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비콘 강을 건넌 非原理的 집단들?
1. ‘루비콘 강을 건너다’
루비콘 강(라틴어: Rubico/Rubicon)은 이탈리아 북부의 작은 강에 대한 라틴어 이름이다. 아리미눔과 카이세나 사이에서 아드리아 해로 흘러드는 강이다.
본래 이 강은 로마제국 당시 파견된 장군 및 군사들이 전쟁, 훈련 등으로 파견나간 뒤 돌아오는 길에 루비콘강을 건너야할 경우 로마에 충성한다는 서약의 뜻으로 항상 무장을 해제한 다음에야 루비콘강을 건널 수 있는 일종의 전통과 법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무장을 하고 이 루비콘 강을 건넌다는 것은 곧 로마에 대한 반역을 나타내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이 전통을 먼저 깬 사람이 바로 율리우스 카이사르다.
기원전 49년에 율리우스 카이사르는 ‘주사위는 던져졌다’는 말을 하고는 무장해제 하지 않고 갈리아원정을 함께했던 군사들과 함께 루비콘 강을 건너 로마로 진군한다. 물론 당시 카이사르가 군대를 이끌고 루비콘 강을 건너는 것은 로마에 대한 반역을 의미했다. 하지만 당시 로마에는 카이사르의 정치적 라이벌이자 적이었던 폼페이우스 및 로마 원로원들이 카이사르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에 무장해제하고 루비콘강을 건넌다면 곧 이러한 정적들에게 죽는다는 것을 의미했다는 것을 카이사르는 알고 있었다.
결정적으로 갈리아 원정당시 카이사르의 집정관 재임기간 연장과 관련된 분쟁도 한몫을 했다. 갈리아 전쟁이 생각보다 오래 지속되고 있었고 때문에 카이사르의 집정관 재임기관의 연임기간이 끝나고 있어서 원로원에게 연임을 요청하나 원로원들은 이러한 집정관 연임을 막으면서 문제가 된 것이다.
이들은 카이사르가 로마에 돌아오면 로마군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은 카이사르에 의해 자신의 정치적, 군사적 입지가 줄어 들것이라 생각해 카이사르가 무장해제를 하고 루비콘강을 건너면 집정관 연임을 어긴 것을 관련지어 적당한 죄명을 넣어서 죽일 궁리를 했었기에 카이사르로써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기도 했다.
이때부터 "루비콘 강을 건너다."는 표현은 되돌아 갈 수 없는 상황에 처했을 때 쓰는 말이 생긴 것이다.

2. 非原理的 집단
통일가에서 ‘원리적’이라함은 절대. 유일. 영원. 불변의 메시아 참아버님께서 8대 교재 교본을 통해 밝히시고 가르치신 <원리와 말씀>을 의미하며, ‘非原理的 집단’이라 함은 그 <원리와 말씀>에 위배되는 언행을 하거나 그를 지지하고 전파하는 집단을 말한다.
그렇다면 현재 분열된 통일가 3파(韓總裁님 중심한 가정연합. 文亨進 중심한 통일성전. 文顯進 중심한 곽그룹) 중 어느 집단이 <원리와 말씀>을 따르는 ‘정통’이고 어느 집단이 <원리와 말씀>에 위배되는 ‘이단’이냐가 혼란스러운 이때를 살아가는 통일 신도들에게 구원과 생명문제를 판가름하는 중차대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여기서, 7,000만명의 사상자를 낳은 인류 최악의 전쟁인 2차 대전, 이 끔찍한 전쟁의 시발점이자 중심이었던 히틀러와 나치, 그리고 그의 옆에는 나치의 또 다른 중심인 천재 선동가 괴벨스의 말이 되새겨 진다.
●선동은 한 문장으로도 가능하지만 그것을 반박하려면 수 십장의 문서와 증거가 필요하다. 그리고 그것을 반박하려고 할 때에는 사람들은 이미 선동되어 있다.
●증오와 분노는 대중을 열광시키는 가장 강력한 힘이다.
●거짓과 진실의 적절한 배합이 100%의 거짓보다 큰 효과는 낸다.
●승리한 자는 말의 진실 여부를 추궁당하지 않는다.
●거짓말은 처음에는 부정되고 그 다음에는 의심받게 되지만 되풀이하면 모든 사람이 믿게 된 다.
' 비원리적 집단'의 용어는 괴벨스적 거짓 선동 구호에 다름 아니다.
절대. 유일. 영원. 불변의 메시아 참아버님께서 성화를 앞두시고 전심전력 3대 왕권의 수립을 통하여 하나님과 독생자의 뜻을 바르게 전승시키시고자 하셨던 말씀과 행하심을 훈독회 등을 통하여 분명히 알고 있다. 그것이 바로 천하가 다 아는 참아버님-형진-신준으로 이어지는 대신자. 상속자 선포의 행사와 축복이 아닌가!
그런 그가 어느 대목에서 <원리와 말씀>에 위배되어 그를 지지하고 따르는 무리가 ‘비원리집단’이 되는가?
오로지 참아버님의 말씀과 가르침에 따라 <원리와 말씀>을 근거로 ‘韓總裁님 중심한 가정연합’을 비판하는데, 선한 양떼들에게 듣지도 가지도 보지도 말라고 손으로 해를 가리는 愚를 범하는가?
이런 행태야말로 적반하장(賊反荷杖)이요, 본말전도(本末顚倒)의 본보기가 아닌가!
3. 모름지기 和合과 統一을 모색할 때
가정맹세문을 통해 매일 신앙고백을 하는바와 같이, 孝子. 忠臣. 聖人. 聖子의 길을 가고자 한다면 보다 큰 가치가 우선되어야 함은 불문가지이다. 근본적인 불효자가 충신. 성자가 될 수는 없겠지만, 충신. 성자가 되고자 할 때 효와 불효는 선택할 수밖에 없는 길임을 참아버님께서도 누누이 강조해 오셨고 또한 모범으로 보여주셨다.
더욱이 ‘부모’에 대한 단순한 불순종 차원이 아니고, 하나님과 참아버님을 따라야 하는 길에서 선택할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심각하게 기도정성을 쌓은 후 참아버님의 뜻을 좇아 내린 결론이 ‘통일성전 운동’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렇다고 모두가 하나님과 참부모님의 이름으로 상대를 미워하고 저주하며 담을 쌓는 일이 효도요 충성은 결코 아닐 것이다. 참아버님께서 ‘참사랑’ ‘화해’ ‘평화’ ‘가정’ 등 훌륭한 구호들이 많지만 유별나게 ‘통일’을 강조하시어 우리 단체의 명칭을 공통적으로 정하신 뜻을 헤아려 ‘統一과 和合’에 모두 함께 나서야 할 때라고 생각한다.
내가 혹은 상대가 ‘루비콘 강을 건넜다’고 포기하지는 말자!
모든 과오의 탓을 상대방에 돌리고, ‘統一과 和合’을 시도할 생각이 없으면서, 대화나 만남을 거부하거나 책임을 상대에게 전가함은 영원히 이단자요 파괴자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본다. 말하자면 궁즉통(『주역』의 ‘계사전’에 나오는 유명한 문구. 원문은 ‘궁즉변 변즉통 통즉구(窮則變 變則通 通則久)’입니다. “궁하면 변할 것이요, 변하면 통할 것이고, 통하면 오래갈 것이다”라는 뜻)이요 死卽生(충무공의 교훈)이라는 말과 같이, 상대와 죽기 살기로 싸울 궁리만 할 게 아니고, 모자지간이요 형제지간 임을 생각하고, 군대를 대동하지 말고 건너야 할 루비콘 강을 건너서 만나고 대화하고, 때로는 용서하고 사랑하라는 것이다.
이것을 반대할 하나님이나 참아버님은 분명 아닐 것이며, 통일 식구 모두가 바라는 바가 아닐 것인가! 바라지 아니하는 무리는 단 하나 아직도 회개하지 아니하는 천사장과 질시하는 기독교도들이라 확신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