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얼마 전 한 TV 시사프로그램에서 초등학생 성적표에 등수나 ‘수우미양가’의 표기가 다시 살아나
야 한다, 아니다의 논쟁을 보여준 적이 있습니다.학생들의 지식수준이나 교육수준이 너무 떨어져서
경쟁력 회복을 위해 살려야 한다고 주장하는 이들과, 아직도 인생교육이 부족해서 학교 안의 범죄
가 많은데 다시 이 제도가 살아나면 초등학교에서의 전인교육은 실패한다는 주장이 팽팽했습니다.
양 팀의 주장을 듣고 난 사회자가 한마디 하더군요. “ 양팀의 주장은 반대이지만 의견이 같이 일치
하는 부분도 눈에 띄는군요, 어쨌거나 모두 요즘 초등학생 문제가 많다는 거죠” 라고.. 예전이나
지금이나 어른들은 늘 ‘요즘애들 문제가 많어’ 라고 지적합니다.
대학생 선교단체 간사로 있는 제게 많은 분들이 또한 요즘 대학생들 문제가 많다고 이야기 하십니
다. 개념도 없고 생각도 없고 책도 안 읽고, 노는 것만 좋아하는 철없고 이기적인 이들이라고 폄하
합니다. 한 층 더 떠서 옛날 386 세대만 졸졸 쫓아다니는 생각 없는 것들이라고 비아냥거리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사회책임” 이라는 과제를 이야기할 때도 대학생선교단체 간사인 제
게는 늘 학생들 좀 바른길로 가게 잘 가르쳐보라는 훈계가 떨어지고는 합니다. 여전히 이 어른들의
세계에서 20대는 피교육자로... 선동하면 끌려나오는 주체적이지 못한 존재로만 비쳐 지는가 봅니
다. 청년들을 사랑하고, 그들을 가르치며 또 함께하며 10여년을 보낸 저로서는, 어른들이 이런 자세
로 청년들을 대한다면 “그리스도인의 사회책임”이라는 중대한 과제는 미래가 없는 채로 논의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먼저는 이 과제에 청년들을 피교육자나 선동의 대상이 아닌 주체적
이고 큰 잠재력을 지닌 소중한 미래의 자산으로 대해 주신 것과 그리스도인의 사회책임이라는 주제
에 대한 청년들의 생각과 입장을 적극 반영해 주시기를 요청합니다.
2.
최근 들어 교회내의 어른들은 청년들이 좌파의 행보를 보이고 있다고들 생각하십니다. 386세대의 형
과 누나들에 휘둘려서 멋도 모르고 잘못된 소리를 외치고들 있다고도 합니다. 또 아무것도 모르고
순진한 20대들을 386세대들이 빨갛게 물들였다고 30대들을 책망하기도 합니다. 교회에서 얌전히 봉
사나 하고 있을 것이지 촛불집회 같은 세속적인 일에 끼어든다고 야단도 치십니다. 하지만 멀리서
그들을 한 덩어리로 야단치시는 것과 달리 그들의 속에서 함께 해 보면 지금이 대학생들은 결코 좌
파 언니 오빠들에 의해 아무생각 없이 휘둘리는 것도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생각하는 그리
스도인으로서 올바른 선택을 위해 그들이 얼마나 고민하고 신중하게 행동하는지도요..
단지 이들에게는 이 귀중한 사명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을 알았더라도 이것을 감내해낼 만한
용기가 없고, 승리의 기억이 없습니다, 자신들의 손으로 힘으로 이룰 수 있다고 여기지 않습니다.
그래서 주춤거릴 뿐입니다. 386이 80년대 민주화운동을 통해 그들의 손으로 작은 민주주의의 승리
를 경험한 것과 같은 승리의 경험이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사회책임은 역사적 상황에 따라 계속 다른 모습과 주장으로 변모되어 왔습니다. 교회
안의 6070의 어르신들의 주장과 3040의 주장이 그래서 각각 판이하게 다릅니다. 각각 자신들이 겪
은 역사적 상황 속에서 얻은 경험에 의해 강하게 각인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일제 압박 속에서 교회
를 지키기 위해 친일로 돌아섰던 기억과 신사참배의 부끄러운 경험, 그리고 곧 이어서 들어선 이승
만 정부에 의한 특혜에 해당하는 융숭한 대접 속에서 기독교가 말 그대로 호황을 이루었던 기억 속
에서 이 분들은 그리스도인의 사회책임이라는 과제는 아마도 미국을 숭배하고, 정부에 복종하고 그
은혜를 누리는 것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래서 눈물 흘리며 시청 앞에서 그 연로하신 어르신들이
“우리는 미국을 사랑합니다”라고 목이 터져라 기도하신 것일 테죠
또 박정희 정권의 그 공포스런 억압적인 사회를 경험한 어른들한테는 군대와 국가보안법만이 이 땅
과 이 민족을 지켜줄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으니 몇 백만을 죽인 군사정권이더라도 이 나라를 부유
하게 만들어 민생을 돌아보아 주었다는 은혜를 기억하고,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 이라는 과
제를 마땅히 그리스도인들이 국가보안법 폐지를 어떻게든 막아 이 나라를 지켜야겠다는 생각을 하
게 될 것이죠.
저는 이러한 어른과 어르신들을 탓하거나 원망하지 않습니다. 당신들은 틀렸다고 비난하고 싶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당신들께서는 지금의 2030이 자신의 세대만의 경험으로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
임’ 이라는 과제를 당신들과 다르게 해석하고 행동한다고 해서 야단치고 폄하하지 않으시기를 바랍
니다.
지금의 30대들은 전두환 정권의 우악스러운 모습과 졍면으로 싸웠습니다. 그리고 문민의 정부에 이
르기까지 잘못된 역사의 어느 정도는 그들의 손으로 바르게 만들었다고 자부합니다. 독재정권과 싸
우고 재벌기업과 싸워서 그들의 인간다움을 지키고, 국민이 주권인 나라를 만들었다고 자긍합니다.
이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과제는 그래서 전세대와 같은 타협이나 은혜를 누리던 형
태가 아닌 투쟁이고 싸움인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손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겠다는
것입니다.
3.
반면 지금의 세대들, 대학생들, 새벽이슬같은 젊은 청년들은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과제가 낯설기만 합니다, 풍요로운 삶, 도시적인 생활방식 입시위주의 교육, 그리고 최근의 실업난
에 이르기까지 그들은 수동적인 삶을 살았고, 싸워서 이겨내야 할 이념적이거나 정치적인 장애물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른들이 보기엔 주체적이지도 투쟁적이지도 깊이 고민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지
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들은 몸으로 사회의 볼평등을 체험하면서 십대를 보냈습니다. 학벌 위주의
사회, 약자는 도태되는 사회, 고착화되어가는 빈익빈 부익부의 사회, 가난한 아빠를 둔 것이 곧 죄
가 되는 사회를 몸으로 체험했습니다. 이것은 이념으로고 종교로도 정치로도 극복할 수 없을 것만
같은 사회의 구조가 던져주는 공포입니다. 그래서 이들을 분노케 하고 일어서게 하는 힘은 바로 불
공평과 약자를 괴롭히는 강자에 대한 저항감입니다.
이들은 이 사회의 잘못된 구조에 저항함으로 그들만의 참여형태를 찾아냈습니다. 그래서 돌멩이 대
신 촛불을 들고, 비방하는 말 대신, 패러디 만화를 그리는 것입니다. 미국으로부터 은혜 입은 것 없
기 때문에 효순이, 미선이를 위해 촛불을 들 수 있었고 독재를 겪어보지 않았기 때문에 국민이 뽑
은 대통령을 국민이 지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민주화의 투쟁으로 친구를 잃어본 적 없지만 이라크에 있는 소년들을 자신이 친구로 여겨 거리에 나
가 피스몹을 행했던 것입니다. 이제 그리스도인 대학생과 그리스도인 청년들은 ‘그리스도인의 사회
적 책임’ 이라는 과제 또한 같은 방법으로 인식하고 행동합니다. 공평과 자비와 평화를 이루어 가
는 것으로...
저는 이들이야말로 정종훈 교수님이 말씀하신 약자들을 돕고 이 사회에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지
는 가장 성경적 원칙의 사회적 책임을 실현하고 있다고 여깁니다. 그리고 하나씩 불공평을 깨고, 빈
익빈 부익부의 악순환을 깨어나가며 승리의 기억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여깁니다.
처음에 제가 한 이야기처럼 제게 요즘 대학생들에게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을 잘 가르치라고 책
망하시는 분들에게 저는 이렇게 대답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함으로 공의와 자비를 세상의 약한 자들에게 보이는 사람을 계속해
서 세워가겠습니다.‘ 라구요. 이것은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삶으로 체험하는 것입니다. 블공평
을 체험하고 불의를 체험하고 약한 자를 괴롭히는 사회구조를 체험하고 안으로부터, 밖으로, 밑에서
부터 위로 변화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4.
저는 그래서 가르치지 않고 그들에게 체험의 기회를 제공하려고 했습니다. 그들 스스로 이루어갈
수 있도록 연대의 장을 마련해 주려고 했습니다. 제각 몸담고 있는 IVF 사회부에서도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만이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주장하지 않습니다. 전도, 제자도, 선교의 균형을 이루어가
고 그 중의 일환으로서 한국사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를 한국인으로 부르신 사명을 잘 감당 하
고자 했습니다.
정치적으로 우파나 좌파에 서게 하지 않습니다. 우파든, 좌파든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이해관계가
아닌 옳다고 여겨지는 일을 할 수 있도록 지지해 줍니다. 국가보안법을 겪어보지 않은 이들에게 국
가보안법 폐지냐 반대냐를 묻는 게 아니라, 이 나라의 역사 속에서 국가보안법이 어떠했고, 과연 성
경적인가 되묻습니다. 미래의 한국사회를 이끌어 갈 이들을 좌로도 우로도 끌고 가지 말고 좌. 우
의 선택보다 더 나은 창의적 대안을 스스로 만들어 가도록 용기를 줍니다.
우루과이 라운드에 무조건 반대하거나 찬성하라고 하는 것이 아닌, 우선은 농촌에 가서 농민들을 만
나게 하고, 동성애자들을 무조건 비난하는 대신, 동성애자들을 만나보게 합니다. 예수님이 내 나라
는 이 땅에 있지 않고 하늘에 있다고 하셨다고 해서 창녀와 세리와 병자들을 내치지 않고 돌보셨듯
이 우리 젊은 주의 청년들에게 민주화와 투쟁과 운동으로 이 땅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수 없다는
사실과 그러나 세상의 약자들에게 하나님의 나라를 보기 위해 예수님이 하셨듯이 그들의 삶으로 들
어가 그들과 함께 하나님의 뜻한 공평과 정의를 세상에 보이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이라
는 소명을 감당하는 방법이라고 말입니다.
5.
IVF 에서는 6개대 사태라는 아픈 과거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를 통해 정치에 참여해서 정치
계를 바꾸는 것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방법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도리어 하나님께 100%
헌신한 하나님의 사람을 이 세상 곳곳에 세우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아픈 상처
가 잘 낫고, 새롭게 3년전에 IVF 사회부를 다시 시작했던 것입니다.
학생들에게 한국사회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자세 또한 균형잡히게 하기 위해서라도 이를
위해 저는 IVF 각 지방회에 사회부 담당 간사가 세워지고, 각 캠퍼스에 사회부 담당자가 세워지도
록 해서 한 학기에 한번은 LGM(대예배)을 통해 한국 사회의 이슈들을 성경적 안목으로 다시 보고 하
나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품는 것을 배워갈 수 있도록 했습니다.
사회 DPM(아침기도회)을 통해 한국사회와 세계를 품고 기도하는 것을 함께 배우고 여름 겨울 사회체
험 기회(농할, 빈활, 통일캠프)를 제공하고, 봄가을로 세계관 학교, 사회문화 학교 등을 통해 그리
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자세와 성경적 관점을 교육했습니다.
앞으로도 사회부는 이런 다양한 교육과 체험의 장을 마련해 주고, IVFer들 개개인의 삶에 한국사회
로 부름받은 그리스도인이라는 자세를 바로잡히게 하는데 집중할 것입니다. 씨를 뿌리고 물을 줄
뿐, 하나님의 나라를 이룰 이들은 이 젊은 청년들이기 때문입니다. 이 한국사회를 살아 간 그리스도
인 선배들은 마땅히 이 젊은 청년들이 자기를 각자에게 심기워진 복음의 씨앗이 잘 발현되고, 그들
의 잠재력을 뚫고 나와 실컷 하나님이 나라를 펼칠 수 있도록 장을 마련해두고 기다려야 할 것입니
다.그들을 믿고 존중해 주면서...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