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래글은 장수옥총재가 합기도를 중심으로 특공무술이란 무술을 개발하게 된 과정을 나타내고 있어 퍼왔습니다.
장수옥총재의 자서전(?)이 최근 그분이 청와대에서 정년퇴직하면서 책으로 나왔으니 관심있으신 분은 읽어보십시요. 그러나 제가 읽어본 바 로는 기술적인 측면의 내용은 거의 전무합니다. 그리고 그런 류의 글들이 그러하듯이 자화자찬과 역경극복,별로 알고 싶지않은 개인적인 일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따라서 기술적인 측면이 궁금하신 분은 특공무술교본을 사보시는 것이 좋을 듯 합니다.
또한 합기도 사범님중에서 공수부대등으로 입대하여 특공무술을 경험해보신 분들중에서 합기도를 군대에 맞게 응용한 것이지 전혀 다른 무술이라고 보기는 어렵다고 하시는 분도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특공무술의 탄생배경
(1)태동기
현 대한특공무술 총사이신 장수옥님은 전북 김제 출신으로 대한기도회 합기유술을 수련을 하다가 전북 익산(구 이리)에서 체육관(무문관)을 처음 열었다. 그래서 1세대 제자들은 대부분 전북 익산출신들이 많다. 박노원님과 서승재님(현 국제)도 마찬가지로 익산분이다
1977년 8월19일 임진강을 헤엄쳐 귀순한 이영선씨는 인민군 9사단 직할 경보병대대 자동소총수로 있었는데, 경보병부대 요원들은 태권도와 유술(유도) 권투 레슬링 등에서 가장 공격적인 품세만 골라서 만든 ‘격술’(북한판 특공무술)을 단련하고 있었다. 이씨는 9사단 경보병대대원 중에서도 열 손가락 안에 들던 격술 고수였다.
이런 이유로 그는 귀순후 태권도로 단련한 한국군 특공 요원들과 자주 자유대련을 벌였으나, 압도적인 우세로 전승을 거뒀다. 정보당국은 이씨가 보여준 격술이 정찰국과 교도대 등 인민군 특수 부대는 물론이고 노동당 작전부 요원 등에게도 보급된 사실을 확인했다. 이어 발차기 위주의 태권도로는 손기술을 중시하는 인민군 격술을 제압할 수 없다고 판단하고, 1978년 6월 대 테러부대를 창설하게 되었다. 이 부대는 당시 전국 무술의 대가 중 우수한 기량을 가진 무술인을 개별적으로 초빙하여 심사한 결과, 장수옥님을 606부대 전임 사범으로 선임하고 특수 임무수행에 적합한 무술연구와 새로운 기법을 개발토록 하였다.
이에 새로운 술기와 이론을 개발하여 특공무술술기를 정립(1차 술기 정리)하여 1978년 11월 당시 차지철 대통령경호실장에게 시범을 보였고, 바로 고 박정희 대통령에게 보고가 되어 시범준비를 하던 중 무술 명칭을 [특공무술 = 特功武術 = Military Arts] 로 명명하고, 1979년 6월 고 박정희 대통령이 임석한 가운데 연무관(청와대 내부에 있는 체육관)에서 시범을 보이게 되었다.
장수옥님의 제자인 박노원님은 여러 무술에 눈을 돌렸고, 그중에는 장수옥님의 스승인 '고 김창수'님과도 사제관계를 맺었다. 박노원님은 1979년 8월에 특전사령부(당시 5공수여단장 장기오 장군) 연병장에서 시범을 보였고, 81년 1월 육군참모총장의 승인을 받아 5공수여단에 처음 보급함으로써 [특공무술]이 군의 정규교육과목으로 채택되었다
각 대대(중대)중에서 사회에서 무예를 한 경험이 있는 대원 454명을 선발해서 그들을 정예요원으로 가르쳤다. 이 정예요원중에서 책임 교관 이원익님(세계특공무술연맹)과 여섯명의 교관을 선발해서 특공무술의 특수전 교육을 담당하게 하였다. 그 교관들이 또다른 교관들을 가르치고 해서 술기가 확산된다. 이 때 이 대대소속 대원 5명을 무작위 선출하여 북한남파간첩과 대련을 시켰는데 특공무술이 북한의 격술에 능가함을 보여줬다.
첫댓글 북한의 태권도는 1980년부터 최홍희씨의 ITF 계열이 보급된걸로 알고 있습니다 태권도는 해방이후 당수도란 명칭으로 남한에서 시작한 신흥무예라고 할수있죠.
77년이면 북한에 태권도가없고 다만유사한 계통의 기술은 있지않았을까요.
현재의 특공무술은 태권도와합기도의 기술및용어의 혼합성이보입니다. 에를들어 기본동작에 앞굽이,모아서기,학다리서기,특무의호신술술기,검술의대한검도회 계열기술들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