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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하는 요리사 '윤화영' chef와의 만남 (호텔외식조리)>>
(다이어리알) 파리에서 유행하는 요리스타일을 설명해 주세요.
하지만, 이제는 요리사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요리사가 존재하기 위해서 열심히 일하는 다른 사람들도 있습니다. 식재료를 만드는 사람, 식당의 자리를 만든 사람(인테리어 디자이너), 포도주를 빚은 사람(와이너리), 요리사의 음식에 어울리는 포도주를 골라준 사람(소믈리에), 음식을 서비스 해 주는 사람(서버, 홀메니저, 매트르 도뗄) 등 모든 것들이 잘 어울렸을 때만, 어느 수준에 도달하게 되고 이럴때에 별을 받을 수 있게 되고, 세계에 이름을 떨치는, 유행을 만드는 식당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프랑스 요리의 유행의 핵심은 요리사 시스템도 아니고, 누벨 뀌진도 아니고, 분자조리도 아닙니다. 이제는 ‘사람’입니다. 그 동안 잊혀지고 등한시 되었던 것들의 가치를 인정해 주고 있는 것이지요.
(다이어리알) 서울과 파리의 차이점을 설명해 주세요
우선 요리사가 어디 출신이고 누구 아래에서 얼마나 수학했는지 등 그 식당에 대한 음식을 예상할 수 있게 되지요. 또, 파리의 식당들은 파인다이닝에 해당하는 갸스트로노미, 그리고 우리의 백반집 같이 전통요리를 푸짐하게 먹을 수 있는 비스트로, 또 브라스리, 까페, 바 혹은 바아방(bar a vin 와인바) 등, 식당의 종류가 이름으로 확연히 구분되어 있기 때문에 이름만으로도 그 식당의 스타일과 가격을 대략 짐작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에는 프랑스, 미국, 일본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양식을 받아들인 탓인지 이런 구분이 모호하여, 그저 ‘레스토랑 아무개’ 로만 표현되기 때문에 더욱 더 맛 보고 온 사람들의 평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한국에서는 힐튼호텔의 씨즌스도 레스토랑이고, 이태원의 르 쌍떽스도 동일하게 레스토랑이라 불립니다.
(다이어리알) 요리가즘이라는 단어를 설명 부탁드립니다.
제게 있어서 음식을 먹는것은 배고픔 탈피라는 육체적인 측면도 있지만, 쾌락 향유라는 정신적인 면이 더 강하다고 생각합니다. 배고플 때 폭식하는 사람보다, 우울할 때 폭식하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이 좋은 예라고 생각합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다시 보니 저 때는 도대체 무슨 깡에 저런 말을 막 할 수 있었을까 생각이 드는데, 아마도 무식했기 때문이 아닐까 합니다. 요리사는 그저 요리사인 거지 철학가나 사회운동가가 아니기 때문이죠.
(다이어리알) 파리가 세계 요리의 중심?
이와 같이 요리와 상관없는 이야기로 시작하는 이유는, 미슐랭 쓰리스타급의 세계의 모든 고급식당들은 스스로 혼자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소비해 줄 수요가 있고 고객이 있을 때 비로소 가치를 가지고 설 자리를 찾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리옹 외곽에 위치한 쌍떼띠엔(St. Etienne)에서 Pierre Gagnaire가 파산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즉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세계의 훌륭한 식당들이 빠리나 런던, 뉴욕 등 글로벌 대도시에 위치하는 것은 기꺼이 한끼에 500달러씩 지갑을 열어 줄 수 있는 손님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측면에서 파리가 세계 식문화에서 중요한 위치를 점유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아보면, 그것은 전 세계에 그 어떤 도시에서도 볼 수 없는 식자재의 풍부함 때문입니다. 일찍이 중앙집권 국가로, 영토 내의 최상의 재료는 모두 수도에 모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거기 더불어 프랑스의 영토는 해외령을 빼고서도 아열대에서 한 대까지, 서안해양성 기후, 지중해서 기후에서 해발 4000미터 내의 알프스 고산 기후까지 다 만날 수 있고, 분지, 고원, 평야, 하천, 구릉, 산악, 삼각주, 갯벌 등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지형과 기후를 조그만 땅덩어리에서 만나면서 한 면은 지중해, 한 면은 대서양과 접해 있습니다.
이런 자연적인 조건 뿐만 아니라 TGV로 대표되는 전 세계에서 가장 체계가 잘 잡힌 철도운송수단은 이런 물자들이 모두 빠리에 모이게 만들고, 전 세계에서 가장 큰 농수산물 시장인 항지스(Runqis) 역시 이런 물자를 효율적으로 컨트롤하기 때문입니다.
(다이어리알) 피에르 가니에르와 같은 훌륭한 셰프들과 함께 일할 때 느낀 그들의 내공과 그들에게서 배울점은
어떤것이 있을까요?
정말로 다른 셰프들로부터 서로 다른 것들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공이라 함은 직업적 영역만을 이야기 할지 모르지만, 진정한 장인이 되기 위해서는 인간적 영역까지 같은 레벨에 도달해야 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것이 진정한 내공이 아닐까요. 내공은 문자 그대로 외적으로 보여지는 것이 아닙니다. 주방에서 욕을 하고 소리를 지르고 상소리를 하는 것에 대한 저의 의견은 내공이 모자른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그런 요리사는 뛰어난 요리사이고 테크니션일 지는 모르지만, 장인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요리학도들이 스타쥬를 하면서 그들이 동경하던 셰프에 실망을 느끼는 이유의 대부분이기도 합니다. 주방에서 매일 일을 하면서 그 찜통 안에서 뛰어다니고, ‘빨리빨리’에 목숨을 거는 직업이기 때문에 마음이 급해지는 것이 당연할 지 모르지만, 그 역시 컨트롤 할 수 있어야 진정한 대가의 반열에 든다고 믿습니다.제가 생각하는 요리사에게 가장 중요한 덕목 내지 소양은 ‘존중, 직원이건 손님이건 남을 대접하고자 하는 마음, 인간에 대한 사랑’입니다.
(다이어리알) 자신만의 요리 색깔을 찾기 위해 해야 할 점은 무엇일까요?
(윤) 자신만의 요리를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은 요리사가 곧 예술가라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같습니다. 사실, 예술에서도 Difference(차이)의 개념이 생겨난 것은 2차 세계대전 이후의, 아주 최근의 일입니다. 오랜 전에는 한 공방에서 공동 작업을 진행한다던가, 동일한 노선을 걷는 자들끼리 같은 이즘(ism)을 추구하며 비슷하거나 공통의 정신을 가진 작업들을 했었습니다.
한국의 젊은 요리사들을, 요리사이기 이전에 한 사람 한 사람이 자신의 이름을 널리 알려야만 하는 전사라고 생각하거나 혹은 ‘유명’ 해야 그것이 곧 성공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요리사라는 직업의 본질을 들여다보면, 요리사는 다른 사람들과 자신이 다르다는 것을 가시적으로 증명해 보여야 하는 예술가도 아니며, 이름이 유명해져야 가치있는 음식을 할 수 있는 것도 아닙니다.
원점으로 돌아와서, 아주 단순한 이야기지만, 요리사는 음식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대상은 ‘대중’ 이 아닌 나의 고객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거나 착각하는 것이, 자신을 과시해야 하는 대상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그러나 기업이라 하더라도 모든 기업이 브랜드 이미지를 위해, 혹은 영업을 위해 ‘대중과의 관계’를 생각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왜 모든 요리사가 이 <대중> 과의 관계를 중요시 하게 되었을까요?
저는 대중을 의식하기 이전에 내가 만든 음식을 즐겁게 먹어주는 한 사람의 손님을 더 생각하며 일을 하는 요리사들이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면, 자신만의 색깔이나, 자신만의 독창적인 레시피 등의 부담으로부터 자유로와저, 보다 근본적이고 기본적인 것이 충실한 진짜 음식을 하는 요리사가 될 수 있지 않을까요.
색깔과 조금 다른 의미에서, 저는 나의 고객에 사기를 치지 않기 위해서, 그리고 스스로에게 떳떳하고 자신의 일에 사랑과 긍지를 갖기 위해서는 ‘기본’을 탄탄히 닦아야 한다는 생각을 합니다. <차이>만 따지다 보면, 보다 독창적이고 이제껏 없었던 무엇인가를 만들어 내기 위해 무리를 하게 될 수도 있고 또 기본이 채 갖추어지지 않은 상태에서 모래 위에 성을 짓게 되는 수가 생깁니다. 그러나 고기 한 점, 생선 한 덩이, 야채, 과일을 온전히 맛있게 들기기 위해서는 기초적인 많은 지식과 작은 테크닉들을 몸에 익혀야만 합니다.
어떤 생선과 어떤 야채가 어울리고, 어느 부위를 가장 맛있게 먹는 조리법은 무엇이다를 발견하기 위해서는 수많은 경험 이외에는 답이 없습니다. 다른 예술 또한 그러하겠지만, 진정한 아티스트란, 이론과 경험으로 무장된 기술자이지, 아무것도 모르면서 보기 좋거나 자신이 좋아하는 것들로 이것저것 섞어 내는 퍼포먼서는 아닐 것입니다. 기본이 결여된 색깔은 ‘아마츄어적 시도’(취미활동)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주변에 ‘누가’ 있느냐에 따라 간혹 좋은 평을 받을 수도 있지만, 스스로 프로라 생각하는 순간 처참하게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왜냐하면, ‘전문가’ 들은 항상 아마츄어에 대해서는 관대하기 때문입니다.
(다이어리알) 파리에서의 한식의 현주소는 어떤가요?
(윤) 빠리에서의 한식은 아직 중식이나 일식처럼 대중의 삶 속에 친근한 음식이 아닙니다. 현재 빠리에는 한식당이 100곳 정도 있는데, 그 중 20%가 중국계에 의한 한식당입니다. 한국식 한식당이 김치찌개, 된장찌개, 등의 탕, 찌개를 위주로 한 메뉴가 주를 이루고, 중국계 한식당은 불고기를 비롯하여 스시나 야끼도리 등 일식과 섞어 파는 곳이 많습니다.
제 아내가 우리나라 여러 메스컴의 <한식의 세계화> 에 관련하여, 빠리에 대한 기사를 쓰다 보니 많은 한식당들과 친하게 지내게 되었습니다. 요리사의 입장으로 봤을 때, 우정이나 봉식당 같이 실력있고 가능성 있는 식당들이 얼마든지 있습니다. 빠리가 미식문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기 때문에, 개인적인 바램으로 많은 한식당이 빠리에서 성공하였으면 좋겠습니다.
(다이어리알) 앞으로의 계획도 조금 소개해 주세요.
(윤) 이제 곧 파리에 온지 10년이 됩니다. 처음 왔을 땐 10년이 넘어가기 전에 한국에 가자고 다짐을 했건만 하고 싶은 것들을 하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요. 이제는 제가 배운 음식들을 제 조그만 열손가락으로 풀어보고 싶습니다.
애당초 직급이나 승진에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한곳에 머물기보다는 지난 10년 동안 여러곳을 다니면서 배웠습니다. 이제는 한국에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제가 배운 음식을 저의 손맛으로 풀고 싶고, 그 음식을 좋아해 주는 제 손님들을 만나고 싶습니다.
‘요리가즘’이라는 단어를 만든 생각하는 요리사 답게 역시 깊이 있는 대답을 들을 수 있는 시간이었다. 요리사는 단순히 손으로만 움직이는 직업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일깨울 수 있었으며, 우리의 맛에 관하여 좀 더 진지하고 학문적으로 접근해야한다는 생각도 만들어 주었다. 당당한 체구에 초롱초롱한 그의 눈망울 속에서 한국 요리업계의 미래는 밝아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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