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이야기는 자랑하기 위해서도 아니요
비천한 제가 주님을 만나고 난후
변화된 삶을 보시고 도전을 받으시고
주님과 가까이 할수만 있다면 하는
마음입니다.
(1번부터 순서대로 보세요)
1.나와 함께 하시는 하나님
"세상부귀 안일함과 세상 근심 하다가
주님 나를 찾으시면 어떻게 만날까
주님 내게오시면 나 어찌 대할가
멀리 방황하던 나 불쌍한 이죄인
이제 주만 생각하며 세상근심 버리고
두손 들고 눈물로서 주만 따라 가오리다"
20여년(1984년5월) 전부터 많은 성도들의 사랑을 받으며
불리워왔던 "주님 내게오시면"과"주님 나를 부르셨으니"는
제 힛트곡이며 신앙고백의 詩 이기도합니다
저는 이렇게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복음을 전하기 위해
하나님이 부르시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다니고 있습니다.
그럴수 밖에 없는것이
오늘이 있기 까지 여러번 이나 죽음의 어두운 골짜기를 지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저는 어린시절부터 지금까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어느시골
여자의 몸에서 태어 났다고만 알고 있습니다.
위로는 언니가 두분, 오빠가 두분 있으나
나는 배 다른 미운 오리새끼였습니다
경남 마산에서 여러사람의 일꾼(머슴)과 가정부들을 둔
퍽이나 부유한 집안이었습니다.
그러나 저에게는 집안의 부유함이 아무런 의미가 없어습니다
어디선가 데리고 온 남(?)이였기 때문입니다
아마 제가 네살때쯤 얼굴 기억조차 없는 외할머니께서
저를 이 집으로 데리고와 어디론가 떠나 버리신 기억이
희미하게 납니다
어린 저는 그날 눈물과 콧물이 범벅이 되도록 울면서 기다렸지만
외할머니의 모습은 한번도 나타나지 않으셨습니다
저는 몇날몇칠을 울면서 보냈지만 아무 소용 없었고,
오히려 미움만 삳다고 합니다
시간이 흐르자 다소 진정이 되었지만
나는 커 가면서 우리집이 못살아 이 집에서 키워 주는줄 알고
이사람 저사람 눈치 보면서 성장했습니다
16세때쯤 한집에서 사는 아버지가 친아버지라는 것을 누구의 귀뜸으로
알았지만 그 아버지조차 어느 누구도 나를 돌보아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나는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른 기억이 한 차례도 없습니다
이렇듯 나는 뭐라할가요...
어릴때부터 괄시와 눈물로 자라온 비운의 한 인간 이었다고 할가요
이러한 저를 불쌍히 여기시사 구원 해주신 하나님께 어찌
감사드리지 않을수 있겠습니까
지금도 오직 감사의 눈물만 흘린뿐 입니다.
2.못쓸 폐결핵
그때 이야기로 뒤돌아 가겠습니다
천덕 구러기였던 제가 열한살때쯤 감기를 앓은것이
악화되어 폐염과 늑막염으로 발전되는가 싶더니
임파선 폐결핵으로 악화되어 죽음의 직전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부유한 집안이었지만, 천덕구러기에다 무서운 전염병인 폐결핵까지
걸렸으니 누구하나 가까이 하지않으려고 뒷구석방에서 보살핌없는
병상생활을 하였습니다.
그러니 병원에서 약을 타와도 어린마음에 많은 약이 먹기 힘들어
몰래 하수구에 버리기도 했습니다.
병상생활에 있던 그 이듬해 나에게 또다시 재앙이 닦쳐 왔습니다
물이 펄펄 끓고 있는 가마솥위에 창살을 잡고 올라갔다
떨어지는 바람에 몸의 절반이 시뻘겋게 익어 버린것입니다
그 고통은 말로 표현할수 없을 정도로 심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박정미를 살리시기 위해 준비를 해놓으셨습니다
마침 저희집앞에 저희집에서 세를 놓은 건물에 병원이 있었기에
의사 원장선생님이 불쌍하다고 저를 각별히 치료하여 흉터하나 없이
잘 치료 해주셨습니다
화상은 깨끗하게 치료 되었지만 봄만 되면 재발하는
폐결핵은 어린 저에게 견딜수 없는 고통이었습니다
저를 낳아준 엄마가 한없이 원망스럽고 또 한편으로는 보고싶기도
했습니다
그럴때마다 저의 어린가슴은 무너지고 찢어질듯 하여 남모르게
많은 눈물을 흘렸습니다
어린나이 철모르는 때 이지만 저에게는 삶의 의욕이 없어지고
죽고 싶은 마음만 가득 찼습니다.
3.시립병원 생활
병마속에 세월은 흘러
어느덧 꽃다운 십육세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의 모습은 꽃봉우리가 아닌 시들어가는 꽃
이었습니다
병마(폐병)에 시달리느라 가냘프고 창백하게 여윈데다
병색마저 짙은 초라한 몰골로 변해 아무도 상대해 주지 않는
나날이었습니다
이런 와중이라 공부도 더이상 할수도 없었고
올케언니가 근무하는 시립병원에 입원하기위해
서울행 열차를 탓습니다
달리는 열차간에서 여러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소외와 질고와 좌절과 탄식의 세월이
나의 삶을 포기 하게끔 유혹도 하였습니다
시립병원은 그당시 효자동에 소재한 형편없는 병원이었습니다
꽁보리밥에 형편없는 대우였습니다
다른 환자들은 집에서 반찬을 만들어와 난로 불에
데워 먹으며 나를 불쌍하다고 반찬을 나누어 주곤 했습니다
그러나 얻어 먹는것도 부끄러워 식사때면 살짝 나가곤
했습니다
올캐언니가 수간호원 인데도 일년여 동안 함께있는
병원인데도 한번 찾아오는 일이 없었습니다
누구하나 과자부스러기 하나 사오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한번은 너무 배가 고프고 먹고 싶어서 병원근처 시장을
왔다갔다 하다가 굴비 한마리를 훔쳐와서 누가 주더라고 하면서
난로불에 정신없이 구워먹던 일이 생각 납니다
이사건이 나중에 주님을 만났을때 회개의 줄이 되었을줄
꿈에도 생각 못해습니다.
4.염직공장
외롭고 배고픔의 힘든 병원생활이 싫어
병원을 나오기로 결심했다
몸도 조금 좋아졌고 옆에 환우가족들 한테
얻어 먹는것도 한두번이지 어린 나에겐
힘든 병원생활이었다
병원을 뛰쳐 나와 갈곳이 없어도 병원은 죽어도 가기가 싫어
이리저리 헤메이다 알지도 못하는 언니를 만나
병원에서 나왔다는 것을 숨기고 이복 올케언니의 구박에
못이겨 집을 나왔다고 거짓말을 했다
그 언니는 내손을 붙잡고 불쌍 하다며
자기 사정도 이야기 하면서
돈을 많이 벌면 집에서도 환영 할 것이라고
자기가 일하는 천호동에 있는 염직공장으로 나를 데리고 갔다
나는 우선 잠 자리며 밥을 먹을수 있다는 희망으로
폐병이 있다는것을 숨기고 그 공장에서 일을했다
공장은 밤일 낮일 이교대로 하는 병든 나에게는
힘든일이었다
폐결핵이란 잘먹고 피곤하지 않아야 하는데
이렇게 힘든일을 하니 재발 될것이 불보듯 뻔하다
그래서 재발 되면 자살 하기로 결심 하고
가까스레 수면제 50 여알을 이 약국 저약국 다니면서
사모으는데 성공했다
약10 여개월이 흘렀을가 몸은 초췌 해지고
기침을 하면 붉은 피를 손수건에 쏟곤했다
다섯번째의 재발이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들이 알까봐 기침만 나면 화장실로
달려가곤 했다
이제는 때가 왔구나 하며 죽을 생각을 하니
그리 쉬운일이 아니었다
죽어야겠다는 결심과 갈등이 커서
몇날을 잠을 못이루었다
또한 기침과 선혈을 토하며 괴로워 했다
드디어 나는 죽을 결심을 하고
얼굴도 모르는 부모를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며
동료들이 밤일을 나간사이 사 모은 수면제알
마흔 두세알을 정신없이 입에 털어 넣었다
너무나 힘든 인생의 마지막 이기에
한없이 울면서....
5.자살 사건후
수면제 사십두세알을 정신없이 입에
털어넣고 깨어보니 을지로6가에 있는
국립의료원(메디칼쎈타)응급실에서 산소호흡기를
끼고 있었다
공장장이 나를 업고 근처병원 두군데를 헤메였지만
살릴 가망이 없다고 큰병원으로 가보라고 하여
이곳 병원으로 옮겨졌던 것이다
불행중 다행인지 이틀만에 깨어 살아 났지만
죽을려고 했던 내가 살아난것을 확인하고
그만 엉엉 울부짖으며 하나님을 원망했다
이 폐병을 돌보아 주는사람 하나 없는 천하고아가 아닌가
그러면서 또 죽어야지 하고 생각하며 울었다
그런데 왠일일까
그 자살 사건 이후 피를 한번도 토하지 않했다
지금 까지도....
하나님께서 불쌍한 나를 치료 해주셨던 것이다
그 수면제 사십두세알이 폐결핵균을 모두다 소멸 시킨것이다
그렇다고 이글을 보는 사람중 폐결핵 환자가 있다면
따라 하는것은 금물입니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이라는 것을
세월이 흐른뒤 예수믿고 깨달았다
6.가수의 꿈이 열리다
자살 사건후 폐결핵을 치료함을 받은 나는
예수믿는 장로님의 딸을 우연히 만나게 되었다
미8군에서 노래하는 가수였다
내가 불쌍하다고 자기집에 같이 있게해주고
내 목소리가 좋다고 가수의 길을 열어 주기위해
악보며 발성 까지도 지도 해주었다
옛날 어렸을적에 나는 끼가 있어 동네 극장에
쇼단이 오면 몰래 훔쳐보고 흉내 내다
집안망신 시킨다고 혼난 일도 있었다
나를 키워준 엄마는 내가 불쌍하다고
내가 좋아하는 무용도 집안식구 몰래 배울수 있도록
학원도 보내준 일이 있다
그 언니가 나를 열심히 가르쳐주고 어느 한날
캬바레에 데리고가 첫 무대를 세웠다
물론 간단한 오디션도 거쳤지만
나는 숫기가 없어 사람들 앞에 서서
노래 부른다는게 그리 쉬운일이 아니었다
그날은 사시나무 떨듯 옴몸이 땀으로 적셨고
지배인 한테 꾸중을 들었다
그 언니의 간곡한 부탁으로 지배인도 내가 처량하게
보였던지 내 쫒지않고 열심히 배우라며 겪려 해주었다
나는 음악학원을 다니며 가수의 꿈을 키웠다
나를 천대 하던 가족들에게 텔레비젼에 나오는
나의모습을 보여주며 복수를 하고 싶었던것이다
난 열심히 최선을 다해 밤무대에서 가수의길을
가고 있었다
7.인기가수의 사슬
밤무대 가수로 시작하여 이제는 밤무대에서
빠질수 없는 인기 가수가 되었다
무교동으로 영등포로 유명한 캬바레와 술집은
나의 생업의 터전이 되었다
그리하여 어느정도 돈을 모았다
1980년 나의 신곡 "잊지말아요"라는 곡을
내놓았으나 반응은 신통치 않했다.
그동안 밤무대에서 모아온 피눈물나는 돈을 많이
쏟아 부었으나 허사였다
그러나 인기를 얻기 위해서는 많은 돈이 필요했기에
밤무대에서 열심히 일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메니져가 PR비를 탕진하고 PR을
하지 않했던 것이다
인기가수가 될려면 많은 돈이 필요하다
누가 뒤에서 밀어주지 않으면 될수가 없는게 인기가수다
난 텔레비젼에 3번을 출연을 하는게 고작이었다
라디오는 6개월을 밀었다
돈이 떨어지면 출연이 되지 않으니 인기가수가 될리없다
또 PD들은 곡이 좋으니 계속PR 하라고 유혹하니
있는돈 없는돈 다 탕진하기 마련이다
인기가수도 하나의 마약이 되는 것이다
그러기에 연예인들이 대마초 사건에 걸리게 되는것은
인기의 초조함 때문에 그것을 접하게 되는 것이다
지금 이글을 보는 인기가수의 꿈을 가진 성도님들이여
아무리 노래를 잘해도 뒤에서 밀어주는 스폰서가 없으면
소용이 없으니 시간 낭비 하지마시고 주님 일에
열심히 봉사 하시기를 부탁 드립니다
난 인기가수가 되지 못하였고 그동안 벌어온 돈을 다버리고
삼백만원에 오만원 짜리 월세방에 살게되었다
초라해진 자신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매일 술을 마시며 눈물과 한탄속에 어떻게 하면 죽을가 하는 생각을 다시 하게 되었다
난 가족도 없는 천하의 고아나 마찬가지고 이 더러운 세상
살면 뭐하냐 하면서 소주에다 수면제 30알을 먹고 자살을 기도 했으나
이틀만에 살아났다
자살하기전 교회에도 나가고 싶었지만 누가 나를 인도해주는 사람이
없어 가지를 못했다
지금도 삶의 실패속에 또는 병고에 시달리며 꿈을 잃고
계시는 분들이 너무 많다고 생각하고 나와같은 사람이 있을지 모르니
우리는 전도에 게으르면 안된다
"때를 얻든지 못얻든지,사마리아 땅끝까지 내 증인이 되어
복음을 전하라"는
예수님의 명령을 잊어서는 안되겠다 는 생각입니다
저는 교회 나가자 마자 초신자 이지만 아무나 만나면, 가령 밤업소 동료 들이나 뺀드선생님들에게 전도하여 지금은 권사님,안수집사,장로님,
전도사, 얼마전 목사님까지 되시는 것을보고 마음이 기뻤다
아무것도 모르는 초신자이지만 하나님께서 그런 은사를 주셔서
많은 사람들을 전도했다.
한가족 모두를 전도할때는 정말 기뻐었다
이야기가 빗나가습니다
그때 수면제를 먹고 죽지않고 깨어났을때
난 인기 가수가 안되면 살길이 없다
있는돈 없는돈 다 날렸고 인기가수 되는 길이
나의 살길이라고 생각하니 너무 허무 했다
그러던 어느날 후배 인기가수 김수란양이 대뜸 언니 예수믿으면
인기가수가 될수있어, 하는 것이었다
나는 그말에 귀가 솔깃하고 마음에 동요가 왔다
난 김수란양과 주일날 약속한 자리에서 만나 여의도 순복음교회에
따라갔다
그러나 내 눈에는 성도들이 미친사람같이 보였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그 미친 행동이 방언기도 였었다
8.첫 신앙생활
방언기도 하는 성도님들을 보고
모두가 미친 사람처럼 보였던 나의 첫 신앙생활은
이렇게 시작 되었다
인기가수가 되고 싶어서 나간 교회이기에
전적으로 하나님을 이용하기 위해서 나간 교회라 믿음도
없고 어떻게 잘 믿어보겠다는 마음도 없었다
교회 나가면서도 어떻게 하면 죽을가 생각하며 세상을 원망하고
술을 잔뜩 먹고 교회에 가곤 했다
TV에 나오지 않는 가수는 초저녁 시간에 출연하니
시간이 많은때라 항상 교회로 발걸음을 향했다
웬일인지 믿음도 없는데도 일이 끝나면 교회에 가고싶었다
그때는 여의도순복음교회는 365일 철야예배를 드리는 때이다
교회에 가면 사람들이 어찌 많은지 자리를 잡지 못해
강대상 바로앞에 신문지를 깔고 예배를 드리는 시절이었다
나는 항상 늦게와 제일 앞자리에 신문지를 깔고
기도 아닌 통곡으로 "하나님 인기가수 만들어주세요
인기가수 만들어 주시면 하라는데로 할께요"라는 기도밖에
할줄몰랐다
그건 기도가 아니라 나의 통곡이었다
그러면서 그시절은 통행금지가 있어서 어쩔수없이
교회에서 쪼그리고 자며 새벽예배까지 드리고 그랬다
그러면서도 믿음이 하나도 없어
말씀을 한번을 보기를 했나, 기도를 한번 해보았나
그저 사도신경과 주기도문은 어떻게 외웠다
그리고 가끔 십계명을 읽은것이 전부였다
그러나 어찌 된일인지 하나님께서 나에게 전도의 능력을 주셨는지
전 장에서 말했듯이 보기만 하면 예수믿으라고 하며
동료들을 전도를 많이 했다.
하나님은 전도의 상급이 아주커서 오늘날 축복된 삶을 살게된
큰 동기이다
그러데 신앙생활은 너무 엉망이었다
예배시간 한번 지키지 못하고 꼭 늦게 가는 버릇이 있었다
이 못된 습관을 자세히 지켜본 같은 연예인선교회에 속한
신앙의 선배지도자 최집사님(여자성도)이란 분을 만나게 되었다
하루는 최집사님은 내 손을 조심스럽게 잡드니 정미자매
하나님 앞에 나올때는 단정한 옷차림에 꼭 예배30분전에 와서
아니면20분전 아니면 5분전이라도 와서 회개기도하고 찬양을
드리고 예배를 드려야 한단고 알려 주었다
그러나 나는 회개란 말이 듣기 싫어 집사님! 저는 누구한테
사기친 일도 없고 착하게 한주간 살었어요 무슨 죄가 있다고 회개에요
하면서 반박하는 어리석은 일도 있었다
지금 생각 하면 아무것도 모르는 풋내기 신앙인 이었고
부끄러운 일이다
최집사님은 나에게 밑반찬도 해다 주시고 어느때는 토큰비(버스표)가
있느냐 하면서 토큰비도 주시고 나에게 참 잘해 주었다
그분 때문에 난 신앙 생활을 조금씩 잘하게 되어갔다
그런데 하루는 내손을 꼭 잡으면 정미자매 이제 정미자매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으니 하늘에 호적이 적혀있다며
하나님의 자녀는 십일조를 하여야한다고 말하는 것이었다
난 그말에 시험이 들었다
이제 겨우 교회 나온지 두달도 안되었을 뿐아니라
나는 그당시 겨우 한곳밖에 출연을 못해 30만원 수입으로
방세주고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쓸돈이 없는 형편이었다
그래서 오해를 하기 시작했다
저 집사님이 나한테 잘해준것은 이런말 할려고 했구나 생각하니
최집사님이 미워져 연예인선교회에 안나가고
다른 처소에서 예배를 드렸다
그때 내 신앙은 어떤 신앙이었냐 하면 헌금시간이 돌아오면
주머니에 백원짜리가 없으면 천원 내기 아까워 밖에나가
껌을 사고 잔돈을 거슬러와 백원 헌금하고 팔백원은 빽속에 넣곤했다
이것을 두번씩이나 하였다
이런 신앙을 가진 나에게 십일조를 하라고 하니
시험이 들수밖에 없었다 9.신년 금식기도
십일조를 하라는 최집사님의 말씀에 시험에 들어 선교회에서
예배를 드리지 않고 최집사님을 피해 대예배실에서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연말에 신년을 이틀 앞두고 최집사님 한테 전화가 왔다
전화를 받고 나는 못른척 하고 최집사님 집을 방문했다
최집사님은 나를 반가이 맞이하며 내손을 꼭 잡으면서
위로의 말을 하며 고기국으로 맛있게 밥상을 차려 주었다
그러면서 1월1일부터 실업인선교회에서 오산리금식기도원에
2박3일 금식기도 하러가니 같이 가자고 하였다
나는 금식기도가 무엇인지 알지못해
금식기도가 뭔데요 하고 물으니
밥을 굶으면서 기도하는 것이라고 하기에
집사님! 저는 밥을 한끼도 못굶어요 하며 말하니가
집사님께서 말하기를 하나님께서 정미자매 인기가수 만들어 주는데
금식을 못하니?
하기에 그말씀에 귀가 쫑긋하여 기도원에 가기로 결심했다
나의 꿈은 인기가수가 되어 TV에 나오는 내 모습을
이복형제들에게 보이고 싶은 것이었다
나를 괄시 한것에 대한 복수 하고픈 마음뿐이었다
그렇지않해도 세상 사는것이 희망이 없어 죽고싶은 마음인데
어짜피 죽을 바에야 굶다죽지 하는 마음으로 약속을 하였다
신년 초하루 새아침에 약속 장소로 나갔더니 최집사님께서
나를 반가이 맞아주셨다
그런데 왠 뻐스 20여대가 넘게 길게 서서 실업인 선교회원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마음 변해 돌아 갈가봐 최집사님은 나를 뻐스창가에 앉히고
나를 끔짝 못하게 했다
그러면서 뻐스에 탄 사람들을 가리키며 저분은 별이 두개나 되는
장군이고,저분은 회사 회장인데 직원이 몇백명 되는 분이다 하면서
여러사람을 가리키며 말하기에 나는 속으로 그말씀에 은혜(?)를 받었다
얼굴을 보니 잘드셔서 그런지 얼굴 빛들이 모두 기름이 흘러 훤하다
맞다, 뭐가 있기에 저분들이 정월 초하루 부터 밥굶으러 가는것 아닌가
나도 가서 밥굶다 죽으면 죽지하고 따라갔다
기도원에 도착하여 하루가 지났다
정말 배가고파 참기 힘들어 금식을 포기하고
최집사님 몰래 밥을 먹어야지
하고 기회를 보고있는데 최집사님은 나를 꼭 붙들고 놔두지 않했다
그러면서 두루마리 휴지 한통을 주시면서 기도굴에 들어가서
하나님한테 기도 하라고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기도 할줄을 모르는데요 하였다
아닌게 아니라 기도한번 해보지 않하였고 기도 한다는 것이
고작 "하나님 인기가수 만들어 주세요, 출세 시켜주세요"하는말이
전부였든 것이다
그렇게 말하니 최집사님은 하나님은 머리카락 하나하나
다 세는분이니 너의 마음을 다 알고 계시니
그저 주여!주여! 하고만 있어도 되니
실컷 외쳐 보라고 하였다
10.하나님의 음성
난, 최집사님이 시키는데로 기도굴에
들어가 기도를 하려고 하니 사람이 너무많아
기도굴을 잡을 수 없어 예배시간에 기도굴에 들어갔다
최집사님은 예배시간을 꼭 지키라고 하였지만
많은 사람들 틈에서 몰래 빠져나와 기도굴에 들어 갔다
기도 한번 해보지 않은 나였지만 최집사님이 알려 주신데로
주여!하며 소리를 지르며 기도아닌 통곡을 하였다
기도가 무엇인지도 모르는 나는 눈물,콧물을 흘리며
두루마리 휴지도 거의 다 사용하면서
내 가슴에 맺친 한을 토해냈다
하나님! 인기가수만 만들어 주시면, 출세만 시켜주신다면
하나님 하라는데로 할게요 하면서
이런말을 계속 하며
통곡을 하고 있는데 어디선가"십일조를 해라""십일조를 해라"
하는 음성이 두번씩 두번이나 들려 오는 것이었다
나는 고개를 들고 사방을 보니 아무도 없었다
나는 예사로 생각하고 계속 인기가수,출세를
부르짖는데 십일조를 하라는 음성이 세번째 들려왔다
그때 나는 너무 화가 나서 고개를 쳐들고
이 달부터 하면 될것아니요! 하면서 삿대질을 하면서
하나님께 약속하였다
지금 생각 하면 부끄러운일 이다
내가 너무 돈에 인색하니 절대로 십일조를 하지
않을것 같으니 하나님께서는 나에게 축복을 주시기 위해
음성을 주셨던 것이다
만일 그때 하나님께서 십일조를 하라는 음성을
못들었드라면 온전한 십일조를 드리지 못하고
십일조에 대한 중요성도 깨닫지 못하고
그럭저럭 예수를 믿었는지도 모른다
그당시 나는 너무 지쳐있었다
밤무대 가수는 최소한 다섯곳 이상 업소를
출연 하여야 의상비,악보 아렌지, 차량비용 등
여러가지 경비를 충당할수 있는데
나는 한 업소 밖에 일자리가 없었다
라디오는 6개월을 TV는 서너번 등 출연하며
PR을 했지만 TV에 알려지지 않은 가수였기에
한업소에서 그당시 30만원 밖에 받지 못했다
그 돈으로 방세 5만원 토큰비, 생활비등
이것저것 제하고 나면 한달 겨우 살아갈때 였다
천원짜리 헌금이 아까워 껌을 사먹고 거슬러와
백원동전을 헌금하던 나였기에 십일조를 하라는
음성을 들으니 십일조를 하는것이 너무 아까워
삿대질을 하면서 이달 부터 하면 되지 않느냐면서
화를 내었던 것이다
지금도 생각하면 그때의 내모습이 너무 부끄럽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축복 해줄려고 준비하고 있었는데
내가 받을 그릇이 못되니 이렇게라도
음성을 들려 주셨든것이다
11.십일조 후의 기적
나는 십일조의 음성을 듣고 나와서
최집사님께 사실을 이야기 하니 내 손을 붙잡고
눈시울을 적시며 "그봐라! 내가 어느 누구를 전도해도
헌금이야기를 않하는데 정미자매 기도만하면 십일조를 하면
꼭 축복 받을것 같아 그랬다" 하면서
헌금 드리는 방법에 대해 이야기하셨다
하나님은 어느곳에 있는 돈도 받으시지만
하나님은 정성과 중심을 보신다고 하시며
항상 깨끗한 돈으로 미리 준비하여 정성것 드려라
하면서 자기 성경책속에 깨끗한 새돈을 보여 주시는 것이었다
나는 순종은 잘하는 편이었다
월급날이 매달27일이라 1월 첫달,그러니까 교회 처음 출석한지
약3개월만에 정성것 십일조를 드렸다
그렇게 돈에 인색한 나였지만 월급날 제일 깨끗한 돈을 골라서
30만원 월급중에 십일조 3만원(당시 경리월급 반달분)을
봉투에 넣고, 방세 5만원 교통비,생활비등 을 제하고 나니
이삼만원이 남었는데도 마음이 기뻤다
그런데 몇달을 정성것 십일조를 하였는데도
하나님은 일자리를 계속 한 곳밖에 주지않아
나는 최집사님 한테 따졌다. 집사님!왜 십일조를
정성것 하는데도 왜 축복을 주지 않는거에요, 하면서 따지니
집사님께서 하나님은 기도를 금방 들어주기도 하고
시간이 흐른뒤에 들어주기도 하니 좀 기다려 보아라
하는것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어린애 같은 아무것도 모르는
부끄러운 신앙이었다
지금도 가끔 최집사님은 그때를 생각하며 나를 놀린다
그런데 이말이 떨어지자 마자 몇일 있으니
일자리가 세곳,또 다섯곳에, 아홉곳까지 들어왔다
밤무대 가수는 이곳(무교동) 저곳(영등포등) 옮겨 다니며
노래를 부르기에 하루밤에 다섯군데 하기가 힘들다
그런데 나는 영등포 바닥 한곳에 다녔기에
아홉군데가 가능하였다
밤무대 가수는 출연하고 있는 옆에 업소는 출연을
안시키게 원칙인데 업소사장의 눈과 귀를 막아주었다
나는 초저녁 부터 새벽녘까지 캬바레나 나이트클럽에서
노래를 부르며 열심히 일했다
그래서 몇달만에 집도 700만원의 전세집으로
이사가게 되었고 중고차도 사서 타고 다녔다
그러면서 돈을 모으기 시작하였다
"잊지말아요"란 나의 곡을 다시 PR하기 위해서였다
PD들도 노래와곡이 좋으니 선전하라고 유혹도 하였지만
나는 내 모습이 TV에 나오는 모습을 배다른 형제에게
보이고 싶은 복수에 찬 마음이 이었다
이런 나에게 하나님은 그냥 놔둘리 없다
열심히 약 9개월가량 일하는데 갑자기 책한권
들을수 없이 기운이 짝빠지고 힘이없어
폐결핵이 다시 재발했나 하고 겁에 질려 병원에 갔다
의사선생님은 폐사진을 보면서 폐와간도 이상이 없으나
너무 과로해서 그러니 10여일 입원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하룻밤에 한곳에 만원이면 9만원을 벌지 못한다는 것이
너무 안까워 삼일만 입원하기로 하고
병원에 입원을 하였다
12.서원기도
병원에서 3일 쉬기로하고 독방(특실)에서 입원하고
무료하게 보내면서 몇일간 돈을 벌지 못한다는 생각에 안타가운
마음으로 하루밤을 보냈습니다
이틀째 되는날 나는 갑자기 병원시트에서 무릎을 꿇고
묵상기도를 하고 싶었습니다
기도도 할줄도 모르는 나였기에 눈을감고 한참 있었는데
갑자기 지나온 생각이 떠오르면서 필름 지나가듯
나의 어린시절이 주마등 처럼 지나가는 것이었다
어린시절 외할머니께서 나를 키워준 집에 데려놓고
가신 모습부터 나의 고통스러웠던 시절이 필름 돌아가듯
돌아가며 갑자기 하나님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었습니다
"딸아! 너의 몸을 한번 만져 보아라"하시는 것이었다
나도 모르게 온몸을 만져 보는데 종아리에 불에 덴
흉터를 만지게 되었다
그러시면서 네가, 내가 아니었으면
흉칙한 몸으로 남들 앞에 노래를 부를수 있을줄 알았느냐
하시는것 같이 나의 마음속에 들려왔다
아닌게 아니라 어렸을적에 내가 너무 극성맞아
매를 더많이 맞은 것이었다
2장에서 말씀한데로 내가 극성스러워 펄펄 끓는 가마솥위에
올라갔다 미끌어지는 바람에 온몸을 데어 두달 가까이 치료를 받고
깨끗하게 고침을 받았습니다
또 천호동 염직공장에 있을때 추위를 많이 타던 나는
연탄불 앞에 쪼그리고 앉아 불을 쬐다 옷에 불이 붙는줄
모르고 졸다 화상을 입고 한달넘게 치료 한일이 있었습니다.
그러시면서 내가 너를 내 도구로 쓸려고 세상에 내보내어
단련 시키었는데 너는 어찌 세상 인기가수만 되려고 하느냐
그러면 옛날로 되돌아 갈 것이다 하는 것이었다
그러시면서 "너는 두려워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것이라"
이사야43:1∼2절 말씀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말씀 한번 본일이 없고 단지 주기도문과 사도신경을
외운게 전부였고 어쩌다 찬송가 뒤표지에 있는 십계명을
본게 전부였다
그러면서 십계명에 "도적질하지 말찌니라" 라는
말씀이 떠오르면서 회개의 문이 열리기 시작하였다
나의 신앙을 안내 해준 최집사님께서 예배시간에 일찍나와
한주간 지었던 죄를 회개하고 찬양하며 예배를
준비 하여야 한다고 하였을때 나는 착하게 살아 누구한테
사기친 일도 없으니 회개 할일이 없다고 따지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나를 회개 시키기위해 시립병원에 있을때 배가 고파서
시장에서 조기 한마리 훔쳐 먹어던 모습을 보여 주는 것이었습니다
나는 깜짝 놀라 눈물을 흘리면서 회개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나는 예수를 믿으면서 밤무대 생활하면서
대중가수로 인기가수의 욕망은 사라지지 않고 세상적인 것을
얻으려고만 노력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꼭 책망 하는것 같았습니다
네가 노래하나 할줄 알았느냐?
내가 너를 세상에 내보내어 훈련시키고 단련 시키어
내 도구로 쓸려고 하는데 너는 어찌 세상 것만을 추구하느냐!
나는 한없이 울며 나를 낳아준 육신의 부모는 나를 버렸지만
무한하신 우리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나를 위로하시고
나를 지켜 주시고 나를 인도 해주신다는 사실에 한없이
감사하고 감사했습니다
모래알같이 수많은 사람중에 나를 택해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그래! 나도 쓸모없는 인간이 아니구나!
쓸모없고 마른 막대기만도 못한 나같은 죄인을 도구로
쓰시기 위해 나쁜 길로 빠지지 않게 하시고
나쁜 사람 만나지 않게 해주시며
양육 시켜주시고 곱게곱게 길러 주셨으니
주님의 은혜가 너무 고맙고 감사합니다
주님! 이제 세상 노래 그만하고
주님만 찬양하는 복음가수가 되겠습니다 하면서
하나님 앞에 서원을 했습니다
서원을 하고 나니 몸이 가쁜하여 삼일 입원하기로
하였는데 취소하고 곧 바로 퇴원을 하여
내가 온가족을 전도한 후배집에 가서 이제 세상노래 그만하고
복음가수가 되려고 하니 600만원에 밥값5만원씩 주기로 하고
있기로 하였습니다
당시 같은 연예인선교회 소속 윤용섭 집사님께서(현제는 목사님)
"주님 내게오시면"과 "주님 나를부르셨으니" 이두곡을
작곡하고 세상노래 그만하고 음반 만들어 복음가수가 되면
세계적으로 사용 하실 것이라고 하였는데도
나는 한쪽 귀로 듣고 한쪽 귀로 흘려 버렸던 것이다
그러나 밤무대 일을 마치고 곧 바로와 도깨비 같은 화장을 한체
교회에 와서는 이 찬양을 불러 여의도순복음교회에서는
이 두 곡을 힜트 시키었습니다
성도님들은 음반을 내라고 아우성 이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오직 대중가수로서
인기가수가 되려고 하였던것입니다.
13.복음가수 첫출발
하나님께 서원하고 병원에서 나와
유흥업소등 모든걸 정리하고 나오니
유흥업소에서는 내 마음도 모르고
캐런티를 더 올려 준다고 하면서 붙잡았지만
나는 하나님과 약속했기에 거절하였다
거절하니 더 인기가 좋아지는것 같았다
그때가 1984년5월,
나는 곧바로 "주님 내게오시면"과
"주님 나를부르셨으니"를 음반을 만들자 전국에서
부르지 않는 교회가 없을 정도로 음반테이프가 팔려 나갔다
그러나 나한테는 돌아오는 돈이 없었다
내가 세상을 잘몰라 계약을 하지않아 그랬던 것이었다
하여간 회사는 많은 수익을 올렸다
나중에 그 댓가로 5집까지 찬양집을 내주었다
나는 세상가수 시절에는 배고파 본일이 없었는데
복음가수가 되고 부터 엄청난 시련과 훈련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개척교회만 보내시는 것이었다
목사님 가정만 있다든지 할머니 몇분만 있는 교회를 보내니
사례비를 주면 받아 올수가 없어 헌금하고 오니
밥을 굶을 수 밖에 없었다
또한 교회가 경제적으로 어려우니 목사님 돈쓰씨는 것이 안타까워
밥을 먹고 왔냐고 물으면 거짓말로 먹고왔다 하면서
쫄쫄 굶은때가 한두번이 아니었다
지금도 개척교회 하시는 목사님들은 힘드시지만
그 당시는 물질이 없던 시대 이기에 더 어려웠던 것이다
또한 지금 복음가수가 되신 분들은 몇몇 선배들이 고생하며
길을 닦어 놓았기 때문에 고생을 덜 하고
활동하니 그 당시 사정을 말해도 이해를 못한다
또한 그당시는 복음가수가 손꼽을 정도로 몇명 되지도 않았다
옛날에는 열쇠가 있어도 문을 안에서 열어
주지 않으면 못여는 고리로 잠그기에 지방에 갔다오면
새벽녘에 도착하니 문을 열어 달라고 깨우기 미안해 현관앞에 떨며
아이가 여섯시경 학교 갈때까지 기다릴때도 있었다
자동차에서 히타를 틀고 앉아 있어도 되는데
사례비를 헌금하고 오니 연료를 넣을 돈이 없기에
절약 하기 위해서였다
이런 고난으로 방에 들어오면 이불을 뒤집어 쓰고 엉엉 울면서
하나님한테 기도를 많이 드렸다
어느때는 눈물이 앞을 가려 운전을 못할때도 있었다
내가 온집안 식구를 전도했는데도 친구어머니는
나를 핍박을 많이 했다
밥을 먹으려고 보면 밥에 김치 고추가루가 뭍어 있는 찬밥을
남겨놓기가 일쑤였다
분명히 한달에 오만원의 밥값을 주는데도...
그때는 그분이 믿음이 없어서인지 나를 엄청나게
핍박했다. 어떤때는 밥값을 두달씩이나 밀리고 못주니
방을 사용 하겠다며 비워달라고 하기도했다
지금은 그분은 여의도순복음교회 권사님이
되어 믿음이 좋아 많은 봉사를 하고 있다
그리고 어머니처럼 나에게 잘해주고 있다.
14.고난 뒤에 축복
그렇게 많은 개척교회를 다니면서
봉사 하였든이 지금은 개척교회들이 크게 부흥성장하여
옛날을 잊지않고 나를 자주 불러주신다
참 고마운 일이다
그동안 많은곳에 심었더니 지금은 미국으로 일본으로
전국 방방곳곳 안가는곳 없이 하나님께서 불러주신다
작년연말(2002년)에는 최우수 복음가수상까지 수상받았다
나같은 부족한자를 하나님께서는 부끄럽지 않게 해주신다
이야기가 다른데로 흘렀습니다
방세를 밀리면 방을 쓰신다고 비워달라고
하든 때인데 나의 신앙을 안내해준 최집사님께서는
하루는 내손을 조심스럽게 잡드니 나더러 교회에 건축헌금을
해보라고 권하는 것이었다
집사님! 나 지금 방세가 두달씩 밀려 나가라고 해요
그러니 건축헌금을 할수 없을것 같아요 했다
그당시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성도님들이 많아 교회가 비좁아
3층을 증축하려고 하던때이다
그런데 집사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이 성전은 건물이지만
예수님의 몸이야 예수님의 몸에 박정미가 드린 벽돌이
붙어있다고 생각해봐 하는것이었다
나는 그말씀에 은혜를 받고 건축헌금을 드리기로 했다
드리려고 하니 돈이 없어 궁리끝에 월 만원씩
일년 12만원(당시 여자 한달 봉급)을 작정하여
찬양가서 사례비를 받으면 십일조 떼어 놓고 조금씩 모여
3달에 4만원씩하여 세차례로 드렸다
그때는 나에게는 큰 돈이었다
지금도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보면 예수님의 몸에 박정미가 드린
벽돌이 붙어 있다고 생각하니 기쁘다.
하루는 집에서 쉬고 있는데 강원도에 계시는
잘아시는 목사님께서 목요일밤 마지막 부흥회인데
찬양을 위해 녹번동 베데스다 기도원으로 오라고 해서 갔다
말씀을 끝내시고 이제 날씨가 추워지니
기도원에 보일라도 켜야하고 또 천장에 비가세니 수리도 하여야하며
피아노도 없으니 기도 해보고 헌금을 작정하라고 하셨다
그러시면서 피아노 120만원이 제일 많은데 혼자 못하면
세사람이 나누어 하라고 하시면서 이 자리에 혼자서 할사람이
있을것 같다고 하시는 것이었다
나와는 무관한 일이었다
나는 그 큰돈이 없기 때문이었다
예배를 마치고 희미한 불만 켜놓고 나와 몇사람이 남아
기도를 하고있었습니다
그날도 여지없이 나의 찬양 뒷바라지 해줄수 있는 남편을
달라고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한참 기도하고 있는데 하나님께서 나 혼자 피아노 120만원 헌금하라는 하나님의 음성이 나의 마음속에 왔습니다
나는 깜짝 놀랐습니다
나는 돈이라고는 방세 보증금 600만원 뿐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나는 울면서 못해요!
빼앗아 갈려면 부자돈 빼앗아 가세요!
이 말만 20여분동안 하면서 얼마나 몸부림을 쳤던지
앞에 앉아 있던 나는 제일뒤에서 뒤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너는 나에게 달라고만 했지
내가 하라는것 한번 해보았느냐
네가 못하면 나도 해줄수없다 하시는 것같이
나의 마음속에 들려왔습니다
할수없이 나는 울면서 하면 될것아니요 하면서
손을 반쯤 들고 하나님께 약속하였다
그리고 나와서 부흥강사님께 가서 하나님께서 나혼자
피아노 하래요 하면서 울면서 말씀을 드리니
내 형편을 잘아시는 부흥강사님께서 위로 하시면서
원장님과 함께 달구똥같은 눈물을 흘리시며
한 10여분 동안 기도를 해주시는것 같았습니다
나는 그때 목사님들의 눈물의 기도가 얼마나 위력이
있는지 깨달았습니다
15.약속헌금...
하나님께 피아노120만원(당시 시세)의 헌금을
하기로 약속을 했으나 돈을 마련할 길이 없어 걱정을
하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하나님께서 피아노헌금을 나혼자 하라고 했으니
이제 큰교회와 큰집회에 보내어 사례금도 받아오고 테이프도 팔아
약속헌금을 할수 있겠지 하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이 달랐습니다.
잠언서16:9절에보면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말씀처럼 더 작은개척교회 아니면 할머니 몇명만 계시는 농촌교회를
보내는 것이었다.
나는 약속헌금을 할수 없을것 같아 아침금식하며
일주일 작정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너 방세보증금 6백만원 있지않느냐
하는 것이었다.
아버지 그러면 2백만을 빼어야 하는데 이 돈 같고 나는 어디로가요
하니 염려마라 지금까지 입혀주고 키워 주었는데 무슨 걱정하느냐
하는것 같았습니다.
그동안 방세를 두달치 밀린 상황이라 친구 어머니께서
방을 사용하려고 하니 비워 달라고 하던때였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하고 어머니께 꼭 필요해서 그러니
월세를 만원 더 올려 드릴테니 2백만원만 빼달라고 하니
거짓말 같이 쾌히 승낙 하는것이었다.
그러면서 일주일만 기다려 보라고 하는것이 아닌가.
나는 사람 마음이란 간사 하기때문에 또언제 마음이 변해
나가라고 할가봐 일주일 아침금식을 하며 기도하였다.
일주일 후에 불러서 가보니 2백만원을 주는것이었다.
꼭 꿈을 꾸는것 같았습니다.
나는 피아노헌금 120만원을 먼저 빼놓고 밀린방세 10만원을
드리고 나머지 70만원을 은행에 넣으니 꼭 부자가 된 기분이었다.
120만원을 봉투에 넣고 녹번동에 있는 베데스타기도원으로
올라가는데 발걸음이 가벼워 "주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이 찬양을 부르면서 기도원으로 올라가
원장님께 드리니 깜짝 놀래시는 것이었다.
대부분 약속 해놓고 헌금을 하지 않는다고 한다.
훗날에 기도원이 부흥이 되어 원장님께서 세금과 보험료까지
다 내주시고 새로나온 빨간 프라이드 승용차를 사주셨다.
지금은 베데스타기도원이 강릉으로 아름답게 건축하여 이전하였다.
16.흔들어보시는 믿음
하나님께서는 물질이 없는 나에게 여러가지의 물질을 받치라고
나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그때마다 개척교회 종탑을 해드리고 건축헌금을 드렸습니다.
또한 안산에 저의 작은 헌금으로 교회가 개척되어
지금은 큰 대지위에 중형교회로 성장한것을 보니 마음이 기쁩니다.
지금은 물질이 넉넉한 시대라 교회가 개척할때
어느정도 시설을 갖추고 개척하지만
물질이 귀하던 시절인 전에는 개척하시는 목사님들이
지금보다 힘들게 개척하시는 것이었습니다.
나에게 하나님께서 개척교회 소명을 주셔서 내 눈으로
어려운 곳을 보고 사례비를 받아올수가 없어 헌금하고 오게 만들어
어느땐 자동차 연료비가 없어 눈물을 흘리며 오는 것이었습니다.
복음가수가 되고서 부터 하나님께서 밥을 굶게하시고
물질로 어려움을 주시는 것이었습니다.
어느땐 개척교회에 가면 식사 하고 왔느냐고 물으면
먹지도 않했으면서 먹고 왔다고 한것이 한두번이 아닙니다.
성도가 한두명 아니면 할머니 몇분 아니면 어린애만 있는 교회이니
밥을얻어 먹을수가 없어 먹고왔다고 거짓말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집에와서 이불을 뒤집어쓰고 엉엉울며
기도하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세상노래를 할때는 물질로 그렇게 어려운일이 없었는데
세상일을 끊고 복음가수가 되니 물질로는 어렵게 살았습니다.
이것이 연단이요 나를 성숙한 믿음으로 이끄는 길 인것을
나중에서 깨달았습니다.
"주님내게오시면"과 "주님나를부르셨으니"이 두곡의 찬양이
전국 교회마다 안부르는 교회가 없었는데도
박정미의 이름은 땅속에 묻어놓고 누가 부르는지도 모르며
저의 찬양이 힛트하고 음반은 많은 곳에 팔려 나갔지만
나에게는 돌아오는 물질(당시 로얄티 관계를 몰라)은 적었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감사한지 모릅니다.
만일 찬양이 불리워진 만큼 내이름이 알려지고
음반이 팔려진 만큼 나에게 물질이 돌아왔다면
나는 교만해져 오늘날까지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받지
못했을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당시에는 복음가수가 몇명 되지는 않했지만
지금은 거의다 들어 갔기에...
이처럼 하나님은 교만한자를 절때 사용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금년 5월이면 20년을 하나님의 도구로 끊임이 없이 사용해주시니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폐병 때문에 배우지도 못하고 어느 하늘밑에 살고 계시겠지만
나를 낳아준 어머니 성도 이름도 얼굴도 모르고
내 생년월일도 제대로 모르는 고아아닌 고아를
그리고 못난 나같은 인간을 하나님께서 미국으로 일본등으로
안가는 곳이 없이 보내주셔서 가는곳마다 환영을 해주시니
하나님 은혜 감사할 따름입니다.
오늘도 오직 주님만을 감사해서 찬양만 드리고 오늘은 이곳
내일은 저곳 마다하지 않고 복음을 위해 찬양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을 믿는 성도님들도 감사와 찬양이 항상
입에서 흘러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자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고 했으니까요.
17.갈등의 시간
내가 복음가수 이면서도 아직 덜깨져 교회에서 뭘 시키면
순종하고 일을 하여야 하는데 왜 나만시키고 저사람은 안시켜요 하면서
어쩌고 저찌고 하면서 불평하니 하나님께서는
복을 주려고 준비를 하고 계시는데 내 그릇이 더러우니
복을 주시지 않는 것이었어요. 그것을 나중에서 깨달었습니다.
복음가수로 서원하고 복음가수로 활동 하면서
나는 경제적으로 무척 힘들었습니다.
매일처럼 개척교회만 가다보니 사례비를 받아 올수 없어
밥을 굶다 싶이 하여 다시 세상으로 나가야겠다는 마음이
굳어져 가기 시작해졌습니다.
또한 일본 음반회사에서는 일본가수로 데뷰 하자면서
음반을 내어 일본에서 유명 가수로 만들어 주겠다고 유혹하고
밤업소에서는 캐런티를 더 올려줄테니 나와서 일하자고
이곳 저곳에서 유혹이 왔습니다.
밥을 굶어가며 찬양사역 하다보니 마음에 갈등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정말 자신이 없어졌습니다.
그래서 세상에 나가서 돈을 벌어 주님 일 하자, 하면서
내가 어떤 작정을 하였느냐면
그래도 기도는 해보고 나가든지 어떻게 하든지
하는 마음이 생기는거에요.
그래도 신앙의 뿌리는 있으니까요.
아버지! 나, 도저히 자신이 없으니 축복을 해주시던지
그렇치 않으면 세상에 나가 돈을 벌게 해주시든지
이제는 내가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것을 확신하니
내가 이 고생하다가 지옥 갈수는 없으니
자살은 할수없고 이밤이 자고나면 하나님께서 조용하게 예수님 품으로
데려 가시든지 아니면 내손으로 꼭잡히게 해주시든지
아니면 내눈으로 확실히 보여 주시든지 아니면 내 귀로 분명히
들려 주시든지 그렇지 않으면 나, 세상에 빠져 나갈래요.
아마 그때 하나님께 기도 안드리고 내마음 대로 나갔다면
지금 복음가수가 안되었을 거에요.
아마 돈이 좋아가지고 눈이 어두워 술도 다시 먹게되고
세상이 좋아 방탕하고 그랬을 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 은혜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18.꿈속에서 하나님의 음성
아마 그때 하나님께 기도 안드리고 내마음대로 나갔다면
지금 복음가수가 안되었을거에요.
아마 돈이 좋아가지고 눈이 어두워 술도 다시 먹게되고
세상이 좋아 방탕하고 그랬을것입니다
얼마나 하나님 은혜 감사한지 모르겠어요.
이글을 보시는 성도님들 혹시 무슨일이 있을때 절대로
내혼자 생각하고 내혼자 멋대로 하지 마시고 내혼자 괴로워 하지
마시며 담임목사님께 찾아가셔서 목사님, 내가 지금 이렇고 저런
어려운 일 있는데 같이 기도해주세요 하고 말씀드리세요.
한사람이 천을 쫓고 두사람이 만을 쫓는 다고 하였으니
우리 성도님들이 혼자 기도하는 것보다 목사님의 기도가 능력이 있고
또한 새벽마다 눈물 뿌리며 내 성도을 위하여 기도 해주실 것입니다.
그러니까 어려운일이 있을때 절대로 혼자 해결하려고 하시지 말고
담임목사님께 찾아 오셔서 의논 하시고 같이 기도하세요.
그러면 분명히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실것입니다.
그때 저는 아침 금식하며 30일 작정 기도를 하기로 하고
하나님께서 이번에 응답해 주시지 않으면 세상에 빠져 나가라는
것으로 알고 세상에 도로 나갈래요.
그렇게 하고 작정 기도로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29일 되던날밤 꿈속에 깊은 산중에 자잘은 자갈돌이 어떻게
많은지 몰라요. 그런데 그옆에 큰 바위덩어리가 있는데
그 바위덩어리 뒤에서 하나님의 음성이 들려오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나는 하나님! 정미 여기 있어요. 제 이름을 불러 주세요.
아버지 나 여기있어요! 저를 좀 불러주세요! 하니
"사랑하는 내딸 정미야 너는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말라
내가 어디로 가든지 너와 함께 함이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꿈을 깨고 나니 나는 얼마니 기뻤는지 몰라요.
너무 너무 기뻤었요.
그러면서 회개의 기도가 나오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와함께 하신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내마음대로,
내뜻대로,내의지대로 신앙생활 했구나 하면서 하나님 용서해주세요.
하면서 회개하고 나니 마음이 기쁘기 시작하더니 교회에 가면
목사님! 뭘 할것 없어요? 장로님! 뭘 할것없어요?
하면서 봉사하고 싶어 물으면 사람들이 내마음이 변했다고
어디가 이상하지 않는가 죽을때가 되지 않했는가 할정도로
내가 생각해도 많이 달라졌습니다.
성도님들, 우리가 예수를 믿어면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가 혼자 해결 하려고 하시지 마시고 기도 열심히 해보세요
주님의 음성을 들을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의 음성을 못듣는것은 기도를 안하기 때문에
또한 믿음이 없기 때문에 못듣는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 하시고 순종해보세요.
지금 이순간도 하나님께서는 불꽃같은 눈동자로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마시고 열심히 기도하시고 봉사해보세요.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실려고 해도 깨끗한 그릇이
안되니 주지 않는것입니다.
그 꿈을 깨고나서 하나님께서 영감의 가사를 주셨습니다.
그 찬양이 바로 "예수여" 라는 찬양입니다.
19.나의 결혼이야기(1)
나는 결혼을 하려고 하여도
배운것이 없고 부모형제도 없으니
결혼하기가 힘들었습니다.
결혼하려고 하니 학력이며 양부모는 있느냐
형제는 몇이냐고 물으면 나는 해당되는게
하나도 없었습니다.
나는 폐결핵 때문에 공부도 제대로 못하였을뿐
어머니 얼굴과 이름도 또한 내 생년월일도 확실히 모르는
고아같은 인생이었는데 결혼 조건에 맞는것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결혼 기도를 끊임없이 하였습니다.
내 찬양사역 뒷바라지 하여줄 남편을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그러다가 잘아시는 권사님께서 좋은 남자가 있는데 하면서
소개를 해주었는데 내 가정환경을 묻는거에요.
다 사실대로 이야기 했더니 결혼하기 힘들겠다고 하면서
성사가 되지않아 그때부터 나는 실망하고 나 같은것은
결혼도 못하겠구나 하면서 그때부터 결혼 기도를 않했습니다.
세월이 몇달 흘렀는데 갑자기 하나님께서 결혼을 위한 3일 금식기도를
시키시는 것이었어요.
그러면서 저는 제가 아시는 목사님,장로님 권사님.집사님 할것없이
약 30여군데 전화를 걸어 이번에 하나님께서 결혼을위한 금식을 3일
시키셨는데 같이 기도하여 달라고 부끄러운줄도 모르고 부탁하였습니다.
그런데 금식 이틀째 되던날 하나님께서 응답 해주셨는데
에스더에 있는 말씀을 주시는 것이었어요.
에스더에 보면 에스더 왕비가 나라와 민족을 위하여
죽으면 죽으리라 하고 3일 금식하고 왕 앞에 나갔잖아요
말씀에 보면 왕이 부르지 않했는데 왕앞에 나가면
왕비 자리가 폐쇄 되는것을 불구하고
에스더 왕비가 나라와 민족을 구하기 위하여 왕앞에 나갔는데
에스더 왕비가 너무 아름답게 보여 왕이 가까이 오라하며
훌을 내리잖아요
그러면서 그대여 무엇을 원하는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노라
하는 이 말씀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것이었어요.
맞다,이거다! 하나님이 주시는 분이라면 그대여 무엇을 원하느냐
나라의 절반이라도 주겠다는 사람이 있다는것을 확신했습니다.
그러면서 종이에다 다섯가지를 적어놓고 상세하게 기도했습니다.
일번: 아버지,내가 키(1m49cm)가 너무작으니까 키(1m75cm∼1m80cm)가
큰 사람을 주세요 하고 적고
이번: 아버지, 내가 이렇게 키가 작고 빼싹 말랐는데(지금은 살이 쪘지만)
남자까지 빼싹 마르면 둘이다 말라서 보기싫으니
좀 퉁퉁한 사람 주세요.
삼번: 아버지, 내가 이렇게 지금까지 고생만하고 살았는데
남자가 집하나 없으면 어떻게해요
조그만한 집이라도 좋으니 집있는 사람주세요.
사번: 아버지, 집만 있으면 어떻게해요 처자식 먹여 살릴수있는
직장있는 사람 주세요. 공무원도 좋고, 군인도, 좋고
사업하는 사람도 좋으니 처자식 먹일수 있는 사람주세요.
마지막으로
오번:아버지,빚 없는 사람 주세요 빚으면 제가 감당 못해요.
이렇게 조목 조목 종이에 적어 하나는 방에 놓고
한장은 차에 놓고 기도했습니다.
20.나의 결혼이야기(2)
결혼을 위한 금식3일을 작정하고
이틀째 하나님께서 주신 에스더의 응답을 받고
종이에다 조목조목 기도제목을 적고
구체적으로 기도 하였습니다.
그러고 있는데 김00 목사님께서 좋은 남자가 있으니
선을 보게 빨리 을지로로 나오라고 전화가 왔었습니다.
그러잖아도 결혼금식 기도를 한다고 기도를 해달라고 전화를 하려고
했는데 마침 전화가 왔었습니다.
그런데 금식 이틀째 이라서 내스스로 느끼기를
좀 꽤재재한 기분이 들기에 목사님, 지금 금식 이틀째라서
좀 힘이드니 금식 끝나고 보호식을 마치고 만나요, 라고 하니
목사님께서 금식이고 뭐고 사람을 보고 금식하든지 하라고 하면서
빨리 나오라고 하기에, 순간 맞다 목사님 말씀에 순종하여야
한다는 마음이 생각나는 것이었어요.
또 에스더 있는 말씀을 응답까지 받고서 의심했구나 하면서
목사님! 지금 나갈게요 기다리세요. 하면서 빨리 준비하여 나가기전
적은 종이를 놓고 기도하고 또 차에서도 기도 하며 갔다.
을지로에 차를 주차시켜 놓고 남편의 사업장을 갔는데
가는도중 바라보니 목사님과 남편과 가게 앞을 왔다갔다 하는데
멀리서 보아도 키가 크게 보였습니다.
그날 처음 보는 남편을 보고 여러가지 이야기를 하고 돌아왔었습니다.
몇일이 지났는데 남편께서 전화가 왔어요.
그후로 우리는 자주 만나고 번개에 콩볶아 먹듯시 그해 가을 결혼식을
여의도 순복음교회에서 성대하게 하였습니다.
그날 하객으로 많은 목사님과 성도님들,또 동료가수들이
자리를 꽉메웠습니다.
신혼 여행은 대전으로 찬양집회차 갔었어요.
도착하니 초청하신 목사님께서 좋은 일류호텔을 예약 하여 주셨습니다
여러 성도님들 아직 결혼을 하지 않하셨다면 꼭 기도 하시고
하나님이 주신분과 결혼하세요.
요즘 얼마나 많은 가정이 깨지고 있습니까.
하나님이 주신분이라면 이것찾고 저것찾지 않고 하실것입니다.
나같은 사람을 위하여 하나님이 남편의 눈을 확 되비지게 했던것입니다.
지금까지 남편은 내 기도대로 찬양 뒷바라지를 해주시고 있습니다
몇년전 부터는 늘찬양예술선교단을 연출 기획하면서
사업장은 남한테 맞기고 저와 같이 다니면서 음향 조명을 맡아서
해주시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제 기도를 하나도 빠지지 않고 들어주셨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