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방의 서문 4
巖谷栽松은 後人標榜이요 钁頭斸地하니 幾被活埋로다
암곡재송 후인표방 곽두촉지 기피활매
임제스님이 험한 골짜기에 소나무를 심은 것은 후인들에게 본보기를 보이기 위한 것이요,
또 괭이로 땅을 팠으니 황벽스님은 거의 산채로 생매장 당할 뻔했다.
강의 ; 이 소나무는 마치 내 방 옆에 있는 소나무를 연상케 한다. 나는 그 소나무를 보고 늘 그렇게 생각하고 남들에게도 그렇게 말한다.
이 이야기는 임제스님이 소나무를 심을 때 황벽스님이 물었다.
“깊은 산에 이렇게 많이 심어서 무엇을 하려는가?”
“첫째는 산의 경치를 아름답게 하자는 것이고, 둘째는 후인들에게 본보기를 보이기 위함입니다.”하고는 괭이로 땅을 세 번 쳤다. 황벽스님이 말하기를, “비록 그런대로 괜찮기는 하나 자네는 이미 나에게 30방망이를 얻어맞은 꼴이다.”
임제스님이 다시 괭이로 땅을 세 번 치면서 “허 허”라는 소리를 냈다.
황벽스님이 “나의 종풍(宗風)이 너의 대에 가서 세상에 크게 일어날 것이다.”라고 하였다.
물론 소나무를 심은 것이 후인들의 본보기가 된다는 뜻은 아닐 것이다. 그러면 여기서 후인들의 본보기가 될 소나무를 심은 진정한 뜻은 무엇일까? 그것은 곧 임제스님의 불교인 것이다. 온갖 지엽은 다 떨어지고 몸뚱이만 드러내 보인 부처님과 조사들의 그 마음, 그 불교인 것이다. 오늘날 같이 불교에 거품과 방편설이 난무하고 있는 이즈음에 지엽과 가식이 전혀 없는 졸가리뿐인 이 올곧은 불교가 만고에 후인들의 본보기가 되리라는 것이리라. 임제스님의 그 깊은 은혜에 뜨거운 가슴으로 감사를 느낀다.
임제스님이 대중들과 함께 밭을 매는 운력(運力)을 하다가 황벽스님이 오는 것을 보고는 괭이를 짚고 서 있었다. 황벽스님이 다가와서 말하기를,
“이 녀석이 피곤한가?”
“괭이도 아직 들지 않았는데 피곤할리가요.” 그러자,
황벽스님이 몽둥이로 곧바로 한 대를 때리니 임제스님이 그 몽둥이를 붙잡아서 던져버리고 황벽스님을 넘어뜨렸다. 황벽스님이 유나를 불러 “유나스님, 나 좀 일으켜다오.”
유나스님이 가까이 와서 황벽스님을 일으키면서 “스님, 이 미친놈의 무례한 짓을 왜 용서하십니까?”라고 하였다. 그랬더니 황벽스님은 막 일어나자마자 도리어 유나를 때렸다. 그 때 임제스님이 땅을 파면서 “제방에서는 사람이 죽으면 대개 화장을 하지만 나는 여기서 산채로 매장을 한다.”라고 하였다. 크게 죽은 뒤 다시 살아나는 큰 생명을 보였다.
법을 거량(擧揚)하는 일도 이쯤 되면 누구나 혀를 내두르게 마련이다. 유나스님은 미친놈의 무례한 짓이라고 하였다. 하지만 누가 그 높은 뜻을 알랴. 황벽과 임제만이 느끼며 주고받는 진검싸움인 것이다. 불꽃을 튀기고 천둥이 치며 폭우가 쏟아지는 상황이다. 하늘이 흔들리고 땅이 진동하며, 산이 무너지고 바다가 뒤엎어지는 일이다. 천(千)이면 천, 만(萬)이면 만이 산채로 매장당할 상황이다.
첫댓글 임제록을 읽다 보면 무비스님의 시원시원하신 법문과 합치되는 부분에 감동을 또 감동입니다.
청비님 아마 무비스님은 미소가 아닐까요? 부처님은 염화미소 무비스님은 그것마져없는 미소 자체일것 같애요...
훌륭하십니다. 훌륭하십니다. 진정 감사히 알아들었습니다.
산꼭대기에 올라가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경지를 유나스님은 모르신 것이지요.
읽고, 또 읽고 익혀 알겠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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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갖 지엽은 다 떨어지고 몸뚱이만 드러내 보인 부처님과 조사들의 그 마음..높은 뜻에 진심으로 합장합니다._()()()_
소나무 덕분으로 이 시대에 큰 스승님을 만나 가르침을 받는 영광을 누리수 있나 봅니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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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제스님과 무비스님이 같은분인듯한 느낌이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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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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