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도끼로 노닥노닥 세월을 엮어 저 동굴 어디 메쯤에 모아두었을까, 구석기인이 보고 싶어 그곳에 간다
바람도 나른한 듯 순해져 있는 봄볕 따스한 날, 문득 어디론가 훌쩍 여행이라도 떠나고픈 충동으로 가방 하나 둘러메고 거리를 나섰다. 거리엔 어느새 쌍 겹의 벗 꽃잎 흐드러지게 피어나 눈처럼 떨어져 내리고, 앞산의 진달래 분홍빛 홍조 띄워 어서 오라 손짓한다. 그 유혹에 못 이겨 따라 나서니 앞으로는 용두 산이 가슴을 열어 감싸 안고 뒤로는 학의 날개를 한 송학 산이 포근히 감싸 안은 동네 포전리가 어느새 반겨 맞아준다. 햇살 밝은 양지 땀 밭두렁에 살구꽃 덩달아 반겨주는 동네어귀에 들어서자 농기계에 밀려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농부님의 쟁기질하는 모습이 정겹게 다가온다. “ 어뎌 어뎌, 이랴 워워….” 겨우내 잠자던 어미 소 농부의 재촉에 커다란 눈 끔벅이며 말없이 쟁기를 끌고 씨앗을 뿌리는 아낙의 손길 또한 분주하기만 하다. “이곳은 134가구에 주민 377명이 정답게 살고 있는 아담한 동네지요.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에 의하면 개울가에 밭이 있었으므로 개발 개앗 또는 포전이라 하였으며 자연부락으로는 갈골, 갈밭구렝이, 다리거리, 뒤실 아래 웃개화, 점말, 지장골등의 골이 모여 포전이라는 한 동네를 이루고 있습니다.” 바쁜 일손 멈추시고 잠시 짬을 내주신 올해 38살의 젊으신 조민한 이 장님, 어느새 동네 자랑을 걸쭉하게 늘어 놓으셨다. 마을회관엘 들어서니 개인용 종합 자극 기를 비롯 각종의 운동기구들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연세 드신 어르신들이나 들일에 하루 종일 허리 한 번 펴지 못하고 고단했던 몸을 맛 사지 기구들을 통해 풀어 내고, 체력을 단련하고 편안한 안식을 취할 수 있다니 농촌 생활도 이만하면 할만 하다 싶다. 흔히 요즘은 시골에 젊은 사람이 없다고는 하나 우리 동네엔 그래도 젊은 사람들이 많은 편이란다. 그 동안은 담배, 고추 등을 주로 생산했는데. 올해부터는 농어촌개발사업의 일환으로 젊은 사람들 5명이 한 팀이 되어 농업기술 센터의 지원을 받아 친환경 작목반도 운영하고 있단다. 주력 품목은 콩, 율무, 수수이며 앞으로는 이곳에서 생산하는 농산물을 가공을 해서 완제품으로 판매를 하는 방법으로 더 많은 농가 수입을 올릴 계획도 세우고 있단다. 이미 당뇨와 성인병에 좋다는 서리 태 콩은 속이 파란색이어서 일명 속청이라고도 하는데 매년 없어서 못 팔 정도로 서울사람들에게 인기가 좋아 판로에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그뿐인가, 소와 돼지를 비롯해 양계에 이르기까지 축산업에 종사하시는 분들도 8가구나 될 정도로 농업에서도 선진축산마을을 가꾸어 가고 있단다. 말씀을 듣다 보니 마을 초입의 대형 하우스에 살이 포동포동한 어미 소들이 가득 무리 지어 있던 모습이 리 장님의 말씀을 뒷받침해주고 있었다. 제천에서 주천간 지방도로를 사이로 나뉘어져 있는 마을 안쪽으로 들어서자 연륜을 알 수 없는 한 무리의 노송이 마을의 수호신처럼 지키고 있는 가운데 그림인양 가꾸어 놓은 집들이 정겹게 모여 있다. 이곳은 교통도 편리하고 무엇보다도 공기 맑고 주변 경치가 좋아 외지사람들도 이곳에 터를 잡고 살러 온단다. 그러고 보니 마을 전체에 미풍을 타고 살랑 이는 솔 향이 코끝에 은근하다. 이곳 포전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구석기 시대의 유적지인 점말 동굴이 있는 곳으로 더 유명하다. 늘 시험 때면 단골메뉴로 등장하던 점말 동굴은 1973년 연세대학교 박물관 팀에 의해 발견이 되어 지금은 충청북도 기념물 116호로 지정이 되어있다. 마을 뒤로 산수유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소롯길을 15분 정도 걸어서 올라가니 깎아지른 절벽아래 지금까지 보아왔던 동굴과는 달리, 커다란 모 굴과 여러 개의 가지 굴이 고고하게 자리잡고 있다. 안을 들여다 보니 굴 입구부터 몇 길인지도 알 수 없는 낭떠러지로 이어지는 것이 지금까지의 여타 동굴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다. 이곳에서 홍두깨를 던지면 의림지 저수지로 나온다는 전설이 있다는 리 장님의 설명을 듣고 나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에 동굴의 신비함이 더해진다. 점말 동굴은 연간 1500명 이상이 학술탐사 겸 방문을 하는데 위험 때문에 외부인의 출입을 통제하는데 동네이장님의 승인을 얻어 관람을 할 수 있다. 조명 장치가 없어서 일까, 아직 인간의 발길이 미치지 않은 동굴은 금방이라도 수 천년 전의 구석기인들이 돌도끼라도 들고 나올 듯 괴괴한 느낌마저 들었다. 동굴 천정에 달라붙어 있던 이름 모를 곤충 한 마리가 인기척에 놀라 푸르르 날아 안으로 들어가 버린다. 구석기시대의 유적지하면 자연스레 떠오르던, 우리고장에 있는 동굴을 이제서야 방문하게 되어 기쁨마음에 앞서 미안함에 조금은 부끄러움이 앞섰다. 비록 내부를 확인할 수는 없더라도 우리 고장에 있는 유명한 구석기시대의 동굴이라는 점에서 아이들 손잡고 한번쯤은 찾아가 보는 것도 현장학습으로 적격일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