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교 진흥원 발간 격월간지 /불교와문화 통권 63호 (2005년 3,4월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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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로대담 / 활안의 선지식에게 듣는 수행한담
" 수행이란 함은 참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
눈구덩이서 홀연 깨닫다
이제 어떻게 해서 '오늘의 화산 스님'이 됐는지를 살펴보자
화산스님은 1919년 음력 11월17일 경남 양산시 하북면 순지리 신평마을에서 평택 임(林)씨 집안 다섯 형제중 셋째로 태어났다.속명은 정달(正達),법명도 정달이며,화산은 당호다. 부친의 함자는 성식(成植),모친은 김해 김(金)씨 순분(順粉)이다.
출가 전 화산스님은 "학문을 배워 높은 자리에 앉으면 돈도 벌고 대우도 받는다"는 세속적 논리에 가득 차 있었다. 허나,통도사 불교소년회 법회를 통해 싯달타태자가 부귀공명을 마다한 채 출가한 사실을 전해 듣고 생각이 번뜩 사무쳐 발심했다. 세속의 포부를 버리고 통도사 자장암으로 입산한 때가 1935년 10월 , 나이 17세였다. 예서 대강백 몽초(夢草)스님을 은사로 축발득도(祝髮得度)했다. 이듬해 사미계를 수지하고, 은사를 3년간 시봉하며 일대시교를 배웠다. 동산양개(洞山良价) 선사가 속가 부모님께 보낸 '사친서(辭親書)'를 배울때는 출가본분을 사무치게 깨달았고, 또 한 번 크게 발심했다.
곧 걸망지고 만행길에 올랐다. 1940년 나이22세였다. 목적지는 금강산 마하연. 서울 선학원서 하룻밤묵고 소요산 자재암을 거쳐 철원 부근에 도착했다. 마땅히 절을 만나지 못해 울도 담도 없는 여염집에 신세를 청했는데,밤새 신발이 없어졌다. 여의치 않아 맨발로 마하연을 향했다. 선학원을 떠난지 일 주일만에 마하연에 도착해 한 철을나고 ,장안사,유점사,신계사,표훈사 등 금강산 4대 사찰을 돌며 수선정진(修禪精進)했다. 몇 철을 보냈으나, 밝은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오대산 한암 스님 회상을 찿기로 마음먹고 다시 길을 나섰다.금강산 개잔령(犬嶺)을 넘어가는데.일수간 눈구덩이에 빠지고 말았다.걸망은 걸망대로 몸은 몸대로 나딩굴었다.아찔한 순간에 정신이 홱 돌아오는데,세상이 환해짐을 보았다.아는 소리가 절로 입 밖으로 흘러나왔다.
설만건곤의무로(雪滿乾坤疑無路) 하늘과 땅이 눈으로 가득하여 의심길 조차 끊어졌구나
안비청천성락처(雁飛靑天聲落處) 푸른하늘에 날아가는기러기 울음 떨어지는곳에
목마장명석인무(木馬長鳴石人舞) 나무말은 길이 울고 돌사람은 춤을 추는구나
등한일로월정명(等閒一笑月正明) 까닭없이 한바탕 웃고보니 달이 휘영청 밝았더라
오도송(悟道頌)이었다
조각배로 중생을 건네 주다
오대산 상원사에서 당도해 한암스님을 친견하고, 오던길에 있어던 일을 고했다. 한암스님이 일렀다.
"네 성품자리가 어디에 있는고?"
어느 곳에 있다고 할 수도 없고, 행주좌와처(行住座臥處)를 떠나 있지도 않습니다."
"자성을 알면 바야흐로 생사를 벗는다고 했는데, 눈감아 죽을 때는 어떻게 벗는고?"
"본래가 본분인데, 무엇을 입고 무엇을 벗는게 있겠습니까?"
"그래! 그러면 네 길은 네가 가도 좋겠구나."
인가였다. 화산은 그 자리에서 게송을 읊고 물러나왔다
"천년고총아 억모누흔간 (千年古塚兒 憶母淚흔干)
지피석인지 운횡만리풍 (只彼石人知 雲橫萬里風)
천년무덤 속 어린아이가 어머니 생각에 눈물이 마르누나
다만 저 돌사람만 알 뿐인데 구름은 만리풍에 빗겼도다."
화산은 예서 3년간 한암 스님을 시봉했고, 비구계를 수지했다. 또한 한암스님이 입적할 때까지 오대산을 오가며 소식을 점검 받았다. 일본 임제 전문학교에서 수학하고 귀국한 때가 이즈음, 1944년이다. 광복 후에 통도사 강주를 역임하고 성균관대 철학과를 졸업했다. 한때 납의(납의)를 입고 부산 해동고등학교와 울산중학교에서 교편도 잡았다. 대중교화에 본격 나선 것은 이때 부터다. 그세월이 50성상이다.
대구지역을 거점으로 부처님의 부촉(付囑)을 그대로 실천했다.
대담 끄트머리에 한 말씀을 청했다.
-큰스님,구십 평생 살아오신 생애가 어떻습니까?
눈을 지그시 감더니, 게송으로 당신의 삶을 정리했다.
야선도진무수인(野船渡津無數人) 조각배로 무수한 사람을 건네 주노라니
만강풍우자종횡(滿江風雨自從橫) 강에 비바람이 가득 이리저리 몰아치네
백로다망경운거(白鷺多忘耕雲去) 백로는 바쁘게 밭갈듯 구름 지나는데
만리백운공차단(萬里白雲空遮斷) 만리의 흰구름이 헛되이 가로막았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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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_하춘생(spborn@chol.com);동구대 불교학과 동대학원 졸업,한국불교기자협회6,7대회장 한국종교신문언론인협의회 제4대 대표이장역임 현 동국대 총동창회 편집의원,한국불교언론인회 운영위원
저서"깨달음의꽃" (전2권) 공저 "한국불교현대사" "불교상식백과"가 있다
한국불교에 수행(修行)은 과연 존재하는가.승가와 사찰이 던져주는 의미와 목적은 무엇이며,불교의 생명은 어디서 찿을 수 있을까, 그나마 선방수좌나 강원학인들이 한국불교의 미래를 담보할 수 있다고 안위(安慰)해도 좋을까. 혹자는 한국불교를 향한 세게적인 관심을 들어 희망을 말하지만,정작 본분(本分)을 지켜 온 참 불자들은 불교의 생병인 수행가풍이 절집에서 사라진 지 오래라 희망을 말하는 것은 아집(我執)에 불과하다는 볼멘소리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에본지는 이번 호 부터 특별기획 '장로대담-활안의 선지식에게 듣는 수행한담'을 통해 우리시대의 몇 남지않은 큰스님들의 성성(惺惺)한 수행담과 아울러 그분들의 성찰을 통해 수행의 진정한 의미와 가치를 이세상에 던져 주고자 한다. 불교에서 수행의 지중함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으며,비로소 불교를 존재하게하는 삼세불변(三世不變)의 실천궁행(實踐躬行)인 까닭이다. 여기에서 장노(長老)는, 법납이 높고 수승한 경지에 이른 고승을 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