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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enoya2003
열린 우리당은 친일갑부 ''''노무현 '''' 두둔하면서 친일청산을 한단 말인가?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516장학회의 탄생과정을 살펴보자. 박정희 대통령이 1962년 친일파 갑부 김지태를 친일부정축재와 외화 해외유출 혐의로 체포하여 군법회의에서 7년형을 선고하였다. 이 때 사면의 조건으로 김지태의 재산 중 부산일보,부산문화방송,부일장학회의 기반이었던 부산 소재 토지 10만평을 헌납받았던 것이다. 이것을 국가로 환수하여 516장학회를 만들었고, 전두환이 정수장학회로 개명하였다.
그렇다면 김지태는 어떤 수단으로 그 많은 재산을 모았을까?
두 번의 계기가 있었다.
1.1932년에 일제의 조선노동력 수탈도구였던 동양척식주식회사로부터 울산에 있는 2만평의 금싸래기땅을 불하받은 것이 그 시작이다. 10년 분할 상환의 조건으로 불하받은 이 토지는 그의 사업 밑천이 되었다. 여기서 수확된 미곡은 분할상환금을 갚고도 매년 100석 이상이 남았을 뿐만 아니라,토지를 담보로 자유로운 대출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울산 농장을 바탕으로 1934년 범일동 소재 ''부산진직물공장''을 인수하여 산업자본가로 변신하였다. 동양척식주식회사로부터 불하받은 토지가 김지태의 산업자본가로서의 토대가 되었다.
2.해방 후 일본인들이 철수하면서 남겨놓고 간 귀속기업체는 그가 대자본가로 도약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김지태는 1946년 종업원들의 요청으로 관리를 맡은 귀속기업체 아사히견직(조선견직주식회사 전신으로 일제가 운영했다)을 1949년 불하받았다. 1954년에는 신발제조공장으로는 전국 최대 규모였던 귀속기업체 삼화고무를 인수하였다. 조선견직은 1950년대 이미 전국 최대의 본견직물 생산업체로 발전하여 김지태를 ''실크재벌''로 불리도록 하였고,삼화고무 역시 신발산업의 대명사가 되었다.
주목해야할 점은 김지태가 일본의 충견노릇을 얼마나 충실히 했기에 동양척식회사로부터 땅을 불하받았냐하는 점과, 일제의 비호하에 동족의 노동력을 수탈하여 축재해왔었다는 점, 그리고 일제가 운영하던 공장을 물려받았다는 점이다. 죄질로 보아, 이ㅐ楹?곽영주처럼 사형당하지 않은 것에 대해 박정희 대통령께 감사해야 할 것이다.
일제시대때 반민족적인 행위로 축재한 재산을 몰수하여, 516장학회를 만들고 이를 통해 불우한 학생들에게 학비를 지원한 점은 규탄이 대상이 아니라 온 국민이 칭송하여야 마땅할 친일청산의 업적인 것이다.
정수장학회는 기업개혁,친일청산의 작업이었으며, 불법축재,외화반출을 한 친일파로 부터 국가가 정당하게 환수한 재산이었다. 정수장학회가 문을 닫는 다면 박근혜 대표의 개인재산으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고 국가재산으로 돌아간다. 박근혜 대표가 정수장학회 이사장으로 잘못한 일이 없기 때문에 이사장직을 사임해야 할 이유도 없다. 또한 부산일보는 친노 신문이라 할 만큼 보수와 거리가 먼 논조를 보여주고 있다.
한 가지 재미있는 점은 현재의 노무현 대통령이 친일파 김지태로부터 받은 장학금(정수장학회가 아닌 김지태가 준)으로 중학교와 고등하교를 졸업했다는 것이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노대통령이 변호사가 되었을 때, 김지태 사후 그의 유족들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100억 원 대 상속세 행정소송을 노대통령이 맡아 승소했다. 이 소송을 계기로 노 대통령은 조세전문변호사로 승승장구할 수 있었다. 악질 친일파의 후원으로 학교를 다니고, 그 가족들의 재산을 찾는데 협조한 현 정권이 친일을 조사하겠다는 것은 진실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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