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부터 근대? 일반 한국사와 동떨어진 근대 설정?
-------------------- 근대국어란? - 새교과서에도 그대로 적용된 근대국어
근대 국어는 보통 임진왜란이 끝난 직후인 17세기 초부터 19세기 말까지의 국어를 이른다. 임진왜란은 정치·사회에 영향을 끼친 것은 물론 국어 생활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전쟁으로 인해 우리 생활과 정신, 문화가 변했고 그를 반영하는 언어도 함께 변한 것이다. 국어사(國語史)에서 중세와 근세의 경계를 16세기와 17세기의 교체기에 두는 이유는 국어의 음운 체계와 문법 체계가 16세기에 큰 변화를 겪었으며, 그 결과 17세기에 와서 국어는 전반적으로 새로운 모습을 띠게 되었기 때문이다. 근대 국어도 중세 국어와 마찬가지로 언해(諺解)를 많이 가지고 있지만, 내용적으로 보면 큰 차이가 있다. 즉 중세 국어에 많았던 불경 언해(佛經諺解)는 근대 국어에 오면 거의 볼 수 없고, 대신 경서 언해(經書諺解)가 많아진다. 또 17·18세기 자료에서 역학서(譯學書)가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실과 19세기 자료에서 소설 내지 가사가 큰 비중을 차지하는 사실도 근대국어 자료의 특징으로 들 수 있다.
17세기의 근대 국어에는 중세 국어에 있었던 유성 마찰음(ㅸ·ㅿ)이 이미 없으며 어두 자음군이 된소리로 변하는 경향을 보였고, 모음 ‘·’는 어두 음절에만 남아 있었다. 그리고 중세 국어에 있었던 성조(聲調)도 없었다. 17세기와 18세기의 교체기에 ‘ㄷ·ㅌ’의 구개음화가 일어나 ‘ㅈ·ㅊ’으로 된 사실과 18세기 중엽에 어두 음절의 ‘·’마저 ‘ㅏ’로 변화했고, 그 뒤를 이어 이중 모음 ‘ㅐ’와 ‘ㅔ’의 단모음화(單母音化)가 일어난 것은 특기할 만하다.
근대 국어의 문법 체계를 중세 국어의 그것과 비교해 볼 때 간소화, 즉 경제적이고 효율적인 체계에의 지향을 가장 뚜렷한 특징으로 지적할 수 있다. 선어말 어미 ‘-오/우-’가 없어졌으며 경어법도 중세 국어의 존경법·겸양법·공손법의 체계에서 존경법과 공손법의 체계로 바뀌었다. 중세국어에 잡다했던 강세(强勢)의 첨사들이 대폭 정리되어 ‘야·곳’ 등만이 남게 되었고, 고유어(固有語)들의 폐어화(廢語化)가 눈에 띈다. 그 대신 한자어는 더욱 증가했는데, 당시의 한자어에는 현대 국어의 그것과 의미가 다른 것도 적지 않았다. ‘방송(放送)’은 ‘석방(釋放)’을, ‘발명(發明)’은 ‘변명(辯明)’을 의미했다. 서양의 문물이 중국을 통해 들어왔기 때문에 이들도 새로운 한자어를 추가시켰다. 대개 천문·지리·종교 등에 관한 어휘인데, 예를 들면 자명종(自鳴鐘)·천리경(千里鏡) 등이다. 그리고 정치적·문화적 교류에 의한 차용어(借用語)가 중국어·몽고어·만주어에 걸쳐 많이 유입된 것도 근대 국어 어휘의 특징으로 지적할 수 있다. - 7차 고등학교 국어 교사용 지도서(교육 인적 자원부, 2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