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월의 편지 - .
길 위에서 <최명숙 목사>
자동차 회사에 다니는 동생이 영업사원 시절, 차사고가 나서 보상 문제로 상대방과 심하게 다툰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그 후, 1년여가 지난 뒤에 누군가의 소개로 차를 구입하겠다는 사람을 찾아갔는데 공교롭게도 하필이면 보상 문제로 심하게 다투었던 바로 그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을 보자마자 다시 얼굴을 붉히면서 “나 당신한테는 절대로 차 안 사!” “아, 당신이었어? 나도 당신 같은 사람한테는 안 팔어!” 그리고 팜플렛을 가지고 도로 나왔다고 합니다.
그러나 다음 순간 차 한 대를 팔고 안파는 계산적인 문제를 떠나 이런 경우는 업무상 상황에 패배하는 행동이라는 생각이 들어 한동안 망서리던 끝에 용기를 내어 다시 들어가 먼저 손을 내밀어 화해를 했으며 두 사람은 결국 구매인와 판매인 사이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지혜롭게 장애물 같은 고비를 넘겨가며 열심히 일을 해 온 동생은 그 후, 관리직으로 승진을 해서 16개 지점을 책임 맡은 직위에 있으며 지금도 동생 주위에는 늘 많은 친구들이 있는 걸 보게 됩니다.
내 사역의 여정에도 비슷한 일들이 있었습니다. 사역 초기에 행사를 위해 스폰서를 구해야 했는데 전에 이 지역에서 장애인 사역을 했던 사람들의 좋지 않은 이미지로 인해 모두 문을 닫고 노골적으로 거부를 했습니다.
어떤 이는 자신이 겪었던 실망스런 일들에 대한 한(恨)이라도 풀려는 듯 한 시간 가까이 쏟아 붓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절대로 장애인들이 하는 일에 협력하지 않겠노라고 굳은 표정으로 거절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분 같아서는 당장 나오고 싶었지만 “한 사람의 행동으로 전체 장애인을 평가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말과 함께 ”한번 믿어보십시오 훗날 후회하는 일은 결코 없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자 조금씩 마음이 누그러지면서 결국 그분은 작으나마 행사를 위한 스폰서가 되어주었습니다.
20년 전, 당시 그 3만원의 스폰서는 돈의 액수를 떠나 3백만 원보다도 큰 성과였습니다. 인간관계에 있어 한 사람과의 석연치 않은 관계를 회복하는 것은 백 명의 지지자를 얻는 것보다 큰 것이기에 나는 지금도 그 때 일을 가슴에 담아두고 있습니다.
길을 갈 때 넘어지게 하는 것은 하잘것없이 작은 돌뿌리입니다. 우리가 걷는 길은 평탄한 대로만 이 아니라 비바람과 눈보라와 뜻하지 않은 돌풍이 몰아칠 때도 있으며 높은 산이 있는가 하면 험난한 계곡도 있고, 건너야 할 물도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참고 견디며 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가만히 있기만 해도 세월은 가는 것이지요.
나를 사랑하고 나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는 이들은 오늘날까지 이렇게 이루어오느라 얼마나 애를 썼느냐는 말들을 합니다. 그러나 사실 내게는 쌓은 것도 이루어놓은 것도 없습니다.
그저 선택한 길을 다만 포기하지 않고 걸어온 것뿐이요, 그 길에서 그분의 사랑과 은혜를 체험한 것 뿐입니다. 때로는 중단하고 싶을 때도 있었고, 그냥 주저앉아버리고 싶을 때도 있었습니다.
그렇게 비틀거리다가 넘어졌을 때 세상에서 아무도 나의 죄짐을 함께 지고자 하는 사람은 없음을 깨닫기도 했고, 그 때, 처음 가시면류관을 쓰고 십자가에 못 박힌 그분을 눈물겹게 바라보았습니다.
목을 길게 떨군 채, 피를 흘리며 나를 바라보는 그분은 “네 죄짐을 내가 대신 이렇게 지고 있지 않느냐? 너는 평안하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인생이란 길 위에서는 마치 에스컬레이터를 탄 것처럼 그냥 가만히 기다리기만 해도 그분은 해결해 주십니다.
(ㅁ)과 (ㅂ)과 (ㅍ)으로 풀라는 말대로 딱딱하여 도저히 먹을 수 없는 음식이라도 그저 물고 있다 보면 부풀게 될 것이요, 부풀게 되면 풀리게 된다는 이치대로 말입니다.
앞으로도 내 걸음은 그렇게 계속될 것입니다.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좇아가노라’ -빌3:13-14-
문득 올려다 본 하늘에는 시리도록 파란 달이 차가운 하늘을 가로질러서 바쁘게 가고 있었습니다. “어, 달이 막 가고 있네” 라고하자 남편은 “달이 가는 게 아니라 구름이 가고 있지”라고 말합니다. 아, 나는 이 나이까지도 아직 착시현상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있는 것입니다.
올해에도 우리는 길 위에 있고, 우리의 걸음은 이 길 위에서 역시 견디며 기다리는 것입니다.
2월의 편지 - .
짐
미처 녹을 사이도 없이 계속 쏟아져 지붕 위에 태산처럼 쌓였던 눈은 처음에는 털썩! 털썩! 한 봇짐씩 떨어지더니 나머지는 몇 날을 낙숫물 소리를 내면서 녹아내렸습니다.
어느 해던가 이맘때쯤 지리산 골짜기에서 겨우내 얼었던 계곡물이 녹으면서 물과 함께 미처 녹지 않은 얼음덩이들이 우루루! 우루루! 굴러 내리는 소리를 천둥소리처럼 크게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소리는 이따금씩 내 속에서 되살아나 절망의 암벽들이, 아픔의 응어리들이, 태산처럼 가로막고 있는 불가능한 문제들이 그렇게 해결되어 시원스럽게 쏟아져 내리기를 소원합니다.
‘근심 걱정 무거운 짐 아니 진 자 누군가’라는 찬송 가사처럼 비록 길게 살아온 건 아니지만 돌아보면 네 삶에도 작든 크든 짐은 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신체적 장애라는 태산 같은 짐을 의식하기 시작하던 그 우울하고 불안했던 보랏빛 날들을 나는 이따금 현실을 벗어나 엉뚱한 가상(假想) 속에서나마 행복을 느끼기도 했습니다.
어느 날 알라딘의 마술램프처럼 하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심으로 내가 다른 사람처럼 건강한 몸이 되는 것인데 그런 생각은 생각만으로도 나를 설레게 하고 흥분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
자~ 그러면 어디부터 갈까? 아니 누구부터 만나서 내 모습을 보여줄까? 나를 가장 염려하고 사랑하는 이들이 떠오릅니다. 얼마나 기뻐할까? 그리고 이어서 아픔을 주었던 이들, 상처를 입혔던 이들이 생각납니다.
생각은 끝없이 이어지고, 나는 마치 날개라도 단 것처럼 나는 것만으로도 부족하여 여러 곳을 숨 쉴 사이도 없이 다닙니다. 그러다 현실로 돌아오면 나는 여전히 변함없는 상황에 놓여있었지만 말입니다.
해마다 감사절기만 되면 가장 많이 두들겨 맞는 사람들은 병이 나은 후에 감사하지 않고 그냥 달아나버린 아홉 명의 문둥병자들입니다.(눅17:12-18)
나병환자를 죄인시하고 타부시하는 유대 사회에서 원하지 않게 바로 그 치명적인 병에 걸려 인간의 존엄성까지 박탈당한 그들에게 지워진 그 짐은 그들을 짓눌러 고통과 슬픔의 진액이 흘러나왔을 것입니다.
그런 절망과 비참함 속에서 어쩌면 그들도 내 어린 시절처럼 가상적인 기적을 수없이 간절하게 염원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한 그들의 현실 속에 어느 날 예수께서 오셔서 그들을 움켜쥐고 있던 그 절망적인 짐을 벗겨주셨을 때 그 감격은 어느 정도였을까요?
감사할 겨를도 없이 그들은 흥분해서 눌려있던 용수철처럼 정신없이 튕겨져 나갔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고 물으심은 감사할 겨를도 없이 달아난 그들의 타성적인 믿음의 연약함을 그분의 사랑을 신선하게 의식한 이방인의 모습에 비추어 탄식을 하신 것이지만 그들이 짐을 벗게 된 것은 그만큼이나 말할 수 없는 감격이었을 것이라고 짐작해봅니다.
우리가 지고 있는 짐을 헤아리시는 그분은 오늘도 우리를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이라고 부르면서 쉬게 해줄 테니 오라고 하십니다.(마11:28)
생각해 보니 나는 정확하게 10년 간격으로 감당하기 어려운 짐에 눌려 휘청거렸으며 그 때마다 그분은 그 상황 속에서 내 사역에 단계적인 발전을 이루어 가셨습니다.
80년대 중반의 절망적인 시련을 거쳐 87년에 장소를 마련하여 공동체생활로 교회를 시작하게 하셨고, 90년대 중반의 또 한 번의 휘청거림을 통해서 부지를 마련하여 97년에 건축을 하게 하셨습니다.
그러기에 이제 2천년 중반인 지금 이 어려운 고비를 통해서 그분은 어떠한 새로운 역사를 계획하고 이루어 가실지 기대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누군가 ‘인생은 해결해야 할 문제가 아니라 경험해 나가는 신비(神秘)’라고 한 것처럼 하늘은 늘 열려있건만 우리는 그것을 보지 못하는 소치로 인하여 절망할 때가 있습니다.
태산같이 쌓인 눈이 어느새 모두 녹아 이제는 흔적도 없고, 눈뿐만이 아니라 겨우내 꽁꽁 얼어 땅보다 더 단단하게 굳어있던 그래서 동네 강아지들뿐만이 아니라 주일이면 주일학교 아이들까지도 그 위에서 뛰놀던 교회 앞의 방죽의 얼음도 이제는 다 녹아 버렸습니다.
원단(元旦)의 서기(瑞氣)처럼 연일 안개가 자욱한 요즘은 겨우내 동결되어 닫히고 굳어진 가슴이 흙처럼 봄비에 부풀어 새 숨으로 열리고 있습니다.
3월의 편지 - .
그대 있음에
얼마 전, 인터넷 뉴스에 양팔을 잃어 걷는 일 외에는 모든 행동이 불가능한 남편의 양팔이 되어 헌신적으로 살아가는 아내의 이야기가 올라왔습니다.
“혹시 이혼을 생각해 본 적은 없었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녀는 “남편이 장애를 갖기 전에는 성격이 안 맞아서 이혼을 생각해 본 적이 있었지만”남편이 양팔을 잃은 후로는 그런 생각을 할 수가 없었다고 했습니다.
속이 상해서 훌쩍 밖에 나갔다가도 심지어 혼자는 화장실에 갈 수조차 없는 남편이 걱정이 되어 허둥지둥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의 일반적인 생각은 자기에게 유익을 줄 수 있는, 즉 자기에게 필요한 사람만을 좋은 인연이라고 여기지만 그러나 인연이란 상대에게 자신이 필요할 때 오히려 더 든든한 줄로 묶이게 되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내 생활에 있어 남편은 외출할 때 뿐 만이 아니라 움직이는 일들은 거의 다 해주는 편이지만 어느 날 밖에 나가서 같이 식사를 할 때 그는 비빔밥 그릇을 내게 내밀며 비벼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나는 어리둥절해서 멍~하니 그를 쳐다봤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지금껏 내게 그런 요구를 해온 사람이 없었을 뿐 아니라 주변의 사람들은 그런 경우에 오히려 내 그릇을 가져다가 비벼주는 것이 상례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지금 그는 멀쩡한 자기 손을 두고 내게 자기 밥 시중을 들라는 것입니다. 집에서라면 몰라도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도 창피할 터인데 그는 당연한 일처럼 요구를 하는 것입니다.
자기를 바라만 보고 있는 내게 그는 밥을 비빌 줄 모르느냐는 것입니다. 할 수 있다고 하니까 그러니까 해달라는 것입니다. 나는 비로소 정신이 든 사람처럼 밥을 부지런히 비벼서 남편에게 건네면서 그 날 살아오면서 처음 내가 나 아닌 다른 사람이 된 것 같은 경험을 했습니다.
그는 나보다 더 나은 음식솜씨로 실력발휘를 하기도 하지만 그러나 내가 만들어주는 음식 먹는 걸 좋아하고, 내가 끓여주는 커피를 마시고 싶어 합니다.
그러한 그의 태도는 (그의 성격상 의도성은 없지만) 건강한 자기만 나에게 필요한 게 아니라 장애를 가지고 불편한 신체적 조건을 가진 나도 자기에게 필요한 존재임을 알게 해주는 것으로 나를 편안하게 합니다.
아무리 능력 있는 사람이라 하더라도 온전히 남에게 주기만 하며 살 수는 없고, 아무리 약하고 무력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남에게 도움만을 받으며 살 수 없는, 그렇게 서로를 기대고 잇대어 살아가는 게 세상살이기에 가졌다고 교만할 이유도 없고, 가진 게 없다고 비굴해질 이유도 없는 것이지요.
지금껏 장애인 형제들과 살아오고 일해 오면서 보기에는 모두 내가 그들에게 주기만 하는 것 같았지만 나는 그들로부터 소중한 것들을 많이 받아왔습니다.
위로를 받았고, 사랑을 받았고, 힘을 얻을 때가 많았으며, 자부심도 가질 수 있었으니 그런 의미에서 그들은 약하디약한 나라는 존재의 삶의 의미였습니다.
그로 인하여 사랑이 무엇인가를 가슴이 저리도록 깨달았으며 기쁨과 보람과 슬픔과 아픔과 눈물 등 온갖 희노애락(喜怒哀樂)을 삶속에서 깊이깊이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께 물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일을 할 수 있느냐고 그러자 그분의 대답은 하나님의 보내신 자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셨습니다.(요6:28-29)
그분을 기쁘시게 하는 일 역시 우리가 그분을 필요로 하여 믿고 의지하고 따르는 것으로 그것이 바로 우리가 이 땅에서 살아내야 하는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분의 십자가의 피로 우리가 용서함을 받고 생명을 얻을 수 있음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화초를 가꾸는 것은 물을 주고 가꾸는 정성을 통해서 자라는 모습을 보기 위함이며, 텃밭에 채소를 가꾸는 것도 꼭 먹기만을 위함이 아니라 자라는 것을 보기 위함이 아닌가요?
내가 당신에게 편지를 쓰는 것도 관심 있게 읽고 공감하며 메아리를 보내주는 당신의 정겨운 마음이 있기에 보람을 느끼는 것처럼 말입니다. 내가 당신 가슴을 필요 하는 만큼 당신도 나를 필요로 하는가요?
빛이 조금씩 자라면서 어둠이 짧아지고 이제는 새벽기도를 마치고 나면 솔산 자락의 선(線)이 하늘아래 선명하게 살아납니다. 어느 사이에 어둡고 긴 겨울이 갔습니다.
4월의 편지 - .
별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를 사용하는 조태흥 형제는 날마다 기차를 타고 서울과 대전 두 군데를 오가며 악세사리 노점상을 하고 있습니다. 낮에는 서울 대학로에서, 밤 9시부터는 대전 대흥동 성당 뒤에서 그것도 혼자가 아니라 어릴적 부모로부터도 버림을 받아 의지할 곳 없는 자신을 지켜주는 애완견 발발이와 함께 다닙니다.
이러한 조태흥 형제의 이야기가 얼마 전 SBS TV '세상에 이런 일이‘에 방영되는 걸 본 후로 남편은 그 형제와 몇 차례 통화까지 하면서 만나보고 싶어 하기에 마침 대전에 볼일이 있던 차에 겸사해서 그 형제를 만나기로 했습니다.
볼일을 오후 5시에 마치고 나니 그 형제가 대전에 도착하는 밤 9시까지는 4시간의 간격이 있었습니다. 그동안 마땅히 갈 곳도 없을뿐더러 다른 곳에 있다가 다시 그 장소에 찾아오기도 어려울 것 같아 우리는 아예 그 장소에 미리 가서 시간이 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습니다.
저녁식사도 차안에서 약식으로 때우고 해가 기울어가면서 내려가는 차가운 밤기운 속에서 마치 범인(?)을 잡기 위해 잠복근무를 하는 형사들처럼(물론 우리야 잠복을 할 이유는 없었지만...) 젊은이들이 끊임없이 오가는 거리에 주차를 해놓고 사람들의 눈길과 덜 마주치도록 차 뒷자리에 나란히 앉아 겉옷으로 목까지 몸을 감싼 채 9시가 될 때까지 오가는 사람들의 이런 모습, 저런 모습들을 감상하면서 기다렸습니다.
9시가 조금 넘어갈 때, “왔다!”하는 남편의 소리와 함께 드디어 우리가 기다리고 기다리던 조태흥 형제가 휠체어를 탄 채 발발이 한 마리를 데리고 그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나보다 더 기다리던 남편 황목사님이 반가운 마음에 악수라도 하려고 형제에게 다가서자마자 발발이가 온 힘을 다해 짖어대면서 제 주인에게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는 것이었습니다.
사명감을 가지고 주인을 지키는 발발이를 겨우 진정시킨 후,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러는 와중에 그 형제는 악세사리 노점 좌판을 차렸습니다.
가방에서 작은 조립식 탁자를 꺼내 펴놓고 그 위에 분홍색 담요를 씌운 다음 노트북처럼 생긴 악세사리 진열상자를 펼쳐놨습니다.
근처에 악세사리 가게가 여러 군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야! TV에 나온 그 아저씨다”라는 소리들과 함께 초라한 좌판에 관심을 가지고 다가와 구경을 하고 흥정을 하는 젊은 여성들의 모습이 고맙고도 아름다웠습니다.
보기보다는 장사가 그런대로 되는 편이어서 수입이 쏠쏠한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모은 돈을 얼마 전에는 친구에게 사기까지 당했다고 했습니다.
불편한 몸으로 거처할 곳도 없고 가족도 없이 살아가는 게 무척이나 어려울 거라는 우리의 예상과는 다르게 그 형제는 아직은 이렇게 장사를 할 수 있어서 혼자 살아가는데 어려움이 없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매월 편지를 보내주기로 약속을 하고 생활하다가 혹시 몸이 아프거나 힘이 들어 안식처가 필요할 때는 연락을 하라는 말을 남긴 후, 자정이 넘은 시간에야 집에 돌아왔습니다.
그 밤에 나는 가슴에 반짝이는 또 하나의 별을 안고 돌아왔습니다. 무수한 별들이 늘 명멸하는 내 가슴에 이제 장애를 씩씩하게 극복해 나가는 그 형제의 삶도 하나의 별이 되어 순간순간 반짝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형제에게도 우리와의 만남이 별처럼 기억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새벽기도를 나갈 때마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서늘한 동쪽 하늘에 커다란 새벽별 하나가 우리를 마주보며 또렷하게 빛나고 있습니다. 다음날도 그 다음날도 달이 보이지 않는 날이라도 그 별은 여전히 우리보다 먼저 나와서 기다리고 있습니다. 마치 기도를 응답하시기 위해 기다리고 계시는 우리 주님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새벽마다 새벽별로 오신 주님을 붙잡고 기도에 들어갑니다. 비가 오거나 날이 흐려져 보이지 않을 때라도 새벽별은 여전히 그 자리에서 있음을 믿으면서...
겨울이 지나갔다고 늘 따사로운 햇살만 내리는 것은 아닙니다. 간간이 기온이 급강하하는, 겨울보다 더 시린 추위가 오기도 하고, 난데없이 참으로 예측하지 못했던 때 아닌 눈발이 흩날리기도 합니다.
어쩌면 우리 인생이 이와 같은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어떠한 비바람과 폭푸우에 시달리며, 시리고 시린 슬픔의 비에 젖더라도 우리는 늘 그분의 사랑 안에서 살아 숨 쉬는 초록별이 되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어두울수록 더욱 빛나는 별로 찾아오시는 그분을 만나기를 소원합니다.‘내가 또 그에게 새벽 별을 주리라’ -계2:28-
-----------------------------------------------------------------------------
5월의 편지 - .
팔
무슨 일을 하든지 난 늘 그 일에만 신경을 써 왔습니다. 글씨를 쓸 때에도, 컴퓨터를 할 때에도, 무엇을 정리할 때에도 그것만을 보았으며 음식을 만들거나 그릇을 씻을 때에도 맛있게 만들고 깨끗이 씻는 일에만 정성을 다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봐야 할 것을 보지 못하고 살아왔다는 고백을 지금 하려는 것입니다.
무리를 한 탓에 손목과 팔 관절의 힘살에 힘을 줄 때마다 통증을 느끼면서 나는 오늘 내 몸에서 가장 많이 움직이는 지체가 오른 팔과 손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장애로 인하여 보통 사람보다 유난히 작고 약하기만 한 내 오른 팔이 아파하고 있는 모습을 오늘에야 보고 있자니 어릴 적 내 손을 잡고 혀를 끌끌 차면서 하시던 할머니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이렇게 숙주나물 같은 손으로 앞으로 네가 무엇을 하며 살 수 있겠니?”
그러나 할머니의 그 걱정이 무색할 정도로 나는 이 팔로 거의 못하는 일이 없이 해왔습니다. 그래서 남편은 “사실 당신은 거의 못하는 일이 없을 정도로 다 하는데 사람들은 당신을 아무것도 못하는 사람으로 생각하니까 억울하겠다”는 말을 하면서 농담 삼아 나를 작으면서도 오히려 더 성능이 좋은, 그래서 가격이 비싼 전자 제품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팔보다 짧고 작아서 약간 불편한 거 외에 내 팔은 참으로 내 뜻을 잘 받들어 움직여줬지만 나는 한 번도 내 팔을 관심 있게 본 적이 없었고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본 적도 없습니다. 오히려 감당하기 힘든 일도 힘을 더 내라고 무리하게 몰아쳤더니 지금 아파서 울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제야 팔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 봅니다. 팔은 처음으로 그동안 말 못하고 묻어두기만 했던 쌓인 한(恨)을 힘없이 누운 채 흐느끼면서 풀기 시작합니다.
왜 당신은 내가 가진 힘의 분량은 생각하지 않고 당신 욕심대로만 일을 하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없으면 불편해서 잠시도 견디지 못할 거면서도 한번이라도 고맙다고 칭찬이라도 하면서 소중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느냐는 것입니다.
칭찬은 고사하고 내 모습이 다른 사람의 팔보다 작고 초라하다고 때로는 창피하게 여길 때가 가장 서러웠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팔이 아무리 건강하고 잘생겼어도 입안의 혀처럼 당신에게 충성스럽게 움직여 주는 팔은 세상에 오직 자기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때로는 좀 아껴주기도 하고 쉬게도 해달라는 것입니다.
흐느끼면서 하소연을 한 팔은 내가 오늘 잠자코 공감하며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되었는지 흐느낌이 점차 잦아들면서 그래도 당신이 나를 나쁜 일이 아닌 좋은 일로 사용해주었기에 힘은 들었지만 나름대로 자부심과 보람을 가질 수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당신이 많은 사람들 앞에서도 주저하지 않고 나를 들어 축도(祝禱)를 할 때가 가장 영광스럽고 고마웠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팔은 이제 조금만 쉬면 나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라는 듯 방긋 웃는 것입니다.
나도 뭔가 팔에게 한 마디 변명은 해야 할 것 같아서 “내가 그동안 배려해주지 못했던 것은 네가 내게 너무 가까운 지체이기에 너를 네가 아닌 나 자신으로만 생각해서 미처 의식을 못했던 거란다”라는 말 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이렇게 가장 가까운 팔의 소리도 듣지 못하는 내가 세상의 소리를, 더 나아가 하늘의 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겠습니까?
가장 가까운 ‘팔의 소리’를 듣지 못하고 살아온 것처럼 우리는 지체처럼 가까운 부모, 형제, 자식, 아내, 남편의 소리를 미처 듣지 못하다가 뒤늦게 돌아보면서 가슴이 저릴 때가 얼마나 많습니까?
한번쯤 그 소리에 귀를 기울여 볼 일입니다. 얼마나 고단한지, 무엇을 원하는지, 무엇이 기쁨이고 무엇이 슬픔인지 들어봐야 할 일입니다.
그리하여 ‘주여 내 하인이 중풍 병으로 집에 누워 몹시 괴로워하나이다’(마8:6)라고 예수께 간구하므로 하인의 고통을 함께 앓았던 백부장과 같은 마음으로 살아야 할 일입니다.
늘 마음 뿐. 아직까지 한 번도 시행하지 못했지만 늘 하고 싶은 일이 한 가지 내게 있는데 그것은 ‘세족식(洗足式)’입니다. 언젠가를 꼭 사랑하는 이들의 고달픈 삶을 늘 보이지 않는 가장 낮은 곳에서 지탱하느라 짓눌리고 시달린 그들의 발을 내 손으로 직접 어루만지고 씻어주면서 발의 소리를 들어보고 싶습니다.
오늘, 흐느끼며, 흐느끼며 자신의 소리를 낸 후, 조용히 누워있는 내 팔이 눈물로 흐려진 내 눈에 한없이 신비롭고 사랑스럽게 보입니다.
나는 미안한 마음으로 가녀린 팔을 가만히 쓰다듬고 가슴에 꼬옥 안은 채 부풀어 일어나는 흙과 푸르른 신록의 숨소리를 들으며 행복을 느낍니다.
------------------------------------------------------------------------------
6월의 편지 - .
행 복
매일 시간을 정해놓고 열심히 기도하던 한 사제(司祭)가 어느 날 그날도 역시 기도를 하고 있던 중, 갑자기 “그래! 네 소원이 무엇이냐???”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너무 놀라 충격으로 죽었다는 우화가 있습니다.
타성적이고 형식적인 신앙으로 가리키는 이야기겠지만 나는 이 우화를 읽은 후, 과연 내 소원은 무엇인가를 생각해봤습니다.
기도 제목을 말하라고 한다면 이루 헤아릴 수 없이 많겠지만 소원을 한 마디로 말하라면 선뜻 말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나의 바람들이 울창한 숲을 나와 숲 전체를 한 눈에 보았더니 내 소원은 ‘행복’이었습니다.
그분의 사랑 안에서 좀 힘이 들더라도 감사와 기쁨으로 열심히 살아가는 행복한 삶이었습니다. 나는 이 소원을 분명하게 붙잡고 살아야겠다고 마음을 다졌습니다. 자신이 알지도 못하고 품고 있지도 못하는 소원이라면 어떻게 그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바랄 수 있겠습니까?
솔로몬은 ‘지혜’라는 분명한 소원을 가지고 있었기에 응답을 받았건만 우리는 베데스다 못가의 38년 된 병자처럼 병이 낫고 싶은 진짜 소원은 접어두고 물이 동할 때 연못에 들어가지 못하는 현실만을 탓하며 안타깝게 살 때가 얼마나 많은가요?
일이 힘들다고 해서 불행한 것이 아니며 편하다고만 행복한 것도 아닙니다. 아무리 힘든 일도 행복하게 할 수 있는 반면에 쉬운 일도 불행하게 할 수가 있습니다.
나와 오랜 세월 가까이 지내는 한 장애인 형제는 하반신 마비로 휠체어를 사용하면서 역시 장애를 가진 자매를 만나 가진 것 없는 여건에서 결혼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는 세발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며 과자나 테잎 등을 파는 밤거리 노점상으로 생계를 유지했는데 추운 겨울밤에는 마비된 다리가 돌처럼 굳어질 때까지 장사를 해야 했지만 그러나 일을 마치고 돌아올 때는 종이봉투에 쌀 한 되를 사가지고 가면서 느끼게 되는 그 흐뭇함과 행복은 이루 말로 표현할 수 없었다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는 이제 부천 임대 아파트에서 흰색 승용차를 운전하고 다니며 컴퓨터 방문 교사로 일하고 있지만 그 어려웠던 시절의 추억을 오히려 행복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인터넷 뉴스를 통해 TV 드라마 중진작가인 조소혜씨의 죽음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간암 말기로 사망하기 전 그녀는 “나에게는 간암말기 선고를 듣는 것 보다 저조한 시청률에 대한 이야기가 더 괴로웠다”고 했다고 합니다.
도대체 그녀가 말하는 그 ‘시청률’이 무엇이기에 자신의 몸을 죽이고 있는 암(癌 )보다 그녀에게는 더 힘들었을까요? 그녀는 ‘암(癌)’ 이전에 그 ‘시청률’에 매여 이미 죽은 것입니다.
드라마 작가를 꿈꾸는 많은 젊은이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고도 남을 중진 작가인 그녀가 행복한 삶을 원했다면 자신이 잡고 스스로 매이는 그 ‘시청률’이라는 줄을 놓을 수 있어야 했습니다.
조소혜씨 뿐만이 아니라 이렇게 말하는 나 자신부터가 늘어나는 성도의 수로 인해 행복해지기도 했다가 줄어드는 성도의 수로 인해 불행해지기도 하니 생각하면 우리는 모두가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얼마나 부끄럽고 어리석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세상의 모든 것들이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서 주신 것이며, 우리 목숨까지도 이 땅에서 사용하고 나면 그분께 도로 돌려드려야 하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이라면 죽음 앞에서도 무너지지 않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에 나오는 믿음의 선진은 바로 그러한 진리를 깨달았기에 절망적인 여건을 견디며 이겨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 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 가올찌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찌니이다’ -욥1:21-
참으로 우리가 그분 안에서 살고 있다면 오늘같이 비안개가 서린 날이면 더욱 선명하게 들려오는 뻐꾸기소리나 개구리소리로 해가 저무는 현실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지 않을까요?
-----------------------------------------------------------------------------
7월의 편지 - .
흔적(痕迹)
지미 카터(Jimmy Carter. 美 39代 대통령)의 자서전 제목이 ‘왜 최선을 다하지 않는가?’(Why Not the Best?)라고 합니다.
면접시험을 치를 때 받은 질문인데 다른 질문은 모두 자신 있게 대답했던 그가 이 질문 앞에서는 망설이지 않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후로 그는 늘 스스로에게 ‘왜 최선을 다하지 않는가?’(Why Not the Best?)‘라고 자문을 하며 살아왔다고 합니다.
‘최선을 다 한다’ 는 것은 성공적인 삶, 승리하는 삶을 향한 아름답고 바람직한 노력이지만 인터넷에 소개된 어느 발레리나의 상처투성이로 굳어진 발을 보면서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얼마나 힘든 것인가를 새삼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백조가 평화롭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물위에 떠 있지만 물속에 감추어진 보이지 않는 발은 쉴새 없이 부단히 움직이고 있는 것처럼 환상적인 발레리나의 신비로운 몸짓, 그 이면에도 남모르게 피눈물 나는 각고(刻苦)의 노력이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은 최선을 다하여 노력해 왔음을 입증해 주는 것이기에 보는 이로 하여금 감동과 숙연함을 느끼게 합니다.
이후에 우리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었음을, 하늘 씨앗으로 이 땅에서 살아왔음을 무엇으로 증명할 수 있을까요?
바울의 고백인 ‘이 후로는 누구든지 나를 괴롭게 말라 내가 내 몸에 예수의 흔적을 가졌노라’(갈6:17)에서의 ‘흔적(痕迹)’은 헬라어 원문으로 ‘스티그마타’로 종이 주인에게 예속되었음을 입증하는 낙인(烙印)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낙인입니다. 불도장입니다. 고통의 인내로 새겨진 문신(文身)입니다.
수치처럼 보이는 흔적들이 그분 앞에 설 때에는 자랑과 영광이 되는 신비(神秘)를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수치처럼 보이는 자랑이 있는가 하면 자랑처럼 보이는 수치가 있습니다.
우리가 참으로 그분의 사람으로 이 땅에서 충성되게 살았다면 이 후에 그분 앞에 설 때, 그러한 흔적을 하나쯤은 가지고 갈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내게는 어떤 흔적이 있는가? 젖은 풀내음이 안개처럼 피어오르는 새벽 산책길에서 눈을 감고 자문을 해봅니다.
그분의 종의 신분으로 이 세상에 살아오면서 괄목할만한 업적을 이루지는 못했지만 그러나 흔적이라면 내 열악한 신체적 조건을 들 수 있을 것입니다.
어느 면에서는 결격 사항이 될 수도 있는 신체적인 약점을 가지고 그분의 종으로 살아온 고난과 역부족의 치열한 삶이, 늘 한계 끝에서 은혜를 체험해온 사역의 여정이 그 증거요 흔적이 되리라는 생각을 해봅니다.
그것은 백 마디의 말보다 더한 간증이기에 말로 간증을 하라는 자리는 피합니다. 오히려 내 말로 이 흔적이 빛을 잃게 될 것 같아서지요.
크로스비(crosby) 여사가 시각장애를 가진 어둠의 질곡의 삶 속에서 이 세상에 살지만 자신의 영혼은 하늘의 영광을 누릴 수 있는 그것이, 주안에 기쁨 누리므로 마음의 풍랑이 잔잔하여서 세상과 자신은 간곳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는 그것이야 말로 자신의 간증이라고 고백했듯이 말입니다.
흔적은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찢기고 부서지는 고통을 통하여, 아무도 모르게 흘리는 피눈물과 속울음을 통하여 불속에 던져진 듯 쓰리고 아픈 연단을 통하여 불도장 같은 흔적이 만들어지는 것이지요.
우리 삶에 고난과 아픔이 있다면, 처절하게 낙심할 수밖에 없는 시련이 있다면 차라리 불가마 속에서 연단을 받는 한 개의 그릇으로 구워지고 있다고 생각할 일입니다.
사드락,메삭, 아벳느고가 던져졌던 불속에 함께하신 하나님이 우리와 동행하시므로 상처가 흔적으로 승화된 후에는 얽매였던 육(肉)에서 해탈하여 투명하고 단단한 영(靈)의 사람으로 다져질 것입니다.
최악의 수치인 십자가가 최고의 능력과 구원의 상징이 된 것처럼 그분 안에서라면 우리에게도 최악의 수치 역시 최고의 영광의 근거로 승화될 것입니다.
초여름 장마와 따가운 볕의 시련 속에서 연초록 신록이 검푸르게 성숙해가는 지금, 잠자리 떼가 낮게 맴돌며 그림 같은 날개 짓으로 초여름 장마를 배웅하고 있습니다.
---------------------------------------------------------------------------
8월의 편지 - .
존재, 그 애틋함이여
우리 두 사람용으로 은(銀)수저를 마련하고 싶다던 남편은 어느 날, 은수저 대신 은수저처럼 두툼하게 생긴 스텐레스 수저 두 벌을 사가지고 왔습니다. 그런데 똑 같은 모양인데도 내 수저는 휠씬 작았습니다.
“내가 키가 작지 입도 작느냐?”고 항의를 하자 그는 ”당신 손이 작잖아.....“ 그래서 큰 수저가 불편할 거 같아 손에 맞도록 작은 걸로 사왔노라고 했습니다. 그래도 나는 별로 달갑지 않게 사용을 해왔는데 남편이 없는 식탁에서 혼자 식사를 하려니 그 수저가 그의 흔적이 되어 마음을 아프게 합니다.
서울 토박이로 전원생활에 익숙하지 못한 그에게 하나에서 열까지 움직이는 일들은 당연히 남편 몫이 되는 상황에서 그의 입장은 내가 보기에도 늘 역부족인 것을 느낍니다.
그런데다 그의 성격은 자신이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일들 외에는 누가 무슨 말을 해도 듣지 않는 융통성 없는 옹고집입니다.
그러저러한 일들로 스트레스를 받을 때마다 힘들다고 말을 하고 짜증도 내는 나보다 표현을 안 하는 그가 더 스트레스를 받는지 주변으로부터 그를 보고 결혼하기 전보다 얼굴이 상했다는 말을 들을 때면 안쓰럽고 속이 상합니다.
그래서 한 1년여 정도나 적어도 6개월이라도 기간을 가지고 서로 따로 사역을 하면서 부담 없이 주말마다 만나며 살아보자고 의견을 모았고, 남편은 칠순 노목사님이 운영하는 경기도에 있는 기도원에서 당분간 사역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떠난 생활주변은 온통 그의 흔적들로 널려있었습니다. 교회당 지붕에 반짝이 전구로 특이한 네온을 만들어 놓은 것을 비롯해서 주차장에 설치된 차광막과 그 아래 만들어 놓은 넓은 나무 평상, 예배당 창문마다 새로 만들어놓은 방충망 창틀을 보면 초여름 찌는 더위 속에서 한나절을 혼자 일하면서 갈증이 났을 때, 내가 가지고 올라간 수박 한 쪽을 맛있게 먹던 모습이 묻어있습니다.
예배당에 딸린 방안에 들어가면 이틀 동안 혼자 풀을 바르며 도배하던 그의 모습이 어른거립니다. 마당에 주차되어있는 차(車)에도 그의 모습이 묻어있고, 창가에 붉은 벽돌과 나무로 내 키에 맞도록 만들어 놓은 식탁에 혼자 앉아있노라면 봄, 여름에는 푸르름을, 겨울에는 설경을 감상하면서 식사를 하자던 그의 말이 생각납니다.
또 저물녘이나 새벽 산책길에는 강아지를 데리고 그와 함께 산책을 하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밤이면 나보다 잠이 없는 그가 혼자 앉아 책을 보거나, 세탁물을 건조대에 너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참으로 평화롭게 잠이 들곤 했습니다.
그에 대한 나의 그리움은 어떤 필요나 유익 때문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존재’ 자체가 소중하기에 그의 흔적도 소중한 것이지요.
‘존재’란 어떤 필요에 따른 가치가 아니라 그 존재 자체가 이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느끼게 됩니다. 성도들과의 관계에서도 늘 내 눈에 눈물이 마르지 않는 것은 그 ‘존재’ 자체가 소중하고 애틋하기 때문이지요.
교회에서도 ‘존재’의 가치란 봉사를 많이 한다든지, 교회에 어떤 유익을 끼친다든지 하는 문제와는 별개의 것입니다. 물론 봉사를 많이 하는 성도가 소중하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능력이 미치지 못해 하지 못하더라도 그 존재 자체로 이미 무엇보다도 소중한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그들 스스로가 자신의 존재를 자기가 하는 역할의 분량에 따라 나름대로 색칠을 하고 함부로 판단하지나 않을지 우려 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가치를 그렇게 판단하신다면 어떻게 우리가 ‘내 모습 이대로 주 받으옵소서“라고 그분께 나아갈 수가 있겠습니까?
아침마다 터질 것 같은 그리움을 안고 안개서린 물가로 가면 황소개구리 소리는 관악기보다도 크게 온 방죽을 흔들어놓고, 풀섶에 숨어있는 개구리들은 물위로 머리를 내민 채 부동자세로 있다가 곤충을 순식간에 채어 먹는 양을 보면 개구리의 그 쉼표는 그냥 쉼표가 아닌 그들 삶의 재충전, 재창조(recreation)임을 알게 됩니다.
신록의 푸르름을 뿜어내던 숲이 장마에 절여지고, 뜨거운 볕에 달구어져 이제는 제법 여름 숲에서 풍기는 시큼한 내음을 담고 있습니다. 삶이란 이러저러한 부대낌과 연단으로 달구어지고 모서리가 마모되면서 성숙해지는가봅니다.
얼마 전에 잠시 다니러 왔던 남편은 ‘황목사님이 안계시면 안되니 빨리 오셔야한다“는 성도들의 의견과 교회 일들로 인해 채 한 달도 채우지 못하고 다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
9월의 편지 - .
그래도 카라반은 간다!
올 여름은 예년에 비해 무더위라는 유난히도 높고 가파른 고개를 넘어가는 것 같습니다. 숨이 막힐 정도로 달아오르는 열기 속에서 날마다 연단 받는 기분으로 여름을 살다보니 문득 카라반(caravan)이 생각났습니다.
막막하게 끝이 보이지 않는 사막, 목이 마르고 지쳐 쓰러질 것처럼 힘이 들어도 아무런 불평 없이 숙명처럼 낙타 떼를 몰고 가는 대상(隊商) 카라반,
삶이란 얼마나 큰일을 이루어내느냐 보다 어쩌면 묵묵하게 꾸준히 가는데 더 가치가 있는지도 모릅니다.
무엇이 확실하게 보장되어 있지 않더라도, 때로는 힘들고 지치더라도, 비바람 눈보라가 몰아치더라도, 끊임없이 가는 것이 삶일 것 같은 생각이 드는 것은 나이가 든 까닭일까요?
그렇게 가다보면 오아시스를 만나 기갈한 목과 피곤을 풀 때도 있으며 새 힘을 얻을 수도 있고 새로운 길을 만나기도 하겠지요.
이 숨 가쁜 속도의 시대, 한 템포 느린 것은 질서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숨통을 조이는 것이나 규칙을 깨는 것은 파격적인 이 시대에 조여진 정신을 이완(弛緩)시키면서 비교하지 않고, 경쟁하지 않고 그분 안에서 그렇게 카라반처럼 가고 싶습니다.
그것을 행복이냐 아니냐 구태여 말할 필요가 없는 것은 만족이란 자족하는 비결을 배운 사도 바울처럼 느낄 수 있는 자만의 소유이기 때문이지요.
우리가 가끔씩 부담 없이 방문하는 분이 있는데 결혼이 뜻대로 안 이루어져 나이 50에 아직도 노총각으로 혼자 살고 있는 지체장애를 가진 분입니다.
그동안 우리도 기도하면서 몇 차례 주선해 보기도 했지만 이루어지지 않아 생각날 때마다 방문하여 자장면을 불러서 함께 식사를 하기도 하고, 추운 겨울에는 따끈한 붕어빵을 사가지고 가서 놀다 오기도 합니다.
그때마다 들어가 보는 그의 작은 방에는 TV가 세 대 정도이고, 컴퓨터는 5대 내지 6대가 좁은 방안을 빙 두르고 있어 두 세 명이 앉으려면 서로 무릎이 닿을 정도로 면적을 좁히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벽걸이용 전자시계도 몇 개씩이나 여기저기서 재깍거리고 있으며 TV와 컴퓨터들도 늘 켜진 채로입니다.
전자파가 몸에 안 좋으니 사용할 외에는 끄라고 했지만 그는 여전히 모두를 작동시켜 놓고 하는 말이 “TV는 마누라고 컴퓨터는 새끼들(자식들)” 이라는 것입니다.
나는 “그러면 전자시계들은 손자들이겠네”하면서 웃었지만 그의 말은 가슴 싸아~한 충격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적막한 혼자만의 생활 속에서 어쩌면 그는 그런 전자제품(거의가 버려진 것들을 가져다가 고친 것이지만)들을 마치 살아있는 생명체처럼, 가족처럼 느끼며 위로를 받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그러면서 그는 날마다 철야기도 하는 믿음을 유지하며 늘 웃는 얼굴로 욕심 없이 평안한 삶을 누리고 있습니다.
삶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열심히 바쁘게 사는 모습이 삶을 사랑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지만 그 열심이 욕심이 되고, 그 욕심으로 인하여 오히려 삶을 망가뜨리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신앙의 삶 역시 그분에 대한 사랑이 이기적인 욕심이 될 때, 우리는 베드로처럼 주님의 길을 막기도 하고 부인하기도 하며, 가룟 유다처럼 내 안에 계신 그분을 죽일 수도 있는 것입니다.
히말라야 등반대들, 그 엄청나게 험하고 높은 산을 목숨을 걸고 오르는 사람들에 대해 나는 남다른 자연관내지는 특별한 철학을 가졌을 거라 여겨왔습니다. 그런데 얼마 전, TV를 통해서 본 히말라야에는 등반대들이 버리고 간 쓰레기들이 만년설 속에서 썩지도 않고 10년, 20년 동안이나 그대로 있었습니다.
목숨까지도 불사하며 산을 찾는 그들의 열정은 산에 대한 사랑일까요? 아니면 정상을 정복하여 얻고자 하는 성취감일까요? 그러나 사랑이 배제된 열정은 오히려 모든 것을 죽이는 힘으로 역작용하게 되지요.
답답할 정도로 무덥고 긴 여름이었지만 그 가운데서도 교회 가족들과 운주계곡의 시원한 물에 몸을 담그기도 했고, 남편과 같이 강원도 모임에 참석하여 잠시나마 불끈불끈 힘 있게 솟아오른 설악의 기개를 가슴 벅차게 담아왔습니다.
그리고 서해에서는 볼 수 없는 동해의 수채화 같은 남청색 짙푸른 물빛에서 물빛도 투명도와 정비례하게 하늘빛을 담아낼 수 있음을 깨달으면서 그 빛깔을 청량제처럼 가슴으로 안았습니다.
어느새 벚나무 가로수에는 우리들 머리에 늘어가고 있는 흰머리처럼 노란 잎들이 쓸쓸하게 섞여가면서 그렇게 여름이, 그리고 세월이 가고 있습니다.
‘나 가는 길 다 알지 못하나 한 걸음씩 늘 인도 하소서’ 라는 찬송 시처럼 지금 가고 있는 길이 사막이든 오아시스든 나는 카라반처럼 그저 묵묵히 갈 것입니다.
그래도 카라반은 간다!!
-----------------------------------------------------------------------------
10월의 편지 - .
위 로
쉬고 싶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지만 마땅한 장소가 없어 꾸벅꾸벅 견디어 왔었는데 우연히 아는 목사님을 찾아왔다가 어쩌면 나를 위해 장소를 예비해 두신 것 같은 감동을 받아 지금 이곳에서 쉼표(,)를 찍고 있습니다.
바다가 인접해 있고 산이 병풍처럼 둘러있는 곳에 새로 지은 그림 같은 목조건물에는 나 혼자서 생활할 수 있도록 욕실과 싱크대와 그리고 하늘을 맘껏 마실 수 있도록 넓은 창을 갖춘 방이 하나 있습니다.
이곳에는 목사님 외에도 오랫동안 목사님과 함께해온 약간의 정신지체 장애를 가진 6순의 초로와 40대 중반의 형제, 이렇게 두 분이 있는데 그들은 청소를 하거나 잔디의 풀을 뽑거나 정원에 물을 주는 일 등으로 조용하게 이곳을 지키면서 외로운 목사님의 말없는 위로가 되고 있음을 봅니다.
지금은 두 사람과 생활을 하고 있지만 그동안 많은 정신지체 형제들을 데리고 큰일을 해왔던 목사님이 심지어 가족들에게까지도 외면을 당하는 그 처절하도록 외로운 상황에 몰려있을 때, 지능이 너 댓살 수준 밖에 되지 않는 심한 정신지체형제 중 한 형제가 살그머니 다가오더니 누가 들을세라 작은 소리로 “아빠, 나 아빠 위해서 기도 많이 했다...” 라고 속삭이더라는 것입니다.
전혀 기대하지 않은 대상으로부터 받은 그 위로야말로 얼마나 눈물겹도록 고마운 위로입니까? 또 아무런 판단이나 비판도 없이 오직 사랑으로만 드려진 그 아름다운 기도를 그분께서 얼마나 사랑하셨겠습니까?
그 목사님은 스스로를 “실패한 목사”라고 했지만 그런 형제가 한 사람이라도 있는 한 나는 나름대로 성공한 삶이라고 생각합니다. 함께 하는 삶에는 능력이 없어도, 정신이나 지체 장애를 가졌어도 사랑이 있으면 서로에게 위로와 힘이 될 수 있는 신비(神秘)가 있습니다.
추석이 지나고 나면 우리는 새로운 가족을 한 사람 맞게 됩니다. 뇌성마비로 인한 전신마비로 식사에서부터 목욕과 대소변을 보는 일 등 모든 움직이는 일을 보살펴줘야 하는 중증장애형제입니다.
집에서 지내기가 어려워 우리 교회에 와서 살고 싶다는 전화를 받았지만 나는 이곳의 상황을 설명하고 어쩔 수 없이 거절할 수밖에 없었는데 그 말을 듣고 기도를 한 남편이 다시 연락해서 그 형제를 데려오자고 진지한 표정으로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나는 남편의 흰머리를 보면서 “당신도 이제 50이 넘은 나이에 생각처럼 쉬운 문제가 아니”라고 수차례나 만류를 했지만 “기왕에 우리가 장애인사역을 하면서 장애가 심하다고 해서 받아들이지 못해서야 되겠느냐 그동안은 당신 혼자였기에 어쩔 수 없었지만 이제는 내가 있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나는 이제 사역 초기에 몸을 던져 중증 장애인 자매들과 함께 했던 그 때처럼, 다시 어려운 결정을 내린 이 시점에서 기도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생활하는 다른 가족들과는 달리 이 형제는 우리 두 사람의 생활 깊숙이 품어 안아야 합니다.
남편이 감당해야 할 몫과는 비교할 수 없지만 나도 이제 우리 두 식구의 밥상을 세 식구로 준비하면서 40이 넘은 형제지만 자식 하나 기르는 사랑으로 감당하게 하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분의 은혜 안에서라면 어쩌면 그 형제의 존재가 외로운 우리 부부에게 오히려 위로와 기쁨이 되지 않을까? 라는 기대까지 하면서 말입니다.
매월 월례행사처럼 문서 선교로 회보를 편집, 인쇄, 발송 작업을 하다 보면 읽어주고 반응을 보여주는 이들을 통해서 위로를 받고, 그 중에서도 매월 빠짐없이 회보를 받아본 소감과 함께 답장을 보내주는 교도소에 있는 형제들에게서 더 위로는 받으며, 또 그 중에서도 본인들에게 가는 우표는 단 한 장인데 다른 곳에 발송하는 비용까지 돕기 위해 매월 우표를 20매씩 보내오는 세 분의 재소자 형제의 고마운 마음에 더 큰 위로를 받게 됩니다.
믿음으로 사는 자는 하늘위로를 받게 되지만 그 위로란 크고 특별한 것이 아닌 평범하고 작은 것인 것처럼, 어떤 큰일보다도 우리의 작은 삶을 사랑하시는 그분께 우리 역시 어떤 처지에서도 기쁨을 드리며 다른 사람에게도 위로가 될 수 있지요.
그분은 늘 여러 가지 모양으로 내게 은혜를 주시지만 사역에 지친 나를 쉬게 하신 이곳은 아침과 저녁 안개 속에 아련하게 보이는 꿈결 같은 산 능선과 함께 산소가 가득하며, 새벽녘의 투명한 산 공기는 피부의 세포가 살아나는 느낌으로 닿아옵니다.
밤이면 산이 숨 쉬는 소리가 들리는 듯 조용한 이곳에서 잠시 쉬었다 나는 다시 돌아가야 합니다.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방죽에 하얀 해오라기들이 옹기종기 모여 드는 곳, 새벽 산책길에 콩밭의 꿩들이 인기척에 놀라 푸드득! 푸드득! 쌍쌍이 날아오르는 그곳으로,
비록 적은 수의 지체들이지만 감사하는 마음으로 옹기종기 예배를 드리고 함께 정성껏 준비된 식사를 나누며 사랑하는 이들과 자연보다 더 아름다운 십자가를 감당하면서 갓 피어난 들국화의 해맑은 신선함으로 그분께 기쁨이 되는 삶을 가꾸고 싶습니다.
-----------------------------------------------------------------------
11월의 편지 - .
환희
인도하시는 대로 믿음으로 감당하겠노라고 다짐한 일이지만 사실 이제는 좀 편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은연중 가졌던 내게는 발등에 불똥이 떨어진 격이었습니다. 휴가지에서 채 한 달도 머물지 못한 채, 서둘러 남편을 따라 돌아오는 내 머릿속에는 온통 힘든 문제들로인한 부담으로 가득했고, 남편도 말은 안하지만 약간은 부담감으로 긴장을 한 듯이 보였습니다.
그런데 막상 와 보니 상황은 더 심각했습니다. 손발을 사용하지 못하는 상태를 떠나 안타깝게도 그 형제는 시력까지 약해서 사물에 초점을 맞추기도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밥을 떠 넣어 식사를 하게하고, 씻기고 용변을 처리해주는 문제보다는 변비로 배변도 어려운 상태였습니다. 그리고 아무리 ‘재가(在家)장애인’이라지만 자기 휠체어 하나도 없이 방치된 채 살아왔습니다. 그동안 심한 장애를 가진 자매들을 데리고 있었지만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습니다.
나는 과연 남편이 이러한 일들을 감당할 수 있을지 의아한 마음으로 며칠동안 그의 기색을 살폈는데 신기하게도 실내에서 음식냄새가 나는 것도 견디지 못하는 유별난 성격인 그가 그 형제의 식사수발과 양치질과 이발, 면도는 물론이거니와 용변을 처리하는 일과 냄새가 나지 않도록 수시로 씻기고, 오물이 수시로 묻어나는 옷과 침구류 등을 빠는 일들을 웃는 얼굴로 부드럽게 다독거리며 말끔하게 처리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인가는 내가 아침식사를 준비했는데 아침마다 그 형제의 방으로 가서 소변 통을 비우고 찬양을 틀어주러 들어간 남편이 나오질 않아 방문을 열어보니 대변을 보는 중인지 그 형제는 신문지 위에 마치 애를 낳는 산모처럼 누워 있고, 남편은 조산원 같이 돌보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변을 보는 동안 당신 먼저 식사를 하라고 두어 번 재촉을 하자 그는 이 상황에서 어떻게 식사를 하느냐면서 역정을 내는 것입니다.
나는 괜히 가슴이 답답해져 전동휠체어를 타고 밖으로 나와 낟알이 또록또록 여문 벼이삭과, 콩이 여물고 잎이 마르고 있는 콩밭, 거기서 푸드득! 날아가는 꿩들, 오랜 가뭄인데도 물이 마르지 않은 방죽을 보면서 돌아다녔다.
그러다가 미안한 생각이 들어 들어와 보니 용무를 다 마치고 식사도 끝났는지 남편은 내 대신 설거지까지 하고 있는 것입니다. 내가 미안한 마음에 “커피 끓일까?”하고 묻자 “응~”하고 다정하게 대답하는 순간, 나는 그를 꼬옥~ 안아주고 싶었습니다. 사랑스럽고 고마운 남편입니다. 언젠가 그는 내게 “..이담에 당신이 늙고 병들어도 내가 다 간병해 줄테니 걱정하지 말어.” 그 말을 듣고 나는 “당신이 내 대소변 다 처리해주고 씻겨주고 그럴 수 있어? 아마 못할 걸~”했는데 며칠 전, 용운 형제를 거두는 자기를 바라보고 있는 나에게 그는 웃으면서 “어때 이제는 내가 당신 간병도 할 거 같지?”하는 것입니다. 나는 “응, 아주 잘 할 것 같애...” 그동안 늘 그의 부족한 점만 지적하면서 책망해왔던 일이 요즘은 부끄러워집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하면서 행복을 느낍니다.
그런 모습을 보면서 나는 매일매일 열심히 식사준비를 해줬는데 그렇게 하루하루를 지내면서 중증장애인이라는 부담으로만 느껴지던 그 형제에 대한 생각이 서서히 가라앉으면서 그의 성품과 생활하는 모습들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그 정도로 심한 장애를 가진 여건에서도 병들지 않은 건강한 성격과 그 마음속에 가진 순수한 믿음을 느끼게 되면서 그 형제에 대한 사랑과 그 존재에 대한 소중함이 자라기 시작했습니다.
늘 성경을 읽거나 기도를 하며, 바람을 쏘이라고 휠체어를 태워 마당에 내 놓으면 공기가 맑고 기분이 좋다고 한나절이라도 찬송을 부릅니다. 교회 지체들에게도 자기가 먼저 인사를 하며 남편이 병약하신 집사님에게 기도를 해드릴 때에는 옆에서 “아멘!”이나 “믿씁니다!”라고 고무적인 믿음으로 영적인 협력을 하는 고마운 형제입니다.
어느 날 저녁에는 엄마하고 통화를 하고 싶다고 해서 전화를 걸어주었더니 “엄마! 몸 안 아퍼? 엄마, 아프지 마! 그리고 아프면 빨리 병원 가..나는 목사님이 너무나 잘해주셔서 잘 있으니까 걱정하지 마.. 그리고 엄마, 엄마 교회 다니게 해달라고 목사님하고 기도하고 있으니까 교회 나가야 해..알았지?“ 그 소리를 옆에서 들으면서 우리는 가슴으로 울었습니다. 남편이 눈물을 글썽이면서 하는 말, “..그래도 자식이라고...”
비록 장애가 심하긴 하지만, 아니 그래서 더욱 그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이었습니다. 두어 달 전 새벽녘에 문득 “만일 우리에게 업동이가 들어오면 어쩌나?”하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는데 아무래도 하나님께서 이 형제를 우리에게 업동이로 보내주신 것 같습니다.
오늘, 모처럼 외출을 하면서 단풍이 물들어가는 가로수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봅니다.
“..여름내 푸르름을 구가했던 날들이 서서히 퇴색되어 갈 때, 나는 푸르름을 놓치지 않으려고 안타깝게 몸부림쳤어. 그러나 손아귀에 힘을 줄수록 그것들은 손가락 사이로 모래알처럼 허무하게 빠져나가고, 내 생명은 차갑고 따가운 일교차(日較差)의 시련 속에서 부대꼈어, 그러다가 지친 나는 눈을 감고 나를 관리하시는 그분께 죽으면 죽으리라는 다짐으로 맡겨버렸지, 그런데...그런데 말이야 신기하게도 그 시련과 고통이, 죽음 같은 절망이, 참으로 예상하지 못했던 찬연한 빛으로, 환희의 빛깔로 변하고 있는 거야, 정말 눈이 부시게 황홀했어, 나는 지금껏 내가 이렇게 화려한 존재인지 몰랐어, 푸르른 육신으로 있을 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던 사람들이 지금은 눈부시게 나를 바라보면서 ”오~“하고 감탄을 하는 거야, 내 삶의 진면목은 그 육신의 푸르름이 아니라 바로 이런 찬연함이었음을 이제야 알게 되었어, 지금의 내 모습이야말로 내 삶의 정점(頂點)이며 환희인 것을.....”
------------------------------------------------------------------------
12월의 편지 - .
사랑이 살린다
목사로서 능력을 얻기 위해서는 강단 전체를 눈물로 적시는 기도가 있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또 남편이나 자식을 위한 어머니나 아내가 흘린 눈물이 강을 이룰 때에 그 강위에 배를 띄워서 홀(hall)에 빠지지 않고 인생길을 갈 수 있는데 그것도 물이 얕을 경우에는 좌초에 부딪친다고 합니다. 이런 말들은 눈물로 드려지는 간절한 기도를 통해서 역사가 일어남을 의미하는 말들일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를 지는 일이야 구레네 시몬처럼 상황에 따라 억지로 질 수도 있겠지만 이 눈물이야말로 영혼의 저 바닥까지 바이올린의 현(絃)처럼 훑어가면서 나오는, 그렇게 속가슴이 녹아져 나오는 액체이기에 사랑이 아니면 흘릴 수 없는 것이지요.
내 여동생은 10여 년 동안 안쓰러운 자식 하나 가슴에 품고, 자신의 생애를 걸고 살아오고 있습니다. 불가능의 벽을 손에 피가 나도록 두드리며 직장까지도 그만 두고 오직 아이를 위해 살아가는 그것은 눈물의 기도로 자식을 위한 제단을 쌓고 그 위에 이미 자신을 제물로 바쳐버린 삶이었습니다.
자폐성향을 가졌지만 일반 초등하교 5학년에 다니면서 지금은 미술대회 마다 나가 줄줄이 상을 타고 있는 그 녀석의 제 엄마보다도 큰 키를 보면서 나는 그 키만큼이나 흘렸을 동생의 눈물을 가늠해봅니다.
그리고 그 안쓰러움을 바라보면서 나도 무수하게 기도하며 흘렸던 뜨거운 눈물이 생각납니다. 그러나 동생은 사실은 강한 아이가 아니라 겁도 많고 여리기만 한 아이였습니다. 그런 아이가 시련과 아픔 속에서 강하게 변해진 모습이 내게는 오히려 가슴을 아프게 합니다.
몇 년 전, 함께 거제도 여행을 했을 때였습니다. 아침에 일어나 옷을 입는데 뭔가 살갗이 선뜻해서 내려다보니 검은 고무줄 같이 긴 물체가 다리에 붙어있기에 툭! 털어보니 15cm는 족히 될 것 같이 큰 지네가 방바닥에 떨어져 꿈틀거리는 것이었습니다.
순간, 나는 소름이 오싹 돋으면서 악! 소리를 지른 채 당황해서 어쩔 줄을 모르고 있었는데 그것을 본 동생이 갑자기 그게 걸레였는지 옷이었는지 생각은 안 나지만 뭔가를 잡고 꿈틀거리는 지네를 몇 차례나 수없이 내려쳐서 죽이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다행히 지네를 퇴치하기는 했지만 나는 동생의 그 놀랍도록 강해진 모습이 안쓰러운 기억으로 남아 지금도 가슴에서 지워지지가 않습니다. 형제들 중에 가장 겁이 많아서 어릴 적에는 겨울옷 솔기에 달린 털을 보고도 무섭다고 비명을 지르던 아이였습니다.
어른이 되어 직장생활을 할 때에도 길을 함께 가다가 나를 아는 언어장애를 가진 분이 아는 체를 하는 걸 보고 겁을 내면서 소리를 지르며 달아나는 바람에 오해를 받아 복잡한 일까지 겪게 된 일이 있을 정도로 지나치게 겁이 많은 성격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아이를 데리고 얼마나 부대끼며 시련을 겪었으면 저렇게 변했을까요. 거제도에서 동생이 지네를 잡던 그날 새벽에도 기도하는 소리에 깨어 보니 아이는 자고 있는데 동생은 화장실에서 혼자 기도를 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 모습을 보고 나는 도저히 다시 잠을 이룰 수가 없어 혼자 잠든 아이의 머리를 손으로 감싸 안고 아프고 쓰라린 마음으로 간절하게 기도를 드렸습니다.
어떤 대상을 가슴에 담고 기도하는 눈물은 그의 아픔과 고뇌와 절망과 허물까지도 자신의 것으로 품고 투영시키는 사랑이 있을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의 십자가를 내가 지는 사랑의 희생이 동반될 때 탁한 육질이 삭아지고 투명한 영혼의 삶으로 변하게 되겠지요?
나는 내게 오는 이들을, 내게 기도해 주기를 부탁하는 모든 이들을 위해 그렇게 기도하고 있는지 생각해봅니다. 그렇게 나의 사역의 삶이 투명한 영혼으로 빛을 발하고 있는가를, 그런 사랑으로 모든 이들을, 그리고 세상을 살리는 그분의 뒤를 따르고 있는가를,
가을 내내 우리는 공작단풍 한그루를 감상하며 보냈습니다. 공작날개처럼 낮게 휘어진 나뭇가지의 모습도 멋이 있지만 가을을 맞아 은은하게 물이 들어가는 붉은 빛의 그 색감이 신비로울 정도로 찬연하여 눈길이 머물게 합니다.
그 환상적인 붉은 빛깔을 보고 있노라면 그 이파리들 자체가 물체가 아닌 빛으로 느껴집니다. 빛! 그렇습니다. 이파리의 육질이 만져지지도 않고, 상하거나 무너지지도 않으며 걸리적거리지도 않는, 그리고 조금의 무게도 없이 빛으로만 있는 것, 그것은 육이 아닌 영혼의 모습입니다.
육신의 무게로 때때로 넘어지고 주저앉는 나도 언제쯤 저 단풍처럼 육이 아닌 영혼의 모습이 될 수 있을까요? 초겨울 아침은 투명합니다. 사람은 혼자 있을 때 투명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