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호 두뭇개 근처 절경지에 자리한 쌍호정(雙虎亭) 터이다.
쌍호정은 효명세자 익종의 비 조대비가 태여난 곳이다.
서울 성동구 옥수동 옥정초등학교뒤 삼성아파트 109동 3-4 호 앞에 쌍호정터의 표석만 남아있다.
세도정치의 핵심에 올랐던 조대비가 죽은 후 올린 지문(誌文)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왕후는 순조 무진년(1808년) 12월6일 정유일(程猶日)에
두모포 쌍호정 (雙虎亭)의 자기 집에서 출생하였다.
이에 앞서 증조 할머니 홍부인(洪夫人)이 굼에 신령스러운 사람이 나타나서
이상한 호랑이에 대하여 말한적이 있었는데 출생하고보니 과연 그 말이 맞아
상서로운 빛이 방을 둘러싸 새벽녘과 같이 밝으니 집안 사람들이 이상하게 여겼다.
조대비 가 출생하기 이전에 이미 정자가 있었고
그 이름은 호랑이 호(虎)자가 아니라 호수 호(湖)자를 써서 쌍호정이라 불렀다."
조대비의 생가 옛 모습이다.
순조 8년(1808년) 12월 6일 조대비가 이 곳에서 출생하였다.
그가 출생하던 날 밤에 두 마리의 호랑이가 정자 앞에 와 있었기 때문에
그로 인하여 쌍호정이라 하였다.
조대비 생가 동쪽에 울창한 노송들이 있었다고 전한다.
그 옆에 있었던 조그마한 정자가 쌍호정이다.
조대비는 효명세자 익종의 비이다.
헌종의 어머니로서 풍은부원군 조만영의 딸이다.
12세 때 효명세자의 비로 책봉되어 세자빈이 되었고 효부라는 칭찬을 들었다.
1827년 순조 27년에 헌종을 낳았다.
1834년 헌종이 왕위에 오르고 죽은 남편이 익종에 추존되자 왕대비에 봉해졌다.
이 때부터 풍양 조씨 일문이 정부의 요직을 차지하면서 세도를 이루게 된다.
1857년 순조비인 순원왕후가 죽자 대왕대비가 되었다.
철종이 재위 13년 만에 후사 없이 죽자 왕실의 권한을 쥐게 되었다.
이 때 조대비는 전부터 안동 김씨의 세도 정권을 못마땅해 하던 흥선군 이하응,
조카 조성하와 손을 잡고 흥선군의 둘째 아들 명복으로 왕위를 잇게 한다.
1866년 2월까지 수렴청정을 하였으나 실제 정권은 모두 흥선대원군이 잡도록 하교하 고 있었다.
그 후 조대비가 대거 기용한 친정 세력들이 잇따른 정변에 희생되어 조씨 가문이 쇠락해지자
그것을 슬 퍼하였으며 나라가 재난에 시달리자 자신이 죽지 않는 것을 한탄하였다고 한다.
1890년 83세를 일기로 세상을 떴다 능호는 수릉으로 경기도 구리시 인창동에 있다.
풍양 조씨는 헌종의 모후 조대비의 일문으로서 조대비의 부친인 조만영이 그 거두이다.
조만영은 어영 대장 훈련대장 등을 역임하면서 헌종을 보호하는 한편
그의 동생 조인영과 조카 조병헌 아들 조병구 등을 요직에 앉혀 세도를 확립한다.
그 후 5, 6년 동안 풍양 조씨 일문이 현달하더니 일문의 내부 알력과
1846년 조만영의 죽음 을 계기로 정권은 다시 안동 김씨 일문으로 넘어간다.
한강을 내려다 보이는 절경을 자랑하던 두뭇개이다.
조선시대 때에는 권세가들이 앞 다투어 정자를 지어놓고 풍류를 즐기던 곳이였다.
강변 경관이 아름다운 것으로는 소문이 나서 유하정(流霞亭), 황화정(皇華亭) 등
궁실은 물론 김안로의 보안당(保安堂) 정유길의 몽뢰정 (夢賚亭)
조선조 말 조대비가 태어난 쌍호정(雙虎亭) 등 개인 별장도 많았던 고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