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자가와 부활 간증 (진리 찾아 반세기)
1. 성장과 신앙 배경
저는 1956년도에 경북 의성군 사곡면 산골짜기에서
가난한 농부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온 가족이 내가 4살때 대구로 이사를 와서
시장에서 장사하는 모친과 노동일을 하시는 부친 아래서
3남 1녀의 장남으로 자랐으며
극히 가난한 까닭에 간신히 중고등학교를 마칠 수 있었다.
부친은 신앙이 없었고, 외가쪽에서는 외할머니가 독실한 신앙인이었으며
모친 또한 아주 열심히 교회 생활을 하였다.
외삼촌 두분이 고려신학대학교를 나와 고신측의 목사가 되었고,
작은 외삼촌은(황상호) 러시아 선교사 1호로 활동하였고 몇 년전에 은퇴를 하였다.
어릴때인 5, 6세 때부터 기도원과 부흥 집회등을 따라 다니며
자연스럽게 교인으로 자랐으며
하나님 계신 것과 천당과 지옥, 예수님에 대한 믿음은 일체 의심이 없었으며,
고3시절 여의도 광장에서,1974년도에 행사한 '엑스포 74'에서
4영리를 교육을 받아서 불신자들을 영접시켜 보기도 했다.
2. 객지 생활과 타락
가난을 면할 방법은 공부를 잘하여 취직할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을 받아들여
정말 죽기 살기로 공부한 결과 부산은행에 취직을 할수가 있었고,
그리하여 부산에서 혼자 객지 생활을 하게 되니
고삐 풀린 망아지처럼 세상에 젖어 들었고, 할 수 있는 모든 타락을 경험하게 되었다.
77년도에 군대에 들어가게 되면서 다시 성경과 교회 생활을 하게되어
나름대로 성실한 신앙 생활을 하였으나, 제대후 복직을 한 후에는
다시 세상에 빠져들면서 극심한 타락의 길로 접어 들었다.
한편 마음 속에는 이것이 아닌데, 언젠가는 돌아 가야지 하면서도
객지생활의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서 더욱 더 세상 향락과 즐거움에 취해서 생활하였다.
그럴수록 마음 속의 공허함은 더해만 갔다.
3. 세례와 결혼
제대후 1년 동안 타락한 생활의 결론은, 결혼을 해야겠다라는 답을 얻으면서
부모님께 결혼문제를 꺼내니 세례를 받으면 믿는 색시를 얻어 주겠다는 답을 얻었다.
그래서 세례를 받을 목적으로 근무하던 은행 근처에 있는 장로교 통합측인
우암 교회에 나가게 되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한 결과 4개월만에 세례를 받게 되었고
2달후 결혼을 하여 교회 근처에서 신혼 살림을 하게 되었다.
4. 지옥을 보면서
평범한 신앙생활과 신혼 생활을 하던 중, 어느날 부흥 집회에 참석하게 되었다.
개신교내에서는 이단이라고 하여, 집회할 장소를 얻지 못한 어느 목사님이
천주교당내에 장소를 빌어 집회를 하고 있었는데
신도들을 여러명 눕혀 놓고 영을, 천당과 지옥으로 보내는
입신 치유 집회였다.
그 집회에서 천당을 보내어 체험하는 것에는 그러려니 하였으나,
지옥을 보내는 장면에서는 누워 있던 사람들이 두려움에 떨면서
순식간에 구석으로 도망가는 충격적인 장면을 연출하였다.
이 순간에 나는 일생일대의 큰 결심을 하게 되었다.
'저 장면이 연출이라도 좋다.
내 일생 모든 것을 바쳐 지옥가는 것만은 확실하게 면하자.
지옥에 만은 안갈 수 있도록 100% 확실하게 믿자' 라고 결심을 하였다.
이때부터 내 신앙의 생활은 180도 달라지게 되었다.
5. 우암교회생활
나는 은행원이다. 은행업무는 1원이라도 대, 차가 틀리면 업무 마감이 되질 않는다.
자연히 생활 습관이 은행 스타일이 되었다.
따라서 신앙 생활도 철두철미한 은행스타일로 파고들게 되었다.
먼저 목사님께 상담을 하니 기도와 회개를 철저히 하기를 말씀하였다.
1) 기도 생활
매일 교회에서 철야를 했고, 철야 후 자연스럽게 새벽기도까지 참석하게 되었다.
기도의 내용은 어릴때 부터 지은 기억나는 모든 죄를 회개하였고,
매일 매일 생활하면서 지은 모든 잘못된 것을 그날 그날 철저히 회개를 하였다.
2) 기도원
매일의 철야에서도 부족함이 많이 느껴져, 국경일등 쉬는 날이 생기면
양산의 감림산기도원에서 산기도를 하였고, 시내에 있던 밀알기도원에도 자주 다녔다.
3) 금식
그래도 부족하여서 때때로 금식을 하였는데
은행 근무를 하면서 아무도 모르게 물만 먹으면서 일주일을 금식하였다.
그 뒤에 한번 더 일주일을 금식하였고, 하루에서 3일간은 수시로 금식하였다.
4) 부흥회
전국적인 유명한 부흥강사님을 통해 은혜를 많이 받았다.
신현균목사, 피종진목사, 오관석목사등의 집회나
유명한 목사님의 부흥회가 있을 때는 빠짐없이 참석하였다.
5) 고등학생의 반사를 맡고
주일학교 반사를 맡는 것이 신앙생활의 성장에 도움이 크다는 권유를 받고
고2의 학생을 맡아 가르치게 되었다.
주일학교 반사 생활을 하면서
① 야간성경학교 : 학생들을 가르치기에 부족함이 많아 야간성경학교 1년과정을
수료하였고
② 기도원 : 학생들과 기도원이나 부흥회에 같이 다니면서
우리반 아이들이 전부 방언을 하고 은혜를 받아 그 중 3명이 주의 길을 가기로 서원 했으며
③ 사랑 실천 : 학비가 어려운 학생에게 냉장고를 팔아 등록금을 도와 주는 등
정말 이웃사랑을 실천하고자 했으며
④ 노방전도 : 전도지를 인쇄하여 학생들과 노방전도를 하는 등 최선의 신앙생활을 하였다.
6. 갈등
지옥에만은 가서는 안된다는 절대절명의 지상과제를 가지고
자타가 인정할만한 열성적인 교회생활을 하면서
직분을 7가지(집사,성가대원등)를 받을 정도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였으나,
신앙생활을 하면 할수록 부족한 그 무엇이 커지기만 하였다.
회개의 생활을 하고 있으나 그 끝이 어디인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한다고 했으나, 과연 그것이 과연 순수한 사랑인지?
진짜 내게 사랑이 있는 것인지?
내 마음 속, 양심 속에는 주님으로 말미암는 진정한 기쁨과 감사가 있는 것인지?
갈등은 깊어만 갔다.
갈등 속에 얻은 결론은 아래와 같았고, 실천에 옮기기로 결심했다.
1) 이 교회의 수준으로는 내 심령을 만족시킬 수 없다. - 신령한 교회로 옮기자.
2) 막 10장 29-30절의 말씀과 같이,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집이나 형제 자매나 부모나 전토까지 버리라고 했으니
굶어 죽더라도 말씀대로 따라 해보자.
- 공중의 새와 들풀도 먹이시고 입히시는 하나님을 믿고,
먹고 살기위해 다니고 있는 은행 직장을 그만두고
정말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생활을 해보자.(마6:24-33)
3) 내가 모르고 부족한 것이 많으니 더 배우자 - 신학교에 가자.
7. 3가지 실천
1) 직장 사표
가족이나 아무하고도 의논하지 않고 직장에 사표를 던졌다.
공중의 나는 새도, 들의 백합화도 하나님은 먹이고 입히시거늘,
먹고 사는 문제에 매여 있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말이 아닌가라고 하면서,
죽으면 죽으리라 하는 심령으로 실천에 옮겼다.
2) 서부교회
서부교회의 백영희목사님의 말씀을 접해보고는
말씀의 수준이 아주 영적이고 놀라운 수준이어서 그 교회를 다니기 위해서
그 교회 근처로 이사를 하고 등록을 하였다.
3) 신학교 입학
영도 소재 합동 측의 부산야간신학교에 입학하였다.
8. 깊어지는 갈등
1) 교회생활
백영희목사님의 영적인 말씀은 내게 놀라운 은혜가 되었으나,
뭔가 내 심령에까지는 해결되는 것은 없었다.
다른 목사님들과는 달리 회개를 끝이 날 때까지,
확실한 답을 얻을 때까지 회개를 철저히 하라는 것이었다.
정말 철저히 회개의 생활을 하였다.
죄를 짓지 않으려고 (눈을 빼고 손을 자르는 심령으로),
살아 계시는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처럼 최선의 노력을 하였다.
죄를 지으면 죽음이고 지옥이다는 심정으로, 철저히 회개의 신앙 생활을 하였다.
죄를 짓지 않기 위해서 땅만 보고 다니고(여자를 보게 되면 음욕을 품게 되니까)
밤이면 밤마다 철저한 회개를 했으나 끝이 없었다. 결론이 없었다.
도저히 내 마음 속에서 일어나는 죄악을 따라 잡는 것은 불가능 하였다.
결론은 내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죄악의 덩어리 였고,
시편 51편처럼 죄가 항상 내 앞에 있었고,
죄중에 잉태 되었다는 말씀이 나에 대한 말씀이었다.
숨쉬는 것 조차도 죄로구나라는 사실이 받아들여 졌다.
서부교회에서도 실질적인 답이 없었다.
회개를 하기만 했지, 그 회개에 대한 확실한 답을 얻지 못했다.
회개만 했었지, 죄 문제에 대한 해결을 보지 못했다.
2) 신학교 생활
동료 신학생들의 열성적인 기도와 신앙생활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주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리고 바치고 헌신한다는 실천이 실로 대단하였다.
그러나 마태복음 7장 22절 말씀이 나를 찔렀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하여도,
예수님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라고 했는데
내가 거기에 속하지 않는다는 확실한 보장이 있는가?
이 문제를 만나는 사람들에게마다 물어봐도
시원한 답을 얻지 못했다.
첫 시험시간이 되었다.
1학년 반에 3학년생이 중간에 한줄씩 앉아서
감독이 없이 자율적으로 치룬 시험이었다.
대다수가 컨닝을 하고 있었다. 나는 실력대로 치뤘다.
나중에 교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 학교 생긴 후로
올해 딱 한명 양심적인 학생이 있다'고 말하는 것이 아닌가.
무슨 소리인가 했더니
1학년 학생 한명이 시험지 답장에 컨닝을 했다고 고백을 했다는 것이다.
개교이래 수 십년동안에 단 한명이 고백을 했고,
나머지는 100% 컨닝을 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었다. 기가 막혔다.
뭔가 부족하여 배우려고 왔는데 교수와 신학생들은 나와 별반 다른 것이 없었다.
죄 문제를 해결한 사람은 하나도 없었고
오히려 더욱 외식적인 생활을 하는 것이 아닌가.
이런 양심으로 영혼을 가르치는 목사가 되겠다고 하니 기가 막혔다.
불법 곧 죄 문제를 해결 받지도 못한 상태에서
목사를 하겠다고 하는 자들과는 함께 할 수 없었다.
내 양심으로는 도저히 이들과 함께 할 수 없었고 신학을 계속 할 수가 없었다.
마태복음 7장에 나오는 거짓선지자의 얘기가 이들의 얘기며
나도 똑 같은 상태이구나 싶었다.
이곳에서는 해결될 수가 없음을 알았다.
그길로 신학교를 그만 두었다.
정말 확실한 것을 알고 싶었다.
내가 죽었을 때에 예수님이 모른다하면 어쩌나?
확실하게 명백하게 해결을 받고 싶었다.
불법에서 벗어났다는 확실한 답을 찾고 싶었다.
3) 하나님을 정말로 사랑하는가.
예수님께서 큰 계명은, (마22:37-40)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라'이라고 하셨다.
내가 정말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물론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도 하고,
사랑을 하고 있다고 믿고, 또 노력도 했다.
그러나 세상을 다 속일 수 있어도 하나님과 나 자신을 속일 수는 없었다.
정말 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였지만 그것은 거짓이었다.
내 속에 아니 인간 속에는 하나님을 사랑을 할 만한 사랑이 없었던 것이었다.
어느 날 집사람이 아기를 데리고 친정에 5일간 다니러 갔다.
하루 이틀은 참을만 했는데 4, 5일이 되니 내 마음 속에서 차지 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집사람 뿐이었다.
이것이 아닌데 하나님만 사랑해야 되는데... 그렇다.
이것은 인간의 노력으로 되지 않는 본질상의 문제이었다.
나에게는 하나님을 사랑을 할 수 있는, 사랑이 없었던 것이었다.
항상 하나님과 내 사이에는 얇은 비닐막과 같이 막혀있었고, 간격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죄로 하나님과 막혀 있었던 것이었다.
이상 3가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특별한 결단이 다시 한번 요구되었다.
이 문제를 교회나 신학교 등이 아닌,
하나님과 나와 직접 해결하자라고 결심하였다.
그래서 세상 모두와 주변을 정리하였다.
처자식을 대구 시갓집에 맡기고,
나는 조그만 보따리 하나를 가지고,
이 문제를 해결 못하면 죽자라는 절박한 심정으로
하나님을 만나서 담판을 짓기 위해,
세계 최대의 기도원인 오산리금식기도원으로 향했다.
9. 기도원
나의 모든 주변을 정리를 하고
내 신앙의 본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먼저 오산리금식기도원에 왔다.
기도제목은
1) 회개의 문제
정말 죄를 안지으려고 노력 했다.
지은 죄는 철두철미하게 회개를 했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는 항상 죄가 가득했다.
이사야 1장 18절에 너희 죄가 주홍 같을찌라도 눈과 같이 희게 되며
진흙 같을찌라도 양털 같이 되리라는 약속의 말씀이 있는데,
왜 나는 내 마음을 볼때 마다 주홍 같고 진흙 같으냐?
하나님이 희게 해주겠다고 약속했으면 희어야 되지 않느냐?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흘려 죄를 용서하셨는데
왜 내 양심에는 죄가 가득한 것일까?
죄를 사하시기 위해서 피를 흘렸는데
왜 내 마음은 죄로 항상 어두운 상태에 있는가? 뭐가 문제인가?
내 마음을, 내 양심을 눈과 같이 희게 해 주시옵소서.
2) 사랑의 문제
정말 하나님을, 내 이웃을 사랑하고 싶다.
하나님의 명령이고, 새 계명이니까.
그러나 내게 진정한 사랑이 있나?
내 의지와는 상관 없이, 내 속에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없었다.
얇은 비닐막과 같은 것으로 하나님과 나와는 막혀 있다.
무엇 때문일까.
왜 하나님과 나 사이에 원치 않는 틈이 있는 것일까?
하나님과 하나가 되고 싶다.
정말 하나님과 사랑하는 사이가 되고 싶다.
정말 하나님만을 사랑하게 하소서!
3) 거짓선지자
마태복음 7장에서
입으로 주여 주여 한다고 천국에 들어 가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그들이 얼마나 열심히 선지자 노릇하고 권능까지 행하였으면
예수님께 따질 정도까지 되었을까.
그렇게 하여도 불법이며, 예수님은 모른다고 하시는데.
내가 이들 보다 더 나은 신앙생활을 할 수 있을까?
죽도록 죽도록 충성해도 예수님이 '나를 모른다'라고 하면?
'너의 행한 것은 불법이다'라고 하면?
무엇보다도 이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옵소서.
내가 여기에 속하지 않을 확실한 길을 가르쳐 주시옵소서!
이 3가지 기도 제목을 가지고 기도굴에서 목이 터져라 외쳤고,
비오는 날 소나무 숲에서 소나무를 붙잡고,
주여! 주여! 울부 짖으며 부르짖었다.
목숨 걸고 외쳤다. '주님! 살려 주세요' 라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내 죄를 위해 돌아 가셨다는 것을 내 마음 속에서 확실히 알고 믿는데
내 마음 속은, 내 양심은 항상 검습니까.
성경에서 희다고 했으면 희어야 되지 않습니까?
왜 내 마음 속에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이 없습니까?
제가 불법을 행하는 자입니까?
어떻게 하면 불법에서 벗어납니까?
부르짖고 부르짖고 울부 짖었다.
오산리기도원에서 2주간 금식하면서 부르짖어도 답이 없었다.
더 신령하다는 갈멜산기도원으로 옮겼다. 답이 없었다.
더 신령하다는 한얼산 기도원으로 옮겼다.
시간은 가고 답은 없고 절박하였다.
막판에는 하나님께 대한 원망의 마음까지 일어났다.
'하나님! 버리라는 것은 모두 다 버렸습니다. 직장을, 신학교를, 가정을,
하나님! 하라는 것 다 했습니다. 기도를, 금식을, 성경 읽기를,
이제는 더 이상 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어쩌란 말입니까?
저로써는 할 만큼 했고, 저로써는 다 했습니다.
내 목숨을 걸고 일점 후회없이 인간으로서는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습니다.
지금 죽더라도 후회 없을 만큼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다 했습니다.
죄와 싸우기를 피흘리기 까지 싸우라는 말씀처럼,
미친 놈처럼 하라는 것은 다 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나님! 살아 계시다면 답을 해 주십시요.
어쩌란 말입니까?
더 이상 무얼 어떻게 해야 합니까?
차라리 죽이세요. 하나님!'
한계에 부닥쳤다. 내 의지, 모든 기대가 허물어 졌다.
내 마음은 낮아질 수 있는데 까지 낮아졌다.
옆 방의 집사님이 은혜받은 간증을 하는데
어느 기도원에서 돌 300개를 주어 산위에 올라가 주기도문 300번 하니
회개의 영이 와서 눈물 콧물 흘리며 은혜를 받아
회개의 문제를 해결한 경험이 있으니 한번 해보라고 권하였다.
마지막으로 하나님의 뜻인가 하여 돌 300개 주어 산위에 올라가
하나씩 옮기며 주기도문을 300번 하였다.
뭔가 완성 했다는 기쁨이 올라와서 이것이 답인가하여
기도원 생활을 끝내고 대구의 부모님 집으로 돌아왔다.
10. 복음을 만나고(죄사함)
기도원 생활을 끝내고 대구에서 생활을 하고 있는데,
처음에는 기도원에서 뭘 받은 것 같은 은혜 속에 있었으나
며칠 지나니 감정이었을 뿐 아무 것도 아니었다.
주일이 되어 예배를 드려야 겠는데
어릴 때에 다니던 장로교회나
외삼촌이 목사로 있는 교회에는 가고 싶지가 않았다.
가 봐도 내 죄의 문제가 해결이 안되는 걸 아니까.
그래서 성경책을 들고 집에서 나와 무작정 걸었다.
골목길을 따라 들어가니 어느 교회가 나왔다. 들어가 앉았다.
머리가 허연 사람이 설교를 하고 있는 중이었고
요한복음 9장에 실로암 못에 가서 눈을 뜨게 되는 소경에 대한 말씀 중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 앞에 오지만, 진리를 보지 못하는 봉사와 같다.
진리를 찾아 눈을 떠야 한다' 는 말씀이 내게 하는 말씀과 같았다.
설교가 끝나고 가려는데, 그 교회 어느 분이 교제를 하자길래 같이 앉았다.
'구원 받았냐'고 묻길래 당연히 '구원 받았죠'라고 말했다.
'죄사함은 받았냐'고 묻길래
'예수님이 십자가에 죄 때문에 돌아 가시지 않았느냐' 라고 대답을 하였다.
'그렇다면, 원죄와 자범죄가 있는데
원죄가 용서 받아도 자범죄가 있으면 어떻게 되느냐'고 묻길래
'지옥 가죠'라는 말이 내 입에서 나왔다.
그때 내 마음 속에서 간절한 부르짖음이 나왔다.
'하나님! 내 죄 문제를 해결해 주십시요. 하나님 아시잖습니까.
이 죄 문제 때문에 그동안 제가 그렇게 몸부림 친 것을요'
그 때 그분이 '그러면 복음을 풀어 드리죠' 라며 성경을 통해 복음을 설명하였다.
" 구약의 때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지었을때는
회개가 아니라, 제사장 앞에 어린양 제물을 가져와서,
어린 양에게 안수를 하여 자기의 죄를 넘기고,
그 양을 자기 대신 죽여 피를 제단에 뿌려 그 죄를 용서 받았다.
죄의 값은 사망이다.
죄는 반드시 생명을 죽여 피를 흘려야 그 죄가 해결이 된다.
이와 같이 예수님은 죄를 해결하기 위해서 제물로 오신 어린 양이다.
예수님은 온 세상의 모든 죄(요일2:2)를 해결하시기 위해서 오신 분이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1:29)으로 오셔서
십자가에 피를 흘리심으로 세상의 모든 죄가 해결되었다.(요19:30)
그러면 예수님이 지고 가신 세상이라는 것은 어디에서 어디까지인가?
세상이란 창세때 아담부터 말세때 마지막 사람까지다" 라는 말을 듣는 순간
내 일생의 모든 죄가 이미 2천년 전에 사라져 버렸다는 것이 깨달아졌다.
이 순간 내가 죄의 세상이 아니라, 죄가 없는 세계로 옮겨져 버렸다.
발 끝에서부터 머리 끝까지의 나의 모든 죄가, 순식 간에 사라져 버렸다.
'지금까지 신앙 생활을 하며 만난 모든 사람들(목사, 신학생, 기도원장, 능력 은사자들)은
사단에 속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첫번째로 들었다.
죄가 해결된 세상인데, 죄 있는줄 알고 사단에 속고 있었다.
그동안 진정으로 예수님이 내 죄를 위해 돌아가셨다는 것을 믿었는데,
이 믿음과 나의 죄가 실제로 해결되는 것은 별개의 문제이었다.
많은 신앙인이 여기에 속고 있었다.
실제로 내 마음속의 죄가 해결이 되어야만 보혈을 믿는 것이고,
내 심령속의 죄가 실제적으로 해결이 되지 않았으면, 그 믿는다는 것이 모두 다
헛된 믿음이요, 가짜 믿음이고, 상상 임신을 하고 있다는 것이 알아졌다.
나의 지난 죄 뿐만 아니라 현재, 미래의 죄까지 모두 짊어 지고 가셨다.
나의 죄 뿐만 아니라 예수를 믿던 안 믿던, 어디에 살던, 어느 시대에 살았던
세상의 모든 죄를 해결하신 예수님을 발견하게 된 것이다.
'아! 할렐루야! 그동안 찾고 찾았던 것이 이것이었군요.
이것이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요 복음이었군요.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제 살았습니다. 이제야 죄에서 벗어났습니다.'
이때 그토록 찾았던 영원한 속죄를 받았고,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았고,
내 양심의 모든 죄가 눈과 같이 희어졌다.
내 눈에서 뜨거운 눈물이 흘렀다.
내 나이 27살. 1983년 6월 23일 13시경
그때 저는 복음을 듣고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11. 신앙의 문제점을 해결하고
하나님의 기적적인 인도로 죄사함의 복음을 듣게 되어,
내가 해결코자 했던 기도 제목들이 다음과 같이 해결되었다.
1) 회개문제
항상 진홍같이 붉던 내 죄가 순식간에 눈과 같이 희게 되었다.
이사야 1장18절 말씀이
나와 상관없는 성경구절에만 있는 말씀이 아니고, 바로 내 말씀이 되었다.
진정한 회개란 일일이 지은 죄에 대하여 용서를 비는 것이 아니라,
죄사함 받을 수 있을 정도까지 낮아진 죄인이 되는 것이었다.
죄사함을 받지 못한 것은 온전한 회개 즉
죄사함 받을 정도까지의 죄인이 되질 못한 수준의 회개였던 것이었다.
하나 하나의 죄에 대한 회개가 아닌, 나의 행한 것은 죄 밖에 없다는 회개,
즉, 선함과 의가 전혀 없는 완전한 죄인이 되어야만 비춰지는 복음이었다.
죄사함은 지식이나 이론이 아닌, 실제로 양심 속에서, 마음 속에서
죄에서 영원히 벗어나는 실제적인 경험이었다.
또한 찬송을 부를때 즉 속죄함, 죄에서 자유를, 나의 죄를 씻기는 등의
속죄 보혈에 관한 찬송을 부를때,
그 전에는 내 상태가 속죄함을 받지 못했으면서 그저 따라 불렀지만,
죄사함을 받은 후부터는
진정한 감사의 마음으로 속죄받은 은혜를 되새기며
마음으로, 신령으로 부르게 되었다.
2) 사랑문제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없음을 괴로워 했으나
죄사함을 받은 순간에
로마서 5장 5절의 말씀이 실제로 내 마음속에 이루어지면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은바 됨이니' 처럼
내 마음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들어 왔다.
그 들어온 하나님의 사랑으로 하나님을 사랑 할 수 있게 되었다.
이제야 진정 하나님 사랑합니다.
3) 마태복음 7장 불법을 행하는 자들에 대한 문제
마태복음 7장의 거짓선지자들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은
남들이 아니었고, 바로 나 자신 이었다.
죄사함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의 나의 모든 신앙생활이
불법이었고 외식이었다.
하나님은 육신적인 땅에서 나오는 제물을 바친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으신다.
죄사함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의 나의 모든 신앙생활은 가인의 제사였고,
타락한 생명이 드린 나의 제사는 실로 하나님 앞에 가증한 것이었다.
다 속여도 하나님과 자신은 속이지 못한다.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쫓아내고 권능을 행하여도
죄사함을 받지 못한 상태에서의 모든 신앙 생활은,
불법을 행한 것임을, 죄사함을 받고서야 확실히 알게 되었다.
12. 죄 해방(십자가의 죽음)을 경험하고
죄사함을 받은 것이 구원이요, 거듭남이라는 가르침 속에서
신앙 생활을 나름대로 열심히 하였지만,
아래와 같이 4가지 의문점 때문에 고민과 신앙의 갈등을 겪게 된다.
죄사함이 다인가. 고민은 깊어 갔다.
1) 근본 죄성의 문제
죄사함을 받은 것은 인간이 하나님앞에 섰을 때에,
빛 비추임으로 말미암는 범죄(행위)를, 보혈로 용서 받은 것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솟아나는 죄의 뿌리, 죄의 본성, 죄의 권세를 이길 길이 없었다.
로마서 6장 2절, 18절 등에서 말하는 '죄에서 죽는다'는 말이나
또는 '죄에서 해방을 받는다'는 말이 무었일까?
내가 그렇게 되어 있는가?
나는 진정 죄에서 죽은 경험이 있나?
죄사함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마음 속의 죄의 근본 문제(롬7장)가 나를 괴롭히고 있었다.
2) 하나님 앞에서의 부족함
죄사함을 받고 나서는, 놀라운 은혜를 받았으니
이제부터 진짜 하나님을 위해 바른 신앙생활을 하여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하는데…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 뭔가 항상 부족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뭔가 해야 하는데..
왜 안되지' 라는 이 상태를 벗어날 수가 없었다.
3) 휴거에 대한 불안감
죄사함을 받고 거듭났으니까
당연히 휴거의 대상이 될 것으로 생각은 하는데
뭔가 자신이 없었다.
지금 당장 휴거사건이 발생된다면, 나는 바로 휴거가 될 것인가에 대해
바로 자신있게 대답을 할 수가 없었다.
조금 더 무엇을 준비를 해야만 휴거를 맞이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4) 갈라디아서 2장 20절 문제
갈라디아서 2장 20절에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산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는 말씀이 나의 체험이 되었냐는 것이었다.
물론 이 말씀을 믿고 죄사함까지 받았으니
이 말씀대로 되었다고 생각해 보았지만 뭔가 석연찮았다.
내가 언제 십자가에 못 박힌 적이 있나?
뭔가 자신이 없었다.
내가 십자가에 못박힌 것을 머리로는 알고 있었지만
솔직히 내 마음에는 경험이 없었다.
<죄해방(십자가의 죽음)을 경험한 날과 과정>
죄사함을 받고 5년이지난 1988년도 어느 날 밤에
위의 4가지 문제로 고심을 하면서 로마서 7장을 읽게 되었다.
로마서 7장은 유독 '나', '내'라는 단어가 많았다.
이 '나'라는 단어를 세어 가면서 로마서 7장을 읽고 읽고 또 읽었다.
수 십번을 읽던 중
24절의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을 읽는 순간
'어 내가 죽었네!'라는 탄성과 함께
'아. 나는 끝났구나!', '내가 하나님을 위해서 할 일은 없구나!'
'십자가에서 그 때에 예수님과 함께 못 박혀 죽었구나!' 라고 깨달아졌다.
죄사함을 받을 때와는 비교할 수 없는 더한 감사가 내 마음에 넘쳤다.
분명히 알 수 있었다. 죄사함과 죄해방은 천지 차이로 다르다는 것을.
죄사함은 이것 죄해방을 받기 위한 과정에 불과하였다.
죄사함은 예수님의 보혈로 내가 행한 죄들을 사함을 받은 것이라면,
죄해방은 십자가에 내가 죽어, 죄와 사망의 몸에서 해방을 받은 것이었다.
죄사함이 나의 범죄를 해결했다면, 죄해방은 나의 생명을 해결하였다.
진정으로 십자가의 의미를 알게 되었고,
십자가의 체험이 머리로 아는것이 아니고, 내 마음 속에서 경험이 되어졌다.
이 순간의 기쁨과 감사는 죄사함의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이 더욱 더 넘쳤고
말할 수 없는 평강과 기쁨이 나를 떠나지 않았다.
이 은혜로 말미암아 위 4가지 고심하던 문제가 해결 되었다.
나는 죄에서 죽었고,
율법과 사망의 법에서 해방이 되었고,
갈라디아서 2장 20절처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고,
로마서 8장처럼 생명과 성령의 법에서 살게 되었고,
휴거가 언제 일어 날지라도 '주님 어서 오십시요'라고 하는 마음의 준비가 되었다.
이 체험은 '내 생명 자체가 타락한 생명이고 100% 죄인인 사망의 몸이구나'
'그러므로 내 육신으로는 하나님을 섬길 수가 없고, 하나님도 원치 않으시구나'
라는 것이 내 마음에서 알아졌고 인정이 되었을 때에,
십자가로 인하여 이미 죽어버린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된 것이었다.
나는 이미 죽어버렸으므로 죄의 법과 율법에서 해방을 받은 것이었다.
진정으로 나를 위해 피흘려 죽은 대속의 십자가가 아닌,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십자가'가 된 것이었다.
이 십자가의 체험은 내가 죄사함을 받은 곳이 아닌 다른 곳에서 하였다.
그후 이 체험을 얘기하는 사람이나 단체, 인정하는 곳이 있는지 찾아 보았다.
찾아 본 결과 이 십자가의 체험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었다.
왕의 복음,
별세 복음
십자가의 복음
십자가의 체험
죄 해방을 받았다.
율법에서 해방되었다.
혼의 구원을 받았다.
생활구원을 받았다는 등
그러나 죄해방(십자가 죽음)도 끝이 아니었다.
13. 부활 승천을 경험하고
죄해방을 경험한 후 로마서 8장에서와 같이
영과 육의 싸움을 20여년간 하게 된다.
영의 일을 좇느냐, 육신의 일을 좇느냐? (롬 8:5)
영의 생각으로 사느냐, 육신의 생각으로 사느냐? (롬 8:6)
지체를 의의 병기로 드리느냐, 불의의 병기로 드리느냐? (롬 6:13)
자신을 죄의 종으로 드리느냐, 순종의 종의로 드리느냐? (롬 6:16)
성령의 소욕을 따르느냐, 육신의 소욕을 따르느냐? (갈:17)
영과 육의 싸움의 신앙생활을 하면서
영을 내가 의식적으로 붙들어야 하는 문제에 부닥치게 되었다.
내가 의식하고 붙들 때에만 주님이 내 맘에 계시고
내가 의식하지 않을 때는 어느덧 내 자신에, 육신에 빠져 있는 것이었다.
끊임없이 나로서는 육에 질 수 밖에 없는 존재이다라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코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던 것이었다.
거룩하고 완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에
'결코 나는 할 수 없구나' 라며 절망 중에 있었다.
그러던 중 죄해방 받은지 20년이 지났을 즈음
주님의 부활과 승천을 경험 하게 되었다.
그 경험으로 이 문제가 해결이 되었다.
부활 승천을 경험하기 전의 마음 상태는
'이 세상에 대한 모든 기대나 바람 등은 끝이 났고
주님께서 원하시는대로 모든 것을 할 것이며
나의 모든 것은 주님의 것이다' 라는 상태가 되어 있었다.
<부활 승천을 경험한 날과 과정>은
2008년 6월 어느 날 아침 시편 2편을 묵상을 하면서 12절의 말씀 중에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라는 말씀이 내 마음에 박혔다.
종일 그 말씀만 묵상을 하며 되새겼다.
'그 아들에게 입 맞추라. 입 맞추라. 입 맞추라.'
점심때를 지나고, 저녁때도 지나 갔다.
밤에도 그 말씀만 가지고 무슨 뜻인가하고 되새기고 또 되새겼다.
어떻게 하는 것이 입 맞추는 것일까?
어떻게 하는 것이 주님과 입 맞추는 것과 같이
주님과 하나가 되는 것일까?
종일 '입 맞추라'라는 그 말씀만 생각을 하였다.
주님과 입 맞추는 모습을 그리면서,주님과 하나가 되는 생각에 몰두를 하였다.
새벽 2시경 성경을 읽던 중 에베소서 2장 6절 말씀이 눈에 들어 왔다.
"또 함께 일으키사 그리스도 예수안에서 함께 하늘에 앉히시니" 읽는 순간
'어!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늘에 앉아 있네'라고 믿어져 버렸다.
지금까지 그 성경 구절을 한 두번 읽었겠는가.
수 십번을 읽었었고 또 잘 알던 구절이었다. 그러나
이 순간에 심령의 눈이 뜨여져,
'마음을 열어 성경을 깨닫고'(눅 24:45)라는 말씀과 같이
그 말씀이 로고스가 아닌 레마의 말씀으로 내 심령에 인쳐진 것이었다.
자고 있는 집사람을 깨웠다.
" 마누라 마누라 내가 지금 거듭났다.
지금 구원 받았다." 라고 외치며 덩실 덩실 춤을 추었다.
그 순간에 왜 "거듭났다. 구원 받았다"라는 말이 내 입에서 튀어 나왔는지
나도 알 수가 없다.
죄사함 받을 때도 그것이 구원인줄 알았는데 아니었고,
십자가를 깨달았을 때에도 그것이 구원인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부활로 새생명을 받을 때, 이때가 구원이고 거듭남이었다.(롬6:4, 벧전 1:3)
'이제야 진짜로 뭔가 해결이 되었구나'라는 심정이 되었다.
끝없는 기쁨과 평강이 내 마음 속에 차고 넘쳤다.
내 마음이 실제로 천국이 되었다. (눅17:21)
이 경험으로 내 마음이 아래와 같이 실제로 해결되었다.
1) 부활의 새생명이 내게 들어왔고 (롬6:4)
이 순간이 진정 중생했고 거듭난 것이다라고 믿어졌다.
2) 천국이 내 마음속에 이루어 졌다.(눅17:21)
죽어서 천국에 가려면 우선 내 마음에서 천국이 이루어 져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3) 영과 육의 싸움이 끝이 났다.
그 싸움은 영과의 싸움에서 육이 질 수 밖에 없는 싸움이고,
내 속에 영이 없다는 것을 깨달으라는 것을 알려주는 싸움이었던 것이었다.
그 싸움에서 이기기를 포기하고 완전히 졌을 때에
'나는 이 세상 사람, 땅의 사람이 아니고, 하늘의 사람이며,
하나님 보좌 우편에 주님과 함께 앉아 있는 중이구나.'라고 믿어져 버렸다.
4) 부활 승천을 경험한 그 순간부터 그리스도가 내 안에 항상 함께 계신다.(고후13:5)
내가 주님을 의식적으로 붙들지 않아도,
내가 무엇을 하고 있을지라도 주님이 내 맘에 나와 함께 계시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