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영 회장의 삶의 철학과 이념
- 삶의 철학
(1) 성실성
강원도 아산에서 출생한 정주영은 그의 삶의 전반적인 철학을 지니고 있었다.
그가 가진 최고의 재산은 부지런함과 근검 절약이었다.
정주영 스스로 평생의 자본이라고 말하던 것이 부지런함이었다.
매일이 새로워야 하고 어제와 같은 오늘, 오늘과 같은 내일을 사는 것은 사는 것이 아니라
죽은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그는 하루마다 더 발전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더욱 부지런하기 위해 노력했다.
성실함은 자신감을 갖게 한다. 어떤 일을 할 때는 경력이나 학벌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그 시점에서 그 사람의 마음가짐과 자세가 일을 한다.
어려운 일이 있으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혼신의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극복하지 못할 이유는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노력하는 사람에게는 이유같은 것은 아무 문제도 되지 않는다.
성실하게 문제를 해결하려고 일하는 사람에게는 큰 문제도 차근차근 풀어나 갈 수 있는 해결책이보이게 된다.
작은 일에 성실한 이를 보고 우리는 큰 일에도 성실하리라 믿는다. 작은 약속을 어김없이 지키는
사람은 큰 약속도 틀림없이 지키리라 믿는다. 그러므로 작은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은 큰 일에도
최선을 다한다고 믿게 되는 것이다. 이처럼 성실한 모습은 신용을 얻는 최고의 방법이 된다.
(2) 결단력
매사에 빠른 결단력과 속전속결의 모습을 보여온 그는 늘 어떤 일이던지 고민하지 않고 결정을 내
렸다. 현대가 주력해왔던 건설업은 즉각적인 결정이 중요한 산업이다. 시간이 곧 돈이기 때문에 무
리한 결정이라 할지라도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으면 결정에 주저하지 않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정주영 회장의 모습은 성공을 가져다 준 요인 중에 하나일 것이다.
투자에 있어서도 시기를 놓치면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다.
일화로 방송국에 2 억이라는 기부를 5 분도 안 되어서 결정을 내리는 모습은 직접적으로 기업경영과
큰 연관이 없는 듯하지만, 어떤 사안을 두고 빠른 결정을 내는 속전속결 방식 속에 그의 경영 철학이 숨어있는 것이다.
빠른 행동력으로 공사기간을 앞당겨 인력비와 투자비를 줄여야 이익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이다.
기업을 하는 사람은 돈과 시간에 쫓기기 쉽다. 그렇기 때문에 기업인은 그때그때 적응할 수 있는
임기응변적인 민첩함이 있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학이었다.
정주영 회장의 맨주먹 마케팅
사진 한 장을 보여주고 돈을 빌릴 수 있을까? '설마?'하고 웃겠지만
우리가 잘 아는 현대그룹의 정주영 왕 회장이 바로 그런 사람이다.
1972 년 정주영 회장은 조선소 건설을 위한 차관을 빌리기 위해 소나무와 초가가 보이는 울산조선소 부지
사진 한 장만 들고 영국 버클레이 은행을 방문했다.
"돈을 빌려주면 여기다 조선소를 지어서 배를 팔아서 갚을 테니 돈을 빌려 주시오".
그러자 은행장이 미심쩍은 듯 "도대체 배를 만들어 본 경험이 있습니까?"하고 물어 보았다.
그러자 정주영 회장은 거북선 그림이 그려있는 우리나라 지폐를 한 장 꺼내 보였다.
그리곤 당당하게 말했다. "우리나라는 1500 년대에 이미 거북선을 만든 나라입니다".
기가 질린 은행장은 까다로운 조건을 하나 걸었다.
"앞으로 당신이 만든 선박을 사겠다는 사람이 나타난다면 차관을 주겠습니다."
아직 조선소도 없는 정주영 회장으로서는 '엄동설한에 딸기를 따오라는 말'과 같은 이야기였지만
정주영 회장의 맨 주먹 마케팅은 여기서 위력을 발휘했다.
정회장은 스코트 리스고 조선소에서 2 만 톤짜리 선박 설계도면을 한 장 빌려서 마침 파리에서 휴가 중인
세계적인 선박 왕 리바노스를 찾아갔다.
"당신이 배를 사겠다고 계약 해 주면 이 계약서를 담보로 은행에서 돈을 빌려 조선소를 지어서 배를 만들겠습니다"
라고 맨주먹 마케팅을 전개했다.
"현대가 만드는 첫배를 당신한테 바치는 영광을 달라"는 정회장의 맨주먹 마케팅에 감탄한 그리스3 대 선주의
한 사람인 리바노스는 선박건조 경험은커녕 조선소조차 없는 현대에 26 만 톤급 유조선 두 척을 주문했다.
이 계약 덕분에 정주영 회장은 영국에서 돈을 빌려 울산의 한쪽에는 조선소를 짓고 다른 한쪽에서는
유조선을 건조해 2 년 3 개월 만에 완공했다.
무엇이 정주영 회장을 부자로 만들었는가? 그것은 열정과 끈기의 맨주먹 마케팅이 성공비결이다.
점점 경쟁이 치열해지는 시대에 영업활동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정주영 회장의 맨주먹 마케팅을
한번 머리에 떠올려보자.
용기가 날 것이다. 그런 용기로 다시 한번 시작할 때다.
[정주영의 경영철학]
-사람들은 곤경에 처하면 헤쳐나갈 길이 없다고 체념한다.
그러나 찾지 않으니까 길이 없지, 필사적인 노력으로 찾아 나서면 다 해결 방법이 나오게 되어 있다.
[정주영식 손자병법]
-병사들은 극한 상황에 빠지면 오히려 두려워하지 않고, 갈 곳이 없으면 단결력이 굳어지며,
깊이 들어가면 투지가 생겨나고, 부득이하면 싸움에 임하게 된다.
[정주영 뛰어넘기 성공전략 포인트]
집념이 강한 사람에게는 하늘도 감동한다!
(1) 이루고자 하는 목표가 확실하면 집념은 저절로 생긴다.
(2) 매일 아침마다 소리 내어 '그 목표는 반드시 이루어진다'고 다짐하라.
(3) 말보다 행동으로 자신의 마음을 전달해 다른 사람을 감동 시켜라.
정주영 회장의 성공 비결(MBC)
성공 비결 1 - 내 몸이 담보
강원도 통천, 가난한 농촌에서 태어난 정주영은 16 세에 가출, 막노동판을 전전 하다가 서울의 쌀
가게에 취직을 하게 됩니다.
자신이 가진 것이라곤 몸뚱이와 신용밖에 없다고 생각한 정주영은 누구보다 성실하게 일하며,
그 결과 쌀가게 주인과 주위 사람들에게 신용을 얻게 됩니다.
그리고 스물 일곱 되던 해, 정주영은 자동차 정비공장을 차리게 되는데.
자동차 정비공장 문을 연지 한 달도 되지 않아 화재로 모든 것을 잃게 됩니다.
빚을 얻어 시작한 정비공장이 전소되자, 정주영은 빚 위에 또다시 빚을 지게 되고.
다시 일어서야 할 그때, 정주영에게 돈을 빌려 준 사람들은 쌀가게 시절 알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결국 정주영이 다시 일어나 오늘 현대그룹의 발판을 만들 수 있었던 것은 신용을 잃지 않았기 때
문이었던 것이지요.
성공 비결 2 - 구두쇠.
30 여 년 전에 지은 그의 집엔 20 여 년이 넘은 소파와 10 년이 다 된 17 인치 TV 가 전부였습니다.
17 년 전 작업복을 죽기 전까지 입고 다녔을 정도.
정주영은 젊은 시절부터 아끼는데 있어서는 누구 못지 않은 사람이었다고 하는데.
한때 한국 제일의 부자 정주영은 구두쇠였던 것이지요.
성공 비결 3 - 아침형 인간
정주영 회장의 성공비결 또 하나.
그 누구보다 부지런 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쌀가게 시절부터 누구보다 먼저 일어나 문을 열고 점포를 정리했던 정주영은 자신이 사업을 하던
시절에도 새벽 3 시면 어김없이 일어나곤 했다고 합니다..
그리곤 해가 빨리 뜨지 않는다고 역정을 내곤 했다는데.
현대회장으로 있을 당시에도 새벽 6 시 기상, 7 시면 회사로 출근하였다고 합니다.
성공 비결 4 - 빈대만도 못한 놈
정회장이 부하직원을 야단칠 때 늘 하는 말은 "빈대만도 못한 놈"이라고 했답니다.
그것은 부두 노동자 시절 몸으로 익힌 정회장의 철학이 담긴 욕설이라고 합니다.
부두 노동자 시절, 몸에 기어 오르는 빈대를 피하기 위해 네 개의 물그릇에 상다리를 담궈 놓고
상위에서 잠을 자던 정회장은 며칠 되지 않아 다시 빈대에게 시달리게 된다.
살펴 본즉 빈대들이 벽을 타고 올라가 천정 위에서 몸으로 뛰어 내린 것인데.
빈대도 머리를 쓰면 되는데, 사람이 못할 것이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주영은 사업에 있어서도 파격적인 아이디어를 내어 멋지게 성공을 하곤 했지요.
한겨울 보리를 심어 잔디를 대신 했던 부산 UN 묘지 공사며,폐 유조선으로 단번에 물길을 막았던 서산 간척지 공사.
그의 성공은 상식에 매달리지 않는 신선한 발상의 성공이었습니다.
성공 비결 5 - 불도저
정주영 회장의 별명은 불도저.
그것은 한 번 마음먹은 사업을 무섭게 밀어 붙이는 추진력 때문인데.
1970 년, 울산 모래 벌판에 세워진 조선소는 모두가 불가능 했다고 말한 사업이었습니다.
자본도, 기술도 없던 시절, 그곳에 조선소가 세워지리라고 믿었던 사람은 오직 정주영뿐이었습니다.
울산 모래 벌판의 사진 한 장을 달랑 들고 당시 우리나라 1 년 예산의 반에 해당하던 4500 만 불의
차관을 얻어 세계 최대 규모의 도크를 만들었던 정주영.
그는 조선소 도크 건설과 동시에 26 만 톤 짜리 두 척의 배를 만드는 세기적 실험을 하게 됩니다.
그리고 30 개월 후, 대한민국 최초로 만든 거대한 유조선은 한국을 세계 제 1 위의 조선국으로 도약시키게 됩니다.
첫댓글 짜릿한 감동이 오는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