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수 기간 : 2002. 07. 21 - 07. 31 (10박 11일)
체험 지역 : 러시아와 스칸디나비아 3국
참가 인원 : 최원국·김인자를 포함하여 16명
체험 기록 : 최 원 국 김 인 자
일정표
제01일 07/21(일) <인천-모스크바>
12:50 인천공항 출발(SU 600)
17:10 모스크바 도착 후 호텔 투숙
제02일 07/22(월) <모스크바-성페테스부르크>
09:00 모스크바 관광 - 크레믈린 궁, 성 바실리 사원, 붉은 광장, 레닌 묘, 굼 백화 점, 아르바트 거리, 모스크바 대학 등
20:25 모스크바 출발 - 21:40 성페테스부르크(뻬쩨르) 도착 (FV 158), 호텔 투숙
제03일 07/23(화) <성페테스부르크>
09:00 성페테스부르크 관광 - 에르미타쥐 박물관, 성 이삭 성당, 궁전 광장, 여름 정원, 에카테리나 대제 동상, 구 해군성 본부, 네브스키 대로, 바실리 섬, 순양함 오로라 호 등 관광 후 호텔 투숙
제04일 07/24(수) <성페테스부르크 - 헬싱키>
09:00 성페테스부르크 관광 - 피터 대제 여름궁전, 피터풀 요새 등 관광
17:00 성페테스부르크 출발 - 21:30 헬싱키 도착(Train) 후 호텔 투숙
제05일 07/25(목) <헬싱키>
08:00 헬싱키 시내 관광 - 만네르헤임 거리, 대통령 궁, 마켓 광장, 원로원 광장, 대 성당, 귀족회관, 암석교회, 벼룩시장, 시벨리우스 공원, 민속촌 등
17:00 실자라인 편으로 헬싱키 출발. 선내 숙박.
제06일 07/26(금) <스톡홀름 - 오슬로>
09:30 스톡홀름 도착 후 시내 관광 - 전망대, 시 청사, 구 시가지의 왕궁, 대 광장, 귀족의 집, 대성당, 유르고덴 섬의 바사흐 박물관 등.
14:34 스톡홀름 출발 - 21:00 오슬로 도착(Train) 후 호텔 투숙
제07일 07/27(토) <오슬로 - 푀르데>
09:00 오슬로 출발. HONEFOSS & GOL 경유하여 방스넥스-드라스빅 Ferry 편으 로 송네 피오르드 관광.
19:30 푀르데 도착하여 호텔 투숙.
제08일 07/28(일) <푀르데 - 라에달 - 스탈하임>
07:00 호텔 출발
09:00-11:00 마차편으로 빙하 관광. 13:30 FJAERLANG 경유하여 카우팡에르
15:50 카우팡에르-구드방겐 Ferry 편으로 송네 피오르드 감상.
18:30 스탈하임으로 이동하여 호텔 투숙.
제09일 07/29(월) <스탈하임 - 오슬로>
09:00 스탈하임 출발. 보르군드 목조교회, 화게네스 경유하여 오슬로로
17:00 오슬로 도착하여 시내 관광 - 바이킹 배 박물관, 비겔란드 조각공원, 시 청 사, 왕궁, 국회의사당 등 파노라마 시내 관광 후 호텔 투숙.
제10일 07/30(화) <오슬로 - 모스크바>
08:30 호텔 출발하여 공항으로 이동. 11:30 오슬로 출발. 22:15 모스크바 출발.
제11일 07:31(수) <인천>
1. 문화의 중심지 러시아
♥ 제1일 - 7월 21일(일요일) <인천 - 모스크바>
04:30 팀 리더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하여 춘천서 새벽에 출발 공항 가는 버스를 탔다. 인천 공항의 어느 한식 식당에서 조반을 먹고 10:30에 팀 리더 강정호씨를 만났다. 출국 수속을 마치고 러시아 항공 SU 600기에 오르니 예정시간보다 40분이나 늦은 13;30에 이륙하였다.
21:30 기내에서 나오는 간식을 먹고 시차를 조정하기 위하여 시계를 16:30으로 되돌렸다. 서울과의 시차 5시간이다. 아홉시간 이상의 긴 비행 시간이 매우 지루하다. 안내 방송도 알아들을 수가 없고, 방영해 주는 것도 일체 없다.
17:40 드디어 모스크바 공항에 착륙했다.(9시간10분걸림) 그러나 출국 수속을 마치고 나오기까지 무려 한시간 반이나 걸렸다. 느리고 꼼꼼히 따진다. 그래도 얼마 전 공항 컴퓨터를 모두 386으로 바꾸어 빨라진 것이란다.
19:00 드디어 내가 러시아에 왔다. 감회가 무량하다. 아! 내가 모스크바에 올 수 있다니!
한때 사회주의 국가의 대명사로 통하던 러시아, 개방화 이후 자유롭게 드나들 수 있는 곳이 되기는 했지만 아직까지도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알고 보면 러시아만큼 화려한 문화와 역사를 지닌 곳도 없다는데….
러시아 Russia - 러시아인의 조상은 동슬라브 족이며 러시아에 세워진 최초의 국가는 9세기경에 세워진 키예프 공국이다. 키예프 공국은 여러 공국으로 분열되었으며 13세기경에는 타타르 인(몽고)의 지배를 받았다. 모스크바 공국의 이반 3세에 의해 여러 공국들은 타타르 인으로부터 독립하게 되고 동북 러시아의 정치적 통일을 달성하게 된다.
그 후 표토르 대제와 에카테리나 2세 등이 절대 권력을 휘둘러 러시아를 유럽의 강대국으로 성장하도록 했으며, 제1차 세계대전 중에는 레닌이 이끄는 볼세비키당에 의해 사회주의 혁명이 성공을 거두어 인류 최초의 사회주의 국가가 되었다.
1985년 고르바초프 당 서기장이 페레스트로이카(개혁) 글라스노스트(개방) 운동을 내세우며 개혁에 착수하나 결국은 실패하고, 1991년 12월에는 15개 공화국이 각각 분리 독립해 나간다. 현재 러시아는 사회주의 체제에서 탈피하여 시장 경제 체제로 들어서면서 자본주의식 개혁이 몰고 온 정치 경제적 혼란 상태를 겪고 있다.
호텔로 향하는 버스 속에서 피곤한 몸은 늘어지는데 현지 Guider(정연수)의 장황한 설명은 귓속을 파고든다. 882년 고대 러시아의 시작, 1146년 모스크바 공국 건설, 1240년부터 240년 간 몽고의 지배, 러시아 중흥기인 이반 3세, 표토르 대제, 에카테리나 여제 등의 업적들, 그리고 러시아 정교회의 특징(건축양식은 이슬람 식, 의자 없이 서서 예배, 반주 없이 성가 부르기) 등 아주 많은 설명을 들었다.
20:00 이글 호텔 내 코리아타운의 한식 식당에서 김치찌개 백반으로 저녁을 먹고, 인터내셔널 호텔 320호에 짐을 풀었다.
♥ 제2일 - 7월 22일(월요일) <모스크바 - 성 페테스브르크>
아침 산책을 하고 싶지만 어제 밤 안내자가 호텔 밖의 출입을 삼가라는 말이 생각나 생략하기로 한다. 안내자가 알려준 러시아어 인사말을 연습해 보지만 영 서툴고 외어지질 않는다. (안녕하세요 - 즈드라스브이쩨. 안녕히 계세요 - 다스비다니아. 감사합니다 - 스빠씨바. 화장실이 어디냐 - 그제 뚜랄렛. 좋다 - 하라쇼)
<크렘린궁>
09:00 호텔을 출발하여 크렘린 궁으로 향한다. 전 세계에 스탈린 양식의 건물이 열 개 있는데 그 중 7개가 모스크바에 있다고 한다. 모스크바 국립대학, 외무성, 우크라이나 호텔 등 직선으로 쭉쭉 뻗은 시원시원한 저 건물들이 스탈린 양식이란다.
벽돌색 성벽 안쪽이 크렘린 궁 이란다. 모스크바 관광 명소의 대명사가 된 크렘린은 원래 모스크바 강변의 성벽을 가리키는 말이란다. 유리 도르고르키 공이 보로비츠키 언덕 위에 목조 성채(1156년)를 쌓은 데서 크렘린의 역사는 시작되었다한다. 크렘린이 오늘과 같은 모습을 갖추게 된 것은 15세기의 일로 그때 비로소 성벽 안에 사원들이 하나 둘 생겨나게 되었단다. 안내자는 차도로 내려서거나 줄을 쳐 놓은 곳에는 절대로 들어가지 말라고 신신 당부한다, 괜히 문제를 만들지 말도록 주의하자.
삼위일체의 다리를 건너 삼위일체의 탑을 지나니 건물 주변으로 전승기념 대포가 진열되어 있다. 175문의 프랑스 대포라고 한다.
한 곳에 이르니 엄청나게 큰 대포가 있다. 왕의 대포(대포의 황제 - Tsar Pushka)라 불리는 이 대포는 1586년에 만들어진 세계에서 가장 큰 대포란다. 한번도 발사된 일이 없는 이 대포는 무게가 40t이고, 구경이 89cm, 대포알 한 개의 무게가 1t이란다. 이 대포의 포문이 향하고 있는 저 건물이 영빈관이라는데 이곳에 머무는 외국 국빈들의 기를 죽일 일이 있나보다.
이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는 어마어마하게 큰 종이 있다. 이름하여 왕의 종(종의 황제 - Tsar Kolokol). 높이가 6m, 중량이 202t이나 된다. 그러나 이 종 소리는 누구도 들을 수가 없다. 1737년 크렘린에 불이 났을 때 누군가 종에 물을 부어 일부분이 떨어져 내려앉았기 때문이다. 저 높이 치솟아 황금빛으로 반짝이는 이반 대제의 종루는 그 높이가 83m로 모스크바에서 가장 높이 솟아있는 탑이란다. 그 옛날 이 종루에서는 적의 습격을 알리는 종을 울렸다고 한다.
베지 색 벽에 녹색 지붕을 한 황궁에는 황제의 계단이 있고 그 앞이 집회의 광장인데, 여기서는 황제가 귀족들과 대화를 나누던 곳이라고 한다.
11:00 소보르나야 광장에 있는 우스펜스키 사원은 성모 승천 사원이라고도 불린단다, 러시아 정교회의 사원이므로 특징을 잘 살피라고 한다. 벤치가 없고, 무반주로 성가를 부르며, 이슬람 양식의 건물이다. 들어서면 정문에 천국의 문이 있고, 양파 지붕 속에는 예수님 얼굴이 그려져 있으며, 벽과 천정에는 이콘화(나무판화)로 장식되어 있는데 그중 삼위일체 상은 13세기에 만들어졌다고 한다. 이반 4세의 의자에 대한 설명도 장황하다. 대천사의 사원은 르네상스식 건물로 많은 관이 있었다. 황제의 사원은 벽화가 많이 낡아 있었고, 황제 개인 사원으로 천국의 문이 없었다.
13:00 우리는 점심을 먹고 레닌의 언덕에서 잠시 쉬었다. 바랴뵤비 언덕이라고도 불리는 이 언덕은 모스크바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어 시가를 한눈에 굽어볼 수가 있다. 원래 평야 지대이니 언덕이래야 표고 50m쯤 될까? 앞으로는 모스크바 강이 유유히 흐르고, 뒤로는 스탈린식의 건물 모스크바 대학이 있다. 이곳에는 신혼부부들과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선물을 파는 노점상들로 북적거린다. 여름에는 산책로로 쓰이는 저 길은 겨울에는 스키장으로 쓰인단다. 보이는 저 모스크바 시내에 단독 주택은 단 한 채도 없다고 한다. 모두 공동주택에서 살며 난방도 중앙 공급 식이란다.
레닌 언덕을 출발하여 우리는 전승기념관으로 갔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일을 무찌른 기념으로 건립한 기념관 앞에는 까마득히 높은 대검 전승기념비가 있고, 그 앞으로 계단 광장이 펼쳐진다. 1941년부터 1945년을 상징하는 계단을 다 내려오니 '피의 분수'라는 분수가 힘차게 솟구치고 있다.
15시 3분전에 근무교대식이 있다고 해서 우리들은 부지런히 크렘린 궁 앞 '무명용사의 횃불' 앞으로 갔다. 2차 대전 때 희생된 무명용사들의 영령을 기리기 위한 이 횃불은 절대 꺼지지 않으며, 수방사 장병들이 일년 내내 보초를 서는데 매 정시 3분전에 근무교대식을 한다고 한다. 이 곳은 결혼 남녀의 헌화 장소로도 알려져 있다.
붉은 광장 - 러시아 사람들은 붉은 광장을 '크라스나야 폴로시챠지 - Krasnaya Ploshchad'라고 한단다. 크라스나야란 원래 '아름답다'란 뜻의 고어였으나, 그 의미가 '붉다'가 되었고, 그렇기 때문에 '아름다운 광장'이 17세기 이후로 '붉은 광장'이라 불리게 된 것이다. 붉은 광장은 국립 역사박물관, 성 바실리 사원, 굼 백화점에 둘러 쌓여 있다. 15세기까지는 커다란 시장이었는데, 17세기에 와서 오늘과 같은 모습으로 재정비되었다. 붉은 광장은 모스크바의 중심지답게 메이데이나 혁명 기념일 등 주요 행사가 있을 때마다 행사장으로 널리 그 이름을 떨치고 있다.
15:15 붉은 광장 중앙의 한 옆으로 레닌 묘가 있다. 적갈색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피라미드 모양의 건물 내부에 레닌의 묘가 있다고 한다. 레닌은 붉은 조명을 받으며 유리관 속에 잠들어 있고, 매 시각 위병들의 교대식이 있다는데 들어가 보지는 못하고 굼 백화점으로 들어갔다.
굼 백화점은 모스크바 최대의 바자르라고 한다. 백화점이라기보다는 규모가 큰 시장쯤으로 보면 되겠다. 우리는 아이스크림을 하나씩 들고 먹으며 구경을 하였다. 우리나라 백화점에 비하여 규모도, 물건도 다양하지 못했지만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었다.
성바실리사원은 불균형의 조화, 다양한 형태의 문양, 다양한 색채등 이루 형용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웠다. 그림으로 그려도 어려울 정도로 화려하고 아가자기하면서 웅장했다. 인간의 솜씨가 이렇게 훌륭할 수 있을까! 더군다나 건축물인데 말이다. 일화에 의하면 설계사가 다시는 이렇게 아름다운 건축물을 못 짓게 눈을 망가뜨렸다고 한단다. 47m 높이의 양파같이 생긴 아홉 개의 지붕이 묘하게 조화를 이루고 있는 유명한 사원으로 이반대제가 카잔 칸과의 전쟁에서 승리한 것을 기념하여 세운 사원이란다.(1555-60) 그 앞에는 동상과 이마 위의 자리(정수리)라는 원형무대가 있었다. 왕의 연단으로 황제와 국민이 만나 공개 토론을 하는 자리였단다.
<아르바트거리>
중세기와 사회주의 혼합거리인 아르바트 거리에는 많은 상점들과 먹자골목이 있었다. 피터대제의 배동상과 푸쉬킨과 그의 부인 나타리 동상이 있었다. 5층 정도의 건물이 즐비했고 다양 다색한 거리였다. 모든 건물과 건물 사이가 모두 붙여져 있다. 이것은 바람을 막기 위함이고 창문의 모양은 다양했다. 서양 어디를 가나 길거리에 악사들의 연주는 있었다. 민속품들을 파는 노점상들이 지나가는 우리들 시선을 멈추게 했으나 사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20:25 모스크바출발(FV158기)
21:40 상트 페테르부르크 도착(1시간 30분걸림)
상트 페테르부르크는 러시아 제2의 도시로 레닌그라드라고 알려진 도시이다. 제정 러시아시대의 수도였던 도시로 당시의 문화유산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원래 네바 강 하구의 습지 마을이던 것을 황제 표트르 1세가 스웨덴의 침입을 막기위해 요새를 건설하면서 오늘날과 같은 도시의 모습을 갖추게 되었다. 현재 인구 470만의 도시이며 약 100개의 섬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섬과 섬을 잇는 중요한 다리가 365개며 조그만 것까지 합치면 700개에 이른다. 새벽 2시에서 4시에 교량을 열어 대형 수송선을 운행한다.
북쪽의 베니스, 시인 푸쉬킨에 의해 '유럽을 향해 열린 창'으로 불리워 졌으며 도시 전체가 박물관으로 불리우는 로마에 견줄 만한 도시이다.
그런데 기가 막힌 것은 비행기에서 내려 짐들을 챙겨보니 화물로 부쳤던 가방들을 모조리 뒤진 것이다. 2명은 한화를 잃어버렸다. 가이드의 말(배영환)- 이런 상황이 빈번히 이루어져 시정을 요구해도 별로 개선이 안 된단다. 국내선에 이런 일이 자주 있다고 한다. 나라의 망신이지. 사회주의 100년 결과가 이런 현상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공무원들도 나 몰라라 한단다.
호텔로 향하며 가이드설명을 듣다.
6월은 24시까지 백야가 계속되고 겨울철 온도는 -20도 정도이지만 체감온도는 바람 때문에 -35정도란다. 얼굴이 찢어질 정도로 아프단다.
상트 페테르부르그의 특징
1. 백야 2. 홍수가 빈번함 3. 저녁노을(색깔의 다양함)
이곳 관광의 서비스 개념은 우리가 이해하기 힘들 정도라고 귀뜸한다.
호텔에서 자다가도 쫓겨나는 경우도 있단다.
교통수단
1. 버스(객체 2개 붙인 것도 많음) 2. 전차 3. 전기버스 4. 지하철
5. 노선택시( 택시는 세금 안 내려고 집안에 두고 자가용으로 영업을 해서 길거리에 택시의 모습을 보기가 드물다)
보통 임금 - 1당 50루불 1$=30루불 1당 약 3000원 받고 일한다한다.
22:50 뿔포파 호텔 3282 투숙
♥ 제3일 - 7월 23일(화요일) <상트 페테르부르크>
09:50 이삭성당 - 황금빛 돔을 이고 있는 이삭 성당은 참으로 웅장하고 아름다웠다. 높이 102m에 (30층 높이) 화강암과 석회암으로 만들었단다. 이곳은 늪지대이어서 쇠막대 6m짜리를 16000개 박고 지었는데 기둥은 대리석 원석이란다. 이 대리석을 어디서 가져 왔겠는가? 그 당시 군주의 위엄을 느낄 수 있었다. 성당 내부에는 성서를 토대로 만들어진 모자이크화 '대홍수' '최후의 심판'이 눈길을 끈다.
데카브리스트 광장- 이 광장에서는 전제 정치와 농노제에 반대하는 청년 귀족들의 대규모 집회가 벌어졌던 곳으로 표트르 대제의 동상 '청동의 기사'상이 위풍당당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앞발을 휙 들어올린 저 작품의 균형은 뒤에 있는 말꼬리에 있는 뱀이 지탱해 준단다.
조각가의 과학적 사고력에 놀라며 여제 예카테리나 동상을 다시 구경했다.
해군성은 길의 중심지로 시내 어느 곳에서나 보여 길잡이가 된다.
금빛첨탑이 아름답게 반짝인다. 부동항이 중요했던 이 나라는 해군력 강화로 1823년 개축되었단다.
10:10 궁전광장에 도착했다.(10시 30분에야 개관을 하므로)
벌써 많은 사람의 줄이 우리를 기다리게 했다. 우리 일행 중 손영옥 선생이 동료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하는 것을 보고 세상은 참 넓고도 좁구나 했다.
궁전광장에는 겨울궁전, 에르미타주 미술관, 알렉산드르 원기둥(전쟁승리 기념으로 만든 것인데 높이가 47.5m 직경이 4m 무게 600t), 개선아치(나폴레옹 전쟁 승리 기념 승리의 여신상이 조각됨),구 참모 본부 등이 있었다. 원기둥은 내년 300주년(상트 페테르부르그로 수도 옮김)을 기념하기 위해 수리 중이어서 자세히는 볼 수 없었다. 가는 곳곳마다 수리를 하는 건물들이 많아 아름다운 진수를 많아 놓쳤다. 30분 줄을 서서 기다린 후 에르미타주 미술관에 들어 갈 수 있었다 어떻게 알아 차렸는지 입구에 있던 악사들이 우리 차례가 오자 애국가와 아리랑을 연주한다. 마음이 찡했다.
내부 길이를 합하면 28km나 되고 한 작품에 10초씩 하루 8시간을 보아도 4∼5년을 보아야 할 정도로 소장품이 많다고 한다. 그러니 가이드 말대로 잘 따라 다니라는 이야기다. 자세히 보려면 끝도 없단다.
1. 프랑스 인상파 작품(모네 마네 세잔느 고흐(움직임의 효과))
2. 풀고갱-주민과 자연
3. 마티스-조각가이기도 함, 검은색의 마술사, 다초점
4. 피카소
5. 칸진스키-먹물 흐르는 효과
다른 방으로 가는 계단 가에 김흥수 화가의 '승무'가 있어 우리들의 자존심을 지켜 주었다.
* 러시아쪽
1. 금의 방(러시아 왕후의 방)
2. 알렉산드리아2세 여왕의 방 (,베치카의 그림(원석의 모자이크화 구경)
3. 예카테레나2세 초상화
4. 해군좌석 알랙산드르2세
5. 폭탄테러의자
6 러시아 양탄자(방음효과와 방열 효과)
7. 말라카이트방
8. 황금마차-즉위식 때 사용
* 렘부란트의 방 - 명암법주시
* 중세 르네상스 이전 작품 감상
1. 성서화
2. 네오날드 다빈치-마돈나
* 16C 작품
1. 천지창조의 방 - 천장 벽 그림으로 가득
2, 기사의 방 - 조각 - 대리석으로
3. 반다이크의 방등 코걸거리 작품감상 등 아주 많은 것을 보았으나 그림 상식이 없어 가이드 설명에 아주 만족했다. 가이드는 문학을 전공해서 러시아와 여러 나라의 문화에 대해 박식해 우리를 즐겁게 했다.
아주 많은 사람속에서 일행을 노치지 않으려 무던히도 따라 다녔다.
미로 같아 어디가 어딘지 모르겠다.
에르미타주 미술관에서 보고 생각나는 것은
1.황금마차 2개 2.베치카의 원석 모자이크 3.화려한 궁중생활 4.각 미술가의 톡특한 기법 설명 5.사회주의 시대에도 문화재를 소홀히 다루지 않고 귀중한 유산으로 생각한 점등이다.
에르미타주 국립 미술관
러시아 최대의 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은 역대 황제의 겨울궁전과 세 개의 건물이 통로로 연결돼 있다. 표트르 대제의 딸 엘리자베타 페트로브나 여제 때부터 모아 들이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곳에는 러시아, 유럽 고대 그리스, 로마, 터키, 인도, 중국 등의 작품들이 수없이 많아 5년이 걸려야 다 볼 수 있단다. 1,2,3층에는 고대 미술품과 근대회화 조각 등 다양한 미술품이 전시되어 있다.
13:20 현지 러시아식 점심식사 후 외곽으로 가는 길.
교통체증으로 다시 시내로 들어와 다른 길로 가고 있다.
로스트랄 등대 - 에르미타주 앞에 있는 다리를 하나 건너면 바실리예프스키 섬이다. 표트르 대제는 이곳을 페테르브르그의 중심지로 삼으려 했으나 네바강의 범람 때문에 계획을 실현하지 못했다고 한다. 섬에는 네바강을 지켜온 로스트랄 등대가 있는데 기둥에는 네바, 드네프르, 볼가, 볼호프 러시아 4대 강을 상징하는 조각이 새겨져 있다. 화강암 강둑도 멋이 있었다.
15:35 강변의 스핑크스를 보며 사진한장
15:50 피터풀요새(페트로파불로프스키요새)
피터풀요새는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발상지이다. 원래는 스웨덴군으로부터 러시아를 지키기 위해 건설한 요새이며 예수의 제자인 베드로와 바울을 기념하는 목조 교회가 있어 요새 이름이 페트로파불로프스크가 되었다고 한다. 요새의 각 출입문에는 러시아 황제를 상징하는 독수리등의 무늬 장식이 있어 눈길을 끌며 네바강이 바로 옆에 있어 강변을 산책했다. 강 건너로는 에르미타즈 미술관도 보이고 시내가 다 보여 경치가 아주 아름다웠다. 노천카페도 있다. 옛날 죄수가 사형장으로 끌려 갈 때 강가에 세워 시가지 구경을 시켰다고 전한다. 피터폴 성당도 있는데 높이가 121.8m이고 철탑 끝에 십자가를 든 천사상(십자가 높이 6.4m, 천사상 3.2m)이 있으나 수리중이어서 자세히 못 보았다.
16:20 순양함 오로라호 - 1900년대 건조 피터요새에서 네바 강을 따라 내려가면 네바강과 네프카강으로 나뉘는 지점에 오로라호가있다. 러시아 혁명의 시작을 알리는 대포를 발사했단다. 영구 정박해있는 오로라호의 내부는 현재 해군 박물관 분관이 되어있다. 그 건너편에는 해군 사관학교가 있다는데 들어가 보지는 않았다.
17:15 스몰리 수도원 기숙학교 - 19세기 초엽 에카테리나2세에 의해 세워졌다고 한다. 1860년대 여성교육이 시작되었는데 황실의 공주와 귀족의 딸들 교육기관이란다.
3년-푸른 옷 입고
3년-커피 색 옷을 입고
3년-하얀색드레스를 입고 - 규율이 엄했고 프랑스어 독일어 제2외국어
16세부터 사교계에 나갔다고 함. 자수와 육아, 춤을 주로 배웠다.
10월 혁명 당시 레닌이 이곳에 작전 본부를 설치해서 더욱 유명. 소비에트 정권수립 선언이 행해진 장소로 유명해진 스몰니, 레닌이 소비에트정권의 수도를 모스크바로 옮기기 이전까지 이곳은 구 소련의 심장부와 같은 곳이다.
현재는 러시아 어학 연수원으로 사용함.
타불리체스키 궁전과 함께 연푸른 색의 건물로 대칭을 이루어 지은 아주 넓은 건축물이다. 비록 창틀은 낡았지만 여자교육을 위해 이렇게 투자를 했었다는 것에 감사했다.
17:50 푸쉬킨 박물관 - 푸쉬킨과 그의 가족들이 여름을 보내던 별장이던 곳이다. 19세기 '러시아 시의 태양' '새로운 문학의 창시자'로 추앙 받는 푸쉬킨은 그의 많은 시 작품 속에 모스크바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다. 기념관 각 방에는 19세기 전반의 풍속이 재현되어 있으며 그의 가구, 그림, 서적 원고 등이 전시되어 있다고 하는데 작은 정원이 있는 평범한 건물이었다. 푸쉬킨의 부인은 매우 아름다웠다고 한다. 태어나기는 모스크바에서 그러나 작품활동은 이곳에서 주로 했다고 한다.
18:20 신라식당에서 비빔밥을 먹었다.
19:00 피의 구원사원 - 황제의 추모 사원으로 성 바실리 사원과 흡사했다. 황제 알렉산드르2세 박물관도 있고 마르스 광장, 에카테리나2세 동상에는 9명의 인물이 조각되어있었는데 정치에 꼭 필요한 인물이라고 한다.
위인들 앞에서 결혼식을 하고 있는 신랑과 신부를 만났다.
20:00 알렉산드리스키 극장에서 발레 지젤을 구경했다.
명성과는 거리가 먼 내부였다. 내가 앉기에도 불편한 좁은 의자에 아주 낡아 냄새도 났다. 모두들 돈이 아깝다고 했다. 80$이면 서울 세종문화회관에서 아주 좋은 의자에 좋은 작품을 구경할 수 있다고 했다. 발레의 고장에 와서 러시아 사람들의 공연을 본다는 것에 위안을 삼자고 들 했다.
22:00 호텔 도착
♥ 제4일 - 7월 24일(수요일) <상트 페테르부르크 - 헬싱키>
08:00 호텔 내 조반 - 종업원들이 물건 강매. 식사시간 내에 종업원들이 수시로 물건을 가지고 다니며 물건을 내밀었다. 목걸이 약품 등
09:00 상트 페테르부르그 호텔 출발
가이드의 말씀- 현재기온 17도, 낮 기온 24도란다. 땀흘리지 않고 시원하게 다닐 것 같다. 버스기사에게 준비해 간 부채를 선물했다.
여름궁전 가는 길 - 산다운 산이 없는 나라, 집단 주거 지역 10층 APT, 1동 2동 짜리 전철 - 아주 낡았고 길옆에서는 공사를 하고 있었고 차선이 하나도 없었다. 저기 저만치 핀란드만이 보인다.
여름궁전 들어가기 직전 성자와 베드로 사원을 들렸다. 예배를 드리러 주민들이 하나둘 오고 있었다. 좌회전 금지 구역에서 경찰관에게 잡혀 30분 가량 길에서 시간을 보냈다. 운전기사는 벌금을 물어야 한다. 둥근 양파모양의 지붕도 예쁘고 도자기타일로 무늬를 만들어 꾸민 사원이 참으로 아름다웠다.
여름궁전
성페테르부르그 시내에서 차로 약 1시간 거리에 위치한 페테스고프라는 100헥타에 이르는 광대한 황제의 땅에 1714년 피터대제의 명에 의해 만들어진 궁전과 부속 정원. 궁전은 윗공원과 아랫공원으로 나뉘어지고 대궁전과 작은 궁전정원, 250여 개의 분수, 아름다운 가로수, 길 등이 만들어져 있다. 핀란드 만과 접한 곳에 500m에 이르는 운하를 만들어서 수로로 네바강(겨울궁전)으로부터 해발 100m 바비곤 언덕의 여름궁전까지 닿을 수 있게 만들었다. 분수들과 조각상. 대궁전이 있다. 공원 내에는 260여 개의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의 영웅들의 조각상이 있다.
여름궁전으로 들어가니 우선 사람들이 많았고 분수가 여기저기 솟아오르고 정원들도 아름다운 꽃들로 꾸며져 참 아름다웠다. 신선이 따로 없었다. 황제의 길도 뽐내며 걸어보고 저 만치 핀란드 해의 물맛도 보고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여름궁전은 프랑스 바르세이유 궁전을 모델로 만들었단다. 그중 삼손 분수가 제일 멋있었다. 사자가 입을 딱 벌리고 있고 17m의 물기둥, 쌍둥이 분수, 금색 동상 등 이름 모를 동상과 분수에 한참 넋을 잃고 지나갔다. 분수를 가로 질러가기 등
길거리 악사들이 우리가 지나가니 그리운 금강산, 고향의 봄을 연주해 주어 정겨운 생각이 절로 들었고 박윤건님 댁은 사진 모델까지 해 주었다.
윗정원은 평지에 만들어져 있었고 분수와 이름 모를 나무로 꾸며져 있었다.
12:00 여름궁전 떠남
길거리에 다차(별장)가 자주 보였다. 제정 러시아 시절 국가 소유의 별장이라고 한다. 아주 작은 규모의 단독 주택이다. 일반 주민은 전부 공동주택에서 사는데 전화 화장실을 공동으로 사용한다.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노동 근무 교대 3교대이므로 가정이 많이 깨졌단다.
13:30 점심 - 영화 러브 오브 시베리아 설명 - 술잔 깨뜨리는 문화.
교통체증으로 돌아돌아 까잔성당에 도착했다.
14:50 까잔성당 - 상트 페테르부르그 번화가 네프스키대로에 있는데, 94개의 코린트식 기둥이 늘어서 있는 건물이다. 반원형의 화랑에 길게 늘어선 기둥들이 우리를 압도했다. 그러나 때가 너무 타서 아름답지는 않았다. 이 성당은 1801년 건축가 보로니한이 설계. 원래는 전쟁의 승리를 위해 세운 성당 안에 지금은 무신론 박물관으로 사용 중이란다. 내부는 십자가 모양이라는데 우리는 겉만 보았다. 까잔 지역의 장님을 눈을 뜨게 했다고 해서 축복의 성당이라고도 한단다.
핀란드기차역으로 갔다(이곳은 도착지의 이름을 쓴단다)
잘 알아두어야겠다.
16:50 상트 페테르부르그 출발하여 헬싱키 행 기차를 탔다.
의자가 반은 가는 방향으로, 반은 거꾸로 되어있었다. 약 6시간 걸린다고 했다. 국경까지 2시간 헬싱키와는 시차 1시간
바로 옆 기차를 보니 러시아 기차인데 나무 의자였다. 저런 의자에서 6시간을 앉아 가면 어쩔뻔했나 하는 생각이었다. 오전에 출발하면 저 기차를 타야한다고 가이드가 말했다. 아직도 나무 의자에 온통 녹 투성이 기차가 존재하다니. 재정의 상황을 이것 하나 가지고도 짐작할 수 있다. 같은 철로상의 길인데 러시아와 핀란드의 길이 달라 보였다.
차창 밖에는 끝없이 숲이 전개되고 있다. 자작나무, 소남, 가문비나무들이 빽빽이 들어선 숲, 그 나무들이 하나같이 하늘을 향해 곧게 죽죽 뻗은 숲이 부럽다. 언제든지 재목으로 쓸 수 있는 곧은 나무들로 꽉 차 있었다. 우리나라도 우거진 숲은 많다. 그러나 저렇게 곧은 나무로 차 있는 숲은 볼 수 없다. 구부러지고, 옹이가 져서 재목으로 쓸 수 없는 나무가 아니던가?
18:50 핀란드 국경에서 1시간 되돌림. 17:50으로 변경
러시아와 핀란드 국경에서 출입국 수속하느라 1시간 허비하였다. 여권마다 확인도장을 찍기 위해 여권을 모조리 거둬가고 개인별로 검문하면서 일일이 확인하고 여권을 나누어주었다.
국경을 넘어서자 포장된 도로가 나오고 아름다운 집들과 밀밭이 끝없이 펼쳐졌다. 큰 건물들도 깨끗이 단장된 모습이었다. 목장도 아주 예쁘게 정돈되고, 농작물도 보였다. 러시아는 숲도 정리가 안되어 길옆까지 나무가 너무 우거져 있었고 길도 아주 좁은 소로에 불과했으며 농장 같은 것이 숲에 가려 전혀 보이지 않았다. 국경을 경계로 두 나라의 모습이 이렇게 다른 것은 두 나라의 경제사정의 차이에서 온 것이 아닐까? 사회주의 100년이 이렇게 러시아 경제를 침체하게 했을 것이다. 그러나 러시아는 자원도 풍부하고 발전 가능성이 세계에서 가장 큰 나라라고 하니 앞으로 크게 발전할 것이다.
기차 안에서 도시락으로 저녁식사
21:40 헬싱키 중앙역 도착 - 라디선써스(Radisson) 호텔로 가는 도중 현지 가이더(김기철)는 핀란드와 헬싱키에 대하여 부지런히 설명을 한다. .2. 산타클로스의 나라 핀란드
♥ 제5일 - 7월 25일(목요일) <핀란드 헬싱키 - 스웨덴 스톡홀름>
핀란드 - 핀란드는 9세기에 이르러 3개의 부족국가(카렐리아, 타비스텐란드, 수오미)로 형성되었다. 이후 스웨덴은 이 부족국가를 침략하였으며 14세기에 핀란드는 스웨덴의 대공작령(Grand Duchy)이 되었다. 1809년 러시아에 할양된다. 러시아의 찌르 알렉산더 1세는 핀란드를 대공작령으로 유지하지만 총독을 파견하고 상당한 자치권을 부여한다. 알렉산더 3세의 '러시아화' 정책에 대한 전면적 저항은 제1차 세계대전까지 계속되었다. 1917년 러시아의 혁명정권에 대해 핀란드 의회는 독립을 선언하였고, 1919년에는 공화국임을 선포하였다. 1940년 핀란드의 일부는 소련의 침략으로 떨어지고, 1941년에는 다시 독일의 침략을 받아 히틀러 군대에게 보급물가를 지원할 입장에 이르렀다. 2차 대전 중 독일과의 상호 협조에 대한 대가로 소련에 대한 막대한 전후 보상을 감내해야 했으며 남부 카렐리아를 잃기도 했다.
면적 33만 7천 ㎢, 6만여 개의 호수와 숲이 울창한 나라. 북위 60∼70°라는 고위도임에도 멕시코만류 때문에 기후는 온화하고 기온 변화도 적으며 습도가 낮다. 헬싱키의 7월 평균 기온은 18。C로 지내기 알맞으나 궂은 날을 위해 레인코트가 필요하다.
5월초에서 8월 하순에 이르도록 밤에도 태양이 지지 않는 白夜가 계속된다. 白夜는 지역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는데, 한여름에는 남부와 북부 모두 해가 지지 않은데, 북부는 약 70일이나 계속된다. 그러나 한겨울에는 일조시간이 아주 짧아져서 남부에서는 5∼6시간만 낮이고 북부는 약 50일간 해가 보이지 않는다.
헬싱키 Helsinki - 도시의 청순한 이미지로 '발틱의 아가씨', '북쪽의 하얀 도시'라고 불리는 헬싱키는 핀란드 남부에 위치한 항구도시이며, 유럽의 수도 중 최북단에 있다. 헬싱키는 중요하고 아름다운 항구도시이다. 건축과 조각 등 볼거리가 많으며, 면적이 그리 넓지 않기 때문에 걸어서 관광하는 편이 유리하다.
06:00 호텔 앞 발트해변 산책 - 시차로 잠이 안 와도 러시아에서는 겁이 나 호텔 밖을 못나갔다. 가이드가 괜히 일내지 말고 그냥 호텔 안에 있으라고 충고를 했기 때문이다. 러시아에서는 호텔에서 신고하기 위해 여권을 모조리 거둬간다. 말썽이 나면 일행모두가 피해를 입으니 행동을 자제하라고 당부 받았다. 그러나 오늘 아침부터는 자유롭다. 저 아름다운 발트 해변을 내 마음대로 다닌다.
오리 떼 무리 지어 놀고
갈대 숲 바람에 일렁이는 아침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 항상 변하는 여자의 마음----'
흥얼거리는 原의 노래를 들으며
한가로이 앉아있는 벤치의 여인!!!!
09:00 호텔 출발 - 호수에 쌓인 나라, 싼타크로스의 나라, 쟈일리틀 껌(씰리톨 껌)의 나라, 숲의 나라(소나무 가문비나무 자작나무)
인구 520만 명 헬싱키에 250만 명이 거주한다. 순록과 호수가 19만개라나 16%대학에 진학한다. 교민의 수 85명 학생이 50명.
09:25 만네르헤이민거리에 도착
중앙 역에서 북서쪽으로 나 있는 대로이다. 만네르헤이민은 핀란드 독립의 영웅으로 중앙 우체국 옆에 그의 기마 상이 있다. 거리 북쪽에는 국회 의사당이 있으며, 북쪽으로 500m정도 올라가면 국립박물관과 시립박물관이 마주보고 서있다. 거리에는 오페라극장(흰색건물)과 만네르헤이민 동상이 있다.
원로원광장 계단 위에는 루터교 총 본산인 대성당(흰색 벽에 녹색지붕)이 있다. - 헬싱키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 교회로 핀란드 루터파의 총 본산이다. 1830년에 착공해 1852년에 완공되었으며 밝은 녹색 돔과 하얀 주량이 조화를 이루어 바다에서 보았을 때 더욱 아름답다. 파이프 오르간 연주를 듣는 행운도 있었다. 약 40만개의 화강암이 깔린 성당 앞의 원로원 광장에는 러시아 황제 알랙산드르2세의 상이 있다. 헬싱키에 러시아 동상이 있는 것도 이상했고 4개의 통치이념을 나타낸 모형도 좋았다. - 이유 국민들 독립에 애썼고 우호적으로 대했다고 함. 그래서 동상을 세워줌.
길가의 까만 지붕-건물 230년 된 최초의 건물임.
09:55 최초의 우체국, 국립은행, 황제연회장, 헬싱키병원 등을 겉에서 구경했다.
러시아 정교회(우스펜스키 사원) - 10세기 러시아 건축가 고르노스타예프가 비잔틴 슬라브 양식으로 지었는데 그 엄숙한 분위기가 우리를 압도했다. 붉은 벽돌의 천장에는 천연물감으로 그린 그리스도와 12사도 그림이 있다. - 반구형의 꼭대기와 황금십자가, 빨간 벽돌담이 어우러진 아름다운건물,
어느 상점에 들려 자이리틀 껌을 사고 볼펜을 선물로 받았다.
10:45 중앙역 - 신도시의 중심. 1904년 공모해서 1914년 완성한 건물로 49m의 시계탑과 중세의 분위기를 연출하는 갈색 벽, 높은 천장의 레스토랑 등이 있다고 하나 내부는 보지 못했다. 시내 어디를 가나 시계탑이 보였다. 겉에 있는 4여자부조 조각물이 인상적임.
10:50 우체국 박물관에서 전시물을 관람하고
11:05 국립박물관, 국회의사당, 핀린디아 회관 - 구주안보회의 열리는 곳을 둘러봄.
이곳 인사말 한가지 아침 - 휴바호멘 점심 - 휴바 바이바이
핀란드의 국민성은 말이 적고 조용하며, 내적 사고에 젖는 민족 - 많은 지배받던 민족 - 눈치보던 민족
공부하는데 학비 안내나 유치원에서 돈이 더 들고, 실업율이 20%정도 되어 직장 갖고 살아가기 힘들다. 복지국가이나 국가가 빗을 빌려다 복지비 지출하는 형편이다. 채무국이다.
4대의 하얀 배, 노란 배는 얼음 깨는 배(모두다 어는 바다의 얼음을 깬다.)
공업(굴삭기, 나무 자르는 기계. 세빙선 등), 농업, 서비스업 등이 발전.
11:40 카우파광장 - 항구 앞에 있는 광장으로 이른 아침 발트해에서 잡은 신선한 어패류, 야채 등을 파는 시장이다. 광장 앞에는 대통령관저가, 광장서쪽에는 하비스 야만다 분수 상이 있다.
자유로이 시장을 둘러보았는데 천막을 친 야외 시장이었다. 수공예품들인 민속품들을 많이 팔고 있었다. 시청과 대법원 대통령관저, 즉 큰 건물 앞에 야외 시장이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12:20 에스플리나디 공원(도시중심) - 시민공원. 녹음이 우거진 공원과 산책로로 거리 곳곳에는 시인과 작가들의 동상이 서있고 무대시설 등이 있었다. 점심시간이어 여러 사람들이 햄버거를 먹으며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아름다운 꽃밭이 나를 사로잡았다.
13:00 생선 정식
13:50 중앙역 주변 - 알렉시키피 수필작가 동상, 근대 미술관, 유리사각형 건물 등을 둘러봄. 암석교회를 찾아갔으나 문이 잠겨 그냥 돌아서 세우라사리 야외박물관으로 향함.
14:20 세우라사리 야외박물관 - 고대 사우나, 17세기교회, 중세의 풍차, 농가 만가 등을 모아 놓은 공원. 박물관 서쪽 세우라사리섬의 약 1/3을 차지하고 있으며 숲 속에 조성되어 있어 공원역할까지 겸하고 있다. 6월 하지에는 불꽃놀이와 포크댄스 등 다양한 축제가 열린다.
맨 처음의 건물은 1735년 곡식창고로 쓰이던 것이며 물레방아, 마을도서관등을 둘러보았다.
호숫가나 바닷가에 작은 오두막은 사우나시설이라고. 200만개가 넘는다고 하는데 작은 돌들을 불에 달구어 통속의 물을 조금씩 부어가며 온도를 높여 하는 핀란드식 사우나가 유명하다. 뜨거워진 몸을 식히기 위해 찬물에 들어가는 식으로 사우나를 즐긴다. 추운 지방에서 열을 내기 위한 방법.
14:50 시베리우스 공원 - 핀란드의 작곡가 시벨리우스를 기념하는 공원으로 1967년 여자 건축가 에일라 할투넨(Eila hiltunen)의 작품인 24t의 강철관으로 된 파이프 오르간 모양의 시밸리우스 기념비(숲과 파이프를 나타냄)와 시벨리우스 두상이 있다. 평생을 조국 핀란드에 대한 사랑이 가득한 곡을 작곡한 시벨리우스의 대표작으로는 <핀란디아>가 있다. 처음에는 바이올리니스트였으나 수줍은 성격으로 대중 앞에 서기를 꺼려 작곡가가 되었단다.
15:20 암석교회 - 원명은 템펠리아우키오(Temppeliaukion Kirkko). 1969년 수오마라이넨 형제의 설계로 국립박물관 서쪽 옆의 바위산을 파고 지은 교회. 핀란드의 탁월한 건축 디자인을 잘 나타내고 있는 이 교회는 특히 자연의 음향 효과를 충분히 계산에 넣음으로서 음악회장으로도 자주 활용된다. 3100개의 파이프를 가진 파이프 오르간 연주도 들을 수 있다. 지붕은 우주 은하수를 나타내고 옆으로는 바위가 그대로 노출되고 빗물은 옆으로 흐르게 도랑을 파놓고. 자연을 이렇게 잘 활용하다니!!! 참 감동적이었다.
15:40 삐칼교회 적벽돌의 뾰족탑이 인상적이다.
16:00 실자라인 유람선을 타러 실자라인 터미널로 이동
17:15 실자라인 출발 (스웨덴 스톡홀름으로 출발) 시차 1시간
실자라인(Silia Line)
총 길이 203m 너비31.5m, 58000t급 호화 유람선으로 전체는 12층으로 구성되었다. 최대 탑승객은 2853명이며 985개의 선실에 침대가 2980개가 있다. 또한 차량은 자동차400대 또는 버스 60대를 실을 수 있는 규모이다. 실자라인은 세레나데와 심포니 2대가 운행되고 있으며 유람선의 구조는 같다. 승선은 7층으로 하며 객실은 8층부터 11층에 걸쳐 배치되어 있다. 쇼핑과 식당은 7층에, 레스토랑은 6,7층에 걸쳐 6군데가 있다. 7∼8층에 걸쳐있는 Atlantis Palace는 나이트 클럽으로 입장료는 무료이다. 유람선 내에서 구입하는 모든 물품은 면세이다. 오후 6시에 출발하여 다음날 아침 8시30분에 도착하며 실소요 시간은 이보다 짧으나 아침 도착을 위해 한밤에 바다 한가운데에 정박한다.
실자라인에 타보니 정말 근사했다. 4평 남직한 방을 효율적으로 잘 꾸며 놓았다. 붙박이침대1개 수납식 침대 2개. 머리맡의 전등 구조, 조그만 화장실
밖을 보니 등대며 축대를 쌓은 성들. 그 위에서 손짓하는 관광객들, 섬과 섬의 예쁜 별장들이 그림같이 지나가고 낙조를 보며 행복해 하는 나!나!나!!!!!
우두산의 낙조보다 못하다는 原!!! 이런 배에서 잘 수 있도록 해준 가족들에게 감사한다.
12층 갑판 위에서 가지고 간 구엽초 술, 김 ,과자를 나누어 먹으며 모두들 김이 이렇게 맛있나? 하며 즐거워하는 모습. 많지 않아 다 같이 먹지 못하는 아쉬움!
시차 1시간. 또 1시간 돌려놓으니 9시. 식사 후 다시 9시. 이렇게 계속 1시간씩 늦춰 놓으면 나이도 안 먹고 좋겠다고 모두들 하! 하! 하!
저녁식사는 뷔폐로 아주 근사했다. 다양한 요리에 색다른 음식이 많았다. 생선을 절인 음식들도 많았고 연한 쇠고기도 맛있었다.
10시에 객실에 들어와 잠자리에 들어도 해는 아직 안 넘었다. 잠자기가 아까운 풍경이 계속 이어진다.
03:00 새벽 눈을 떠보니 배에 가벼운 진동이 느껴진다. 내다보니 어느 항구에서 배가 다시 출발하나보다. 새벽 3시인데도 환하고 밤11시에도 환하고 백야 현상이 실감난다.
3. 최고의 사회복지국가 스웨덴
♥ 제6일 - 7월 26일(금요일) <스웨덴 스톡홀름>
07:00 조반 식사하고 갑판위로 올라가니 그림같이 아름다운 풍경이 줄을 잇는다. 섬과 섬의 빨간 집(지붕들이 특히 벽돌 색이 많았다),요트와 요트 타는 길이 집집마다 제각각이다. 별장일까? 거주하는 일반 주택일까? 의문을 가지며 끝없이 이어지는 그림을 본다.(나중에 가이드의 설병으로 대부분이 별장이라는 것을 알았다.)
행복한 아침. 아! 아! 소리가 저절로 나온다. 참 아름답다. 행복한 나라이구나!!! 가랑비가 오다 그친 하늘, 낮은 회색 구름이 펼쳐진다.
09:30 스톡홀름에 도착하다
10:05 가이드 만나 짐을 찾고, 실자라인 터미널 출발
스웨덴 - 복지국가의 전범이 되는 스웨덴은 AD 1세기 타키투스에 의해 처음으로 역사의 전면에 등장한다. 바이킹이 활약하던 시절 스웨덴 인은 방랑인으로 알려졌는데, 이들은 9∼10세기 러시아의 루릭 왕조를 세우고 발틱 연안까지 진출해 갔다. 중세 내내 스웨덴 인은 노르웨이와 덴마크로 인해 독자적인 국가를 구축하지 못하였다. 이들 세 나라의 결합체인 칼마 동맹의 맹주인 덴마크 인은 1523년에 축출되고, 17세기에 이르러 나타난 구스타푸스 2세(Gustavus Adolphus)에 의해 스웨덴은 유럽의 새로운 실력자로 부상한다. 1809년 군주정부는 입헌정부로 바뀌었으며, 두 차례의 세계대전에 관련되지 않아 유럽 전체가 겪은 몸살을 피해갈 수 있었다. 선진적인 교육제도와 사회보장제도를 자랑하며 테니스와 요트 경기의 수준은 으뜸이다.
스웨덴은 남북으로 1,574km나 되는 긴 나라다. 북위 55°20 ∼ 69°04에 자리하며, 국토의 1/7이 북극권이란다. 국토의 5%가 삼림이며, 호수가 96,000개에 달한다. 경작지는 약 9% 정도로 남쪽 스코네 지방에 편중되어 있다. 노르웨이와의 국경 근처에 산맥이 있을 뿐 대체로 평탄하고 잔잔한 풍경이다.
북쪽 북극권의 겨울은 추위가 극심하지만 그 외의 지방에는 멕시코 만류의 영향으로 대체로 온화한 편이다. 북부의 라플란드에서는 여름에 백야가 2개월이나 계속된다고 한다.
스톡홀름 Stockholm - 스톡홀름(Stockholm)은 섬들로 이루어진 물의 도시이다. 멜라렌(L. Malaren) 호수의 물이 발트해로 들어가는 지점에 작은 섬 Gamla Stan(구시가)이 있는데, 바로 이곳이 스톡홀름의 발상지이다. 13C 이래 오랜 역사를 간직하고 있는 이 도시는 고층 빌딩이 줄지어 서 있는 현대적인 분위기의 관광지이다. 수많은 섬들은 다리로 연결되어 있어 별 불편을 느끼지 못한다.
10:17 바사흐 박물관
스칸센 서쪽에 위치한 스웨덴에서 가장 오래된 전함 바사흐를 원형 그대로 전시하고 있는 박물관이다. 바사흐는 스웨덴 최강의 정력을 자랑했던 구스타프 2세 시대에 건조되어 1828년 8월10일 처녀 항해를 위해 스톡홀름항구에 들어서는 순간 돌픙으로 침몰한 왕실 전함이다. 그 후 바다 속에서 잠자고 있다가 1956년 해양고고학자 안데스 프란체에 의해 발견돼 333년만인 1961년 인양되었다. 총 길이 62m, 최대폭 11.7m, 높이 50m, 배수량 1300t으로 당시로서는 꽤 큰 전함에 속했다. 관내에는 1/10모형이 전시되어 있으며 인양 장면 등을 찍은 기록 영화도 상영된다.
배의 보존을 위해 박물관 안이 어두웠다. 대포가 64문이고 17년 동안 조각을 모으고 17년 동안 화학처리를 하고 했단다. 진흙 속에 파 묻혀 있어 부패가 덜 되었단다. 뒤에는 화려한 조각들(그리스 성경의 기사 수호상, 사자와 스웨덴 왕가 문양) 등이 눈길을 끌었다.
박물관은 7층 건물이었는데 6층에서는 47m의 돛대와 돛을 볼 수 있었다. 돛은 달기 직전이어 상자속에 그냥 보존되어 있었다고함. 그것을 펼쳐 전시해 놓음. 돛대는 47m나 되기 때문에 3층으로 만들어져 있었다고 함.
5층에서는 배안의 사람과 취사장 유물 전시가 되어 있었다. 바이킹의 몸이 왜소했으며 목각인형 450개를 만들어 표현함. 특히 신발로 쥐를 잡는 선원의 모습이 재미있다. 우리 거북선 제조가 36년 더 빠르다고 한다. 그 당시 유리그릇도 썼고 무기 전시실에는 대포도 있었다. 대포는 600m나 나간단다. 대포종류도 다양했다.
가이드 말 - 45% 여자 국회의원. 장관20명중 11명여자. 여자 드세고 남자에게 절대 지지 않는다.
11:20 유물박물관(바사흐 박물관 바로 앞의 건물)
스웨덴식 건물로 유명. 1888완공 탑 - 바이킹 교회탑 검은색의 탑이었다.
<구시가지>
*스톡홀름왕궁 - 사용하는 왕궁중 세계에서 가장 큼. 608개의 방. 1700년대 고딕양식이고 가운데 화려한 문양이 있고 짓다만 옆에 다시 바로크 양식으로 더 지었다. 홀름 - 작은 섬이라는 뜻
*동상 - 린네 - 동식물 구분한 학자 테신 - 이 왕궁 설계자
*감사탑 - 구스타프3세 왕이 국민에게 감사하는 탑 66m, 6t, 4개
*대교회 - 기쁜 일에 쓰는 교회. 길가의 인도불럭이 돌인데 반들반들 달았다. (오물을 그대로 버리던 길)
딱순이(딱지 떼는 여자 경찰)를 만났는데 스웨덴 남자가 싫어하는 1순위 여자란다.
11:50 대광장 - 세르겔 광장이라고 하는데 스톡홀름의 중앙광장으로 현대적인 빌딩들이 들어서 있다. 이 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건물은 길이 160m의 유리로 된 문화 회관이다. 내부에는 시립극장 갤러리, 도서관, 놀이시설, 카페테리아 등이 들어서 있다.
대광장은 스웨덴 역사상 치욕의 장소란다.
스톡홀름의 피비다 사건이 일어난 곳으로 귀족 82명이 참수되어 피가 우물로 스며들었다는 곳. 이후 뚜껑을 닫아놓았다. 노벨문학상 선정하는곳도 이 광장에 있다. 수상 대상 작품은 스웨덴언어로 번역해야 하고 번역료도 비싸단다.
구시가와 셉스홀멘 - 시내 남쪽 작은 섬인 감라스텐은 스톡홀름의 구 시가로 왕궁과 대성당 등 13-19세기에 걸쳐 세워진 건물들이 빽빽하게 들어서 있는 역사적인 옛날 골목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감라스탄- 닳고닳은 계단, 벗겨진 외벽 등 과거의 분위기를 물씬 풍기는 거리로, 한 불럭은 상가로도 전혀 사용 못하게 보존되었고, 한 불럭은 레스토랑, 카페, 부티크 등으로 개조해 사용되고 있었다.
12:00 근처 일식집에서 일식 도시락 점심을 먹는데 스프를 더 먹으려면 돈을 더 내야한단다. 좁은 골목길에는 프라스틱 모래함이 두껑이 닫쳐 비치되어 있었다.
12:45 대법원과 귀족의 집들을 관람 - 현 회사 관공서사용. 녹색지붕아래에서는 노벨 만찬회가 열린다 귀족교회-왕족 장례식, 시청사 - 중앙 역 서쪽 쿵스홀멘 섬 남쪽에 있는 스톡홀름의 상징적인 건물. 20세기 북유럽 최고의 건축미를 자랑하는 시청 건물은 1923년 지었으며 106m높이의 탑에 오르면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온단다. 내부의 푸른 방에서는 매년12월 10일경 노벨상수상 축하 만찬회가 열리는 곳으로 유명하다. 1900만장의 금박 모자이크로 장식된 황금의 방은 내부 견학의 하이라이트로 노벨상 수상 파티의 무도회가 열리는 곳이라는데 시 청사 내부는 구경 못했고 먼발치서 만 보았다.
13:20 전망대 - 시가지가 모두 보인다.
리다름홀름교회-귀족의 성관 건너편 리다르흘름 섬에 있는 높은 첨탑의 교회로 역대 국왕 여왕들이 잠들어 있다.
이 건물 앞으로 호수가 있는데 시가지가 모두 보이고 경치가 아름다웠다.
단체 사진도 찍었다. 저만치 시청 탑이 보이고 도시의 아름다움이 한눈에 들어 왔다. 고스타브스 장군 동상도 있다.
현 교민의 수 약1000명 정도 한인회에 등록 200명정도. 대개 스웨덴인과 결혼. 입양아 수 8500명 이 도시에만 2500명정도 산다. 1970년대 년 100명 정도 입양되었다고 한다.
13:35 스톡홀름 기차역으로 갔더니 관광객과 많은 사람들로 복잡했고 기차가 연착되었다.
14:40 오슬로로 향한 기차는 타자마자 즉시 출발
시차는 없다. 중간중간 큰 역들이 지나가고 사람들이 많이 내리고타고 했다.
19:25 kongsvinger역을 지나고(큰도시임)
20:25 lillestrom역을 지나다. 6시간이 걸리는 지루한 기차이지만 아름다운 전원 풍경과 호수 목장들이 지루함을 달래 주었다. 간간이 서는 역들도 규모가 컸고 사람들도 붐볐다.
차안의 어린 여학생이 비닐봉지의 무엇을 꺼내 종이조각에다 놓고 돌돌 말길래 무엇인가 하고 궁굼했었는데 그것이 담배다. 다음 기차역에서 내려 피고 있었다.
이곳 사람들은 이렇게 봉지에 들은 담배를 직접 말아서 피운단다.
큰 도심으로 갈수록 주택의 규모도 커지고 지붕의 색깔도 검정이 많아졌다, 이곳도 뾰족지붕에 빨간 집이 많았다. 날씨도 점점 시원해지고 있었다.
20:40 오슬로 도착
여자 가이드를 만났는데 한국말이 서툴다. 12살에 건너와 30살이 되었다는데 이곳은 한국 유학생이 적어 가이드 할 사람이 없단다. 호텔까지만 안내했다. 내일은 또 다른 사람이 나온단다.
시가지를 지나 산동네로 올라가는데 이곳의 집 값이 오슬로에서 제일 비싸단다. 산동네인데 말이다. 우선 경관을 중요시하는 서구 사람들의 인식이 우리와 다르다.
21:20 홀멘콜렌(Holmenkollen)호텔에 도착
야!!! 산 속의 빨간 중국풍의 아기자기한 호텔이 우리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저 산 아래로 시가지가 한눈에 들어오고 숲도 멋있다. 그러나 우리들 방은 호텔 뒤쪽 산등성이만 보이는 곳이어서 모두들 실망이 대단했다.
여장을 풀고 호텔앞 마당으로 나오니 와!!! 저렇게 아름다울 수가. 오슬로가 한눈에 다 들어오는데 숲 속에 아름다운 인형 집들을 담뿍담뿍 들어다 놓은 것 같았다. 완전히 숲의 도시였다.
홀멘콜렌 동계 올림픽 스키 점프장
하도 경치가 좋아 둘러보던 중 스키 점프장을 발견했다.
1952년 동계 올림픽 때 스키 점프가 열렸던 곳으로 1982년 이후 매년 3월의 일요일마다 열리는 점프대회가 유명하다. 56m높이의 점프장 정상까지 엘리베이터가 운행되며 정상에서 바라보는 오슬로 시내와 피요르드가 일품이란다. 점프장이 있는 건물 안에는 스키 박물관이 있는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되었다고 하는 2500년 전의 스키와 난센 아문젠 등이 극지방 탐험때 사용했던 장비들이 전시되어 있다. 지금은 점프해서 떨어지는 둥근 곳에 물이 그득해서 풀장으로 쓰고 행사장은 야외 음악당으로 활용한단다.
2010년 평창 동계올림픽 유치 특별위원회에 근무하는 우리 은경이를 위해 여러 각도에서 사진을 찍었다. 우리나라에 유치가 되었으면 좋겠다. 월드컵도 성공적인데 동계올림픽까지 유치하면 국익이 대단 할거다. 밤낮 특근에 시달리는 우리 은경이 장하다. 유치성공의 낭보가 어서 들려야 할텐데... 공간활용과 시기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게 활용하는 점이 좋았다.
호텔 앞의 꽃밭도 아름다웠다. 반달형의 탐나는 보라 꽃의 씨를 받고 싶었으나 아직 영글지 않아 못 받았다.
4. 피오르드와 섬의 나라 노르웨이
♥ 제7일 - 7월 27일(토요일) <오슬로-푀르데>
09:00 홀멘콜렌호텔출발
스웨덴에서 태어나 스웨덴에 사는 김철호군(대학원생)이 가이드로 나왔다.
가이드 할 사람이 없단다. 스웨덴에서 노르웨이까지 원정을 왔다.
노르웨이 - 노르웨이의 역사는 바이킹이 유럽의 해안지역을 유린하기 시작하던 8세기경에서 비롯된다. 14세기까지는 온통 내분으로 점철된 난장판이었으며, 칼마 동맹(Kalmar Union, 1397)으로 덴마크에 합병된다. 1814년에는 다시 스웨덴에 침략되었다가 1905년 하콘(Haakon) 7세에 와서 입헌군주정부로서 독립국이 된다. 또 1940 ∼ 1945년 독일에 의해 전국이 유린당하기도 했다.
노르웨이는 지리적 위치로 아주 특색 있는 볼거리를 제공한다. 오슬로피오르드와 송네피오르드를 중심으로 하는 협만은 일품이며, 호수는 깊고 강줄기는 매우 빠른 속도로 흐른다. 또한 북구 최대의 산 갈드회피겐(Galdhopiggen 2,468m)과 극지를 제외하고는 유럽에서 가장 넓은 얼음평원(Ice Field, 평원처럼 보이는 넓은 浮氷)인 요스테달스브린(Jostedalsbreen)이 있는 나라이다.
노르웨이는 국토의 30%가 북극권에 속하고, 80%가 산지라고 한다. 들쭉날쭉한 피오르드가 많아 해안선이 길고, 섬이 15만 개나 된단다(사람이 사는 섬은 2,000개 뿐). 빙하가 1,700여 군데나 퍼져 국토의 1.4%를 뒤덮고 있다고 한다.
높은 위도치고는 멕시코 만류의 영향으로 겨울에도 상상보다 따뜻하단다. 남부의 오슬로는 7월의 평균기온이 17.8。C, 1월이 -3.9。C 정도란다. 물론 북부의 북극권에는 겨울에는 -40。C까지 내려가는 혹한이 있단다.
오슬로 Oslo - 노르웨이의 수도인 오슬로는 피오르드 깊숙이 들어앉아 있는 조용하고 아름다운 도시다. 1050년에 바이킹 최후의 왕 하랄드 호르로데가 건설한 이후 발전을 거듭하였으며, 지금은 북유럽에서 가장 넓은 면적을 가진 도시가 되었다. 인구 52만 명에 도시 전체가 박물관과 같은 역사의 도시이며, 화가 뭉크와 희곡작가 입센을 낳은 문화의 도시이기도 하단다.
노르웨이의 피오르드 - 피오르드 하면 노르웨이를 연상할 만큼 이 나라의 국토는 굴곡이 심한 빙하지형을 형성하고 있다. 가장 긴 피오르드는 베르겐 부근에 있는 송네피오르드 Sognefjord이다. 길이가 205km에 달하고, 깊이는 1,300m나 된다. 특히 아름다운 장관을 연출하는 곳은 하르당게르 피오르드 Hardangerfjord이란다. 하얀 빙하와 쪽빛 바다의 환상적인 어우러짐이 눈부시다고 한다. 스타방게르 부근에 있는 리세피오르드 Lysefjord에는 560m나 되는 바위산이 돌출되어 있다고 한다.
가이드 말 - 술은 식당에서만 잡수시고 외부로 나가면 안 된다.
간단한 인사말 감사합니다-닦, 토온-기차, 트롤-괴물 동화에 나오는 전설에 나오는 조각 그림 등, 바이킹- 배를타는 사람이라는뜻 -나는 해적으로 생각했었다. 노르웨이- 북으로 가는 길이라는 뜻.
이곳 산업
①유전 ②대구 새우 잡이(10%) ③목축업(70%)
여름에 해외여행을 거의 다 떠난다 1년 4주휴가
09:38 트료 피오르드-3번째 큰 피오르드
조개가 많이 나고 엘크 특산지
낚시를 하려면 허가증을 사야하고 기준이 엄격하단다.
피오르드 지나며 아름다운 경치가 이어진다.
제한속도 : 버스 - 80, 기타- 100
09:47 오른쪽 스타이숄 호수 가이드의 발음이 스웨덴 화되어 알아들을 수가 없다.
09:54 사과밭 - 제일 맛있는 나라. 가이드가 만들어준 지도 1번 지점 휜네휫스(honefoss)지남. 물이 흐리다 - 녹물
10:29 왼쪽 크레덴 호수 - 캠핑차와 모텔, 호텔, 주유소, 산, 스키장 1952년 동계올림픽
10:36 노레피얄리산 - 지붕 위에 풀이 난 집들이 간혹 있다. 지붕기술이 부족하던 시대의 건물로 딱딱하게 하기 위함이란다.
기차길이 오른쪽에 나란히 가고 있다. 베르겐으로 가는 기차길
11:21 싼토스토움 - 아주 큰 동네이다. 캠핑장과 트롤들이 지나간다.
야생화 리뵈 비엘레(Reve bjelle)가 길가에서 흔들흔들. 아주 많고 휴게소에도 안내판이 있다. 분홍색의 키 큰 꽃이다. 심장약으로 쓰인단다.
11:42 호수에 비친 산의 풍경이 참 아름답다. 호수 주변으로는 보트들이 즐비하다. 노르웨이는 산과 호수가 많다. 산마다 빽빽이 들어찬 나무들이 탐난다. 곧게 뻗은 소나무, 가문비나무, 자작나무들이 가득하다.
11:44 메스비니아 - 500명 거주. 호수, 산, 들꽃, 빨간 집들, 지붕 위에 풀 난 지붕
11:47 캠핑장. 알퍼파를(사료) 채취하는 차를 봄 - 푸른 풀을 그대로 둘둘말고 있었다. 우리나라 같으면 다 썩을텐데 이곳들은 건조하기 때문에 그냥 마르나 보다. 스페인에서 노르웨이까지 11시간 걸린단다.
11:58 가이드가 만들어준 지도 2번 지점 골(Gol) 경유
12:12 높은 산위의 집들, 쭉쭉벋은 소나무, 가문비나무
12:19 노랑 분홍 흰색의 들꽃이 계속 이어진다. 공기는 더욱 시원해지고. 고산지대로 접어들었다.
12:35 점심은 현지 식(닭 가슴살과 밥) - Scan hotel 식당
13:30 식당출발. 번지점프를 사다리 차로 한다. 아름다운 동네다. 골(Gol)에서 방스네스까지 4∼5시간소요
13:42 빨간교회옆 공동묘지. 그리고 높은 산에 눈이 쌓여있다. 저 멀리 노르웨이회사 스탑도 Oil회사, 길 공사장면을 처음 본다.
14:00 스키장이 나타나고 강에 물이 없다. 땜에서 전기생산으로. 물빛이 어둡다. 산꼭대기의 눈과 호수들. 쭉쭉 뻗었던 나무숲들은 사라지고 고산지역이어 나무들이 키가 작아지고 떨기나무들이다. 빛깔도 희뿌옇다.
14:10 오른쪽으로 별장들이 나타난다. 집집마다 노르웨이 깃발이 펄럭인다. 키 큰 나무는 전혀 없고 바위산과 깎아지른 듯한 산이 줄을 잇는다. 실 폭포가 줄을 잇고 왼쪽으로는 아름다운 호수가 이어 지나간다.
14:22 굴1. 3㎞ 이곳 사람들 - 70%이혼. 30세 이상돼야 결혼. 식구 복잡한 관계 돌 댐이 나타나고 암산이 전부다. 계곡에서는 낚시질을 하고
14:38 여기서 오슬로까지 전기가 간다.
14:42 굴2.( 0.3 ㎞) 실 폭포
14:43 굴3. 0.9㎞ 날씨는 점점 흐려지고 맑은 호수 위에서는 고기떼 뛰어 놀고 그림같이 아름다운 동네. 지붕 위의 풀 그득그득, 나무장작들 그득그득.
굴4, 5가 연달아 지나간다. 버스 2대가 겨우 지나갈 정도로 좁은 굴
14:57 굴6. 내리막길이며 절벽 계곡 물. 폭포에서 내려온 물. 해발 1000m정도
15:11 굴7. 내려가는 길
15:12 굴8. 산을 뱅뱅 돈다. 다시 나무들 키 커지고 있다.
15:13 굴9. 침엽수림 아직 없고 굴10. 굴 안이 좁아서 신호등이 있고
15:25 굴11. 호숫가 따라가는 아주 좁은 길. 산을 뱅뱅 터널로 돌아 내려와 호수를 끼고 돌아가는 길.
아!!!이렇게 아름답고 예쁠 수가 엉겅퀴와 색깔 있는 꽃들이 나타나기 시작함. 쉼터-산꼭대기 쉼터( Laerddl)호숫가의 아름다운 동네이다.사진 한 장
15:31 굴12. 실 폭포와 하얀 눈
15:35 굴13. 플롬 항구가 보이고 가문비나무 나타남
15:43 굴14. 굉장히 길다. 굴15, 굴16, 굴17 스키점프대 지나가고 방스네스 59㎞ 남았다는 이정표 지나가고
16:33 완전히 눈 산이네. 북으로 북으로 하루 종일 올라간다. 움켜쥐면 만져지는 눈. 군데군데 얼음 녹은 물. 가이드는 내려서 수영을 하란다. 겨울이면 4m 이상의 눈이 길을 막아 교통두절. 모두가 산 산 산 호수 호수 호수. 목축과 낚시로 산다.
16:46 굴18
16:50 양들과의 대화
길가의 양들이 버스가 정차하자마자 우루루 몰려온다. 깜짝 놀랐다. 문으로 들어오려고 까지 한다. 먹을 것 달라고 졸졸 따라 다니고 과자를 주니 막 따라와 받아먹는다. 뉴질랜드 남섬의 퀸즈타운에서는 양들과 사진을 찍고 싶어 옆으로 가니 막 도망을 쳤는데…
관광차원에서 먹이 사냥에 걸려든 양들이구나.
한참을 재미있게 놀고 버스에 들어와 보니 똥냄새! 아차 양들 먹이 주다 실례를 했구나.
밖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느라 차 속에서 이 쪽 저 쪽 옮겨 다니며 본다. 길가의 소들!
방스네스 배터가 까마득히 내려다보이는 이곳에서 본 밑 동네가 참 아름답다. 호수를 가운데 두고 동네가 빙 둘러앉았다.
17:08 방스네스 가는길 - 교회 옆에는 공동묘지가 있다. 꽤 큰 동네이다.
17:19 방스네스(Vangsnes) 선착장 - 한가한 호숫가. 배에 버스채 들어간다. 작은소녀들 딸기들고 기웃기웃 배이름(Sunnfjord).
17:50 승선. 20분 동안 배타고 아름다운 피오르드를 지나다. 긴 피오르드를 지나며 아름다운 산과 호수 그리고 예쁜 집들을 바라보느라 바람이 불어 추워도, 경치에 홀려 선실로 들어가기 싫었다. 바람이 어찌나 찬지 내일은 더 두터운 옷을 입어야지 했다.
18:10 버스출발(쎈덴) 푀르데까지 120㎞
18:23 굴19.
18:28 오른쪽으로 딸기밭 굴20.
18:48 굴21, 굴22(7㎞)
18:55 큰 알루미늄 공장. 큰 동네 인구 1000명. 특산물 - 알루미늄 수출. 볼보회사들
18:57 굴23. 물빛 - 검푸른 색으로 변하고, 굴24. 피오르드 절벽 바로 위로 지나던 길이 양옆 주택이 들어서고
19:19 가문비나무 사이로 호수와 소들. 외길이다.
한여름에 버스에 히터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20:00 푀르데 도착(Forde)
송네 피오르드 호텔 투숙(Rica) - 도시 한가운데 있는 호텔. 비가 부슬부슬 저녁식사 호텔 뷔페식
♥ 제8일 - 7월 28일(일요일) <브릭스달 빙하∼송네 피오르드>
07:00 호텔출발 빙하관광
가이드 말씀. 정치-군주정치, 자녀 5명이면 월급 받는다. 만18세 되면 독립. 병원무료. 65세 정년-연금. 세금이 제일 높다. 6∼25% - 물건에 세금.
수명 여자-90 남자-85 집 사려면 28만∼1000만 크로나
07:27 렉스트라강. 아주 넓음
08:07 유트릭산. 정상 600m
08:12 고개 내려오니 또 호수가 나타남. 길거리 양떼들, 가문비숲. 흐렸던 하늘 해가 반짝. 안개 낀 호수와 호숫가의 아름다운 집들
행복한 아침. 두 손 꼭 잡고 싶은 마음. 주택의 지하에 집짐승이 산다.
08:17 트리킥 다섯째로 큰 피오르드. 인레이크지나다- 호수 면과 같은 동네 모두들 아름다운 꽃들로 장식. 색칠이 좀 다양해 짐. 녹색 노랑 빨강 검정 색 등으로
08:33 굴25.
08:49 굴26. 빙하가 또 나타나다 올덴 물가 - 1500명 인구 특산물 빙하에서 가져온 물 수출
08:52 굴27. 외길로 가는 곳곳 창 밖으로 폭포 - 물 수량이 풍부한 게 부럽다.
우리나라에 저런 폭포가 길가에 흔하다면 얼마나 좋을까!!! 굴28째를 지나니 소들이 한가로이 풀을 뜯고 있다.
09:00 브릭스달 도착 - 빙하관광
마차 타고 30분을 간 후 걸어서 15분가니 빙하였다.. 마차 타고 폭포다리를 지나며 물보라를 맞아 옷이 다 젖었다. 말몰이는 걸어가고 나는 타고 가고 마음이 안쓰럽다. 몇 억 년이나 쌓였을까? 두꺼운 빙하에서 녹은 물이 작은 호수를 이루고 있는데 물은 뼈를 깎듯 차다.
브릭스달 빙하는 1975년 이후 400m나 길어졌다고 한다. 길옆의 아주 작은 보라초롱꽃들이 앙증스럽다. 캐나다에서 본 빙하는 깨끗하고 크고 웅장했는데 이곳 빙하는 아주 작은 규모에 더럽고 지저분해서 실망이 컸다. 이것을 보려고 2일이나 걸려 왔나하고 말이다. 그러나 오면서 아름다운 경치와 삶의 모습, 도로 사정들을 다 체험했다고 생각했다.
11:00 브릭스달 식당에서 연어정식으로 점심
눈 모양의 무늬를 넣어 짠 스웨터들이 하도 아름다워 값을 보니 아주 비쌌다. 모두 수공예로 짜서 그런가 보다. 내 스웨터, 윤상이 스웨터 집안식구들 하나씩 사고 싶었지만 참았다.
12:00 카우팡에르로 출발
12:25 자기소개하기
12:37 큰 다리 근처의 캠핑장 옥색 물이 예쁘다.
12:42 굴29. 까마득한 절벽위로 지나간다. 밑은 호수. 차가 오면 서로 서 있다가 비켜 가는 좁은 길이 대다수다. 경관을 해치치 않으려고 굴을 많이 만들었나 보다.
인데케오- 오던 길을 다시 돌아 올라가고 있다.
13:24 트리킥 동네 다시 지나다. 바로 앞에 높은 산이 우뚝 나타나다.
13:28 풀륫의 잔잔한 노래 흐르고
옥색물빛 발아래 색깔 자랑하고, 절벽에서 폭포들이 키 자랑한다.
특산물 - 밍키, 산양떼가 도로 옆에서 풀을 뜯고 산아래 인가는 하나도 없고 짐승들만의 천지, 깎아지른 절벽 또 폭포들
13;40 스카이휴게소 25분 동안 쉰다. 앞쪽의 300만 년 전 빙하를 배경으로 너도나도 사진
14:15 코발트빛의 호수, 굴30, 31, 32, 33이 지나고
가이드 말- 한국은 노는 곳이 많은데, 노르웨이는 재미있는 곳이 별로 없다. 나이트클럽 가려면 사람을 골라 들여보낸다. 경치 좋고 살기 쉬우나 놀 곳이 없고 재미없다.
미국사람을 별로 좋아하지 않으며 노르웨이 청소년들 어른에게 잘 안함. 부모와 친해지기 어렵다. 나는 한국문화가 더 좋다.
스웨덴 1960년대 이민을 받음. 인력을 메우기 위해 1975이후 안 받음.
14:29 긴 굴 지나다 굴34 빙하 보며 사진 찍으며 하는 말들- 빙하에 대해 자세히 아는 사람도 없고 가이드의 설명도 시원치 않고 가서 빙하에 대해 공부를 더해야 겠다.
14:54 굴35, 36
15:05 고갯길에서 사진- 협만사이의 비취빛 호수와 빙하를 배경으로
15:13 긴 굴37 송달- 1500명 인구 축구팀이 있다.
15:30 레드랄가는 이정표가 있음
15:41 카우팡에르 동네에 정차
15:50 송네피요르드를 가다.
송네피오르드 Sognefjord - 노르웨이의 자연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Sognefjord이다. 약 100만 년 전의 빙하시대, 빙하 무게의 압력으로 하상이 깎여나가면서 U자형 해수 작용으로 꼬불꼬불한 긴 강의 모습을 이루게 되었다. 서 노르웨이의 고도 베르겐의 북동에 위치해 오슬로와 베르겐을 기점으로 철도, 페리, 버스를 이용해 1∼3일 관광투어가 출발하고 있다. 특히 철도 플롬(Flum)선을 경유하는 코스는 절벽에서 떨어지는 폭포, 유리같이 깨끗한 수면 등 피오르드의 매력을 한껏 만끽할 수 있는 대표적인 곳이다.
피오르드(Fjord)란 바닷물이 내륙 깊숙한 곳까지 들어와 형성된 좁고 긴 만을 말한다. 바닷물이 빙식곡을 채워 형성된 지형으로 송네 피오르드(SONGNEfjorden)는 약 100만 년 전의 빙하시대 빙하 무게의 압력으로 하상이 꺾여나가면서 U자 해수작용으로 꼬불꼬불한 긴 강의 모습을 이루게 되었다. 깊이가 1234m나 되고 길이는 205㎞에 달한다.
훼리편으로 구드방겐으로 향하다. 버스를 태우고 2시간동안 간다
둥글둥글한 산과 깊은 물, 조용한 동네. 어떻게 조물주가 이렇게 아름답고 정취 있게 만들었을까? 감탄하며 이런 외진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갑갑해서 어떻게 살까? 그 험한 산길에도 도로가 놓이고 터널 터널의 연속인 것 같은 도로가 숲 속에 자주 보인다. 온통 산과 물인 이곳은 배가 없으면 왕래가 더욱 힘들겠다. 이 깊은 골짜기에서 목축을 하는 사람들 대단하다. 군데군데 쌓인 눈 흘러내리는 폭포들!!!
지금까지 지나오면서 가이드의 설명이 시원치 않아 빙하공부를 더 해야 하겠다. 같은 방향 골짜기인데 왜 눈이 녹은 곳이 있고 안 녹은 곳이 있는가? 또는 어떻게 여름인데 남아 있는지? 피오르드는 어떻게 이렇게 생겼는지 생성과정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
선상 위에서 가는 비를 맞기도 하면서 계속 경치에 취해 많은 이야기꽃을 피웠다.
17:50 (구드방겐Kaupanger)도착 후 버스로 갈아타고 산골길로 오르다. 해발 370m. 구드방겐을 출발한 버스는 이윽고 해발 0m에 가까운 협곡으로 들어간다. 마치 산 속에 있는 듯한 인상을 준다. 다시 깎아지른 낭떠러지 길을 숨가쁘게 가슴 조이며 올라온 길. 차가 오면 비켜서서 멈추어 비켜 주어야 가는 좁은 길. 어마어마한 낭떠러지 길 모두 다 올라왔을 때 기사에게 박수세례! 아!!! 올라와서 보니 멋진 호텔과 폭포들, 오른쪽 큰 폭포는 시블레siylefoss폭포로 100m가 훨씬 넘는다. 수량도 풍부해 장관을 이루고 있다. 또 조금 올라가니 왼쪽으로 스탈하임 폭포가 우리를 반겼다. 모두 어마어마하게 큰 폭포들이다. 밖을 보면 지금까지 기어온 협곡이 저 아래로 아득하게 내려다보인다.
그리고 저 멀리 아늑한 산아래 동네가 정겹다.
모두 이런 곳에 호텔을 짓고 이런 길을 내고 또 큰 버스가 다닐 수 있는 것에 감탄을 했다. 경관이 너무 아름다워 가이드에게 이런 곳에서 자게 해주어 감사하다고 했다.
18:30 호텔 스탈하임(Stalheim) 도착
호텔 뒤 정원에 나가니 저 깊은 골짜기(올라온 길과 반대편- 나로이 협곡)의 절경이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산허리에 휘감긴 안개와 시원한 바람. 보슬비 오는 풍경. 신선이 따로 없다. 바로 내가 신선이다. 방도 아늑하고 정겨웠다.
♥ 제9일 - 7월 29일(월요일) <스탈하임 ∼ 오슬로>
09:00 스탈하임 호텔출발
며칠씩 더 묵어 가자고 들 농담한다. 돈도 더 있겠다 한국은 무척 덥다는데 여기서 더 피서를 하고 싶단다. 나도 그러고 싶은 심정이다. 참 추억의 장소가 될 것 같다.
감동의 시간, 버스 속에서 김규연님의 원어 해석으로 들려주는 해설 -
스탈하임호텔은
1647∼1909 말을 바꾸는 역할을 하던 곳이다. 편지 가는 길이였다. 우체국이었던 곳을 호텔로 바꾸었다. 지금 건물은 4번째로 1960에 지은 것이다. 최초의 호텔은 1885년에 지었는데 화재로 손실되었단다
♠♠♠ 유서 깊은 스탈하임호텔 ♠♠♠
① 1885 현 위치에 세워짐
② 코펜하겐∼오슬로 왕실우편물 말을 바꾸어 가는곳(역마)
③ 4대째 운영하며 70년간 소유. 릴레름이란분이 25년동안 자주와서 기념비를 세웠다. 1920.릴레름 언덕이라 명명. 이곳은 세 갈래 경치가 잡힌다. 둥근 산은 설탕봉지 산이라 부른다.
독일이 60년 간 지배해서 차지했었다.
경치가 너무 아름다워 '아무나 와 볼 수 있는 호텔이 아니다.'라고
이렇게 교통이 불편한 곳에 훌륭한 건물을 짓고 오가는 이 들에게 기쁨과 행복을 선사하는 이 곳 국민들에게 찬사를 보낸다.
09:05 굴38. 39 어찌나 긴 굴이 연거퍼 지나는지 글을 쓸 수가 없어 엉망이다.
긴 협곡을 내려간다. 산꼭대기에선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보슬보슬 내리는 비는 우리가 떠나는 것을 슬퍼한다.
09:15 굴40. 굴이 하도 길어 지루하다. 9분 동안 지나다
또 이어지는 굴. 굴41,42,43.
가이드말-노르웨이, 스웨덴사람 성격은 화가 나도 소리 지르지 않고 얼굴만 빨개진다. 친구 하려면 어렵다. 그러나 친절하게 대해 주지 않으나 친구 되면 이 세상에서 형제 보다 잘해준다. 미국 - 쉽게 친구 되나 겉으로 친구이고 진짜는 안 된다. 미국 유학생 많다. 대학들은 회사와 합자된다. 그 쪽으로 공부시키고 취직시킨다(산학협동)
09:37 굴44. 제일 긴 굴 - 25㎞(라에달) 세계에서 제일 긴 굴이란다. 일본은 해저 터널로 세계 제일을 자랑한다. 터널 속 3군데 빙하를 연상할 수 있게 파란 조명을 해서 우리를 덜 지루하게 했다. 중간지점에서는 사진도 찍을 수 있게 해주어 좋은 체험을 했다. 결혼식도 할 수 있고, 온도 변화가 없단다. 20년 전에 지었는데 3년 걸려 공사. 사고가 잘 난다. 특히 외국인들 아침저녁에 많다. 굴을 빠져 나오는데 23분 걸림.
10:00 라에달 강-연어가 제일 잘 잡히는 곳이며 아주 산 밑 동네이다. 스프링클러가 돌아가고 바닥이 아주 깨끗하며 좁은 강인데 연어가 산다니… 다시 절벽과 폭포, 빙하 호수의 나라. 또 강이 아주 길다. 계속 강이 우리를 따라오고 있다.
10:12 터널공사 중 - 2004년에나 완공된단다.
양쪽 산이 마주 맞닿을 정도로 좁은 곳으로 가는데 좁은 개울과 깨끗한 물, 돌들이 모두 뾰족뾰족. 좁은 출렁다리. 나무 길이 보이고 아주 샛길도 보인다.
굴45를 지나고, 흙을 이고 있는 풀집들, 중앙선 없는 외길은 계속 이어진다. 고갯길을 또다시 오르고 서로 비켜 주고 기다렸다 가는 좁은 길 곳곳에 나무로 만든 출렁다리
10:23 보르군드의 목조교회(킬케 스타베)
1100년대 지은 후 지금껏 보존되고 있다. 너와 지붕식으로 지었는데 아직도 생생했다. 나무 판자를 이어 교회를 지음. 검은 콜탈같은 것을 칠함. 나무 건물도 이렇게 수명이 길 수 있음을!
10:44 목조교회 떠남
10:50 예쁜 길가의 집에서는 전통 의상을 입은 마네킹들이 춤을 추며 우리를 즐겁게 했다.
11:11 필레 하일레트 산을 지남
12:00 굴45. 암벽을 깨고 길을 만들고 터널을 만들고, 넓은 호수
12:20 경치 좋은 곳이라고 내려서 사진을 찍으란다. (스트람다강)
저 멀리 잔설이 보이고 긴 강줄기에 비친 산의 그림자와 겹겹이 채워진 산들의 모습이 어디를 향해도 아름다운 장소였다.
스트람다 강폭이 넓어졌다. 분위기 있는 노래와 아름다운 경치, 즐거운 여행길! 이곳에 올 수 있도록 도와준 가족들에게 감사한 마음으로 가슴이 찡!
12:50 점심 (생선가스)- 화게네스(FAGERNES Hotel)
아름다운 강가에 자리잡고 또 다른 베란다는 강을 바라보며 식사 할 수 있는 식당이었다.
13:50 화게네스 호텔출발. 꽤 큰 도시이고 스쿠알렌이 유명하단다.
15:37 강이 다시 나타나고 가게 레마천에서 스쿠우알렌들을 사다.
16:14 튜론쇼르강
16:21 굴46, 굴47 넓은 강이 나오고 산과 산이 멀어짐
16:39 굴48. 교통이 복잡해진다. 그러나 차선은 1차선이다. 굴49, 50개
오슬로에서 송네피요르드 갔다 오는데 터널을 50개 지났다.
졸지 않고 다 세느라 했는데 정확하진 않겠지만 참으로 많은 터널을 지났다. 그만큼 자연을 훼손하지 않고 국토 보존을 위한 나라의 안목에 감탄했다. 숲 속으로 난 길이 보일락 말락 길이 있는지 없는지 모를 정도로 자연을 그대로 살렸다. 우리나라 길가의 흉물스런 절개지들이 부끄럽다. 경치야 우리나라도 훌륭한데 말이다.
16:42 오슬로 시내로 들어서다. 도로가 3차선으로 되고 오른쪽은 해변. 수영도하고 보트가 많음. 보트는 기본적으로 30만 크로나 주어야 살 수 있다. 5명당 1척의 배
16:57 시 청사 앞에 멈추다.
오슬로 피오르드의 돌출된 부두에 보이는 2개의 탑을 가지고 있는 건물. 오슬로 시 창립 900주년을 기념해 1931년에 착공했으나 재2차 세계대전으로 잠시 중단되었다가 1950년에 완공되었다. 건물 내부는 노르웨이의 수많은 예술가들의 작품으로 장식되어 있다.
17:00 가이드 김진숙과 만나다. 12세에 와서 18년 동안 살았다.
김철호 가이드는 또 새로운 팀을 만나기 위해 훨훨.
17:05 바이킹선박박물관으로
오슬로 피오르드에서 발견 된 3척의 바이킹 선을 복원해 전시하고 있다. 3척 중 가장 크고 우아한 오세베르그호는 9세기 초에 건조된 것으로 35명의 노젓는 사람과 돛을 이용해 항해하였다. 50년 정도 사용된 후 오사(Osa)여왕의 관으로 매장되어 배의 임무를 마쳤다. 역시 9세기경에 만들어진 고크스타호는 32명의 노젓는 사람과 돛으로 항해한 전형적인 바이킹 선이다. 마지막으로 투네호(Tune)는 배 밑바닥을 제외한 다른 부분은 부패한 채 발견되었는데 원거리 항해에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배의 이름은 발견 지명을 따서 붙여졌다.
빅킹-만에서 온 자들이란 뜻. 오세베르그호(OSEBERG Skipet) - 여자 2구의 유해가 나옴. 배 위에 봉분. 역청(타르) 물이 스며들지 않게. 흘수선- 밑바닥과 배 뒤쪽 오른쪽에 키 노 젓던 곳. 1904년에 발견. 12개 판자 10개째가 수면과 맏닿았다. 가장 두껍다.
고크스타호(GOKSTAD Skipet) - 전투함이며 890년 사용되던 배. 배 위에 이동식 삼각 오두막. 배 위에서 거처로 사용하고 뭍에서는 텐트로.
1924년 박물관 개관 마차-섬세한 조각 나무 사람머리조각 - 만스호데 수호신격
소 구유처럼 생긴 것 -반죽통이란다. 1부다처제에서 여러 명의 부인들이 죽 서서 반죽하던 것이란다
물의 나라이니 옛날부터 배가 발달되었다.
17:48 박물관 떠남.
가이드 말 - 나라는 잘 살아도 국민은 못사는 나라. 검소하다. 필요한 물건을 세일기간 1월 7월에 산다.
GNP 34400$(2000년) 사회보장 - 엄마뱃속에서부터 무덤까지. 민주정치이면서 사회정치에 가깝다. 11% 사회보장에 지출.
옛날- 전차타면 측은한 표정 코리아 6000명 입양아, 라면왕 미스터 리 유명(기내에서 다솜이에게서 빌려 보았다.)- 홀홀 단신 와서 고생 끝에 사업에 성공. 노르웨이 국민에게 맞게 개발하여 라면이 인기란다.
6.25때 외교 병원단 메디칼쎈터 - 1968년 우리에게 아주 주었다.
1972 한국대사관, 1983 북한과도 수교. 200명 교민 중 120명 오슬로에 산다. 80% 국제결혼. 철길도 하늘색이다.
보트, 지하철, 버스 모두 한 회사여서 1시간 안에는 다 탈 수 있단다.
① 1357년 스웨덴, 덴마크가 다스림.
80% 덴마크화된 노르웨이 언어사용. 교과서 종류 2종류. 알파벳 3글자가 더 있다. 노동시간 7.5시간. 3시 이후는 즐기는 시간
18:00 카를 요한스거리를 걷다(Karl johansgate).
우리는 각자 흩어져서 이 거리를 구경하기로 했다. 20분 후에 그랜드호텔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오슬로 중심부를 가로지르는 대로로, 중앙 역과 왕궁을 연결한다. 동쪽의 반 정도는 보행자 전용 거리로 되어 있으며 이 곳에 각종 레스토랑과 상점들이 들어서 있다. 거리 중앙에는 국회 의사당이 있고 건너편의 공원에는 일광욕을 즐기는 사람과 악세사리 그림 등을 파는 노점상들로 북적댄다. 거리 서쪽으로 국립극장이 이어지며 극장 앞 광장에는 입센과 뵈른손의 동상이 서있다. 거리의 서쪽 끝에서 왕궁공원이 시작된다.
그랜드호텔 녹색 시계탑- 최고급호텔인데 김대중 대통령이 노벨상 받으러 오셔서 묵으신 곳이란다. 국회의사당 앞에는 많은 사람들과 길거리 예술가가 많다. 30분 동안 각자 시내 관광. 제일 번화한 거리이다. 많은 가게들과 젊은이들이 거리를 누비고 있었다. 내게는 흥미 있는 게 따로 없었다. 거리의 악사와 화가들 풍선 접기 장수들이 많았다. 오슬로 대학(노란 건물), 왕궁 37계단.
왕궁 1825-48년에 걸쳐 만들어진 노르웨이 국왕의 거성. 왕궁 앞에는 스웨덴 왕으로 노르웨이를 지배해온 카를 요한의 청동기마상이 서 있다. 건물 내부는 공개하지 않으나 주위의 정원은 일반인들에게 공개하고 있어 여름이면 시민들이 일광욕을 즐긴다. 왕궁 37계단에서의 우리나라 대사관 아들의 음주운전 추태담이 부끄럽다.
운전면허 따기의 어려움 - 만18세 이상. 300만원정도의 금액이 들고 아주 철저히 시험 본다. 미끄러지는 코스도 있다. 이곳 아파트는 높아야 5층 정도인데 겉은 건물이고 대문 안이 정원으로 된 구조이다.
18:35 비겔란드(프로그네르) 조각공원으로 향하다.
오슬로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조각가 구스타브 바켈란(Gustav vigeland) 의 작품 193점으로 구성된 공원. 총면적 32만 3700㎡의 넓은 부지에 비켈란은 인간의 탄생에서 죽음까지의 갈등을 주제로 희노애락을 조각으로 표현하고 있다. 그 중에서도 모노리텐(monolitten)이라고 하는 공원 중앙의 조각상이 공원 조각의 하이라이트. 높이 17m의 화강암에 서로 위로 올라가려는 121명의 남녀 상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 작품은 비켈란이 석고 모델을 만들고 세 명의 석공이 14년에 걸쳐 제작한 것으로 그 인생관을 함축적으로 나타낸다. 이 밖에 인간의 일생을 나타내는 58개의 청동 상으로 장식된 다리와 동물들을 투조한 철제 정문 등도 절묘한 작품이다.
동네이름을 따서 프로그네르 공원이라고도 한다. 바켈란드는 1864년 만다라에서 목수의 아들로 출생. 14세 예술가의 길로. 독학으로 성공. 18세 비르그슬린에게 사사. 20세 오슬로 전시회 출품. 예술보조금을 오슬로 시에서 받아 공부했고 파리유학에서 로뎅의 영향을 받았다.
1921년 오슬로 시와 계약 1924∼43년까지의 작품 전시- 시 보유
사람의 삶을 주제로 작품을 많이 남겼고 193개의 작품이 이곳에 전시되어있다. 다리 위에 58개의 작품 여자와 남자가 괴물과 격투. 남 여가 뒷짐지고 고개를 숙이고, 고개를 들고있고, 인생을 주제. 모태에서 8가지 모습. 화난 어린이 아주 유명- 훔쳐간 것을 찾아 다시 붙여 놓음. 음양의 조화, 삶의 굴레, 6명 받침 접시 안의 인생의 짐-협동. 6명이 제각기 다른 태도로 서 있다.
부로코리 나무에는 인간과 자연을 묘사해서 자연에서 자연으로 감을 표현. 양각세공 동물과 인간관계, 최후의 날 - 긴 기둥에 121명의 인물을 표현 240t의 모노리텐(한 개의 덩어리)화강암을 기차로 가져와 집을 짓고 밤낮으로 14년 동안(1929∼43)작업. 현재 180t 17.6m 최후의 몸부림 장면들이 너무나 나를 괴롭힌다.
화강암은 대리석과 달라 단단하고 결이 강해 섬세하게 나타내지 못했다고 한다. 또 해시계 양각으로 12개의 별자리 나타내고, 4m 둥근 원안에 어른4 아동 3명을 넣어 인생윤회를 나타냄. 또한 바닥을 작은 돌로 미로 모자이크로 꾸며(3㎞) 관심을 끌게 꾸며 놓았다.
한 개인의 예술품을 이렇게 전시하니 더욱 더 이해가 잘되는 것 같다. 그러나 또 한편으론 다른 곳에서는 바켈란드의 작품을 볼 수 없다는 단점도 있다. 오슬로 시에서 한 예술가를 계약하고 키운 것에 대해 놀랍다. 그 당시의 관리자들의 의식 세계가 참 부럽다.
19:47 비켈란 조각박물관을 나와 호텔로 향함.
노르웨이가 잘 살게 된점
① 3면 바다 어업. 세계11위 (어획쿼터제 실시)( 1971 국립 해양연구소 연구 연어양식 세계 70% 생산 하로겐 불빛으로 체중 30%늘렸다.)
② 지하자원이 별로 없다가 1969.12.11 획기적으로 석유 발견. 1975년부터 수출 탄탄한 경제기반이 됐다. 석유기금 비축 금이 1인=1억5천만원정도 기금 나누어 줄 수 있단다
호텔 들어가기 전 동계올림픽 스키점프대에 들려 난센과 아문젠 이야기 듣고 왕의 동상을 봄(스키하고 있는 동상)
20:00 홀멘콜렌 호텔도착 아름다운 호텔 - 오슬로가 한 눈에 들어온다. 송네 피오르드 가기 전 하루 밤 묵었는데 다시 들리게 되어 더 좋았다. 일행은 호텔 앞 벤치에 모여 앉아 잡담을 나누고 있다. 모두들 경비는 신용카드로 해결하기로 하고, 동유럽으로 닷새만 더 돌자고 들 농담을 한다.
♥ 제10일 - 7월 30일(화요일) <오슬로 ∼ 모스크바>
08:30 호텔출발 오슬로 공항으로. 아침 7시에 춘천으로 전화하니 춘천은 35도로 무척 덥단다.
10:30 비행기타고 모스크바로. 2시간20분 걸림. 시차 2시간. 12:30분으로
14:50 모스크바 도착. 다음 비행기 탈 때까지 긴긴 시간(6시간)을 책을 보며 시간을 보냈다. 다솜이에게 라면 왕 mr.Lee 빌려 기내에서 다 읽고 에르미타쥐 미술관 책도 빌려 대합실에서 본다. 시간 없애기도 이렇게 어렵다.
22:15 출발하려던 비행기가 23:40이 되니 더 정비해야 된다고 내리란다.
배가 고파 도저히 참을 수 없어 빵을 사 먹었다. 한 개에 5$하는 빵을. 그랬더니 음료수 1개와 햄1조각 얹은 빵을 나누어주는데(공항에서) 금방 먹었더니 생각이 없었다. 기내에서 식사를 한번 더 주었다.
01:50 인천으로 출발
♥ 제11일 - 7월 31일(수요일) <모스크바-인천공항>
01:50 모스크바 출발 잠이 잘 안 와 책을 보며 억지로 잠을 청해 자기도 하며 왔다. 다행이 맨 뒷자리여서 이리저리 움직일 수 있어서 좋았다.
15:20 인천공항 도착. (시차 5시간)
16시 버스를 타려고 일행과 작별 인사도 제대로 못하고 나왔더니 시간이 변경되어 18시 버스가 있단다. 또 기다리는 시간.
아! 이렇게 길에서 우두커니 있는 시간이 내게는 제일 고역이다. 21시에 도착하니 진우가 마중을 나와 반갑게 집으로 향했다. 어머니께 큰절 드리고 고맙습니다. 집 잘 보아 주셔서 여행 잘 다녀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