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그날 그 감격의 향이 온몸에 흐르고 있다.
눈만 감으면 그림같이 아름다운 ‘나의 고향’ 뒷동산이 .......
아침에 천근같이 무거운 몸을 일으킬 땐 갈까, 말까? 참으로 망설였다.
그런데, ‘아뿔싸’일행의 차에 합류 했을 때 난제대로 알고야 말았다.
얼마나 힘든 산이면 이렇게 적은 인원의 일행이.......(실은 보경사 등반대회 덕분에)
출발지점으로 차를 타고 낮 익은 거리를 달리며 도착지점과 출발 지점, 행로를 지도 한 장 받으며 등반대장님께 설명 듣고 오늘의 산행시간을 들었을 때 ‘보경사’ 등반대회가기로 한 맘을 바꾼 것을 후회했다. 출발지점에 도착하여 혼자 차를 타고 내려오겠다고 말했을 때 아무도 말리는 척! 도 해주지 않았다. 어릴 때 울보인 나를 달래기 위해 온 가족이 늘 무서운 ‘어래산’에 호랑이가 잡아간다고 겁만 주셨기 때문에 높고 짙푸른 ‘어래산’을 마당에서
처다만 봐도 호랑이가 나올 것 같아 얼른 방으로 피했기 때문에 내 마음의 무서운 존재에게 감히 덤벼드는 간 큰 짓? 을 하는 듯 하여 가위에 눌린 듯한 마음과 또 한편으로는 우리 동네를 한눈에 넣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 생각하니 가슴이 벅차오르는 감격과 희비가 엇갈리는 순간이었다. 내 고향 저 높은 산 뒤엔 무엇이 있을까? 했던 옛 생각과 오늘 저산을 정말 넘을 수 있을까?...... 요즈음은 산허리에 허연 띠를 두른 산길을 가끔씩 어머니를 뵈러 갈 때마다 쳐다보며 ‘언제 저 길을 차를 타고 한번 넘어보나! 생각만 했을 뿐인데.......
출발지점에서 사진한판 힘차게 찍고, 10년 가까이 산에 오른 경험과 어떤 산도 만만한 산이 없고, 신랑이 “오늘은 힘들지 않다” 에 속은 지금까지의 산행인지라 맘을 굳게 먹고 출발을 했다. 어제까지 비가 내린 관계로 산은 말갛게 세수한 모습으로 우리를 반겨 주었다.
도심의 기름때 묻은 황사 먼지와는 너무나 다른 공기를 마시면서 ‘ 신선은 이래서 장수할까?’를 생각했다. 출발지점의 고지가 벌써 반은 도와주었다 싶어 고맙기는 했지만, 갈 길을 생각하니 아찔해서 잊기로 했다. 한꺼번에 너무 많은 것을 생각하면 그것도 행보를 무겁게 하는 짐이라 여겼기 때문이다. 혜정이 아빠는 출발 지점부터 제일 뒷자리를 독차지 할 것처럼 오랜만에 얼굴을 비친 내력을 말해주고 있었다.
그러나, 나물이 한잎 두잎 나오고 고사리가 보이기 시작하자 생기를 되찾아 이리 저리 좌우를 바삐 움직이면서 일행이랑 합류를 잘했다.
‘나물’의 나자도 모르고 ‘취나물’ 하나를 배웠다. 힘들면서도 나물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뜯고, 고사리도 보이는 데로 뜯었다. 고사리는 이번이 두 번째다.(시청 산악회에 지난해 참석하여 알게 됐고)경사가 심한 곳에서는 나물이고 뭐고 손에 낀 장갑조차도 짐인듯하여 던지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지만, 속세의 짐은 언제나 욕심 때문에 버리지 못하고 괴로워하는 것처럼 많이 뜯어서 먹을 계획도 없으면서 무조건 한 잎 뜯은 그 마음 때문에 손의 땀으로 녹아 축~ 처진 나물을 끝까지 쥐고 놓지 않고 숨을 헉! 헉! 대며 일행에서 멀어질까봐 쉼 없이 따라갔다. 첫 고지를 따라 올라와서 한 숨 돌릴 때의 그 만족감은 감로수를 한 입 물고, 반가운 얼굴들을 보면서 흐르는 땀을 말릴 때. 그리고 음료수, 과일 등 준비한 간식을 먹는 행복한 순간을 빼 놓을 수 없죠? 언제나 앞사람의 꽁무니만을 놓치지 않으려고 초행자가 할 수 있는 행보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언제나 긴 보폭을 무리 없이 따르려고만 하다가 꽃잎이 몇 개인지, 나뭇잎이 붉은지, 푸른지, 나무가 굵은지 가는지도 모르고, 긴긴 겨울을 이기고 나무를 뚫고 나오는지, 꽃잎이 푹 죽처럼 피는지도 모르고 산에서 미아가 되지 않으려고만 안간힘을 다해 걷고 또 걸어 점심때 먹는 도시락과 간신히 정말 겨우 겨우 따라오면 물 한 모금 먹으면 저만치 사라지는 사람들을 따라 앞만 보고 따라 다닌 산행이었는데,
나물도 배워서 뜯고, 고사리 밭을 만나면 일행이 보이지 않아도 게처럼 옆으로, 옆으로 낙엽 속에 빠져서 못나올 수도 있는데 겁을 상실한다. 감히 마을 뒷산이라 일행과 떨어지면 고향집으로 갈 수 있다는 안도감 아닌 엄청난 생각 이었던 것 같다.
드디어 눈에 익은 바위산이 나타났다. ‘봉좌산’이다. 봉황이 내려않은 형상이라 하여 딴이름이라고 신랑이 설명을 해 주었다. 몇 번 오른 기억이 나는 곳이라 능숙하게 올라가서 오늘의 최고봉600고지가 이렇게 쉬운데 이잰 자신만만한양 시원하게 탁! 트인 시야를 한눈에 쏙! 넣고, 맛있는 떡을 회장님 사모님이 아침을 못 먹었다며 내놓아 한 잎 쏙! 넣고, 여유롭게 사진한판 품 나게 찍고 다음 행로를 등반대장님께서 눈 아래로 보이는 나지막한 저 산을 넘고 낙타 등처럼 생긴 산을 넘으면 된다고 하셨다. 너무나 만만해 보여 내심 안심하고 있는데, 언제나 철저한 돌다리 두드림으로 지도를 펼쳐 한참을 열중하시더니 “아니다” 하시며....... 생각하기도 싫은 저 건너 아득히 멀고 높은 ‘어래산’을 가리키며 지도상의 산을 현재의 위치에서 바라보시더니 이제 겨우 첫 고지일 뿐이노라고 말씀하셨다.
벌겋게 달아오른 과장님 얼굴과 여유작작한 총무님(허 윤 숙씨) 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과장님이 적잖이 걱정이 됐지만 워낙 끈기가 남다른 분이라 맘을 놓고, 어릴 적 그 무섭고 찬 바람과 눈보라가 불어 우리를 꽁꽁 얼게 만든 ‘어래산’을 빨리 가보고 싶은 마음과 산허리를 뚝! 자른 길을 넘어 무엇이 있고, 옥산도 보일까? 하는 내 나름대로의 수수께끼를 풀기위한 기대 때문에 힘든 줄도 모르고 각오도 남달랐다.
그래도 대부분 산등성이라 길이 험하고 만들어서 걸어야 될 줄 알았는데, 반질반질 윤기 나는 길을 걸었다. 시경계가 이런 길이 없었는데? 길이 좋다면 이상하다고 허 윤 숙씨와 슬기 아빠랑은 농반 진담 반으로 선두에서 행복한 맘보다는 불길한 예감으로 가고, 언니와 나는 언제든 다시 돌아갈 생각으로 귀를 뒤에만 두고 가고 있는데, 아니나 다를까! 길이 좀 이상하니 선두는 길을 잠시 멈추란다. 그 와중에도 혜정이 아빠랑 종섭씨는 나물 뜯는 데만 열중해서 뒤에서 따라 오는지 우리가 이렇게 헤매고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 오히려 우리가 뒤에 잘 오고 있는지 전문가들을 걱정하고 있었다. 아마추어들은 길을 멈추게 된 것을 아주 다행이라 여기며 막간을 이용해서 푹~ 쉬고 싶었다. 회장님과 등반대장님은 혜정이 아빠를 불러 동서남북을 돌았다. 우리는 이쪽으로 하면 갔다가“이쪽이 아니다”하면 다시 저쪽으로 가다가“이쪽도 이상하다”하면 다시 반대로 갔다가, 쉬다가, 찾다가.......( 회장님은 나물에만 열중해 있는 우리에게 일침을 가하셨다. 이러다가 오늘 8시간 산행이 나물 때문에 한 시간 추가 될지도 모른다고 겁을 주셨다.) 회장님은 다른 등반대원들이 여기서 3시간을 해맨 경험담을 듣고 정신을 바짝 차리고 길 잃은 지점에서 다시 찾기로 하고 제자리로 돌아가서야 다시 길을 찾을 수 있었다. 그동안 해맨 시간을 보충하기위해 빠른 행보를 계속해서 드디어 예상대로 우리 동네 뒷동산으로 올라왔다. 걱정은 안됐지만 그래도 한시름 놓고 않아서 모두들 걸어온 길을 뒤돌아보면서 ‘봉좌산’ 바위를 손으로 가리키며 어디서 해매고 어디로 올라왔노라고 스스로 점검하고 대단해했다. 그때 우리의 눈을 사로잡은 슬기아빠의 배낭에서 나온 오렌지 주스 큰 병을 보고 감격했다. 배낭을 가볍게 해준다는 핑계로 모두들 한잔씩 하고나니 반으로 쑥-줄어들었다. 반병의 오렌지 주스에 희망을 걸고 일어서려는데 눈에 익은 뒷동산을 보고 그만 눈물이 핑~ ~ 아버지 산소가 단번에 확- 한눈에 들어왔다.(아버지 죄송해요. 자주 찾아뵙지 못해서.......) 그래도 ‘어래산’은 맞은편에서 우뚝 솟아 한번 올 테면 와 보라고 손짓했다. 아직도 ‘어래산’에도 도착하지 못했는데 배는 고프고, 내심걱정이 됐지만 이만큼도 왔는데 힘을 내야지! ‘어래산’ 만 오르면 산정상이라 탄탄대로라는 말만 믿고,(속아도 또 속아주고 힘내라고 하는 말이니까) 뒤돌아보면서 발로 걷는 힘의 마력에 감탄 또 감탄을 하며 걸었다. 평상시에 버스 한정거장도 그냥 걸으려면 멀고 힘들어 못 가는데 이렇게 험하고 높은 산을 한 두 시간도 무서운데 이제 8시간 걷는다고 해도 눈 딱 감고 씩씩하게 용기를 내지 않는가? 꽃잎도 발길 멈추고 관찰하고 나무껍질도 한 번 더 만져보고 풀잎 나뭇잎도 세어보고, 열두 폭 병풍에서나 구경할 수 있는 꽃구경 산 구경을 자연 그대로 내 눈 속에 렌즈를 맞추며 찍고, 머리 속에 보관하는 귀한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는가? 이렇게 힘든 산을 꾀다든 아이들에게 강요하지 못해 감히 자유로운 판단에 맡기고 둘이만 홀가분하게 배낭매고 나온 나 자신이 과연 잘한 일인가? 아이들 입장에서 한번쯤 돌아보게도 했다. 오늘의 최고봉인 ‘어래산’ 정상 가는 길목에서 과장님이 중턱에서 힘들어하시며 “30분정도를 더 가야한다”며 자신 없어 하시는 모습을 뒤로하고 온힘을 다해 처지지 않으려고 발길을 옮겼다. 나중에 뒤돌아보고 알았지만 종을 뒤집어 둔 것처럼 뽀족한 것이 얼마나 가파른가를 말해주고 있었다. 고래를 한 마리 잡아두고 기다리고 있어서 이름값을 했다고 고래랑 사진 찍고 정상신고식 끝내고, 한눈에 쫙~~ 정말 바둑판같이 정리잘 된 넓은 들과 풍산금속, 아파트 대단지들의 안강 모습을 보고 기대이상의 수확을 건진 것 같아 더 감격했다. 우리 아이들과 오늘 못 오신 분들에게 모두 선물하고 싶은 아까운 풍경 아~풍경화사진은 없다.
아까 올라 올 때 배가 고파 허리가 펴지지 않는 고통을 이기고 온 것이 한 순간에 사라진 듯 했다. 과장님 고향에서 가져온 나물을 회장님 사모님이 맛나게 삶아서 산타할아버지 선물자루만큼 가져온 것을 땀 흘려 범벅된 손으로 닦지도, 씻지도 않고 쌈을 싸서 입속으로 모두 털어 넣고 달콤한 쇠주도 빠질소냐 담근지 6개월 된 ‘도라지주’ 대장님 배낭속 금사라기 ‘오미자주’를 배낭이 무거울까봐? 배가고파서? 내려가면 먹을 기회가 없을까봐? 부지런히 배낭을 깨끗이 비웠다. 얼려온 물만 남기고 ....... 정말 꿀맛 같은 점심도시락을 까먹고 사모님이 “내려가면 삼겹살 구워먹자”는 달콤한 유혹의 말을 잊지 않고 미끼로 던져 주셨다
(맛난 점심의 미끼가 떨어지기 무섭게 또 힘나게 하는 미끼를 하 하 하........)
‘이제는 탄탄대로라??!!!야호!.......’산을 내려오면서
아유, 경치 좋다! 산위에서 부는 바람 ~~쟁반노래방! 방! 방!
여유가 만만 배도 부르고, 휘 바람 까지 코미디에 수다가 줄줄.......
산을 하나 넘고, 또 넘고, 또 하나 넘고, 또 넘고, 아아~~ 이제 두개만 넘으면 된단다.
혜정이 아빠는 점심 먹으면서부터 슬슬 다리 걱정을 하면서 앞서서 줄행랑을 치곤했다.
지친 모습이 역역 했고, 언니도 다리가 아프다고 자꾸만 뒤로 처져서 고개마다 기다리고 있는 호랑이에게 떡 넘겨주는 할머니형상이 되셨고, 과장님도 나도 너무 힘들었다. 으~으~다리가, 무릅이 장난이 아닌데 ....... 애라, 뒤로 걷자 !!
총무님과 대장님은 앞서서 가시고, 회장님은 언니랑 과장님지팡이 역할을, 슬기아빠는 산신령처럼 휘~휘~ 더 이상 하산할 곳이 없을 때까지 쉬지 않고 나물을 채취 하셨다.
마지막 한고개만 남았는데, 거북이가 납죽 엎드린 것 같이 낮은데 왜 그리 높아 보이는지 종섭씨는 무리한 운동에 달리기 10KM완주까지 한 후유증으로 힘들어했다. 어마어마하게 큰 고인돌에서 잠시 쉬기로 했는데, 웃겨도 아무도 웃을 생각도 하지 않았다.크 크 크 ........
마지막 고개를 넘었는데 아니, 이게 웬 사이버 공간에서 영화 찍는 기분이 들까?
기계에서 달성다리를 지나 안강의 드넓은 평야를 왼쪽부터 쫙~ 렌즈를 돌려 확-트인 시야에 짙푸른 물줄기가 앞을 가로막아 흐르는 장면을 찍었다. 그때쯤 슬기아빠랑 혜정이 아빤 차를 가지러 가시고, 우리는 더 이상 하산할 곳이 없을 때까지 내려 와서는 삼겹살을 잊기로 했답니다. 역시나 다른 날과 마한가지로 너무 힘든 하루였고 잊지 못할 나의 고향이 이렇게 아름다운 곳에 자리 잡고 있는지 이제야 알게 된 것을 때늦은 감은 있지만 자랑스럽고 영원히 내 가슴에 간직 할 것이다. 그리고 달성다리에서 차를 기다리며 꿀맛같이 달콤한 약주한잔 하고, 뒷 풀이로 노래방도 뛰었답니다. 다음엔 더 많은 회원님들의 참석을 회장님대신 제가 부탁드리겠습니다. 감사합니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