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산김씨(商山金氏)
시조 김수(金需)는 고려 때 보윤(甫尹)을 지내고 상산군에 봉해졌다. 그는 본래 신라 김알지의 후손이다. 후손들이 여러 대에 걸쳐 상산에 살면서 상산을 본관으로 삼았다. 상산은 경상북도 서쪽에 위치하는 상주(尙州) 지역의 옛 지명이다. 따라서 상산김씨는 상주김씨라고도 한다.
김득배는 상산김씨가 배출한 큰 인물이다. 그는 고려 공민왕 8년 홍건적이 침범했을 때 이방실, 안 우 등과 함께 서경을 수복한다. 2년 뒤 다시 20만의 홍건적이 침입했을 때는 서경이 함락되고 왕이 피신하는 등 치욕적인 패배를 당한다. 그러나 이듬해 최영, 이성계 등과 함께 서울을 탈환한다.
그러나 개선 후 간신의 무고로 공을 세운 장군들과 함께 참형을 당했다. 당시 김득배의 문인이었던 포은 정몽주는 상소로 무고함을 간하고 형이 집행되자 사체를 거두어 안장했다. 그의 두 동생도 뛰어난 인물이다. 이들 3형제를 가리켜 "삼원수(三元帥)라고 부른다.
이당 김은호 화백은 북종화의 전통을 이은 근대 미술사의 거목이다. 그는 인물과 화조(花鳥)에 뛰어났다. 고종. 순종의 어진(御眞), 충무공. 논개. 춘향의 영정과 영국 여왕의 초상화, 승무, 풍악추명(楓岳秋明) 등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조선 초 김운보와 김신보 형제는 각각 다른 길을 걸었다. 김운보는 조선 개국공신이 됐으나 동생은 불사이군의 충절을 지켰다. 주요파는 ▲상서공파 ▲전서공파 ▲문충공파 ▲상산군파 ▲낙성군파 ▲제학공파 ▲내원령공파 ▲영중추공파 ▲통사공파 ▲시랑공파 ▲상원공파 등이다.
집성촌은 경북 상주시 낙동면과 외서면, 경남 진주시 함안군, 산청군, 거창군 가좌면 일부리 등이다. 76명의 과거 급제자가 있다. 2000년에 상산김씨는 63,528명, 상주김씨는 13,627명이다.
( 성씨 전문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