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교과교육학의 개념
1) 교과교육학의 두 가지 관점
교과교육의 개념이나 범주, 체계 등에 대해 아직까지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견해는 없다. 그러나 교과교육을 보는 관점은 크게 보아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전통적으로 교육종사자들은 교과교육을 교과의 내용을 수업하고 학습하는 과정의 방법적 원리 또는 기술에 관한 학문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교과교육학을 교육방법 중심적 교과교육학이라고 할 수 있다. 교육방법 중심적 교과교육학은 그 연구 대상이 교육의 내용이 아니라 교육의 방법에 관한 것으로, 교육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교육의 방법적 원리를 개발하고 이를 체계화하는데 일차적인 관심을 둔다. 이제까지 교과교육에 관한 많은 논의들은 이러한 입장에 선 것이었다. 교과교육에 대하여 논하는 대부분의 학자들은 교과교육의 내용과 방법이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어떻게 하면교과를 잘 가르칠 수 있는가의 문제에 관해서는 방법의 측면에서 접근하고 있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교과의 내용과 방법은 밀접한 관련을 가지는 조건과 분리될 수 있는 상황이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하면서, 교과의 내용과 방법을 분리하는 데서 출발하여, 가르치는 일을 방법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이에 반해 교육내용 중심적 교과교육학은 교육의 목적을 실현하기 위하여 그 내용을 포괄적으로 이해하고, 이와 더불어 교육의 방법적 원리를 개발하고 정당화하는데 관심을 둔다. 교육내용 중심적 교과교육학이 교육방법 중심적 교과교육학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은 교육의 방법을 내용과 분리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내용과 논리적으로 관련시켜 개발하고 정당화해야 한다고 본다는 점이다. 이에 따르면 역사를 잘 가르치기 위한 방법적 원리는 역사학의 학문적 성격과 내용에 대한 체계적 이해를 바탕으로 개발될 수 있다. 따라서 국사학습지도에 유능한 교사가 되기 위해서는 한국사의 내용에 대하여 체계적으로 이해하고, 이에 바탕은 둔 방법적 원리를 습득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같은 교과 안에서도 내용에 따라서 방법적 원리가 달라지게 된다. 고려의 경제제도를 가르치는 방법적 원리와 조선후기의 문화적 변화를 가르치는 방법적 원리는 다를 수 있다.
교육내용중심적 교과교육학의 가능성을 논의하는 사람들은 이를 토대로 ‘교과학’이라는 개념을 제안하기도 한다. 여기에서 교과학은 하나의 단일한 학문이 아니라, 학문적 형식을 공유하는 개별적 학문을 통칭하는 명칭이다. 즉, 실제 학문은 ‘교과학’이 아니라, ‘국어교과학’, ‘수학교과학’, ‘음악교과학’과 같이 개별적인 교과의 구성을 기본으로 한다. ‘교과학’의 개념을 도입한 사람들은 그 학문적 특징을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첫째, 교과학은 그 성격상 기초학문이라기보다는 응용학문이다.
둘째, 교과학은 하나의 독자적이고 자족적인 개별학문이라기보다는 교과의 내용과 구성에 관한 이해, 그리고 그 내용의 탐구와 학습에 관련된 교육의 원리 등을 여러 관련 학문들로부터 도출하고 종합한다는 점에서 종합학문이다.
셋째, 교과학은 고도의 이론을 그 속에 포함하고 있으나, 결과적으로 구체적인 교육 활동이라는 실천적-실용적 상황과 연결되는 것을 상정한다는 점에서 실천원리의 학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역사교육의 독자성을 부각시키려는 시도로 역사학의 내용, 교육론, 역사교과의 성격과 기능에 관한 이론을 종합화한 개념으로 역사교과학이 제시되기도 한다. 역사학의 내용을 교육적 목적으로 이해하고 조직하는데 관련된 지식과 연구의 체제로서 광의의, 내용중심의 역사교육이 역사교과학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역사교과학에 포함되어야 할 구성영역으로 다음과 같은 것들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역사교과학은 꾸준히 학교현장의 효율적인 역사수업을 위한 교육이론과 교수학습 방법을 개발해야 한다.
둘째, 역사교과학은 교육목적과 제도상에서 역사교과의 가치를 정당화해야 한다.
셋째, 역사교과학은 일상생활에서 역사의 역할과 위상에 대해 관심을 쏟아야 한다.
넷째, 역사교과학은 역사의식을 학습의 구조와 과정으로 개념화해야 하는데 주력해야 한다.
그러나, 이처럼 역사교과학을 학교교육 외의 일상생활에서 역사교육의 문제까지 확대할 때, ‘교과학’이라는 명칭이 과연 타당한가에 대해 논란의 여지가 있을 수 있다. 더욱 근본적인 것은 ‘교과학’에서 말하는 교과의 범주 문제이다. ‘교과학’을 논의하는 사람들은 ‘교과’의 개념으로 보통 통칭적 교과를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통칭적 교과가 과연 교과가 가지는 내용이나 인식론적 특성을 반영할 수 있는 지는 의문이다.
2) 교과내용과 교수방법의 문제
훌륭한 교사는 교과의 내용을 잘 아는 교사인가, 아니면 가르치는 방법을 잘 아는 교사인가? 이른바 ‘내용과 방법’ 논쟁은 학교 교육과정을 둘러싼 가장 커다란 논란 중의 하나였다.
일반 교육학 전공자들은 대체로 방법의 편에 서왔다. 이들에 따르면 어차피 교사는 교과의 내용을 모두 잘 알 수는 없으며, 또 그럴 필요도 없다고 한다. 교사는 교과내용을 모두 기억해서 수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교재에 나와 있는 내용을 토대로 수업을 하며, 또 수업을 하기 전에 미리 필요한 내용을 찾아서 정리하거나 확인하면 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교과내용지식을 일일이 가지고 있는 것보다 수업에 필요한 정보를 효율적으로 찾을 수 있는 능력이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입장에서는 교사에게 필요한 것은 가르치는 방법에 관한 지식이다. 필요한 정보를 찾아낼 수 있고, 가르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있다면 어떤 내용을 다루는 수업에서도 효과적으로 학습지도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반 교육학자들은 모든 교과를 효율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수업모형이나, 학생들이 스스로 어떤 교과, 어떤 내용이라도 학습할 수 있도록 지적기능을 길러줄 수 있는 수업의 방안을 개발하는데 힘을 쏟아 왔다.
이에 반해 많은 교과내용 전공자들은 교과내용지식을 많이 가지고 있는 교사일수록 잘 가르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들은 수업을 하는 데는 교과서, 학교 행정, 학생, 교사 등등, 많은 변수들이 작용하며 어떤 수업모형이 정말로 효과가 있기 위해서는 이러한 요인들을 모두 고려해야 하는데, 이는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이들이 보기에 수업 방법이란 실제로는 수업을 가르치는 데 필요한 기법(technique)과 같은 것이다 이는 이론적으로 배워서 아는 것이라기보다는 교사가 된 후 경험을 통해서 차차 습득하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교사의 자질로 보다 중요한 것은 그들이 가르칠 교과내용 전반에 대한 깊이있는 이해와 체계적인 인식이라는 입장이다.
내용을 잘 알면 잘 가르칠 수 있는가? 그렇다고 할 수는 없다. 일례로 고려의 정치제도를 중학생들에게 가장 잘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이를 전공하는 대학교수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내용을 잘 몰라도 교수방법을 잘 알면 잘 가르칠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 만약 그런 견해가 성립하려면 학습지도 이론을 전공하는 어떤 대학 교수는 중학생들에게 국어도, 영어도, 역사도 모두 잘 가르칠 수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이 대학교수는 중학교에서 모든 과목은 고사하고 어떤 한 과목도 잘 가르칠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이러한 논의를 할 때 가장 손쉽게 처리하는 방법이 있다. ‘내용도 중요하고 방법도 중요하다.’는 식이다. 사실 사범대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우리의 교원양성 교육과정도 그러한 전제 아래 운용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가르칠 내용에 대해 잘 알고, 교육학 일반에서 말하는 교수 방법에 숙달하면 잘 가르칠 수 있는가? 그러나 이에 대한 대답 또한 회의적이다.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내용과 방법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하는 논쟁은 그런 식으로 얼버무릴 수 있을 만큼 단순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양측의 입장 사이에는 교수-학습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보는 심각한 견해의 차이가 존재한다.
그러나 내용과 방법을 모두 잘 알아도 잘 가르칠 수 있다고 말하기 어려운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내용과 방법이 별개로 다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고려의 정치제도를 전공한 어떤 교사가 교육학에서 설명식 수업, 탐구수업, 토론수업, 역할극, 시뮬레이션 등등의 수업모형을 배웠다고 하자. 과연 이 교사는 학생들에게 고려의 정치제도를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을 것인가? 수업 내용에 대한 교사의 지식이 매우 체계적이고 깊이가 있으며, 교사가 이들 수업모형 각각에 숙달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그러기 위해서는 한 가지 전제가 더 요구된다. 고려의 정치제도를 가르치는 데는 이 중 어떤 수업모형이 적합할 것인가를 알아야 한다는 점이다. 물론 거기에는 앞에서 이미 언급한 이들 수업모형이 역사라는 과목에, 더 좁히면 고려의 정치제도라는 내용을 가르치는 데도 과연 적합한가 하는 문제도 내포되어 있다. 그런데 이 문제에 대해서는 교과 내용을 공부한다고 하여 쉽게 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교수-학습이론에서도 다루지 않는다. 역사 일반에 대한 연구에서 초․중등학교에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에 대해서 다루지 않는 것은 당연해 보이지만, 교육학에서 이제까지 제시되어 온 교수방법에 대한 많은 이론들도 교과내용과는 상관없이 만들어진 것이다. 교과내용과 교수방법이 기계적으로 묶여진 것이 아니라 하나로 융합된 교과학습지도의 방법을 가지고 있을 때, 교사는 효율적으로 수업지도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고려의 정치제도를 가르치는 데는 어떠한 형식의 교수방법이 적합한가 하는 이론, 즉 교과내용과 교수방법을 연결시켜주는 이론에 대한 인식이 필요하다. 교과교육 이론에서도 어떤 영역이나 내용에 대해 어떤 형식의 교수방법이 적합한가 하는 방향에서 학습지도이론들이 개발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를 만들어 가는 데는 교과 영역이나 수업내용의 체계 또는 중심개념이 토대가 되어야 할 것이다.
3) 영역일반 인지와 영역특정 인지
학습과 관련하여 인식론을 다룰 때, 흔히 지식을 명제적 지식(knowing-that)과 방법적 지식(knowing-how)으로 구분하기도 한다. 교육의 문제에서 지식에 관한 이 두 가지 구분을 인용하는 사람들이 보다 강조하는 것이 방법적 지식이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른바 ‘고기를 잡아주는’ 대신, ‘고기를 잡는 방법을 가르쳐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와 관련하여 특히 중시되는 것이 사고력의 개발이다. 탐구기능, 비판적 사고력, 창의적 사고력, 문제해결력, 의사결정, 의사소통능력, 메타인지(meta-cognition) 등으로 불리는 다양한 사고력을 학생들에게 길러주는 것을 수업의 목표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에 따르면 이러한 사고력을 가졌을 때 학생들은 어떤 새로운 경험에 부딪히거나 학습과제를 접하더라도 스스로 이를 해결해 나가며, 새로운 지식을 획득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를 영역일반 인지이론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다양한 성격의 새로운 과제를 해결하고, 지식을 획득하는 공통적인 방법은 존재하는 것일까?
영역일반 인지 능력이 존재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학습을 통해 이를 기르기만 하면 학생들은 스스로 지식을 얻을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들은 이에 따라 학생들의 사고력을 육성하기 위한 프로그램의 개발에 힘을 쏟는다. 이 입장에서는 학습내용으로서 교과나 영역별 체계는 별로 중요하지 않다. 사고력 개발 프로그램의 내용은 기존의 교과 내용 체계와는 별로 관련이 없다. 학습프로그램에 나오는 내용 자체가 학습 내용이며, 그 내용 구성이 내용 체계인 것이다. 이러한 인지론적 입장은 대체로 발달심리학자들이 말하는 인지나 사고력의 개념에 따른 것이다.
근래 인지심리학에서는 인지의 과정을 이와 같은 일반적인 메커니즘에서 보는 것에서 벗어나 영역특정(domain-specific)의 관점에서 보려는 경향도 늘어나고 있다. 특히 교과교육학자들 사이에서는 영역특정 인지를 강조하는 경향이 강하다. 이 이론에 따르면 사고의 성격, 교수관, 수업전략은 학습 영역에 따라서 달라진다. 이 이론에서도 잘 가르치기 위해서는 적절한 교수 방법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어떻게 가르치는 것이 효과적인가는 가르칠 내용에 따라서 달라지게 마련이다. 교수방법은 교수내용에 의해 정해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영역특정 인지의 입장은 지식, 내용 중심의 인지개념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논리는 교과에도 적용할 수 있다. 각 교과는 특수한 내용들로 구성되어 있기 때문에 다른 교과와는 구별되는 인식의 방법, 사고 논리, 교수 방법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어떤 교과를 잘 가르치고 배우기 위해서는 그 교과의 내용체계를 파악해야 하며, 중심개념이나 중요한 내용지식을 알아야 한다.
영역특정 인지의 관점으로부터 우리는 두 가지 시사점을 얻을 수 있다. 첫째는 교수이론과 관련하여 문제가 되어 온 이론과 현실의 거리감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그 동안 나름대로 새로운 수업 방법을 시도하려는 교사들은 먼저 수업 방법을 익히고 이를 내용에 적용하여 왔다. 예를 들어 토론식 수업을 해야겠다고 생각하면, 그 방법을 배우고, 이에 적합한 내용을 찾아서 그 방법에 따라서 실제로 수업을 진행하고는 한다. 그러나 실제 학교 수업현장에서는 절대적인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배울 내용, 즉 교수요목의 범위가 이미 정해져 있다. 수업이란 내용이 미리 정해지고 이를 효율적으로 가르칠 방법이 강구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제까지 새로운 수업방법을 도입하려는 경우는 방법을 미리 정하고, 그에 따라 내용을 선택하는 반대의 과정을 밟는다. 영역특정 인지의 입장에 서게 되면 이러한 모순은 어느 정도 자연스럽게 해소될 수 있다.
둘째는 교과교육의 이론적 근거가 확보될 수 있다. 교과를 구분하는 기준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 예컨대 국어, 수학, 영어와 같은 개별적 교과와 자연, 사회, 물상과 같은 통칭적 교과로 구분하기도 하고, 역사, 지리, 정치와 같은 전통적 학문 영역에 따른 교과와 바른생활, 슬기로운 생활 등과 같이 학생의 경험이나 활동을 토대로 한 교과로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구분 방법을 사용하건 간에 그 내용 영역은 일정한 특성을 전제로 한다. 특히 중․고등학교에서는 교과의 기본개념이나 내용도 상당히 뚜렷이 구분된다. 교과교육도 이에 따라 나뉘어진다. 영역특정 인지의 입장에 서면 교과교육학은 각 교과의 목적과 목표, 내용체계, 교수-학습방법에 대한 연구와 개발을 해야 한다. 이에 따라 개발된 교수방법은 학습내용 전반에 적용되는 일반적인 것이 아니라, 해당 내용의 수업에 적용되는 특수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