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적등본
구청 호적계
띠르르르 FAX 신호음이 떨어졌다
따딱따따 딱딱딱 따따다
타자 잉크향도 채 날라 가지 않았을
단 석 장 짜리 핵심정리 사본이
고향 사량도에서 밀물 밀려오듯
오십구년 한꺼번에 들어온다
하나에서 둘
둘에서 셋, 셋에서 넷, 넷에서 다섯
빚어낸 다섯 개의 청자 빛 꿈
다섯에서 넷
-줄다, 아직은 투박한 질그릇이다
삐끄덕 소리도 내는 어설픈 꿈 너이 얻다-
딸그락 딸그락 밥공기 네 개
하이얗게 덩실덩실 춤을 춘다
넷에서 셋
하나,
깨진 푸른 파편 가슴 밑바닥
열 겹 스무 겹 헤집고 저미고 절이어
팔딱팔딱 뜨거운 울음을 토해낸다
쾅쾅
대못이 박혔다
셋,
하나,둘
하나,둘,셋
이가 빠진 자리는 시리다
바람이 앉을 겨를도 없이
스으스 샌다
'자요. 여기, 육백원!
맞죠?'
==========새날님의 제적등본 전문
어느님으로 부터 위 이거시방에 올려진 새날님의 제적등본이
어렵다는 편지가 왔다. 안그래도 손가락이 근질 근질 하던
차에 일거리를 만들어준 님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하며 못하는
감상이나마 끄적거려본다.
일단, 이시의 제목이 혹, 작가의 의도된 단어변경인가?하는
마음이 들었다. "호적등본"이라는 말은 많이 들어 보았지만
제적등본이란 말은 본인 백학으로선 첨이기 때문이다. 하여
국어사전을 들쳐본 결과 제적등본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았
고 되신 제적이라는 단어가 올려져 있다.
제적--호적, 학적, 당적, 따위에서 이름을 빼어버림.(삭적)
하여 이 시의 제목과 시의 내용에 나오는 구청 호적계라는
단어를 연관시켜 생각할때 호적에서 이름이 빠진 사람의
명단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호적에서 이름이 빠진다는 것은 무엇인가?
죽거나, 시집가거나, 이민가거나 등등 이별을 뜻한다.
한마디로 이 시는 시속의 화자가 어느 구청 호적계에서
고향 사량도(섬이 고향이라니 졸라 부럽당..흐흐..)에 보관되어
있는 제적등본을 팩스로 띠는 장면을 연상시킨다.
59년이 밀물 밀리듯 밀려온다.라는 구절은 59년간의 추억이
밀려온다기 보다는 59년동안의 화자의 가족내역이 밀려오는
것이리라.
다음연 첫구절에서는 숫자들이 나열된다. 하나에서-다섯으로
숫자가 늘어갈때(즉, 가족이 늘어갈때), 화자는 청자빛 꿈이라
하였고 다섯에서 넷으로 줄었을때(즉, 한명의 가족이
호적에서 사라졌을때),는 아직도(그나마) 투박한 질그릇의
(소박한)꿈이라 말하고 있다. 아직은 덩실덩실 춤을 추는
그런꿈...
행이 넘어 가면서 가족의 숫자가 넷에서 셋, 다시 하나로
줄어들고 있다.
그러면서 화자는 꽝꽝 대못이 박힌다고 이야기 한다.
그나마 가족이 넷이 였을때 화자는 질그릇 또는
밥공기 네개의 비유로 한가족의 꿈을 표현하였다.
그러나 그 숫자가 하나로 되었을때 말하고 있는 대못은
마치, 관뚜껑에 대못을 치는 장면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하다.
왜냐하면, 밥그릇이란 곧 삶이다.
삶과 죽음의 대비에 있어서 밥그릇과, 대못을 등장시킨
이 시, 시인의 감성은 빛난다.
사실 말이 났으니 말이지, 감상을 하것다고 이리 끄적이다
보니, 위 빛나는 비유가 눈에 뛴다. 그져 슬쩍읽어서는
화자가 숨겨놓은 감성이 너무 자연스럽기에 놓치기 쉽다.
또한가지 놓치기 쉬운건 깨진 푸른파편이라는 구절이다.
여기서 푸른이란 바다와 관계 있으니라.
하지만 시인은 말을 줄이고 깨진 푸른 파편이라 하였다.
더이상 구절구절 말을 해서 무엇하리... 하여,
이제 이 부분에 와서 이 시의 제목 제적이 의미하는 바가 읽혀진다.
즉, 사량도라는 섬이 부럽다고 이야기 했던 백학의 천진함과는
틀리게 엄혹한 삶의 공간이라는 사실...
그리고 죽음의 공간일 수도 있다는 사실...
하여, 사라진 호적의 명단이
시집가거나, 이민가거나 하였을 상상의 여지는 줄어든다.
읽을 수록 감칠맛이 난다.
때문에 이 글이 어렵다고 편지를 보내온 님이 일견
고맙기도하다.
다시 본문으로 들어와서 보니, 다시 숫자가 나열된다.
그 숫자는하나에서 둘, 다시 셋으로 올라가더니
셋에서 고정된다. 즉, 다섯의 숫자에서
하나가 되었다가 셋이 되었으니 4명 이 죽거나 사라지고,
2명의 가족이 늘은 것이다. 이 부분에서 한번 집고 넘어가보자.
호적이 대부분 남성중심의 가부장적 인적관계를 기록한 것이니
만큼, 아마 59년간의 가족사이니 이 시 화자의 아버지와 관계가
깊은 호적일것으로 상상된다. 즉, 아버지는 혼자 남았다가
결혼하여 화자의 어머니와 본인(즉 자식이라는 자신)을 얻음으로써
셋이 된것은 아닐까? 나름되로 상상해 볼수 있다.
셋이라는 현실에서 잠깐 멈추어 졌던 이 시는 다시
마지막 구절을 향하여 치닷고 있다. 그 치닫는 과정에서
호적에서 빠진 부분을 이빠진것으로 비유하는 시인의
감성이 다시 한번 빛나고 있다. 화자는
이빠진 자리가 시리다고 하였다. 그러나 시릴틈도 없이
바람이 앉을 겨를도 없이 새버린다고...
아~~ 얼마나, 멋진 구절인가?
현대인의 바쁜현실을 표현함과 동시에 마지막 구절(자요, 여기
육백원 맞죠?)을 준비하고 있지 않는가?
이 시는 구청이라는 딱딱한 공간에서 시작한 만큼
순간적으로 엄청나게 밀려오는 59년간의 회환에 잠긴
가족사가 다시 현실이라는 공간으로 돌아와야 한다.
때문에 "이빠진 자리처럼 으스스 새어버린다는 구절이
빛나는 것이다. 간직하고 있으면 현실로 돌아 올 수 없다.
간직하고 있으면 마지막 구절이(자, 여기 육백원 이라는 구절)
원 미친년 널뛰듯, 뜽금 없이 왜 튀어 나온 왜마디 인지
알 수 없게 되어 버린다.
비록 간단한 감성의 스침이지만, 그 스침을 잘
포착한 시라고 보여진다. 또한
위 감상에서 언급되었던 빛나는 비유의 구절들에 의하여
이 시는 살아있다.
전체적으로 완벽한 구성을 가지고 잘 꾸며진 시라고 보여진다.
다시말해, 감성과 현실(어쩌면 이성) 사이의 긴장감이
이 시에서 느껴지고 있다.
한편의 가족 소설을 읽은 느낌이라고 하면 과정된 표현일까?훗...
근디, 새날... 이 좋은 감성을 가지고 있으면서 워찌
시를 안써서 올릴까? 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