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퍼그의 등짝이랍니다. 그림처럼 예쁜 사진이지요.)
제4일
오전 9시. 전날 앙골 포인트에서 스노클링 중 산호에 찔린 퍼그 발가락 상처에서 고름이 나오구 냄새가 나고 아파서 오늘 하루 그냥 빈둥대기로 결심.
조식후 호텔 앞 비치에서 수영을 했다.
조류가 밀려와 지저분 한 곳도 있었지만 조금 멀리 나가면 깨끗하고, 커다란 성게나 작은 물고기도 보였다.
바다도 깊지 않아 놀기 좋다.
해가 뜨거워지는 한낮이 되어 우리는 실질적인 보라카이에서의 마지막 날, 꼭 먹고 가야할 것들을 더 성실히 먹기 위해서 스테이션 1 방향으로 걸었다.
팔라우 세일링(사진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커다란 돛이 달린 근사한 배가 팔라우 랍니다.),
체험 다이빙(스노클링과는 또다른 재미, 산소통 메고 직접 바다 속으로 들어가는 거죠.),
마사지,
고리오스 식당의 해물 바스켓.
계획에 포함되어 있던 요 네 가지를 건너뛰다 보니 돈이 엄청(?) 남아돌아서 쇼핑을 신나게 하기로 했다.
위의 네가지 옵션을 안한 이유는 글쎄...
우리가 한 보름 이상 머물렀으면 분명히 빼놓지 않고 다 해봤을텐데 짧은 일정이다보니...
그렇다고 패키지 투어처럼 새벽부터 일어나서 이것 저것 다해보느라 정신 없이 옮겨다니고 싶지 않았다.
보라카이는 그러고 싶지 않은 곳이다, 정말.
다음에 한 번 더 와서 못해본 걸 더 하면 더 했지, 있는 동안은 평화스럽게 노닥거리는 게 딱이다.
더구나 퍼그 취향이 언제부터인가 (수영도 잘 못하면서리^_^;) 비치에서 그냥 한가로이 수영하다 쉬다 수영하다 쉬다 그러는 거였다.
귀여운 현지 아이들과 함께 말이다.
의외로 바닷가에서 수영하는 사람이 적다.
한국 사람은 더구나 거의 한명도 없다.
우리가 만난 한국 사람들은 단체로 마사지를 받고 있거나 밤에 바닷가에 앉아 술 마시던 아저씨들, 그리고 한국인 샵 앞에있는 평상에서 고스톱을 즐기고 있던 몇몇들...정도 였다.
우리 호텔 바로 옆이 로얄 파크 (한국인 운영) 였지만 도대체 신혼 여행객들이랑 다 어디 있는건지.
정오.
그 유명한 '잉글리쉬 베이커리'에 찾아가 망고쥬스와 파파야 쥬스를 마셨는데 (각 35페소) 이야! 많은 사람들이 이 곳의 쥬스를 칭찬하는 이유가 있었다.
정말 맛있다.
양도 많다.
퍼그는 망고 쥬스보다 파파야 쥬스가 더 맛있다고 하던데 내 생각에도 그런 것도 같고.
내친 김에 우리는 '할로할로'가 무슨 맛일까 먹어보자고 직원에게 부탁했더니, 밖에 있는 가판대에서 사다주었다.
잉글리쉬 베이커리의 메뉴는 아니기 때문이다.
20페소였는데 맛은 뭐, 우리나라 팥빙수가 훨 낫다.
이날 전화를 하기 위해 카드를 샀는데 호텔 앞에 있는 스마트 폰이라는 공중 전화는 스마트 폰카드로 밖에 안된다.
300페소짜리를 샀지만 돌아올 때 거의 다 남았다.
또 스마트 폰은 핸드폰으로 거는 게 안되었다.
두어군데 ADLT던가...?
아닌데...
암튼 스마트폰 말고 다른 전화가 있는데 그건 데이콤, 한통등 콜렉트콜 전화카드 사용가능하다.
Shenna 앞에 그 전화 부스가 있다.
그걸로 걸면 핸드폰 메세지 확인도 가능하다.
또 돌아갈 비행기 리컨펌에 대해서도 알려드리지요.
이미 오케이 난 좌석이야 안해도 큰 문제는 없을 것 같은데 우리는 했다.
필리핀 항공이 아무래도 못미더워서..
아시안 스피리트 전화번호를 물어보려 호텔 프론트에 갔더니 자기들이 리컨펌 해주겠다고 티켓을 받는다.
고맙구나, 했는데 이게 웬걸.
나중에야 국제선 리컨펌은 100페소를 받는다는 것이다.
할 수 없지.
이미 티켓은 그 수중에 있고...
야박하게 굴고 싶지도 않고.
그래서 그냥 주고 했는데 전화해서 이름하고 날짜, 시간 같은거 확인하기만 하면 되니까 돈 낭비 하지 마시고 직접 하시길.
아, 투어리스트 센터에 가면 해준다고도 한다.
오후 2시. '망고레이'에서 점심 식사.
해물스파게티(크림소스인데 느끼한 거 싫다면 주문할 때 토마토 소스로 해달라고 하면 된다. 지지도 그랬다.),
폭찹 과 밥(한국 쌀하고는 틀리지만 흰밥을 같이 먹어요.),
산미구엘 생맥주 3잔,
총 450 + 팁 50페소.
생맥주 파는 곳은 여기밖에 못봤는데 우와~! 더운 나라에서 마시는 시원한 생맥주의 맛!
한국 사람은 역시 생맥주 체질이야, 감탄하면서...(혹자는 소주 체질이라고도 하고...)
시원해서가 아니라 진짜 맛있다.
꼭 드셔보시라...
망고레이=생맥주.
오후4시. 사진도 찍고 어슬렁 거리다가 쇼핑을 했다.
우선 식순에 따라 투어리스트 센터부터 가서 20달러 환전하는데 49.2페소 쳐서 976.4페소 받았구.
예전부터 사고 싶었던 샌들 (300페소),
너무 예뻐서 충동구매한 머리 두건 (80페소),
보라카이 기념 티셔츠 (남자 220. 여자 190 페소짜리로),
우리 퍼그가 예쁘다, 너 해라, 하고 충동구매한 여자 머리핀 (240페소),
기념 엽서 3장(35페소).
여기 이 가격들은 보라카이에서 제일 비싼 가격일 것 같다.
투어리스트 센터가 상대적으로 믿을만한 대신 가격은 비싸니까.
여세를 몰아 우리는 아예 여름 쇼핑을 여기서 미리 해버리자 하고...
(외화 낭비, 양심에 걸리기도 하지만... 면세점에서 외제 화장품, 유명 디자이너 가방, 때는 이때다 하고 흥청망청 사는 것보단 죄가 가벼우리라 믿고.)
길거리에서 커플 모자(각150페소. 우리가 갔을 때 대 유행이었던 이 모자를 유럽에서 온 늘씬한 미녀들은 저마다 하나씩 쓰고 있더군요. 그래서 늘씬하진 않지만 뱁새가 황새 따라간다고 나도...),
부채(선물용으로 두개 각 20페소),
소매 없는 퍼그 옷 (100페소. 등판에 보라카이라고 써있어서 예쁘길래. 엽서 사진을 연출했죠. 여행 앨범에 있음.)
아, 그리고 여행가면 그곳의 지도와 마그네틱 꼭 기념으로 사는 분들 계시죠?
보라카이 지도를 까띠끌란에서 얻을 수 있다는데 우리는 못봤구.
보라카이에서는 투어리스트 센터에서 파는데 지도 같지도 않은 것이 80페소나 해서 안 샀다.
길거리에서 마그네틱 3개에 100페소 하는데 상태는 안좋다.
그래도 기념으로 그 중 나은 것 골라 3개 샀다.
나중에 필리핀 항공 대기실에서 보라카이 지도 (필리핀의 다른 지역 것들도) 제대로 된 것 발견했는데 그 때는 이미 무일푼 이라 못샀다.
비치로드에서 온갖 잡상인들이 근접하는데 안사는게 좋다.
쓸만한 물건이 없다. (혹시 사더라도 값을 정말 많이 깍으세요.)
우리는 길거리 할아버지한테 50페소 주고 코코넛을 사먹었는데 맛은 없고 양은 많아서 고생했고, 어떤 청년한테서 선글라스를 120페소에 샀는데 사고 돌아서서 세 발자국도 떼기 전에 왜 이걸 샀을까 하고 후회했다.
여행가면 꼭 이렇게 기분에 젖어서 필요도 없는걸 사놓고 후회하는 일이 생긴다.
물은 호텔 냉장고에서 작은 것 한병 마신 것 20페소 했구요,
길거리 가게에서는 큰 병이 30페소.
오후 5시. 우리는 우리가 산 모든 것을 호텔 방으로 끌고 들어와 바보 커플처럼 서로 히죽거리며,
야아, 이거 정말 잘 샀다,
야아..이거 진짜 예쁘다, 싸다,
하면서 감탄을 하다가 이제 내일이면 보라카이에서 아무것도 먹을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황급히 다시 나왔다.
그리고 잉글리쉬 베이커리로 뛰어갔다.
문을 일찍 닫거든요.
망고쥬스 큰 것과 망고쉐이크 작은 것 총100페소 주고 테이크 아웃 해서 마시며 찰스바를 향해 걸었습니다.
파파야 쥬스를 다시 먹고 싶었지만 다 떨어졌다고 하였다.
문 닫는 시간에 갔기 때문이다.
찌꺼기 재료로 만들었나..?
쥬스에서 섬유질도 많이 씹히고...
나는 못먹겠어서 쓰레기통 (= 뭐든 다 먹는 우리 퍼그 '위') 에 버렸다.
찰스 바에서 '좀비'라는 칵테일 한잔(115페소)을 시키자 둘이 먹을 수 있게 컵에 나눠 준다.
누구나 그렇게 하듯이 찰스바에 앉아서 해지는 걸 보고 찰스 바 앞에 있는 비치에 큰 수건을 깔고 앉아 또 보고...
정말 아름다운 보라카이의 선셋.
우리는 이렇게 스테이션 1 부근 비치에 앉아 바닷물에 엄지 발가락 살짝 담그고 오래오래 앉아 바라보는게 젤 좋았다. 노을.
저녁식사는 '니기니기니누스'에서.
슾, 칵테일, 디져트 케잌, 주요리. 이 네가지 코스가 275페소.
주요리는 식당 앞에 진열된 싱싱한 해산물 중에 왕새우와 라뿌라뿌(붉은 빛 도는 생선인데 내 생각엔 제주도에서 볼 수 있는 '돔'이 틀림없다.)를 선택했어요.
맛 훌륭. 분위기 훌륭.
그런데 하필 바로 옆 테이블에 유럽에서 온 듯한 늙은 남자와 어려보이는 필리핀 여자가 미팅이랄까, 아르바이트랄까, 묘한 만남을 갖고 있었다.
파타야에 가도 그런 풍경이 많다던데 하필 옆자리라 얘기 소리도 다 들리고...
괜히 신경이 쓰여서...
나 참, 요기조기 신경도 많이 쓰고 다니죠.
오후 8시. 식당과 바를 찾아서 스테이션 3에서 1까지 3일동안 하루에도 몇차례씩 걸어다니다가 이젠 지쳐서 정말 힘들었다.
그래도 뭔가 더 먹어야한다는 애처로운 욕망에 나는 발가락에 냄새나는 부상을 입은 퍼그를 끌고 끝까지 여기저기 돌아다녔다.
Sun Thai 라는 곳 역시 앞에서 싱싱한 해물을 전시해놓고 파는데 여기 직원들이 재미있다.
그들과 농담하다가 얼결에 마지막 새우를 먹기로 하고 잔뜩 바베큐해다가 맥주하고 먹었다. (새우 3마리에 200페소씩. )
식당 안 분위기도 재미있었다.
밤이라 그런지...
새우는 바베큐 소스로 굽기도 하고 레몬과 버터만을 이용해 굽기도 하는데 선택할 수 있다.
그곳에서 나와 지치고 힘들지만 보라카이의 밤바다를 좀더 거닐며 남은 동전들은 보라카이의 어린 예술가들에게 기부하고 안녕을 고했다.
달은 없지만 머리 위로 쏟아질 듯 별들이 총총한 하늘.
보라카이에선 별들이 진짜 와르르 쏟아질 것 같다.
사람이 주인인지 개가 주인인지 알 수 없는 섬.
나는 정말 사람보다 개를 더 좋아하는 축에 속하는데 행복했다.
개들이 사람을 개로 알아요.
낮에는 비치건 그늘이건 식당이건 아무대서나 잠만 자고, 밤이면 슬슬 활동을 시작하는데 사람들 테이블 사이를 다니며 부스러기를 얻어먹는다.
고 영민한 것들...
보라카이의 개들은 크기도 모양도 진짜 다 비슷하고 무늬만 다른데 달마시안도 있고 누렁이도 있고...
잘 생긴 놈들이 많다.
호텔 앞까지 비치를 따라 걸어왔는데 이날 따라 이상하게도 가게들마다 손님이 없어 일찍 문을 닫고 인적이 뜸했다.
도착한 첫날은 사람들이 새벽2-3시까지도 활기차게 넘치더니...
문닫고 치우려는 호텔 식당 직원에게 망고 쉐이크 두잔을 부탁했다.
한잔에 90페소나 했지만 양도 많고 잉글리쉬 베이커리 못지 않게 정말 맛있었다.
진작 먹어보지 않은 것을 후회했다.
왜 꼭 자신이 묵는 호텔 식당은 안가게 되고 다른 호텔 식당으로만 돌아다니게 될까.
아, 이제 먹고 싶은 거 실컷 먹고 실컷 자고 놀고 돈쓰고, 무엇보다도 맘 편안히 여유를 부린 평화롭고 아름다웠던 보라카이에서의 며칠이 끝나는구나.
내일이면 다시 미뤄놓은 일들과 아둥바둥 대는 살림살이와 사람들이 있는 서울로 돌아가야 한다는 벅찬(?) 기대를 안고 잠들었다.
(보라카이를 아름답게 만드는 건 어쩜 바다가 아니라 노을인지도.)
(정말 예쁘고 고운 화이트비치. 하이얀 모래가 밀가루처럼 어찌나 부드럽던지... 아, 또 가고시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