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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업 농촌의 미래 : 국민 농업시대
김 성 훈
(중앙대 명예교수, 환경정의 이사장)
≪ 기본으로 다시 돌아가자 (Back to the Basic!) ≫
지초와 난초(芝蘭)의 향기와 같은 일생을 사셨던 우리 겨레의 영원한 스승 茶山 丁若鏞(1762-1836, 향년 75세)이 말씀하셨다. 대저 농업이란 하늘(天)과 땅(地)과 사람(人)의 3재(三才)가 어울려 행하는 세상의 근본이 되는 생명(생태)산업이다. 농업이 없이는 뭇사람들의 생령과 나라의 고른 발전, 그리고 공동체의 문화가 생겨나지 못한다. 국가와 국민이 존립하고 지속하려면 농업은 그 기본이다.
일찍이 미국, EU, 일본 등 OECD 선진국들도 농업을 일컬어 국가형성 및 유지발전에 있어 반드시 갖춰야 할 최소조건(National Minimum Requirement)이라고 못을 박고 있다. 농업이 없는 국가가 있을 수 없듯이, 농촌이 없는 도시가 있을 수가 없다. 농민이 없는 겨레 역시 존재하지 않는다. 비록 홍콩이나 싱가폴, 리히텐슈타인 같은 서울보다 작은 도시국가라 해도 주변국에 최소한 자국민의 식량조달을 위한 녹색기지와 수단을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 동서고금의 역사는 농업, 농촌, 농민이 없는 국가로는 항구적인 자주와 자존을 지킬 수 없음을 가르쳐 준다.
문제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농업이란 상공업과는 달라 태생적으로 자연적, 기술적, 경제적 제약성을 안고 존재해 왔다는 점이다. 그래서 선․후진 국가를 막론하고 국가가 그 제약성을 보완하고 지원한다. 다산 정약용(茶山 丁若鎔) 선생이 일찍이 지적한 바와 같이 제대로 된 국가와 정부라면 사회안정과 평화, 자주 자립 자존을 위해서도 농지를 농민에게 소유경작하게(耕者有田) 하고 농업을 보호육성 한다. 즉, 이문이 나는 농업(厚農), 고통을 더는 편리한 농사(便農), 농민이 사회적으로 존중받는 풍토(上農)를 만드는 정책을 펴야한다. 다산선생이 농정소(農政疏)에서 역설한 농정관(農政觀)이다. 그러한 정부, 그러한 사회가 참으로 좋은 세상이라고 말한다.
14억 인구의 중국이 오늘날 세계적인 금융위기 가운데서 우뚝 일어서 세계를 놀라게 한 배경도 그러한 국정운영 철학에 근거하여 해마다 연두 제1호 문건으로 농업과 농촌과 농민 등 3農 우대정책을 발표하고 실행해 온 덕분이다. 농업을 장사거래 속으로만 셈하는 3류 정치경제 철학으로는 농업의 다양한 비교역적(非交易的) 공익기능이 눈에 보이지 않는다. 아니 그 가치를 셈 할 줄 모른다.
노벨경제학상에 빛나는 쿠츠네츠교수는 세계 각국의 발전단계를 분석해 끝에 “후진국이 공업화를 통해 개발도상국(中進國)으로 올라 갈 수 있어도, 농업․농촌의 발전이 없고서는 결코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진입하지 못한다."라고 결론지었다. 그의 실증적인 분석결과는 거의 진리에 가깝다. 동서고금 세계 어디를 둘러보더라도 농업, 농촌, 농민이 잘 살지 못하는 선진국이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 유럽, 하다못해 이웃 일본 등 선진국의 정책동향과 농업 농촌 현실을 살펴보면 삼척동자라도 농업 농촌의 발전과 농민의 삶의 질 향상이 반드시 선진화의 필요충분조건임을 어렵지 않게 깨닫는다. 아, 어찌하여 우리나라 정치경제사회언론 지도층만이 이같이 간명한 진리를 모르고 있단 말인가. 남미, 아시아, 아프리카의 후진국들처럼 농업 농촌 농민을 홀대하다가 국민들을 굶어 죽게 하거나 사상누각(沙上樓閣)과 같은 강성대국 병에 걸려 제자리걸음만 거듭하고서야 그 소박한 진리를 깨우칠 것인가.
무조건 무대책의 시장개방만 외치고 완전히 관세를 철폐하는 FTA(자유무역)협정에 몰입하고서 장차 누가 어떻게 그 폐해를 시정할 것인지, 역사는 그 장본인과 하수인들을 기록하고 기억할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턱없이 부족한 토지를 이리저리 훼손하고 투기꾼들에게 내어 주고서 어떻게 나라의 식량주권과 국토환경을 지켜낼 것인가. 권력과 금력을 쥐고 여론을 오도하며 전국토의 땅 투기를 권장하는 사람들도 역사가 기록하고 증언해 줄 것이다. 어느 정권, 어느 장관 때 재벌과 대기업 위주의 신자유주의적 농업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하였는지 지금은 대세인 듯 말이 없지만 역사는 그 가공할 폐해를 기억할 것이다. 시나브로 온 나라가 투기장화가 되고 콘크리트로 뒤덮일 때 하늘이 노하고 땅과 산과 강이 노하여 대자연의 재앙이 몰아닥칠지 아무도 모른다. 특별한 이익을 탐하는 극소수의 많이 가진 자들 역시 종국에는 그 피해자가 될 것이며 두고두고 태어날 후손들만이 억울하게 그 피해를 고스란히 뒤집어쓸지 모른다.
우리나라 3農 부문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져다줄지 모를 각종 FTA 협정들이 속속 체결되고 국회를 통과하고 있다. 한-칠레, 한-싱가폴, 한-미, 한-아세안, 한-EU, 한-인도 간의 FTA 협정들이 우리 농업, 농촌, 농민의 앞날은 물론 식량주권과 국민의 생존권에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도 탐욕은 그 끝이 없이 농지의 유동화 촉진이라는 명분하에 제도적으로 전국 농지의 3분의 1이 넘는 면적이 바야흐로 비농업부문의 투기 먹이감으로 허용되었다. 심지어 새만금 간척지의 70%를 비농업용으로 전용하더니 나머지 30% 마저 재벌기업한테 그 이용권을 넘겨주기로 하였다. “농업이라는 말은 이제 더 이상 쓰지 말라. 농민문제는 복지대책으로 풀면 된다."라며 출범한 고소영 내각의 실체가 차츰 백일하에 들어나고 있다. 농지를 투기꾼과 기업인들이 자유롭게 소유할 수 있도록 법률을 고쳐 더 이상 투기문제가 사회문제화 되지 않도록 할 요량인가, 농지전용 권한을 농림부가 아닌 국토해양부 권한으로 옮기려고도 시도한다. 기존의 음성적 반헌법적 투기적 농지소유자들에게 아예 면죄부를 주어 범법자가 되지 않게 하겠다는 것인가.
새만금과 영산강 간척농지를 기업들에 우선적으로 제공하고 농지와 그린벨트를 풀어헤쳐 각종 토목건설사업에 매진중이다. 식품 생산가공유통사업도 이미 수출 분야처럼 대기업들에게 맡겨야 잘 될 것으로 믿고 국민세금으로 지원 중이다. 세계 최대의 쌀 농장을 일으켰던 서산 간척지를 300평씩 쪼개 팔아야 했던 현대그룹 정주영 회장이 지하에서 뭐라고 할까, 진작 상공업용으로 전용이 허가되지 않아 금싸라기 같은 간척농지를 국가에 팔아넘겨야 했던 현존의 모 기업회장은 만시지탄이라고 한탄할까. 새정권들어 도무지 종잡을 수 없는 토지농지정책들이 마구잡이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모처럼 저탄소 녹색성장이라는 획기적인 국정방향이 제시되었으나 그 후속조치로 쏟아져 나오는 정책들이 한결같이 토목건설사업이거나 농지 등을 대기업에게 몰아주려는 고탄소 반환경정책들이다. 4대강을 정비하려면 오염투성이인 샛강과 소하천 그리고 상류지역과 산과 들에 지천으로 깔려 있는 쓰레기와 오염물질부터 먼저 제거해야 하는데 4대강만 파헤쳐 어쩌자는 말인가. 산림을 전용하고 깎아 내려 어떻게 저탄소 녹색성장을 이룰 것이며 대형기업농 화학농법으로 어떻게 녹색세상을 만들 것인가.
예부터 산에서 길을 잃으면 산 정상으로 다시 올라가 길을 따라 내려오라고 했다. 지금 길을 잃고 헤매고 있는 어정쩡한 국정의 미로에서 고민하는 이들이여, 다시 茶山의 가르침대로 기본으로 돌아가 냉철히 지금 우리가 서 있는 좌표를 살펴보아야 한다. 즉, Back to the Basic!
≪ 좋은 나라, 좋은 세상, 우리 농업 농촌의 미래상 ≫
첫째, 후손들로부터 빌려 쓰고 있는 이 나라 이 땅의 강과 바다와 산과 논밭을 선조들께 부끄럼 없이 친환경적으로 가꾸고 소중히 보전하며 그 생명을 자손만대까지 이어가는 나라.
이러한 나라가 좋은 나라이며, 참으로 좋은 세상입니다.
둘째, 농촌, 농민이 잘 사는 나라, 국민 모두가 더불어 잘 사는 나라.
이러한 나라가 좋은 나라이며, 참으로 좋은 세상입니다.
셋째, 하늘과 땅과 사람이 하나가 되어 몸에 좋고 안전한 먹거리를 넉넉히 생산하는 나라.
이러한 나라가 좋은 나라이며, 참으로 좋은 세상입니다.
넷째, 농민은 도시소비자의 건강과 생명을 보호하고, 도시민은 농민생산자의 삶을 보장하는 나라.
이러한 나라가 좋은 나라이며, 참으로 좋은 세상입니다.
다섯째, 농업도 살고, 수출기업도 살고, 국제수지도 균형을 맞추는 나라.
이러한 나라가 좋은 나라이며, 참으로 좋은 세상입니다.
여섯째, 주식(쌀)만은 안심하고 자급자족하여 조국의 통일에 이바지하는 나라.
이러한 나라가 좋은 나라이며, 참으로 좋은 세상입니다.
일곱째, 농사짓고 살아도 농민이 도시사람과 다름없이 교육과 의료, 복지, 문화 혜택을 골고루 누리며 행복하게 사는 나라.
이러한 나라가 좋은 나라이며, 참으로 좋은 세상입니다.
여덟째, 선조들이 알뜰히 일궈놓은 전통과 문화 옛 슬기 위에 현대적인 도시문화를 찬란하게 꽃피우는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의 나라.
이러한 나라가 좋은 나라이며, 참으로 좋은 세상입니다.
아홉째, 정치인도, 지식인도, 정부와 재계 언론사회도 농업의 다원적인 공익기능을 존중하고 지원, 실천하는 문자 그대로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인 나라.
이러한 나라가 좋은 나라이며, 참으로 좋은 세상입니다.
열째, 다국적 초국경 기업들로부터 배달겨레 후손들의 생존권이 붕괴되지 않도록 농민과 소비자, 정부(農․消․政)가 슬기를 함께 모아가는 나라.
이러한 나라가 좋은 나라이며, 참으로 좋은 세상입니다.
≪ 국민농업이 열어가는 도농상생 운동 ≫
1. Local Food 운동을 생활화 하자.
※ 일본의 지역내 생산․가공․소비 촉진운동.
미국 및 캐나다의 CSA(Community Support Agriculture)운동.
쿠바의 도시농업 및 유기농화 운동.
Food milage 최소화 운동.
2. Slow Food운동을 함께 적극 전파하자.
친환경 유기농산물과 전통 가공조리식품(김치, 고추장, 젓갈, 막걸리 등 전통발효식음료)등이 우리 국민소비자의 건강증진과 농어민의 소득 향상, 나아가서 우리나라 환경생태계와 전통문화를 보전하는 1석3조의 공생과 상생의 살길임을 인식시키자.
※ CODEX: 김치, 고추장을 세계 표준 발효식품으로 인증,
※ Health誌: 김치를 세계 5대 건강식품으로 선정. 한식의 세계화 기반 구축.
3. 농산어촌 어메니티(amenities)를 소중히 가꾸고 자산화 하자.
도회지의 웰빙 욕구를 해결하는 도농상생의 대안으로 농산어촌의 경관과 환경생태계와 역사문화전통을 농가소득으로 연결.
※ Green tourism, Farm Stay 등.
4. 농업을 1+2+3=6차 산업으로 육성하자.
농수산식품 가공을 지역에 기반을 둔 지연산업(地緣産業)으로 육성하고 농어민이 직접 참여하여 그 혜택을 공유하도록 현행 대기업 위주의 식품위생가공법, 주세법, 도정법들을 고쳐 나가자.
※ 지자체가 선진국처럼 농민이 일정한 위생조건하에 식․음료 및 주류를 직접 생산․판매할 수 있도록 농촌 가내가공업 및 일촌 일품 운동을 권장하는 조례 만들기 캠페인.
5. 농어민은 도시소비자의 건강과 생명과 안전을 보장하고 도시민들은 농어민의 소득을 보장하는 도농 상생의 관계 구축에 앞장서자.
※ 농지지키기, 환경생태계 지키기 및 식품안전성 지키기, GMO퇴치, 수입농산물의 안전성 현지조사 및 검사․검역 강화.
6. WTO, FTA 등 정부의 통상정책의 결과 혜택을 받는 산업과 계층이 그로인해 피해를 받는 산업과 계층을 제도적으로 배려하도록 정책조정을 건의하자.
※ J.R. 힉스의 보상의 원칙(Principle of Compensation)의 보편화.
7. 저탄소 녹색성장 정책은 농림축산업을 유일한 생명산업으로 올바로 육성하는 과제부터 시작하도록 국민 여론을 환기하자.
※ 산림보전, 숲가꾸기, 마을가꾸기, 농지․하천․습지 보전, 유기농 육성 등.
8.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라는 발상으로 세계화 (globalization) 추세를 지방화(localization)로 대응, 즉 세방화 (glocalization) 전략을 농업 농산어촌에서부터 보편화 하자.
예, 한국식품의 세계화, 김치등 발효식품의 세계진출.
※ 중앙정부 중심의 세원과 예산권을 선진국처럼 지방자치 정부로 대폭 이양.
※ 지자체장과 시․군 의원의 정당후보 공천제도 폐지.
9. “도시는 꽃, 농촌은 뿌리!” 우리나라 경제․사회문화가 농업농촌 발전의 확고한 토대위에서 선진화가 이루어지도록 균형잡힌 정책을 펴도록 정부를 독려하자.
※ WTO가 허용하는 선진국형 Direct Payment제도 활성화. 헌법의 경자유전 원칙 고수.
10. 결론: “농업․농촌의 발전 없이는 중진국에서 선진국으로 올라 갈 수 없다!”
-쿠즈네츠 교수(노벨경제학상 수상자)
※ 국민을 움직여야 농업이 산다.
※ 소비자를 감동시켜야 농민이 산다.
※ 농업은 국가와 민족 발전의 최소기본조건
(National Minimum Requirement)
※ 농업․농촌 문제는 이제 농민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와 국민의 문제이다.
※ 벌레먹고 못 생겨도 더 맛있고 안전해요!!
≪ 농업인들이 스스로 살 길을 찾아나서야 할 때: 名品, 名人, 名所化 운동 ≫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제 미흡한 정부지원체제하에서는 농어촌, 농어민 스스로가 살 길을 찾겠다는 의지와 각오를 단단히 해야 한다. 완전히 개방되어 세계 각국에서 가장 값싼 농산물이 밀려들어와 우리 시장과 식탁을 점령하는데 비싼 땅 값과 노임 때문에 가격으로는 경쟁력이 없는 우리 농수산 분야가 다시 살아남으려면 명품, 명인, 명소화를 통해 농어촌의 활력을 다시 찾는 길 뿐이다. 안전성과 품질경쟁력을 키우고 선조들이 일찍이 발달시켜준 발효음식문화로 명품(名品) 농산품을 만드는 일이 그 첫째 과제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농어민들이 나이에 관계없이 신지식, 온고이지신 기법 등으로 무장하여 해당 분야에서 명인(名人), 장인(匠人), 신지식 농업인이 되는 일이 둘째 과제이다.
셋째 과제는 농어촌의 아름다운 경관과 자연환경 생태계, 역사 문화유산 등 우리나라 농어촌 특유의 어메니티(amenties) 자원을 잘 가꾸어 도시민과 관광객이 줄이어 찾아오게 만드는 명소(名所)로 거듭나게 하는 일이다. 선진국의 산간벽촌 오지의 농어촌 농어민들이 일찍이 이를 터득하고 실천하고 있는 명품, 명인, 명소화 운동을 우리나라에서도 보다 짜임새 있게 한국 농어촌 활력의 새 동력과 새 지평으로 개척해야 한다. 정권이 언제 제대로 된 농어업, 농어촌, 농어민 정책을 돌봐줬느냐고 탓하기 전에 우리 농어민 스스로가 도시 소비자와 손에 손을 맞잡고 명품, 명인, 명소화 운동에 적극 나서야 할 때이다.
완전 수입개방하의 현 단계 우리나라의 농업의 거의 100%를 담당하고 있는 가족농업(family farm), 농촌, 농민이 살아남아 발전할 향후의 정책 전개방향은 무엇일가?
지자체와 농업인이 농정을 주도해야 한다.
무엇보다도 한미 FTA 이후의 우리농업ㆍ농촌ㆍ농민이 살아남기 위한 중앙정부가 독점해 오다시피 하던 농정 권한과 예산 등 주요 농정과제의 대부분을 지방자치단체와 농축협 등 지역주민과 농업인들에게 맡겨 현지화 해야 할 때이다. 이미 도, 시, 군, 지방자치정부가 실질적으로 대한민국 전체 예산의 52% 이상을 집행하고 있다. 중앙정부의 기획기능과 예산을 대폭 지자체와 농축협 등에 이관하여 현지농정을 현지인들에게 맡겨 지역특성을 살리고 무한개방체제에 대응케 해야 한다. 이미 선진국들이 취하고 있는 농정체제를 본떠 중앙정부는 WTO가 허용하는 범위의 과제와 업무만 수행하고 나머지 농정일반을 프로그램(포괄적) 예산방식으로 지방정부와 농민 생산자ㆍ소비자 자조조직에 대폭 이양하여 지역사회 발전과 자구적 개발계획을 담당케 할 때이다. 그것이 WTO의 간섭과 구속을 피하는 현재 선진 각국이 행하고 있는 전략이기도 하다.
그리고 가족농을 농정의 핵심에 두고 지역농업의 경쟁력과 자구책을 현지 농업인과 지자체, 협동조합으로 하여 창의적으로 스스로 찾아내고 해결해 나가도록 중앙정부는 자원하는 역할을 적극 수행 할 때이다. 그러하지 못하는 지자체와 협동조합은 농촌 주민들이 앞장서 도태시키거나 개혁해야 한다. 시장개방 시대에 우리 농업 농촌 농민이 살아남을 수 있는 중요과제와 추진방향을 예시하면 다음과 같다.
첫째, 현대의 농업생산은 맛, 향기, 색깔, 모양 그리고 안전성으로 소비자 국민을 감동시키는 친환경 유기농업에 의한 환경생태계 보전과 소비자 건강 위주의 식품수요 창조에 앞장서야 한다. 값싼 농산물을 대량으로 공급하는 미국, 호주, 브라질 등 화학 및 기계농법의 대량생산체제로는 친환경 유기농업을 보편화 하기 어렵다. 따라서 이제는 우리도 소농구조를 비관할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장점을 활용하는 접근방법, 예컨대 조상대대로의 자연순환형농업의 지혜를 온고이지신(溫故而知新)으로 활용하여 생산성과 안전성을 동시에 도모하는 유기농법, 저공해 저투입 농법을 택해야 한다.
그리고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역설한 ‘제3의 물결’ 즉, 다양한 수요, 개성적인 상품서비스 시대의 ‘다품종․소량생산체제’에 부응하여야 한다. 소득수준이 높아진 국민의 수요성격에 맞는 다양한 신선식료품을 친환경적으로 안전하게 생산, 공급하는 일이 새로운 농업과제이다. 외국농산물이 아무리 값싸더라도 저장과 수송에 장기간이 소요되고 각종 병충해 및 부패방지와 생육억제를 위한 화학적 처리(post-harvest treatments)가 수반되기 마련이다. 우리 국민의 미각(味覺)과 기호(嗜好), 건강(健康)에 적합한 토종 가공식품과 저공해 또는 무공해 농산물은 가족농경영체제하의 우리 풍토에서 오히려 경쟁력이 높다. 따라서 국민소비자에 친근한 우리 ‘얼굴을 가진 농산품’ 즉, 안심하고 사먹을 수 있는 우리 고유의 농산물을 생산하는 체제를 강화해야 한다. ‘얼굴 있는 농식품’을 발전시켜 나가기 위해서 민관이 함께 노력해야 할 일은 ① 우리 향토 주변에 오래전부터 시행해 오던 유기농법 및 저공해, 무공해 농법에 관한 친환경 농업기술을 적극 개발 개량하고, ② 유기농업 또는 저공해 농업에 소요되는 원․부자재, 특히 유기질 비료와 배양토, 각종 미생물, 제충제, 無公害 농약 및 천적 등의 개발연구(R&D)와 적기, 적소에 저렴하게 공급할 수 있는 체계를 확립하며, ③ 생산된 농산물에 대한 한국적인 저장, 가공, 조리법을 현대적, 국제기준에 맞게 재개발함으로써 안정적인 판로를 확보하며, 다른 한편 소비자의 신뢰를 유도해야 한다. Local Food와 Slow Food 운동으로 Food Milage(탄소배출비용)를 줄이면서 소비자의 건강과 농민생산자의 소득, 환경생태계를 동시에 살리는 길이다.
둘째, 원래 농업이란 단순히 작물을 기르고 가축을 하는 1차적인 생산행위만이 아니라 그 생산물을 저장, 보관, 가공, 수송, 판매하는 2차, 3차 산업분야까지 농민의 영역이었다. 즉 1+2+3=6차 산업이다. 오랜 기간 개개 농가정에서 김치, 된장, 간장, 고추장, 엿, 과자, 떡 그리고 젓갈, 순대, 편육, 막걸리, 소주 등을 만들어 나눠 먹던 이들 식품들을 이제 다시 농민 주도로 산업적으로 경영할 수 있어야 한다. 따라서 오늘날 잘못된 제도(식품위생법, 도정법, 주세법)로 인해 대기업, 도시 독과점자본들이 독과점 공급하고 있는 식음료품 가공업과 저장판매업을 농어민이 직접 참여할 수 있도록 규제가 완화되어야 한다.
과거 농수축협과 농정당국이 인식을 잘못하여 식음료 제조판매 업무를 대기업들에 모두 빼앗기고 이제 수입개방조치로 농수산업 자체 영역마저 줄어들었다. 게다가 농어민의 협동조합이 제구실을 못해 그동안 도시 독과점자본이 이리저리 농어민을 지배하며, 대부분의 농어민 고유산업분야마저 차지했다. 정부의 이 분야 예산마저 기존업자들을 지원함으로써 농어민이 피부로 그 혜택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지금부터 정부와 농업단체들은 ‘농업관련산업’을 농민들이 주도적으로 참여케 하고 직접 농어민을 지원하는 전략을 적극 추진해야 한다. 앞으로 정부지원의 저장, 보관, 가공, 판매사업은 모두 농어민이 명실공히 직접 수혜자가 되기 위해서는 대기업 기득권 위주의 식품가공위생법, 주세법, 도정법 등 구시대의 대기업 위주의 형식적인 관련법을 뜯어 고쳐 농어민의 가공업 참여 길을 활짝 열어 주어야 한다. 참고로 유럽국가에서는 중앙단위와는 달리 지방자치단체장이 그 지방에서 판매하는 가공 식음료에 대해서는 별도의 간이시설․위생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셋째, 가격 진폭이 해마다 또는 계절적으로 클 수밖에 없는 환금작물에 대한 ‘가격안정대의 운영’과 각종 직접지불제도의 대폭적인 보완 조치가 병행되어야 한다. 협동조합의 모든 이익금과 수입농산물에서 수입업자와 가공업자가 챙기고 있는 판매이익금 모두 농업개발 및 유통개선 사업에 투자하여야 한다. 특히, 채소, 과일, 축산물 등 신선식료품의 안정적인 생산기반 확충과 유통경로 보장, 그리고 가격지지는 정부만이 아닌 농어민 자신과 협동조합의 의무이다. 그리고 쌀등 주요농산물의 가격보장을 계속해야 하되 UR에 대비하여 1999년부터 실시한 직접지불에 의한 소득보상(예, 환경보존 및 경관보존 지원, 조건불리지역직불제 등)방식을 대폭 강화해야 한다. 농업인들로 하여금 계속 농산촌에 남아서 농지를 보전하며 농사를 짓게 함으로써 상대적으로 지리상의 불이익을 감수케하는 대가를 공적으로 보장되어야 한다. 그 만큼 우리 국민 모두가 환경보전 혜택과 안전한 식음료품의 안정적인 공급을 보장받는 것임으로 국민소비자와 정부는 국가예산으로 농어민의 소득향상을 적극 보상해야 할 의무가 있다.
넷째, 소비자 단체와 농민단체의 연대를 강화하는 도농협력․상생 체제를 구축해야 한다. 국내 농업이 쇠퇴하면 일차적으로 농민생산자가 몰락하고 전후방 농업관련 산업 종사자는 물론, 결국소비자인 국민대중의 생존권, 안전성, 건강, 생명 그리고 생활환경이 위태로워진다. 이는 도시와 농촌, 소비자와 농민들을 한데 묶어 굳건한 공동체 의식하에 농업문제와 도시문제를 공동으로 풀어 나가야함을 뜻한다. “생산자는 소비자의 생활을, 소비자는 생산농민의 생활”을 서로 보장하는 실천운동이 거국적으로 전개되어야 할 때이다. 그 매개체가 친환경 유기농산물이며 농산촌 어메니티이다. 그 방법은 도․농간의 직거래이다. 이를 위해 1999년 정부는 ‘소비자 생활협동조합 육성법’을 제정하였으며 이를 계기로 도시소비자들을 조직화하고 친환경 유기농 농촌생산자 조직 및 농축수협 협동조합 등과 연계를 강화시켜 나가는데 지원을 크게 강화해야 한다. 그리하여 Local Food 운동과 Slow Food 운동을 크게 지원하여 생산자도 살리고 소비자도 살리고 환경생태계를 살리는 저탄소 녹색성장을 해야 한다.
다섯째, 안전성이 결여된 수입 농산물과 수입식품; 특히 유기농산물에 대한 검역, 검사제도를 EU, 미국 등 선진국 수준으로 대폭 강화하는 조치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다고 할 수 없다. 국민건강을 외국농산물에 의존하다시피 하는 마당에 식품의 안전성을 보장하는 검사, 검역제도를 확충하지 않는다면 이는 중대한 국가적 직무유기 행위이다. 모든 수입동식물은 물론 수입가공식품과 그 원료에 대해서도 原産地 표시를 의무화해야 한다. 국토방위에 못지않게 국민의 건강과 생명 그리고 환경생태계를 방위하는 철저한 농축산물 이력추적(traceability)을 바탕으로 검역, 검사, 방역체제를 전국적으로 통합관리해야 한다. 이는 국민의 생명과 안정을 지키는 것은 제2의 국방(國土防衛)행위이다. 그리고 최종 소비단계인 식당․가공업자 단계에서의 원산지 표시를 강화하여야 한다.
여섯째, 우리나라 농업정책을 수비형으로부터 공세형으로 전환해야 한다, 바꾸어 말하면 수출주도의 농업으로 육성하지 위한 생산, 가공, 유통정책을 과감히 강구해야 한다. 그것은 지속적인 과학기술과 자본투입을 전제로 한다. 수입개방에서 잃은 것을 수출확대로 보상받으려는 적극적인 농정으로서의 전환이 그 어느 때보다 요구된다. 지방정부는 중앙의 각종 농업무역기관(예, 농수산물 유통공사 또는 대한무역진흥공사)과 연계하여 지방특산물과 농산물의 수출선 확대를 도모해야 한다.
일곱째, 무엇보다도 농민생산자들에게 정부가 신뢰받는 행정을 펴야 한다. 국내외적으로 어떠한 정책환경의 변화가 있더라도 우리 정부는 농민들을 도시민 또는 타 산업 종사자와 똑같이 한 국민구성원으로 그 생존과 생활을 보호, 책임질 것이라는 신뢰관계가 형성되어야 한다. 각종 통상협상과정과 그 비준과정에서 보듯 농업과 농민들을 경제성장에 걸림돌이 되는 귀찮은 존재인양 인식하는 풍조부터 없애야 한다. 그동안의 희생을 높이 평가하고 WTO 협상이든 또는 어떤 경우든 어떤 형태로든 농어민의 장래를 국가가 보장한다는 신임을 농어민들로부터 얻어내야 한다. 이 신뢰관계만 제대로 형성된다면 나머지 대책은 오히려 기술적인 사항에 불과하다.
여덟째, 이제는 싫든 좋든 정보화시대, 국제화시대, 상업농화시대에 우리 농업이 진입해 있음을 농민생산자들은 심각히 인식하고 적극적으로 IT분야에 참여, 활용해야 한다. 따라서 국내외 정세변화에 신속히 대응하는 과학적인 디지털 영농기술과 협동경영 나아가서 농업생산자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유통 및 가공산업에의 참여주체로 부단한 경제정보와 과학기술의 농업에의 응용과 시장정보의 영농반영에 한치라도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 바꿔 말해 세계속의 농민, 과학적인 생산자, 장사를 아는 농민, 가공․저장․수송에 능한 협동하는 농민, 나아가서 시장수요변화와 정보를 신속히 처리할 수 있는 농민, 그리고 홈페이지 개설 등 전자상거래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소비자와 직거래하는 농민, 이것이 비록 험난하고 달성하기 어려운 일일지라도 오늘날 우리 농민이 요구받고 있는 새로운 농업경영인의 모습이다.
아홉째, 지연산업(地緣産業)을 육성, 지원해야 한다. 농민생산자들이 지자체와 농협 중심으로 스스로 개척해야 할 과제는 무엇보다도 먼저 이 시대 소비자들의 기호와 식관습을 제때 옳게 파악하고 기술개량으로 고품질 안전가공식품의 생산에 주력하는 일이다. 소득수준이 높아지면서 핵가족화된 도시소비자들의 식관습 구조가 가격문제보다는 안정성 위주로 바꿔지고 있음에 주목하여야 한다. 그리고 신선한 식품, 안전한 식품, 소량구매와 조리에 편리한 식품, 잘 다듬어졌거나 가공된 형태, 그리고 연중 고른 수요를 나타내고 있음도 주목해야 한다. 이와 같은 수요변화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현대적 농업경영 기술 향상과 전통식품의 지연산업(地緣産業)으로의 육성이 중요하다. 현재의 대기업 가공산업과 외국농산물을 원료로 하는 가공유통업으로는 우리 농업농촌 농민을 두 번 죽이는 길이다. 농어민이 가공과 유통업에 직접 뛰어들 수 있도록 현행의 각종 법규와 제도를 고치는 일이 급선무이다.
열번째로 유통혁신은 생산단계의 상품화전략과 더불어 현대적 소매(소비)단계의 수요창출정책과 유통비용 절감대책이 동시에 추진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농협이 개혁해야 한다.
정부 당국은 유통혁신조치로서 ①산지수집시설 확대, ②소비자 기호에 맞는 산지에서부터의 소포장개발 및 포장, 등급, 선별 시설 보조, ③산지 수송수단 지원, ④농업생산자들이 이력추적 시스템에 따라 자기 농산물에 ‘자기 이름, 자기 가족 얼굴, 상표 붙이기 운동’의 전개, 나아가서 농장마다 ‘간판달기, 명함갖기 운동’의 확대, ⑤ 이제는 도매시장 지원보다는 농산물을 직접 취급하는 소매기능의 획기적인 비용절감 지원조치가 강화돼야 한다. 예컨대 식품취급점포의 세금감면과 상가분양시 식품점포의 실비분양 및 영구임대 조치 등, ⑥ 농민주도의 가공 및 저장식품에 대한 도시 내 판매장 제공 및 광고선전 활동 지원, 정부의 품질보증제도화가 추진되어야 한다. ⑦ 외국 농산물을 원료로 사용하는 가공식품에 대하여는 원산지 표시와 이력추적제도를 의무화하여 소비자의 알 권리, 선택할 권리를 보장해 주어야 한다.
여기서 다시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현행 중앙정부의 기존 농업관련 예산을 대폭 지방자치단체와 농어민 생산자단체에 이양하여 지역농업개발 차원에서 직접 농어민에 대한 보조를 확대 지원하는 것이 개방화의 피해를 피해 나가는 지혜이다. 그 일환으로 저장, 가공, 수송, 유통 등 유통근대화 시설에 대한 대폭적인 재정 및 시설 지원을 정부 차원에서 강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방정부의 세원도 더욱 늘려 확보해 주고 농협조직을 대대적으로 개벽해야 한다. 가족농업의 사활이 협동조합의 개혁에 달려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이제 지자체와 협동조합, 농업인들이 한덩어리가 되어 유통의 개혁 없이는 농업의 획기적인 발전이 있을 수 없는 시대에 접어들었음을 크게 깨닫고 저장, 보관, 가공, 수송 등 物的 유통시설의 획기적인 강화와 유통방식의 혁신을 자구차원에서 농협조직을 앞장세워 官民이 협동하여 실천해야 한다. 총론적인 주장에 그칠 것이 아니라, 이제 구체적인 대책을 현장에서 각 부문과 기관이 농민이익 최대화원칙에 따라 유통구조의 획기적인 개혁작업을 각자 실행에 옮겨야 할 때이다. 특히 한미 FTA가 발효되고 WTO DDA 협상이 재가동될 경우 국제 식량 및 농산물시장은 수급 및 가격 불안정성을 크게 나타낼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대한 대책은 정부는 국민생존권의 확보라는 국가․국민 식량주권과 안보차원에서 사전에 대비하고 농업인 중심의 지역농업 살리기 정책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한다.
전통 식품산업의 지연화(地緣化)와 세방화(Glocalization)
한반도가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는 內包的 제약조건들이 바야흐로 웅비의 조건으로 새 기틀을 자리 잡아 가고 있다. 역설적이게도 WTO 체제하 국내외 정치경제 여건과 사회문화 여건의 변화에 따라 과거 낙후지역의 장애요인들이 이제는 성장요인으로 탈바꿈되고 있는 것이다. 즉, ①풍기(風氣) 온화하고 비옥한 고생대 지질 황토에서 생산되는 각종 농수축임산 식품 ②향기 높은 우리나라 전통 문화, 예술, 역사 및 향토 지적자산(amenities)의 한류화(韓流化) ③천혜의 해양관광자원과 천혜의 세계 제5대 갯벌자원 ④脫냉전 국제화 기류를 타고 급격히 부상하는 동북아경제권 협력무드와 더불어 이 지역의 지경학적(地經學的) 조건 등이 그러하다. 이러한 국내외 조건들이 농․림․수산자원에 바탕을 둔 지연산업(地緣産業)의 발전 및 국제화의 디딤돌을 제공해 주고 있다. 왜 한국의 미래가 농촌 농업의 친환경적, 친문화적 발전여하에 달려 있는지 그 근거는 다음과 같다.
첫째, 아름다운 산천이 겹쳐 펼쳐진 한반도의 지리적 특성에 주목해야 한다. 5대양 6대주를 향하여 산, 강, 평야로부터 무궁하게 각종 산진해미(山珍海味)의 무공해 청정식품을 채취할 수 있는 자연 그대로가 바로 우리나라 농산어촌의 자랑이다. 자연과 문명의 만남을 친환경적 친문화적 정통식품문화로 승화시킬 수 있다.
둘째, 우리나라의 역사, 문화 및 지적 향토자산은 한(恨)의 사바세계를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옛소리와 정감 어린 시가 및 춤사위 가히 예술 수준에 비견되는 된장, 고추장, 간장, 김치, 젓갈 등 전통 발효식품 등의 식문화(食文化), 그리고 두터운 인정미로 대표되는 휴머니즘과 정의감 등이 국제화시대 우리나라 우리겨레가 자랑하고 내세울 수 있는 무한한 자산이다. 이들이 현대감각의 상(商)정신과 알맞게 교합이 이루어질 때 고차원의 세계적 문화상품으로 그리고 음식문화의 한류(韓流)로 거듭날 수 있다. 오늘날 세계 고급문화시장의 상권을 장악하고 질주하고 있는 유태계와 프랑스, 이태리, 일본, 중국계 등의 성공사례가 그 본보기이다. 전통 예술문화가 뒷받침하는 고부가가치 상품의 생산과 교역, 그 자체가 바로 식문화의 국제화이며 한류(韓流) 상품화의 정화이다.
셋째, 세계적으로 그 우수성이 공인된 우리나라 전통 발효식품을 국제화시키는 과제가 앞으로 전통가공식품산업의 성패의 주요 요인이다.
넷째, 옛부터 산과 바다와 평야가 어우러져 한국 특유의 맛 좋고 몸에 좋은 식품을 생산해 내는 이 지역 농업의 상업화 및 국제화 잠재력은 이렇듯 막강하다. 이를 여실히 증거하고 있는 것이 고래로 농산어촌에서 일상적으로 임금에게 진상하는 각종 토산품과 진상품이 각별히 뛰어나다는 사실이다. 당장 WTO 국제개방화시대 한국 대표 농산품으로 간추릴 수 있는 전략품목만도 수십 여종이 된다. 이들이 대부분 친환경적인 건강자연식품으로서 타 지역에 비해 품질과 효능이 뛰어나고 한반도만이 자랑할 수 있는 고유토산품 성격의 농산자원이다. 이들을 앨빈 토플러가 말한 후기산업사회의 개성적인 수요에 맞게끔 ‘다품종 소량생산’ 체제로 육성하고, 나아가서 농어민이 주도하는 저장, 가공, 판매체제, 즉 ‘1+2+3=6차 산업’을 농가 또는 협동조합 주도로 육성할 때, 비로소 오늘날 유럽 알프스산맥 접경국가들에서 흔히 보는 환경친화형 그리고 휴양겸업의 녹색체험산업(Green Industry)의 번영을 그리 어렵지 않게 전망할 수 있다. 이들 녹색산업이 바로 지연(地緣)산업이다. 지금과 같이 대기업 중심과 외국 원료 농산물을 주축으로 삼는 농산물 가공 및 유통산업 정책으로는 부자들만 살릴 뿐 농민도 소비자도 혜택을 보지 못한다. 그동안 고속 경제개발에서 낙후되었던 농․산․어촌의 어메니티(amenities)들이 아직까지 제대로 풍부히 보존되어 있어 요즘 도시 사람들의 웰빙 수요를 우리 농업 농촌 농민들이 가장 잘 충족시켜 줄 잠재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말하자면 “나중된 자가 먼저 되는” 좋은 계기가 형성되고 있다.
끝으로, 국제적인 개방 추세와 지역 block화를 굳혀가고 있는 세계경제질서의 변화 조류 가운데 다시금 부활하는 한반도의 지경학적(地經學的)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칠 수 없다. 가깝게는 세계 최대 농수산물 수입국인 일본이 지호지간에 바라보이고, 환황해, 동북아를 포괄하는 환태평양경제권 형성이 이 지역을 기축으로 활발히 논의되고 있다. 5대양 6대주를 향해 한반도는 대륙의 최첨단 축을 형성하고 있어 통일대비 핵심기능지역으로 성장할 것이 예상된다.
농업을 1+2+3=6차 지연산업으로! 세방화(世方化)로!
우리나라는 대륙성 기후와 해양성 기후가 교차하는 고생대 지질로 형성된 토양을 가지고 있다. 사계절이 뚜렷하고 낮과 밤의 온도차이(日較差)가 적절하여 우리나라에서 생장하는 농․림․축․수산물의 맛이 뛰어나고 영양이 풍부하다.
우리 조상들은 오래전부터 세계에서 으뜸가는 발효식품 문화의 꽃을 피워왔다. 약곡(藥瑴)과 양념(藥念)이 다양해 예를 들어 콩, 팥, 녹두, 기장, 수수, 율무 등 잡곡을 비롯 간장, 된장, 식초, 설탕(엿), 마늘, 생강, 대추, 계피, 겨자, 고추, 참기름, 들기름 등은 6가지 이상의 맛을 내는데 필수적인 조건을 갖추고 있다. 흔히 잡곡이라 불리는 곡물들은 예부터 약재로 쓰여 약곡이라 불리고 있다.
음식 맛의 4元味인 짠맛, 신맛, 단맛, 쓴맛의 외에도 매운맛, 감칠맛, 시원한 맛, 얼큰한 맛 등의 調和味가 한국음식의 자랑이다. 갖가지 발효음식 고유의 맛을 내는 양념을 藥念이라 불렀던 이유가 바로 이들이 단순히 맛을 내는 것에 그치지 않고 건강 보약의 기능을 수행한데 기인한다.
색소(色素) 음식의 화려함도 우리나라 식품의 자랑이다. 백색(白色)의 무, 양파, 마늘, 연근의 주산지이며, 녹색(綠色)식품인 배추, 시금치, 근대, 오이의 적산지이고 등황색(橙黃色)의 호박의 적지이고 적색(赤色)식품인 자색 양배추, 가지, 고구마, 비트 재배가 무난하다. 이른바 무지개 7색 음식원료가 풍성하다.
산과 바다를 두루 갖추고 있어 각양각색의 토산품이 토착음식으로 발달해 왔다. 이들이 각 계절에 나는 신선한 식재(食材)로서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되어 지방질이 적고 향토미가 풍부한 다이어트 건강식품이 아닌 것이 없다. 맛과 풍류가 적절히 어울려 한국 특유의 맛과 멋을 내고 각종 고구마 요리와 김치류, 젓갈류 등 가지각각의 향토음식이 조화를 이루어 감칠맛과 소화를 돕는다. 거기에 토속 곡물과 특산물로 맑은 물에 빚은 술은 문자 그대로 장수 건강주(健康酒)이다. 식재료를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거나 적게 쓴 청정 친환경 유기농산물일 때 맛을 더 낸다.
이쯤해서 한국의 농업이 WTO 체제하에 살아남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세계시장으로 뻗어 나갈 수 있는 길은 순수 ‘우리 것’을 농가와 마을 수준에서 지연(地緣)산업으로 가꾸고 발전시키며 1+2+3=6차 산업으로 어메니티 요소를 모두 한데 묶어 세계화하는데 달려 있다. 그리하여 농민 소득을 늘려 나가도록 각종 법규, 예컨대 식품가공위상법, 주세법, 도정법 등 농민의 외연적 소득 확대를 옥재고 있는 규제를 유럽 등 선진국형으로 완화하고 지원하는 것이 중요하다. 온고이지신의 정신으로 옛것을 발굴하여 현대화 시켜 한류(韓流) 문화화 하고, 지방화(localization) 추세를 세계화(globalization) 대세에 접목시켜 世方化(glocalization)하면서 주민들의 소득과 삶의 질을 높이는 것이 우리나라 농업․농촌․농민의 살 길이다. 이같은 방향으로 농림부, 농촌진흥청, 농업기반공사, aT공사, 식품개발연구원과 지자체 및 농협들이 한층 더 분발하길 바란다.
≪강원저널 창간호 인터뷰 기사, 2008. 3≫
농산어촌의 미래 : 강원도의 저력과 비전
저는 한때 정부에 있을 때부터 강원도 사람이 될 것을 마치 예견이나 한 것처럼 ‘우리 국가와 국민들은 농산어촌에 빚을 엄청나게 져 있으니까 예산상이나 각종 투자 면에서 특별한 배려를 해야 한다’고 그렇게 주장한 사람이었습니다. 지금도 그 철학의 일환으로 겨레의 숲 운동, 한국산지보전협회, 수목장실천회, 춘천의 「물포럼」등을 이끌고 있습니다만, 농산어촌은 사회, 국민들에게 청정한 공기, 살아 있는 물, 아름다운 경관을 무료로 제공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해서 지금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이, 특히 서울 사람들이 제일 많이 혜택을 받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다시 말해 농산어촌의 공익적인 기능 수행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것을 중앙정부가 나서서 국민을 대신해서라도 농산어촌에 예산과 투자 면에서 보상을 해야 한다는 거죠. 그것을 안하면 캐나다의 록키 자연국립공원처럼 외지 사람들이 농산어촌에 들어올 때마다 아예 입장료를 받든지. 깨끗한 공기, 맑은 물, 아름다운 경관을 제공해준데 대한 값을 국민들이 세금으로 직접 내든지 아니면 중앙정부가 배려해야 되거든요. 그 대신 농산어촌 주민들은 이것을 자산으로 삼아서 환경 생태계 보호 때문에 각종 생활에 지장을 받는다고 생각하지 않도록 정부에서 농산어촌 주민들에 대한 직접적인 지불을, 직접적인 혜택을 주어야 합니다. 선진국에서는 이미 널리 보편화된 보상의 원칙(Principle of Compensation)에 따라 지금 중앙정부로부터 체제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데, 농산어촌에 대한 특별한 재정적인 배려가 없는 상태에서는 농산어촌 주민들만 환경생태계의 유지를 위해서 희생 당하는 것 아니냐 하는 그런 피해의식이, 또 그런 생각이 팽배하게 됩니다. 아니 최근들어 부쩍 그런 주장이 나오고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나오지 않도록 중앙정부나 국민들이 배려해야 하는데, 그러면 농산어촌 주민들은 역으로 아름다운 생태계를 계속 보존해서 이것으로 먹고 살자. 여기에서 생업을 만들어 나가자 할 겁니다. 농산어촌에서 명품을 생산해내고, 또 농민들이나 주민들은 명인, 신지식인이 돼야 하고 농산어촌의 방방곡곡이 명소화 돼야 합니다. 그래서 ‘아름다운 농산어촌에서 잘 사는 농산어촌으로’ 이것이 제가 농산어촌에 대해 갖고 있는 철학입니다. 김민웅 교수의 숭례문 비유처럼 정부와 국민들은 나중에 농산어촌이 망가진 다음에야 그 소중함을 알게 될 때는 이미 때가 늦습니다. 그리될까 저는 지금 참으로 안타깝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