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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농하기 7 작성일 2008-12-21
한 해를 마감할 때마다 사람들은 희망을 갖습니다. 내년에는 나아질 거야. 좋아질 거야. 암, 그렇고말고. 그러면서 반성도 합니다. 올해는 내가 게을렀으니까 내년엔 열심히 해야지! 그런데 말예요, 열심히 하면 나아질까요? 정말 내가 게을러서 비정규직으로 굴러 떨어졌을까요? 게을러서 대학시험에 낙방했을까요? 게을러서 취업을 못했을까요? 게을러서 떨어진 집값에 망연자실, 이도저도 못하고 꼼짝없이 대출이자를 와장창 뒤집어쓰고 있을까요? 게을러서요? 게을러서 그렇게 됐으니까 열심히만 하면 2009년에는 형편이 풀릴까요?
종교계에서 한 때 내 탓이요 운동을 했더랬습니다. 좋은 뜻이었죠. 모든 잘못을 남에게로 돌리기보다 우선 자신을 돌아보자는 뜻이었을 텐데, 이거 잘 못 해석하면 모든 현상을 간단하게 개인의 책임으로 돌려버리는 무책임한 집단의 횡포로 곡해됩니다. 이렇게 되면 어떤 문제든 잘못의 바닥에 깔려 있는 근본원인은 들여다보지 못하게 되는 거죠. 분석과 비판, 그에 기반한 방법론의 도출은 물 건너갑니다. 내 탓이요는 늘 화두로 쥐고 계시되, 전체의 잘못을 읽어내는 통찰력도 아울러 갖고 계시기 바랍니다. 그래야 잘못된 것의 근본을 밝혀내고 방법을 찾아낼 수가 있습니다.
‘국가가 여러분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묻지 말고, 여러분이 국가를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를 자문해 봅시다.’
미국의 35대 대통령인 존 F 케네디의 취임사 한 구절입니다. 전 이 말을 참 싫어합니다. 권리보다 의무를 먼저 행하라는 뜻으로 자주 인용되는 이 말은, 개발독재 시절 국민총화라는 구호를 내걸고 현장으로 온 국민을 내몰던 권력이 시도 때도 없이 써먹던 말입니다. 굳이 해석하자면 이런 말이지요.
‘지금이 때가 어느 땐데 불평불만을 일삼고 있어! 나라부터 살려야 잘 먹고 잘 살지! 닥치고 일이나 해!’
‘파이론’이지요? 파이를 키워놔야 나눠먹든 말든 할 게 아니냐는. 그 말을 듣고 대부분의 ‘국민’들은 ‘국가’를 위해서 닥치고 열심히 일했습니다. 불평불만을 품고 있는 놈들은 빨갱이 놈들이라는 선전에도 착하게 동의해가면서요. 그렇게 이 땅의 착한 '국민'들은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21세기까지 끌고 왔습니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를 10월 유신, 100억불 수출, 1000불 소득의 십진법 구호에서 출발시켜 세계 10대 경제강국이라는 10진수에 도착하게까지 만들었습니다. 파이를 큼지막하게 만들었던 거죠. 우리 자신도 놀랄 만큼의 크기로. 그래서 이제 이 파이를 좀 나눠 먹자고 하는데, 그랬는데, 그 착하고 성실하고 바보 같은 국민들이 여기저기서 쫓겨나고 빼앗기고 짓눌려서 숨도 못 쉬고 망연자실하고 있습니다. 이게 웬 일입니까?
실질임금이 반 토막 나기도 하고 그마나 못 받기도 하고 갑자기 잘 다니던 직장에서 나가달라고 합니다. 주식 못하면 바보, 펀드 안하면 더블 바보, 아파트 투기 안하면 트리플 바보 취급받기에 허겁지겁 쫓아다녔더니 평생 일군 재산이 쑥대밭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놓고 아무도 책임을 안집니다. 국민들 탓이랍니다.
국가를 위해 일하라면서요? 그래서 세상 바로잡자고 하는 이들을 모조리 빨갱이로 몰아붙이면서까지 일했습니다. 이만하면 이제 국가가 국민들에게 뭔가를 해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이제 와서 국민들 탓이라고요? 예전에는 소위 국가지도층이란 삐리리들이 나라꼴을 이 지경 만들고 나면 ‘사과’라도 하는 척 했고 자숙이라도 흉내 내곤 했습니다.
이제는 뭐, 그런 거 없습니다. 완전히 뻔뻔공화국 되어버렸습니다. 이 작자들은 뻔뻔함을 무기 삼아 정작 해야 할 짓은 안하면서 해서는 안 될 짓들은 골라서 하고 있습니다. 뭐가 해야 할 짓이고 뭐가 해서는 안 될 짓인지는 굳이 말씀드리지 않겠습니다. 다들 잘 알고 계시니까요.
자, 그래서요, 이런 놈의 나라, 뒤집어엎을까요? 성질나는 김에 확 세상 갈아치워 버릴까요? 뭐로요? 어떤 방법으로요? 그럴 수 있다고 치고, 그렇게 하면 정말 세상이 바로 설까요? 아닐걸요? 아쉽게도 아주 오랜 옛날부터 지금까지, 동서남북 그 어디에도, 이렇게 해서 올바른 세상이 만들어졌다는 기록은 전혀 없습니다. 지난번 글에서도 말씀드렸듯, 혁명은 지배자의 얼굴만 바꿨을 뿐, 지배와 피지배의 관계, 지배의 형식, 그 결과는 혁명 전이나 후나 그 놈이 그 놈입니다.
절망이지요? 그러니 그냥 국으로 엎어져서 이리 차면 이리 채이고 저리 치면 저리 치이면서 한 세상 둥글둥글 살아갈까요? 그런데요, 그렇게 국으로 엎어져서 산다고 한 세상 둥글둥글 살아졌다는 기록 역시, 전혀 없습니다. 뒤집어엎어도 안 돼, 국으로 엎어져 살아도 안 돼, 뭘 어쩌라는 거야! 이제 짜증이 슬슬 나실 겁니다.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철저하게 저들, 힘센, 권력을 쥔, 소위 말하는 기득권자들, 그리고 그들의 배후에 있는 자본의 앞잡이로 살기. 그러면 최소한 굶어죽지는 않을 겁니다. 그러나 이렇게 살려면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권력의 눈 밖에 나지 마십시오. 눈 밖에 난 순간, 그들은 당신들의 손에 쥐어 준 모든 것들을 순식간에 걷어갑니다. 한 때 내 것으로 여겼던 으리으리한 대문 밖으로 알몸으로 쫓겨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렇게 사시려면 저들보다 훨씬 더 악독하게, 잔인하게, 두 눈 질끈 감고 악행을 저지르셔야 할 겁니다. 일제강점기의 조선인 순사처럼 말이지요.
다른 하나는 탈출입니다. 그들이 그어 둔 금 바깥으로 자진해서 나가버리는 겁니다. 예전 같으면 가솔들 끌고 솥단지야 이불이야 바리바리 싸들고 고향 등지고 어디엔가 있을, 열심히 일하면 최소한 먹고 사는 건 해결할 수 있는 땅으로 가겠지요. 그러나 지금은 21세기, 이렇게 아날로그 식으로 탈출할 수 있는 땅은 지구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습니다. 21세기의 탈출은 디지털 식이라야 합니다. 아날로그가 선형이라면 디지털은 비선형입니다. 아날로그는 물질의 움직임이고 디지털은 체계, 시스템, 사고방식의 움직임입니다. 생각을 바꾸시라는 겁니다. 그러면 디지털 식 탈출은 가능합니다.
그러므로 귀농은 아날로그 식이 아니라 디지털 식의 탈출입니다. 산천 좋고 공기 맑고 물 맑은 곳에서 소박한 농사 짓고 소박한 밥상으로 소박한 삶을 일구는 아날로그 식으로는 저들의 추적을 피할 도리가 없습니다. 저들의 추적은 무섭고 끈질깁니다.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떠났기 때문에 대응할 변변한 무기도 없습니다. 저들의 추적망에 걸리면 속수무책으로 당합니다. 왜 추적하냐구요? 당연히, 시스템 밖으로 나간 모든 것들은 소수자가 됩니다. 아웃사이더, 왕따가 되는 겁니다. 이 사회가(시스템이) 소수자를 어떻게 취급하고 있는지는 잘 아시죠? 모든 관계망을 끊고, 조롱하고, 가두고, 회유합니다. 폭력행사는 일상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에게 탈출자들은 시스템의 반역자이기 때문에, 처단해야 할 대상이기 때문에 끝까지 추적하는 겁니다.
디지털식은 체계, 시스템, 사고방식을 바꾸는 것이라 말씀드렸습니다. 전혀 다른 시스템으로 세상을 읽고, 대응하고, 방법을 만들고, 실행하는 것입니다. 전혀 다른 시스템이기 때문에 저들은 뻔히 눈앞에 두고도 추적을 할 수가 없습니다. 레이더에 흔적이 없기 때문이죠. 지금까지 귀농하기 시리즈로 말씀드렸던 것들은 사실은 모두 다, 이 디지털식의 귀농을 말씀드린 겁니다. 내가 살아가는 방식을 바꾸는 것. 그 방식을 지금의 방식과 충돌시키지 않고 나란히 놓는 것. 이것이 디지털식의 탈출 방법이고 디지털식의 귀농방법입니다.
이제 밥 먹기와 똥 싸기를 말씀드릴 차례입니다. 이건 간단하지가 않습니다. 밥 먹기와 똥 싸기를 말하자면 식량주권, 환경과 전통과 문화, 자본과 식민성문제를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지금까지 말씀드렸던 내용 중 가장 어려운 내용일 수도 있습니다.
여하튼 밥 먹기부터 가겠습니다.
- 밥 먹고 똥 싸기 1 : 이경해의 죽음 -
이경해가 죽었다. 2003년, 저 멀리 멕시코 칸쿤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2002년 에콰도르 퀴토에서 FTAA(전미자유무역지대)협정에 실패한 미국은 2003년 멕시코 칸쿤에서 열린 WTO장관회의에서 원하는 것을 얻기 위해 노력했으나 이경해의 자결로 또 다시 좌절되었다. 이경해가 죽은 후, 2005년 홍콩에서 개최한 제6차 WTO장관회의에서 마침내 브라질과 인도가 미국과 유럽의 입장에 동조하면서 미국은 원하는 것을 얻을 길을 열었다. 미국은(또한 유럽은) 무엇을 얻으려고 했고 이경해는 왜 자신의 목숨을 던져 미국을 저지하려 했을까? 무엇 때문에?
농업은 단순한 산업의 한 분류가 아니다. 농산물은 치약이나 핸드폰과 같은 생산품으로 취급해서는 안 된다. 아주 단순한 논리다. 치약 먹고 살 수 있나? 먹을 게 없으면 핸드폰 분해해서 먹을 텐가? 농업은 사람이 먹고 생존할 수 있는 것을 생산하는 일이다. 모든 전쟁과 권력도 먹는 것을 확보하는 과정에 탄생했고, 아마 인류 최후의 전쟁도 먹을 것을 확보하기 위해 일어날 거다. 농업은 인간이 살아남기 위한 최후의 수단이다. 그러므로 농업은 단순한 산업이 아니다.
이 농업을 산업의 한 분류로 취급해버리면 어떤 결과가 올까? 워낙 많은 사람들이 그 결과를 알고 있기에 굳이 여기서까지 다시 세세하게 다 들추고 분석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대신, 대단히 일목요연하게 정리한 글이 인터넷에 있기에 퍼 온다. 이 글을 우선 주목해주시기 바란다.
식량 위기 지구를 덮치다 - 농업 포기한 국가의 모습
그러나 이 사건들을 단순히 먹을 것을 지배하기 위한 싸움으로만 국한시켜선 곤란하다. 사태는 이보다 훨씬 심각하다. 다른 분야도 마찬가지지만 농업분야에 관한 무역전쟁도 단순히 국가 간의 힘겨루기로 보면 안 된다. 워낙 복잡한 상황이기 때문에 친절한 설명을 할 수가 없어서 계속 간단하게 정리만 하고 있지만, 이 간단한 정리 뒤에 뭉쳐져 있는 세계붕괴의 폭탄을 봐주시길 바란다.
농업분야의 무역전쟁은 가난한 나라와 부유한 나라와의 전쟁이 아니다. 이것은 가난한 농민과 부유한 거대다국적기업과의 싸움이다. 가난한 농민은 선진국 후진국 할 것 없이 각 국의 농촌에 있다. 물론 선진국의 농민들은 형편이 좀 나을지도 모르지만, 이들의 박탈감과 절망의 농도는 모두 같다.
월터슈미트는 1940년대 캘리포니아 산호아퀸벨리의 산업식 농업구조와 소규모 농가의 비교연구를 통해 대규모 농업의 성장과 산업식 농업이 농촌공동체에 끼치는 영향을 연구했는데, 이런 결과가 나왔다. 대규모 농장의 농업 기계화는 농업 노동력의 축소, 즉 농민 가구수를 감소시켰고 농장의 수익은 먼 거리의 대도시로 반출되었으며 이 결과 그 주변의 모든 경제활동을 위축시켜 농촌공동체를 만드는 시스템이 사라졌다. 반면 소규모 농업이 있는 지역은 이를 떠받치는 지역산업이 활성화되었고 일자리도 많아졌으며 지역으로의 자금회전이 이루어져 공동체가 계속 발전, 유지될 수 있었다. 이런 현상은 제3세계로 가도 같은 결과로 나타난다.
그런데, 현재의 농업무역전쟁은 철저하게 자본의 논리로 진행되고 있다. 이렇게 되면 소규모농가는 고사할 수밖에 없다. 고사당한 농촌에는 농민들이 버린 땅들을 통합하여 대규모 농장이 들어선다. 1997년에서 2002년까지의 5년간 미국 내 2000에이커 미만의 소농들 중 9만명 이상이 농업을 포기했다. 곡물기업들이 쏟아내는 싼 농산물 가격을 이길 수 없었기 때문에. 같은 기간 중 2000에이커 이상의 농지를 소유한 농민의 수는 3600명 이상 증가했다. 9만명의 농지를 3600명이 나눠가졌다는 거다. 편의상 명이라는 단위를 썼지만 사실 이것은 명이 아니다. 개로 말해야 한다. 대농장의 소유주는 농부가 아니고 기업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형편은 어떨까? 이미 대한민국의 농업정책은 대규모 기업농으로 전환하고 있는 중이다. 기업농이라니까 뭔가 근사하게 들릴지 모르므로 용어를 대지주농이라 바꾸면 기업농 정책의 실체가 분명히 드러난다. 대지주와 소작농. 농사기업과 농사를 짓는 직원들. 이렇게 연결되는 거다.
20만 농가육성 정책이라고 들어보셨는지. 농림부가 발표했던 정예농업인력 육성 종합대책이다. 뭔가 근사하게 들리겠지만 속내를 보면 주곡전업농가는 7만, 나머지는 원예, 축산농가 육성책이다. 20만 농가라는 규모도 현재 농가의 1/4로 축소한다는 것이고 그 중 주곡농가는 7만으로 한정 선발하여 제도적 지원을 하겠다는 거다. 나머지 농가들은? 작은 규모들은 그냥 죽으라는 거다. 그래도 최소한 7만의 농가는 농촌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시길. 7만의 숫자는 현재 농민들 중 살아남는 농민의 숫자가 아니다. 7만이라는 새로운 농사기업이 생긴다는 거다. 정부의 농촌 정책은 경작권장이 아니라 경작중지권장으로 바뀌었다. 농사를 중단하면 보조금이 지급된다. 농사를 작파한 농토는 농사사업을 노리는 자본의 먹잇감이다. 이제 기업이라는 새로운 대지주가 농촌을 접수하면 조만간 우리가 농민이라 부르는 직종은 사라지고 플랜트 비정규직원이 농사일을 하게 되는 날이 온다. 그 한 많은 비정규직 말이다.
이렇게 농촌이 재편되면 이제부터 그야말로 전쟁이 시작된다. 가격경쟁력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이다. 작은 기업은 큰 기업에 흡수되면서 몇 개의 거대곡물회사로 농촌은 완전히 재편되고 원래 농민이라 불리우던 이들은 더 이상 농촌에서 발붙일 수가 없게 된다. 이들은 도시로 흘러들어가서 도시의 빈민이 되고 도시는 점점 거대한 슬럼으로 바뀌게 된다.
이들이 이탈한, 이미 공동체가 파괴된 농촌에 생긴 거대농장은 생산성을 높이기 위한 모든 수단을 다 동원한다. 공동체의 작동원리이던 상생의 원칙은 완전히 사라진다. 지력은 점점 떨어지고 땅이 더 이상의 생명을 잉태할 수가 없게 되면 자본은 땅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자본이 버린 땅은 생명이 살 수 없는 황폐한 땅으로 변한다.
도시빈민으로 변한 농민들은 도시의 밑바닥에서 더 이상 생산을 못하고 부양을 받아야 할 빈민으로 추락한다. 이들을 부양할 재원이 없는 가난한 나라는 국가라는 공동체를 이어갈 힘까지 상실하게 된다. 서남아시아, 아프리카, 중남미의 상황을 떠올리면 이 말이 이해가 되실 게다.
이들 지역의 도시와 농촌은 점점 더 파괴의 길로 들어선다. 물과 공기의 질은 나빠지고 식량은 점점 더 수입의존도가 높아진다. 마침내 물도 기업이 관리하게 되고 마지막으로 공기마저 기업이 통제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그 모든 것이 더 이상 나빠질 수 없을만큼 나빠졌을 때, 사람들의 생명줄은 마침내 거대다국적기업의 손에 들어간다. 물과 공기, 먹을 것을 쥐고 있다는 것은 세상의 모든 것을 다 쥐고 있다는 것과 같다. 자, 무엇이 연상되시는가. 식민지, 수탈, 압제, 노예, 이런 것들이 떠오르지 않는가.
자, 이제 다들 보셨다시피, 이런 상황이 미국을 비롯한 자본국가, 더 정확히 말하면 이들 국가의 배후에 있는 국제자본이 원하는 상황이고 이런 상황을 저지하기 위해 이경해가 자신의 목숨을 버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의 탐욕을 막을 방책은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곡물을 핸드폰 만들듯 생산하려는 자본의 농촌 침투과정을 제대로 모르고 있거나, 알고 있으면서도 그에 대한 대책을 적절하지 않게, 혹은 완전히 엉망진창인 방법으로 세우고 있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처럼.
이 상황을 막을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역에서 농업을 제외하는 방법이다. 농산물이 무역의 대상이 되어서는 안 된다. 간단한 논리이다. 농산물이 무역의 대상이 되면 비교우위론에서 자유로울 수가 없다. 같은 양의 농산물을 생산해도 생산비가 비싼 지역의 농업은 그 반대편의 지역에 의해 경쟁력이 없으므로 도태한다. 농업이 도태한 지역은 대신 자신의 비교우위 상품을 생산하여 상대편의 농산물과 교환하게 된다. 그리고, 농업이 완전히 도태한 지역에서 벌어지는 현상은 위의 글의 결과이다.
농업을 무역의 대상에서 제외하기 위해 지금까지 각국이 취해왔던 정책의 핵심에 보조금 지급이 있다. 정부가 농업에 지급하는 보조금은 낮은 생산원가를 보충해서 농업을 유지시키는 정책이다. 이것은 선진국이고 후진국이고를 막론하고 취하는 정책이다. 생산단가 이하의 결손금액을 보충하는 것이 보조금이기 때문에 농민은 안정되게 농사를 지을 수가 있다. 이것은 농업을 단순한 산업분류로 보고 있지 않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핸드폰을 생산원가 이하로 팔 수 밖에 없다고 핸드폰 생산하는 기업에게 보조금을 지급하나? 아니다.
이 보조금 지급의 철폐가 현재 온 세계가 진행하고 있는 쌍방간, 혹은 다자간 무역협상의 핵심쟁점이다. 왜냐하면 보조금은 생산원가를 보존해주기 위한 것이지만 생산원가를 낮출 수도 있기 때문이다. 보조금에 의해 농가는 적정한 보상을 받지만 값싼 농산물을 유통할 수가 있게 된다. 시장에서 가격경쟁력이 생긴다는 거다. 이것은 자국의 농업을 보호하는 농산물 보호장벽이므로 자유무역, 세계화에 걸림돌이 되는 것이고, 그래서 WTO는 웃기게도 이것을 불공정무역이라 표현한다. 그래서 공정하게 너도 나도 이 보조금 지급 정책을 철폐해야 한다고 이들은 주장한다.
다시 간단한 말씀을 드린다. 선진국이 돈이 많을까 후진국이 돈이 많을까? 선진국이 농업보조금을 더 많이 책정할까 후진국이 그것을 더 많이 책정할까? 그렇다면 농산물 가격은 선진국이 쌀까 후진국이 쌀까? 마지막으로, 농산물의 비교우위는 어느 쪽이 점하게 될까?
또 다른 각도에서 단순한 말씀을 드린다. 대규모로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과 소규모로 생산하는 것은 어느 쪽이 생산단가가 내려갈까? 대규모 농장과 소농의 경쟁력은 어느 쪽이 가지게 될까? 대규모 농장은 누가 소유하고 있을까?
계속되는 WTO협상을 통해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이 노리는 것은 이 보조금의 폐지였다. 보조금은 여러 가지가 있다. 농가에 직접 지불하는 보조금이 있고, 금융지원을 해주는 간접보조금이 있고, 그보다 더 은밀한 환율조정과 같은 방법도 있다. 원산지 표시, 수입 물량 제한 및 특정 물품의 수입 금지, 공기업, 금융기업의 사유화 저지 법안, 영세영농인 지원 대책 등도 이에 해당한다. 그리고 현재, 대한민국에서 만들고, 시행하고, 시행하려 하는 정책들을 잘 살펴보시기 바란다. 힘이 약하면 혹은 얼빠진 이들을 위정자로 뽑아놓으면 어떤 상황이 벌어지는지를 알 수가 있을 게다. 그래서 미국과 유럽은 홍콩협상에서 시장접근성에 일부 합의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자국의 보조금 숨기기에 땀을 빼고 있다. 원래 힘 쎈 놈이 약속을 잘 안 지키는 법이다.
그러나, 농부의 적은 이 보조금의 적고 많음이 아니라 사실 낮아지는 농산물의 가격에 있다. 아무리 애써서 농사를 지어 봐도 생산원가도 안 나오는 시장가격이 농부가 농사를 포기하는 원인이기 때문이다. 보조금이나 지원 대책이 영원할 수 없고, 이런 지원책들이 오히려 자생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다. 그러면 이렇게 어이없이 싼 농산물은 도대체 어디서 누가 생산하는가. 그리고 이 어이없는 농산물들은 왜 시장에 넘쳐나고 있는가. 그런데, 왜 시장에서 장바구니에 담아가는 농산물의 가격은 그렇게도 비싼가. 왜 농부는 장바구니 가격으로 농산물을 시장에 내놓을 수가 없는가.
여기에는 분명, 시장과 가격을 통제하고 조절하는 거대한 것이 있기 때문이란 추론을 하게 된다.
식량은 물과 함께 사람이 생존하기 위한 필수품목이다. 인류가 원시시대로 되돌아가서 차도, 핸드폰도, 컴퓨터도, 문명도 사라진다고 해도 식량과 물만 있으면 살아남을 수는 있다. 그러므로 식량과 물은 가장 강력한 무기이며 권리다. 이것을 누군가가 독점하면 지금까지 지구에 존재했던 모든 경쟁, 전쟁은 끝난다. 가장 확실한 승리자가 된다. 가장 강력한 권력이 생긴다. 마침내 정치권력까지 움켜쥔 자본이 이를 가장 정확하게 알고 있다. 그래서 WTO라는 기구를 움직여 작은 나라들, 힘없는 나라들로부터 이 권리를 수탈해 가고 있다.
여기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자본은 국경이 없다. 자본이 미국 등 소위 선진국에 집중되어 있지만 자본의 최후목표는 국경선을 무너뜨리는 데 있다. 그러므로 자국의 농민이라고 해서 이 수탈의 대상에서 예외로 두지 않는다. 위에서 봤다시피 WTO를 주도하고 있는 미국 자국농민몰락의 속도는 놀라울 정도다. 가난한 나라의 농부들로서는 꿈도 꿀 수 없을 정도의 규모지만, 이 자영농들도 자본의 공격에 견디지 못하고 5년 새 9만명이 사라졌다. 그 자리는 3600여개의 작은 농사기업들이 채웠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큰 기업은 작은 기업을 흡수한다.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다수의 곡물회사는 소수의 곡물회사로 재편된다. 그리하여 현재는 카길, 쎄넥스하비스트스테이츠, ADM, 제네럴밀스, 젠노, 타이슨, 콘아그라, 팜랜드네이션 등의 회사들이 미국농업을 나누어먹고 있다. 이들 회사는 미국 내에 있지만 촉수는 온 세상에 내밀고 있다. 다국적, 혹은 초국적 거대곡물기업들이다. 당연히 미국정부가 지급하는 보조금의 대부분도 이들 회사로 돌아간다.
이들은 막강한 자본력과 기술, 유통망에다가 정부의 막대한 보조금까지 곁들여서 시장 가격을 좌우한다. 아직도 자생력을 갖추고 있는 국가의 농산물시장에 침투하여 헐값의 농산물을 뿌려서 그곳의 농업을 고사시킨 후 가격을 서서히 올리면서 막대한 수입을 챙기고 있다.
이들 기업이 이렇게 세계의 식량을 움켜쥐기 위해 고용한 행동대원이 바로 WTO이다. WTO, NAFTA, FTAA 등의 협상을 주도한 미국의 협상대표는 리차드 T. 크로더 대사였다. 그는 미국무역대표부 수석이 되기 전까지 버지니아 알렉산드리아의 미국식량무역업협회의 CEO였다. 그 이전에도 그는 곡물기업에서 종사해 왔다. 미국의 농업무역정책이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지를 유추할 수 있는 지점이다. 또한, 미국이 주도하는 WTO등의 각종 무역협상을 사실은 누가 조종하고 있는지도 알 수가 있다. 이 정도면 시장과 가격을 조절하는 거대한 것의 추론을 할 수 있으시겠는가.
이경해는 이 거대한 것들의 음모를 막기 위해 자신의 목숨을 내 놓았던 거다.
이경해의 죽음 후 5년. 우리는 그의 죽음을 방파제로라도 쓰고 있는가?
우리 땅에서 우리 손으로 키운 우리 쌀로 밥 먹기는 이렇게 힘들다. 이 암울한 디스토피아를 눈앞에 두고 우리가 어떤 방법으로 대처해야 밥 먹기를 제대로 할 수 있을 것인가. 사실, 방법은 간단하다. 농촌에서 엉덩이 비비고 뭉개면서 살면 된다. 다음 글에서 그 말씀을 드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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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아니 이많은 사연들을 일일이 손으로 타자치며 썻나요 아님 복사해서 올린건가요......우와 내용이 길기도 하네요,
아닙니다. 보관해 오던 것을 이번에 귀농 귀촌을 하고픈 모두에게 도움이 되길 바라는 마음에서 올린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