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주 / 이 작품의 구상에 있어서는 김용집 스님의 산문 인욕의 길 중에서 그 일부를 참고했음을 밝힙니다.
때 / 현대
곳 / 주로 시골
무대/사실적인 무대장치가 필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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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이 열리면
(승복 차림의 사내가 입을 연다.) "찬바람에 낙엽이 굴러 굴러가듯이 / 황량하고 낯선 길에 내 마음 흘러 흘러 / 아-아-아-아-아 어쩔거나 이 가슴과 이불 꽃 이렇듯 이내 운명 슬픈 것인가." (급히 이전의 감정을 완강히 부정하며) 난 깨달았던 겁니다. 서둘러 중이 대어야 한다는 것을 내가 "믿을만한 중"이 되어야 하루빨리 이 슬픈 운명에서 탈출이 가능하다는 사실 (합장 배례 해 보이며) 합장 배례를 할 때는 오로지 겸손한 마음. 아름다운 태도 그리고 정성을 다 바쳐야 합니다. (사이었다가 가상의 목탁을 두드리며) 중은 부지런히 경을 외워야 합니다.
"--- 관자재 보살 행실반야 바라밀다시 조견오온개공도 일체고액 사리자 색불이공 공불이색 색즉시공 공즉시색 수상행식 역부여시 사리자 시법제법공상 불생불멸 불구부정--- "(하다가 침묵을 지키고) 그런데--- 그런 나를 두고 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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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혀를 절절 차며) 이놈아 ! 그 놈의 반야심경 잘 외운다고 해서 중이 다 된다면 중 아닐 놈이 세상 어딨겠느냐. 만만한 게 그 놈의 반야심경인 줄 아는데! "어휴 저놈의 무광스님 귀는 밝아서 저 무광스님으로 말할 것 같으면은 치렁치렁 내 장발을 손수 박박 밀어부친 장본인인데다가 이 내 몸에 척하니 먹 옷을 입혀두고 엄숙한 음성으로 계를 내려 주신 스님 게다가 이내몸이 불모로 붙잡힌 그 절의 주지스님이었다니까요.
"(방백) 하! 미치고 환장하겠구만! 저 무광인지 유광인지 하는 중놈. 병 주고 약 주는 데는 도가 텄잖아?" "뭐가 텃다고?" "아니요 도를 닦아야겠다구요" "이놈아 대웅전 앞에 있는 독이나 깨끗이 닦아라" 나는 어느 날 독하게 마음을 먹고 이판사판 사생결단코자 무광스님 앞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무릎을 꿇고 앉는다) "스님! 저 눈치로 때려잡았지만 스님께서는 지금 제가 중의 형상인 것이 극히 못마땅하신 모양인데 그럼 전 어떻하란 말씀입니까?" "그래. 네놈 눈빛이 글러 먹었어!" "두 눈을 껌뻑이며 눈빛? 네. 저두 압니다. 자고로 눈은 마음의 창이라 인간은 스스로의 눈빛을 속이거나 감출 수가 없죠. 그렇다면 어떻해야 제 눈빛이 중의 눈빛으로 둔갑할 수 있겠습니까?" "둔갑? (괴상한 웃음을 웃고) 이놈아, 네가 어디 천년 묵은 여우라더냐? 아니면 둔갑술이나 가르쳐주는 가짜 도사라더냐?" "그럼 도대체 저더러 뭘 어떻하란 말씀입니까. 스님!" "--- 기다려 보는 거지!" "기다리다뇨? 뭘 기다린다는 겁니까?" "지금 네놈 눈에서 빛나는 그 교만한 빛이 죽어 나자빠지는 날!" "교만한 눈빛이라뇨?" (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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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디로 네놈 눈빛은 거짓으로 가득 찬 것이야!" "(방백) 어렵쇼! 이 스님 이게 예삿놈은 아니로구나!" "(더욱 공손히) --- 좀더 쉬운 말로 일러 주십시요. 스님!" "이를테면 말이다. 진심으로 슬퍼하는 사람은 자신의 눈에 눈물이 어리기 전에 남을 울게 할 수가 있는 것이다. 진정으로 분노한 기상은 내가 눈썹을 찌푸리기 전에도 다른 사람을 두려움에 떨게 하는 법.
그 마음이 진실 되어 거짓이 없으면은 따로 어떤 격식이 소용없는 법이다. 예를 들자면 진실 된 마음으로 친구를 대하면 우정은 저절로 샘솟고, 진실된 마음으로 어른을 대하면 공경은 저절로 나타나는 것이고 진실된 마음으로 부모를 받들면 효도는 저절로 되어 지는 것이야.
진실된 마음으로 사양을 하면 겸손히 되는 것이고, 진실된 마음으로 한번 떨치면 저절로 무서운 용기로 나타나는 것!" (사내 말없이 일어나 한동안 멍청히 서 있다가 고개를 절래절래 내 두른다) 내가 졌죠. 난 두손 두발을 다 들었습니다. 무광스님은 천년 묵은 여우가 아니라 쪽집게 도사 였던 것입니다. 허지만 난 중놈이 되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나진 않았습니다.
(음악) 내가 왜? 내가 왜? 삭발을 당해야 하고 내가 왜? 먹 옷을 입어야 하고 내가 왜? 재미도 없는 불경을 외워야 하느냐구요. (사이, 오른손 바닥을 거울로 삼아) 거울을 마주해 보았더니 거기 거울 속에 내 모습이 떠올라 있더군요.
내가 빤히 내 눈동자를 노려보자 거울 속에 나도 내 눈동자를 빤히 노려보더군요.
다시 눈빛 --- 다시 내가 내 눈빛을 봤죠. 그렇습니다. 내 눈빛은 무한한 그리움 속에 잠겨 있었습니다. 내 눈빛은 무한한 욕망에 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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붙어있었습니다. 좋은 음식, 좋은 의복, 좋은 여자, 날개, 자유, 자유, 자유 --- 말하자면 내 눈빛은 중놈의 눈빛일수가 없었죠 "하하하--- " "(따라서 똑같이) 하하하--- " "히히히--- ""(따라서 똑같이) 히히히--- " "호호호--- " "(따라서 똑같이) 호호호--- " "미친놈!" "(따라서 똑같이) 미친 놈!" "불쌍한 놈!" "(따라서 똑같이) 불쌍한 놈!" "어설픈 땡초 중놈!" "(따라서 똑같이) 어설픈 땡초 중놈!" (사이 가상의 거울을 팽개치고 한동안 무대를 서성거린다.) 나는 거울 속에 비친 내 모습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제 아무리 흠집이 많았다손 치더라도 그것이 바로 내 인생이었기에 버리고픈 마음도 들지 않았던 것입니다. 푸른 들판, 기름진 땅에서 태어났던 한 떨기 민들레꽃이 여물어 열매가 맺어졌고 그 꽃씨 중의 하나가 일진광풍을 잘못 탄 바람에 훨훨 날고 날아서 첩첩산골 어느 바위틈에 떨어지고 말았듯, 그렇게 난 미처 예전엔 꿈도 꾸어보지 못했던 중이 되어 있었더란 말입니다. 난 감히 미국 대통령이 되길 꿈꿀 순 있었어도, 내가 스님이 된다는 가상만은 차마 할 수도 아니 한 적도 없었던 것입니다. 허지만, 운명의 여신과 적당히 타협하자는 게 아니라 난 일단은 그럴듯한 중이 돼야만 했더란 말입니다. 헌데 무광스님이 내 눈빛을 읽었으니--- 눈빛! 물론 눈빛이야 맑고 초롱초롱 영롱해야겠지만 과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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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산 어느 계곡에 있는 샘물로 이 눈을 씻어야 할지, 아니 어느 제약회사에서 만든 어떤 약을 복용해야 할런지 --- , 독경 "--- 정구업진언 수리수리 마하수리 오방내외 제신언 나무사말다 못다남 옴도로도로 지미자바하" 천수경도 소용 없더군요. (사이 한동안 승무를 춘다) 승무를 배웠어도 내 눈빛은 예전 그대로! 그렇다면 난 어떡한단 말이냐? 중도 못된 중이 절밥만 축내자니 그도 못할 일, 아, 어쩌다가 더듬이를 잃은 한 마리 메뚜기가 되고 말았단 말인가? "옛날 같으면 씹팔!" 참말로 옛날 같으면 온 동네가 떠내러가도 몇 번은 떠내러 갔을 텐데--- (옛날 회상-노래-음악이 흘러가며 과거, 현재 불만과 불안 미래) 원래 난 동해김씨 문중의 삼대 외아들, 적어도 천석군은 좋이 되었던 부자집의 외공자, 그러니까 나는 철부지 시절부터 내 맘대로 갖고 싶은 건 다 가지며 자랄 수가 있지 않았겠는가? 아니 이 세상 모든 것이 오직 나를 위해서만 존재 가치가 있었던 것, 이를테면 골목길에 노니는 이웃집의 병아리가 내 눈에 예뻐서 동무하고 싶으면 나의 부모님은 잽싸게 그것들을 내 손에 사다 바쳤고, 이웃집 마당에 핀 장미꽃이 탐스럽다 하면 기어이 부모님은 그 장미꽃을 우리 집 꽃밭으로 옮겨 심어주지 않았겠는가? 내가 돌멩이로 어느 집 장독을 깨트리는 것쯤은 이웃집 아이들이 구슬하나 깨뜨리는 정도의 예사로운 장난이었고 내가 무슨 고집을 피우거나 떼를 한번 썼다하면 그것은 나랏님의 노여움이나 다를 바 없어 내 부모님은 끝내 내 앞에서 두 무릎을 꿇었거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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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러고 보니 단 한번 예외가 있었군요. (사이) 일곱 살 때였던가? 이웃집의 기집아이 거기를 장난 삼아 꼬챙이로 피가 나도록 쑤셔대고 있었죠, 그런데 때늦게 그 광경을 목격하시고 사색이 되셨던 어머니, 그날 어머니는 무엄하게도 이 절대군주의 빰을 후려치셨조, 물론 난 걸판지게 울음을 터뜨리며 어머니의 사죄를 벌었건만--- 어떻게 된 일인지 그날 그 사건 앞에서만은 어머니도 이 절대군주의 고집을 두려워 할 줄 모르고 굴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더군요. 하, 굴복은 고사하고 어머니는 나를 감히 패죽이기라도 할 듯! 난 그때 처음으로 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얼굴은 바로 어머니의 얼굴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던 겁니다. 또 난 비로소 금기사항 제일호를 명심하게 되었으니--- "아, 거기엔 꼬챙이로 장난치는 데가 아니로구나!" 물론 십여 년쯤 후에야 재삼 깨달았지만--- 아니- 어쩌면 어린 날의 그 금기사항에 대한 보복심리 때문이였는지 훗날 숱한 여성편력의 소유자가 됐는지도 모를 일이랍니다.
여자! 나에게 있어 여자는 통조림과도 같았습니다. 달콤한 내용물로 내 불타는 욕정을 채우기 바쁘게 난 빈깡통을 차버리는 쾌락 또한 즐겼으니까요. 아니 난 한 마리의 나비처럼 숱한 꽃을 더듬으며 꿀을 즐겼던 것입니다.
나에게 더럽혀진 여자들 꼴이라니--- 혹은 울고, 혹은 자살소동을 벌리고, 혹은 죽기살기로 매달리고, 혹은 피장파장으로 돌아서고 혹은 저주, 증오를 퍼붓고--- 아마 내 부모님이 내가 저지르는 갖가지 불장난의 전문 뒤 수습책으로 나서주지 않았다면은--- 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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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대로 살아 남을 수도 없었을 겁니다. 그런데 문제의 해결사, 즉 미덥던 내 부모님이 그야말로 어느 날 교통사고로 졸지에 이 세상을 떠나고 마셨으니--- (사이) -장례의식- 아아-- 난 그때까지 어머니 형제 중에 비구니가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는데--- " "--- 너 이 이모를 따라 산으로 가자!" "예 이리 이모라뇨?" "내가 니 이모야 그간 산에 있어서 넌 몰랐던 모양이구나" "산! 산엔 왜요?" "너도 중이 돼야 한단다" "네? 중이요? 이모님도 참, 농담도 분수껏 하실 일이지 --- " "참 그리고 부모님의 재산은 모두 내 앞으로 등기 돼 있단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내가 네 부모님 임종을 했어! 그때 그렇게 된 것이란다!" (사내 한동안 멍청해졌다가) 빌어먹을! 난 어느 사이 이모님에게 코가 뀐 망아지 꼴이 되어 있었고, 적당히 중이 되어 이모님으로부터 "그만하면 이제 안심이구나!" 하는 인정을 받고 나를 붙잡아 맨 고삐가 느슨해지면 "영광의 탈출"을 시도하고자 열심히 중이 되려했는데, 유광인지 무광인지 하는 스님께서는 또 눈빛으로 트집을 잡고 있으니--- 빌어먹을! 될 대로 되겠지! 설마하니 이모님이 남의 재산 털어먹기야 하라구, 무광도 그렇지! 애시당초 내 눈빛이 글렀으면 왜 이런 꼴을 만들어? (사내 반드시 누워 팔 베게를 한다. 그리고 조용히 노래를 한다) "바람이 부네요 꽃이 피네요! 새들은 쌍쌍 나비는 훨훨 짝을 찾는데/ 어찌하여 나 혼자 적망강산이런가 / 내 님은 어디서 무엇을 할까/"(사내 노래하다 말고 후다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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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어나 무릎을 꿇고 앉는다) "부르셨습니까, 무광스님?" "그래. 내 깊이 생각해 본바 있어 그러는데 넌 당분간 비렁뱅이가 돼 보거라!" "네? 비렁뱅이라뇨? 거지 아니 거지라면 거렁뱅이를 말하는 겁지까, 스님?" "그러고 보니 국어공부는 꽤 참하게 했구만! 저 경상도 쪽에서는 비렁뱅이를 거렁뱅이라고도 부르지!"(웃으며) 스님! 아무려면 제가! "아! 비렁뱅이씨가 따로 없어! 시험을 쳐서 비렁뱅이를 선출하는 것도 아니고!" "(방백) 아이구! 저 무광스님 요상타했드니--- " "왜?" "제가 왜 별안간 거기새끼가 돼야한단 말씀이온지?" "그건 차차 알게 될거고!" "(방백) 차차 알어? 무얼 차차 알어? 빌어먹을! 맘대로 갖고 노슈!" "--- 네놈 눈은 정작 봐야 할 것은 못보고 보지 않아도 괜찮은 것들만 많이 봐왔던 게야" "스님! 전 처음부터 중이 될 소질은 정말 없었지만--- 비렁뱅이가 될 소질은 정말 없습니다." "시험을 쳐서 비렁뱅이를 선출하는 게 아니래도 그러내?" "(방백) 그래요, 시험이 있다면 영락없이 난 낙제에요" "거지가 된 네놈을 두고 세상은 냉혹하게 괄시를 할 것이다. 그래도 너는 그들과 다투지 말거라, 비렁뱅이 입장이라는 것은 원래 없는 것, 또 네놈을 심히 괴롭히는 자가 곧 훌륭한 스승이란 것을 명심하거라! 원래 시비를 가리려들면 온 천하가 시빗거리고 참고 배우려들면 온 천하가 다 스승인 법" "(방백) 그러니까 무광스님 당신이야말로 날 심히 괴롭히니 스승중의 스승이란 말씀이군요. 빌어먹을 대사부님!" (사이) "다시 한 번 당부 하지만 소를 잃고 강아지를 얻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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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아라, 네놈은 불가의 계를 그르쳐서도 안되고 무슨 일이 있어도 중노릇을 해서도 안된다.
네놈은 단지 비렁뱅이 그뿐, 승려증 여기 내놓고 저기 목포에서부터 시작해서 강릉 속초까지 한바퀴 빙 둘러 오도록!" "그럼 여비는?" "이런 발칙한 놈! 여비 챙겨서 비렁뱅이하는 놈이 어딨어?" "그렇군요!" "결심이 섰으면 어서 서둘러! 일어?? 이것 봐 비렁뱅이 옷이며 신발등을 시장터에서도 못 구하는 거니까 스스로 구하도록 해라" "그렇군요" "결심이 섰으면 어서 서둘러?"
- 음악 -
(사내 일어서서 관객을 향해) 무광스님을 중도 아닌 중이 절밥만 축낸다고 날 쫓아냈던 겁니다. 깡통까지 스스로 구하게 한 다음--- (사내 퇴장, 한동안 음악만이 흐른다. 이윽고 거지 차림의 사내가 깡통을 들고 등장한다) (몽땅 숟가락으로 깡통을 두들긴 다음) --- 중 아닌 중에서 난 다시 거지 아닌 거지가 되어 어렸죠. 아니 난 비렁뱅이! 스스로 그렇게 수십 수백 번 다짐을 했죠. (관객을 향해) 어때요! 거지같아 보여요? (*이때 사내는 관객들의 반응에 적당히 응해줘야 한다) 그런데 말이 쉽지 비렁뱅이 된다는 것도 무척 어렵습디다. 비렁뱅이 전문 의상실이 없다는가 비렁뱅이 생활용품을 파는 가게가 없다는 것보다는 (깡통을 두들겨 보이며) 이놈 정작 어려운 건 거지다운 목소리를 갖는다는 것 "(공갈 조로) 밥한 줄 줍쇼! 이건 공갈조, (정상적인 어조로) 밥 한 줄 줍쇼!" 이건 맞겨 놓은 내 밥그릇 달라는 격이 되고 연주적으로 밥 한 술 줍쇼 하며 당장 동정과 연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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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 정을 앗아낼수 있도록 "(거지답게) 밥 한 술 줍쇼!" 이 얼마나 어려운 과제냐구요. 이날 입때까지 남에게 동정이나 사정을 해본 적이 말을 단 한 번도 없든 내가 "(거지처럼) 밥 한술 줍쇼!" 글쎄, 꼬박 열흘이 걸리더라니까요. 아, 연습이 그러할진데 실제는 또 얼마나 어렵겠습니까? 환장! 네 환장을 하지 않고서는 그 짓거리를 못할 것 같아 나는 환장 할 때를 기다렸던 겁니다. 말하자면 캄캄한 밤중에 산에서 기어 내려와 무작정 걷고 또 걷고 어떤 때는 뛰기도 했습니다. 제깐 놈의 배가 고프다 고프다 죽을 지경이 되면 환장하지 않겠느냐는 계산이었죠. 때마침 여름철 그래도 노숙의 편리함은 있어서 무광스님 모질기는 해도 인정사정은 조금 있구나 싶었죠. (사내 처량한 심사로 노래한다) "오늘도 걷는 다마는 정처 없는 이 발길/ 지나온 자죽마다 눈물고였다 / 선창가 고동소리 내 님이 그리워도/ 나그네 걸을 길은 한이 없으라/" 생각을 하고 보니 인간이 거지가 된다는 것은 (깡통을 두들기며) 이 빈깡통처럼 된다는 것이나 다를 바 없더군요. 또 인간이 옷을 입는다는 건 사타구니를 감춘다는 단순한 의미말고도 대단한 상징적 의미를 내포하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거지꼴을 하고 보니 세상사람들은 하나같이 날 비렁뱅이로만 취급할 뿐, 인격이고 나발이고 그런 건 아예 묵살하더란 말씀입니다. 그리하여 난 하나의 텅 빈 깡통에 허기진 한 마리의 동물이 되어 가더란 말씀, 남는 것은 오직 삶의 본능, 해가 늬였늬였 서산마루에 걸릴 즈음 난 다리도 아프고 배도 고파 미치고 환장, 거지가--- 진짜 거지가 돼버리더라구요. 뭘 좀 얻어먹어야 겠는데--- "밥 좀 줍쇼!" 하는 그 기막힌 대사를 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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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가 도래했는데 가만있자 어디서 어떻게 시작한다? 꼴에 또 우라질 놈의 경구는 "잘 줄 것 같은 집은 피하고 맛있는 것을 줄 것 같은 집도 피하라!" "차례대로 일곱 집에서 밥을 빌어라!" 했으니--- 이윽고 대문을 두드릴 시간! (가상의 대문을 두드리려다) "두드려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 하고 예수는 우리 비렁뱅이들에게 용기를 선사했지만 역시 어려운 일이구나, 무슨 염치에 코치가 있고 체면이 있나?
(가상의 대문을 두드린다) 탕, 탕, 탕, (사내 가슴 조이며 기다린다.) 빌어먹을 일가족 집단 자살이라도 했단 말인가? (다시 가상의 대문을 두드리며) 모두 귀먹어린가? 얼마만 인가, 한 두어 시간을 족히 지나갔을 때, 드디어 대문이 열리기는 열렸는데--- 첫 손님 치고선 이건 걸작이더군요. 글쎄 허공에서 금방 떨어진 메주덩이같은 여편네 하나가 대문을 삐껏 열고서 메주만 네놓고 한다는 말씀이--- "워메! 무슨 거지가 이렇당가?" (가상의 대문을 닫으며) 난 또 대문에 벼락이 떨어지는 줄 알았구만 잉!" (방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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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그락, 달그락 거지밥상 챙기는 소리가 들려오잖아? 아, 그 역사적인 순간이라니--- 내가 생전 처음으로 거지밥상을 받아 들던 그때의 그 감격 말입니다.
깡보리 밥 위에 김치 국물 엎지른 한 사발의 식사! 그렇다치고!" 또 그 놈의 양재기, 이건 개밥 그릇도 못되고 돼지우리에 딩겨나 퍼붓던 알미늄 그릇 바로 그것이었으니--- (소리내어 웃고) 하늘에서 떨어진 그 메주덩이, 거름 밭의 그 호박성님--- 내 비록 팔자 기구하여 당분간 거지가 되긴 되었지만--- 그런, 상판이라면은 자기가 먼저 치마끈을 풀면서 추파를 던진다해도 내편에서 "노오!" 할 판인데 아 또 이러지를 않겠어요? (사내, 그 여편네의 흉내를 낸다. 이를테면 마치 징그러운 벌레를 쫓아내려는 듯 고개를 돌린 채 팔 하나만 내밀어 밥을 넘게 준다)
까짓 거! 데리고 살 여자도 아닌터라. 텅 빈 거지새끼의 순대 채우는 일이 급해서 얼른 내미는 밥을 챙겼지요.
경에 일곱 집의 밥을 빌라는 말씀은 고대 인도사회의 형편이고, 호박성님 또 손 한 번 커서 깡보리 비빔밥이 이 깡통으로 하나 수북하더란 말씀. 이윽고 나는 야산 호젓한 곳을 찾아 음식 그릇을 독차지한 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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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끼처럼 (행동과 함께) 이렇게 펑퍼지게 앉아 척하니 기도를 올렸던 것입니다. "(합장 배례를 하고) 제가 오늘 이 밥을 먹는 것은 맛을 즐기고 건강하기를 바라서가 아니고, 오직 이 몸뚱아리를 지켜서 하루속히 부처님이 깨달으신 바와 같이 도를 닦기 위해섭니다. 이 밥 한톨이 이뤄질 때까지 수없이 많은 중생이 피와 땀을 흘렸음이니 제가 지금 이 밥을 먹고 열심히 공부하여 그들의 은혜를 갚기로 맹세 맹세합니다--- " 먹다말고, "아이고! 이건 완전히 식초구나 그 메주덩이, 그 호박성님, 전생에 나랑 무슨 악연이 있었다고 글쎄, 치사하게 내민 밥 한 그릇이 그나마 쉰밥에 김치 국물뿐이니--- 내다 버리다간 부처님한테 혼 줄이 날것만 같고, 남길 수도 없는 터에다가 실은 두 번째 대문을 두드릴 기력조차 없으니! (배를 만진다) 아 배야, 아이고 배야 마지막 숟가락을 놓기도 전부터 꾸럭꾸럭 쪼록쪼록--- (음악으로 춤으로) 오장육부 속에서는 지랄발광 난리부터 터지서는--- (행동과 함께) 아이구. 아이구 복통에 설사라! 아이고 나 몰라 나 몰라 줄줄줄 줄줄줄--- 감당이 불감당이라 나는 우선 약방을 찾아 배탈 약부터 구걸해야 살겠다고 한 손으로 이렇게 (항문을 막으며) 밑구멍을 막으며 단거리 선수처럼 기를 쓰고 달려가야 했는데, 제기랄! 어느 새 구린내를 맡을 동네 개들이 일개 사단 병력처럼 총공격을 개시하지 않았겠어요? (사내 독살스런 개가 되어 울부짖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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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개들에게 쫓긴다. 이윽고 한 손으로 뒤를 막고 두발과 한 손으로 개를 쫓는 사내의 처절한 모습이 점차 춤으로 변한다. 잠시 후, 춤을 끝낸 사내, 기진맥진하듯 그 자리에 펄썩 주저앉는다) --- 언젠가 히처콕크라는 스릴러물의 거장은 새들을 공포의 대상으로 남아 영화를 만든 일이 있었는데--- 마마 히치코크가 거지 생활을 해보았더라면 새들이 개들로 변했을 것입니다. 난 그놈의 개새끼들 때문에 생똥을 싸다못해 피똥까지 쌌으니까요. 그놈의 개새끼들은 하나같이 "저런 거지새끼는 물어 죽여도 뒤탈이 없다"는 사실을 익히 알고 있었는지, 아니면 저희들의 양식을 우리 거지가 축낸다는 사실 때문에 그런 것인지 아니면 주인들에게 과잉충성을 보이고자 그러한 것인지 하여간 개들은 거지들의 천적이나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하긴 개들에게 우리 거지야말로 만만한 상대였죠. 세무서 무서워서 장사 못해먹겠다는 말처럼 개새끼들 더러워서 거지노릇도 못 해먹겠다란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거지행각은 정작 개새끼들과의 싸움에서 비롯 외었다가 개새끼들과의 싸움으로 끝이 나는 거였죠. 십중팔구 "밥 합 술 줍쇼!" 하는 대사는 냉큼 똥개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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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 앙! 딴 데 가서 알아 봐! 우리 집에는 너 줄 밥이 없응깨, 앙, 앙!"(일어나서) 아, 어찌 개새끼들뿐이었을까요. 우리 비렁뱅이한텐 사람새끼들도 다를 바가 없었단 말입니다. 동네 아이들 눈에 우리 비렁뱅이는 외계인 이티 만큼 신기했거나 아니면 배추머리 인형만큼이나 괜찮은 노리개 감이었다구요. 어느 고을 어느 동네를 막론하고, 거지가 떴다하면 금새 구름 떼처럼 몰려오는 아이들! 그들은 하나같이 각설이 타령으로 날 골려먹던가 막대기로 찝적찝적 마치 징그러운 뱀 대가리 약올려 보듯 나를 건더래 놓구선 용용 도망만 쳤으니--- 어느 땐 어이가 없어 내가 웃으면 아이들이 하는 말이--- "엘레레, 거지 새끼도 웃는다? 까르르, 까르르--- " (사이 두었다가) 하기야 사돈 남말할 필요는 없겠죠. 부처님은 이런걸 보고 인과응보라 했다지만 거기까진 모르겠구. 너나없이 사람들은 무심코 나는 행위일지라도 큰 후회를 하게된다는 것만은 사실이더군요. 네. 나 역시 어린 시절엔 비렁뱅이 깡통 속에 돌맹이도 던져 넣고, 쇠똥도 집어넣고 언덕 위에서 비렁뱅이 대가리를 향해 오줌도 갈겼단 말씀입니다. 지금도 선히 기억할 수 있지만--- 어느 봄날 이든가? 난 각설이 한패거리를 붙잡아 두고서 한나절이나 각설이 타령을 시켰답니다. 점심 저녁 대접한다는 조건하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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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씨구 씨구 들어간다. 저절 씨구나 들어온다. 작년에 왔던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왔네. 일저나 한자 들고 보니 일선에 가신 우리 낭군 돌아오기는 영 글렀네. 이자 한자 들고 보니 이승만이가 대통령이요. 함대영이가 부통령" 아, 그놈의 구성진 각설이 타령과 해괴한 그들의 몰골이 어떻게나 재미있던지--- 마침 부모님들이 없는 틈을 타서 머슴들을 들러리로 세워 놓고 수십 번이나 각설이 타령을 리바이블 시켰으니--- 나중에 있잖아요. 그 착한 각설이 패들도 머슴들 지게 막대기 아래서 눈물 콧물을 흐리며 신세한탄까지 하더라니까요.
"(울면서) 얼씨구 씨구 씨구 들어간다. 저절 씨구나 들어온다. (훌쩍훌쩍) " (사이 두었다가) 또 있군요. 비렁뱅이 생활에 무슨 휘황찬란한 에피소드 같은 거야 있겠습니까 마는 더럽고 치사한 얘기라면 각설이 타령처럼 끝없이 이어지고 말구요.(사내 앵- 하고 모기 흉내를 낸다) 그 놈의 모기, 낮이면 개새끼 사람새끼들과의 전쟁이 연속상연 이었고 밤이면 모기들과 혈투를 벌래야했단 말씀. 그놈의 모기 때들! 도대체 나를 만나기 전에는 무얼 빨아 처먹고살았는지 이 몸의 냄새를 맡고서는 수천 리 수만 리 밖에서도 원정을 오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만난 모기 때들은 흡사 걸신들린 비렁뱅이들처럼 죽기 살기도 구름처럼 바람처럼 몰려 오더란 말씀이죠. 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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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의 시체를 넘고 넘어 전진에 전진을 거듭하는데--- 모기들의 사전에는 아예 작전상 후퇴 같은 것도 없었다구요. 앉으나 서나 누우나 걸으나 마찬가지더군요. 놈들은 남의 사정 아랑곳하지 않았고 그야말로 악착같이 피만 강요하더군요. (볼을 치며) 여기가 따금! 하는데 (정갱이를 치며) 여기가 따금. (팔을 치며) 여기도 따금! (다시 반대편 팔을 치며) 여기도 따끔! 허벅지도 따끔! 목덜미도 따금--- (점점 더 빨리 아무 데나 치며) 따끔. 따끔. 따끔.--- (드디어 사내와 모기와의 싸움이 춤으로 변한다.) 그러나--- (고개를 내저으며)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존재는 바로 사람이었습니다. 철이 들 데로 다든 멀쩡한 어른들! 배울 만큼 배웠고 나름 데로 올바른 판단력, 확고한 가치관을 가졌다는 사람들 그런 사람들은 내 행색이 거지니까 "밥 한 술 줍쇼!"하는 소리를 그냥 그런 소리로 받아넘길 뿐 그 이상 아무런 관심도 없었습니다. 고향을 묻는 사람도 없었고, 성씨를 묻는 사람도 없었고, 어쩌다가 거지가 됐느냐고 묻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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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 한 술 주보쇼!" 했을 때 쌀밥을 원하느냐, 깡보리밥을 원하느냐 혹은 먹다 남은 칼국수도 괜찮으냐는 식의 친절을 구걸하고자 하는 소리가 아닙니다. (차겁게) 그렇다 해도--- 최소한 거지도 사람이란 사실을 인정한다면-- 사람이 사람의 소리를 거부한다면--- 그건 비극이 아닐 수 없다는 말입니다. 그러니까 문제의 그날 초저녁에--- 난 어느 시골의 신작로를 한가히 걷고 있었습니다. 그날 따라 인심 좋은 아줌마 덕택에 꽤나 괜찮은 식은 밥과 날된장 풋고추로 배를 채운 뒤였기에 난 여유를 갖고 낯선 신작노를 활보하고 있었습니다.
금방 비라도 쏟아지려는지 후덥지근 덥기도 했으나, 그런 날은 또 모기떼들의 극성이 사나운 지라 나는 은근히 그들과의 일전을 염려하여 나름대로 전렬을 가다듬던 중이었죠.
굳이 밝히자면 길가에 버려진 비닐조각들을 주섬주섬 주워 모아 내 뒤꽁무니에 꿰어 찾다는 말입니다. 모기의 기총소사를 막아 보라는 심사이었죠. 그 때--- "사람 살려--- " 어디선가 찢어지는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긴장되어) 아니--- ?" 여인의 비명소리는 (가르키며) 저만큼 떨어진 야산 숲 속에서 새어나고 있었습니다. 나는 단숨에 그곳으로 달려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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휙! 시커먼 그림자 하나 바람처럼 날아가 버리더군요. (현장을 보는 듯) --- 한 여인이 쓰러져 있었는데 --- 옷들이 찢겨져 있었고 한눈에 강제추행을 당했다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가상의 여인의 옷매무새를 고쳐주며) 나는 대강 여인의 옷맴세를 고쳐 주었습니다. 그리고 기절한 사람에겐 찬물이 특효약임을 연상! (사내 급히 서너 번 무대 밖으로 들락거리며 입으로 물을 날라 와서 가상의 여인 얼굴 외에 품는다) (허공을 향하여) 거지꼴에 사람을 살린답시고 미쳐 날뛰었던 거죠. "(공포에 질려 꿇어앉으며) 아, 아닙니다. 아네요. 전--- 전 아녜요!" 어느 틈에 나는 건장한 청년 서너 명에게 완전 포위가 외어 있었고, 그들은 나를 강제추행에 살인무수범으로 단정해 버렸던 것입니다. 그런 틈에 여인은 안전지대로 옮겨졌고--- "(무수한 발길질을 당하며) 아녀요. 제발, 제발 제 말씀 좀 들어주세요. 사실은 나 아니었으면 댁의 동생은 죽고 말았단 말입니다. 난 범인이 아니라니까요. 절대로, 절대로--- " (사내 고통의 춤을 춘다. 끝내 사내는 쓰러진다.) "인자--- 비가 내렸던가 봐요. 빗물 때문에 의식은 되찾았지만--- 난 산송장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몽롱한 의식. 결국 난 우습게 맞아죽고 마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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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어먹을! 빌어먹을! (노래-당신은 왜 웃고 있는가? 진정 당신은 기쁨이 무엇인지 알고 있는가 말씀해 보오 대답해 보오 진정으로 기쁨이 무엇입니까? 오늘도 저 하늘엔 해가 떠 있오. 오늘도 저 하늘에 달이 별이 떠있잖아요. 서러운 이 세상. 슬픔 속의 이 세상 당신은 왜 울고 있는가 아름다운 이 세상 당신은 왜 울고 있는가) (무대 조명 꺼졌다가 한참만에 다시 밝아진다. 사내가 병원의 환자복 차림으로 앉아 있다.) "여기가 어디죠? (자신의 환자복을 휘둘러보며) 아니, 이 옷은 어떻게 된 거죠?" "불태워 버리다뇨? 그럼 전 어떻게 밥을 빌어 먹나요?" "아, 아닙니다. 아녀요. 전 비렁뱅이가 틀림없어요. 전 영락없는 거지라구요. 어서 제 옷을 주세요. 어서요!" (일어나서 관객을 마주 한다) --- 만약 부처님의 원력이란 것을 믿기로 한다면--- 바로 그 날 밤, 이 어줍잖은 생명의 소생, 그것이 증표라고나 할까요? 그 날 밤, 난 분명 죽어 있었는데 나라는 송장 위로 많은 비가 내리지 않았더라면--- 때마침 그 신작로를 지나가던 승용차 한 대가 없었드라면--- 그렇죠, 그 날 밤의 내 생명은 사소하기 짝이 없는 우연의 일치로 다시 빛을 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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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명) 그러니까 난, 어떤 여인내에 의해서 병원에 옮겨졌는데--- 빗물에 거지 화장이 씻겨지고 거지의상은 어둠 속에 묻혀 버렸던 까닭이었겠죠. (사이) 그런데 어쩌면 생명의 은인이요, 올드 미쓰인 그 아가씨가 말입니다. 내가 거지라는 사실을 믿으려 들지 않았습니다. "선생님께선 그 가슴속에 어떤 깊은 사연을 간직하고 계시는 것 같아요. 물론 궁금하지만--- 굳이 묻고 싶진 않아요. 그렇지만 제가 선생님의 외로운 영혼을 달래주고 싶어요. 이건 동정이나 호기심에서가 아녜요. 아니 자고 있어요. 전 돈도 꽤 많은 여자예요. 제 아버님께서도 대단한 사업가예요. 아, 돈 사랑이 아녜요. 그보다는 뜨거운 제 마음이 있다는 거예요. 선생님, 선생님의 눈빛은 너무너무 맑아요. (두 눈을 껌뻑거리다가 한동안의 침묵) 이놈의 팔자 속엔 왜 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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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치고 환장할 일이 많았을까요. 꼭 어머니 같은 타잎--- 녜, 난 그 여인을 처음 대화면서 어머니를 연상했고, 어머니를 잃은 이후 처음으로 그녀에게서 아늑한 분위기를 느꼈습니다.
진작 내가 그런 여자를 만났더라면 아마 난 그 품에 푹 빠져 영영 헤어나지 못했을 거라구요. 난 그 여인을 대하면서 남녀간의 인연을 다시 생각했고 "배필이란 과연 있는 것"라는 생각을 갖게 되었던 것입니다. 다시 고백 하지만--- 그때까지 나는 사랑스런 관계의 분위기가 그토록 신비하고 달콤한 것인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어머니와도 같은 여자--- 때로는 은은하고 때로는 황홀하고 때로는 신선한 분위기를 풍기는 여자! 난 그 여자의 품에 안겨 엉엉 울면서, 어설픈 중노릇, 어설픈 거지 노릇이 없다고 말해버리고픈 충동을 몇 번이나 느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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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니 어머니 품에 안겨서는 모든 것을 잊어버릴 수가 있듯이 나도 그 여인의 품에 안기기만 하면 오직 행복할 것만 같았습니다. (사내 노래를 한다) 그런데--- 그런데 말입니다. 내 마음 한쪽 구석, 저 깊숙한 어느 한곳에서는 내가 그녀에게서 도망쳐야 한다는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습니다. 그 소리, 지금까지 들어 본 적이 전혀 없는 신비의 소리 바로 그런 것이었어요. (두 손으로 머리를 쉽싸쥐며) 알 수가 없었어요. 알 수 없어요.(괴로움) --- 어쩌면 봄날 꽝꽝 언 땅 속에서 막 새로 돋아나는 새 싹의 연약한 빛깔과도 같은 그런 의식에 불과 했던 거예요. 아니 새로이 움트는 소리 같았다고나 할까요? 그런데 그런 빛깔 그런 소리가--- 그 누구에게도 보이고 싶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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않은--- 또 보일 필요도 없는 그저 나만이 아끼고 싶은 무엇, 바로 그런 것으로 절실해지기 시작했던 거예요. 그런데 연약한 새순이 땅껍질을 뚫고서, 기어이 태양을 맞이하듯--- 내 가슴속의 작은 소리가 드디어는 바위만큼이나 여물고 큰 결실을 이뤄냈던 것입니다.
(사내 환자복을 벗고 거지처럼의 옷을 찾아 입는다) (옷을 갈아입으며) 내 손을 놓기가 못내 아쉬워 뜨거운 눈물을 주룩 흘리며 그래도 다시 한번 내 가슴에 매달려 보던 그 와이양을 뒤로하고 나는 홀연히 그 병원들 떠났습니다. (사내 거지 차림을 서서 양팔을 벌려 본다) 그날 그때의 내 모습, 그게 바로 부끄러움 없는 제 모습이 아니었을까요? 아니라면, 사랑이란 결국 하나의 속박이며, 난 진정 자유로와 지고 싶었기 때문이었을까요? 네! 사랑이란 하나의 약속이고 속박이라 했습니다. 내가 내 마음에 다짐을 하는 것이고, 내가 내 마음을 꽁꽁 묻는 속박이라 했습니다. 아! 비로소 생각났지만 인욕의 도라던가요? 참을 수 있는 일을 참는 것은 인욕이 아녔습니다. 참을 수 없는 일을 참아 내는 것이 인욕이라 했습니다. 네. 그때쯤에야 비로소 나는 깨달았던 겁니다. 무광스님이 내게 내린 과제가 인욕의 도를 깨트리는 가르침이었다는 것을! 그 여인의 손을 놓기란 그 여인의 손을 잡기보다 더 어려운 일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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었으므로 난 그 손을 놓았는 지도 모를 일입니다. 감히 비유하건데 석가모니불이 욕욕을 자극하는 가리왕의 시녀들의 춤 앞에서 스스로의 정념을 억제 할 수 있었던 힘이 그러했으리라 여겨집니다. 감히 비유하건데 석가모니불이 가리왕의 칼 끝에 사지육신이 잘려나가면서도 그 아픔 그 고통을 참을 수 있었던 힘이 그러했으리라 내게 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여인을 뒤로 하고 내가 다시 본 대의 비렁뱅이로 돌아왔을 때 난 비로소 내 자신의 그림자를 발견 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자유롭고 허허로운 그림자. 나는 그제 나일 뿐 그 외 아무 것도 아녔습니다. 비렁뱅이 옷이야 말도 편안하기 그지없었습니다. 말하자면 나 같은 놈도 어처구니없이 우습게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체험했기에 산다는 것이 그다지 확실한 것으로 느껴지지가 않았던 것입니다. 난 지금 당장에라도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진정 깨달았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산다는 것은 무엇이냐? 그렇다면 내가 가졌다는 것은 무엇이냐. 네. 죽음이 별 것 아니라는 의미를 깨닫고 보니 산다는 것 또한 별 것 아니라는 사실도 깨닫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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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지금 당장에라도 죽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보니 내 마음속의 모든 응어리가 일시에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러니까 나는 내 스스로 허망하기 이를 데 없는 갖가지 그림자의 영상에 꽁꽁 묶어 두고 있었던 것입니다. 비렁뱅이 옷을 입은 내 눈에 세상 사람들의 모습이 새롭게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도대체 무엇들을 위해서 저리도 악착같이 삶에 집착하는가? 명예는 무엇이며 권력은 무엇이며 돈은 무엇인가? 과연 그러한 것들이 진정 내 것이고 내 소유가 될 수 있단 말인가? 아! 그간 비렁뱅이 나를 괄시하던 모든 사람들을 무조건 용서하고 싶다. 그리고 나는 감사하고 싶다. 한줄기 햇빛에, 한 자락 바람, 시원한 한 모금의 냉수, 감사하고 싶다. 길가에 되어있는 이름 모를 한 송이 들꽃, 들풀에게도 감사하고 뜨거운 눈물을 흘려주고 싶다. 나로 인해서 가슴 아팠던 사람들로부터는 용서를 받고 싶구나. 만약 그 들이 나를 때려 죽여야 분이 풀릴 일이 있다면 나는 기꺼이 내 목을 그 들 앞에 내 놓아 주고 싶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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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 난 공연히 이 세상을 향해 원망도 많이 했는데--- 지금 와서 생각하니 난 오직 신세만 졌을 뿐--- 난 이 세상과 이 세상 사람들을 위해서 아무 것도 한일이 없구나. 깡보리 식은 밥덩이를 던져주던 그 메주덩이 아줌마--- 그때 나는 그 여자를 욕해주고 있었지만--- 과연 나는 그 아줌마에게 무엇을 베푼 적이 있었단 말인가? 내 마음속에서는 사소했던 두려움이나 비굴한 생각들이 멀어져가고 있었습니다. 무섭게 덤벼들던 끝까지 따라 다니며 나를 골리던 동네아이들--- 나는 그들의 그러한 생리를 원망하지 않기로 했던 것입니다. 그러한 내 마음, 그것을 일러 겸허한 마음이라 한다면--- 난 다시 겸허하고 겸손한 비렁뱅이가 되고 싶었던 것입니다. 비로서 더도 덜도 아닌 그냥 그대로의 거지목소리로 "밥 한 술 줍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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했을 때 오이 쪽을 닮은 아주머니들도 말없이 밥 한덩이를 내 깡통 속에 보시해 주었습니다. 내 가슴속에 감사의 정이 자리 잡히자 세상은 그래도 은혜로운 곳이더군요. 하지만 이 세상은 비렁뱅이 천지일수 만은 없는 것. 나 혼자 은혜만을 입으며 편안할 수만은 없는 것.
아니, 난 스스로 병원을 탈출하여 비렁뱅이로 돌아오듯--- 또 다시 중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해 여름은 유난히도 뜨거웠는데 그러다 보니 난 과연 물가를 가까이해서 걸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름 물가는 동네 개구쟁이들의 놀이터가 아닙니까? 어느 저수지가를 걷고 있었데 고만 고만 또래아이들이 물장구를 치며 수영을 하고 재미있게 놀고 있었습니다. 헌데 조금 떨어진 한쪽을 보니 꼬마녀석 하나가 물에 빠져 허우적거리는 것 같았습니다. (긴장하여) "아니, 저게--- "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얼른 그쪽으로 달려갔습니다. -음악-춤-노래- 고만 고만 또래 아이들이 이래저래 야단법석이었지만--- 그들은 속수무책. 물에 빠진 아이는 그 저수지의 물을 이제 실컷 먹었다는 듯 수면 위에 벌렁 나자빠져 둥둥 떠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래, 자것이 다시 갈아 앉으면 끝장이다." (사이 두었다가) 아, 그런데--- 또 그런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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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아닙니다. 저 아인 얼른 인공호흡을 시켜야 합니다. 저 아인 얼른 물을 토해내게 해야 해요." "허허 얼릉 저리 꺼지라 칸이! 뭔 놈의 거렁뱅이가 말이 이러케 많노""안됩니다. 안돼요. 제가 알기는 병원은 여기서 남키로는 좋이 되는데--- 그러다간 저 아이를 잃고 맙니다. 제방 이 아이를 제게 맡겨 주십시오. 이래 뵈도 전 옛날에 의무병을 했습니다. 인공호흡쯤은 문제없단 말예요!" "보래이, 니는 고마 니 볼일이나 보거라! 이 아이는 우리가 알아서 잘 할기다!" 그러니까 그 아이야 죽던 말던 비렁뱅이 나에게는 그 아이의 생명을 맡길 수가 없다는 것. 그들은 무작정 그 아이를 들쳐업고 병원으로 가겠다는 것이였습니다.
비렁뱅이가 무슨 놈의 처방이며 인공호흡을 할 수 있단 말이냐! "야, 거렁뱅이 니 말이다. 야가 죽으마니 니 새끼가 죽는다 카더나? 을릉 꺼지거라. 이 더러운 놈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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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 (사이) --- 난 두 눈 빤히 뜨고서 내가 충분히 살릴 수 있는 아이가 죽어 가는 꼴을 지켜보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내가 비렁뱅이 꼴을 하고 있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사내 거지 옷차림을 벗어 던지고 승복을 차려 입는다.) 보지는 않았지만 너무나 명약관하한 그 아이의 죽음 앞에서 난 거지 신세의 한계를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내가 무슨 보살이거나 가련한 중생제도에 나설 운명을 타고났다는 건 아니다 해도 거지 옷을 입고 서는 내가 충분히 베풀 수 있는 능력도 차단 당할 수밖에 없다는 그 엄숙한 해설 앞에서 그간 너무나 소극적이던 내 마음의 평화가 산산조각 깨어져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나는 발길을 돌리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무광스님 전에 (무릎을 꿇었다.) "그래, 비렁뱅이 생활이 어떻던고?" "해 볼만하더이다" "무엇을 배웠는고?" "밥 빌어먹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스님을 찾아오는 길을 익혔습니다." "허, 허, 허--- 용타, 용해!" (웃으면서) "스님! 이제 검만을 한번 해 주십시요!" "응, 네 눈빛 말이냐? 네 눈빛을 여전 거기 그대로 빛이 나지 않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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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기 거울이 있다. 가서 한번 자세히 살펴보거라!" "참 그렇군요. 그러고 보니 오랫동안 거울을 못 보았군요." "그놈의 반야심경도 못 읽었을테지, 저기 대중 전에 가서 읽도록 해라" (사내 일어나 관객을 향해서 합장을 한다. 그리고 낭랑히 경을 외운다) --- 마치 반야 바다밀다 심경 과자재보살 행심반야 바라밀다시조견 오온겨공도 일체고액 사리자 --- 1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