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개인적으로는 가장 싫어하고 가고 싶지 않은 나라이면서도 일본을 찾아가게 된 것은 일본의 문화나 풍습을 보겠다는 욕심보다는 오직하나 유명하다는 북알프스의 만년설과 3000m가 넘는 봉우리에 올라보고 싶은 것이 솔직한 나의 욕심 때문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북알프스 산행일이 다가왔다. 그동안 기다리면서 바라는 것은 오직 하나, 좋은 날씨만 학수고대했는데 갑자기 10호 태풍 남테우른이 불어오고 있다는 것이다. 걱정이 되지 않을 수 없다. 어렵게 추진한 북알프스 산행인데 혹시나 태풍으로 출발을 하지 못하면 어쩌나 하는 걱정이 앞선다. 그래서 서울 이구대장께 전화를 하니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비행기는 뜰 것 같다면서 너무 걱정하지 말라 하신다. 10월 30일 6시 20분경 장미누님을 만나 간단히(주는 쇠주와 라면) 장을 보고 어라횟집에서 모임이 있어 7시까지 참석을 하라지만 약간 지체될 것 같다. 7시 20분경 참석하니 벌써 많은 분들이 와서 곡차를 들고 계신다. 저녁 10시에 출발이니 오늘만큼은 곡차를 마시지 말아야겠다고 다짐을 했지만 주위에서 권하는 바람에 또 마음이 약해져 한잔 한잔 하다보니 제법 취기가 오른다. 다시 서울에 연락하니 곧 김익성(영산)님이 도착할 것이라면서 전화번호를 가르켜 주길래 전화를 하니 휴가철이라 고속도로에 차가 많이 밀린다고 한다. 9시 40분 영산님이 어라횟집에 도착했는데 마침 아는 분이 아닌가. ok mountin 대구 팔공산 모임때 산행을 하면서 인사를 나누고 막걸리도 한잔 얻어 마신 기억이 떠오른다. 영산님이 간단히 식사를 마치자 우리는 황성공원으로 이동하니 모두들 모여 있다. 서로 인사를 나누고 배웅 나오신 여러회원님들과도 작별의 악수를 나눈후 10시 20분 경주를 출발한 후 이것저것 여러 가지 대화를 나누는데 취기로 인해 잠이 온다. 한참을 자고 있는데 모두들 잠이 들고 영산님 혼자만 운전을 하느라 많이 피곤하여 졸리는 것 같다. 30일 13시에 서울에서 출발하여 지금까지 쉬지도 못하고 계속해서 운전을 하다보니 피곤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눈을 뜨니 천안 근처를 통과하고 있는 것 같다. 정신을 차리고 영산님과 이런 저런 대화를 나누는데 주로 산에 대한 내용들이 주가 된다. 어느듯 서울을 지나 인천공항으로 가고 있는데 순식간에 안개가 자욱히 끼여 앞을 제대로 분간할 수가 없다. 안개속을 뚫고 31일 4시 50분 인천공항에 도착, 대합실에 들어가니 별로 할 일도 없고 잠을 자기도 불편하여 가까운 곳에 있는 해수사우나탕에 가서 휴식을 취하기로 한다. 택시를 타고 10여분 가량 가니 해수사우나탕에 도착한다. 사우나탕은 6시에 문을 연다고 하는데 아직 5분여가 남아 있다. 잠시 기다리고 있으니 문이 열리고 우리는 사우나탕에 들어가 몸을 씻고 나오니 아직도 많은 시간이 남아 있는데다 여기서 공항가는 버스는 9시 10분에 있다고 한다. 그래서 아침을 먹기로 하고 식당에 올라가 나침반으로 방향을 측정하는데 동쪽 하늘에 아침해가 솟아 있는데 동보님은 자꾸 나침반을 보면서 동쪽이 서쪽이고 남쪽이 북쪽이라고 한다. 다시 공산님이 나침반을 꺼내 확인을 해 보아도 맞다고 하니 기가 찰 일이다. 자리를 옮겨서 확인을 하니 이제사 정상적으로 나타난다. 그곳은 왜 그런 현상이 나타났을까? 의문을 남긴채 우리는 아침을 주문하는데 마침 장미님이 오늘 생일이라 혼자 미역국을 드시도록 하고 우리는 찌개에다 쇠주도 한잔 곁들이면서 아침식사를 한다. 식사를 마치고 바깥에서 조금 기다리니 버스가 온다. 버스를 타고 가는데 이구대장님이 걱정이 되어서 전화를 했다. 지금 가고 있다는 연락을 하고 인천공항에 다시 도착하니 9시 30분이 다 되었다. 거기서 서로 인사를 나눈 다음 10시경 출국수속을 마치고 출국장으로 들어가 면세점에서 물건들을 구경하면서 잊어 버리고 가지고 오질 않은 메모장과 볼펜을 사려고 하니 물건값이 너무 비싸다. 하는 수 없이 김규준씨에게 빌려 쓰기로 하고 시간이 되어서 비행기 트랩에 올라간다. 한참을 기다리고 있으니 드디어 이륙준비를 하고 11시 7분 비행기는 서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11시 23분 이륙하여 강원도를 지나 울릉도 상공을 11시 54분 통과하는데 좌측 창문으로 내려다 보이는 울릉도는 조그만 섬처럼 보이고 성인봉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이때 나고야를 약 600km 남겨둔 상태로 시속 855km로 날아가는데 10,100m 상공에 떠 있다보니 온도가 영하 35~6도를 오르내린다. 동해를 거쳐 일본 상공을 날아가다 나고야 공항 40여km를 남겨두고는 기체가 심하게 흔들린다. 태풍의 영향인지는 모르겠지만... 조금 있으니 갑자기 구름이 덮이고 창가에는 비가 내리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조금 더 가니 구름으로 가린채 흐려 있다. 11시 49분 나고야 공항에 비행기는 착륙을 하고 조금 기다리다가 비행기 트랩을 내려와 입국수속을 밟는데 시간이 많이 걸린다. 자국민들은 쉽게 통과를 시키는데 외국인들에 대해서는 조금 까다롭게 입국수속을 밟는 것 같다. 수속을 마치고 공항을 빠져 나오는데 이금자 가이드가 기다리고 있다가 우리를 반갑게 맞이하며, 우리를 안내하여 버스가 있는 곳으로 이동을 하고, 1시 35분 버스가 출발하자 곧바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태풍의 영향으로 내리는 비인지 알 수는 없지만 생각보다 바람은 불지 않는 편이다. 일본은 지리적으로 우리나라와 가까울 뿐만 아니라 역사,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도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다. 아기가 태어나면 신사에 가서 아기의 건강과 미래를 빌고, 또 장년이 되어서 결혼을 하게 되면 성당이나 교회에서 현대식으로 화려하게 치루고, 나이가 들어 장례식을 치룰 때는 사후세계의 안녕을 기원하는 의미로 불교적으로 치룬다고 한다. 이처럼 동서양의 문화가 융합되어 하나의 독특한 문화를 이룬 나라 일본은 현대적이면서도 고도화된 사회속에서 간간이 찾을 수 있는 옛모습의 풍치를 한껏 느낄 수 있다. 수도는 동경(도쿄)으로 인구는 약 1억 2,000만명이며 특히 수도의 인구는 1천 200만 정도 된다고 한다. 일본은 동아시아에 위치해 있으며 남북으로 3,000㎞에 걸쳐 길게 늘어져 있다. 6852개의 섬과 1만개가 넘는 산을 갖고 있으며 총면적은 약 38만㎢(한반도의 1.7배)로 거의 대부분은 산지로 이루어져 있어, 경작이 가능한 면적은 고작 16% 정도이다. 그 중에서도 특히 주요섬은 혼슈(本州), 시코쿠(四國), 큐슈(九州)와 홋카이도(北海道)로 다양한 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리고 일본어가 공용어이다. 일본에서 가장 넓게 자리잡고 있는 종교는 토착 신앙인 신도(神道)다. 현재 일본은 수상을 중심으로 하는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으며 천황은 상징적 원수로 일본 헌법에는 일본국 및 일본 국민의 통합의 상징으로 규정되어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47도도부현(都道府縣)으로 구획이 나눠지며, 동경도(도쿄도, 東京都), 북해도(홋카이도, 北海道), 경도부(교토부, 京都府), 대판부(오사카, 大阪府)등 2도 2부와 43개의 현으로 이루워졌으며 지방자치제로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우리가 탄 차는 나고야 시내를 벗어나게 되는데 도로는 좁아 보이고 낮은 건물들로 이루어져 있는 것 같다. 고층빌딩은 크게 보이질 않는 것 같다. 그 이유가 지진 때문인지 알 수는 없지만... 작고 아름다운 도시 나고야(名古屋)는 일본의 명장 오다 노부나가와 도쿠가와 이에야스,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배출한 일본 3대 도시 중의 하나이다. 17세기 초에 일본을 통일한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가 나고야성(城)을 축조하고, 그 제9자를 성주로 봉한 뒤 대영주의 거성을 중심으로 발달한 도시이다. 세계 제1차 대전 후 경제부흥정책으로 비약적인 경제발전을 이루었고, 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모든 공장이 군수품 공장으로 전환되면서 연합군의 집중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입은 곳이다. 패전 후 침체의 늪에 빠져있던 나고야는 한국전쟁으로 말미암아 화려하게 부활했으며, 이후 대대적인 복구사업에 힘입어 지금과 같은 산업도시의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전쟁으로 인해 유적지가 파괴가 되어서, 도시 규모에 비해 볼거리가 그다지 많지 않다. 나고야의 상징인 나고야성은 전후 재건된 성으로 웅장한 위용을 갖추고 있다. 인구는 210만명으로 일본의 주요산업지역의 하나로 교통의 요지로 발전되어 왔다. 시역(市域)은 동고서저(東高西低)로 동부는 대지로 서부의 충적지 및 남부의 간척지 위에 펼쳐지며 기후는 온화하다고 한다. 기사님은 다까이상이라고 하며 가이드는 이금자님이라 하신다. 나고야 외곽 공업지대를 지나 소목(小牧)에서 고속도로로 진입하여 송본(마츠모도)까지 고속도로를 달리게 되는데 왕복 4차선 고속도로의 최고속도가 80km이다. 그리고 가이드 말에 의하면 7월 23일부터 8월 23일까지는 일본도 방학이라고 한다. 버스는 편도 2차선인 중앙고속도로를 달려 가는데 도로 양 옆에는 꽃들이 만발해 있고 잠시 후 낮은 야산지대로 길이 나 있다. 특히 야산에는 활엽수들이 많이 자라고 있으며 커브길이 많고 산으로 길이나 있다. 동경에서 오사카를 거쳐 고베에 이르는 명신고속도로는 동서고속도로이고 이곳 중앙고속도로는 명신고속도로의 보조역할을 한다고 가이드가 설명을 한다. 그리고 일본에는 산에 악(다께)자가 들어가는 것이 많은데 산과 악의 차이는 산은 인간생활과 밀착되어 있는 경우를 말하고 악은 험악한 산에 주로 악이 들어간다고 한다. 일본 최고의 높이를 자랑하는 후지산(3776m)과 적석산맥의 기다다께(남알프스-3192m)와 우리가 가는 히다산맥의 오호다까다께(북알프스-3190m)가 일본을 대표하는 산이라고 한다. 일본은 화산의 분화로 인해 호수가 발달해 있으며 자연과 공생관계에 있다고 하며 올해는 일본도 10년만의 무더위와 마른 장마가 계속 되었으며 그런 가운데 곳곳에서 벼락이 많이 떨어진다고 한다. 특히 일본을 대표하는 두 개의 심벌은 천황과 후지산을 꼽는다고 하며 특히 인간과 자연이 조화를 이룬다고 한다. 가미고지를 향해 가다가 3시 25분 구마다가께 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는데 국내 휴게소보다 규모면에서 보면 많이 적은 편이다. 휴게소에서 처음으로 일본의 물가를 접하게 되는데 우리는 놀랄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아무리 더워도 음료수 한 잔을 참을 수밖에 없었다. 휴게소의 물건값이 너무 비싸 사먹고 싶은 것들이 있어도 엄두를 내지 못한다. 보통 국내 물가의 3~5배 정도이고 심한 것은 10배정도 되는 것도 있는 것 같다. 하는수 없이 어슬렁 거리며 시간을 보내다가 3시 50분 다시 출발을 한다. 주위의 산들도 온통 상당히 높은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며 남알프스 연봉들이 연이어 있는 모습들도 보인다. 4시 18분 세이꼬 시계로 유명한 수하꼬에 도착하니 일본에서 2-3위를 자랑하는 수하꼬 호수가 우측에 위치해 있으며 이곳은 해발이 800여m에 이르고 있다. 그리고 가이드는 일본의 3대 온천으로 구사츠 온천(사랑병 외에는 다 고칠수 있다고 함)과 괴로 온천(미인 만드는 온천) 그리고 아리마 온천(오사카 근처에 있으며 도요토미가 자주 이용함)을 꼽을 수 있다고 한다. 4시 35분 버스는 중앙고속도로를 벗어나 국도를 이용해서 가미고지로 이동을 한다고 하는데 송본(마츠모도시)은 전형적인 일본집(2층으로 된 집)들이 눈에 띄고 이곳 마츠모도성은 국보로 지정이 되어 있다고 한다. 마츠모도를 벗어나면서 길은 엄청 좁아지게 되는데 이 길은 그 옛날 전국시대때 말이 달리던 길을 확장 포장해서 사용하다보니 길이 무척 좁다. 어쨌든 고속도로를 벗어나 일반도로에 들어서 가미고지(上高地)로 가는 길에는 최고속도 40km에 노폭은 버스 한 대가 꽉 찰 정도여서 바퀴가 항상 백색선을 밟고 가는 느낌이며 서서히 산악지대로 접어드니 협곡이 나오고 5시 8분 협곡을 따라 올라가니 동경전력 발전소가 나오고 협곡사이에 호수처럼 검푸른 물이 담수되어 있다. 수력발전댐은 세 곳 있었는데, 댐의 규모는 작았으나 수백미터씩 낙차시켜 큰 에너지를 얻고 있는 듯하다. 5시 12분 미치노이끼역을 통과하게 되는데 이 역은 기차역이 아니라 일반시민이나 혹은 드라이브역으로 사용이 된다고 한다. 산악지대를 지날때에는 꽤나 긴 터널이 연이어 나오고 426.7m터널을 통과하는데 터널이 좁고 오래되어서 반대편에서 큰 차가 오니 교행이 제대로 되질 않아서 운전수들이 어려움을 겪고 뒤쪽으로는 차들이 계속 밀린다. 이 터널을 어렵게 벗어나니 계속해서 낡고 오래된 터널들이 이어지다보니 차내에서는 바깥 경치 구경하기가 힘이든다. 그리고 협곡 사면 낭떠러지 절벽에 길을 뚫는다는 것은 힘이 드겠지만 그 좋은 기술을 두고도 예전 길을 그대로 이용하고 있다는 것이 조금은 의아스럽게 느껴진다. 너무나 길이 좁아 굴곡지점에서는 모든 차량이 서행을 하며 반사경을 보고 양보하면서 교행을 하고, 한 대의 차량도 추월하는 법이 없다. (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도로 사정이지만...) 경음기도 사용치 않고 그져 앞의 차가 가기만을 줄지어 기다릴 뿐이다. 옛날 만화책에서나 볼수 있던 강원도 두메산골 뚫은 놓은 길을 연상해 보면 알수 있겠지요. 그것도 여기에 비하면 고속도로에 해당되고도 남을 정도니... 5시 23분 좁은 터널속에서 갈림길이 나오고 상고지로 가는 길은 우측으로 갈라지는데 잠시후 터널을 벗어나니 지금까지는 협곡 좌측 절벽을 따라왔는데 이제 댐위로 난 길을 따라 계곡을 건너 이제부터는 댐의 담수한 물을 좌측에 두고 우측 산허리로 뚫린 길을 따라 올라가는데 곳곳에 터널이 나오고 운전수들은 굽이굽이 험한길을 서로 상대방에게 양보를 해 가면서 상고지를 향해 올라가고 있다. 5시 43분 상고지 주차장에 도착하여 계속해서 상고지를 향해 올라가니 양수발전소와 백골온천이 나오고 조금 더 올라가니 차량통제를 하는 곳이 나오는데 이곳에서 물어보니 상고지 주차장 이후에는 정부에서 허락한 차량외에는 더 이상 통행을 할 수 없다기에 다시 되돌아 내려오니 상고지에서 가미고지로 가는 셔틀버스로 바꿔타야 된다고 하는데 셔틀버스는 6시에 마지막으로 올라간다면서 늦어지면 통행을 금지한다고 한다. 셔틀버스를 타고 올라가는데 6시 10분경 노천온천 지대를 통과한다. 이곳에는 예전에는 노천온천이 있었다고 하지만 지금은 아무런 흔적도 없지만 이것을 보는 순간 백두산 노천온천이 떠오른다. 늦은 시간이라 그런지 차량의 통행은 크게 많지 않으며 곧이어 땅굴같은 터널을 지나게 되는데 이곳은 터널공사가 한창이라 터널속에다 신호등을 설치해 두고 사람이 지키고 서 있다가 통행을 허락하는데 일방통행이다. 6시 15분 대정지라는 호수가 나오고 길 양옆으로는 원시림이 울창하며 북알프스의 정상인 오수고악의 만년설이 보이기 시작한다. 이곳 중부산악국립공원은 1934년에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고 하며 오늘날 일본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찾아오는 곳이 이곳 북알프스 산악지대라고 한다. 계속해서 수목이 울창한 오솔길을 지나 가미고지 주차장에 도착하니 6시 20분이다. 이렇게 하여 가미고지에 어둠이 내릴려고 할때에 도착하여 모두들 볼일을 보기 위해 해우소를 들어가는데 실내는 깨끗하지만 들어가는 입구에다 통을 놓아두고 100엔을 양심껏 넣어라고 하지만 시간이 늦어 지키는 사람이 없으니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냥 볼일을 보고 나온다. 상고지에 도착해 보니 이곳 분위기는 북알프스의 설악동이라 생각했던 우리의 상상을 여지없이 무너져 내리게 하고 우리 눈에는 넓은 주차장에 한 채의 상점과 버스 대합실 그리고 새로 짓고 있는 건물과 그 뒤편의 우체국 건물만이 눈에 보이고... 우리가 상상했던 즐비한 상가와 여관촌에서 나오는 휘황찬란한 불빛은 볼 수가 없다. 맑은 계곡을 따라 조금 걸어 올라가니 하동교가 나오고 이 다리 주변과 숲속에 약간의 숙박업소가 있는 것 같다. 나중에 하산하여 안 일이지만 꽤 많은 숙박업소가 숲속 자연과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과 우리의 설악동 소공원 단지와 비교해 볼 때 설악동은 인간이 개발을 목적으로 자연을 최대한 파괴시킨 현장이 아닐 수 없다. 이곳에서부터 오늘 우리가 잘 덕택산장(도쿠사와 산장)까지는 약 두시간가량 더 걸어서 가야 한다. 해발 1500고지의 산속인데다 우리나라보다 일찍 해가 진다고 하니 빨리 서둘러야 할 것 같다. 도꾸사와 산장을 향해 올라가는데 하동교 주위의 물은 너무나 맑고 깨끗하다. 우리나라의 계곡과는 비교가 되질 않는 것 같다. 7시 7분 명신지(명신관)에 도착하니 어두워지기 시작하는데 계속해서 진행을 하고 싶지만 잠시 쉬었다가 가자고 한다. 각자 볼일을 보고 10여분 휴식을 취한후 다시 출발을 하는데 이제 땅거미가 내리고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함으로써 렌턴을 꺼내 불을 밝히고 가는데 다행히 몇분이 렌턴을 가지고 오셨는데다 차가 다닐수 있는 비포장길이라 진행에는 큰 어려움이 없는데 예정보다 시간이 지체되어서 그런지 산장에서 한분이 오토바이를 타고 호롱불을 들고 마중을 나오셨다. 도쿠사와산장을 찾아야 되는데 이곳 산장 근처에는 다른 산장도 있어 어둠속에서 불빛이 보이는 산장에 먼저 찾아가니 이 산장이 아니라고 한다. 조금 옆에 보이는 산장이 바로 오늘 우리가 머물러야할 산장인 것이다. 산장 앞에는 야영을 하는 분들이 텐트를 쳐 두었으며 일부는 저녁을 해서 먹고 있다. 산장에 도착하니 7시 45분이다. 배낭을 방에다 들여놓고 바로 저녁 식사를 하는데 생각보다 반찬이 괜찮은 편이다. 쇠고기에다 두부등 중국음식에 비해 먹을 만하다. 그런데 밥은 양푼이에 담아서 주기 때문에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데 비해 반찬은 각자 따로 주기 때문에 더 달라고 해도 줄 수가 없다고 하며 젓가락뿐이어서 국도 들고 마셔야 하며 물은 녹차를 준다. 오늘은 장미님의 생신이라 저녁을 먹으면서 총무님이 초코파이에다 성냥을 꽂아 케이크를 대신하고 쇠주로 생신을 축하하면서 건배를 하고 한잔 술을 주거니 받거니 한다. 이곳 산장은 시설이 상당히 잘 되어 있어서 화장실과 세면장, 욕실이 완전히 구별되어 있으며 내■외부에서 청결을 실감할 수 있을 정도다. 간단히 씻고 난 후 휴게실에서 자유시간을 가지는데 마침 일본과 요르단이 축구를 하고 있어 우리는 구경을 하면서 모두들 요르단이 이기도록 응원을 하고 있는데 취침 시간이 되었으니 불을 꺼야 된다고 한다. 하지만 곧 경기가 끝나니 조금만 더 보자고 하니 본 경기는 비기고 결국 승부차기로 이어지는데 우리는 요르단이 골을 넣고 일본이 실축을 할때는 즐거워 하지만 소리를 지를 수는 없다. 원래 일본사람들은 우리와 달리 산장에서는 조용히 지낸다고 한다. 그런데다 특히 이곳은 우리가 가장 싫어하는 일본땅이 아닌가. 곧 불을 끌려고 하던 산장 종업원도 일본이 불리하던 경기가 일본에게 유리하게 진행되니 더 이상 말은 하질 않는다. 결국 승부차기에서 불리하던 일본이 승리를 거두게 되니 왠지 기분이 좋질 못하다. 반드시 요르단이 승리하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결과는 일본이 승리를 거두었으니 언잖은 기분으로 방에 들어와 자고 있는 일행들과 함께 꿈속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