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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일부터 본지 연재 윤대녕작 「달의 지평선」 이렇게 꾸며진다
◎세기말 불안한 인간존재 탐색/“거대한 문명충돌로 인류 엄청난 변화직면”/신화적 이미지 결합/「사랑의 원형질」 천착도
본지에 8일부터 연재될 윤대녕씨(35)의 소설 「달의 지평선」은 작가 개인은 물론 세기말 한국문학사에 독특한 자취를 남길 역작으로 기대된다. 그만큼 작가의 각오는 대단하다. 세기말은 이제 코앞에서 서슴없이 흘러가고 있고 그 끝은 우렁찬 초침소리를 내며 다가오고 있는데 안타깝게도 우리 문학작품에는 인류의 존재양식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작금의 세기말에 대한 심각한 숙고가 없다는 아쉬움에서 윤씨의 이번 소설은 잉태 되었다.
일식이 진행되던 날 「나」는 그 여자와 헤어지고 한 남자에게 불려간다. 이 남자는 80년대 초반을 아주 힘겹게 겪은 약간은 신비적인 인물이다. 나는 이 남자가 소개시켜준 여자에게 이야기를 들려주고 그 여자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대가로 돈을 받는다. 나중에는 이 여성 또한 듣기만 하는 아르바이트에서 탈피,적극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나」에게 들려주기 시작한다. 나의 관심이 주변으로 확대되기 시작한다.
이 과정을 통해 80년대에 상처받았던 사람들의 존재양식과 세기말에 과연 어떤 삶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가의 문제가 신화적 이미지와 함께 유장하게 흘러나온다. 기울고 차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달」의 이미지는 시대에 따라 변해가는 사랑의 양상에 대한 은유이다. 세기말에 관한 담론은 사랑의 원형질에 대한 천착과 함께 진행된다.
『이번 소설은 나에게 정말 중요하다. 이 소설을 쓰는 동안에는 다른 모든 작업을 일체 중단할 것이다. 지난해부터 세기말에 대한 생각이 나를 지배하기 시작했다. 거대한 문명충돌이 야기될 이 시대에 사람들은 자기 존재의 본질을 못 찾고 불안하게 세기말을 맞고 있는 것 같다. 과연 우리의 존재양식은 무엇이고 어떤 삶들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가에 대한 불안한 꿈꾸기가 될 것이다』
충남 예산 출생으로 단국대 불문과를 나온 윤씨는 8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원」이, 90년 월간 「문학사상」 신인상에 단편 「어머니의 숲」이 당선되면서 문단에 나왔다. 그는 첫 창작집 「은어 낚시통신」을 펴내며 존재의 시원에 대한 천착을 통해 우수와 허무가 짙게 깔린 독특한 문학적 성취를 이루며 평단의 강력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장편 「옛날영화를 보러 갔다」 「추억의 아주 먼 곳」, 두번째 창작집 「남쪽 계단을 보라」 등을 펴내며 명실공히 90년대적 감수성의 상징적인 작가로 공인받기에 이르렀다. 그가 주로 40대 이상의 중견작가에게만 주어지던 국내 최고 권위의 「이상문학상」을 지난해 수상한 것은 이러한 사실의 반증이다.
윤씨의 작품세계는 「경계에 선 인간들의 불안한 존재의식」에 대한 탐색이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이승과 저승,현실과 환상,사랑과 이별의 경계. 그는 이 경계선 위에서 어느 쪽에도 뿌리를 내리지 못한 채 남루한 현실쪽에 마음이 쏠리기보다는 「텅 빈 유리항아리」속 같은 영혼의 순수한 시원쪽을 그리워했고 그 그리움을 유리알같은 소설로 토로해 왔다. 그러나 필연적으로 현실에 발을 딛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들의 질척거리는 삶을 소설에 담아내야 한다는 부담감 또한 무시할 수 없었고,실제로 이제 그는 서서히 경계를 허물고 양쪽의 세계를 통합해내는 과정으로 걸어나오고 있다. 그러기에 이 행보를 본격적으로 보여줄 이번 연재소설은 각별한 주목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윤씨는 『지금까지 스스로 부족하다고 느꼈던 사람 냄새나 서사가 새로운 양상으로 시도될 것』이라며 『다양하게 등장할 인물들의 고유한 캐릭터가 단편에서 구사했던 문체의 긴장감을 잃지 않고 어떻게 전체적인 일관성을 유지하며 살아나게 할 것인지가 관건』이라고 말한다.
<세계일보 조용호 기자, 97/4/1>
세기말 사랑 절묘한 접근
-- 달의 지평선, 연재에 즈음하여
◎본지연재 「달의…」 내일 200회/섬세한 문체뛰어난 문학성/말초적 묘사로 일관하는/로마서 옛아내와 해후 주목
『이미 지나간 사랑은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마음의 유곽. 쓸쓸함과 어두움이 해일처럼 밀 려드는 밤이면, 가끔 동물원의 여우들이 모여 우는 그런 밤이 오면, 폐쇄된 염전의 소금창고 같은 그곳에 들어가 남은 소금을 퍼먹고 나오는 유곽…』
세기말의 사랑과 시대의 상처를 감각적이고 섬세한 문체의 조각칼로 음각하듯 써내려가는 「달의 지평선」에 나오는 이야기다. 일찍 이 뛰어난 문학성과 흥미를 동반하며 시종 긴장감을 잃지 않고 전개된 신문 연재소설은 그리 많지 않았다. 신문 연재란 대체로 말초적인 관심 과 활극이나 음모로 한회 한회 승부를 거는 장르로 인식돼 온 것이 사 실. 오는 26일자로 2백회를 맞는 본지 연재소설 「달의 지평선」은 그러나 이러한 고정관념을 일거에 뛰어넘어 90년대 문단의 소중한 수확 까지 넘보고 있다.
그동안 달의 지평선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났는가.
80년대의 상처를 색다르게 간직한 주인공 남창우. 그는 6.29를 전후로 감옥에 들어간 친구 철하의 애인 은빈과 시대의 쓸쓸함과 막막 함을 교류하다 은빈의 저돌적인 구애로 주위의 비난을 무릅쓰고 결혼하지 만 채 5년을 넘기지 못하고 이혼을 한다. 일년에 서너편의 그림을 그 리는 선병질적인 그 화가 아내는 로마로 떠난다. 쓰라린 상처의 공간에 「주미」라는 여인이 나타난다. 주미는 어머니가 제주도 우도의 한 우 물에 몸을 던졌다가 용케 마을 사람들이 알고 건져올린 날 난산 끝에 태어난 돼지띠의 여자. 그녀와 제주도에 갔던 날 주미는 말한다.
『 저 섬엔 아주 오래된 우물이 하나 있어요. 새벽이 되면 달이 들어와 잠자는 우물 말예요. 그러고 밤엔 다시 하늘로 올라가죠』
자신의 삶 이 비롯된 곳이면서 동시에 원초적인 상실의 장소를 운명처럼 업고 태어 난 그 여인은 다른 사내 사이를 오가다 결국 주인공을,일식이 진행되던 날 떠나간다.
이 소설의 전반부에 해당하는 지금까지의 줄거리는 주 미와의 관계를 풀어내는 데 많은 부분을 할애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나수연이라는,90년대 라이프 스타일을 상징하는 여자를 통해 전개된다. 나수연은 1년이면 3개월을 외국의 낯선 거리를 방황하다 들어오는 여 자. 페낭의 비오는 거리에서, 노르웨이의 바닷가에서 주인공에게 엽서를 보내오다 꽃박람회에서 만난다. 나수연은 주인공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주인공과 일반적인 남녀관계를 떠난 독특한 연인관계 를 형성한다.
주미는 신혼여행을 다녀온 뒤 잠적하고 그 남편은 상처 를 못이겨 자살한다. 주미의 어머니가 딸의 애인을 만나 불쑥 던진 말 . 『보름이면 우린 달의 우물 속에 몰래 들어가 있었는데,그쵸?』 신 비로운 그 여인은 시종 주인공과 딸을 원격조정하는 혐의를 벗을 수 없 다. 영원한 시간의 원초적 공간으로부터 떠나온 지상의 인물들이 던지는 질문들은 이제 다 마련됐다. 주미의 그림자와 나수연의 질긴 인연이 따라다니는 파리로 떠난 주인공이 로마에 있는 80년대의 상처,이혼한 아내와 다시 이야기를 전개하며 질문에 대한 답을 펼치는 후반부가 독자 들을 기다린다.
30대 초반의 연륜에 일약 대한민국 최고의 문학상으 로 거론되는 「이상문학상」을 수상한 작가의 「달의 지평선」. 그 작가 윤대녕(35)은 말한다.
『달의 지평선은 지금까지 써 온 제 소설 인생 중 가장 비장한 고갯마루입니다』
<세계일보 조용호 기자, 97/11/25>
윤대녕 새 장편 ‘달의 지평선’
◎“90년대 ‘찌든 때’ 벗겨내고 싶었다”/자본주의 와류속에 젊은날의 사랑·상처/이제는 화해의 시간
20세기가 끝나기 전,오늘의 작가들은 무엇을 더 써야 할 것인가.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수상작가인 윤대녕씨(35)의 장편 ‘달의 지평선’(전2권·해냄)은 그런 질문지를 받아들고 해답을 풀어간다.소설은 80년대에서 시작돼 98년 여름까지 10년간의 시공을 관통한다.90년대란 결국 80년대가 낳은 자식이라는 것.
“80년대는 저에게 어떤 빚의 모습으로 남아있었던 가 봅니다.그때는 정면으로 그 시대를 바라보지 못했는데 90년대라는 자본주의의 끝에 당도해보니 이제서야 그 얼굴이 얼핏 보이는 것도 같아요” 그는 소설의 주인공을 탤런트로 설정했다.90년대 정서를 담을 수 있는 배역이라는 점때문.
“그런 직업이어야만 자본주의의 시뮬레이션인 90년대를 상징할 수 있다고 보았지요.오늘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마음에 오염된 검댕이 같은 것을 한꺼풀 벗겨내고 싶었습니다.그것은 80년대부터 시작된 검댕이입니다”
주인공 남창우는 87년 6·29때 데모하다 감옥에 들어간 친구의 애인과 결혼하나 주위의 비난에 못이겨 이혼하고 만다.이때 나타난 여자 주미 역시 창우와 4년을 사귀지만 결국 옛 애인에게 돌아간다.
그들은 진정으로 누구를 사랑하지도,누구와 화해하지도 못하는 자아 속에 갇혀 있다.
작가는 아마도 오래전부터 화해되지 않고 있는 것과 지금 화해하지 않는다면 앞으로 한발짝도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그래서 소설은 90년대를 낳은 아버지로서의 80년대의 고민을 담고 있다.소설에서 내내 사라지지 않는 ‘달’의 은유는 지나가는 자의 초상의 이미지로 쓰인다.등장인물들은 차가운 달빛을 받아야만 비로소 씻어지는 상처받은 영혼의 소유자인 셈.
작가는 의도적으로 소설 속 인물들에 대한 서사적 진술을 통해 우리가 관통해온 시대를 이야기하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리를 예리하게 분석한다.윤씨는 글을 쓴 2년반 동안 파리 이탈리아 제주 속초 하동 순천 등지를 돌아다녔다.
“여행을 통해 침묵하는 법을 배웠습니다.누구나 앞에는 다리가 놓여 있죠.저는 그것을 생의 교각이라고 생각했습니다.건너야 하는 다리죠.시대의 시스템이라는 다리를 한 개인이 어떤 과정을 거쳐 건너게 되는가를 스스로에게 묻고 싶었어요.시대의 다리를 건넌 자들은 바로 우리들 자신입니다”
저기 생의 다리를 건너는 자에게 물어보라.당신은 상처받지 않았느냐고.윤씨는 바로 우리들의 몸에 난 상처에 대해 언급하고 있다.
작가는 21세기로 진입하기 전 풀어야 했던 하나의 과제를 벗어버린 홀가분한 표정을 지었다.“그러나 90년대나 80년대나 또는 21세기에 진입하더라도 주제는 언제나 인간이어야 하겠죠”
<국민일보 정철훈 chjung@kukminilbo.co.kr, 1998.10.20>
[윤대녕] 달의 지평선 : 80-90년대 질곡의 세월 살아간 젊은 영혼들의 밑바닥을 응시
"2년 6개월간 다른 모든 작업을 중단한 채 이 남루한 소설을 들고 밤낮의 여로를 헤맸습니다. 이번 소설은 한 편의 긴 여행 기록이기도 합니다."
발군의 소설미학으로 90년대적 감수성을 대변하는 젊은 작가 윤대녕(36)이 신작 장편소설 '달의 지평선'(해냄간)을 냈다. 이미 '은어낚시 통신'에서 뚜렷한 자의식으로 인간 존재의 밑바닥을 향해 파고들었던 윤대녕은 '달의 지평선'에서 삶과 영혼의 문제를 더 세밀하게 탐구한다.
윤대녕은 "이 소설은 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살아온 불특정 다수에 해당하는 한 개인과 그 주변의 이야기"라고 했다. 한때 운동권에 있었던 청년 창우를 중심으로 그와 결혼했다가 헤어진 운동권 여인 은빈, 친구와 애인의 결혼 소식을 감옥에서 들어야 했던 은빈의 옛 남자 철하 등 주변 인물들 사이에 80년대 중-후반부터 98년 여름까지 약 10여년간 일어나는 이야기다. 얼핏 통속적으로 보이는 구도지만 윤대녕은 왜곡된 시대 상황속 젊은이들의 허물어져가는 몸짓, 정신적 상흔들, 그리고 80년대를 지나 90년대를 살아가는 그들의 마음 깊은 곳을 응시한다. 그의 소설은 오늘의 시점에서 돌아보는 80년대의 질곡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윤대녕은 후일담 소설들이 흔히 빠지기 쉬운 게으른 변명에서 벗어나 삶이라는 형식의 이면을 자의식을 갖고 드러낸다. 기울고 차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달'의 이미지를 시대에 따라 변해가는 사랑의 양상에 관한 은유로 구사하며, 작품 전체에 신화적 상상력을 이어가는 데서 윤대녕 소설의 미덕이 다시 확인된다. 잿빛 톤 속에 시대의 경계, 세기의 마지막에 선 독자들의 불안한 내면과 공명한다.
윤대녕은 "나는 시대와 존재의 시스템이 어떻게 갈등하고 화해에 이를 수 있는가를 묻고 싶었다"며 "내 소박한 결론은 우리가 지금 딛고 있는 땅에서 더 큰 대지와 집을 찾아내고 각자 자신들 안에서 순결한 존재를 다시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1998.10.14, 조선일보 김명환기자 >
윤대녕씨 장편 "달의 지평선" 펴내
90년대 감수성의 상징적 작가로 꼽히는 윤대녕씨(36)가 ‘추억의 아주 먼 곳’에 이어 2년 6개월 만에 새 장편소설 ‘달의 지평선’(전2권,해냄)을 내 놓았다.
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살아온 불특정 다수에 해당하는 한 개인의 세기말 적인 사랑과 시대의 상처를 그린 작품.10년의 기간을 시간배경으로 한 이 소 설은 한편의 긴 여행기록으로,시대의 경계에 선 인간들의 불안한 존재의식을 더듬는다. 이를 위해 작가는 80년대 상처에 대한 90년대식 문답풀이라는 소설적 장치를 동원한다.
주인공은 80년대의 상처를 간직하고 있는 남창우. 그는 87년 6.29선언 뒤 감옥에 간 친구의 애인과 결혼하나 이내 이혼한다. 새로운 여자를 사랑하게 되지만 그녀 역시 곁을 떠난다. 이같은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그는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가 파탄에 이른 원인을 자기 안에서 발견한다. 그리고 자신 뿐 아니라 타인의 삶에도 관심을 갖게 된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9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가 차라리 상처 투성이의 80년대로 돌아가 순결한 사랑과 참된 인간성을 회복할 것을 당부한다.
기울고 차면서 끊임없이 변화하는 달의 영휴(盈虧) 이미지는 시대에 따라 바뀌는 사랑의 양상에 관한 은유.소설 제목 ‘달의 지평선’은 바로 이를 시사하는 것이다.
(대한매일 98.10)
소설가 윤대녕 장편 '달의 지평선' 내놔
뛰어난 감수성의 90년대 작가로 ‘이상문학상’(96년)과 ‘현대문학상’(98년)을 수상한 尹大寧(윤대녕.36)씨가 한 시대가 각 개인에게 남기는 상처와 내출혈을 그린 장편소설 ‘달의 지평선’(전2권·해냄)을 펴냈다.
달은 기울고 차면서 끊임없이 변하고, 이는 이 작품에서 시대에 따라 변하는 사랑의 양상을 은유한다. 그러나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한 시대가 남긴 상처 또는 그 얼룩이다.
이 작품은 작가의 말대로 한편의 긴 여행기록, 87년 ‘6.29선언’이 나온 무렵부터 98년 여름까지 10여년동안 한 남자가 겪어야 했던 상처에 대한 보고서이다.
탤런트인 주인공 남창우는 두 여자로부터 버림받는다. 첫번째 여자는 아내. 그는 87년 시위를 하다 감옥에 들어간 친구의 애인과 결혼한다. 그러나 주위의 비난을 못견뎌 이혼하고, 주미와 4년동안 사귀게 되지만 그녀 역시 옛 애인에게 돌아가버린다. 이로 인해 남창우는 주위 사람들과의 관계에 실패했던 이유를 자기 안에서 발견하게 되는데, 차차 타인의 삶과 고통에 대해 눈을 돌리기 시작한다.
여기서 작가는 “상처없는 인간은 없으며, 삶은 저마다 내출혈을 견디며 새로운 사랑과 인연을 만들어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90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차라리 80년대 상처투성이의 가슴으로 되돌아가 순결한 사랑과 참된 인간성을 회복할 것을 당부한다.
(1998.10, 문화일보 吳廷國기자)
신작장편 '달의 지평선'펴낸 윤대녕씨 - '사랑의 상처'와 80.90년대의 화해
뛰어난 감수성과 문체로 90년대 소설미학을 대표해온 작가 윤대녕씨(36.사진)가 신작 장편소설 「달의 지평선」(전 2권, 해냄)을 내놨다.
『 지난 2년6개월간 오로지 이 남루한 소설에 매달렸죠. 한 시대가 끝나기 전에 정리하고 싶었던 얘기였어요. 막상 책으로 엮고 나니까 멍한 느낌입니다. 아무것도 손에 잡히지 않고 자꾸 술만 마시게 됩니다』
가을비에 젖은 저녁 도시에서 마신 술 때문에 감기를 얻게 됐다는 그는 『 일정한 주기로 차고 기우는 달의 시간적 의미와 아득하면서도 신비스런 지평선의 이미지를 결합한 제목』이라고 설명했다.
이 소설은 90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심연을 정직하게 들여다보면서 천박한 자본주의가 극에 달한 90년대는 군부독재하의 80년대가 낳은 자식임을 얘기한다. 운동권 출신의 탤런트 남창우와 그와 결혼했다가 헤어진 운동권 출신 여인 은빈. 그리고 은빈이 사귀었던 학내 총학의 주동인물이었던 옛남자 철하. 여기에 남창우의 주변의 여인 서주미와 나수연.
이들 주인공들은 10년 세월을 오가면서 씨줄과 날줄로 교직(交織)된 상처를 주고 받는다. 주인공 남창우는 지난 10년의 삶이 실패로 돌아가는 이유를 자기 안에서 발견하고 차츰 타인의 삶과 고통을 깨닫게 된다는 이야기다. 결국 그는 은빈과의 재결합을 통해 80년대의 순수를 응시한다.
윤대녕씨는 자칫 통속적일 수 있는 이야기를 감각적이고도 섬세한 문체와 뛰어난 은유와 상징을 동원하여 세기말의 음울한 사랑얘기로 엮어내고 있다. 그는 『 80년대와 90년대에 걸쳐 살아온 불특정 다수에 해당하는 한 개인과 주변의 얘기를 통해 한 개인이 존재하는 방식에 대해 묻고 싶었다』고 말한다. 벼랑 끝에 선듯한 세기말의 불안 속에서 우리가 정녕 찾아내야할 것은 자신들 안에 숨쉬는 순결한 존재임을 강조하고 있다.
문학평론가 황현산씨는 『 90년대 들어서 우리 소설은 현실인식의 고의적 왜곡이나 포기 때문에 실패했다』고 전제하면서 『 현실의 표층에서 노략질하기를 그치고 자기 언어를 얻지 못한 것들의 심층으로부터 타자적 현실의 발생을 시도하는 윤대녕의 소설은 이 시대 문학을 향한 가장 유효한 발언』이라고 말한다.
윤대녕은 소설을 쓰는 동안 많이도 떠돌았다. 여름날 파리, 이탈리아, 혹은 유럽의 다른 나라들. 제주도와 속초, 하동과 순천을 넘나들면서 이 소설을 썼다. 소설 속에는 그가 거쳤던 땅의 체취가 가득하다. 소설 속의 주인공들은 제주도의 모슬포나, 파리의 어느 거리에 가 있기도 한다. 무주의 설천(雪川)이나 열대지방의 해변에서도 그들을 만날 수 있다.
그는 앞으로 중.단편에 주력하겠다고 말한다. 창작집 「은어낚시통신」 등에서 만났던 소설미학을 다시 만날 수 있을 듯하다. 그 시기를 『 2,000년쯤』이라고 말했을때의 아득함. 그러한 느낌이야말로 윤대녕 소설을 기다리는 이유일는지 모른다.
(경향신문 오광수.기자 , 1998년 10월 19일)
본지 연재 윤대녕 소설 「달의 지평선」 단행본 출간
「배반의 80년대」와 화해하는 90년대/시대 격랑 휘말린 나약한 인 간들/갈등 극복하는 사랑용서 그려.
이른바 「90년대 작가」의 대명 사로 불려 온 윤대녕씨(36)가 그의 작단 이력에 각별히 주목받을 만 한 새로운 탑 하나를 쌓았다. 97년 4월부터 世界日報에 1년여에 걸 쳐 연재된 이 작품 「달의 지평선」은 조화가 잘 안될 성싶은 80년대 와 90년대를 가마솥에 같이 넣고 오랫동안 달인 끝에 산출된 것으로, 최근 단행본(전2권·해냄출판사)으로 출간돼 독자들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달의 지평선」은 크게 말하자면 시대와 개인의 운명 속에서 배태된 사랑의 갈등이 화해와 용서에 이르는 지난한 역정이다. 서로 엇갈리는 운명 속에서 상처받은 이들이 서로에 대해 용서해주기를 갈구하 는 작가의 간절한 소망이 이 소설에는 배어 있다. 사람에 대해 용서하 지 않는 한 삶을 계속할 수 없다는 한 작중인물의 대사는 울림이 크다 . 복수의 감정과 한으로 점철된 채 일생을 맺을 수도 있겠지만,그 경 우 온전한 삶은 아니기 때문이다.
주인공 남창우는 일식이 진행되는 날 한 여자와 헤어진다. 그 여자 주미는 다른 남자와 사귀면서 남창우 와 동시에 사랑놀음을 벌인 여자인데,기실 그녀는 자신의 어머니의 「복 수」를 위한 도구로 활용된 피해자에 가깝다. 주미의 어머니는 우도에 낚시하러 온 남자와 몸을 섞은 뒤 사생아를 낳는다. 만삭이 된 몸으로 우물에 뛰어들어 자살하려 했지만 겨우 마을사람들에 의해 생명을 건진 뒤 낳은 아이가 바로 주미라는 여자였던 것. 주미의 어머니는 자신을 버리고 사라져버린 낚시꾼의 체취를 남창우에게서 발견하고 자신의 딸을 접근시켜 집요한 복수를 시도한다. 남창우와 주미의 모친이 맺은 기묘 한 사랑과 복수.
남창우는 주미와 만나기 2년 전쯤 아내 은빈과 이 혼했다. 은빈은 80년대에 만난 여인으로 감옥에 가 있는 친구의 애인 이었다. 어쨌든 그들은 시대의 상처를 운명처럼 껴안은 채 결합을 했지 만 그들은 결국 시대와 사랑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남창우에게 은빈과의 이별은 소설 전편을 관통하는 가장 큰 상처다. 남창우와 은빈 의 상처와 이별.
80년대에 정보과 형사로 근무하면서 학생운동으로 끌려온 이들에게 모진 고문을 가했던 강익수라는 남자. 바로 이 남자에 게서는 아니지만 취조실에서 성고문을 비롯해 형언하기 어려운 다양한 폭 력에 시달린 끝에 정신병원 신세까지 져야 했던 김혜정. 세월이 흐른 뒤 강익수는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용서를 받지 않고서는 불가능하다는 깨달음 끝에 김혜정을 찾아와 다짜고짜 용서를 구걸한다. 그러나 김혜정 은 그럴 수 없었다. 사람을 믿을 수 없는 파탄상태의 정서로는 자신이 더 이상 살 수 없음을 깨달은 김혜정은 강익수를 용서하기 위해,그 용서가 가능할 수있도록 자신에게 매달린다. 강익수와 김혜정의 화해하기 힘드는,시대가 만들어낸 먼 거리.
맑고 아름다운 감수성으로 시대와 사람 사이를 유랑하는 여자 나수연. 그녀는 작가가 90년대적 인물의 전형으로 내세우는 인물이거니와 남창우의 주변을 맴돌면서 등장인물들의 생채기에 따뜻한 기운을 주입한다. 그녀는 남창우의 정신적 소통의 한 창구로 등장한다. 그녀는 80년대와 90년대를 이어주는 한 접점이었 다.
윤대녕은 80년대의 상처와 사랑의 상징으로 내세운 이혼한 아내 은빈과의 재회를 향해 소설 말미를 몰아간다. 그리고 끝내는 어렵게 그 화해의 실마리를 찾는 데 성공한다. 달의 지평선을 건너가는 소설 속의 인물들은 사람에 대한 믿음을 회복하지 않고서는 삶을 계속할 수 없었다. 작가 윤대녕은 「퇴락한 가을날의 저녁빛」 속에서 이렇게 말한 다.
『우리가 지금 딛고 선 땅에서 더 큰 대지와 집을 찾아내고 각 자 자신들 안에서 순결한 존재를 다시 발견해내야 한다. 한 편의 긴 여행은 이제 끝났다. 이제부터 무엇을 할 것인가. 또 어디로 갈 것인 가』
〈1998. 10. 20 / 세계일보 曺龍鎬 기자〉
윤대녕씨 새 장편 '달의 지평선'-- 구원받으려면 끌어안으세요
90년대적 감수성을 대표하는 작가 윤대녕(36)씨가 새 장편소설 (달의 지평선)(전2권, 해냄)을 출간했다.
윤씨의 소설은 남자 주인공 '나'와 그 상대역인 여자(들) 사이의 만남과 헤어짐을 서사의 뼈대로 삼는다. 그의 남녀 주인공들은 한결같이 모종의 상처를 안고 있으며, 만남과 헤어짐은 흔히 상처의 원인이자 동시에 그 상처를 치유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존재의 시원으로의 회귀'라는, 그의 소설에 붙여지는 수사는 상처가 말끔히 가라앉아 새롭게 출발할 수 있게 된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달의 지평선) 역시 이같은 기본 틀에서 크게 벗어난 작품은 아니다. 소설은 30대 중반의 텔레비전 연기자 남창우의 일인칭 주인공 시점으로 진행되며, 최소한 세 명의 여자가 위성처럼 그의 주위를 맴돈다. 이혼한 부인 은빈, 그 뒤에 만나 사랑하다가 헤어진 주미, 그리고 또 다른 여자 수연이 그들이다. 은빈은 창우의 대학 시절 친구 철하의 애인이었으나 그 친구가 시국과 관련해 잡혀 들어가 있는 사이에 창우와 결혼한 여자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에는 줄곧 철하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고, 그 무게를 견디지 못한 은빈은 결국 창우를 떠난다.
주미는 은빈을 잃은 상실감에 허덕이던 창우에게 접근해 그의 마음을 빼앗아 놓고는 알 수 없는 이유로 다시금 그를 떠나간다. 그 빈 자리에 수연이 들어선다. 주미와 수연은 여러 모로 대조되는 유형의 여자들이다. 주미가 작지만 통통한 몸집에 육감적인 가슴을 지닌 반면, 수연이 크고 가는 몸매에 납작한 가슴의 소유자라는 외적인 차이만이 아니다. 주미는 자신에게 이미 사귀는 남자가 있다는 사실을 숨기고 창우에게 접근한 반면, 수연은 창우를 차지할 가능성이 없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스스로 처녀막을 찢음으로써 그에게 순정을 바친다. 주미가 창우에게 상처를 입히는 존재라면 수연은 스스로 상처를 입어 창우를 구원하는 인물이다. 주미가 과거의 어둠을 상징하는 데 반해 수연은 미래의 빛을 대리한다. 한 마디로, 주미가 마녀라면 수연은 천사라 할 수 있다.
소설이 진행되면서 주미의 수수께끼는 풀린다. 주미는 제주의 새끼섬인 우도 출신 어머니가 서울서 온 유부남 낚시꾼을 사랑한 결과 낳은 사생아였으며, 주미 어머니는 자신을 배신한 그 남자를 연상시키는 창우에게 의도적으로 주미를 접근시켜 옛 남자에 대한 복수를 대신하게 한 것이다.
주미에게 씌워진 어머니의 저주를 푸는 과정은 창우가 자신의 상처를 씻고 은빈과 재결합하는 과정과 겹친다. 그 과정을 추동하는 것은 사람이란 서로가 서로에게 상처를 주는 존재라는 것, 따라서 스스로를 구원하려면 자기반성을 통한 타자 끌어안기로 나아가야 한다는 깨달음이다.
소설은 결국 주요한 인물 모두의 행복한 뒷얘기로 마감되는데, 이런 결말은 윤대녕답지 않은 것이다. 두 장편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와 (추억의 아주 먼 곳)을 비롯한 앞선 소설들에서 주인공 남자들은 여자들과 좀체 결합하지 못했던 것이다. 수연이라는 밝고 청순한 인물 역시 그의 이전 소설에서 볼 수 없었던 유형이다. 게다가, 비록 김혜정이라는 부차적 인물을 통해서이기는 하지만, 80년대의 시대적 아픔과 정신을 언급한 것 역시 주목할 만한 변화라 할 수 있다.
물론, 이미지와 상징의 정교한 직조, 유려한 문장과 감각적인 비유는 이번 소설에서도 여전하다. (달의 지평선)은 이미지와 서사, 문체와 주제의식, 섬세함과 힘이 합쳐진 새로운 소설의 가능성을 보여 주고 있다.
(98.10.19 , 한겨레신문 최재봉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