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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뚜껑 열린 자동차 여행방 원문보기 글쓴이: 꼬글인
- 북유럽 자동차 여행기 -
꼬글인 북유럽을
누비다
저자; 꼬글인 류경식
글머리에
친구에게서 연락이 왔다.
이번 여름에 배낭여행을 가고 싶다면서 같이 가잔다. 작년 여름과 겨울 방학을 연속으로 각 한 달 씩 해외배낭여행을 다녀왔는지라 이번 여름 방학 때는 쉬어 볼 생각이었는데 김정선 친구의 느닷없는 공습제의에 내 마음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미국, 캐나다 쪽으로 여행할 생각을 하였으나 더위를 피해 여행할 수 있는 곳을 찾다보니 북유럽이 떠올랐다. 평소 북유럽의 아름다운 절경과 여유롭게 살아가는 국민들의 모습이 떠올라 한번쯤 가보고 싶다는 동경 속에서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또 한 가지의 호기심은 자동차여행을 통한 좀 고급스럽고 여유로운 여행이 부럽게 느껴져 바로 행동개시하기에 이르렀다. 우선 주위에 소문을 내어보니 같은 직장 동료인 후배 이용표 선생이 동행할 것을 제의해 왔다. 또 한사람을 인터넷으로 광고를 내어 네 명의 인원이 확정되었고 계획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여행사를 통해 항공권을 예약하고 텐트와 식사준비를 위한 부식도 일일이 상세한 계산에 입각해서 준비해 나갔다.
쌀 10kg, 된장, 수프, 라면, 김, 멸치등등 준비물을 싼 짐이 세 박스나 되었다. 인터넷을 통해 자동차여행기에 관한 자료도 뽑고 충분히 자료를 정리하고 Hertz란 렌트카 회사에 예약을 하는 등 모든 준비를 완벽히 하였다.
북유럽은 우리를 받아들이기에 충분히 준비되어 있었고 특히 노르웨이의 동화속의 집들과 어우러진 산악지형과 피요르드를 지날 때는 황홀한 절경에 우리는 할 말을 감탄사로 대신할 따름이었다. 아니 감탄사 외에는 더 말이 필요 없었다.
한국에는 100년만의 무더위에 열대야로 잠 못 들어 고생하고 있다는데 늦가을에서 초겨울 같은 서늘한 날씨 속에서의 여행은 집에 있는 사람들에게 좀 미안하기도 했다.
여행하는 동안 동료들 간에 사고의 차이에서 오는 다소의 불협화음 때문에 마음고생은 좀 되었지만 그것은 각자의 마음속에서 ‘내 잘못이오.’라는 생각이 부족하였던 때문으로 반성하는 계기가 되기도 했다.
이번 자동차 여행은 경비가 1인당 250만원 정도 들었으나 보통의 배낭여행이, 약소하게 잡아도 유럽 여행의 경우 유레일패스를 이용하는데 1인당 70만원 정도와 숙식비 20일에 60만원 정도와 식사비용 60만원 정도, 그리고 입장료와 교통비 및 기타경비 50만원으로 항공료 110만원을 계산하면 350만원이 드는 것으로 볼 때 그보다 100만원이나 적게 소요되었고 일반 배낭여행의 2배 이상 다양하고 많은 볼거리를 구경할 수 있었기에 자동차여행이 보통 배낭여행보다 실제로 세 배 이상 경비 절감 효과를 노릴 수 있었다고 볼 수 있다. 전 세계에서 물가가 가장 비싸기로 소문난 북유럽을 250만원으로 여행을 마칠 수 있었던 것이 이번 여행에서 얻은 쾌거라고나 할까.
23일간이란 한 달이 채 못 된 기간 동안 6개국(노르웨이, 스웨덴, 핀란드, 덴마크, 네델란드, 독일, 벨기에)을 둘러보게 될 수 있었던 것도 자동차 여행이 가져다 준 덤이요, 이권이었다.
길을 잘 못 들어 산 속으로 난 길을 헤맬 때에도 만년설의 의연한 자태와 곳곳에 펼쳐진 아담한 호수들과 침엽수들의 행렬......, 생각지도 못한 절경에 감탄사를 연발하던 때의 기억을 지울 수 없다.
짧은 여행 일정상 가보지 못한 스칸디나비아의 북부지방을 가 보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쉽고 오늘도 그리워하고 있지만 다시 찾게 될 그때까지 그리워하게 될 것이다.
2006년 3월에 글을 정리하며......
류 경 식
목 차
(첫째날) 부산→토쿄 나리타공항→나리타 시내구경ㆍㆍ 7
(2일째) 토쿄→암스텔담 스키폴 공항ㆍㆍㆍㆍㆍㆍㆍㆍ 13
(3일째) 암스텔담 시내구경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17
(4일째) 암스텔담→함부르크→푸트가르덴→뢰드비ㆍㆍ 22
(5일째) 덴마크 뢰드비→코펜하겐→오슬로 근교ㆍㆍㆍ 34
(6일째) 오슬로 시내구경→베르겐으로 향함ㆍㆍㆍㆍㆍ 37
(7일째) 오슬로 근교→베르겐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45
(8일째) 베르겐 시내구경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51
(9일째) 베르겐 근교?게이랑게르 피요르드? 트론하임으로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 59
(10일째) 트론하임→우메아로 향함ㆍㆍㆍㆍㆍㆍㆍㆍㆍ68
(11일째) 바사 시내구경→탐페레행ㆍㆍㆍㆍㆍㆍㆍㆍㆍ77
(12일째) 탐페레 시내 구경→헬싱키로 향함ㆍㆍㆍㆍㆍ83
(13일째) 헬싱키시내구경→투르쿠ㆍㆍㆍㆍㆍㆍㆍㆍㆍ 89
(14일째) 투르쿠 시내 구경→실야라인 배에서ㆍㆍㆍㆍ97
(15일째) 스톡홀름 시내 구경→코펜하겐으로 향함ㆍ 106
(16일째) 스웨덴 캠프장→코펜하겐 시내구경ㆍㆍㆍㆍ118
(17일째) 오덴세 시내구경→함부르크로 향함ㆍㆍㆍㆍ127
(18일째) 함부르크 시내구경→하노버로 향함ㆍㆍㆍㆍ135
(19일째) 도르트문트 시내구경→에쎈 시내구경→벨기에 브뤼셀로 향함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 144
(20일째) 벨기에 브뤼셀 시내구경→암스텔담 캠핑장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152
(21일째) 암스텔담 시내구경→스키폴 공항→도쿄로 향함 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165
(22일째) 일본 나리타공항→나리타 시내로 향함ㆍㆍ 176
(23일째) 나리타→부산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ㆍ180
부산→Tokyo 나리타공항→나리타 시내구경
(첫째날) 2005. 7. 29. 금요일. 흐림
드디어 오늘 출발이다. 며칠동안 여행 준비하느라 E마트를 네 번씩이나 다니면서 구입한 물건들이 30만원을 훌쩍 넘었다. 쌀, 부식들, 된장, 간장, 미역, 김, 멸치…….등등
두 박스에 빼곡히 들어갔고 집에서 준비한 밑반찬 (깻잎, 콩잎 절인 것…….)을 미쳐 다 넣을 수가 없다. 처음엔 친구 김정선과 부인, 그리고 후배 이용표 선생과 같이 가기로 하였으나 친구 부인이 취소하여 3명만 가기로 하였다가 인터넷 여행카페에서 새로 들어온 공도식이란 대전에 사는 친구가 합류하여 네 명이 되었다.
공도식씨는 대전 현대자동차에 근무한다고 하고 늦게서야 항공권 구입에 신청하였는데 좌석이 ‘대기’로 되어있어 기다렸지만 불과 일주일전에야 네 번의 항공권 자석 (부산-나리타 ,나리타-암스텔담, 암스텔담-나리타 ,나리타-부산)의 네 코스 중 두 개만 풀렸었는데 출발 6일을 남겨두고 모두 풀려 합류하게 되었다. 그런데 세 명만 가기로 하고 Tent를 4~5인용을 준비했으므로 적어도 7~8인용으로 바꿔야 하는데 교환이 안 되는 상황이다. 공도식씨가 7~8인용 텐트를 사겠다고 하였지만 지출 부담을 너무 주는 것 같아서 자기가 가지고 있다는 1인용 텐트를 하나 더 가져가자고 했다. 캠핑장에서 텐트를 하나 더 치면 비용이 더 들까봐 걱정했는데 그냥 밀고 나가기로 했다. 혹시 인원수대로 계산 한다면
힘찬 출발, 결속을 다짐하며......
공도식씨가 같이 감으로 해서 국제 운전 면허증을 나와 공도식씨가 발급하고 김정선군은 발급하지 말라고 했다. 운전자를 한 사람씩 추가하는데 따라 30만원씩 부과되기 때문이다. 김정선군이 차를 가지고 우리 집에 와서 짐을 싣고 친구 부인과 함께 김해 공항으로 출발했다. 공동으로 구입한 생필품이 무려 45~50kg이나 되었다. 공항에는 이미 공도식씨와 이용표군이 기다리고 있었고 먼저 간단한 인사를 나눈 뒤 짐을 부치니 네 명의 짐이 무려 100kg를 초과했지만(기본 1인당 20kg까지임) 항공사에서 허락하여 통과 되었고 김정선군의 사모님이 베푸는 점심식사 대림을 받았는데 레스토랑에서 7000원씩 하는 비빔밥류의 식사를 마치고 출국절차를 밟았다.
언제나 여행을 떠나는 마음을 오늘처럼 설레었고 낚시를 떠나는 마음과도 흡사하다. 오후 3시 20분 출발 예정이었으나 연착되어 3시40분에야 출발했다. 그 시간의 비행 후 일본 나리타공항에 도착하여 셔틀 버스로 나리타 니코 호텔까지는 불과 10분 거리 A급 호텔은 웅장했고 이제부터 20일 후에야 구경할 수 있는 A급 호텔에서 호강스런 하루가 시간을 넘고 있었다. 짐만 챙겨둔 채 호텔을 나오려 다가 용표가 비행기에 두고 내린 담배 한 보로
수퍼마?R의 간이 탁자에서 가진 간단한 저녁식사는 무려 3만원.,.....
를 찾을 수 있을까 하고 카운터에서 방법을 알아서 보기로 하고 도쿄 시내 구경을 할려니 도쿄까지는 무려 버스로 2시간 거리란다. 그래서 포기하고 나리타 시내를 호텔에서 직접 운행하는 셔틀 버스로 구경하기로 하였다. 작은 도시의 서산으로 지는 해는 힘겹게 붉은 옷자락을 추스르며 꼬리를 감추었고 이내 어둑살이 또 다른 도시의 불빛을 꽃피우며 새롭게 모습을 드러내는 시야가 펼쳐진다. 버스가 처음 도착한 곳은 큰 쇼핑센터 건물이 있는 곳이었고 우리는 스포츠 용품을 파는 건물로 들어가다가 나중에 보기로 하고 이내 나와서 다시 버스를 탔다. 호텔카운터가 안내해 준 나리타 관광 안내지도의 표시된 곳을 먼저 둘러볼 생각에서였다. 지도를 보고 길을 가다보니 정선군이 식료품 마켓에서 먹을 꺼리를 사서 식사로 해결하자고 하여 들어가 보니 앉아서 먹을 수 있는 식탁이 7개 정도 있었고 그 안에서 주식과 부식류와 요리된 여러 음식들(김밥, 회종류, 콩나물국, 담근 일본식의 각종 조리된)이 다양하게 진열되어 있었고 맥주병과 함께 이것저것 담아서 계산해보니 3000엔이었고 식탁에 앉아서 즐겁게 담소하면서 식사와 맥주를 저렴한 가격에 해결하고 나니 한결 몸과 마음이 즐겁다. 지도에 표시된 길을 가다 보니 잘못된 것을 알고 지하철 역 쪽으로 가다 보니 너무 많이 지나와서 점점 한적한 시골로 가고 있었고 돌아 나와 다시 바른 길을 찾아서 걸어갔으나 몇몇 불 켜진 술집들이 들어선 거리였다. 호텔 카운터에서는 관광객이 밤에 한잔 할 수 있는 곳을 지도로 표시하여 나누어 주었고 그 술집들도 구멍가게식의 호프집 정도 수준의 집들이고 장어구이 집이 많이 있었다. 너무 많이 걸어서 돌아가려다가 조금 더 걷다보니 ‘成田山’이란 간판을 한 큰 절(寺)이 있었다. 우리나라 범어사만큼이나 크고 웅장하며 오밀조밀하게 아름다운 부분들이 가는 곳마다 조성되어 산만한 곳이나 허전한 곳이 별로 없고 일본식의 치밀한 정원 조성의 치밀함을 엿볼 수 있었다. 카메라에 담으려고 애썼지만 너무 어두워 그 아름다운 풍경을 담기는 힘들어 야경촬영 모드로 몇 장의 사진을 남기고 다시 돌아 나왔다. 정선군이 혼자서 빠른 걸음으로 30m정도 앞서 걸었고 나도 따라가려고 빨리 걷다보니 무릎이 시큰거려온다. 천천히 걸어야 하는데……. 일본 나리타는 밤 9시인데 상가들은 모두 문을 닫아 거리가 컴컴하였다. 우리나라와는 생활태도가 좀 다른 것 같다. 나리타 시내는 아주 작은 도시로서 농촌에 인접한 도시로 볼 수 있겠다. 정류소에 도착하니 버스 시간인 10시 40분까지는 40분이나 남았다. 정선군이 태극권 24단계를 한다고 육교위에서 원맨쇼를 시작하였다. 제법 훌륭히 해내었고 우리는 박수를 쳐주었다. 천천히 진행되는 동작 속에 예리함이 있었고 공격과 방어술이 조합된 것 같았다. 셔틀 버스로 호텔로 돌아온 뒤에는 비행기에서 모아 온 레드와인 세 병을 먹었는데 그런데 내가 너무 목이 말라서 냉장고 속의 2홉들이 물 한 병을 먹고 보니 돈을 받는 미네랄 워터라고 용표가 이야기 해주었다. 가격이 무려 3000원이다. 나중에 보니 냉장고 위에 물주전자가 있었지만 후회한들 무엇 하리오. 레드 와인으로 한잔 씩 나누며 앞으로 동고동락할 친구들이니 즐거운 여행이 되길 다짐하기도 하며 담소를 나누고 너무도 피곤한 육신을 침대에 맡기고 말았으나 쉬 잠이 오질 않는다. 한 시간이나 뒤척인 후에야 나도 모르게 잠이 들었는데 평소 잘 안 꾸던 꿈을 꾸었다. 꿈속에서 우리 넷이서 농촌에 놀러를 갔는데 거기는 논에 미터급이 넘는 내 허벅지 굵기의 가물치가 많이 있었고 어떤 농부가 우리에게 가물치를 잡아주며 받아들고 좋아하는 우리들이었다. 이 꿈은 우리의 이번 여행에 어떤 영향을 줄 것인가? 좋은 꿈? 불길한 꿈?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이 꿈이야 어쨌든 우리 모두가 서로의 마음을 이해하고 양보하는 마음으로 즐겁기만 한 여행이 되길 진심으로 빌어본다.
Tokyo → Amsteldam 스키폴 공항
(2일째) 7월 30일, 토요일, 흐림
아침 7시에 기상하려고 알람을 해 두었으나 7시에 눈을 떴다가는 다시 침대의 유혹 속으로 빨려들기만 한다.
8시에 아침 식사를 하기로 약속했는데 좀처럼 잠에서 깰 수가 없다. 다시 잠들었다가 깨어보니 7시 40분이다. 정선이는 이미 샤워를 끝내고 짐을 챙기고 있었다. 일본의 호텔에서 주는 일회용 면도날이 한국의 일회용 면도기보다 훨씬 성능이 좋고 면도가 잘 된다. 20일 후에 다시 귀국 ?? 들리면 1회용 면도기를 한 셋트 사야겠다고 마음먹었다. 일본인들은 이처럼 소비자에게 사소한 것에서부터 구매의욕을 자연스럽게 불러일으키는 세밀함을 엿볼 수 있었다. 한국의 일회용 면도기는 칼날이 벌어져 있어 자칫하면 턱을 베이기 일쑤다. 1층의 식당으로 가보니 이미 많은 외국인이 식사에 열중들이다. 부페는 양식부와 일식부로 나뉘어져 있었고 가뿐하게 즐거운 식사를 일식으로 장식하고 나니 너무 상쾌하다. 1층 로비에서 항공권 티켓팅을 마치고 나서 셔틀버스로 나리타 공항으로 향했다. 용표의 잃어버린 담배 한 보루를 찾으려고 노력하였으나 찾을 수는 없었다. 일본인은 정직해서 90%는 찾을 수 있을 거라 믿었으나 없는 것을 보니 다른 관광객이 비행기에서 내리다가 가져간 모양이다. 일본 출국 수속을 하는 도중 정선이의 과일 칼이 압수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통과 되었는데 일본에서는 압수된 것이다.
3인 좌석에 일본인 아주머니 한 분이 같이 탔는데 영어를 유창하게 잘 한다. 우리의 영어가 짧아서 계속 이어지지는 못했지만 우리의 모습이 우스웠던지 그 일본 아주머니는 자주 웃어댄다. 가족끼리 여행을 프랑스 ‘리스’란 도시로 간다고 한다.
기내식은 일본식과 서양식 두 가지였는데 빵을 싫어하는 나는 당연 일본식으로 택했지만 식사의 양이 너무 적어서 한 그릇 더 달라고 하며 “I'm hungry!" 했더니 모두들 우습단다. 여분이 없다며 더 주지는 않았다. 비행기는 지루하게도 귓전을 울리는 엔진 소리와 공기 저항으로 오는 바람 소리만 비행기 안에 가득하고 사람들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정선군도 잠이 들었다. 비행기 속에 아니 하늘의 한 가운데에서 일기를 쓰고 있다는 것도 참으로 새삼스럽다.
연필 아래로 러시아의 작은 산들이 오목조목 무릎을 꿇고 엎드리고 있고 흰 뭉게구름이 심심함을 덜어주며 눈가를 스쳐가고 있을 뿐. 암스텔담까지 아직 8시간 이상 더 가야한다. 좁은 의자에 의지한 육신은 부분적으로 근육이 배겨오기 시작한다. 저다 깨다를 반복하다 보니 설 잠을 설쳐서 눈이 따끔거렸다. 지루하게 닭장 같은 틀 속에 갇혀 온 12시간 동안 다리가 퉁퉁 부어오르고 온 몸이 주리가 틀린다. 비행기 고도가 점점 낮아지고 바둑판처럼 정돈된 암스텔담 풍경이 눈 안에서 반기기 시작한다.
먼저 나온 우리는 용표와 Mr.공이 기다렸다가 걸어 나가다보니 우리의 행렬을 잃어버렸다. 도중에 여권을 제시하다보니 검시원이 이상하다며 따로 다른 사무실로 가서 조사를 받고 가라기에 한참을 기다려 수속을 마치고 Hertz Lent car 사무실로 가서 국제 면허증과 예약증을 제시하니 본 운전 면허증을 보잔다. 나는 집에 두고 온 면허증이 생각났다. 혹시 분실의 염려 대문에 일부러 빼놓고 온 것이 우리의 일정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Mr.공도 면허증을 집에 두고 왔단다. 한참을 고민하며 기다리다 보니 면허증 복사본을 FAX로 부쳐 달란다. 집으로 전화를 했다. 새벽 1시다.(한국 시간) 한밤중 잠에 빠져있는 집사람에게 파출소로 가서 팩스로 부쳐달라고 부탁을 하고 한참을 기다려 또 전화해보니 민원은 파출소에서 하지 않고 경찰서로 팩스를 부쳐서 해야 된다기에 또 기다렸다가 전화했더니 경찰서에 국제 FAX가 연결이 되지 않아 시경찰국에 부탁해 달라고 했고 다시 전화해보니 번호대로 FAX 보내어도 잘못된 번호라며 끊기더라는 것이다. 국제전화 FAX 연결이 시경찰국에도 안 되어 있나보다. 저녁 8시가 되어도 해는 여전히 하늘에서 빛을 발하고 있고 우리의 걱정은 더욱더 깊어만 갔다. 다시 집으로 전화를 하여 내일 전신전화국이나 여행사로 가서 FAX를 보내라고 집사람에게 부탁을 하고 일단 캠핑장으로 가기로 했다. 6개나 되는 짐 가방들을 들고 이동하기도 쉽지 않았다. 정선군이 택시 대절을 하잔다.
택시 요금을 알아보니 35E를 달란다. 내가 디스카운트해서 20E로 해 달라고 했더니 안 된다기에 우리는 버스로 가기로 했다. 199번 버스에 오르니 10E에 캠핑장에 갈 수 있었다. 예약했던 증서를 내미니 4명에 37E를 더 내란다.
암스텔담 캠핑장의 6인용 천막들
첫댓글 선생님 작가되셔도 되겠습니다!
잘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