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
일요일아침 이다. 안개가 자욱하게 내려앉았다. 학교로 가는 길에 자그마한 방죽이 하나 있다. 나는 방죽 둑을 따라 걸었다. 방죽에서 나오는 습기가 가슴으로 느껴졌다.
“오늘은 마음이 젖는구나.”
속으로 무심히 말을 붙여본다. 둑길을 건너 기숙사를 지나서 인문대학을 거쳐 도서관에 이르렀다. 도서관 앞 민주광장도 새벽에 내린 안개비로 촉촉하다. 자판기 커피를 한잔 뽑아서, 안개가 내려서 이슬이 젖은 벤치에 앉았다. 지난주에 있었던 일들이 주마등처럼 지나간다. ‘문화사’시간 그리고 ‘술’ 또 한 번의 ‘격기’ ‘태백산맥’ 마음은 여전히 무거웠지만 스며드는 습기가 흔들리는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다.
도서관엘 갔다. 경상대 도서관은 정사각형의 건물모양으로 무척 안정적이다. 건물의 가운데 부분은 커다란 공간을 주어서 햇빛과 공기가 원활하게 소통 되게 하였다. 이곳을 학생들의 휴식공간으로 사용했다. 남학생들은 거기서 담배를 피기도 했다. 그래도 공간의 공기소통이 잘 되었기 때문에 담배를 피우지 않는 여학생들도 잘 이용하는 휴식공간이다.
나는 열람실에 들러 자리를 두 개 잡아놓고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열람실 4개를 두리번거렸다. 아직 영숙은 오지 않은 것 같다. 혼자 앉아서 책을 읽으려고 하니 책장이 잘 넘어 가지 않는다. 휴게실을 몇 번을 들락거리며 매운 청자담배만 축내고 있었다. 학교식당 밥 한 그릇에 500원 국수 250원 담배 솔 한 갑 500원 내가 피는 청자 한 갑 200원 하루에 담배 한 갑은 비싼 축에 속한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영숙이 왔다. 우리는 밖을 나가 커피를 한잔 하고 도서관 주변을 한 바퀴 돌고 다시 들어와 앉았다. 영숙이 조용히 말한다.
“점심 먹고 오후에 우리 영화 보러 가요”
“뭐하는데?”
“달마가 동쪽으로 가는 까닭은? 제일극장”
진주의 극장은 예매를 하지 않아도 된다. 사람이 많으면 서서 보기도하고 기다렸다가 그 다음 편을 보기도 한다.
제일극장 앞에 도착했다. 사람들이 많이 붐볐다. 극장표는 또 영숙의 몫이었다. 나는 미안했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현실이 그러한걸. 미안하긴 했지만 내색하진 않았다.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다. “달마가 서쪽에서 온 까닭은 무엇 입니까?” 스승이 대답했다. “뜰 앞에 잦나무.” 옛날 조주선사와 제자의 문답이다. 이것은 유명한 화두법문인데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하는 화두도 같은 내용인 것 같다. 아무튼 화두와 관련된 영화임에는 틀림없다. 영화가 시작 되었다.
“심중의 달을 캐어내어 천지 사방을 비추니 그 빛은 온 누리에 그림자 없는 광명으로 채우리라. 그 하나를 통하면 만법을 통하여 막힘이 없고 그 하나를 치면 온 누리에 복음이 울려 퍼지고 그 하나를 알면 온 경계가 송두리째 열리며 낮과 밤이 하나로 완성된 우주를 얻는다. 그 하나는 더할 나위 없이 완전하여 이루지 못함이 없다. 그 하나는 걸림이 없으니 만고에 자유자재하다.”
‘그 하나는 하나님인가 보다!’ 나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여기 홍두께가 있다. 학의 머리에 꼬리는 용이고 사슴 등에 가슴은 도마뱀이다. 성도 이름도 없는 그 하나는 네가 태어나기도 전에 본래 얼굴이고 네 부모가 태어나기도 전에 본래 몸뚱아리다. 이 본래 하나를 얻어 생, 사 일대사를 해결 하거라”
‧‧‧‧‧
“마음달이 물밑에서 차오를 때 나의 주인공은 어디로 가는가?”
‘몰라’ 나는 또 중얼거렸다.
영화는 이와 같은 화두를 던진다. 그리고 수많은 영상과 함께 지루한 시간을 던진다. 관객으로 하여금 질릴 만큼이나, 그러나 생각을 많이 하게 하는 영화임에는 틀림이 없다. 영화의 목적이 그러 했던 것 같다.
우리는 영화를 보고 촉석루 진주성으로 갔다. 한동안 말이 없었다. 영숙이는 영숙이 대로 생각에 깊이 잠긴 듯하다. 한참이 지나서다.
“그 영화 뭐여요?”
“글세, 나도 잘 모르겠는 걸. 너무 잠잠해서 감을 잡기가 그래”
“근데 처음에 그 어린애 있잖아요. 그 애가 산에서 발견한 ‘섞은 새’ 말이에요. 구더기가 막 헤집고 그랬잖아요. 약간 구역질나게. 근데 그걸 카메라가 확대해서 클로즈읍 해 가지고, 무척 중요하게 다루는 것 같았어요.”
“그러게 죽음에 대한 메시지가 아닐까?”
“물론 그렇긴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메시지가 담긴 것 같아요.”
“뭘까?”
“영화가 뭐 쉽게 이해하게 만든 것 같지는 않네요.”
“그러게”
우리는 이렇게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얼마쯤 지났을까. 나는 문득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그 동자와 그 새, 그리고 구더기, 이 셋은 정삼각형 구도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아이와 새 그리고 새를 분해시키는 구더기. 이것은 어쩌면 우리 존재의 모습을 한 장면에 담은 것이다. 우리는 삶을 하나로 통합하여 보기가 힘들다. 시공간적으로 분리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은 존재를 설명하는 도구일 뿐 사실은 존재는 아니다. 그러므로 시간을 빼버리면 삶도, 죽음도, 사라짐도 모두가 한 모습일 뿐인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이 질문은 “존재란 무엇인가?”로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이 세계를 통합하는 것은 존재이다. 존재는 아무것도 아닌듯하지만 모든 것이다. 나는 영숙에게 뭔가 깨달은 듯 소리쳤다.
“아! 알았다. 그건 힌트다. 화두에 대한 힌트다.”
“무슨 힌트?”
“음~ 그건 말이야 존재와 시간이야”
“존재와 시간?”
“좀 설명하긴 그런데 그 장면을 시간을 뺀 것이라 생각해봐?”
“가령 어린애가 태어났어, 그리고 삶을 살다가 죽었어, 그리고 섞어서 땅이 되었지?”
“좀 어렵네요”
“어렵지, 근데 거기서 시간을 빼고 한 장면 안에 다 넣을 려고 해봐?”
“그게 가능한가요?”
“그러니까 편법을 쓴 거지. 어린애와 죽은 새와 땅으로 전환시키는 구더기.”
“그럴듯하네요. 이해는 잘 안되지만.”
나는 약간 흥분됐다. 그리고 깨달음이란 무엇인가? 에 대한 짜릿함과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어느 듯 우리는 진주성을 한바뀌 다 돌았다. 영숙은 참 따뜻한 친구다. 내가 말을 하면 그대로 받아들인다. 그러면서 순수함에서 오는 순진함이 온몸을 감싸고 있는 듯 했다.
우리는 남강다리 아래로 갔다. 시간은 꽤나 흘러서 이미 어둠이 옅게 깔리고 있었다. 남강 물은 강을 가득 채우고 유유히 흐르고 있다. 우리는 강물을 바라보고 얘기를 이어갔다.
“선주씨는 왜 내가 마음에 들었어요?”어려운 질문이다.
“글쎄 왜 마음에 들었을까? 어떤 느낌에 대해서 말로 표현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은데.”
“뭐 그런 게 어딨나요. 솔직하게 말해 봐요.”
아 그런데 그건 내게 정말 어려운 질문이었다.
“통째로 다 좋더라 왜? 그러면 안돼나.”
영숙은 웃는다. 그냥 ‘배꼽 잡으라.’ 웃는다. 고요히 흐르면서도 잔잔한 음률을 만들어내는 듯, 남강 물소리가 배경음악을 펼쳐 놓은 듯하다. 그녀의 웃음소리는 천상의 음악소리 같다.
너무 좋다. 오늘 아침의 예감이 맞았다. 안개가 내게 알려준 것일까? 오늘도 우리는 같이 있었다. 그래서 좋다. 그녀가 내 곁에 없다면 어떻게 될까? 순간 부처님의 연기법이 생각난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
이것이 있으므로 저것이 있다.
이것이 사라지면 저것도 사라진다.
영숙이 있으므로 내가 있다.
영숙이 사라지면 나도 사라진다.
http://www.youtube.com/watch?feature=player_detailpage&v=cBZLaKKsHd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