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타산(662m)은 한우산,
자굴산과 함께
의령의 3대 명산으로 꼽히는 산이지만 사람의 발길이 상대적으로 많지 않은 산이다. 산행 코스가 여럿 있지만 급한 경사와 끊어진 산길, 사유지
행사 등으로 발길이 쉽지 않다. 그래도 산에는 여전히 봄마다 진달래 군락지가 장관을 이룬다고 한다. 산 아래 사람들은 이 산을 미태산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봉수대가 있다고 '봉우재'라고 부르기도 한다.
등산길은 부림면 신반공설운동장을 지나 감암 마을에서 오르는 길과 부림면 여배 마을에서 오르는 길이 있다. 감암 마을로 오르는 길은 미타산 중턱에 있는 불관사까지 차량으로 이동이 가능하며 여배 마을로 오르는 길은 유학사까지 차로 이동하여 유학사를 거쳐 등산하게 된다. 유학사에서 오르는 길은 중간에 길을 잃기 십상이라 불관사 방향을 택했다.
절에도 새집 증후군?
불관사로 오르는 길이 질퍽하다. 진흙이 차바퀴의 모양을 본뜬 듯 움푹 패어 있다. 불관사 직전에
백양사란 절도 있다. 얼마 안 가 마주친 불관사는 믿기 어려울 정도의 충격을 준다. 준공을 끝내고 단청을 남겨둔 대웅전을 비롯한 절간의 규모가 거대하다. 게다가
지붕과 문을 빼면 모두
콘크리트 구조다. 기둥 하나가 한 아름을 거뜬히 넘긴다. 사찰이라기보다 기념관이나 전당으로 쓸 법한 규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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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로 새단장(?) 하는 불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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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크리트의 미학이 과했던 것일까. 이곳에서 꽤나 유명세를 탄 콸콸 쏟아지는 용천약수도 콘크리트
구조물에서
플라스틱 파이프를 타고 흐른다.
계단의 연꽃 무늬도 콘크리트다. 죄다 콘크리트 구조다 보니 사찰의 처마 밑 복잡한 목제 공포(기둥머리)가 사라져 버렸다. 스님에게 여쭤보니 "어차피 나무로 지으면 썩을 테니…" 하고 대수롭지 않다. "요즘엔 콘크리트 새집 증후군도 있는데"라는 말이 나오다 목구멍으로 다시 삼킨다. 대웅전의 웅장한 크기에 비해 상대적으로 왜소한
화강석 불상도 콘크리트가 아닌가 의심이 들 정도다. 의심하지 말라 했거늘.
빗살무늬 기와 흔적
산길은 차량이 지나갈 수 있을 만큼 널찍하다. 왼쪽으로는 물 흐르는 소리가 요란하다. 도심에 가까운 산은 벌써 봄 채비를 하는데 이곳에는 낙엽이며 나무가 겨울의 속에 있는 듯하다. 봄바람은 벌써 부는데 봄기운을 느낄 수 없으니 '춘래불사춘'이라.
큰길이 만만해서인지 속도를 높였더니 코가 아닌 몸이 숨을 가쁘게 쉰다. 고개를 들었더니 집채보다 큰 돌이 하나 보인다. 하도 기이한 곳에 뿔 모양으로 돌머리에는 나무 한 그루까지 달렸다. 도깨비 바위라고 해도 좋을 듯하다. 바위 옆으로 파란
천막을 친 판잣집이 있다. 해발 600여m의 산중에서 마주치는 판잣집이지만 주위를 개간한 탓에 전망이 좋다. 집 주인인 할머니에게 물었더니 18년째 살고 있단다. 30년간 탄광에서 일하면서
건강을 잃은 할아버지와 함께 공기
좋은 곳에서
요양 중이란 이야기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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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을 앞두고 만나는 미타산성은 복원 중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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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을 오르다 마주친 거대하고 기이한 바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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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깨비 바위' 뒤로 축조 중인 산성 하나가 보인다. 9분 능선쯤이다.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합천 대야성과 함께 군사 요충지였다는 점을 미리 알고 가면 쉽게 지나치기 힘들다. 게다가 삼국사기에 김유신 장군이 미타산성에서 백제군과 싸웠다는 기록이 있기도 하다. 1400여 년 전의 이야기다.
2㎞에 이르는 흙과 바위를
혼합해 지어진 산성의 일부가 남아 있다. 하지만 현재 쌓고 있는 산성은
석축이다. 복원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원래의 산성에 쓰인 돌이 사람이 겨우 나를 수 있는 돌이라면, 복원 중인 산성의 돌은 포클레인으로 나를 수 있는 돌이다. 기술의 발달이 '복원'을 '개량'으로 바꾸었다. 산성을 거닐다 기와 파편이 발길에 차인다. 빗살무늬의 기와
조각은 이곳에도 절간이 있었다는 것을 말해준다.
산 정상을 비껴 소나무 숲에 정자 하나가 보인다. 별 독특할 것 없어 보이는 정자에 오른 이유는 정자 한 쪽에 걸린
공책 때문이다. 누군가 산행 방명록을 적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것이다. 등산객들이 한 마디씩 남기고 간 흔적이다. 합천 원경고 교장
선생님이 긴 글을 적어놓았다. 그는 학교 뒷산인 미타산을 혼자 오르면서 닦이지 않을 길이지만 원경고
리본을 달아 놓았다며 미타산 등산객의 새해 희망
설계를 소망했다.
동네 잔치에 산도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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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타산 정상에서 내려다 본 합천 적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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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상에 서서 주위를 둘러본다. 의령 방향으로는 막혀 있고 합천 방향은 시원하게
파노라마처럼 드러낸다. 초계면과 적중면으로 절반씩 나눈 평야가 어지간히 넓다. 평야 중간에 읍내가 들어서 있다. 건너편 봉우리는 봉수대가 있던 자리다.
정상
표지석에 서서 가장 높은 곳에 선 기분을 느끼기도 잠시. 이곳이 가장 높은 곳이 아님을 깨달았다. 건너편 봉우리에 세운 송전철탑이 정상보다 높게 올라 있다.
정월대보름을 맞아 산 아래 마을에 잔치라도 열렸나 보다.
달집 주위로 오가는 풍물소리와 뽕짝
메들리가 정상에 선 등산객의
어깨를 들썩거릴 만큼 요란하다. 분지형 구조가 마을과 산 정상의 거리를 좁혀놓았다.
☞ 근처 가 볼 만한 곳 | 미타산 유학사 극락전
미타산 중턱에 위치한 사찰로 조선 개국 직후(1399년)에 세워졌다. 물론 현재의 사찰은 중건, 중창, 중수를 거듭해 사실상 1900년의 건물이다. 사찰 중앙에 배롱나무 한 그루가 지난 역사와 함께 하고 있다. 본당인 극락전을 중심으로 앞으로는 툇마루가 딸린 종무소, 만세전이 있고 극락전 왼편에 종각이 있다. 오른쪽으로는 칠성각이 자리 잡았다. 본당이 대웅전이 아닌 극락전인 까닭은 중생을 극락으로 인도하는 아미타부처를 주불로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모르긴 해도 미타산의 이름도 유학사가 아미타부처를 모신 까닭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