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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스크랩 5/1 가정의 위대함
한산 추천 0 조회 43 11.05.01 15:38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2011-5-1 주일설교

제목: 가정의 위대함

본문: 엡 5:18-21

 

5월은 가정의 달이라 하여 가정의 소중함을 다시 한번 생각하는 달이다.

어린이 날과 어버이 날이 있어서 가정을 이루는 자녀들과 부모를 위한 잔치들이 있다.

사회를 구성하는 여러 단위 중 가장 중요하고 기본적인 단위가 가정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가정을 통해서 태어나고 길러지고 죽는 날까지 가정에 머문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부부로 맺어짐으로 가정은 탄생을 한다.

(창 2:24)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의 아내와 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부부는 자녀들을 낳고 부모가 되어 자녀들을 기르다가 이 세상을 마친다.

자녀들은 또 부부를 이루며 대를 이어간다. 그래서 오늘의 인류가 있는 것이다.

자녀들은 유전적인 요인은 물론이고 부모에게서 받은 직 간접 영향이 평생을 좌우한다.

어떻게 보면 어릴 때 형성된 가족문화가 평생을 좌우한다고도 볼 수 있다.

 

어제 경향신문에 한 책 소개가 있었다.

지미 카터 전직 미국 대통령이 어머니에 대해 쓴 전기이다.

「마더 릴리언의 위대한 선물」 이라는 책이었다.

 

기자는 이 책을 이렇게 소개하였다.

지미 카터가 대통령직에서 은퇴한 지 30년째, 올해 나이 87세다. 고령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신음하는 곳이면 어디든 찾아가는 인권 대사로서의 활동이 ‘팍스 아메니카나’의 수장이었던 시절보다 외려 빛난다. 카타의 인도주의적 실천은 그의 어머니 릴리언 고디 카터에 빚졌다고 할 수 있다. 지미 카터는 “지금껏 나의 어머니보다 경이로운 사람을 만나본 적이 없다”고 말한다.

릴리언은 경쟁 중심 학벌지상주의 덫에 빠져버린 한국의 어머니들에게 귀감이 되는 인물이다. 그는 평생 간호사로 일했다. 흑백 차별이 뿌리깊던 남부에서 피부색과 관계 없이 모든 이들을 동등하게 대했으며, 병원 소속이 아닌 가정 방문 간호사로 일하면서 생활이 어려운 이들의 아픔을 함께 했다. 사비를 털어 환자의 약품을 구해 간호할 정도로 댓가 없는 나눔을 실천했다. 릴리언의 삶은 솔직함, 진실함, 열정, 지혜, 사랑, 실천 등 여러 단어로 압축할 수 있다. 이런 인생관을 가장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은 1966년 일흔이 다된 나이에 평화봉사단원을 자원하여 2년간 인도에서 생활한 것이다. 릴리는 평생을 적극적이고 도전적인 태도와 나눔의 자세를 잃지 않았다. 그러한 실천이 자녀들의 삶에까지 자연스럽게 영향을 끼쳤다. 그런 어머니가 있었기에 평화와 인권운동에 참여하는 지미 카터의 삶이 가능했을 것이다.(그가 평화를 위해 북과 남에 왔지만 수장들은 똑같이 문전박대하였다. 곧 볼품 없고 보잘 것 없는 전직이 될 운명들이 말이다.)

 

자녀가 잘 되기를 바라는 부모의 마음이야 한 가지지만

자녀들이 어떻게 되는 것이 잘 되는 것일까요?

무엇이 되는 것보다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무엇은 되더라도 내려놓아야 할 날이 온다.

그렇지만 어떤 사람이 되는 것은 생을 빛나게 하고 생후 영생을 영광스럽게 한다.

자녀가 잘 될려면 그 공장과 안식처가 되는 가정이 잘 되어야 할 것이고,

가정이 잘 될려면 부부인 부모가 각각 잘 되어야 할 것이다.

잘 되는 것이 무엇일까요?

 

유명한 무엇이 되는 건가요? 출세하고 성공한 사람이 되는 것인가요?

세상은 좋아해도, 그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하나님은 좋아하지 않으신다면 어떻게 될까요?

성경에 나오는 이스라엘 역사에 수많은 왕들이 나오지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왕은

다섯 손가락도 안되는 것을 본다. 하나님께 선택된 나라가 말이다.

 

세상은 어떻게 보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무엇이 되는가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나중에야 어찌 되든 뭐가 되고 볼 일이다. 뭐가 된 것을 얼마나 자랑스러워하는가?

세상은 그렇다 하더라도 기독교인이라는 사람들도 똑같이 널을 띄니 세상이 어지럽다.

하나님 빽을 동원할려고 교회에 오는 사람들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입시철이 되면 대형교회들이 입시특새, 철야기도를 하여 문전성시를 이룬다.

명문대 입학정원은 한정돼 있고, 그들의 자녀들이 복받아 다 들어가면

다른 교회들의 자녀들은 어찌되며 세상의 자녀들은 어찌될 것인지 계산이 안 나온다.

 

세상이 교회를 닮게 해야지, 교회가 세상을 닮아가면 안되겠지요?

기독교 단체 어른 뽑는 선거가 지금은 국회의원들도 하지 않는 돈 선거를 하고

천문학적인 액수의 재정을 목사 마음대로 사용하다가 문제들을 일으키고

심지어는 7계를 범하는 유명목사들의 추태가 신문지상을 수놓고 있다.

 

다 가정에서 교회에서 잘못 배운 탓이라고 할 것이다.

자녀들은 보고 배운다고 하잖아요?

“나는 해도 너는 하지 마라”가 안 통하지요.

 

가정의 달에 우리가 돌아보아야 할 것은 우리 자신이다.

우리 자신이 어떻게 되는가가 우리 가정이 어떻게 될 것인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문제아를 만드는 것은 문제의 가정이고 문제의 가정은 내가 만드는 것이지요.

 

내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할까요?

세상이 탐내고 원하는 그 무엇이 되기 위해 인생을 바쳐야 할까요?

세상이 알아주는 그 무엇이 되기 위해 자녀들을 달달 볶아야 할까요?

 

우리의 생사화복을 주장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 것은 인정하지요?

그렇다면 세상이 기뻐하는 모습이 아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모습이 되어야겠지요.

세상은 무엇이 되는가에 혈안이 돼 있지만,

성경을 보면 우리 하나님은 어떤 사람이 되는가에 온통 관심을 기울이고 계신다.

 

어떤 사람(인격)을 만들어 무엇이 되는 복을 주시기를 하나님은 기뻐하신다.

자녀들을 잘되게 할려면 자녀들을 달달 볶을 것이 아니라 나를 달달 볶아야 한다.

계다 잔치다 부동산이다 바깥 일에 바쁘고,

집에 있으면 티비 크게 들어놓고 애들은 가서 공부해라 하면, 될까요?

 

안되겠지요? 본을 보여야 자녀들이 본을 받고 귀하고 아름다운 모습을 닮아가겠지요?

내가 하나님의 바른 자녀가 되려고 해산하는 수고를 해야

자녀들도 본을 받아 가정의 기쁨 하나님의 기쁨이 될 것이다.

 

내가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 것을 로마 시민권을 가진 것보다 더 귀하게 여기고

하나님나라와 그의 의를 이루는 것을 세상에 내 왕국 만드는 것보다 더 귀하게 여겨야

자녀들도 본을 받아 그 생명의 길로 복의 길로 갈 것이다.

 

우리 주님은 우리를 위해 십자가 지는 본을 보이고 그 뒤를 따라오라 하셨다.

(눅 9:23) 또 무리에게 이르시되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벧전 2:21)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우리의 자녀들이 우리의 가정들이 잘 될려면 우리의 가치관을 바로 세워야 한다.

성경에 입각하여 다시 세워야 한다.

그리고 본을 보이는 삶을 살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요 13:13-15) 너희가 나를 선생이라 또는 주라 하니 너희 말이 옳도다 내가 그러하다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빌 3: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또 우리로 본을 삼은 것같이 그대로 행하는 자들을 보이라(본, 본, 본이다. 본이 대를 이어감을 말한다.)

 

자녀들이 정말 잘 되는 것을 볼려면 부모가 부부로써 아름다운 본을 보여야 한다.

청교도들도 주님에 대한 사랑이 먼저가 되어야 함을 가르쳤지만,

부부간의 사랑이 열렬하고 강해야 한다고 가르쳤고 실천했다.

그들은 비록 자제는 하였으나 억제는 하지 않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을 풍성하게 표현할 수 있었던 것처럼

자기 배우자에게도 풍성한 사랑을 표현해야 한다고 믿었다.

 

청교도들은 잠언 5:18-19의 말씀을 부단히 사용하였다고 한다.

(잠 5:18-19) 네가 젊어서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 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의 사랑을 항상 연모하라

 

청교도들은 성경에 근거하여 남성 주도의 결혼 윤리를 말하면서도, 그 전제 요건으로,

남성과 여성이 하나님 앞에서 동등하다고 분명하게 믿었다. 로버트 볼턴의 말이다.

암브로스가 말한 바와 같이 영혼에게는 성이 없다. 이 더 훌륭한 부분에 있어 그들(남편과 아내)은 모두 남성이다. 그러므로 만일 아내들의 영혼이 그 성의 연약함에서 자유하게 된다면 남성답고, 숭고하고, 지각있고, 모든 면에 뛰어나고 자존하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남편은 아내의 가치를 경시하지 않도록 하여 아내의 영혼이 자신의 영혼처럼 자연스럽게 모든 선함을 나타내도록 하라. 내가 명하노니 남편은 아내를 모든 자비와 존경으로 즐겁게 하고 대접하기 위해 더욱 힘쓰고 아내의 수고를 자신의 수고와 같이 보답하라.

 

청교도들은 가정을 이루기 전에 배우자를 잘 선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많은 기도를 하고, 깊이 생각하여 자신의 가치 체계를 매우 바르고 분명하게 할 필요가 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 하고만 결혼하는 것이 명백한 원칙이다. 믿음의 공유 외에 다른 자질들도 조화있는 결혼 생활을 위해 필요할 것이다. 아름다운 마음과 인격은 아름다운 얼굴과 육체보다 더 중요하다. 아름 다운 마음과 인격이 없는 사람과 결혼하는 것은 재앙을 부르는 확실한 비결이다. 그러므로 인격 평가가 생의 반려자 후보를 고려하는 데 있어 제일 단계가 되어야 한다.

인격 평가는 어떻게 해야 할까? 현명한 방법은 그들의 평판을 수집하고 그들이 사람들 앞에서 어떻게 행동하고, 어떻게 옷을 입고 어떻게 대화하는지 관찰하고 그들이 어떤 사람을 친구로 택하는지 주의해 보는 것이다(그것들은 그가 건강한지 병들었는지 나타내는 맥박과 같은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이 기대한 이하의 사람이거나 이상의 사람과 결혼하게 될 수 있다. 사회적 위치, 재산, 지능이 비슷해야 하며 결혼에 대한 부모의 승낙을 얻어야 한다.

또한 그들은 하나님께서 상호간의 사랑과 봉사를 통해 영광을 받으시기 위해 서로에게 서로를 주셨다는 확신에 기초하여 그들 사이에 애정의 결속이 증대하고 있다는 것을 관찰할 수 있어야 한다.

 

청교들은 결혼과 출산과 자녀교율을 소명으로 여겼다.

청교도들은 대부분의 사람들이 결혼의 소명을 받았고, 독신 생활의 불편과 좌절을 ?견함으로써 이 소명을 깨닫게 된다고 단언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인류를 지속시키고 그 인류 가운데 교회를 지속시키는 방법으로 결혼한 부부는 자녀를 가지라는 소명을 받았고 부모들은 자녀들에게 하나님과 부모에 대한 순종을 가르치라는 소명을 받았다. 청교도들은 부모에 대한 순종없이 하나님에 대한 순종이 있을 것으로 기대하지 않았다.

 

청교도들의 가정생활은 무정하거나 율법적이거나 압제적이 아니었다.

청교도들은 가장 훌륭한 그리스도인은 가장 훌륭한 남편, 가장 훌륭한 아내, 가장 훌륭한 자녀, 가장 훌륭한 관리, 가장 훌륭한 백성이 되어야 하며, 하나님의 교훈은 모독될 수 없고 사모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였다. 가정 생활은 그리스도인의 사랑과 기쁨이 충만하고 자유롭게 표현되어야 한다고 믿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한다.

이 말씀을 전제로 하여 부부관의 관계, 부모와 자녀의 관계를 말씀하고 있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가 자기 주장만을 앞세운다면 갈등과 분란에 휩싸일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자신이 주인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우리 모두의 주인이시다.

 

그리스도는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분이시다.

우리의 영원한 주인이신 그분을 경외함이 우리에게 항상 있어야 한다.

주인을 경외함이 있다면 그 앞에서 함부로 자기 주장과 감정을 드러낼 수는 없을 것이다.

 

우리의 주인이신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가정에서 우리는 피차 복종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의 마음을 가정을 천국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그러나 이 일이 우리 가정에서 쉽지가 않다.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는 살아내기가 쉽지가 않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술 취하듯 성령에 취하라고 하는 것이다.

“오직 성령으로 충만함을 받으라”

 

여기서 “성령의 충만”은, 성령을 항상 구하고 기대하면서,

청교도들처럼 성경이 우리에게 교훈하는 대로 믿음과 순종하는 삶을 살 때 주어지는 것이다.

그래서 성령을 구한다고 하면서 우리의 의무와 순종을 게을리 할 수 없는 것이다.

 

믿음과 순종의 결과, 성령으로 충만해지는 가운데서

우리는 시와 찬송과 신령한 노래들로 서로 화답하며

우리의 마음으로 주께 노래하며 찬송하며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항상 아버지 하나님께 감사하게 될 것이다.

 

성령이 충만해야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를 경외함과 피차 복종함 속에서 우리의 가정은 복된 가정이 될 것이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의 관계는 사랑과 기쁨으로 충만해지고

질서가 있는 가운데 자유가 있을 것이다.

 

가정의 위대함이 결국 하나님의 축복으로 가문의 위대함을 낳게 될 것이다.

가문의 위대함은 영원한 천국에서의 기쁨과 면류관이 될 것이다.

5-1가정의위대함.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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