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국제영화제 현장취재]분단의 상처그린‘해안선’
사건의 발단은 ‘7시 이후 출입엄금’이라는, 날선 철조망 위에 걸린 푯말이었다. 횟집 총각의 동생 ‘미영’(박지아)이 남자친구와 사랑을 나누면서 이 선을 넘어버린 것이다. 평소 간첩을 못잡아 안달이던 ‘강상병’(장동건)은 수상쩍은 물체를 보자마자 총을 난사하고, 수류탄을 던져 끝장을 낸다. 산산이 찢겨진 연인 앞에서 미영은 미쳐버린다. 민간인을 죽였는데도 포상휴가를 주는 군대의 부조리 속에서 강상병 역시 미쳐간다.
제7회 부산국제영화제 개막작으로 선정된 김기덕 감독의 새 영화 ‘해안선’은 그의 영화세계를 선명한 해안선처럼 드러낸다. 물과 뭍이 갈리듯, 언제나 그래왔듯이 상이한 세계가 양립한다. 빛깔 고운 해변에 어울리지 않는 불길한 국방색의 그늘을 뿌리는 군부대의 훈련소리. 인물들 또한 건너서는 안되는 위험한 경계에 부딪침을 반복한다. 낚시바늘(섬), 유리와 거울(나쁜 남자)처럼 이번에는 거대한 덩이의 가시박힌 철조망이 등장해 육체를 찢어놓는다. 그리고 김감독의 다른 피조물들이 그랬듯, 고통의 진원지를 떠나지 못한다. 정신분열로 의가사제대한 강상병은 끊임없이 군부대를 맴돌며 ‘제대하지 않았다, 나는 간첩을 잡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성한 미영은 부대 주위를 돌아다니다가 군인들의 성적인 노리갯감으로 전락한다. 구원은 어느 곳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해안선’은 지극히 김기덕적인 코드가 다시 한번 반복되는 영화다. 다른 점이 있다면 그간에는 이같은 상징들로 개인 내면의 폭력성과 부조리를 응시해온 반면, 이번 작품은 한반도 남쪽 전체로 상징을 확장시키며 역사적인 맥락을 얻는다는 것. ‘수취인불명’의 주제의식을 넘어서는, 남한 사회의 폭력성에 대한 거대한 성찰을 시도한 것이다.
그 성찰의 중심에 ‘강상병’이 있다. 부조리한 군에 충실했기 때문에 조직에서 소외되고 차단된 그는 계속 ‘복권’을 시도한다. 그를 거부하는 조직에 그는 총부리를 겨눈다. 언뜻 남성적인 권력을 잃었기 때문에 분노하는 인물처럼 비친다. 부대원들 역시 강상병에 의해 남성적 권력을 침해당했다고 여기며 못지 않은 광기에 빠져든다. ‘김상병’(김정학)은 강상병에게 인간적인 이유를 오버랩시키는 인물이다. 임신한 미영을 강제로 낙태시키는 중대장 이하 부대원들의 파렴치함에 광분한 그는 동료들에게 방아쇠를 겨눈다. 김감독은 이 둘을 환상장면으로 섞어놓는다.
여성에 대한 가학성과 강간신화로 악명높은 김기덕이지만 이번에는 좀 ‘순해졌다’는 게 일반적인 평이다. 희생자인 미영에 대한 연민을 부각시켰다. 자궁을 유린당하는 그녀는 전쟁의 위험이라는 명목 하에 철조망으로 유린되고 있는 한반도 남쪽의 해안선과 병치된다. 맨살을 드러낸 채 포클레인 갈퀴 아래서 절망하는 새만금 갯벌 위로 그녀가 뛰어노는 장면은 지극히 상징적이다.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해안의 색감이 비장한 아름다움으로 살아나지 않는다는 것. 전체적으로 건조한 ‘주둔지’처럼만 느껴져 영화적 울림이 반감됐다. 횟집 총각 ‘철구’역의 유해진이 빼어난 연기를 선보였다. 22일 개봉.
/부산·최민영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