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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유림독립운동파리장서비◈
☞ 소 재 지 : 대구 달서구 상인동 1530(월곡역사공원내)
☞ 관리번호 : 30-1-13
☞ 관 리 자 : 월곡역사박물관장
☞ 시설제원 : 부지 10평, 높이 6.6m
☞ 건립취지
1919년 4월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된 만국평화회의에 한국유림대표 137인이 연서한 독립청원서를 제출한 사건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함 .
파리강화회의에 제출한 독립청원서(파리장서)는 일제의 침략상과 한국의 피해실정을 밝힌 1,420자에 달하는 장문의 글로써 곽종석이 글을 짓고 김복한 등 전국의 유림 137명이 연서한 문서이다.
김창숙이 주동하여 서울과 영남각지와 호남 동서부까지 연락하고 경비를 마련하여 장서를 휴대하고 상해로 건너가 중국어, 영어로 번역하여 삼종의 장서를 김규식에게 맡겨 파리강화회의에 보내어 국제여론을 환기시키고, 중국의 언론기관과 일본에도 발송하여 우리나라의 독립의지를 온 세계에 공표하였다
☞ 인근관광명소 : 우방타워랜드, 앞산공원, 화원유원지
☞ 찾아가는 길
- 동대구역 또는 대구역에서 지하철(대곡방향) 탑승, 상인역 하차, 도보로 20분
◈태극단독립운동기념탑 ◈
☞ 소 재 지 : 대구 달서구 상인동 1(대구상원고등학교 내, 구 대구상업정보고등학교)
☞ 관리번호 : 30-1-12
☞ 관 리 자 : 대구상원고등학교장
☞ 시설제원 : 부지 20평, 높이 6.3m
☞ 건립취지
대구상업학교 재학생들이 조직한 비밀결사조직인 “태극단”의 항일독립운동을 기념하고 그 과정에서 산화하신 순국지사 4분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함 .
1942년 5월 대구상업학교 4학년 이상호가 서상교, 김상길 등과 조선이 처한 현실을 토로하고 항일운동을 본격적으로 전개하기 위하여 결성한 태극단은 치밀한 조직체계와 투쟁방안을 실현하려고 하다가 1943년 일경에 발각되어 단원 26명 전원이 체포되어 16명이 석방되고 10명이 취조를 받으며 혹독한 고문을 당하였다. 일경의 모진 고문으로 이준윤이 병보석 석방 3일만에 숨지고, 3명이 추가로 불기소로 풀려났으며, 6명이 재판을 받아 미성년자의 최고형인 단기 5년이상 장기 10년형을 선고받았다.
☞ 찾아가는 길
- 동대구역 또는 대구역에서 지하철(대곡방향) 탑승, 상인역 하차, 도보로 10분
◈조양회관 ◈
☞ 소 재 지 : 대구 동구 효동로2길 94
☞ 관리번호 :
☞ 관 리 자 : 광복회대구광역시지부장
☞ 시설제원 : 1650㎡, 벽돌조 2층
『조양(朝陽)회관』은 “조선의 빛이 되어라”라는 뜻에서 명명된 곳으로 1922년 10월 30일 서상일 등 민족지도자들이 일정액의 비용을 부담하는 등 순수한 민족자본과 기술로 지어졌으며, 민중을 깨우치고 민족혼을 불어넣고 국권을 회복하려는 염원으로 달성공원에 세운 건물입니다.
이 회관은 당시 대구의 민족지도자들이 민중과 청소년들에게 독립정신, 민족계몽운동 및 신교육운동을 펼친 유서 깊은 곳으로 100여명을 수용할 수 있는 대강당을 비롯하여 회의실, 사무실, 인쇄공장, 대구구락부, 대구운동협회, 대구여자청년회, 동아일보지국 등을 두고 시국강연, 국산품애용, 상공업 진흥 등에 대한 강연회를 개최하였으며 야간에는 야학으로 청소년을 가르치고, '농촌(農村)'이라는 잡지도 발간하였다고 합니다.
현재는 광복회대구지부 회관으로 사용되고 있는 귀중한 유산으로 독립운동과 항일투쟁에 관한 사진과 유품을 전시하는 사료전시실과 애국지사의 영정을 모시고 있으며 윤봉길 의사와 도산 안창호 선생의 어록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조양회관은 항일독립의 산실로 역사적 가치는 물론 건축사적으로도 귀중한 자원으로 인정되어 등록문화재 제4호(2002.2.28)로 등록된 문화재입니다. 과거 대구시 중구 대신동 달성공원 입구에 있었던 조양회관은 광복 후 한민당 사무실에 이어 원화여자중고등학교에서 사용하다가, 학교가 이전되면서 대구시에서 84년 6월 현 위치인 망우공원 내에 원형 그대로 복원하여 광복회대구광역시지부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장윤덕의사 순국기념비◈
☞ 소 재 지 : 대구 북구 산격동 1370(경북대학교 내)
☞ 관리번호 : 30-1-15
☞ 관 리 자 : 경북대학교 총장
☞ 시설제원 : 부지 20평, 높이 3m
☞ 건립취지
경북 예천출신으로 1907년 의병을 규합하여 의병진을 편성,
이강년 대장 휘하에서 의병장으로 활약하다 체포되어 순국하신 장윤덕
(張胤德, 1872.7.6~1907.9.16, 1968년 독립장)선생의 구국정신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
장윤덕 선생은 1907년 7월 의병을 일으켜 주로 풍기, 봉화, 문경, 예천에서 활동하였다.
1907년 9월 12일 예천읍을 습격하고, 16일 30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대구수비대를 격파하고자 상주읍을 습격, 일경의 자위단과 교전하였다. 이 전투 중 대구수비대에서 출동한 1개중대가 격전을 벌이다 패전하였으며, 장윤덕 선생은 총상을 입고 체포되었다.
체포 후 혹독한 고문에도 굴하지 않고 혀를 끊고 항거하다 1907년 9월 16일 상주군 함창면 구향리 뒷산에서 총살당하여 35세의 젊은 나이에 순국하였다.
☞ 인근관광명소 : 팔공산도립공원, 동촌유원지
☞ 찾아가는 길
- 시내에서 545번, 349번 등 시내버스 이용 20분
- 동대구역, 대구역에서 경북대학교 정문방향 버스 이용 20분
◈이상화 시비◈
☞ 소 재 지 : 대구 중구 달성동 294-1(달성공원 내)
☞ 관리번호 : 30-1-18
☞ 관 리 자 : 달성공원관리사무소장
☞ 시설제원 : 부지 5평, 높이 1.8m, 폭 0.75m
☞ 건립취지
대구출신 저항시인이며, 독립운동가인 이상화(李相和, 1901.8.4~1943.3.20,
1990년 애족장) 시인의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한 시비로 대표작인 “나의 침실로”의 일부가 명각되어 있다.
이상화 선생은 대구고보 재학 시절인 1919년 3월 8일 서문밖 시장의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으며, 1918년 민족저항시 “신라제의 노래”를 발표하여 독립정신을 고취시켰으며, 그 후에도 1922년 “나의 침실로”, 1926년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등을 발표하여 민족혼을 일깨웠다.
1923년 일본 동경으로 건너가 잡지 “향영”을 발간였으며, 1935년에는 중국으로 건너가 친형인 이상정 중국군 장군과 조국의 독립을 위한 국내조직을 협의하고 1937년 귀국하였으나 곧 체포되어 2개월간 구금되어 고문을 받고 석방되었다.
☞ 인근관광명소 : 우방타워랜드, 앞산공원, 경상감영공원
☞ 찾아가는 길
- 시청에서 도보로 20분.
- 대구역에서 서문시장방면 시내버스 이용 10분 소요
◈우강 송종익선생 상◈
대구 사람으로 흥사단 창립, 대한민국회 참여 등 1906년 도미하여 광복을 맞을때까지 미주지역에서독립운동에전념한 우강 송종익(宋鍾翊, 1887.2.27~ 1956.1.7, 1995년 독립장) 선생의 애국정신을 추모하고자 선생의 상을 건립하였다.
◈왕산 허위선생 순국기념비◈
☞ 소 재 지 : 대구 중구 달성동 294-1(달성공원 내)
☞ 관리번호 : 30-1-17
☞ 관 리 자 : 달성공원관리사무소
☞ 시설제원 : 부지 10평, 높이 4.9m
☞ 건립취지
구한말 대표적인 의병장으로 13도연합의병부대의 군사장으로 활약하시다 순국하신 왕산 허위 (許蔿, 1854.4.1~1908.9.27, 1962년 대한민국장)의 유적이 있던 곳을 기념하기 위해 건립.
왕산 허위선생은 1897년과 1907년에 의병을 일으켰으며, 13도연합의병부대를 결성하여 군사장이 되어 서울진공작전을 감행하여 서울 성문 밖 30리까지 진격하였으나 일본군에 패전하여 실패하였다.
그후 임진강 유역에서 의병연합부대를 재정비하여 항일투쟁을 계속하다 1908년 체포되어 9월 27일 서대문감옥에서 순국하였다.
☞ 인근관광명소 : 앞산공원, 경상감영공원, 우방타워랜드
☞ 찾아가는 길
- 시청에서 도보로 20분.
- 대구역에서 서문시장방면 시내버스 이용 10분 소요
◈신암 선열공원◈
☞ 소 재 지 : 대구 동구 신암5동 산27-1
☞ 관리번호 : 30-1-45
☞ 관 리 자 : 대구광역시
☞ 시설제원 : 애국선열 48위 묘소, 부지면적(㎡) : 36.736
☞ 건립취지
국내유일의 애국지사 묘역(50위)으로서 그 상징성이 뚜렷하며 단충사 또한 대구경북 출신 항일독립운동지사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임국내유일의 애국지사 묘역(50위)으로서 그 상징성이 뚜렷하며 단충사 또한 대구경북 출신 항일독립운동지사의 위패를 모시고 있는 사당임
☞ 인근관광명소 : 망우공원
◈신명 3.1운동 기념탑◈
☞ 소 재 지 : 대구 중구 동산동 206(신명고등학교 내, 구 신명여자고등학교)
☞ 관리번호 : 30-1-21
☞ 관 리 자 : 신명고등학교장
☞ 시설제원 : 부지 10평, 높이 6.7m
☞ 건립취지
1919년 일어난 신명학교 학생들의 독립만세운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한 기념탑이다.
신명학교 재학생들은 독립만세운동에 동참하기로 하고 1919년 3월 8일 최정술을 비롯한 일부 학생은 만세운동의 시발지인 큰 장터에서, 이영현을 비롯한 통학생 및 저학년 10여명은 동신교를 조금 지나서, 그리고 30여명의 기숙사생은 남성파출소 앞에서 각각 계성학교, 성경학교, 남선정교회, 남산교회 등이 주축이 된 수천명의 만세부대와 합류하였다 .
만세부대는 일본기마대와 기관총을 앞세운 대구주둔 80연대의 저지와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동성로까지 진출하였으나 일본헌병의 무자비한 구타로 전원 구속되었으며, 신명학교 학생들은 나이 어린 소녀라는 점이 참작되어 석방되었으나, 이만집, 김태련 등 졸업생과 교사들은 실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
☞ 인근관광명소 : 달성공원,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경상감영공원
☞ 찾아가는 길
- 시청에서 도보로 20분.
- 대구역에서 서문시장 방면 시내버스 이용 10분 소요
◈석주 이상룡선생 구국기념비◈
☞ 소 재 지 : 대구 중구 달성동 294-1(달성공원 내)
☞ 관리번호 : 30-1-16
☞ 관 리 자 : 달성공원관리사무소장
☞ 시설제원 : 부지 10평, 높이 4.78m
☞ 건립취지
경북 안동출신으로 만주지역 독립운동의 대표적인 지도자이며, 임시정부 국무령을 역임한 석주 이상룡(李相龍, 1858.11.24~1932.6.15, 1962년 독립장)선생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함
이상룡 선생은 1905년 대한협회 안동지부를 조직하여 협동학교를 설립하고 후진양성에 힘쓰며 국민계몽운동을 벌였으며, 1911년 가족을 이끌고 간도로 망명, 길림성 유하현에 이시영, 양기탁 등과 신흥강습소를 열어 교포자녀의 군사훈련을 실시하였다.
1912년 계몽단체 부민단을 조직하여 단장으로 활동하며 동포들을 결속하고 계몽하였다.
1926년 9월 24일 임시정부 국무령으로 취임하고 민족주의와 공산주의의 대립을 위하여노력하였으나 실패하고 이듬해 1월 국무령을 사임하고 서간도로 돌아와 3부통합 운동을펼치다 1932년 병사 순국하였다.
☞ 인근관광명소 : 앞산공원, 경상감영공원
☞ 찾아가는 길
- 시청에서 도보로 20분.
- 대구역에서 서문시장방면 시내버스 이용 10분 소요
◈민족 정기탑◈
☞ 소 재 지 : 대구 달서구 상인동 1530(월곡역사공원 내)
☞ 관리번호 : 30-1-22
☞ 관 리 자 : 월곡역사박물관장
☞ 시설제원 : 부지 10평, 높이 12m
☞ 건립취지
의사 및 열사를 많이 배출한 대구를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는 도장으로 삼고 온 겨레가 고루 잘 살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기원하기 위하여 건립.
대구는 충의의 고장으로 일제와 항쟁한 많은 애국지사가 난 곳이므로 의사 및 열사들의 숭고한 정신을 계승하여 이곳을 민족정기가 바로 서는 도장으로 삼고 온 겨레가 고루 잘살 수 있는 나라가 되기를 기원하며 세운 탑이다.
☞ 인근관광명소 : 우방타워랜드, 앞산공원, 화원유원지
☞ 찾아가는 길
- 동대구역 또는 대구역에서 지하철(대곡방향) 탑승, 상인역 하차, 도보로 20분
◈목산 조현욱선생 순국기념비◈
☞ 소 재 지 : 대구 북구 노원동 78-1
☞ 관리번호 : 30-1-24
☞ 관 리 자 : 문중대표(조안제)
☞ 시설제원 : 부지 3평, 높이 3m
☞ 건립취지
경북 청송출신으로 청송군 현서면의 3.1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여 2년의 옥고를 치른 조현욱(趙炫郁, 1854.1.2~1922.2.19, 1991년 애국장)의 구국독립정신 추모를 위해 건립함 조현욱 선생은 1919년 3월 26일 현서면 화목 장터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3월 26일 오후 1시경, 주민 50여명을 규합하고, 다시 현서면사무소에 있던 구장 및 유지들을 종용하여 그들의 호응을 얻어서, 미리 준비한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외치며 화목시장으로 몰려갔다. 도중에 많은 군중이 합세하여 시위군중은 수백명으로 늘어났다. 그러나 화목주재소에서 출동한 3명의 일본 경찰의 무력행사로 현장에서 체포되었으며, 이해 5월 31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출옥 후에는 일제에 병탄된 조국의암담한 현실에 비분하여 투신 순국하였다.
☞ 인근관광명소 : 팔공산도립공원, 동촌유원지, 망우당공원
☞ 찾아가는 길
- 노원동사무소에서 도보로 20분
◈동암 서상일 선생 상 ◈
☞ 소 재 지 : 대구 달서구 성당2동 670-30(원화여고 내)
☞ 관리번호 : 30-1-14
☞ 관 리 자 : 원화여자고등학교장
☞ 시설제원 : 부지 20평, 높이 3m
☞ 건립취지
대구 출신으로 대동청년당, 조선국권회복단을 조직하여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조양회관”을 건립하여 민족정신 확립에 기여한 동암 서상일 선생(1990년 애족장)의 독립정신을 기리기 위하여 건립함.
서상일 선생은 1909년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한 비밀결사인 대동청년당 을 조직하여 지하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으며, 1913년 박상진 등과 광복단을 조직하여 군자금을 모집하였고, 1915년에는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에서 활동하였다.
1921년 8월 미국에서 열린 태평양회의에 독립청원서를 보내고 그 서명대표로 활약하였다.
1924년에는“농림”과“민중운동”이라는 잡지를 발행하여 흑우회 계통의 독립운동을 지원하였다.
1922년 대구 달성공원에 “조양회관”을 건립하여, 대구지역의 독립운동의 구심점으로 자리잡게 하여 민족정신 확립에 기여하였다.
☞ 인근관광명소 : 우방타워랜드, 앞산공원, 화원유원지
☞ 찾아가는 길
- 서부정류장에서 시내버스 545번 이용, 원화여고 앞 하차
◈대구 학생운동지 ◈
☞ 소 재 지 : 대구 중구 대봉동 60
☞ 관리번호 : 30-1-20
☞ 관 리 자 :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중학교장
☞ 시설제원 : 학교건물 6동 및 부대시설
☞ 건립취지
일제 강점기 말기인 1940년 대 초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의 항일운동이 전개된 학교 건물.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은 1938년 조선어과목이 폐지되자 “민요집”을 발간하여 우리말 보존을위하여 노력하였고, 1940년 문예부, 1941년 연구회, 다혁당을 조직 하여 활동하는 등 항일독립운동에 앞장섰다.
졸업 후에도 조직을 유지하면서 지속적인 활동을 하던 중 1941년 기관지 “반딧불”, “학생”이 일경에 적발되어 비밀결사조직이 탄로나 300여명의 졸업생들이 구속되었다. 결사 주동자 35명은 신원이 확인되어 구속되어 혹독한 고문과 조사를 당하여 2년 6개월에서 5년까지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광복 후 출옥하였으나 이미 5명이 옥중 순국하였고, 고문후유증으로 12명이 사망하였다.
☞ 인근관광명소 : 달성공원,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경상감영공원
☞ 찾아가는 길
- 시청에서 도보로 20분.
- 대구역에서 봉산육거리 방면 시내버스 이용 15분 소요
◈대구사범항일학생의거순절동지추모비 ◈
☞ 소 재 지 : 대구 중구 대봉동 60(경대사대부설중학교 내)
☞ 관리번호 : 30-1-19
☞ 관 리 자 :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중학교장
☞ 시설제원 : 부지 27평, 높이 4m
☞ 건립취지
대구사범학교 8,9회 학생들이 주축이 되어 일어난 학생항일운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건립
대구사범학교 학생들은 1938년 조선어과목이 폐지되자 “민요집”을 발간하여 우리말 보존을 위하여 노력하였고, 1940년 문예부, 1941년 연구회, 다혁당을 조직하여 활동하는 등 항일독립운동에 앞장섰다. 졸업 후에도 조직을 유지하면서 지속적인 활동을 하던 중 1941년 기관지 “반딧불”, “학생”이 일경에 적발되어 비밀결사조직이 탄로나 300여명의 졸업생들이 구속되었다. 결사 주동자 35명은 신원이 확인되어 구속되어 혹독한 고문과 조사를 당하여 2년 6개월에서 5년까지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광복 후 출옥하였으나 이미 5명이 옥중 순국하였고, 고문후유증으로 12명이 사망하였다.
☞ 인근관광명소 : 달성공원, 국채보상운동기념공원, 경상감영공원
☞ 찾아가는 길
- 시청에서 도보로 20분.
- 대구역에서 봉산육거리 방면 시내버스 이용 15분 소요
◈국채보상운동여성기념비 ◈
◈국채보상운동기념비 ◈
국채보상운동은 1907~1908년 사이에 서상돈(99애족장), 김광제(90애족장), 양기탁(62대통령장)을 중심으로 일본에 부담하여야 할 국가부채를 국민들의 모금으로 상환하고자하는 목적으로 대구에서 발기 전국적으로 전개된 국권회복운동임
대구시에서는 매년 2월 21일 대구시민 1000여명이 모인가운데 국채보상운동기념식을 열고 있다.
☞ 소 재 지 : 대구 중구 태평로2가 대구시민회관내
☞ 관리번호 : 30-1-48
☞ 관 리 자 : 대구시
☞ 시설제원 : 230cm(가로)*280cm(세로)*420m(높이)
☞ 인근관광명소 : 동성로, 경상감영공원, 국채보상운동공원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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