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도원을 허는 여우를 잡아라(2:15-17) 서론 여우는 교활하고 간교한 동물로 취급되어졌는데, 우리나라 전래 동화나 이솝우화나 퐁테느의 우화에서 여우는 예외 없이 속임수나 쓰고, 교활하며, 마음과 행동이 돌변하고, 꾀만 부리다가 제 꾀에 넘어가기도 하는 못된 짐승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여우는 죽음을 예언하는 불길한 짐승으로 취급되었는데, 길을 가다가 여우를 보면 누군가가 사망할 징조로 여겼습니다. 또한 삼국 시대 때 백제의 궁중에 여우 떼가 들어 온 것으로 백제의 멸망을 점쳤다 하였는데, 이러한 이유들로 해서 여우는 보기만 해도 불길한 짐승으로 취급되었습니다. 본문은 아2:10-14에 기록되어 있는 솔로몬의 초대에 대한 술람미의 화답인데, 술람미는 솔로몬의 초대에 대하여 먼저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술람미는 여우를 포도원을 허는 파괴자로 표현하고 있는데, 본문에서 술람미가 말하는 ‘포도원을 허는 여우’란 자신과 솔로몬 왕과의 사랑의 관계를 파괴하려는 세력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술람미가 자신과 솔로몬 사이의 사랑의 관계를 파괴하는 세력을 ‘포도원을 허는 여우’에 비유한 것은 팔레스타인 지역에 사는 여우들은 종종 포도원 등지에 굴을 파고 서식하면서 봄철 포도나무에 싹이 돋고 꽃이 필 무렵 포도원을 돌아다니면서 포도나무를 갉아먹거나 해치기도 하였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 시간에는 “포도원을 허는 여우를 잡으라”고 한 것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살펴봄으로써 은혜를 받고자 합니다.
본론 Ⅰ.첫째.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가 상징하는 것과 그 특징이 무엇입니까? 1.첫째로, 포도원을 허는 여우가 상징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1)포도원은 구약성경에서는 ‘이스라엘 나라’를, 신약성경에서는 ‘교회’를 상징하고 있 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이스라엘 나라’를 ‘포도원’에, ‘이스라엘 백성’은 ‘포도나무’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사5:1-2을 보면, ‘이스라엘 나라’를 ‘포도원’에 비유하고 있으며, ‘이스라엘 백성’은 그 땅에 심겨진 ‘극상품 포도나무’에 비유하고 있는 것을 볼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시80:8을 보면,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가나안 땅으로 인도 받은 ‘이스라엘 백성’을 ‘포도나무’에 비유하였습니다. 반면에 신약성경에서는 ‘교회’를 ‘포도원’에, ‘성도’는 ‘포도나무 가지’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20장에 나오는 포도원 품꾼의 비유를 보면 ‘교회’를 ‘포도원’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15:1-8을 보면, ‘예수님’을 ‘포도나무’에 비유하였고, ‘성도’를 ‘포도나무 가지’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2)‘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란 ‘죄악의 세력’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본문에서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란 솔로몬과 술람미의 사랑을 시기하여 파괴하려는 세력을 의미하고 있지만, 영적으로 볼 때는 주님과 성도와의 사랑의 관계를 파괴시키려고 하는 ‘죄악의 세력’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죄악의 세력’은 주님과 성도의 사랑을 시기하고 파괴하여 성도의 삶에서 영적인 열매를 맺지 못하도록 대적하는데, 겔13:4에서는 거짓 선지자를 여우에 비유하였으며, 눅13:32에서는 예수님께서 헤롯 왕을 여우에 비유하였습니다. 거짓 선지자와 헤롯을 여우에 비유한 것은 그들의 성품이 간교하며 임기웅변에 능한 여우의 성품을 닮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본문에 보면, 포도원을 허는 여우를 가리켜 ‘작은 여우’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우리들이 소홀히 여기기 쉬운 ‘작은 죄악’을 의미합니다. 사람들은 나름대로 죄에 대한 기준을 정해 놓고, ‘이것은 작은 죄, 저것은 큰 죄’라는 식으로 죄의 크기를 구분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작은 죄라고 여기는 죄는 인생을 살다보면 으레 지을 수 있는 죄라고 생각하면서 소홀히 여기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큰 죄, 작은 죄’를 구분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은 ‘죄의 삯은 사망’이라고 분명히 선언하고 있습니다. 큰 죄라고 여겨지는 것만이 우리를 망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작은 죄들도 신앙을 파괴시키고 영혼을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짐승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무서운 짐승이라고 하면, 흔히 호랑이나 사자와 같은 맹수들을 생각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짐승들보다 더 무서운 것이 있습니다. 호랑이나 사자같이 크지도 않지만 일시에 수많은 사람들을 죽일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바로 각종 전염병을 일으키는 세균입니다. 지금 지구상에서 가장 무서운 병으로 통하는 에이즈도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에 의해서 전염되고 있습니다. 사실 호랑이나 사자와 같은 맹수들에게 물려 죽는 사람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세균에 의해서 죽는 사람들이 더 많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무리 작은 것이라고 할지라도 죄는 위험합니다. 크든 작든 죄는 파괴하고, 사망에 이르게 합니다. 우리가 사단의 유혹에 빠져 영혼과 육신이 망하게 되는 것도 처음부터 큰 유혹을 받는 것보다 작은 유혹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처음에는 죄 같지도 않은 것에서 시작하여 커집니다. 그러므로 사단의 밥이 되어 패망하지 않으려면 작은 죄를 경계하고, 작은 사단의 유혹을 조심하고, 무서워해야 합니다. 큰 유혹보다 작은 유혹이 더 무섭고, 큰 죄보다 작은 죄가 더 무섭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2.둘째로,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의 특징이 무엇입니까? 작은 여우 한 마리가 포도원을 망치듯이 작은 죄악이 성도를 망치고, 교회를 망치고, 가정을 망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작은 여우를 잡기 위해 먼저 여우라는 동물의 특성을 통해서 죄악의 성질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1)첫째로, 여우는 의심이 많은 동물입니다. 동물들 가운데 여우보다 의심 많은 짐승은 없다고 말합니다. 이 여우는 날마다 먹이를 주는 주인이나 조련사도 의심한다고 합니다. 그래서 음식을 가져다주면 시험해 보고, 의심해 보고, 그렇게 한 다음에 먹는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의심케 하는 사단이 우리 심령 속에 들어오기만 하면, 신앙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의심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 의심 마귀에 사로잡히면 교회가 무너지고, 신앙이 파괴되고, 평화롭던 가정이 파괴되어지고, 남편도 의심하고, 아내도 의심하고, 또 부모도 의심하고, 자녀도 의심하게 되는 것입니다. 일제 시대 어느 여름날 채필근 목사님이 평양 서촌 40리 떨어진 칠골이란 동리에 볼일이 있어 갔다 오던 중 소낙비를 만나 어느 농가에서 비를 피하게 되었습니다. 할 수 없이 그 농가에서 밥을 사 먹고 자게 되었는데, 밤이 상당히 깊었을 때에 손님 한 명이 자기 방으로 들어 왔습니다. 두 사람 모두 수중에 상당한 액수의 돈을 가지고 있었는데, 한 사람이 돌아누우며 ‘에헴’ 하고 헛기침을 하면 다른 한 사람도 기침을 하면서 밤새 서로 경계하느라 잠을 잘 수가 없었습니다. 아침이 되어 세수를 하고, 조반상을 받아 겸상을 하게 되었습니다. “인사합니다. 나는 채필근이오.” “나는 심OO입니다.” 이렇게 서로 통성명을 하며 인사를 나누게 되었는데, 채 목사님의 기억력으로 상대방이 바로 심 장로라는 사람인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겸연쩍게 된 두 사람은 “목사, 장로가 한방에 자면서 서로 의심이 나서 밤새도록 헛기침만 하다니” 하면서 마주 보며 웃었다고 합니다. 여러분, 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지 못하고 광야에서 멸절을 당했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하시고 은혜를 베풀어 주셨는데,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께 대해서 의심을 품고 하나님의 말씀을 의심하다가 불순종하고 거역함으로 멸절당하고만 것입니다.
2)둘째로, 여우는 의심이 많은 동물이기 때문에 자꾸 뒤를 돌아보는 특성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의심 마귀가 들어오면 자꾸 뒤를 돌아보게 됩니다. 세상을 바라보게 하고, 옛날을 뒤돌아보게 하고, 그게 바로 마귀의 역사입니다. 그러나 신앙생활에서 뒤를 돌아보는 것은 실패의 원인이 됩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잘한 것도 자랑할 것이 없고, 잘못한 것 때문에 좌절할 필요가 없습니다. 신앙생활은 뒤를 돌아보지 말고, 옆도 바라보지 말고, 앞으로 향하는 전진만 있어야 합니다. 창19:26에 보면, 롯의 아내는 뒤를 돌아다 본고로 소금 기둥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것은 말씀에 대한 불순종, 소돔성의 재물에 대한 애착심 때문에 나타난 결과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고난과 어려운 시련에 부딪칠 때마다 무엇을 생각했습니까? 밤낮 옛날 생각만 하는 겁니다. “야, 애굽 생활이 좋았다. 애굽에서 살 때는 수박도 먹고, 참외도 먹고, 부추도 먹고, 마늘도 먹었는데, 광야생활을 하다가 보니까 아침에도 만나, 점심때도 만나, 저녁에도 만나, 영양실조 걸리겠다.” 그렇게 옛날을 회고하고 옛날 생각을 하며, 하나님을 원망하며 지도자 모세를 대적 한 것입니다. 그러다가 광야에서 멸절당하고 말았습니다.
3)셋째로, 여우는 잘 변하는 것이 특징입니다. 여우는 하룻밤에도 12번씩 변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우와 같은 마귀가 우리의 마음속에 들어오기만 하면, 하루에 12번도 더 변심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시기와 장소에 따라서 변하고, 환경과 처지에 따라서 달라지고, 변심을 하게 되는 겁니다. 자기의 이권이 생기고 명예가 생기면 달라지고, 기분과 감정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한 마디로 말해서, 사람을 변질시켜, 맛 잃은 소금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4)넷째로, 여우는 썩은 것을 잘 먹습니다. 여우는 생고기보다 썩은 고기를 좋아합니다. 그래서 생고기도 땅에 묻어 두었다가 썩혀서 먹습니다. 이것은 사람들의 부패하기 좋아하는 부패상과 세상 죄악에 도취하는 것을 가르치는 말씀입니다. 엡4:22에 보면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좇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라고 하였으며, 요6:27에서는 썩는 양식을 위해 일하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5)다섯째로, 헐고, 파괴하는 특징이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에 사는 여우들은 종종 포도원 등지에 굴을 파고 살면서 포도나무에 새싹이 돋고 꽃이 필 무렵 포도나무를 갉아먹거나 해치기도 합니다. 그리고 온 밭을 다니면서 짓밟고, 파헤칩니다. 한 마디로, 방치해 둘 경우 포도원을 황폐화시켜 버리는 것입니다. 마귀도 마찬가지입니다. 마귀의 역사를 방치하며, 영혼을 망쳐 버리고, 가정을 망쳐버리며, 교회 전체를 망쳐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Ⅱ.둘째, 포도원을 허는 여우로부터 지켜야 할 우리의 포도원이 무엇입니까? 1)첫째는, 마음이라는 포도원입니다. 잠4:23에 보면,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고 했습니다. 마음은 사람의 인격적 활동의 중심지이며, 지. 정. 의의 근거지입니다. 마치 피가 심장의 운동을 통해서 신체의 모든 곳에 공급되듯이, 인간의 모든 인격적 삶은 마음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마음은 성령이 내주해 계시는 교회이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사단의 유혹도 마음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사단은 우리의 마음을 먼저 점령하여, 마음의 교회부터 파괴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때문에 새 생명의 꽃이 피어 신앙생활에 열매를 맺으려 하다가 그만 이 작은 여우를 잡지 못해 타락하고 멸망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우리 마음에 작은 여우가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2)둘째로, 가정이라는 포도원이 있습니다. 가정은 하나님께서 인간들에게 최초로 만들어 주신 포도원입니다. 최초의 교회도 바로 이 가정이라는 포도원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꽃이 피고 아름답고 향기 나는 천국과 같은 가정에 마귀가 침투해서 지옥처럼 만듭니다. 죄악의 세력이 들어와서 남편을 사로잡고, 아내를 사로잡고, 자식을 사로잡아 행복했던 가정의 꽃, 기쁨과 행복을 빼앗아 갑니다. 그러므로 이 작은 여우가 내 가정, 내 가족들의 마음속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조심하고 경계해야 합니다.
3)셋째로, 교회라는 포도원이 있습니다. 많은 포도 열매를 거두어 들여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많은 영혼을 구원하는 신령한 포도원이 되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그런데 조심하고 경계하지 않으면, 이 교회에 죄악의 세력, 불신앙의 세력, 사단의 세력이 들어와 열매 맺지 못하게 시험의 바람을 일으킵니다. 온 교회가 합심 담합하여 어느 교인, 어느 기관에라도 이런 작은 여우가 침투하지 않나 항상 경계하고 조심해야 합니다. 사단은 우리의 행복과 기쁨을 질투하고 시기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에덴동산에 들어가서 좋은 동산을 쑥밭으로 만든 후 재미를 본 여우는 지금은 가정과 교회를 제일 공격 목표로 삼고 있습니다. 오늘의 현실에서도 얼마나 큰 문제가 가정에서부터 일어나고 있습니까? 가정과 교회는 이 시대의 역사를 지켜 줄 마지막 보루입니다. 그러므로 작은 여우로부터 우리의 가정, 우리의 교회를 지켜야 합니다.
Ⅲ.셋째, 작은 여우를 잡아야 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15-17절) 본문 15절을 보면 “우리를 위하여 여우 곧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하였습니다. 여우를 잡아야 할 중요한 이유가 바로 ‘우리를 위하여’입니다. 다시 말해서, 술람미 여인 자신과 솔론몬 왕과의 사랑의 관계가 깨어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주님과 성도 사이의 사랑의 관계를 파괴시키려고 하는 사단의 세력들을 잡으라는 말입니다. 우리를 위하여 포도원을 허는 여우를 잡아야 할 이유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첫째로, 포도원에 꽃이 피었기 때문입니다.(15절) 본문 15절 하반 절에 보면, “우리의 포도원에 꽃이 피었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의 포도원’은 술람미 여인과 솔로몬 왕이 사랑을 나누는 장소입니다. 이들의 사랑의 장소인 포도원에 심겨진 포도나무마다 열매를 맺기 위해 꽃이 피어 벌과 나비가 찾아 들고 있습니다. 우리의 심령, 우리의 가정, 우리의 교회는 주님과 성도가 사랑을 나누는 장소입니다. 때문에 이 포도원에 열매를 맺기 위해 사랑의 꽃이 피어야 하고, 은혜의 꽃이 피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아름답고 평화로운 동산에 뜻밖의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꽃이 한창 아름답게 피어 있는 포도밭에 작은 여우 새끼가 들어와서 인정사정없이 포도원을 헐기 시작한 것입니다. 여러분, 포도원을 만들고 거기에 포도나무를 심은 목적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그것은 열매 맺기를 바라는데 있습니다. 오늘도 포도원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삶 속에 참 포도 맺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같은 성령의 열매가 맺어지기를 바라시고, 전도의 열매, 희생의 열매가 맺어지기를 바라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덴 낙원을 파괴한 마귀는 오늘날에도 교회와 가정과 믿는 사람의 마음속에 들어와서 교회가 부흥되고, 가정이 평화롭고, 심령에 은혜의 꽃이 필 때에 여우와 같이 역사하여, 포도원을 허물어뜨리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 여우 새끼를 잡으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습니다.
2.둘째로, 포도원은 주님께 속한 목장이기 때문입니다.(16절) 본문 16절을 보면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구나 그가 백합화 가운데서 양떼를 먹이는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게 속하였고 나는 그에게 속하였구나”라는 말은 사랑하는 자와의 예속 관계를 밝히는 말인데, 술람미 자신과 솔로몬은 서로에게 예속되어 하나가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이처럼 술람미와 솔로몬이 서로 예속되어 있다는 것은 성도는 주님과 하나 되었음을 상징합니다. 성도는 주님께 속해 있는 주님의 양입니다. 성도가 주님에게 예속되어 있는 양이기 때문에 성도의 가정과 교회는 주님이 그의 양을 먹이는 포도원이 됩니다. 주님은 그의 포도원에서 그의 양들을 은혜로 먹이시는 것입니다. 본문의 “백합화 가운데서 양 떼를 먹이는구나”는 말에서 ‘백합화’란 ‘은혜’를 상징하는데(사35:1-2), 즉 주님께서 은혜로우신 목자가 되어 그의 은혜로 양들을 돌보심을 의미합니다. 주님은 백합화 같은 은혜의 목장에서 그의 양떼의 영혼을 먹이시는 목자이십니다. 그런데 주님께 속한 이 은혜의 포도원을 작은 여우가 파괴시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은혜 대신 원망과 불평과 시비가 있게 하려고 합니다. 때문에 주님께 속한 이 포도원을 헐려고 하는 작은 여우를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3.셋째로, 예수님을 사모하며 기다리는 장소이기 때문입니다.(17절) 본문 17절을 보면 “나의 사랑하는 자야 날이 기울고 그림자가 갈 때에 돌아와서 베데르 산에서의 노루와 어린 사슴 같아여라”고 하였습니다. 마치 날이 저물어서 동굴이나 보금자리로 찾아 드는 짐승들처럼 자신과 떨어져 있던 솔로몬이 속히 자신에게로 돌아와 오래도록 함께 거하기를 원하는 술람미 여인의 소원을 노래한 것입니다. 술람미 여인이 날이 저물고 그림자가 어두움 속에 사라지기 전에 이별해 있던 솔로몬이 속히 돌아와 베데르 산 곧, 산과 같이 막혔던 이별이 해소되기를 원한 것처럼 진정한 성도는 주님을 만날 그 날을 손꼽아 기다리는 것입니다. 때문에 주님이 찾아오시는 걸음이 노루와 어린 사슴의 걸음처럼 빠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작은 여우와 같은 죄악의 세력은 사랑하는 주님을 기다려야 할 우리의 포도원들을 파괴하여 세상 것을 더 사랑하게 만들고, 세상 것에 더 미련을 가지게 합니다. 그리하여 주님을 사모하지 못하게 합니다. 이 세상에서의 삶이 전부인 것처럼 착각하게 만듭니다. 이 세상이 우리의 영원한 거처인 것처럼 속아 넘어가게 만듭니다. 그러므로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아야 합니다.
결론 우리는 여우의 정체를 알아서 속지 말아야 합니다. 소홀히 하기 쉬운 작은 것은 경계의 자세를 늦추기 쉽습니다. 우습게 여겨서 그냥 지나칩니다. 그러나 이 작은 여우가 우리의 영혼을 갉아먹기 시작하면 결국 독에 오염되어 쓰러지고 맙니다. 여우는 사람이 보면 숨고, 보지 않으면 머리를 내밉니다. 그래서 속기 쉽고, 슬며시 들어오기 때문에 느끼기 힘듭니다. 작은 여우가 우리에게 들어와 책임감을 흔들고, 헛된 일에 바쁘게 하고, 무관심하게 하고, 도피하게 만들고, 교만하며, 완고하게 만듭니다. 역사에 수많은 사람들이 이 작은 여우의 덫에 걸려 비참히 쓰러졌습니다. 행복의 꽃이 만발해야 할 많은 가정들이 이 작은 여우를 경계하지 못해 파괴되고 있습니다. 은혜의 꽃이 만발해야 할 교회들이 작은 여우를 잡지 못해 시험에 빠져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여우를 잡으라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셨는데, 그러면 여우를 잡는 방법이 무엇입니까? 여우는 꾀가 많기 때문에 사람들이 잡으려고 쫓아오면 잽싸게 바위 틈 사이로 들어가 버립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막대기로 아무리 쑤셔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면 이 의심 많은 마귀를 잡는 비결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위틈에 불을 놓는 길입니다. 우리 마음에 도사리고 있는 의심하게 하는 마귀, 세상을 사랑하게 하는 마귀, 변심하게 하는 마귀를 잡은 길은 한 가지밖에 없는데, 그것은 성령의 뜨거운 불을 받는 길밖에 없습니다. 성령의 불을 받으면 우리 마음속에 숨어 들어오는 마귀를 잡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성령의 뜨거운 불을 받는 우리들이 되어서 모든 여우, 곧 의심하게 하는 마귀, 또 세상을 사랑하고 뒤돌아보게 하는 마귀, 변심하게 하는 마귀를 물리쳐 버리는 하나님의 복을 누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