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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의적 접근지역 사역으로서의
전문인선교사역의 평가와 전망
신갈렙 (ANN 대표)
I. 전문인선교사역에 대한 평가
1. 전문인선교의 평가의 한계
한국 평신도 전문인사역에 대한 평가와 전망을 발제하기에 앞서 발제자의 평가가 몇 가지 한계가 있음을 먼저 언급하고 싶다. 첫째는 평신도 전문인선교를 평가하기에는 본격적인 전문인선교에 대한 역사가 짧고 현황에 대한 객관적인 통계자료가 너무 부족하다는 점이다. 둘째는 평신도 전문인선교라는 개념자체에 대한 혼란이 있다는 점이다. 전문인선교사는 평신도선교사라는 전제 속에서 요청되어진 이 발제주제에 대해서 동의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이 발제가 객관적인 통계자료에 의한 것이 아니라, 전문인사역자중의 한 사람으로서 내부자 입장에서의 주관적인 평가라는 점을 먼저 밝혀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인선교가 현대선교의 중요한 이슈이며 세계복음화를 위한 중요한 대안이기에 전문인선교사역에 대해 평가작업을 하는 것은 중요한 의미가 있다고 생각된다. 또한 이 발제는 평신도 전문인사역이 아니라 일반적인 전문인사역에 대한 평가라는 점을 밝혀 두고 싶다. 전문인선교는 평신도가 하는 사역으로 한정할 수 없는 포괄적인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2. 한국 전문인선교의 역사
하나님께서는 근대선교의 역사 속에서 70년 주기로 새로운 선교의 물결을 보내셨다.
제1의 물결이 1790년대 시작된 윌리엄 캐리를 필두로 한 해안선선교의 물결이요,
제2의 물결이 1860년대 허드슨 테일러에 의해 주도된 내지선교의 물결이요,
제3의 물결은 1930년대 카메룬 타운젠드와 멕가브란에 의해 시작된 종족선교의 물결이요, 제4의 물결은 2000년대 본격화된 대중 전문인선교의 물결이다.
한국 전문인선교사역은 대개 1980년대 초중반부터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초기에는 전통적인 선교단체에 속해 있거나 아니면 독립적인 몇몇 개인들이 이런 사역을 하였고, 그 뒤를 이어 선교단체로는 KTM(현 인터콥), 그루터기선교회, 오병이어선교회 등과 학생선교단체로는 UBF 등이 이런 유형의 사역을 비교적 초기에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때까지만 해도 전문인선교라는 개념보다는 자비량선교(Tentmaking Mission)라는 개념으로 소개되던 시기였다.
1989년 로잔 마닐라대회의 전문인사역에 대한 강조와 더불어 90년대 초부터 점차 전문인선교라는 개념으로 한국교회에 소개되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를 전후로 HOPE와 GPTI, BTC(현 ANN) 등 몇몇 전문인선교를 지향하는 단체들이 출범하였다. 그 후에 1994년 전문인선교단체 협의회(KAT)가 구성되면서 전문인선교에 대한 개념이 한국교회에 적극적으로 소개되었다. 90년대 중후반부터는 한국교회 내에 전문인선교를 지향하는 단체들이 우후죽순으로 일어나고 있다.
3. 한국 전문인선교의 현황
전문인선교의 큰 물결이 한국교회를 강타하고 있다. 한국교회는 지난 20년간의 전문인선교 경험을 바탕으로 이제 하나님께서 보내시는 큰 물결을 더욱 본격적으로 타야하는 전환기에 와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한국교회 내에서 전문인선교의 운동은 괄목할 만한 발전을 보이게 되었다. 현재 자신의 단체가 전문인선교를 지향하고 있다고 생각하여 전문인선교단체협의회(KAT)에 가입한 회원단체의 수가 41개가 넘어가고 있다. 그중에는 전통적인 선교사역을 해오던 단체들도 많이 있는데, 이는 전통적인 선교단체이든 전문인사역을 표방하는 단체이든 전문인선교를 도외시하고는 개척사역을 감당하기 어려운 작금의 선교적 현실을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KAT에 가입하지 않고 전문인선교사역을 감당하는 단체들도 상당수 있는 것을 감안할 때 이제 전문인선교는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2003년 하반기에 한국선교연구원(KRIM)에서 69개 단체를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선교사 실태 조사에 따르면 2002년 말 기준으로 파송된 선교사의 숫자는 10,422명이었다. 그중 목회자는 31.9%, 평신도는 68.1%이고 평신도사역자 중에서 일반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의 숫자는 1,525명이었다. 이 자료가 한국교회의 파송선교사를 다 포함한 것은 아니라 할지라도 상당한 비율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중에서 목회자와 평신도의 비율은 통계적인 의미가 크다고 할 수 있다. 현재 한국선교사의 2/3이상이 비목회자이고(상당수의 목회자 부인 포함), 그중에 직업을 가지고 사역하는 사람의 숫자는 1,525명이 불과하다. 이는 목회자가 아니면서 일반직업도 가지지 않고 사역하는 사람이 5,572명에 달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그중에는 교육선교사, MK사역자, 번역선교사 등 다양한 사역에 종사하는 선교사들이 있을 것이지만 주류는 바로 전문인선교사일 것이라 생각된다.
4. 전문인선교사역의 평가
전문인선교의 운동성, 전문인선교사의 자질, 선교사의 동원과 선발, 훈련과 파송, 사역의 성과, 전략, 관리와 평가라는 측면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1) 전문인선교의 운동성
전문인선교운동은 한국교회의 교인들에게 만인제사장을 넘어 만인사역자라는 건강한 의식과 사역적인 비전을 제시했다. 그로 말미암아 교회 안에서 사장된 전문 인력을 세계선교를 위해 동원하는 큰 역할을 해왔다고 할 수 있겠다. 평생 지역교회 안에서 맡겨진 일을 잘 감당하는 것이 최고의 헌신이자 사역의 전부라고 생각하며 지내온 많은 성도들의 가슴에 더 높은 사역적인 열망의 불씨를 지폈다는 것이 한국교회에 기여한 전문인선교운동의 공헌이라고 할 수 있겠다. 그동안 교회의 동결된 자산인 일반성도들에게 세계선교의 거룩한 부담을 갖게 하였고, 재정과 기도의 후원을 넘어 함께 동역하는 사역자로서 세운 것이야말로 결코 과소평가할 수 없는 공헌이라고 생각된다.
2) 전문인선교사의 자질
초기에 전문인선교를 지향하는 분들은 의사나 교수, 컴퓨터 전문가와 같은 특수한 분야의 직업적 전문성을 가진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해외선교가 대중화되면서 특별한 전문가가 아닌 일반적인 사람들도 전문인선교를 지원하게 되었다. 이러한 경향은 선교를 대중화시키고 많은 사람들의 동참을 유발함으로써 선교의 문턱을 낮춘 긍정적인 기여를 한 반면, 전문인선교가 활성화되면서 선교후보자의 자질이 점차 하향하는 결과를 낳았다.
3) 전문인선교사의 동원과 모집
지난 20년 동안 전문인선교사역은 숫자적인 면에서 아주 괄목할 만한 성장을 해왔다. 아마 선교사들 중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유형이 바로 전문인선교사일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 확장을 위한 많은 일꾼들을 동원하여 파송한 전문인선교는 교회의 선교력(Mission Force)을 강화시킨 긍정적인 기여를 했다고 할 수 있겠다. 앞으로도 선교후보자들 중 높은 비율이 전문인선교사역을 지향하고 있는 만큼 전문인선교사를 동원하는 일은 상대적으로 수월한 편이라 할 것이다.
그러나 전문인선교사의 동원이 대가나 포기가 없이, 직업도 가질 수 있고 선교도 할 수 있다는 식의 오해를 초래하여 선교에 대한 낮은 헌신을 초래하는 위험성이 많이 있다. 그 결과 선교사들의 품위와 질을 떨어뜨린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그래서 한 선교대회에서는 “아무나 다 선교사라고 말하는 현실 속에서 나는 내 자신을 선교사라고 소개하기보다는 목사라고 소개하고 싶다”라고 말하는 해프닝이 연출되기도 했었다. “모든 것이 선교이면 아무 것도 선교가 아니다”라며 선교개념의 인플레이션을 경고했던 스티븐 닐의 말과 같은 맥락에서 이제 “모두가 선교사이며 아무도 선교사가 아니다”라는 경고가 주어지고 있는 것 같다. 그 결과 선교지에서 목회자 선교사와 비목회자 선교사 간의 반목과 갈등, 상호비난, 홀대가 일어나고 있기도 하다.
3) 전문인선교사의 훈련과 파송
전문인선교사역의 필요성에 대한 강조와 선교 환경적인 요청이 많은 전문인선교 지원자들을 불러일으켰다면 전문인선교사역자를 2류 선교사로 인식하는 한국교회의 풍토와 전문인선교사에 대한 특화된 훈련의 부재가 전문인선교운동의 병목현상이 되어왔다고 할 수 있겠다.
전문인선교를 지원하는 사람들의 유형에는 일반대학을 나온 청년학생들, 창의적인 접근지역으로 나가기 원하는 목회자들, 일반직업의 경험을 가지고 있지만 사역적인 역량과 정체성이 결여되어 있는 청장년들, 직장에서 은퇴 또는 명퇴한 50대 이후의 실버전문인들이 있다.
전문인선교사를 훈련함에 있어서 기본적인 부분은 다른 선교훈련과 동일하다 할지라도 각 지원자의 유형에 따라서 훈련 방법과 내용이 달라야 한다. 하지만 전문인선교를 지향하는 기관의 훈련 방법과 내용이 전통적인 선교사들을 훈련시킨 커리큘럼과 대동소이하거나 목회자 선교사 훈련의 축소판이 대부분이다.
전문인선교사는 사역과 직업이라는 두 영역의 문제를 선교현지에서 다루어야 하기 때문에 일반적인 선교훈련과 더불어 바울처럼 텐트를 만드는 기술(직업적 전문성), 직업의 현장에 일어나는 다양성을 체험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훈련, 그리고 사역적인 전문성을 압축적으로 함양할 수 있는 훈련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인선교사역의 특수성을 감안한 선교훈련은 아직까지 체계적으로 개발된 것이 많지 않은 실정이다. 그러므로 효과적으로 전문인선교사역자를 훈련하는데 한계가 있어 왔다고 할 수 있다.
전문인선교는 현대선교 환경이 요청하는 특수한 부름이다. 그러나 전문인선교를 지향하는 후보자들조차 전문인사역에 대한 전략적인 의의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물론 그런 전략적인 요청 앞에서 진지하게 자신을 훈련하고 파송을 받아서 가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러나 단순히 목회자 선교사들이 요청하는 일을 돕기 위해 개별적으로 선교지 나아가는 전문인선교사들도 많이 있다. 자신의 직업적인 은사를 가지고 선교현장을 방문해서 몇 년간 돕는다는 생각으로 출발하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이런 경우에는 타문화권 사역을 위한 훈련과 선교사로의 파송과 관리 등 취약한 경우가 많다. 물론 목회자 선교사를 돕는 것은 아주 귀한 일이고 격려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임의적으로 선교지로 나아가는 경우 타문화권 사역의 특수성을 잘 이해하지 못함으로 인한 시행착오와 중도포기라는 값비싼 대가를 치루는 경우도 많이 있다. 타문화권에서 일꾼이 아니라 일감이 될 위험이 있는 것이다.
전문인선교사들은 파송구조가 취약하고 그 중요성을 상대적으로 잘 인식하지 못한 채 선교지로 나아가고 있다. 전문인선교사 자신의 인식부족인 부분도 있지만 지역교회의 인식부족도 큰 몫을 차지하고 있다. 많은 사람들이 전문인사역자로 헌신하고 그 중 일부는 선교지로 나아가지만, 교회와 선교단체의 파송절차를 거치고 파송받기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 비록 파송을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예배시간에 잠시 광고를 하는 정도의 형식적인 절차에 지나지 않고 실제적인 파송을 받는 경우가 많지 않은 것 같다. 그 이유는 다양하겠지만, 같은 값이면 안수 받은 목사 선교사를 보내겠다는 지역교회의 정서도 큰 부분을 차지한다고 할 수 있겠다. 이러한 현실이 가득이나 사역적인 정체성이 약한 전문인사역자들을 더욱 약하게 만들어 장기적이고 안정된 전문인사역자들을 배출하는 것을 어렵게 만들고 있다.
4) 선교사역 전반
전문인선교는 정치적, 경제적, 물리적 제약으로 인해 선교사 신분으로 접근하기가 어려운 10/40창 지역의 미전도 종족을 접근하기 위한 대안으로서의 의미가 크다. 사무엘 헌팅턴은 그의 저서 ‘문명의 충돌’에서 앞으로 국제적인 긴장은 대부분 문명의 단층선에서 발발할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는데, 문명을 규정하는 핵심 키워드가 바로 종교이다. 그런 맥락에서 오늘날 종교(기독교)가 세계적인 갈등의 주범으로 오해받는 시대가 되었다. 이러한 시대적인 상황 속에서 복음의 진정성이 총체적으로 구현되어야만 할 절박한 필요가 기독교선교계에 존재한다. 전문인선교는 바로 이런 도전에 대한 믿음의 응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전문인선교에는 선교지를 효과적으로 접근하기 위한 전략적 방편이라는 필요조건적인 의미와 기독교 세계관에 입각한 총체적인 선교를 지향하기 위한 충분조건적인 의미가 함께 존재한다고 할 수 있다.
그동안 전통적인 선교사들이 들어가기 힘든 중동, 북아프리카, 중국과 기타 이슬람권에서 사역을 개척하고 선교의 교두보를 확보하는 사명이 전문인선교사역에게 주어져 있다. 물론 아직 기대에는 미치지 못하는 점도 있지만 전문인선교사역이 본격화된 지 10년 정도라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그동안 귀중한 사명을 잘 감당해 왔다고 생각된다. 소위 어려운 선교지역에 대한 선교의 교두보를 확보하고 새로운 종족을 섬기는데 기여한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겠다. 창의적 접근지역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 중동을 비롯한 이슬람권과 중국, 접근이 점차 어려워지고 있는 힌두권을 향한 선교적인 대안역할에 부합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고 상당한 진전을 보이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총체적인 복음의 구현이라는 전문인선교의 또 다른 요청과 사명에 대해서는 아직은 그 가시적인 성과가 미미한 상태라고 생각된다.
창의적 접근지역에서의 전문인선교사의 사역목표는 교회개척이 되어야 할 것이다. 전문인사역자들이 사역하는 창의적인 지역에서는 개종자를 얻는다 해도 마땅히 보낼 교회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많은 경우 전문인선교사들은 전도자나 제자훈련자로 사역하지만 자신을 교회개척자로 여기지는 않는 것 같다. 사역에 있어서 한국교회의 관점을 벗어나기가 쉽지 않고 또 교회개척자로서의 사역경험이 별로 없기 때문이다. 물론 몇몇 사역자들은 아주 탁월하게 교회를 개척하고 부흥시키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많은 경우 그들은 열심히 전도하고 개종자를 얻고 또 제자훈련도 시키지만 교회를 개척하는 데까지 나아가기는 아직 많은 한계가 있는 것 같다.
중국 가정교회의 개척과 부흥은 한국교회 개척의 필수요건을 전혀 무시하고 이루어졌다. 한국에서 교회가 개척되기 위해서는 기본적으로 적절한 예배의 처소와 역량 있는 목회자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중국 가정교회의 부흥은 예배당이 없고 목회자가 없이 이루어졌다. 중국의 가정교회는 특정한 예배당이 없기 때문에 어디든지 성도가 모이는 곳이 바로 거룩한 예배의 처소가 되었다. 목회자가 없기 때문에 평신도도 없고, 모든 성도는 회심하는 동시에 사역자로서의 역할이 부여된다. 중국과 서남아시아와 중동권에서 사역하고 있는 한 단체에서는 전문인사역자들에 의해서 교회들이 속속 개척되고 성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중국의 한 지역에서 개척한 6개 교회의 현지인 설교자들의 평균 신앙경력이 만 2년이 되지 않는다. 그러나 그들은 최선을 다해 사역자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고 교회는 부흥하고 있다. 전문인사역자들이 개인이든 팀으로든 궁극적으로 프론티어에 교회를 개척하는 목표를 향해 더욱 발전해가야 할 것이라고 생각된다.
전문인사역의 형태는 대별해서 비정부기관(NGO)과 비즈니스 형태로 진행된다고 볼 수 있다. 지금까지는 NGO의 형태가 주류를 이루었다. 상대적으로 쉽게 접근할 수 있고 또한 교회와 이해관계자들과의 의사소통에도 명분이 확실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앞으로의 선교현실을 고려할 때 비즈니스를 통한 선교적 접근이 더욱 활성화되어야 한다고 생각된다. 프론티어를 개척할 크리스찬 기업가들을 불러일으키고 기존의 기업들을 선교적인 기업으로 동원하는 노력이 절실히 요구된다.
5) 전문인선교사의 관리
전문인선교사중에서 파송구조를 가지고 후원교회의 관리를 받는 선교사는 그래도 행복한 경우이다. 이런 전문인선교사 비율이 얼마나 되는지는 정확하지 않지만, 관리를 전혀 받지 못하고 혼자서 모든 일들을 처리해야 하는 전문인사역자들이 적지 않은 것 같다. 그 결과 그들은 한국에서 발생되는 문제를 처리해줄 사람도 마땅치 않고 선교지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문제에 대해서 대응하기가 쉽지 않은 실정이다. 또한 이러한 사람들은 현실적인 문제와 사역적인 정체성과 은퇴 후의 문제 등으로 인하여 중도포기하고 돌아와 많은 경우 신대원으로 진학하게 되는 것 같다. 목회자 선교사와 전문인선교사는 그 역할과 사역환경이 다르고 하나님은 두 종류의 선교사 모두를 필요로 한다. 그러므로 전문인선교사가 이런 현실적인 문제로 인해서 중도포기를 하거나 전통적인 선교사로 방향을 선회하는 것은 비효과적이라고 생각된다. 이런 문제를 구조적으로 해결하기 위한 한국교회의 총체적인 노력이 요구된다.
전문인사역자로 분류되는 사람들 중에 재정적인 후원여부는 상당히 다양하다. 전적인 후원을 받는 사역자부터 전적으로 자비량하는 사역자까지 그 스펙트럼이 아주 넓다. 그러나 그들은 일반적으로 교회와 성도들의 더 작은 후원과 기대를 받고 선교지로 가게 된다. 그러므로 그들은 보다 임의적으로 선교사역을 하고 또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중도포기하고 돌아오는 비율도 높은 것으로 보인다. 전문인선교사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덜 체계적이고 느슨한 관리를 하는 경향이 높고 노후문제와 기타 다양한 영역에 대한 교회와 기관들의 지원이 빈약한 데 기인하는 부분도 간과할 수 없다.
II. 전문인선교의 전망
1. 선교의 미래 환경은 결코 낙관적이지 않을 것이다.
미래의 선교환경에는 더 많은 어려움들이 산재할 것이다. 전 세계가 외형적으로는 세계화의 길을 걷고 서구적 보편주의로 세계질서가 재편되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20세기를 주도했던 민주주의와 공산주의의 이데올로기 논쟁이 종식되자 모든 종족들이 자기의 근본을 찾아가고 있다. 마찬가지로 서구 일변도의 세계화도 결국 2/3세계의 성장으로 인한 서구의 상대적 쇠퇴와 함께 약화될 것이다. 성경은 종족개념의 강화와 빈번해지는 자연재해와 인재, 가치관의 타락이 올 것이라고 말하고 있는데(마24:장, 딤후3:1-5), 현재 진행되고 있는 서구권과 이슬람의 충돌, 근본주의로 치닫고 있는 종교들, 종족주의와 토착화가 향후 더욱 강화되리라 예상된다.
이러한 현상들은 기독교선교를 더욱 어렵게 만들 것이다. 그러나 주님은 이런 상황을 극복할 더 많은 은혜들을 부어주실 것이다. 바로 선교의 자원인 성령을 말세에 더 한량없이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이다. 상황이 어려울수록 주께로부터 더 많은 지원이 있을 것이기에 낙관적이지 않은 선교환경에도 불구하고 세계선교는 더욱 힘차게 진행될 것이다.
2. 전문인선교의 미래에도 많은 도전이 있을 것이다.
전문인선교가 활성화되지 못하도록 막고 있는 교회 내외적인 장애들이 미래에도 크게 줄어들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바로 다윗와 골리앗의 전투(삼상17장)에서 다윗의 진정한 적은 골리앗이 아니라 바로 이스라엘 공동체 내의 사울주의였던 것처럼 오늘날도 가장 큰 선교의 장애는 교회 안에 있는 사울주의라고 생각된다. 다윗은 사실 쉽게 골리앗을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다윗이 출전하기까지 많은 장애를 극복해야 했다. 비공식적이지만 파괴적인 힘을 지닌 맏형 엘리압의 장애(28절)와 보다 공식적이고 제도적인 사울왕의 장애(33절)와 승패의 결정변수가 될 수 없는 갑옷과 칼과 투구를 권하는 옛 패러다임의 장애(38절)가 있었는데 그것들이 바로 다윗의 실제적인 적이었다.
마찬가지로 오늘날도 목회자도 아닌데 왜 설치냐고 생각하는 장애, 규정과 전통과 선례와 자격을 따지는 교회구조의 장애, 선교환경과 패러다임이 바뀌고 있지만 여전히 자신에게 익숙한 선교방식을 강요하는 낡은 패러다임의 장애가 쉽게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 지금도 많은 전문인선교 지원자들이 옛 패러다임의 요구에 굴복해서 선교의 결정변수가 결코 될 수 없는 “사울의 갑옷과 칼날과 투구” 같은 것들을 갖추기 위해서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낭비하고 결국 도전정신이 사라지고 있는 모습을 본다.
3. 그래도 전문인선교사역은 계속 활성화되어 갈 것이다.
많은 도전에도 불구하고 전문인선교는 계속 확대되고 활성화될 것이다. 전문인선교는 사람이 고안한 것이 아니라 바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물결이기 때문이다. 전통적인 선교가 적대적인 환경으로 인해 제약을 받고 전통주의에 의해서 위축될 때 하나님은 전문인선교의 바람을 일으키셨다. 1세기의 거친 선교현실 속에서 전천후 선교를 감당하기 위해서 바울의 전도팀을 사용하셨다. 사도행전의 대부분의 주인공들(바울, 바나바, 실라, 디모데, 누가 등)은 모두 자비량하며(고전9:6, 살후3:7-9) 전문인선교사역을 감당해왔다. 또한 개신교선교 여명기의 바젤선교회와 모라비안 선교회, 윌리엄 캐리와 로버트 모리슨 등도 모두 전문인선교의 형태로 사역을 했다고 할 수 있다.
현대선교환경과 남은 선교지의 특성을 고려할 때 전문인선교는 계속해서 활성화될 것이다. 그 증거가 바로 전통적인 선교단체들 대부분이 전문인선교사역을 모색하기 위해서 그런 경력의 사역자들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것과 많은 전문인선교단체들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각종 선교대회에서 많은 참가자들이 전문인선교에 관심을 표명하고 지원하고 있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선교지가 그런 사람들을 필요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4. 전문인선교는 21세기 세계복음화의 중요한 해결책의 하나가 될 것이다.
남은 최대의 선교지로 이슬람권과 힌두권과 중화권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이제는 모든 나라에서 모든 나라로 선교하는 시대라고 말하긴 하지만, 그래도 21세기 최대의 선교사 파송 예상국가는 바로 중국과 브라질을 필두로 하는 2/3세계의 국가들이다. 수요자인 선교지의 현실이나 공급자인 선교사 파송국가의 현실 모두가 앞으로 서구적인 고비용 프로젝트 위주의 선교나 전통적 목회자 선교사 중심의 선교가 아니라 바로 전문인선교의 형태를 추구하게 될 것이다. 전문인선교는 남은 선교의 산지인 이슬람권과 힌두권과 공산권을 복음으로 섬길 수 있는 거의 유일한 대안이라고 할 수 있다.
전문인선교사역에 대한 평가와 전망을 종합하면서, 과연 전문인선교운동이 지금까지 끼친 득실은 무엇인가 라는 자문을 해보게 된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기대에 미치지는 못한다 하더라도 전문인선교사역을 위해서 영적, 물질적, 인적으로 상당한 투자를 해왔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의 시점에서 단면적으로 본다면 그렇게 많은 수익을 남긴 투자였다고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러나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 씨를 뿌릴 때가 있고 물을 줄 때가 있고 거둘 때가 있다. 투자할 때가 있고 수익을 거둘 때가 있는 것이다. 한국교회의 전문인선교사역을 기업 활동으로 비유한다면 이제 겨우 손익분기점에 도달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기존의 사업영역에서 계속해서 이익을 낼 것이라고 생각하며 새로운 투자를 하지 않는 것은 장기적인 안목이 없는 어리석은 행동이다.
전문인선교사역은 많은 역기능과 극복해야 할 난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더욱 많은 노력과 투자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전문인선교는 21세기의 거친 선교환경을 헤쳐 나갈 최첨단의 하나님의 군대이며 세계선교의 남은 산지들을 점령할 대안적 선교력(Mission Force)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국교회는 기독교 전문인력을 총동원하여 전문인선교의 거룩한 운동을 더욱 가속화시켜야 할 것이다.
III. 성공적인 전문인선교를 위한 제언
1. 전문인선교를 위한 올바른 신학이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1) 이것 아니면 저것(either~or)이라는 사고가 극복되어야 한다.
전통적인 목회자 선교사의 성경적인 전형(Prototype)은 누구이고 전문인선교사(혹은 자비량선교사)의 성경적인 전형은 누구인가?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전통적인 선교사의 전형으로 사도 바울을 꼽을 것이고 전문인선교사(혹은 자비량 선교사)도 마찬가지이다. 전통적인 선교사나 전문인선교사가 다 같이 한 사람 사도 바울을 그 모델로 생각하고 있는데, 오늘날 목회자 선교사와 전문인선교사는 상호 대립적인 개념으로 이해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무엇이 그렇게 만들고 있는 것인가? 과연 그런 분류가 세계선교 활성화에 도움이 되는 것인가? 우리는 성경적인 사고에 익숙한 것이 아니라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서구적인 사고방식의 추종자가 되어서 한편에 속하면 다른 편은 배제되어야 하는 사고방식에 갇혀 있는 것 같다. 이런 사고방식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데 덕보다 실이 더 많다. 전통적인 선교사와 전문인선교사는 상호배타적 개념이 아니라 상호보완적 개념이요 상호호환이 가능한 개념으로 받아들여져야 할 것이다.
근래 “나는 훌륭한 과학자이기보다 신실한 크리스챤이고 싶다”라는 제목의 책이 선보였다. 한국사회에 잘 알려진 훌륭한 과학자이신 한 장로님의 간증집이다. 훌륭한 내용의 책일 것이라 생각한다. 그 분을 존경하기에 그 분의 책의 내용을 비판하길 원치 않는다. 그러나 흥행을 위해 출판사가 붙인 제목에 대해서는 못내 유감이다. 훌륭한 과학자이길 포기하지 않고는 신실한 크리스챤이란 성립되기 어렵다는 논리이기 때문이다. 훌륭한 목사이기보다 신실한 크리스찬이고 싶다거나 훌륭한 선교사이기보다 신실한 크리스찬이고 싶다는 말이 성립되기 어려운 것처럼, 훌륭한 정치가나 비즈니스맨이기보다 신실한 크리스찬이고 싶다는 말은 온전치 못한 사고라고 지적하고 싶다. 우리는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사고의 체계가 아니라 “이것도 버리지 말고 저것도 하여야 하리라”는 주님의 말씀을 기억하여 훌륭한 과학자인 크리스찬, 훌륭한 정치가인 크리스찬, 훌륭한 경제인인 크리스찬, 훌륭한 의료인인 크리스찬이 되길 힘써야 할 것이다. 바로 이러한 통합적인 가치체계(both~and)가 전문인사역자에게는 필수적이다.
2) 성스러운 것과 속된 것을 엄격히 구분하는 이원론이 극복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은 거룩한 일이고 일반사회의 일을 하는 것은 세속적인 것이라면 어차피 선교를 하러 나온 마당에 누가 속된 것을 하고 싶겠는가? 이런 이원론은 모두가 성스러운 일을 하기 원하게 만들 것이며 삶의 현장 속에서 주님의 증인이 되는 일은 자연히 최선의 삶이 아니라 차선의 삶으로 전락하게 만든다.
개인적으로 평신도선교사라는 말이 사라져야 전문인선교가 산다고 말하고 싶다. 네모난 동그라미라는 말이 성립될 수 없듯이 평신도선교사란 말은 그 단어 자체에 모순이 있다고 생각한다. 선교사는 하나님 왕국의 최일선에 서있는 하나님 나라의 대사요 전도자요 제자훈련가요 교회개척자이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평신도가 될 수 있단 말인가? 그런 사람이 평신도라면 누가 특신도란 말인가? 평신도와 선교사란 단어는 어휘적으로 같이 할 수 없는 성질의 것인데 그것이 당연한 듯이 사용되고 있는 것은 교권주의와 종교적 특권주의를 드러내는 역기능적인 언어의 횡포라고 생각한다.
3) 축소주의(Reductionism)적인 기독교 신앙관이 극복되어야 한다.
기독교는 번역의 종교이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신 하나님의 본체이시다. 바로 하나님 자신의 이 땅에서의 번역본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말씀은 각 언어로 표현되어져야 하고 복음도 그들의 문화 속에서 구현되어야 한다. 성경말씀이 번역되는 것은 당연한 것이고 기독교 신앙이 각 문화 속에서 그들의 문화적인 형태로 드러나는 것은 마땅한 일이다. 그러나 문제는 교회와 지도자들은 항상 복음이 자유롭게 번역되는 것을 막았고 자신의 번역이 최종적인 것이 되길 원하는 경향이 있었다. 1세기 바리새인들은 자신들의 해석이 최종적인 것이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다른 해석을 하는 예수를 죽였다. 이러한 현상은 지속적으로 교회 안에서 존재해 왔고 오늘날도 예외는 아니라고 생각된다.
오늘날 한국기독교는 신앙적인 활동은 많지만 신앙적인 삶은 드물게 보인다는 비판을 받곤 한다. 교회는 계속적으로 각종 프로그램과 훈련과 활동이라는 신제품을 만들고 성도들을 지속적인 소비자로 남아있게 만든다. 신앙이 좋다는 것은 교회의 신제품을 많이 사용하고(heavy user) 종교적인 활동에 열심히 참여하는 것과 동일시되고 있다. 전문인선교가 활성화되기 위해서는 기독교신앙을 지역교회의 구도 안에 가둬놓는 축소주의적 신앙관을 극복해야 한다. “나사로야 나오라”고 명하심으로 무덤 속에 있던 나사로가 살아났지만 여전히 베로 동여 있고 얼굴은 수건으로 싸여 있었다. 오늘날 한국교회 성도들도 주님의 주권적인 권능으로 인해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다. 그러나 여전히 베에 동여 매여 있고 수건으로 얼굴이 싸여 있는 것 같다. “풀어 놓아 다니게 하라”는 주님의 말씀이 오늘날 한국교회의 현실과 전문인선교의 활성화를 위해 매우 절실하다.
2. 전문인선교에 대한 올바른 인식이 공유되어야 한다.
1) 전문인선교사역자가 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에서 결코 차선(second best)을 택한 것도 아니고 이류 선교사(second class missionary)가 되는 것도 아니다.
전문인선교사는 남은 선교의 산지를 점령하기 위한 하나님의 전략적인 군대로 동원된 특권적인 신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교회에서 전문인선교사는 2류 선교사로 치부될 때가 많은 게 사실이다. 이러한 한국교회의 현실이 필요이상으로 많은 신학생들을 양산하게 만들고 지금도 많은 전문인선교사들과 후보자들이 홀대받는 아마추어 선교사가 되지 않기 위해서 신학교를 가고 있다. 보다 나은 사역적인 역량을 갖추기 위해서 신학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는 것은 좋은 일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종교적인 기득권층에 끼기 위해서 신학은 반드시 신학교에서 해야만 인정되는 풍토는 다시 생각해볼 일이다. 외부자의 눈에 비치는 교단은 신학교 출신별로 집단을 형성한 가장 강력한 학연집단으로 비칠 수 있다는 점을 이제 교회는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곳의 멤버가 되기 위해 별로 사역적으로 필요하지도 않은 신대원에 진학하는 선교사들을 상담하는 것은 고통스러운 일이다. 전문인선교는 아직도 어둠 속에서 복음을 기다리고 있는 창의적 접근지역의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의 특별한 선물이요 배려요 대안이라는 인식이 한국교회 안에 더 보편적으로 확산되기를 희망한다. 또한 전문인선교는 지상명령과 문화명령 양자를 더욱 적극적으로 순종하기 위한 더 처절한 결단과 헌신의 삶이라는 것을 천명하는 바이다.
2) 전문인선교사는 전통적인 선교사를 보조하는 사람이라는 인식이 바뀌어야 한다.
창의적인 접근지역에서 사역하고 계신 목회자 선교사들로부터 동역자를 구해달라는 요청을 받곤 한다. 그런 지역에서 장기적으로 체류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직업적인 활동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목회자 선교사들이 전문인사역자를 동역자로 구할 때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동역자가 아니라 자신을 보좌하는 사람을 찾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자신의 사역 중에서 자신이 직접 하기에는 격이 맞지 않거나 의미가 덜하다고 생각되고, 본인이 잘할 수 없다고 생각되는 직업적인 부분의 일을 처리해 줄 조력자를 구해달라는 것이다.
전문인선교에 있어서 팀사역은 매우 중요하다. 한사람이 사역적으로도 탁월하고 직업적으로도 탁월하기는 쉽지 않다. 사역적인 전문성을 갖춘 목회자 선교사와 직업적인 역량을 갖춘 전문인사역자가 함께 동역할 때 큰 시너지가 일어날 수 있다. 그러나 전문인사역자를 목회자 사역자의 보조사역자로서 인식할 때 장기적이고 효과적인 동역을 도출해내기는 어렵다. 창의적인 접근지역에서 직업적인 전문성이 있는 전문인사역자의 영향력에 의해서 체류비자를 받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신분적, 경제적 위험은 전문인사역자가 지고 있으면서 지속적으로 목회자 선교사를 보조하는 위치에만 있을 경우 장기적이고 바람직한 동역이 이루어지기가 현실적으로 어렵다. 그러므로 장기적이고 건설적인 동역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목회자 선교사들이 전문인선교사를 평신도선교사라고 폄하하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동역자로 대해줄 때 참된 시너지가 일어날 것이다.
3) 전문인선교사를 위한 더욱 전문화된 훈련과정의 개발이 시급하다.
전문인선교사는 세 영역에서 회심이 이루어진 자여야 한다. 첫째는 영적 회심(spiritual conversion)이다.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주님을 만나고 변화된 것과 같이 자아가 신인 자기중심적인 삶(ego centered life)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모시는(Christ centered life) 회심이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는 문화적인 회심(cultural conversion)이다. 자문화 중심적이던 베드로에게 환상이 나타나서 “하나님이 깨끗케 하신 것을 네가 속되다 말라”고 하심으로 베드로의 유대문화우월주의를 극복하게 하신 것처럼 바로 자문화중심적인 사고를 극복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셋째는 정체성의 회심(identity conversion)이다. 사역적 역할에 대한 낮은 기대와 아마추어적인 정체성에서 벗어나 하나님의 사역자요 하나님 나라의 특공대라는 정체성을 가지는 회심이 요구된다.
느부갓네살 왕은 다니엘과 그의 친구들이 오자마자 먼저 이름을 바꾸었다. 다니엘(여호와 하나님이 심판자이시다)을 벨드사살(벨-바벨론 제국의 최고 여신 이름-이 너를 구원하였다)로 바꾸었다. 한 인격의 정체성을 교란시킨 것이다. 주님께서도 제자들의 이름을 바꾸어 주심으로 정체성을 새롭게 하셨다. 전문인사역자가 될 사람은 자신이 누구에게 무엇이라고 불림을 받고 어떤 대접을 받든지 관계없이 자신은 영광의 주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동역자라는 견고한 정체성으로 무장되는 것이 너무나 중요하다. 주님께서도 세례를 받고 올라오실 때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마3:17)는 정체성의 확인을 받으셨다. 사람은 결국 자신의 정체성에 수렴된 삶과 사역을 하게 되기 때문이다.
창의적인 접근지역에 사역하는 전문인사역자는 두 가지를 확실하게 경험해야 한다. 첫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이요 또 하나는 교회를 경험해야 한다. 신앙공동체로서 교회의 영광스러움를 경험하고 선교지로 가야만 한다. 많이 배운 사람이 전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경험한 사람은 어디를 가든지 예수를 전하게 되고, 교회개척 전문가가 교회를 개척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의 영광스러움을 경험한 사람이 교회를 개척하게 되기 때문이다.
전문인선교사는 사역적, 직업적, 지역적 훈련과 더불어 영성과 인성을 함양하는 훈련을 받아야 할 것이다. 특별히 팀웍에 대한 훈련은 필수적이다. 모든 선교사에게 팀웍의 훈련이 중요하지만, 전문인선교사와 목회자 선교사가 효과적으로 동역하기 위해서는 상대방의 일에 대한 체험적인 이해가 필수적이다. 축구와 농구는 같은 구기종목이고 공을 골대에 집어넣는 운동이지만 전혀 다른 규칙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직업적인 전문성을 지닌 사람과 사역적 전문성을 지닌 사람이 공히 복음을 전파하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일을 한다 해도 사고의 틀이 전혀 다를 수 있다. 함께 게임을 하기 위해서는 경기의 규칙을 사전에 숙지해야 하는 것처럼, 팀웍을 위해서는 경기의 규칙을 잘 익혀야 한다. 지적으로만 아니라 체험적으로 상대방의 세계에 들어가 보는 훈련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4. 전문인선교사는 공식적으로 파송되고 체계적으로 관리되어야 한다.
전문인선교사에 대한 적절한 자격요건을 정함으로 선교사의 자격시비를 미연에 방지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러나 힘으로 복음의 역동성을 통제하려는 오류를 범하지 않기 위해 조심하는 사려 깊음이 동시에 요구된다.
한국교회는 전문인선교사 파송에 인색하거나 까다로운 경향이 있다. 기왕 파송하려면 제대로 된 목회자 선교사를 파송하지 무엇 때문에 평신도를 선교사로 파송하느냐는 생각이 많은 것 같다. 교회는 전문인선교사역의 전략적인 의미를 이해하고 교회의 재정적인 후원여부에 관계없이 전문인선교사를 적극 격려하고 파송해야 할 것이다. 정체성을 온전하게 고양시키는 형태의 파송이 중요하기에 평신도선교사가 아니라 정식 선교사로 파송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후원 여부를 떠나서 전문인선교사가 재정보고를 하고 기도편지를 정기적으로 보내도록 격려함으로써 자신의 사역이 임의적인 것이 아니라 보냄 받은 자의 사역인 것을 지속적으로 천명하고 확인하는 일이 필요하다.
5. 전문인선교사와 전통적인 선교사간의 효과적인 동역을 통해 시너지를 창출하는 일이 절실히 요구된다.
선교단체들이 연합하거나 자매결연을 맺거나 전략적인 제휴와 네트워킹을 통해서 더 나은 전문인선교가 이루어지도록 노력해야 할 것이다. 더 나아가 국제적 네트워크를 형성해서 주님의 역사를 함께 이루어가야 할 것이다.
6. 전문인선교는 창의적인 접근지역을 겨냥해야 한다.
전문인선교사는 전통적인 선교사역을 보조하기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남은 선교의 산지를 점령하기 위한 전략적인 군대인 만큼 선교비나 환경 등과 같은 제약변수에 너무 매이지 말고 개척사역을 위한 모집, 훈련, 파송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또한 이런 지역의 특수성을 이해하여 장기적인 관점에서 지원과 평가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가능한 한 전문인선교를 지향하는 선교단체와 동역하는 것이 좋다. 개별적으로 사역할 경우에는 사역의 지속성과 시너지가 현격히 줄어들고 또한 책무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진다. 또한 전통적인 선교단체들은 아무래도 전통적인 패러다임의 사고와 전통적인 목회자 선교사들 중심의 운영에 익숙해 있고, 안수 받지 않은 전문인선교사는 아주 특별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2류 선교사로 치부되기 쉽다. 그러므로 적극적으로 전문인선교단체를 개발하고 함께 동역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생각된다.
IV. 맺는 말
한국 전문인선교운동은 이제 손익분기점을 넘어서 선교의 고성장을 이루는 한국선교계의 견인차가 될 것이다. 이를 위해서 바른 전문인선교신학이 정립되고 적절한 전문인선교사 훈련과정이 제공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전문인선교의 병목들을 제거하려는 노력이 한국교회적으로 그리고 전문인선교를 지원하는 각 개인의 노력이 함께 일어나야겠다. 그 결과로“듣지 못한 자들이 듣고 깨닫지 못한 자들이 깨달으리라”는 주님의 비전이 이 시대 세계선교의 산지인 이슬람권과 힌두권과 중화권에 이루어져 주님의 다시 오심을 그 영광 가운데 함께 볼 것을 염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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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갈렙은 MBA과정 중이든 83년 비즈니스 선교사의 의미인 Businary라는 단어를 만들고 지난 20년간 그 정체성을 추구해 왔다. (주) 이랜드에서 대표이사 본부장으로 11년간 근무하였고, 1993년 열방네트웍(ANN/BTC)을 설립하고 “실크로드 라이프 로드”라는 비전아래 현재 80여명의 선교사들과 함께 10개 나라에서 사역하고 있다. 중국에서 7년간 사역하다 돌아와 한국본부사역과 국제개척사역을 하고 있으며 가족으로 아내 전사라와 아들 이삭과 딸 에스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