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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붉은 제국 러시아
인천국제공항에서 잠시 쉬었다가 간단한 출국 수속을 하고 15 : 55 KE 923 편에 탑승하여 러시아의 모스크바로 향발하였다. 기내에서 비빔밥으로 점심을 먹고 해산물로 저녁을 먹었으며 잠도 자고 영화도 보면서 10시간을 비행하였으나 5시간의 시차 관계로 20 : 50 모스크바 셀레메떼보공항에 도착하였다. 간단한 출국수속을 하고 나오니 전준희 가이드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가이드의 안내로 호텔로 이동하면서 러시아에 관한 이야기도 들으며 창밖을 내다보며 모스크바의 모습을 살펴보았다. 평소에 러시아는 매서운 눈보라가 사계절 계속해서 몰아치고 얼어붙은 땅이라는 느낌이 드는 나라로 알고 있었다. 그러나 이곳에 오니 감회가 새로워지고 생각하던 바와는 다른 느낌이 들었다. 세계를 이끌어가는 4대 강국의 하나이지만 공산주의국가라는 이유로 인하여 실지로 거리도 멀지만 우리에게는 더욱 멀게만 느껴졌던 나라이다. 평소 러시아를 한 번 가보고 싶었기에 이번에는 다른 나라에 갈 때와 다르게 더욱 호기심을 가지게 되었다.
평화의 대로를 달려 오스탄키노 텔레비전 송신탑을 바라보며 드골 대통령의 입상이 서있고 로켓 발사 모습의 모형이 바라다 보이는 코스모스 호텔(Kocmoc Hotel)에 투숙하였다.
① 러시아의 개요
러시아의 수도는 모스크바이고 유럽에서 아시아에 이르는 옛 소련 영토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넓은 국토를 가진 나라이다. 정식명칭은 러시아연방이고 국민의 대부분이 러시아인이며 소수민족 집단도 70여 개에 달한다고 한다.
동쪽은 태평양에 접해 있고, 서쪽은 노르웨이, 핀란드,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아와 경계를 이루며, 남쪽은 그루지야, 우크라이나, 아제르바이잔 등을 비롯하여 중국, 몽골, 북한 등과 경계에 있고 북쪽은 북극해와 맞닿아 있는 나라이다.
러시아연방공화국은 1917년 10월 러시아혁명이 일어난 뒤에 수립되었으며 1922년 소비에트연방을 구성하는 공화국이 되었다. 1991년 소련이 해체되면서 다른 공화국들과 연합하여 독립국가연합을 형성하였다. 러시아연방공화국은 독립국가연합을 구성하는 12개 공화국 가운데 면적이 가장 넓고 인구가 제일 많으며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방면에서 주도적인 위치에 있다.
② 모스크바의 관광명소
아침밥을 먹고 09 : 00부터 모스크바의 관광을 시작하였다. 모스크바는 세계적인 대도시로, 러시아의 정치, 경제, 문화의 중심지이다. 모스크바의 중심 크렘린과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는 붉은 광장과 성바실리성당, 굼백화점은 모스크바를 가장 먼저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또 유유히 흐르는 모스크바강과 레닌언덕에 위치한 모스크바국립대학 역시 모스크바를 확인할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모스크바는 현대적인 빌딩들과 그 사이사이로 러시아 정교회의 첨탑들이 오색 빛을 발하는 곳이다. 회색빛 도시로 사람들의 표정이 굳어 보이고 오랜 혼란의 시대를 거쳐 조금은 지쳐 보이는 듯한 도시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지속적으로 도약하고 있는 러시아 사회를 발견할 수 있는 곳이 역시 모스크바라는 느낌이 들었다.
Ⓐ 크렘린
크렘린은 모스크바의 심장부로 러시아의 역사를 엿볼 수 있는 곳이라고 한다. 러시아어로 요새를 의미하는 크렘린 안에는 15세기의 장대한 교회에서부터 현대적인 의회까지 다양한 건물들을 볼 수 있었다. 이곳은 레닌, 스탈린, 흐루시초프, 브레즈네프, 고르바초프 등이 서기장으로 활동을 한 곳이기도 하다.
붉은 성벽으로 둘러싸인 높이 80m에 이른다는 크렘린의 망루로 들어갔다. 이 안에는 큰 크렘린 궁전을 비롯하여 1961년에 완성된 대회 궁전, 표트르 대제 때 만들어진 바로크 양식의 궁전 병기고, 원로원, 이반 대제의 종루, 현재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12사도 사원, 우스펜스키 사원, 세계에서 제일 큰 종인 황제의 종, 황제의 개인 예배 사원이었던 블라고베시첸스키 사원, 아르항게리스키 사원 등 셀 수 없는 많은 건물들과 보물들이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내는 러시아 문화의 정수가 모여 있는 곳이었다.
대통령 집무실을 바라보며 무게가 40t이나 된다는 세계에서 제일 큰 대포, 200t이나 된다는 세계에서 제일 큰 종 등은 그 크기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크렘린을 돌아보고 발레 예술의 기초를 다졌다고 하는 피터대제의 동상을 바라보며 참새언덕으로 갔다.
Ⓑ 참새 언덕
참새 언덕은 모스크바 시가지와 모스크바강을 한 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곳이었다. 러시아혁명 뒤 「레닌 언덕」으로 불렸으나 지금은 「참새 언덕」이란 원래의 이름을 되찾았다고 한다.
톨스토이의 ꡔ전쟁과 평화ꡕ에는 나폴레옹이 이 언덕에 올라 모스크바 시내를 내려다보는 광경이 묘사되어 있다. 이 언덕은 해발고도 115m 정도 밖에 안 되지만 모스크바 시내를 배경으로 사진을 촬영하기에 적합하여 관광객이 많이 찾아오는 곳이라고 한다.
신혼부부의 기념촬영 모습도 볼 수 있었고 1980년 모스크바 올림픽 경기장, 스키 점프대, 우크라이나 호텔, 외무부 건물, 모스크바국립대학 등이 한 눈에 바라보이는 곳이었다. 대단한 언덕으로 알고 갔는데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는 느낌이 들었다.
Ⓒ 모스크바국립대학
참새언덕에서 정면으로 바라보이는 모스크바국립대학은 러시아연방 최대의 종합대학이라고 하였다. 18세기 로모노소프라는 학자가 학생들을 위한 고등교육기관 창설의 필요성을 원로원에 건의하여 엘리자베타 페트로브나여제의 칙령으로 1755년에 설립되었다고 하였다.
20세기 초 사회적 변혁기에는 대학 안에서도 학생운동이 고조되었으며, 정부는 이를 탄압하여 1911년 대학을 폐쇄하였고, 이에 항의하는 130명의 학자가 대학을 사임하였다고 한다.
10월 혁명 이후인 1918년 국립대학이 되었으며, 널리 노동자 계급에게도 개방하였다고 한다. 창설 무렵에는 철학, 법학, 의학 등의 3부가 설치되어 있었으며, 혁명 후에는 새로운 학부가 대폭 증설되었다고 한다.
1982년에는 17학부와, 아시아와 아프리카 등 여러 나라 연구소를 비롯한 부속연구소와 도서관을 보유하기에 이르렀다. 교수 총수는 8,100명이 넘으며, 그 가운데 1,000명 이상이 박사학위 취득자이다. 학생수는 주, 야간을 합쳐서 2만 8천명이나 된다는 말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금은 다수의 해외 유학생을 받아들여 국제교류에도 힘쓰고 있다고 한다.
대학 옛 건물은 마르크스거리와 게르첸가에 면한 옛 도심지에 있고, 새 건물은 레닌언덕 위에 1949년부터 1970년에 걸쳐 건설되었는데 그 장대한 건축물들이 모스크바의 새로운 명소가 되어 많은 관광객이 찾아온다고 한다. 자작나무 숲이 우거진 학교 앞에서 2㎞나 된다는 둘레를 한 바퀴 돌면서 대학의 모습을 밖에서 바라보기만 하였다.
Ⓓ 붉은 광장
입구에서 버스를 내려 작은 네모난 화강암의 바닥 길을 걸어 붉은 광장으로 갔다. 광장을 개방하지 않고 있다가 우리가 들어가는 순간 개방을 하니 많은 사람들이 광장으로 몰려들었는데 알고 보니 기마병이 행사를 하고 있었는데 먼 곳에서 조금 바라보다가 말았다. 아름다운 붉은 광장은 국립역사박물관과 굼백화점 및 양파 머리 모양의 바실리사원, 레닌의 묘에 둘러싸여 있는데, 전에는 시내 중심부에 있던 시장이었다고 한다.
끄라스나야 쁠로샤지, 즉 현재는 「붉은」으로 해석되는 이 광장의 명칭은 고대 러시아어로는 「아름다운, 예쁜」이라는 뜻이었기 때문에 본 의미는 「아름다운 광장」이었다고 한다.
메이데이와 혁명 기념일에 붉은 색의 현수막이 국립역사박물관과 굼백화점의 벽에 걸리고, 많은 사람들도 붉은 깃발을 손에 들고 있어서 광장이 온통 붉은 색이 되었다는 데서 그 명칭의 유래되었다고 하기도 한다.
굼백화점은 붉은 광장을 사이에 두고 레닌의 묘, 국립역사박물관, 바실리대성당 등과 마주보고 있는 러시아의 최고급 백화점이다. 1890년부터 3년에 걸쳐 세워졌으며 러시아혁명 뒤인 1953년에 지금과 같이 개조하였다. 이 백화점은 3층 건물이며 지붕은 유리로 되어 있었다. 백화점 안으로 들어 가 보았으나 화려한 고가품들이라 돌아 보기만하고 나왔다.
붉은 광장은 역사적으로는 상업 광장, 화재 광장 등으로 불렸다가 17세기 말부터 「아름다운 광장」이라는 이름으로 바뀌었다고 한다. 현재 이 붉은 광장에서는 메이데이 등의 시위행사나 사열식이 행하여진다고 하였다.
불균형이 가져다주는 묘한 아름다움의 성바실리성당은 붉은 광장 진입로에서 볼 수 있었다. 붉은 광장으로 들어서는 모든 관광객들의 시선을 한 눈에 사로잡아 버리는 아름다우면서도 묘한 느낌을 주었다.
200여 년간 러시아를 점령하고 있던 몽골의 카잔 한을 항복시킨 것을 기념하기 위해 이반 대제의 명령으로 지어진 건축물로, 사원의 이름은 이반 대제에게 많은 영향을 끼친 수도사 바실리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각양각색의 색채와 무늬를 자랑하는 9개의 양파 모양의 돔 지붕으로 이루어진 이 그리스 정교 사원은 가장 러시아적이면서도 그 어디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특색이 있는 건축물로 정평이 나 있다고 한다.
성바실리사원 앞에는 1612년, 폴란드의 침입으로부터 모스크바를 지켜낸 니즈니 노브고르드 출신의 정육점 주인 「미닌」과 수즈달의 대공이었던 「포자르스키」 두 사람을 기념하는 동상을 볼 수 있었다. 원래 광장의 한가운데 서 있던 동상은 1936년, 붉은 광장에 레닌의 묘가 들어서면서 현재의 장소로 옮겨졌다고 한다.
레닌의 묘는 러시아 혁명의 지도자 레닌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는 영묘이다. 1930년에 완성된 화강암 건물의 계단을 내려가면 레닌의 유해가 커다란 유리로 된 상자 속에 정장 차림으로 누워 있다고 한다. 레닌의 묘를 가운데에 두고 양쪽에 스탠드가 있고, 그 뒤쪽으로는 10월 혁명 때 숨진 노동자와 병사의 무덤, 레닌 묘의 바로 뒤에는 제르진스키의 묘가 있다.
Ⓔ 아르바트 거리
바실리 성당을 지나 지하도를 통과하여 버스를 타고 아르바트 거리를 찾아갔다. 붉은 담의 국립묘지를 지나 유리로 된 다리를 건너 모스크바 강변에서 잠시 쉬었다가 외무부 건물 앞에서 하차하여 아르바트 거리에 갔다.
서울의 명동거리와 같은 아르바트 거리는 모스크바에서 젊은이들이 가장 많이 거닐고 문화를 즐기는 곳이라고 하였다. 외국인들도 러시아의 예술을 느끼며 많이 거닐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었으나 우리가 갔을 때는 많은 사람들이 다니지는 않았다.
프랑스의 몽마르트언덕에서의 풍경과 비슷하게 거리에는 이름 없는 화가들이 줄을 지어 앉아있는 모습과 합주단들도 볼 수 있었다. 러시아를 알고 싶은 사람들이라면 한 번쯤은 아르바트의 거리를 거닐어 보는 것도 괜찮을 듯한 느낌이 들었다.
아르바트 거리에서 나와 기념품점에 들렀다가 노보대비치 수도원 앞 호수가의 의자에 앉아 잠시 쉬었다. 이곳은 경치가 아름다워 신혼부부가 기념 촬영을 하고 있고 많은 하객들도 함께 와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③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관광명소
모스크바의 관광을 마치고 셀레메떼보 공항으로 이동하였다. 간단한 탑승 수속을 하고 국내선 FV 172편으로 모스크바를 출발하여 1시간 20분간 비행한 후 상트페테르부르크 뿔코바공항에 도착하니 백승길 가이드가 우리를 반갑게 맞아 주었다. 현지 가이드는 호텔로 가면서 상트페테르부르크에 대한 설명을 하여주었다.
상트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연방 북서부에 있는 도시로 인구 약 469만 4천(2000)명이다. 수도 모스크바에 이어 러시아연방 제2의 도시로 1712∼1918년까지 러시아의 수도였던 곳이다.
처음에는 상트페테르부르크라고 했다가 1914년 페트로그라드로 개칭되었고, 1924년 레닌이 죽자 그의 이름을 기념하여 레닌그라드로 불리어졌다. 그 뒤 1991년 11월 7일 사회주의 개혁과정에서 시민들의 요구에 따라 본래 이름인 상트페테르부르크로 다시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러시아의 두 번째로 큰 도시인 이 곳은 문화적 중심지로, 그리고 18∼19세기에 지어진 우아한 바로크 양식의 건축물로 인해 많은 이들에게 알려져 있는 곳이다.
모스크바가 동양적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는 도시라면 페테르부르크는 「서유럽으로 가는 통로」라는 호칭에 걸맞게 좀더 서양적인 특징들을 많이 보존하고 있는 곳이라고 한다. 쭉 뻗은 대로, 수많은 운하와 아름다운 다리들, 6~7월이면 볼 수 있는 백야의 광경은 가히 상트페테르부르크를 ≪북쪽의 베니스≫라고 칭송할 만 하다고 한다.
Ⓐ 알렉산드르 수도원
아침 일찍 알렉산드르 수도원을 찾아가니 관광객이 전연 없었다. 아침 햇살을 받아 사진을 찍을 위치가 마땅하지 않았다. 하얀색과 하늘색의 조화를 이루고 있었는데 200년 전에 지은 성당이라고 하였다. 이 수도원은 네프스키 대로 인근에 위치하고 있었다. 내부에 들어가지는 않고 외부만 바라본 후 버스를 타고 저 건너 붉은 색 건물인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시립교도소를 멀리에서 바라보며 네바강변 도로를 달렸다.
네바강에서 낚시를 하는 사람도 볼 수 있었으며 철물 구조가 프랑스의 에펠탑의 모양을 한 삼위일체 다리를 바라보며 로트랄리 등대로 갔다. 바실리 섬의 로트랄리 등대를 배경으로 기념촬영을 하고 맑은 아침 공기를 마시며 네바강변을 거닐기도 하였다.
Ⓑ 순양함 오로라호
로트랄리 등대 가까이에 있는 순양함 오로라호는 함대 깃발이 펄럭이고 있었다. 볼세비키 혁명의 시발점이 되었던 역사적인 순양함인 오로라호는 피터 대제의 오두막이 있는 부근인 St. .Petersburg호텔 바로 건너편에 정박되어 있었다.
오로라호는 1897년부터 1900년에 건조되었으며 1904~1905년 러일전쟁에 참가하여 큰 역할을 담당하기도 했다고 한다. 7,000t급의 일반 순양함에 불과했었던 이 함정은 1917년 10월 1일 오전 9시 40분에 함포 한 방을 쏘아올림으로써 오늘날까지도 많은 방문객들을 맞이하는 관광명소가 되었다고 한다. 바로 그 신호탄 한 발로 인해 러시아에서는 레닌을 선두로 한 볼세비키 혁명이 시작된 때문이라고 하였다.
제2차 세계대전 때에는 육상 전투를 위해 순양함의 대포만 떼어 사용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전쟁이 끝난 후 현재 이곳은 박물관으로 사용되고 있었다. 오로라호는 주위의 많은 건물들과 어울려 장관을 자아내고 있었다. 순양함 오로라호를 돌아보고 화려한 모습을 한 피의 구원성당을 돌아보고 겨울 궁전으로 갔다.
Ⓒ 겨울궁전
러시아 황제들의 거처였었던 겨울궁전은 궁정광장 한 편에 네바강을 따라 230m나 쭉 뻗어있다. 담록색의 외관에 흰 기둥이 잘 어울리는 로코코 양식의 이 궁전은 1762년 라스트렐리에 의해 건축된 것이다. 건물의 구조는 총 1,056개의 방과 117개의 계단, 2,000여 개가 넘는 창문으로 이루어져 있다고 한다.
건물 지붕 위에는 많은 조각상이 장식되어 있었는데 모두 170개가 넘는다고 하였다. 겨울 궁전은 오늘날 총 6개의 건물로 연결되어 있는 러시아 문화의 보고인 에르미타쥐 국립박물관 건물 중의 하나라고 한다.
Ⓓ 에르미타쥐 박물관
붉은 융이 깔린 계단을 오르다가 천장에 그려져 있는 지옥과 천당의 그림을 쳐다보았다. 금관의 방, 왕가의 방, 공작새의 방, 둥근 천장의 방, 카페트의 방, 특별 전시실, 비밀의 방, 금이 제일 많이 들어간 방, 아이들의 공부방을 두루 돌아보았다.
에르미타쥐 국립박물관에는 서유럽관, 고대유물관, 원시문화관, 러시아 문화관, 동방국가들의 문화예술관과 고대화폐 전시관 등 총 6개의 큰 파트로 나뉘어져 있었다.
전시된 작품들을 1점 당 1분씩만 본다고 해도 총 관람시간이 5년이나 된다고 하는 말에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에르미타쥐에서 꼭 놓치지 말고 봐야 할 것은 125개의 전시실을 차지하고 있는 서유럽 미술관이라고 한다. 이곳의 일부를 돌아보았는데 레오나르도 다빈치, 라파엘, 미켈란젤로, 루벤스와 렘브란트 등 우리와도 친숙한 화가들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대형작품과 루벤스의 ≪눈물≫이라는 대형 작품 속에 눈물이 흘러내리는 모습의 표현 등은 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립박물관 안을 1시간 30분 동안 걸어 다니며 관람을 하고 광장으로 나오니 광장 기념탑이 우뚝 서 있고 너른 광장의 맞은편에 구해군성 본부가 보였다.
Ⓔ 구해군본부
구해군성 건물은 1823년 러시아 해군의 관리본부로서 건설되었다고 한다. Andreyan Zakharov에 의해 설계되었다는 이 건물은 멋진 중앙타워와 도금되어 있는 첨탑이 있어 건축물 자체가 더욱 아름다운 모습으로 보였다.
중앙의 첨탑은 높이가 70m 이상이라고 하였는데 햇빛을 받아 더욱 화려하게 빛나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 첨탑은 이 도시의 심볼(symbol)이라고 하였다. 아름다운 정원수로 깨끗하게 꾸며진 정원과 선원들의 조각들이 적절하게 배치되어있는 해군성은 이 도시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라고 하였다. 작은 네바강을 따라 걸어 나와서 홍욱주가(洪旭酒家)에서 김치찌개로 점심을 먹었다.
Ⓕ 성이삭성당
표트르대제의 청동기마상 앞에서 버스를 내려 남쪽에 있는 성이삭성당을 바라보았다. 이 성당은 많은 량의 금으로 장식되고, 유럽 각지와 국내에서 생산된 112가지 돌로 내부와 외부의 기둥 등을 꾸몄다고 하였다. 광장을 걸어가 큰길을 건너 성당 앞에 갔다가 내부는 들어가지 않고 외부만 돌아보고 왔다.
성이삭성당은 알렉산드로 1세 때인 1918년부터 1958년까지 그의 조카 알렉산드로 2세 때까지 3대에 걸쳐 무려 40년간이 걸려 22인의 예술가가 참여하였고, 10만 명이 넘는 농민들이 동원되어 지었다고 한다.
페테르부르크가 습지대인 관계로 기초만 다지는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으며 물자를 운반 하기위하여 최초로 네바강에 바지선이 띄워졌다고 한다.
동서의 길이가 111.2m, 남북의 폭이 97.6m, 높이가 101.5m, 수용인원은 1만4천명이며 내부는 성서의 장면이나 성서 속의 성인들을 150명 이상이나 묘사하여 놓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모자이크화도 62점이나 되며 우랄산맥에서 생산 된다는 초록색의 공작석으로 만든 모자이크인 예언자, 에덴의 동산, 에지기에리의 꿈, 예수의 고난, 최후의 심판, 대홍수, 천사 가브렐라의 전언, 조각기둥 등을 바티칸성당과 비교해 보면 내부의 화려함에 놀란다고 하나 내부를 돌아보지를 못하였다.
이 성당을 설계하고 공사 감독한 프랑스인 몽펠랑은 약관의 20대에 전 유럽 사람들이 참가한 콩쿨에서 입상하여 40년간 러시아에서 이 성당 및 성당 주위의 마린스키 궁전 등의 건물과 겨울궁전 내 지금의 1호 전시실인 피터대제의 방, 궁전광장 등을 꾸미는데도 참여하고 러시아에서 인생을 마쳤다고 한다. 그는 러시아에 묻히길 원했지만 당시 알렉산드로 2세는 그의 시신을 파리로 돌려보냈다고 한다.
재미있는 것은 서양사회 치고 역술을 즐기는 러시아에서 당시의 유명한 점쟁이가 성당이 완공되면 그는 죽을 것이라고 초창기에 예언했다는 것이다.
Ⓖ 네프스키 수도원
기념품가게(TROIKA)에 들어가니 크고 다양한 기념품들이 많이 있었는데 인형을 한 개 구입하였다. 기념품가게를 나와 궁전 다리를 건너 네프스키 대로를 지나 네프스키 수도원으로 갔다. 외부는 수리 중이었고 내부로 들어가 보니 많은 사람들이 있었으며 마침 결혼식을 올리고 있는 중이었다. 많은 하객이 둘러서서 결혼식을 지켜보며 축하를 하고 있는 듯 하였다. 옆쪽에는 성서와 그림엽서 등을 팔고 있는 코너도 있었다.
네프스키 수도원을 나와 앞쪽에 위치한 에카테리나 공원에 갔다. 중앙에 여왕이었던 에카테리나의 동상이 있었는데 아래쪽에는 그의 애인 12사람의 동상이 바로 밑에 부조되어 있었다. 옆쪽에는 시립도서관, 네프스키 화서가(畵書街)도 볼 수 있었다.
Ⓗ 네프스키 대로
만약 유럽의 모든 길들이 로마로 통한다면 페테르부르크의 모든 길들은 네프스키 대로로 통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라고 한다. 해군성에서 알렉산드르 네프스키 수도원까지 4.5㎞로 뻗어 있는 이 거리에는 호텔을 비롯하여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레스토랑과 카페, 상점, 음악당 등이 위치하고 있었다.
1710년에 처음으로 길이 뚫리게 되면서 습한 늪지대였던 이곳이 페테르부르크를 대표하는 문화, 상업의 중심지이자 가장 아름다운 거리 중 하나로 손꼽히게 되었다고 한다.
모이카, 그리바이도바, 폰탄카 등의 3개의 운하가 대로를 가로질러 네바강으로 흘러들고 있다. 이곳에는 19세기에 건축되었다고 하는 화려하나 그리 높지 않은 건물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더욱 더 많은 볼거리를 제공하고 있었다.
Souvenirs인 기념품점에 들어가서 각종 기념품도 돌아보고 나왔다. 호박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도 있었으나 구입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예술의 광장, 오페라극장, 오케스트라 하우스 등이 있었는데 이 근방에서 1시간의 자유 시간을 갖고 네프스키 대로를 활보 해 보기도 하였다.
Ⓘ 네바강 선상 유람
네프스키 대로를 조금 벗어난 네바강에서 선상 유람을 하였다. 유람선이 움직이기 시작하니 남녀 몇 사람이 아코디언과 몇 가지 민속악기로 반주를 하고 독창을 하더니 우리 일행들과 포즈를 취하고 기념촬영도 하였다.
두 사람이 등지고 의자에 앉아 하나, 둘, 셋 하면 고개를 돌려 같은 방향이 되면 볼에 뽀뽀하는 놀이도 하였는데 우리말로 「한, 둘, 셋」하고 고개가 같은 방향이 되면 상대의 뺨에 뽀뽀하여 립스틱 자국을 남기기도 하였다.
민속 타악기인 「떠리슈트까」를 전원에게 나누어주고 모두가 함께 치며 ≪대-한민국≫을 소리치기도 하였다. 또 한국의 노래 「후회하지 말라」, 「과수원길」, 「사랑으로」 등의 노래도 불렀으며 백승길 가이드는 명곡인 「카추샤」를 불러 박수갈채를 받기도 하였다.
우리 일행과 함께 춤을 추기도 하며 흥겨운 시간을 2시간이나 선상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유람선에서 내려 코리아나 식당에 가서 찌개백반으로 저녁을 먹고 어제 잤던 Karelea Hotel에 투숙하였다.
Ⓙ 재래시장
아침을 먹고 09 : 00에 여름궁전으로 가는 길에 1시간 30분을 달려와 재래시장을 들렀다. 조그마한 시골의 재래시장이라 화려한 모습이 아니고 주로 토산품들이 많이 있었다. 각종 농산물과 과일 등이 많이 있었는데 모두들 여행하면서 나누어 먹기도 하고 남으면 가지고 갈 수도 있는 호두, 자두 말린 것, 건포도, 잣, 등을 구입하였는데 말은 통하지 않아도 큰 소리로 농담까지 섞어가며 흥정까지 하는 재미도 있었다.
Ⓚ 여름궁전
재래시장에서 나와 러시아의 상징인 여름궁전의 옆문으로 들어갔다. 입구에서는 악사들이 우리를 반기며 우리나라 애국가와 아리랑을 연주해 주었다. 안으로 들어가니 분수 시설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여름궁전은 러시아 황제와 귀족들의 여름 휴양지였던 분수궁전이라고 한다. 러시아의 「베르사유」, 「러시아 분수들의 수도」라고 불리는 페테르고프는 황제의 가족들과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귀족들이 여름을 보내던 곳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