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 종종 "하프시코드는 음의 지속력이 약해서 작곡가들은 꾸밈음을 통해 그것을 보충했다."라는 말을 듣는데 실제로 음의 지속력이 어느정도 되는지 궁금합니다.
답변 : 하프시코드를 실제로 듣거나 연주해 보지도 않은 사람들이 흔히 하프시코드는 소리도 작으며 음의 지속력도 약하다는 잘못된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잘 보존되거나, 현대에 훌륭하게 복제된 악기들이 연주되는 것을 들으면 탁월한 울림과 충분한 음의 지속력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꾸밈음은 그런 단순한 이유에서 사용되는 것이 아닙니다. 꾸밈음은 옛음악, 특히 바로크 음악에서 필수불가결한 요소입니다. "음악에 있어서는 다양성이야 말로 모든 기쁨과 예술의 모체"라는 크반츠(J. J. Quantz)의 말을 상기해보면 좋겠습니다. 만약 음의 지속력이 약해서 하프시코드 음악에 꾸밈음이 많다고 아직도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나는 반문하고 싶습니다 "그렇다면 오르간 음악에서는 어째서 그렇게 많은 꾸밈음들이 쓰입니까? 초기 바로크 이전의 건반 음악이 서로 다른 매체에도 불구하고 같은 서법으로 쓰였다는 사실은 어떻게 설명하실 수 있습니까?" ----------------------------------------- 최초의 하프시코드 들은 하나의 건반과, 4옥타브의 음역에 8피트의 현만을 가지고 있는 작은 악기였으나 음량을 크게 하기 위해서 두개의 8피트 현을 동시에 울릴 수 있는 악기들이 만들어졌다. 그리고 여기에 음색적인 대비를 주기 위해서 4피트의 현이 장치된 악기들이 제작되었다. 여기서 8피트, 4피트란 오르간의 레지스터 스톱에서 온 말로서 8피트는 지정된 음과 같은 음, 4피트는 그보다 한 옥타브 높은 음을 가리킨다. 16피트는 반대로 그보다 옥타브 낮은 음이다. 하프시코드는 음색의 변화를 위해 오르간과 같은 시스템을 도입한 것이다. 오르간들은 32피트의 저음역도 낼 수 있으나 일반적인 하프시코드는 대부분 8피트만을 갖추고 있고 16피트는 아주 드물게 찾아볼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4피트 스톱도 흔한 것이 아니었고 오늘날 볼 수 있는 쥬스티(G. B. Guisti)나 그리말디(C. Grimaldi)의 많은 악기들은 단지 하나의 건반에 8피트×2의 디스포지션(레지스터의 조합 구성)을 가지고 있다. 한편 특수한 음향을 내는 스톱들도 존재했는데 펠트 천이나 가죽에 의해 현의 진동을 약화시켜 둥글고 부드러운 울림을 얻는 버프 스톱(Buff Stop), 너트(Nut, 현을 감아두는 곳) 근처에서 플렉트럼으로 튕김으로서 둥글고 밝고 소리를 얻는 류트 스톱(Lute Stop, 비슷한 소리 때문에 종종 버프 스톱과 혼동되나 구별해서 써야 한다)이 있다. ----------------------------------------- 질문 : 레지스트레이션의 변환은 얼마나 자주 이루어졌습니까? 대부분의 현대 이론가들은 하프시코드가 다양한 음색을 가지고 있다고 하더라도 실제로 빈번한 레지스트레이션의 변화는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만…
답변 : 손으로 조작하는 핸드 스톱으로만 이루어진 악기(대부분의 역사적 악기가 그렇다)를 연주하면서 연주 중에 레지스트레이션을 바꾸는 일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많은 책에서 쓰고 있는 것처럼 불가능한 일도 결코 아닙니다. 나는 몇년 전에 어떤 여류 하프시코디스트가 하이든의 초기 소나타를 연주하는 것을 보았는데, 그녀는 반복구에서 번개같은 손놀림으로 버프 스톱을 작동시켰고 그것은 정말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실제로 오르가니스트들이 연주중에 자주 레지스트레이션을 바꾸는 경우를 볼 수있는데, 하프시코디스트는 그렇게 해서는 안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어떤 악기를 써서, 어떤 음색을 낼지는 연주자 자의로 결정할 문제가 아니고 작품과 시대 양식에 대한 충분한 탐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 이단 건반의 하프시코드와 건반 사이의 대조적인 음색 구성이 가능한 레지스터 스톱들은 플랑드르(Flanders)의 제작자들에 의해 시도되었다. 플랑드르의 제작자들은 여러 국가의 뛰어난 작곡가와 연주자들을 상대하고 있었으므로 이들의 요구에 따라 좀 더 음역이 넓고 음색에 변화를 줄 수 있는 악기들을 만들어낼 필요가 있었을 것이다. 흔히 플레미시(Flemish) 모델이라고 불리우는 17세기 플랑드르 악기는 유럽 전역에 수출되어 하프시코드의 하나의 전형을 이루었고 플랑드르의 명 제작자들은 프랑스, 독일, 영국의 하프시코드 제작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플랑드르에서 제작된 이단 하프시코드의 아래 건반의 8피트+4피트, 윗건반의 8피트라는 디스포지션은 이후의 제작자들이 그대로 답습하여 바로크 하프시코드의 표준 디스포지션으로 자리잡았다. 플랑드르의 제작자들 가운데 특히 유명했던 사람은 루커스(Ruckers) 가문과 그 뒤를 이은 쿠세(Couchet) 가문이었다. 하프시코드의 스트라디바리로 불리우는 루커스의 악기들은 오늘날에도 상당한 양이 보존되어 있는데, 대부분 후대의 프랑스나 영국 제작자들이 음역의 확장과 얼마간의 변형을 가한 것(Ravalement)이지만 현명하게도 최초의 케이스와 울림판을 손상시키지 않은 경우가 많았기 때문에 플레미시 루커스 본래의 아름다움이 잘 살아나 있고 이러한 악기 가운데 많은 수가 오늘날에도 레코딩에 사용되어 시공을 초월한 아름다움을 전달하고 있다. 18세기 이후로 하프시코드 제작의 중심지는 영국, 프랑스, 독일로 넘어갔으나 최후의 둘켄(Dulcken) 가문은 (비록 프랑스 악기들을 많이 참고하고 있었지만) 프랑스 명기에 못지않은 좋은 악기들을 생산해냈다. 플랑드르의 하프시코드 전통은 루이스 둘켄이 빈에서 피아노를 생산하기 시작하면서 종말을 맞이하게 된다. ----------------------------------------- 질문 : 이단 건반의 하프시코드가 개발되어 양손의 대조와 다이나믹스의 표현이 가능해진것 같습니다. 실제로 이단 건반의 하프시코드에서 얻을 수 있는 다이나믹이 어느정도의 효과를 가지고 있었을지 궁금합니다.
답변 : 아마 바로크 하프시코드 음악에서 다이나믹의 가장 유명한 예라면 바흐의 "이탈리아 풍의 협주곡, BWV 971"이 될 것입니다. 여기서는 악보상에 명백하게 Forte와 Piano라는 지시가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의 연주에서 포르테와 피아노의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게 들립니다. 왜냐하면 아래 건반 8피트+4피트(포르테 건반) 와 윗 건반 8피트(피아노 건반)은 음량상으로 두드러진 차이점이 없기 때문입니다. 즉, 그 변화의 폭은 메조 피아노에서 메조 포르테의 사이입니다. 반면 4피트 현의 가음에 의해 음향은 확실한 대비가 됩니다. 즉 바흐의 의도는, 또한 이단 건반악기의 제작자들의 의도는 음량상의 대비 보다는 음향상의 대비를 원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프시코드에 있어서 본격적인 다이나믹은 전고전 시대에 음량 조절장치들이 등장한 이후라고 할 수 있는데 이는 피아노와 경쟁하기 위해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고 보여집니다. ----------------------------------------- 프랑스의 하프시코드 생산은 독일계 이주민들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곧바로 프랑스의 색채가 짙은 악기들이 만들어졌다. 화려함과 섬세함이 조화된 프랑스 악기는 다분히 프랑스 궁정과 귀족의 분위기, 그리고 거기서 연주되던 당글베르, 샹보니에르, 쿠프랭 가문, 라모의 걸작들을 반영한 것이다. 하프시코드 음악에 있어서 프랑스 장인들의 공헌은 커플러라고 불리우는 장치를 발명한 것이다. 커플러는 이단 건반의 악기에서 두 건반을 동시에 작동시키는 간단한 장치이다. 이 장치를 사용함으로서 연주자는 손쉽게 양손의 대비를 이끌어낼 수 있게 되었다. 블랑세(Blachet)가문, 구종(Goujon), 앙쉬 형제(H. & G. Hemsch)로 대표되는 프랑스 하프시코드제작자들은 부드러운 저음과 표현력이 풍부한 중음, 상쾌한 고음의 조화를 이끌어내 전음역에 걸친 스펙트럼과 같은 화려함과 충분한 음량을 지닌 악기들을 만들어냈다. 최후의 프랑스 명장은 아마도 파스칼 타스캥(P. Taskin)일텐데 그는 무릎 페달(Knee Pedal)에 의한 레지스터 조작, 디미뉴엔도 페달(셈여림 조절장치)과 같은 신기술을 채용하고 가죽 플렉트럼(Peau de buffle)을 시도했다. 그러나 그도 만년에는 피아노 제작을 하고 있었으며(1784년에 슈디&브로드우드에 피아노 제작 의뢰, 1788년작 피아노가 현존하고 있음) 뒤이은 프랑스 혁명은 프랑스 클라브생 음악의 전통을 붕괴시켰다. 아마도 독일의 하프시코드는 가장 미스터리로 남아있는 부분일지도 모르겠다. 독일의 하프시코드가 실제의 연주와 레코딩에 등장한 것은 의외로 상당히 최근의 일인데, 바흐의 많은 걸작들이 아무런 의심없이 무작정 프랑스 악기로 연주되었다는 사실은 독일 악기에 대한 이해가 굉장히 부족했음을 증명하는 것이다. 바흐 당대에 독일 악기의 경향은 크게 두 흐름으로 나눌 수 있다. 그 하나는 함부르크를 중심으로 한 일련의 제작자들이며 다른 한 부류는 질버만(G. Silbermann)과 그레프너(Graebner)로 대표되는 작센 스타일이었다. 그 가운데 독일의 대표자는 역시 함부르크의 하스 (Haas)일족이며 함부르크의 또다른 유명한 제작자로는 플라이셔(J. Fleischer), 첼(C. Zell)을 들 수 있다. 외견상 함부르크 악기의 특징은 악기의 끝부분이 매우 날카로운 각도로 둥글게 처리되어 있다는 것이다. 이는 다각형으로 마무리된 플레미시나 프랑스 악기, 그리고 그것을 답습한 작센 악기와 구별된다. 또한 하스의 악기 가운데 몇개는 3단의 건반을 가지고 있으며 어떤 악기는 극히 드문 16피트의 레지스터를 가지고 있다. 아... 이 악기들은 정말로 환상적인 음향을 가지고 있다. 히에로니무스 알브레히트 하스의 1734년작 악기는 5옥타브, 아래건반 16피트+8피트+4피트, 윗건반 8피트+8피트, 그리고 하프 스톱을 가지고 있는데 연주 할 수 있는 총 레지스트레이션의 조합은 거의 50가지에 이른다. 1740년에 제작된 그의 다른 악기는 삼단의 건반에 16피트 레지스터를 가지고 있다. 16피트의 레지스터는 "바흐"모델의 모던 하프시코드에도 시도되었으나 하스의 악기는 훨씬 환상적인 음색을 가지고 있다. 왜냐하면 어설프게 개조된 악기를 기초로 만들어진 "바흐"모델과 달리 하스는 16피트를 위한 별도의 울림판을 가지고 있고 음색과 음량의 밸런스가 매우 이상적으로 조정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바흐는 고가였던 하스의 악기를 소유하지는 못했겠지만 그 음향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함부르크 악기의 드라이한 저음과 두드러진 아름다움을 가진 고음은 대 바흐를 무척 훌륭하게 연주하며 C.P.E. 바흐와 스카를라티의 작품에도 탁월하다. ----------------------------------------- 질문 : 대바흐를 연주하기 위해 매우 다양한 악기가 시도되는데, 실제로 바흐의 악기는 어떤 것이었습니까?
답변 : 바흐의 악기가 어떤 것이었는지는 아직도 논란의 여지가 있습니다. 실제 연주에 있어서도 이탈리아 악기에서부터 후기의 영국 하프시코드까지 다양한 악기가 시도되고 있습니다. 곡의 특성에 따라 악기를 바꿔가면서 연주할 수 있다면 더할나위 없이 좋을 것이지만 현실적인 이유로 여러 악기를 사용하는 것은 힘들고 어느정도 타협은 불가피 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프랑스 하프시코드들은 모든 종류의 춤곡을 연주하는데 훌륭하고 그것과 유사한 둘켄과 작센 제작자들의 악기로도 자주 연주되고 있습니다. 라이프찌히의 바흐는 아마도 작센의 악기를 사용했을것으로 믿어집니다. 왜냐하면 바흐는 작센의 제작자들(특히 그레프너와 질버만)과 친교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많은 연주자들은 함부르크의 악기가 좀 더 이상적이라 믿고 있습니다. 나는 콜린 틸니가 하스로 연주한 평균율 클라비어, 레온하르트가 첼로 연주한 이탈리아 협주곡을 가지고 있는데 확실히 함부르크 악기의 음색은 바흐의 스타일과 어울리는 바가 있습니다. 최근의 레코딩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악기는 베를린의 미하엘 미트케(M. Mietke)라고 불리는 18세기 초반의 악기입니다. 이 악기는 바흐가 쾨텐 궁정에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오랫동안 복원이 안된 상태로 있다가 봅 반 아스페렌이 골트베르크 변주곡을 녹음하면서 처음 사용했습니다. 이 악기는 독일과 프랑스의 스타일들이 반쯤 섞인 것 같습니다. 전반적인 경향은 이탈리아-독일 악기를 이어받았지만 고음부는 그보다 훨씬 화려합니다. 안드레아스 쉬타이어가 부르스 케네디가 복제한 미트케로 일련의 훌륭한 레코딩을 남기고 있으며, 같은 악기로 피에르 앙타이라 골트베르크 변주곡을 녹음했습니다. 바흐의 악기 가운데 가장 흥미로운 것은 류트-하프시코드라고 불리우는 거트 현을 사용한 하프시코드의 존재입니다. 이러한 악기는 플라이셔와 힐데브란트 자카리우스(H. Zacharius)등 몇몇 제작자가 시도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별도의 글로 설명할 예정입니다. 원래의 이탈리아 하프시코드는 바흐의 연주에서 거의 사용되지 않지만 이탈리아 하프시코드를 독일인들이 이단악기로 개조한 이탈리아-독일식 하프시코드는 연주회와 레코딩에서 종종 들을 수 있습니다. 몇년 전에 에드워드 퍼먼티어가 이탈리아-독일식 하프시코드로 반음계적 환상곡과 푸가를 연주하는 것을 들었는데 제작자를 알 수 없는 그 악기는 지금까지 들었던 어떤 연주보다도 이상적인 음향을 들려주었습니다. 한편 콜린 틸니도 이탈리아-독일식 악기로 바흐의 토카타 전집을 녹음한 바 있습니다. ----------------------------------------------------- 질문 : 16피트의 레지스터는 바로크 시대에 일반적인 것이었습니까?
답변 : 대부분의 학자들은 바로크 시대의 음악에서 16피트를 사용하는데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현존하는 악기 가운데 오리지널의 16피트를 가진 것은 손으로 꼽을 정도밖에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스작의 악기 세대, 슈타인(J. A. Stein) 한대, 슈바넨(J. Swanen) 한대 정도입니다. 즉 학자들은 당대에 16피트 악기가 실험적으로만 시도되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다른 예로는 영국의 후기 대형 하프시코드들이 그 크기와 레지스터 기구의 복잡함에도 불구하고 16피트 레지스터를 사용하지 않고 있다는 것입니다. 반면 라파엘 푸야나(R. Puyana)는 바로크 시대의 풍부한 그림 자료와 무역 거래 명세를 예로 들며 상당히 많은 수의 16피트 악기가 실제 사용되었고, 단지 많이 상실되어 오늘날 전해지지 않을 따름이라고 주장합니다. 그 사실 여부야 어떻든 확실한 것은 처음부터 16피트를 염두에 두고 작곡된 작품은 없으리라는 겁니다. 물론 레지스트레이션에 대한 상세한 지시가 되어 있는 작품은 거의 없지만 대부분의 작품은 표준적인 디스포지션에서 연주 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종종 16피트의 가음에 의해 좋은 효과를 얻는 작품들도 있습니다만 역시 16피트는 특수한 것이라고 보아야 하겠습니다. ----------------------------------------- 하프시코드 역사의 최후는 영국의 제작자들이 장식하고 있다. 영국 역시 대륙, 특히 플랑드르의 영향을 받고 있었다. 이름있는 영국 제작자들이 대부분 대륙 출신이었다는 점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영국 악기가운데 특별히 기억할만한 것은 슈디(B. Shudi)와 커크만(J. & A. Kirkman)형제의 악기이다. 모두 허먼 타벨(H. Tabel)의 제자로 두 제작자의 악기간에 유사점이 많은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스위스인 부르크하르트 츄디(Burkhard Tshudi), 아니 영국인 버캇 슈디(Burkat Shudi)는 타고난 발명가적 재능과 사업가 기질을 결합해서 핸델에게 하프시코드를 납품함으로서 제작자로 런던에서 금방 성공을 거두었다. 핸델은 자신의 귀중한 유산으로 슈디가 보수한 루커스의 명기를 남긴바 있다. 슈디는 1760년대에 머신 스톱(Machine Stop)과 베네치안 스웰 박스(Venetian swell box, 혹은 Nag's head swell로도 부름)라는 두가지 강약 조절장치를 하프시코드에 장치하기 시작했다. 머신 스톱은 8피트의 기본 스톱과 악기의 전 스톱을 페달 하나로 상호 전환시키는 장치이다. 스웰박스는 질버만이 1750년대에 오르간에 적용한 확음기로부터 힌트를 얻은 것인데 이는 페달로 조절되는 일종의 확음 상자이다. 이러한 시도는 명백히 당시 새로운 악기로 지지를 얻고 있었던 포르테피아노에 대항하기 위해서 만들어졌을 것이다. 하프시코드의 강약조절장치(타스캥의 디미뉴엔도 페달을 비롯하여)는 상상하는 것 이상으로 매우 효과적이었지만 아마도 시대의 음악이 그것 이상을 요구하고 있었기 때문에 음악의 흐름을 바꿔놓을 정도로 영향력을 발휘하지는 못했다. 여전히 대륙에 많은 수의 하프시코드를 수출하고 있었지만 슈디의 제자이자 사위인 브로드우드(J. Broadwood, 그 역시 대륙 출신이다)는 피아노가 새로운 시대를 주도할 것임을 직감하게 된다. 1793년 슈디 & 브로드우드 최후의 하프시코드 제작, 1809년 커크만 형제 최후의 하프시코드는 한시대를 풍미했던 위대한 악기가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는 시작에 불과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