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름달 빛이 하얗게 부서져야만 메밀꽃이 소금처럼 빛날까. 초가을 들녘을 하얗게 물들이는 메밀꽃과 연분홍 코스모스는 밤과 낮을 가리지 않고 가을 손님들을 향해 방긋 웃음짓는다. 이 가을, 지리산 아래 작은 마을 하동 북천의 허드러진 꽃밭으로 바람처럼 다녀 오고 싶어진다. 사진은 지난해 가을 전경. | |
유난히 길었던 장마 탓에 지난 여름 큰 무더위가 있었을까 싶지만, 돌이켜 보면 역시나 여름은 길고 무더웠다. 늘 그렇듯이 기나긴 여름에 비해 가을은 말 그대로 '아, 가을인가' 싶으면 어느새 빛살처럼 저만치 지나가 버리기 일쑤다. 찬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그때서야 '여행하기 가장 좋은 계절이 가을인데 올해도 또 그냥 지나쳐 버렸구나'하고 뒤늦은 후회를 하기도 한다. 그것이 대부분의 '장삼이사'들이 해마다 반복하는 일반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번 가을 만큼은 제대로 된 계절 여행을 하고 싶지 않은가. 그럼 어디로 가 볼까. 단풍이 멋들어진 가을 산으로의 여행? 물론 나쁘지 않다. 하지만 어린 자녀들, 연로하신 부모님과 함께 산행을 하기에는 다소 부담스럽다. 그렇다면 편안함 속에 가을의 향기를 맡으며 추억을 새길 수 있고 풍성한 먹을거리와 볼거리, 그리고 무엇보다 가을이라는 계절의 '격'에 어울리는 '사색의 시간'도 겸할 수 있는 곳. 동시에 그리 멀지도 않은 딱 좋은 곳은 없을까.
그같은 갈증을 느끼는 독자들을 위해 미리 찾아가 본 곳이 오는 18일부터 10월4일까지 약 40만 ㎡(12만 평) 평원에서 열리는 '2009, 제3회 하동 북천 코스모스·메밀꽃 축제'장이다. "코스모스 향기 속에, 메밀꽃 추억 속에"라는 낭만적(?)인 슬로건을 외치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지리산 아래 작은 마을로 '추억 여행'을 떠나보자. 가족과 함께라도 좋고, 친구 연인과 함께라도 더욱 좋다.
■봉평? 너무 멀지 않습니까
축제의 관문이라 할 수 있는 북천역. 평소에는 하루 평균 20명 안팎이 이용하던 이 시골역은 지난해 축제기간에만 4만명이 이용하는 명소가 됐다. | |
그러나 경남 하동군 북천면 직전마을과 이명마을 일대에서 열리는 가을 꽃잔치 장에는 부산과 울산에서 넉넉잡아 2시간이면 닿을 수 있다. 게다가 민족의 영산인 지리산 아래 광활하게 펼쳐진 총 12만 평의 꽃밭에 8만 평은 코스모스 , 나머지 4만 평엔 메밀꽃이 어우러지면서 봉평과는 또 다른 가을 꽃의 향연이 펼쳐진다.
그 뿐 아니다. 지난해 제2회 축제때 의외로 큰 인기를 끌었던 100m짜리 조롱박 터널을 올해는 전국 최대인 총 길이 400m로 확대해 또 하나의 장관을 연출한다. 국내외의 희귀한 조롱박 50여 종이 주렁주렁 매달린 터널 속을 걸으면 별천지가 따로 없다는 착각에 빠지게 된다.
진주시와 하동읍을 연결하는 2번 국도가 축제장을 가로 지르고 그 옆으로는 경전선 철로가 따른다. 간간이 들판 사이로 열차가 지나가면 가냘픈 코스모스는 사정없이 흔들리고, 금새 '꽃터널'을 이룬다. 꽃밭 사이 오솔길 중간 중간 앙증맞은 원두막과 벤치에는 말없이 웃음짓는 연인들의 연분홍빛 사랑이 익어간다.
■꽃만 보고 가신다고요? 그러시면 서운하죠
지난해 축제때 인기를 끌었던 조롱박터널은 올해 400m로 4배나 길어졌다. 50여 종의 국내외 희귀 조롱박이 주렁주렁 매달려 장관을 이룬다. | |
그렇다면 이 축제가 어떻게 이렇게 짧은 기간에 지역의 대표적인 가을 축제로 자리잡을 수 있었을까. 그 해답은 '손님들이 꽃만 보고 가도록 하지는 않겠다'는 북천면 꽃단지 추진위원회와 군의 의지와 노력에서 찾을 수 있다.
공연과 전시 등 다양한 볼거리와 체험, 먹을 거리, 즐길 거리 등을 결합시킨 멀티형 축제로 발전시키고자 하는 전략이 성공을 거둔 것이다.
'녹색농촌 체험마을 꽃잔치 식당'의 신토불이 메밀 음식들. 중앙의 묵무침과 그 왼쪽의 메밀묵. 오른쪽의 전병과 메밀전이 먹음직스럽다. | |
전시 및 체험 행사로는 옛 농기구 전시 및 사용법 체험, 밤 줍기, 고구마 캐기, 나비 및 곤충 전시, 분재 전시, 시화전, 200여종의 꽃이 전시되는 가을꽃 백화점, 야생화 꽃밭, 대형 물레방아 및 한우 조형물에서 포토존 운영 등이 준비돼 있다. 특히 축제장 끝자락에 위치한 '녹색농촌 체험마을'에서는 직접 이 곳에서 수확한 메밀로 묵을 만들어 보는 이색 체험도 할 수 있다. 아울러 북천천 변에서 운행되는 조랑말 달구지를 타고 꽃밭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는 재미 또한 어린이와 연인들에게는 잊기 힘든 추억으로 남을 것이다.
■하동 북천에는 이병주가 있다
'지리산', '소설 알렉산드리아' 등 수많은 작품을 남긴 작가 이병주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 바로 하동 북천이다. 사진은 이병주 문학관 내부 모습. | |
그렇다면 하동 북천에는 그같은 문학의 향기가 없을까. 비록 메밀꽃이나 코스모스와 결부시킬 수는 없지만 하동 북천에는 한국 소설 문학사에서 빼 놓을 수 없는 거장의 혼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나림(那林) 이병주(李炳注·1921~1992). 대하소설 '지리산'의 작가로 잘 알려진 이병주 선생은 바로 이곳 북천에서 태어나고 자란 북천의 작가다.
특히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 국제신문 주필 겸 편집국장을 역임하던 시절 그 유명한 '이병주 필화 사건'으로 박정희 군부정권의 탄압을 받아 2년4개월여 동안이나 옥고를 치르면서도 결코 '바른 말'에 대한 의지를 꺾지 않았던 언론인 출신 민족 작가다.
이번 축제 기간 중에 '꽃잔치'와 문학의 결합이 이루어진다. 이달 24일부터 3일간 북천면 직전리 이명골에 자리 잡은 이병주 문학관(055-882-2354)에서 '이병주 하동국제문학제'가 펼쳐지기 때문이다. 지난해 4월 개관한 이병주 문학관 주변에도 코스모스가 활짝 피어났다. '세계화 시대에 있어서 지역발전과 문학의 역할'이라는 주제로 열리는 이병주 문학제는 학술 세미나와 해외작가 초청 강연, 전국 학생 백일장 및 사생대회, 간이역 시 낭송회, 작가 소장 도서 전시 및 문학의 밤 등 다양한 부대행사가 열려 작가의 생애와 문학혼을 되살릴 예정이다. 지리산 아랫마을에서 '지리산' 작가의 세계에 흠뻑 빠져 보는 것 또한 지리산 자락의 '꽃잔치'에서 빼 놓을 수 없는 뜻 경험이 되지 않을까. 깊은 사색에 빠져도 좋겠다.
※ 코스모스·메밀꽃 축제 2배 즐기기
- 북천역, 작은 시골역서 코스모스역 변모
- 부산 창원서 열차 이용하면 황홀함 더해
- 마을 주민 공동 운영 식당서 토종 메밀음식 별미
- 지역 특산 '솔잎 한우'는 대도시 절반 가격에 포식
▶교통편-여건만 된다면 꼭 열차를 타고 가자
경남 하동 북천역은 역사가 온통 코스모스로 뒤덮인 일명 '코스모스역'이다. 열차를 타고 축제장을 찾으면 가을 여행의 기쁨이 배가될 것이다. | |
하동북천 코스모스·메밀꽃 축제를 보러 가는 방법은 다양하지만 많은 사람들은 꼭 열차를 타고 가라고 권유한다. 축제장 인근에 있는 북천역은 경전선 구간에 속하는, 평소에는 하루 20명 안팎의 이용객만이 드나드는 아주 작은 시골역이다. 지난 2006년 한 해 이용객은 7000여명에 불과했다. 하지만 지난 2007년 축제가 시작된 이후부터는 '코스모스역'이라는 또 하나의 이름을 갖게 됐다. 가을이면 열차가 지나는 선로를 제외한 모든 역 구내 공간이 코스모스로 뒤덮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축제기간에만 이용객이 4만 명을 넘길 만큼 이제 북천역은 명소가 됐다. 열차를 타고 북천역에 들어서는 순간 천지를 뒤덮은 것 같은 코스모스 꽃잎이 가을 바람에 흔들리는 모습이 마치 열광하며 환영해 주는 고향의 '그 소녀'같은 착각에 빠지게 한다. 코스모스의 꽃말이 '소녀의 순정'이듯이 열차가 서서히 정차하면 금새라도 '이뿐이 곱분이'가 나와서 반겨줄 듯하다.
부산에서 북천역까지 가는 열차는 부전역에서 출발하는 무궁화호 열차다. 오전 6시50분과 10시, 오후 1시와 6시 등 하루 4차례 운행한다. 창원역(055-250-4285)에서는 오전 8시13분, 9시5분, 11시26분 등 하루 6차례 운행하는 정기편에다 9월19~20일, 26~27일, 10월 3~4일 등 축제기간 중 주말에는 오전 10시28분에 출발하는 임시편을 추가했다.
자가용을 이용할 때는 우선 남해고속도로 곤명IC에서 내려야 한다. 삼거리에서 우회전 해 직진하면 2번 국도를 만나는데 하동 북천 방향으로 좌회전, 10분만 가면 북천면 축제장에 닿는다. 주최 측은 2800여 대의 주차공간을 확보해 놓고 있다.
▶먹을거리-담백한 메밀음식과 '솔잎 한우'
축제장에는 북천면 주민들이 운영하는 50여 곳의 민속음식점이 들어선다. 이 곳에서는 메밀을 재료로 만든 각종 민속 음식들을 맛 볼 수 있다. 특히 축제장 서쪽 끝에 자리잡은 '녹색농촌 체험마을, 꽃잔치 식당'에서는 메밀묵(6000원)과 묵무침(1만 원), 메밀국수(5000원), 묵사발(3000원), 메밀전(5000원), 메밀전병(1줄 2500원) 등 메밀로 만들 수 있는 거의 모든 음식을 즐길 수 있다.
또 하나 빠트릴 수 없는 것이 이 지역 특산물인 '솔잎 한우'다. 솔잎 낙엽 아래에서 자생하는 생균을 배양해 생산한 사료를 먹여 키운 한우로 지난해 축제때 23마리나 잡았다고 한다. 먹는 방법도 특이하다. 우선 대도시 소매 가격의 30~50% 밖에 안되는 저렴한 가격에 고기를 구입한 후 인근의 구이집에서 소액만 주고 구워 먹을 수 있게 한 것. 마치 바닷가 수산센터에서 횟거리를 직접 골라 산 후 인근 초장집에서 회를 먹는 방법과 유사하다. 솔잎 한우는 현장에서 구매해 가져 올 수도 있다. 고기 뿐 아니라 사골 곰거리도 깔끔하게 포장해서 염가에 판매한다.
첫댓글 엊그제 하동가면서 타 본 경전선.. 내가 잠시 근무했던 북천면...넘 많이 변했더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