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따라 강남간다고 권순탁친구 따라 잠시 의령 다녀왔다.그가 부회장으로 있는 청소년진흥회가 홍의장군
곽재우 의병제 행사를 주관하고 있었다.이종규장군은 행사의 내빈으로 초대되었고,나는 초야에 묻힌 사람으로,
그냥 단성 추어탕,의령 소고기국밥,해인사 산채비빔밥,진주 시장통의 해장국 맛이나 음미하였다.
떡본 김에 제사지낸다고 간 김에 잠간 짬 내어 문박 목사 병화 만난 것도 기뻣다.그리고 아직도 45년 전 그대로
세파에 물들지않은 마치 천연기념물처럼 천진난만한 마산 강승구 만나고,승구네집 고색찬란한 한옥에서 하루밤
자 본 것은 좋은 체험이었다.
우리 친구들 중에 고향에 한옥 가진 친구 많다.남사의 최준석을 비롯해서,권순탁 권재상 하종보 이종태 강승구가
그들이다.부산 강종대는 덩치값 한다고 곤양성을 통째로 소유하고 있다.
먼저 이병철 생가를 둘러보았는데,원래 선풍수가 사람 잡는다.해거름에 그 동네 가서 좌청룡 우백호 案山을 살펴보니
턱 짚히는 명당 자리에 한옥이 있길래 거긴가 했더니,미안하게 돼부럿다.거긴 절이다.
호암의 생가는 뒤로 낮으막한 산이 부드러우면서도 장풍득수에 좋은 형국이고,앞으로 작은 들판 너머 남강이 있어
돈은 모일 곳이나,향은 조금 틀어져있다.사람들은 그가 한국 최고 재벌이라 풍수도 도맷금으로 믿지만,向을 보았어야
한다.
570평 이병철 생가보다 10평 적은 560평 강승구 생가가 오히려 돋보였다.한옥 앞에 선 두그루 고목나무 아래로 냇물
흘러 남강으로 가고,기와 얹은 돌담이 양 옆에 밭을 끼고 산 밑에 폼을 잡고 있다.3백년된 집으로 경남 민속자료로
등록되었으니 왕년에는 같은 의령에서 이병철씨 집과 서로 알만한 터였을 것이다.
밤 늦어 마당가 나가서 텃밭에 물비료 좀 뿌리는데,넓은 밭가 고목 감나무,셋 채 기와집이 달빛을 받고있고,
가늘게 물소리 들린다.앞산의 달빛을 보느라니 어험! 이 집 四而齋란 현판 붙인 그 고조할아버지 헛기침 소리 들리는
듯 하다.동경 유학 마친 남편과 친가와 시집 모두 한가닥했던 양가집 며느리 승구 어머님이 靑裳에 홀로되시어 진고
구매부에서 두 아들 잘 키워낸 그 인내의 세월도 짚힌다.mbc 사장 역임한 영구형님이 마련한 것인지 마당에
쌍사자 석등도 있고,우물 옆 산초나무는 오래된 ‘물건’이었다.
권순탁친구 고가도 둘러보았다.김일손이 <속두류록>에서 ‘배로 신안나루를 건너 단성에 들어가니,산이 맑고 빼어나고
밝고 아름다웠으니,나는 이곳을 신선이 사는 곳으로 여겨,詩聖 이백이 말한 丹丘城이라 바꾸어 불렀다’고 읊은 곳이다.
원지서 경호강 건너보니,지리산 주능선이 한겹,그 아래 부드러우면서 준수한 높은 능선이 또 한겹,세번째 능선에서
용이 굼틀굼틀 내려와 노송이 우거진 삼태기 모양으로 잘 結局한 자리에 동네가 자리잡았고,그 동네 중앙에
순탁이 친구집 소슬대문이 높이 솟아있다.어허 이거 참 이종규장군하고 거사 야코 팍 죽이는 장면이었다.
지가 누구 결재나 허락도 안받고 이런 좋은 곳에 살았나 싶었다.시간만 많았으면 명풍수 자처하는 거사 거기서
거하게 일잔 내라고 강요했을 거였다.원래 명풍수가 자리 제대로 봐주면 대접이 그래서는 않되는데,시간이 없어
올라오면서 고속도로 옆에서 겨우 회냉면으로 때우고 왔다.그 부드러우면서 좌청룡 우백호 제대로 갖춘 명당 동편에
우뚝 은행나무가 솟아있다.이게 文筆峰을 대신하는 것이다.기자 출신으로 대학교수한 순탁이 가형은 그 나무 잘
보살펴야 될 터였다.ㅎㅎㅎ.요걸로 회냉면 값어치만 풀고,다음에 순탁이가 더 좋은데 데려가면 더 자세한 천기누설
해줄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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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풍수지리에 아주 밝으시군요. 부럽습니다. 아는 것이 힘!이지요. 김현거사님을 개인적으로 잘 모르니 댓글이 좀 아니다 싶어도 그냥 넘겨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