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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시장, 왜 춤 추나?
지금, 한국 미술시장이 용광로처럼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다. 그림값이 ‘춤추고’ 있다. 미술시장에 대한 관심이 사회 일반에까지 크게 확산되고 있다. 한국의 일반 경제가 아직도 경기 저점을 헤매고 있다는 점을 상기하면 기현상이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2006년 4분기 경제 성장률은 4%, 같은 해 1분기 이후 하락세를 지속해 온 것으로 나타났다. 일반 경제 기류와 달리 미술시장이 호황을 누리고 있는 이유는 도대체 무엇인가? 왜 미술시장이 춤추고 있는가?
먼저 경제 일반에서 원인을 찾아보자. 저금리 시대다. 은행 예금 수익률이 연간 0.5%미만이다. 갈 곳을 잃은 시중자금이 좀 더 수익률 높은 투자 대상을 찾을 수밖에 없다. 금융권은 시중자금을 유도하는 고수익 상품개발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 가운데 미술품을 새로운 투자처로 떠올리고 있다. 금융권이 미술품을 실물자산으로 인정하고 나선 것이다.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중요한 인식의 변화다. 금융권의 인식 변화는 아트 펀드 조성으로 이어졌다. ‘돈의 흐름’을 재빠르게 포착한 화랑과 증권사가 아트펀드를 조성하기에 이르렀다. 한편, 정부의 부동산 투자 억제 정책으로, 양도세가 60%로 늘어나면서 부동산 거래가 급격하게 줄어들었다. 주식시장은 언제 요동칠지 몰라 불안하고, 부동산은 갖고 있는 것조차 팔지 말지 고민스럽다. 부동산에서 돈의 흐름이 막히자 자본가들이 투자 가치가 높은 그림이나 골동품 등 현금화될 수 있는 물건으로 시선을 돌리게 된다. 최근 TV의 메인 뉴스 프로그램에 미술품 가격 보도가 빈번히 등장하고 있다. 미술품이 투자 대상이라는 논조가 중심이다. 또 검색엔진 포털사이트에도 ‘○○○ 작품, 최고가 경신’이라는 뉴스가 빈번하게 뜬다.
다음은 미술 내부의 요인을 찾아보자. 첫째, 1991년 이후 미술시장의 경기 침체가 14년 동안 이어졌다. 88올림픽 이후 급상승 곡선을 그리던 미술시장이 1991년을 정점으로 급격한 내리막길을 걸었다. 암흑의 긴 터널은 1998년 IMF까지 이어져 한국 미술시장은 깊은 불황의 늪에 빠져 있었다. 침체의 골이 너무 깊었던 만큼 회복의 속도 또한 아주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둘째, 미술시장 경기 회복은 경매시장이 불을 지폈다. 경매가 미술품 가격의 기준점이 되고 있다. 과거 화랑 주도로 가격을 책정하던 것과는 다른 양상이다. 경매는 음성거래의 잘못된 관행을 깨고 공개 거래를 정착시켜 미술시장을 양성화의 길로 이끌었다. 메이저 경매에는 ‘국민 화가’의 고가 작품 낙찰가격이 공개되어 일반인에게까지 큰 주목을 끌고 있다. 지난 3월 K옥션과 서울옥션에서 박수근의 작품 〈시장의 사람들〉과 〈농악〉이 각각 25억, 20억에 낙찰되면서 미술시장에 대한 관심은 거의 ‘폭발’ 수준에 이르렀다. 셋째, 한국미술의 국제화 흐름이다. 글로벌 시대, 정보화 시대에 한국미술의 국제 진출이 눈에 띄게 늘었고, 그 성과 또한 괄목할 수준이다. 특히 중국미술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 미술이 세계적으로 급부상하면서 한국미술도 주목의 대상이 되었다. 해외로부터 들려오는 소식도 한국 미술시장을 들썩인다. 크리스티 경매에서 젊은 작가 김동유의 작품이 한국작가 최고가인 3억5,000만원에 팔렸고, 스페인의 아르코아트페어 참가한 15곳의 한국 화랑 대부분이 ‘매진 행렬’을 이었다. 최근에는 해외 지점을 개설하는 갤러리들도 늘어나고 있다. 베이징에는 이음, 문, 표, pkm, 아트싸이드, 금산갤러리가 잇달아 문을 열었고, 홍콩에는 최근 카이스갤러리가 문을 열었다. 거꾸로 해외 화랑이 국내에 지점을 내기도 한다. 비트폼, 마이클슐츠갤러리가 이미 문을 열었고, 프랑스 갤러리의 지점도 오픈이 임박한 상태다. 미술시장에 국경이 없어졌다. 더욱이 지금 전 세계적으로 미술시장이 호황을 누리고 있어 콜렉터들과 딜러들의 마음은 그 어느 때보다 설렌다.
투자 불패,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작고 원로작가들의 작품값 판도는 시대에 따라 변한다. 1960년대 초 우리나라에서 가장 본격적인 화랑이었던 반도화랑의 판매 실적을 보면, 잘 팔리던 동양화가는 이상범 성재휴 김용진 정진철 김정현 장운상 박노수 천경자 등이었다. 서양화가는 박수근 이중섭 도상봉 문학진 이대원 김원 김종하 손응성 김환기 김흥수 박득순 박영선 등이었다. 1970년대는 동양화 전성기였다. 김은호 이상범 변관식 김기창 박승무 장우성 성재휴 나상목 서세옥 박노수 안동숙 조중현 박래현 천경자 배렴 허백련 노수현 등이 인기작가였다. 서양화 쪽으로는 이중섭 박수근 김환기를 선두로 장욱진 권옥연 김인승 박영선 양달석 유영국 오지호 손응성 이종우 남관 이병규 심형구 박상옥 이봉상 등이 뒤를 이었다.
1990년대에 오면, 동양화에서는 천경자 김기창 성재휴 장우성 서세옥 박노수에 이어 민경갑 이종상 오태학 송수남이 인기작가 대열에 들어섰다. 서양화에서는 오지호 박고석 임직순 윤중식 최영림 변종하 황용엽 김창열 하인두 박서보 정상화 윤명로 이우환 황영성 이강소 이두식 등이었다. 오늘날위에 열거한 작가들 대다수는 세상을 떠났고, 몇몇 작가들도 이제는 중진 원로의 자리에 서게 되었다.
작고작가 그림값은 오랫동안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세 작가가 이끌어가고 있다. 이들의 작품값은 꾸준히 올랐다. 한 번도 값이 떨어진 적이 없다. 한마디로 ‘투자 불패’ 화가들이다. ‘수퍼 울트라 블루칩’ 작가들이다. 박수근 작품값은 꾸준한 상승세다. 한국 현대미술 부문 경매의 최고 낙찰가 기록 보유자다. 1997년 120~180만원에 거래되던 드로잉 작품이 2007년 4월 11일 K옥션 경매에서 1억200만원에 판매되었다(〈시장의 여인〉 종이에 연필 58.7×45cm). 박수근 작품은 1959년에 호당 1만환에 거래되었다.(환에서 원으로 10 대 1로 평가절하하여 화폐를 개혁한 직후 1963년의 쌀 1가마 값(도매)은 2,800원, 당시 공무원 사무관 초임 기본급은 7,450원이었다.) 반세기가 지난 오늘, 박수근의 작품은 천문학적인 수치로 올랐다. 경매 최고가 25억원을 기록한 박수근의 작품 〈시장의 사람들〉이 12호(62.4×24.9cm) 크기인데, 그렇다면 호당 2억이 넘는다.
수화 김환기는 1950년대 A급 구상작품의 경우 호당 2,000만원에 거래되던 것이 호당 5,000만원까지 올랐다. 뉴욕 시절에 그린 〈점화〉는 100호 기준으로 7억원이었던 것이 12억원으로 뛰었다. 김환기의 경우 그 어떤 작가보다 대작 위주의 작품을 많이 남겼다는 점을 상기해 볼 때, 총 유작의 자산가치가 가장 높은 작가로 꼽을 수 있을 것이다. 반면, 이중섭의 작품은 상대적으로 작품 수가 적어 거래 자체가 뜸하다. 작고작가 중에서 근래에 새롭게 주목받는 작가는 이인성이다. 호당 2,000만원에 거래되던 작품이 호당 5,000~6,000만원으로 두세 배 오른 값으로 거래되고 있다. 2006년 12월 13일 K옥션에서 8호 유화 〈사과나무〉가 3억9,000만원에 낙찰되었다. 이인성은 대구화단의 천재화가로 일제강점기에 조선미전의 스타로 화려한 각광을 받았던 화가였으나 1950년 39세로 요절했다. 2000년 이인성 50주기를 맞아 삼성미술관에서 대규모 회고전이 열린 바 있다. 작고작가의 그림값은 미술사적 재평가 작업과 무관하지 않다.
그 외에도 여전히 상승세를 지속하는 작고작가들이 있다. 도상봉의 〈라일락〉은 10호 기준으로 호당 2,000만원에서 3,000만원으로 뛰었다. 부드러운 빛깔의 백자 항아리에 활짝 핀 라일락, 안개꽃, 국화 등이 풍성하게 꽂혀 있는 장식성 만점의 정물화가 여전히 인기를 끌고 있다. 남도 화단의 거봉 오지호의 그림도 여전히 인기가 높다. 한국적 인상주의 회화에 천착했던 오지호는 역시 연보랏빛 감도는 〈바다 풍경〉 그림이 비싸다. 호당 700만원에서 1,500만원을 넘어섰다. 〈목련〉이나 〈설경〉은 호당 450만원에서 1,000만원 선으로 상승했다. 또한 상승폭으로만 본다면, 김상유의 작품도 주목 대상이다. 생전에 화단의 아웃사이드에서 묵묵히 창작으로 일관했던 김상유는 작품성에 비해 작품값은 턱없이 낮은 호당 50만원에 머물렀다. 지금은 호당 200~300만원으로 크게 올랐다.
그러나 대부분의 작고작가들의 경우, 1991년 무렵에 거래되던 최고가에는 미치지 못하고 있다. 물론 IMF 이후 경기의 최저점을 기준으로 본다면 가격이 꾸준히 상승곡선을 그리고 있다. 장욱진은 1991년 무렵 5, 6호 작품이 8,000만~1억원까지 거래되었는데, 현재 1억 2,000~1억3,0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옛 시세를 간신히 회복한 상태다. 임직순은 최고 호당 3,000만원까지 올랐다가 2,500만원까지 회복되었다. 유영국은 일부 작품이 옛 시세에 근접하고 있지만, 대작이어서 작품값에 큰 변동이 없다. 40호 기준으로 호당 700만원까지 거래되던 것이 현재 600만원까지 회복했다. 1991년 무렵 호당 700만원이던 김흥수의 작품, 호당 500만원이던 박고석의 작품도 상당한 회복세로 돌아섰다. 그러나 남관 최영림 권옥연 변종하 문학진 하인두의 작품은 예전 고가 시절의 가격에 미치지 못할 뿐더러 거래도 뜸한 상황이다. 동양화가들의 경우 전반적으로 가격이 뚝 떨어졌고 거래도 현저히 떨어졌다. 김은호 이상범 변관식 허백련 등 이른바 동양화 6대가들이 최근 미술시장에서는 맥을 추지 못하고 있다. 청각장애를 딛고 예술적 대중적 성공의 길을 걸었던 운보 김기창의 경우, 한창 인기를 끌던 시절의 〈청록산수〉는 현금이나 다를 바 없었다. 지금 〈청록산수〉는 전지 한 장(40호 크기)에 2,000~3,0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박생광은 호당 250~300만원으로 회복세를 보여주고 있다.
반면 미술사적인 평가보다 상대적으로 작품 가격이 낮은 작가도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백남준. 비디오아트의 창시자로 1990년대 한때 독일의 경제전문지 《캐피탈》이 선정한 〈세계 미술인 예술성 순위조사〉에서 7위를 기록할 정도로 세계적 입지를 굳힌 아티스트다. 그러나 공공미술 차원의 대형 작품 이외에는 거래가 적을 뿐 아니라 작품 가격도 미술사적 평가에 비해서는 훨씬 낮다. 콜렉터들이 비디오 작품의 유지 보관 문제에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는다는 것이 화랑 관계자들의 전언.
작고작가들 중에서 곽인식과 비교적 일찍 세상을 떠난 오윤 손상기 최욱경 박길웅 황창배 등이 여전히 주목을 받고 있으나 거래가 활발하지는 않다. 2006년에 돌연 세상을 떠난 오지호의 아들 오승윤은 최근 고향 광주에서 인기작가로 급부상했다. 작품이 호당 100만원 이상으로 팔리고 있으나 매물이 부족한 상황이다.
그림값을 이끌고 가는 인기 작가들
최근 1, 2년 사이 한국의 그림값 상승세를 이끌어갔던 작가 5인방이 있다. 작고작가 이대원, 원로화가 천경자, 그리고 이우환 김종학 고영훈이다. 천경자는 〈미인도〉가 호당 500만원이던 것이 호당 1억원으로 급상승했다. 작품값이 20배로 올랐다. 워낙 과작 작가인데다 소품이 많아 호당가가 비쌀 수밖에 없다. 현재 미국에 살면서 투병 중이지만, 사실상 작품 활동이 끝난 ‘공급 마감’ 상태라 구매자들이 몰리고 있다. 자신이 살던 파주 농원을 즐겨 그렸던 이대원의 경우, 2005년 작고 이후부터 오르기 시작해 호당 150만원이 현재 호당 400만원대로 올랐다. 1970년대 말 80년대 초 작품은 호당 1,000만원을 호가하고 있다. 천경자와 이대원은 작년에 심하다 싶을 정도로 작품값이 치솟았다가 올해 들어서는 ‘소강상태’를 보이고 있다.
이우환은 1997년 IMF 때 100호 〈점으로부터〉가 4,000만원이었으나 최근 경매에서 4억9,000만원에 낙찰되었다. 10배 이상 올랐다. 1997년 〈바람과 함께〉의 시중 가격은 100호 기준 1,500~2,000만원이었으나 최근 가격은 1억5,000~1억8,000만원으로 올랐다. 요즘 콜렉터 사이에서는 “지금이라도 강남 집 팔아 이우환 작품 사 놓자”라는 말이 나돈다고 한다. ‘설악산의 화가’ 김종학의 작품은 실거래가가 호당 70~80만원이었으나 최근에는 호당 300~350만원으로 훌쩍 뛰었다. 극사실 기법으로 책이나 돌, 깃털을 마치 실물 같이 정교하게 그려내는 고영훈의 작품값 상승세도 놀랍다. 호당 100만원 수준인데, 현재 구작 중 A급은 40호 9,300만원, 50호 1억 4,000만원, 100호 1억7,000만원까지 거래되고 있다. 고영훈은 1952년생이다.
한국 현대미술을 이끌어왔던 단색화 작가들 중에는 김창열 박서보 정상화 윤형근의 작품이 미술시장을 이끌고 있다. ‘물방울 화가’ 김창열은 10호 2,000만원, 50호 4,000만원, 100호 7,0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정창섭 하종현 윤명로 곽훈 오수환은 상대적으로 거래가 활발하지는 않다. 정창섭 작품은 10호 1,200만원, 50호 3,000만원, 100호 4,500만원이다. 몇 년 전부터 해외 아트페어에서 꾸준한 성과를 올렸던 ‘외화벌이꾼’ 전광영은 100호 기준 전시 가격이 6,000만원, 이강소는 100호 전시 가격이 4,500만원이다. 원로화가 전혁림 서세옥의 경우도 예술적 명성에 비해 미술시장에서는 약세다. 전혁림은 50호 1,500~2,000만원, 100호 2,000~3,0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1980년대 민중미술 계열의 작가로 손장섭 신학철 강요배 임옥상 등도 시장을 형성하고 있다. 손장섭의 작품 전시 가격은 10호 600만원, 100호 3,500만원이다.
최근의 그림값 상승과 더불어 신(新)인기작가군이 새롭게 부상했다. 전시 때 작품을 매진해 주문 제작까지 받은 작가가 여럿 있다. 한국화는 이숙자 이왈종 백순실 김병종 정종미 김선두 사석원 김근중 유근택, 서양화는 박항률 남춘모 김강용 이석주 이영배 오치균 홍승혜 이수동 하상림 김덕용 이정웅 박영근 배준성, 입체로 이용덕 노상균 정광호 박성태, 사진은 배병우 김아타 등이다. 이 작가들은 현재 작품 가격이 ‘상승 중’이다. 특히 5월의 KIAF 때부터 작품값을 올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또한 폭주하는 작품 수요 속에서 전속화랑에서는 아예 공급을 일시 중단하고 있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곧 이어질 개인전부터 작품값을 대폭 올릴 예정이어서 현재의 화랑 판매가를 제시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래저래 작품값이 춤추고 있다.
이왈종의 작품은 지난 2월 전시 가격이 10호 1,300만원, 50호 4,500만원, 100호 7,000만원이었다. 지금은 이보다 높게 거래되고 있다. 김병종은 호당 60만원에서 5월 KIAF부터 호당 70만원으로 올린다. 사석원은 소품은 호당 50만원, 100호 3,000만원인데, 4월 개인전 때 작품이 매진되어 100호의 시중 거래가격이 4,000~5,000만원에 이르는 기현상을 보이고 있다. 지난 4월 26일 서울옥션 경매에 50호 〈당나귀〉가 5,700만원에 낙찰됐다. 김선두는 호당 20만원, 100호는 1,500만원에 거래되고 있다. 김강용은 호당 40만원이고, 박항률 박영근은 호당 20만원이다. 이수동은 20호까지 호당 25만원, 100호 기준 1,500만원이지만, 연내로 호당 30만원으로 올릴 예정이다. 지난 4월 〈작은 그림〉전에서 30점이 매진되어 주문 작품 22점을 더 판매했다. 하상림의 〈무제〉 227×182cm가 2,000만원이다. 이정웅의 4월 전시 가격은 호당 50만원이었다. 이용덕은 100×210×30cm가 5,500달러, 노상균의 74×43×24cm 〈손가락〉이 3,500만원이다. 박성태는 3m 크기의 철망작업이 2,800달러다. 배준성의 작품은 154×243cm가 3,500만원이지만 해외 경매에서는 이보다 더 작은 작품이 5,000만원을 훌쩍 넘었다. 사진작가로는 배병우가 단연 선두를 지키고 있다. 260×135cm 크기가 6,000만원이다. 최근 김아타는 〈On Air〉를 빌 게이츠가 8,800만원에 구입해 화제가 되었다.
해외 미술시장 개척한 젊은 작가들
국내 시장을 작고 원로 작가들이 이끈다면, 해외 시장은 젊은 작가들이 주도하고 있다. 그 발판은 해외 경매에서의 선전이다. 2004년 홍콩 크리스티에서 열린 경매에 최소영 김동유 유승호 등이 성공적으로 진입, 이제 한국 젊은 작가들은 크리스티뿐 아니라 뉴욕 소더비까지 진출했다. 젊은 작가들이 해외 시장에서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는 데에는 중국 현대미술 열기에 상당한 이득을 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 현대미술이 해외 시장에서 ‘먹힐’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역시 작품의 ‘국제성’을 인정받기 때문이다. 최근 한국 미술계에서는 유학이나 탄탄한 해외 전시 경력을 가지고, 작품 역시 국제적으로 통용될 만한 조형 어법과 주제 의식을 갖춘 젊은 작가들이 즐비하다. 해외 시장에서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팔리기 시작하자 그 여파가 국내 시장에 불어닥쳤다. 젊은 작가 작품에 대한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급’ 젊은 미술 돌풍에는 미술계의 여러 환경의 변화도 한몫하고 있다. 메이저 화랑 2세들의 경영 일선 진출, 젊은 감각의 새로운 콜렉터 등장 등 복합적인 요인들이 미술시장에 젊은 불을 지폈다. 최근 미술시장에서 강세를 보이는 젊은 작가들(40대 포함)의 작품 특징을 압축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극사실적인 구상 그림이다. 강형구 이광호 안성하 이지송 정명조 김상우 김성진 허양구 이정웅 황순일 변웅필 박지혜 정보영 등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담배, 사탕, 붓, 책, 고깃덩어리, 정물 같은 소품이나 인물 혹은 신체 부위 등 디테일이 요구되는 소재들을 대형 화면에 극사실적으로 표현하는 작가들이다. 이지송의 경우 소더비 경매에서 50호가 2,800만원에 팔리자 아트포럼뉴게이트에서 개인전을 열 당시 구입 문의가 쇄도했지만 작가는 작품을 팔지 않았다. 작품 제작 기간이 너무 오래 걸려 1년에 3~4점 밖에 제작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둘째, 제작의 발상, 독특한 아이디어가 돋보이는 작품들이다. 지용호 이동재 김보민 유승호 함연주 홍성철 최소영 이동욱 함진 등이 여기에 속하는 작가들이다. 타이어를 이용해 기이한 형태의 생물을 만들어내는 지용호, 곡물을 캔버스에 붙여 인물을 그리는 이동재, 라인 테이프로 동양화를 그리는 김보민처럼 특이한 재료를 이용하는 작가들은 콜렉터들의 호기심을 자극하기 충분하다. 이 밖에 조각가 이환권은 세로로 왜곡시킨 인물상을 제작, 회화에 비해 상대적으로 판매가 저조한 전통 조각 장르의 체면을 세우고 있다. 이환권의 대표작 〈버스 정류장〉에 들어 간 높이 150~230cm 인물상의 경우, 1,500만원에 팔린다. 젊은 작가들은 악보, 머리카락, 청바지, 고무줄 등 재료와 기법을 무한 개방하고 있으며, 손톱 크기의 조각을 제작하는 새로운 발상법을 보여주기도 한다.
셋째, 이른바 ‘K-Pop’이라고 불리는, 대중문화를 다루는 작업들이다. 이형구 김동유 이동기 권기수 유영필 홍경택 손동현 서은애 박윤영 등이다. 김동유는 멀리서 보면 마릴린 먼로의 얼굴 형상이지만 가까이 보면 마오쩌둥의 얼굴이 픽셀을 이루는 ‘눈속임’ 기법의 그림으로 뜨거운 반응을 받고 있다. 이밖에 ‘아토마우스 작가’ 이동기도 인기 작가 명단에서 빠질 수 없다. ‘동구리’라는 귀여운 캐릭터 작업을 선보이는 권기수, 기존의 책가도 작업은 물론 최근의 〈훵케스트라〉까지 화려한 색채와 대중문화의 아이콘을 등장시키는 홍경택의 작품도 꾸준히 팔린다.
넷째, 수공적인 흔적이 여실히 보이는 ‘노동집약형’ 작품이다. 문성식 정재호 정수진 사공우 천성림 박민준 남경민 등의 ‘성실한’ 작품 앞에서 콜렉터들은 기꺼이 지갑을 연다. 문성식은 올 1월 국제갤러리에서 그룹전을 열었을 때, 오프닝 날 곧바로 작품이 매진된 바 있으며, 정수진의 작품은 소속 갤러리에 대기자 콜렉터 명단이 수십 명일 정도다. 높은 인기에 비해, 전시 때 매긴 100×100cm 작품 가격은 1,800만원. 가격이 상대적으로 낮은 편이어서 곧 경매에 출품, 상향 조정할 전망이다.
다섯째, 사진과 영상, 설치 작업 같은 장르들도 최근 미술시장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이 장르는 기존 미술시장에서 ‘팔리지 않는 작품’으로 낙인 찍혔던 터라 새로운 상품으로 떠오르고 있다. 권오상의 ‘사진 조각’〈데오도란트 타입〉 시리즈는 화랑에서 전시 때 약 1,200만원에 팔렸다. 이 밖에 정연두의 작품 가격은 현재 240×116.8cm가 1,200만원 선이지만, 5월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올해의 작가〉 전 이후 대폭 오를 전망이다. 김상길의 사진은 크기가 큰 만큼 가격도 비싸다. 180×220cm가 2,500~3,000만원에 거래된다. 이 밖에 천경우 이윤진 권두현 김도균 최원준 데비한 박형근 권순관 윤정미 박진영 등도 사진 시장에서 가능성을 보이고 있다.
미디어아트 시장의 총아는 단연 최우람이다. 한 점 당 5,000~7,000만원으로 아주 비싼 편이지만, 지난 아르코아트페어나 뉴욕 비트폼갤러리의 개인전에서 인기가 대단했다. 또 이용백 전준호 같은 영상 설치 작가들도 아라리오갤러리에 소속되면서 시장에 완전히 진입했다. 박준범이나 구동희 심아빈의 영상 작업은 DVD 형태임에도 ‘몇 분 몇 초에 얼마’로 가격이 매겨져 팔려 나간다. 그러나 여전히 국내에는 미디어아트 콜렉터 층의 기반이 약한 것이 사실이다. 미디어 아트 전문 갤러리 비트폼은 한국 지점을 연 지 2년이 되었지만, 국내 기업 위주로 작품 거래가 이뤄지고 있을 뿐, 아직은 미술시장 호황이 피부로 와 닿지 않는다고 한다. 젊은 작가들의 작품은 장르가 다양하고, 재료도 제각각인 탓에 일괄적으로 작품 가격 기준을 잡기가 쉽지 않다. 회화로 치면 대체로 ‘호당 10만원’이 대학을 갓 졸업한 유망 작가의 적정한 작품값으로 통용되고 있다.
경매가 미술시장에 끼치는 막대한 영향
미술시장에 돈이 몰리면서 경매를 찾는 사람들이 부쩍 늘어났다. 서울옥션의 경우 10만원을 내면 응찰에 참여할 수 있는 유료회원 수가 작년까지 3,000명에 불과했지만, 올해 들어 1만 명을 넘어섰다. 경매장이 좁은 K옥션은 지난 3월 메이저 경매 때 자리가 절대적으로 부족해 5월 15일에 열릴 메이저 경매는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개최하기로 했다. 1998년 한국 최초로 메이저 경매회사로 설립된 서울옥션, 2005년 후발주자로 설립된 K옥션 두 경매회사는 짧은 기간 크게 성장했다.
K옥션이 설립 후 처음으로 2005년 11월 메이저 경매를 치룬 이후, 두 경매회사의 메이저 경매 낙찰 결과를 비교해 보면(표3), 비슷한 시기에 열린 경매의 총 낙찰금액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2006년 한 해 동안 꾸준히 올라갔고(전년 대비 252% 상승), 연말 무렵부터 급격한 상승 곡선을 그리더니, 급기야 지난 3월에 열렸던 경매에서는 두 경매회사 모두 100억 원을 넘겼다. 최근 KTB 권성문 회장이 코스닥 상장을 추진 중이라는 서울옥션은 이미 강남, 부산, 인사동 분점을 낸 상태고, K옥션도 머지않아 분점을 낼 계획이다. 또한 올 9월 즈음, 논현동에 수입가구 업체 엠포리아와 예화랑 카이스갤러리 선화랑 등이 공동으로 ‘D옥션’을 설립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전문가들은 이제 경매시장이 양대구도에서 삼자구도로 바뀌어 올 한 해 동안만 1,000억 원 규모의 미술품을 움직일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경매에 돈과 사람이 몰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신뢰감’ 때문이다. 경매는 미술품 공개거래제도다. 어떤 작가의 어떤 작품이 얼마에 팔렸는지 낱낱이 공개된다. 경매회사는 일종의 ‘보증인’ 구실도 해준다. 경매회사가 자체 감정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가짜에 대한 위험성이 적다. 또 한 가지, 값이 한참 오를 전망인 작가의 경우 화랑에서는 한동안 작품을 내놓지 않고 쟁여두려는 경향이 있어서 좀처럼 사기가 어렵지만, 그래도 경매에 한 두 점씩은 꼬박꼬박 나온다. 지난 4월에 열렸던 서울옥션 경매에 나온 오치균의 작품이 대표적인 예다. 3,800만원에서 시작된 〈세종로〉가 9,600만원에 낙찰됐다. 오치균의 작품이 추정가의 두 배 이상의 가격에 낙찰된 이유는 화랑에서 살 수 없어 경매로 몰린 콜렉터들간에 치열한 경쟁이 붙었기 때문이다. 급성장한 한국의 경매시장이 짧은 역사 동안 어떻게 진화했는지 분석해 보자.
첫째, 경매시장이 고미술 위주에서 근현대 서양화 위주로 재편되었다. 2006년 경매시장에서 근현대 서양화 가격은 2005년에 비해 평균 33.5% 상승한 것으로 집계됐다. 근현대 서양화 작가 30명의 작품을 대상으로 가격 추이를 조사한 결과 2001년을 100으로 볼 때 2006년은 181을 기록했다. 둘째, 주요 작가들의 가격이 지속적으로 상승하고 있다.(그래프1, 표1) 경매시장에서 가격 상승률이 가장 높은 작가는 이우환이다. 2001년의 가격을 기준으로 잡아 보면 2006년에 상반기에 이미 298%를 지나, 연말께는 398%의 상승률을 보여줬다. 이우환은 올 1/4분기의 낙찰총액이 9점 낙찰에 16억2,400만원을 기록, 생존 작가로는 가장 많은 작품이 팔렸다. 또 이 달에 뉴욕에서 열리는 소더비 경매의 이브닝 세일에 한국 작가로는 처음으로 이우환의 작품이 출품되어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다. 그간 한국 작가들이 해외 경매에 올랐던 것은 ‘아시아 현대미술’ 섹션이었다. 바야흐로 이우환의 작품이 메이저 중의 메이저 경매에 입성한 것이다. 동시에 이번 경매가 이우환이 미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하는 상징적인 사건이 될 것이라고 분석된다. 이 밖에 도상봉 김종학 고영훈 오치균 등이 경매에서 인기작가로 꼽히고 있다.
셋째, 중저가 작품에 대한 관심이 커졌다. 지난 4월 26일 서울옥션에서 개최한 ‘컨템포러리 아트 옥션’은 92%라는 높은 낙찰률을 올려, 빅3라고 불리는 박수근 이중섭 김환기 이후에 새로운 작가들을 찾으려는 콜렉터들의 욕구를 확인할 수 있었다. 아트 재테크를 꿈꾸는, 소위 ‘개미 군단’이라고 불리는 신 콜렉터들이 이러한 흐름에 큰 몫을 하고 있다. 실제로 해외 경매시장에서는 중저가 작품의 가격 상승률이 고가 작품에 비해 훨씬 높게 나타나고 있다. 중저가 작품은 고가 작품에 비해 물량도 훨씬 많고, 콜렉터 층도 두텁기 때문이다. 미국 뉴욕대 비즈니스 스쿨 교수인 지앙핑 메이 교수와 마이클 모제 교수가 1950년대부터 2002년까지 해외 경매시장에서 2번 이상 거래된 작품 4,000여 점을 가격대 별로 구분해 상승률 추이를 조사한 바에 의하면(그래프 2), 고가 작품은 33%, 중가 작품은 34%, 저가 상품은 33%으로 구성된 가운데, 고가 작품의 상승률은 300%를 넘지 못하지만, 저가 작품의 상승률은 800%를 육박하고 있다. 넷째, 해외 경매시장에서 젊은 작가들의 약진이 두드러졌다. 1980년생 최소영은 청바지를 이어 붙여 고향 부산 풍경을 캔버스에 옮기는 작품으로 젊은 작가 중 해외 경매 낙찰금액 1위를 차지했다(표2). 2004년 이후 소더비, 크리스티, 본햄스, 필립스 경매를 합산, 작품 6점에 4억원에 이르는 낙찰금액을 올렸다. 작년 5월 홍콩 크리스티에서 김동유의 〈마릴린 먼로 vs. 마오 주석〉는 3억1,500만원에 팔려, 해외 경매 최고 낙찰가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번 5월 27일 열리는 홍콩 크리스티 경매에도 박민준 신영미 등 26명이 참여할 예정이다.
경매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미술시장 전체에 끼치는 영향도 지대하다. 분명히 해야 할 것은 경매 가격이 결코 ‘적정가’가 아니라는 점이다. 해외 경매시장에서 지나치게 높은 가격에 팔렸을 경우, 국내 화랑에서는 작품값을 올리지도 내리지도 못하는 애매한 상황에 빠지기도 한다. 심지어 경매를 이용하는 작가도 있다. 중국의 모 인기 작가는 작품값을 올리려고 뉴욕 메이저 경매에 비싼 추정가를 매겨 팔았는데, 알고 보니 구매자는 다름 아닌 작가였다는 것. 국내 모 딜러는 해외 경매를 두고 ‘극약 처방’이라며, 고객이 몰리고 작품 수량도 충분할 때 값을 올리는 ‘도구’로 사용한다고 지적했다.
어디까지나 경매시장은 2차 시장이기에 1차 시장의 가격이 지나치게 경매 가격을 따라가서는 안 된다. 그러나 한국의 경매회사들은 모두 메이저 갤러리에서 설립했기 때문에 1, 2차 시장의 관계가 아주 밀접하다. 해외도 마찬가지다. 지난 해 연말 크리스티가 영국의 대형 화랑 혼치 오브 베니슨(Haunch of Venison)을 인수해서 국제 미술시장이 떠들썩했다. 이제 1, 2차 시장의 경계가 무너지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상인 듯하다.
호황은 지속되는가, 낙관론과 신중론
한국 미술시장은 앞으로 어떻게 전개될 것인가. 15년만에 되찾은 활황은 언제까지 지속될 것인가. 일단 화랑가에서는 현재의 열기가 일시적인 반짝 경기만으로 끝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는다. 1, 2년간은 현재의 호조가 지속될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러한 낙관론은 오늘의 미술시장이 1990년대 초의 이상 열기에 비해 미술 내외적인 환경이 많이 달라졌다는 사실에 근거를 두고 있다. 첫째, 한국 문화와 미술이 질적 양적으로 크게 성장했다. 1990년대 초반에 미술시장 활성화의 해법으로 전가의 보도처럼 모든 사람들의 입에 올랐던 경매 제도가 정착 단계에 들어서고 있다. 경매가 일부 메이저화랑이 움직인다는 한계가 있기는 하지만, 경매 제도의 순기능인 투명거래의 장점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둘째, 화랑이나 콜렉터들의 국제 감각도 눈에 띄게 향상됐다. 그리하여 예술적 평가와 상업적 평가의 상관관계가 이제는 어느 정도 동시대적 보편성을 가지게 된 것이다. 대중적(혹은 세속적) 명성과 예술적 명성이 따로 따로 놀던 시대에서 이제는 그 상관관계가 아주 긴밀해졌다. 인천공항을 떠나는 순간 ‘부도 수표’로 끝나버리는 이른바 국내용 작품들은 앞으로 미술시장에서는 더욱 약세를 보일 것으로 전망된다. 셋째, 무엇보다 작가층이 두터워졌다. 미술시장의 상품이 아주 다양해진 것이다. 젊은 작가들의 힘과 정신은 국제무대에 내놓아도 결코 꿀리지 않는다. 최근 국제무대에서의 활약이 이를 증명한다.
반면 오늘의 미술시장을, 일시적 비정상적인 열기로 보는 신중론도 만만치 않다. 1990년대 초의 이상 과열현상을 체험한 전문가들의 문제제기다. 이 문제제기에는 한국 미술시장의 중장기적인 비전이 포함되어 있어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첫째, 미술품이 투자 대상이 되었다는 사실은 결코 나쁜 일이 아니다. 더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적 가치가 자산 가치로 평가되는 수준이라면, 문화 사회라 부를 만하다. 문제는 투자의 바탕에 미술(품)에 대한 올바른 이해와 태도가 깔려 있느냐 하는 점이다. 말하자면 문화적 저변을 딛고 일어선 미술품 투자라면 좋으련만, 최근의 호황을 부추키는 요인 중에는 미술품 투자를 전문적인 안목보다는 풍문에 의존하여 미술품에 투자하는 ‘뜨내기 손님’들의 바람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일부작가에 대한 지나친 쏠림 현상이 이를 반증한다. 경제 논리에 따라 민감하게 움직이는 미술품 투자자라면, 그들은 현재의 열기가 조금이라면 식으면 언제라도 미술시장을 떠날 수도 있다. 둘째, 한국의 화랑이 국제화를 모색하고 있기는 하지만, 몇몇 화랑을 제외하면 대다수가 구멍가게식 경영에 갇혀 있다. 인기작가 쟁탈전은 여전하고, 투자보다는 눈앞의 과실에 온 신경을 곤두세운다. 지속적으로 작가를 발굴 관리하는 진정한 전속작가 제도는 아직도 남의 나라 이야기다. 화랑은 시장의 외형에만 탐닉할 것이 아니라 미술시장의 성장 동력에도 투자해야 한다. 작가 홍보를 위한 아카이브 같은 기본적인 소프트웨어 구축은 물론이고 젊은 딜러, 시장 전문가 육성도 과제다. 여유있을 때, 미술시장의 기초체력을 탄탄히 길러야 한다. 그래야 호황에 급체하지 않고, 웬만한 침체에도 뿌리가 쉽게 흔들리지 않는다.
셋째, 이제 미술시장에서 작가들의 무한경쟁시대가 열렸다. 젊은 작가들이 무섭게 치고 올라오고 있고, 이름있는 작고 원로작가들에게 관심이 쏠리는 가운데 40, 50대 중간층은 자칫 안팎 곱추신세로 추락할 처지다. 양 극단이 비대하고 가운데 허리가 잘록한 모양세다. 이 역시 지나친 쏠림현상이다. 중간 층의 분발을 기대해 본다. 또 젊은 작가들의 지나친 상업주의화는 당사자나 소비자 모두 경계해야 한다. 미술시장이 체계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너무 이른 상업적 성공은 예술적 성공에 독이 되는 사례를 흔히 목격할 수 있다.
미술시장이 춤추고 있다. 그 춤이 정상적이고 안정적인 환희의 춤이었으면 좋겠다. 비정상적이고 불안정한 ‘미친× 널뛰듯’한 춤이 되어서는 안된다. 미술시장의 주체인 한국 미술계 모두가 좀더 차분하고 냉정하게 오늘의 상황에 대처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artinculture 2007년 5월호 미술시장 특집|김복기, 호경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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