 
    상가 앞을 지나다 축 늘어진 앞치마 주머니에 두 손을 지른 채 건너편 번듯한 상가 떡볶이 가게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는 아주머니를 발견했다. 환갑을 넘긴 부부가 엄동설한 한데에서 장사하기란 사실 힘든 일이 
    아닐 수 없다.  남편이 걱정을 할 만큼  새로 개업한 그 번듯한 가게로만 사람들이 구름처럼 몰려 있었다. 
    똑같은 유니폼에 모자까지 똑같이 갖춰 쓴 세 아주머니는 
    ‘어서 오세요, 안녕히 가세요, 또 오세요’ 
    하는 소프라노 톤의 인사는 기름에 튀겨지는 음식소리와  뒤섞여 요란했다. 내 시선은 나도 모르게 건너 
    노점 아주머니에게도 돌아갔다. 역시나 노점 아주머니의 표정은 풀 죽은 앞치마만큼이나 축 쳐져 있었다. 
    좀체 길거리 음식을 안 먹는 내 발걸음이 나도 모르게 포장을 들고 노점으로 들어섰다. 2개에 천원하는 
    어묵을 먹고 천원을 내려니 미안했다. 그렇다고 더 먹을 양은 더더욱 안돼 괜히 들어왔다며 이내 후회가 됐다. 
    추운데 국물을 마시라며 종이컵에 따라주는 아주머니의 사양에 못 이겨 국물 한 컵을 마셨다. 종이 컵 한 
    개에도 삼십 원이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나 더욱 미안해졌다. 
    불에 타는 나일론처럼 쪼그라드는 목소리로 
    '아주머니 손님들이 다시 돌아 올 거예요, 저도 자주 올 게요' 
    묻지도 않는 말을 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옛말에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말도 있듯이 번듯하고 깨끗한 상가로 몰리는 신세대를 탓할 수는 
    없다. 노점이 갖는 부정적인 의식이 말끔히 지워지지 않는 한 소비형태를 바꾸기란 쉬운 노릇이 아니다. 
    상가와 노점의 관계는 재래시장과 백화점의 관계와 다를 바 없다. 편리성으로 보나 위생상으로 보나 
    백화점과 대형매장을 비하면 노점에 대한 시각이 좋은 편은 아니다. 한편 심정적인 정서와 현실사이에서 
    소 서민들은 재래시장을 외면하기에도 뭔지 모를 미안함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때마침 설을 앞두고 오늘 아침  tv에서 설 차례 상 차리는데 드는 제수용품 값을 백화점과 재래시장을 
    비교하여 보여주었다. 백화점보다 재래시장을 이용하면 무려 36%나 차이가 난다며 재래시장을 이용
    하라는 권유였다. 나 또한 재래시장에는 수입농산물이 넘쳐나기도 할뿐더러 1대 1로 상대를 해야 하는 
    데에 짐짓 질려 신토불이를 모토로 한 할인매장을 즐겨 이용하던 나는 남편의 눈치를 살피지 않을 수 
    없었다. 소시민인 내게 36% 라는 수치는 결코 무시할 만한 수치가 아니지 않는가! 또한 우리의 이웃들인 
    재래시장상인과 노점상의 어려움을  생각한다면 재래시장으로 가야 할 터인 즉, 돈 은 많으나 못생긴 
    총각과 돈은 없으나 잘생긴 사람사이에서 고민하는 처녀처럼 고민 아닌 고민에 빠져본다. 
    
    손님이 왕이라고 누가 말했던가! 오지랖 넓기로 말하면 나는 남편을 능가할 지도 모른다. 싼 거 팔아주면 
    싼 것을 팔아 줘서 미안하고, 안사고 나오면 안사고 나오는 뒤통수가 따가우니 내 체질에는 왕관을 씌워줘도 
    감당 못할 위인임에는 분명하지만 올 설 장보기는 남편의 희망대로 소시민들의 인정이 넘치는 재래시장을 
    이용하여 볼 참이다. 비록 화려하거나 번듯하지도 않더라도, 또한 1:1 대응에 서툴긴 하더라도 남편이 
    말하는 동네 경제와 가정경제에 일조한다는 생각으로 왕같은 손님이 되어 기꺼이 재래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리라 생각해 본다. 노점의 떡볶이 아주머니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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