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교조 시국선언교사 징계처분을 하면서
지난 2009년 전교조 교사들은 4대강 사업 등 정부시책에 반대하는 교사시국선언을 했습니다. 이 선언과 관련하여 교육과학기술부(이하에서는 “교과부”라 함)는 관련 교사들에 대해 중징계처분을 내릴 것을 전국의 시·도교육청에 지시하였습니다.
이에 따라 전북교육청 교육공무원일반징계위원회(이하 “교원징계위원회”라 함)는 2009년 12월 23일 전교조 전북지부 노병섭 지부장 해임, 조한연 사무처장 정직 1개월, 김재균 교권국장 정직 1개월의 중징계의결을 하였습니다. 교육공무원징계령 제17조 제1항에 따르면 교육감은 징계위원회의 징계의결통고일(2010년 1월 6일)부터 15일 이내에 징계처분을 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전임교육감 시절 이미 15일의 기간이 경과하였고, 제가 교육감에 취임한 2010년 7월 1일을 기준으로 하면 이미 약 6개월이 지났습니다.
(참고로 전교조 교사 시국선언과 관련하여 성립할 수 있는 소송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시국선언 행위를 형사법상의 범죄행위로 보아 검찰이 기소하고, 법원이 재판을 하는 ‘형사소송’입니다. 다른 하나는 교육감으로부터 징계처분을 받은 후, 그 징계처분의 위법성을 소청심사를 거쳐 법원에 소를 제기하여 다투는 ‘행정소송’입니다.)
교원징계위원회의 징계의결과는 별도로, 전주지방검찰청은 위 3인의 교사를 기소하였습니다. 이 사건 형사소송에서 1심 법원은 “시국선언이 특정 정당이나 특정 정치세력에 대한 지지·반대를 표시한 행위로 보기 어려우므로 정치적 중립의무를 위반한 것이 아니다”라는 이유를 들어 교사 3인 모두에 대해 무죄판결을 선고했습니다. 그러나 2심 법원은 1심 법원과는 정반대로 유죄판결을 선고하였습니다. 형량은 노병섭 지부장, 조한연 사무처장, 김재균 교권국장 각각 벌금 50만원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지난 4월 19일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전교조 대전시지부 소속 교사들에 대한 형사재판에서) 대법관 8 대 5의 의견으로 전교조 교사들의 시국선언행위에 대해 국가공무원법 및 집시법 위반의 죄를 적용하여 유죄판결을 선고하였습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 8인의 다수의견은 “교원의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보장돼야 하지만,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및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을 선언한 헌법정신과 관련 법령의 취지에 비춰 그 정치적 표현의 자유는 일정한 범위 내에서 제한될 수 밖에 없고, 이는 헌법에 의해 신분이 보장되는 공무원인 교원이 감수해야 하는 한계”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나 5인의 소수의견은 “1, 2차 시국선언은 특정사안에 관한 정부의 정책이나 국정운영 등에 대한 비판 내지 반대의사를 표시하면서 그 개선을 요구한 것으로 헌법이 보장한 표현의 자유를 행사한 것뿐이며, … 이것을 시국선언의 주체인 전교조 소속 교사들이나 시국선언에 동참한 교사들 집단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보아 무죄의견을 냈습니다.
그리고 오늘 대법원이 위 교사 3인의 상고를 기각함으로써 유죄판결이 확정되었습니다. 유죄판결의 이유는 지난 4월 19일 (전)전교조 대전시지부 교사들에 대한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과 동일한 내용의 것입니다.
저는 그 동안 교과부가 직무이행명령을 내리면서까지 전교조 전북도지부 교사 3인에 대한 징계처분을 압박할 때마다, 이 사건은 1심 법원 무죄, 2심 법원 유죄가 나올 정도로 법리논쟁이 극명하게 대립하는 사건이라는 점을 들어, 대법원의 최종판단이 나올 때까지 징계처분을 유보한다는 의사표시를 해 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는 것이 헌법상의 무죄추정의 원칙, 기본권의 최대한 보장의 원칙, 국가징계권과 국가형벌권에 특히 엄격하게 적용되는 과잉금지의 원칙에 비추어 타당한 것이라는 의견을 냈습니다. 그러나 교과부와 검찰은 저의 이러한 정당한 직무집행에 대해 형법 제122조의 직무유기죄를 들이댄 것입니다. 직무유기죄는 직무의 의식적인 방임 내지 포기가 있어야 비로소 성립하는 범죄입니다. 그 점에서 볼 때, 징계처분을 방임 내지 포기하지 않고 대법원의 최종판단시까지 유보한 저의 행위를 범죄행위로 보아 기소한 검찰은 검찰권의 행사를 명백히 남용한 것입니다.
이제 위 교사 3인에 대한 대법원의 최종적 판단이 내려졌습니다. 저는 헌법상의 기본권 보장의 정신, 국제인권규범의 정신에 비추어 볼 때 교사의 시국선언이 범죄행위라고 보지는 않습니다. 교사의 시국선언을 유죄로 보는 근거의 하나로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조항을 드는데, 그러한 견해는 우리나라 헌법에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조항이 들어오게 된 역사적 배경을 잘 못 읽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 이승만 정권이 그 독재체제의 유지와 정권안보를 위해서 공무원을 선거 또는 정치적 목적의 행사에 동원했던 전철을 다시 밟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헌법개정권력자(헌법상 헌법개정권력자는 국민임)는 1963년 헌법개정 때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조항(현행 헌법 제7조 제2항)을 만들어놓은 것입니다. 즉,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성 조항은 공무원의 권리와 법적 지위를 ‘제한’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공무원의 권리와 법적 지위를 ‘보장’하기 위한 것입니다. 따라서 교사의 시국선언을 범죄로 간주하기 위한 근거로 이 조항을 원용하는 것은, 헌법조항을 해석할 때 반드시 고려해야 하는 ‘역사적 해석’을 빠뜨린 것입니다.
이번 사건은 또한 교사에게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가 인정되는가, 교사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를 제한할 수 있는가, 제한할 수 있다면 그 범위는 어디까지인가, 라는 매우 중요한 기본권적 쟁점을 제기하고 있습니다.
(정치적·문화적·예술적·학문적 의사표현의 자유를 포함하여) 모든 의사표현의 자유를 가리켜 “입의 자유”(Freiheit des Mundes, freedom of mouth)라고 말합니다. 의사표현의 자유는 민주적 공동체의 유지와 존속에 기초적으로 필요한 자유입니다. 교사를 포함한 국민의 입을 막으면 민주적 공동체의 생명력은 위협을 받을 수밖에 없습니다. 단지 교사라는 이유로 또는 법관이라는 이유로 의사표현의 자유를 제한한다면, 그러한 제한은 헌법적으로 정당화되기 어렵습니다. 의사표현의 자유는 민주적 공동체의 유지와 존속에 직접적으로 위협을 가할 것이 명백한 경우에 한하여 제한되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교육감으로서 대법원의 최종판결을 존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헌법은 그 기본원리의 하나로 법치국가원칙을 선언하고 있고, 동시에 사법권의 독립을 보장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법원이 내리는 최종적 판단에 대해서는 국회, 정부를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과 모든 국민이 이를 존중해야 합니다. 물론 대법원의 판결이라 하더라도 그것에 문제가 있다고 보는 경우, 그에 대한 비판(또는 평석)은 누구든지 자유롭게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대법원 판결의 ‘구속력’까지도 무시하는 경우, 이는 권력분립의 원칙 및 헌법질서의 훼손이라는 감당하기 어려운 법적·사회적 혼란을 초래하게 됩니다. 법원의 종국적 판결의 구속력은 누구나 존중하라는 것이 헌법정신입니다.
오늘 징계처분을 받게 되는 세 분의 선생님들에 대해 교육감으로서 죄송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습니다. 보호해야 할 교사에게 중대한 불이익을 줘야 한다는 아픔을 견디기 어렵습니다. 유감스럽게도 교육감으로서 교사를 보호할 수 있는 법적 한계는 여기까지입니다.
이 사건에 대한 ‘형사재판’은 이제 마무리되었습니다. 오늘의 징계처분에 대해서는 ‘행정소송’을 통해서 그 위법 여부를 가릴 수 있습니다. 이미 전국의 여러 법원들이 행정소송에서, 시국선언을 이유로 교사를 해임처분한 것은 위법하다는 판결을 선고하였고, 그에 따라 해당 교사들이 교단에 복귀하였습니다.
저는 또한 아직 1학기 수업이 진행 중인 시점에서 학생들을, 사랑하는 선생님들의 품에서 떼어내야 하는 고통을 감내하기가 어렵습니다. 교육감은 학생들의 학습권과 정신적 건강권을 최대한으로 보장해 줘야 하는데, 그러한 기본책무를 충실히 이행하지 못 하는 것에 대해서 학생들과 학부모님들께 정중하게 머리 숙여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
다시는 이 땅에 이런 불행한 일들이 발생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헌법은 국민의 정치적 의사표현의 자유는 최대한으로 보장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정치권력(과 그 행사)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가 높을 때 교사의 시국선언이 나올 여지는 거의 없을 것입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정치권력의 담당세력이 높은 수준의 민주적 정당성을 유지하고 있을 경우, 교사를 포함한 국민들이 시국에 관한 정치적 의사표현을 하는 경우는 매우 드물 것입니다.
교과부는 헌법질서가 자신에게 부여한 권한만 행사해야 합니다. 현행법상 교사에 대한 징계는 해당 시·도교육청의 교원징계위원회와 교육감의 권한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과부가 교육감들에게 특정 교사들에 대한 징계를 압박하고, 그것도 중징계 등 징계의 구체적 수위까지 정하여 강제하는 행위는 명백히 형법상의 직권남용죄에 해당합니다. 교사에 대한 관계에서 교과부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교사의 권리와 법적 지위를 제한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보호하는 것입니다. 보호가 ‘원칙’이고, ‘제한’은 예외라는 것입니다. 교과부가 과연 이러한 (헌)법정신을 유지해 왔는지 겸허하게 지난날을 돌아보기를 바랍니다. 법령의 해석과 적용에서 엄격하게 금지되어야 하는 것은 원칙과 예외의 전도입니다. 헌법은 지금 이 순간에도 ‘원칙과 예외의 자리 뒤바꾸기’를 주의 깊게 경계하고 있습니다.
2012년 5월 24일 전라북도 교육감 김 승 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