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종친회는 1909년 8월 한성부(서울) 남부 상다동 4통 7호에서 김해김씨종약소(金海金氏宗約所)를 창설한 것이 종친회 조직의 효시였다. 임기 1년의 초대 종약소장에는 金容培 족장이 선출되어 여러 차례 중임하였다. 2대 회장에는 金雲培 족장이 선임되었다.
1914년 11월 총회에서 김해김씨종약소를 김해김씨대동종약소로 개칭하고 소장 임기도 2년으로 개정하여 초대회장에 金鍾護 족장을 선출하였다. 2대 金聖培, 3대 金應均, 4대 金興培, 5대 金克培, 6대 金漢泰로 이어지는 역대회장들이 중임 혹은 중중임으로 41년간 일제의 강압 통치하에서도, 그리고 1945년 해방정국에서 대동종약소는 연면히 이어왔으나 6.25이후 조직이 와해되었다.
1955년 부산에서 재창립 총회를 개최하고 대동종약소를 김해김씨중앙종친회로 개편,초대회장에 金達範(참의원 역임)족장을 선출하였다.
1957년 2월 金顯哲(재무부장관)족장이 2대 회장으로 선임되고 가락후예인 허씨도 동참하여 김해김씨·허씨종친회로 개칭하였다.
1964년 4월 22일 총회에서 김해김씨, 허씨, 인천이씨 등 모든 가락후예들이 동참하도록 정관을 개정하여 김해김씨·허씨 종친회를 金首露 왕이 세운 나라 이름인 駕洛國을 따서 駕洛中央宗親會로 개칭하고 金俊淵(전 법무부장관)족장을 제3대 회장으로 선임하였다.
1967년 총회에서 법인체로 승격 시키도록 결의하고 문화공보부에 신청하여 인가를 받은 후 1967년 12월 12일 법원에 등기 하였다. 또 1967년 총회에서 金顯哲(내각수반) 족장이 제4대 회장으로 재취임하여 5대까지 연임하였다.
1970년 3월 총회에서 金喆浩(기아산업주식회사 사장)족장을 제6대 회장으로 선임하였다.
1972년 4월 총회에서 김현철 족장이 제7대 회장으로 재취임 하였다.
1974년 4월 총회에서 金元泰(무임소장관)족장이 제8대 회장으로 취임하여 9대, 10대까지 연임하였다.
1980년 5월 김현철 족장이 다시 제11대 회장으로 취임 하였다.
1981년 4월 임시총회에서 김현철 회장이 사임하고 金文錫(국회의원) 족장이 제12대 회장에 취임하여 13대까지 연임 하였다.
1986년 7월 총회에서 金榮俊(농림부장관)족장이 제14대 회장으로 취임하여 1999년까지 네 차례 유임하였다. 재임 중이었던 1987년 5월 27일 재단법인 가락국사적개발연구원을 설립하였다.
1999년 10월 총회에서 金琫鎬(국회 부의장) 족장이 제18대 회장으로 취임하고 2001년 3월 6일 인도에서 허왕후 기념비 제막식 거행. 2003년 4월 총회에서 김봉호 회장이 19대 회장으로 추대되었다.
2003년 4월 18일 총회에서 제20대 회장으로 김봉호 회장이 유임 되었다.
2006년 4월 7일 48차 정기총회, 同年 6월 30일 임시총회에서 제21대 회장으로 김문석 고문을 추대되었다.
2007년 5월 총회에서 제22대 회장으로 김문석 회장이 유임 되었다. 2012년 3월 23일
정기총회를 열고 김문석 종친회장(86세·11대 국회의원)을 제24대 회장으로 재선임했다. 임기는 3년.
2013년 11월 20일 임시총회에서 제25대 가락중앙종친회장으로 金杞載(46년생) 전 행정자치부 장관이 추대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