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여성연극의 어머니로 불리는 미건 테리(Megan Terry)와 심정순 교수(숭실대 영문과)와의 대담을 『외국문학』(1996년 봄호)에서 읽는다. 페미니즘에 대해서보다도 미건 테리가 창시자라고 알려져 있는 변신극(transformation play)을 다시 생각해보기 위해서이다.
변신극은 상업주의에 반대하고 생겨난 오프 오프 브로드웨이의 대표적인 극단인 <오픈 씨어터(The Open Theater)>에서 작가와 연출가로 활동했던 미건 테리가 1970년대에 본격적으로 사용한 것인데, 기존 연극의 논리성을 거부한 면이 가장 큰 특징이다. 기존의 연극이 사건의 전개, 발단, 클라이맥스, 대단원 등의 논리적인 구성을 갖는데 비해 변신극은 극의 논리성을 무시하고 인물과 장면과 시제 등을 수시로 바꾼 것이다. 그리하여 기존의 연극에서는 중심인물에 관객의 관심이 집중되는데 비해 즉흥연기(improvisation)가 발달한 형태인 변신극은 다양하게 변하는 장면들을 통해 여러 배우들에게 관심이 집중되는 것이다. 따라서 배우들 또한 경쟁의식으로 연기를 하기보다는 변하는 상황에 맞는 역할을 해야 하므로 서로간에 협조와 배려가 필요하다.
‘천년을 움직이는 젊은 영혼의 시’라는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있는 「시작시인선」이 추구하는 방향 또한 이와 같다. 시장성을 위해 어떤 중심 배우를 내세우기보다도 모든 배우들이 관객의 관심을 받도록 한 변신극처럼 우리와 함께 하는 모든 시인들이 독자들의 관심을 받도록 하려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유명 시인에 매달려 시집 권수를 채우는 손쉽고도 얄팍한 태도를 거부하고 역량 있는 시인을 어렵더라도 최대한 발굴해야 한다. 진지하게 시를 쓰고 있지만 학연, 지연 등 우리 사회의 고질적인 병폐로 인해 소외받고 있는 시인들을 찾아내어 한국 시단을 보다 풍성하게 만들고 또 독자들에게 다양한 시의 세계를 보여줘야 하는 것이다. 따라서 이 사명감에 정직하기 위해 미건 테리의 대담을 다시 읽어보는 것이다.
「시작시인선」 역시 시인을 일방적으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시를 쓴 시인의 입장이 되어보고 독자가 되어보고 그리고 나무가 돼보고 새가 돼보고 책상이 돼보고 이자가 돼보고 노동자가 되어보려는 것이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이 세계의 본질을 진지하게 탐구하는 시의 진정성을 품으려는 것이다.
이 진정성에는 시의 효용성도 포함된다. 즉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시가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가를 진지하게 고민하려는 것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는 정신병을 앓을 정도로 너무 복잡하고 너무 빠르고 또 돈이 목을 조르고 있어 적응이 아닌 제대로 순응하기조차 어려워, 자신의 아픔 자체만을 담아내기에도 벅찰지 모른다. 따라서 자신의 아픔을 인식하는 것이 진정 필요한데, 그러면서도 우리의 시가 보다 더 나은 삶을 위해 기여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가지려는 것이다.
맹문재( 『시작』 편집주간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