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술궂은 시어머니같이 꿀무리한 하늘이다. 월드컵 경기장을 지나니 고산 포도밭이다. 그 옛날 친구들과 포도놀이를 왔던 기억이 새롭다. 밭고랑에 숨어 주인 몰래 한송이 따 먹으려다 질기디 질긴 줄기 때문에 고생만 했다.
빈 속에 포도를 잔뜩 먹고 따스한 들마루에 누워 언제 포도주가 되려나 기다렸다. 서로 많이 먹으려는 욕심에 씨 채 삼키곤 포도줄기가 언제 나오나 농을 하였다.
기차 화통을 삶아 먹은 듯 목통 큰 경상도 아지매들이 미리 그려대는 하동의 경치로 차 안이 시끌벅적하다. 두엄냄새가 열린 창으로 기웃거리는가 싶더니 봄 장마로 알맞게 찬 무논이 너그럽다.
시엄니 심청이 하늘로 올라갔는지 기어이 차창에 비를 뿌린다. 그나저나 소설 토지에도 비오는 풍경이 있었던가? 난개발에 지친 벌거벗은 산등성이가 부끄럽다. 겨우 땅을 딛고 선 것은 질긴 생명력의 아카시아다.
예전에는 손에 못이 박히고 찔려가며 아궁이 속 땔감으로 집어 넣었지만 이젠 그도 필요로 하는 사람이 없는지 홀로 무성하다. 따닥 소리를 내며 타들어 가면 그 억척스럽고 질긴 생명력이 다함을 고소해 했던 것 같다.
차창을 스치는 5월의 신록이 푸르다. 이맘때 숲을 보면 그 속에 푹 잠기고 싶어진다. 언제 적이던가, 추석에 형제들끼리 산으로 놀러 간 적이 있다. 녹음 속에 그렇게 몸을 누이고 싶었건만 막상 숲에는 인간이 관섭한 오물과 온갖 벌레들이 완강하게 막고 나섰다. 사람과 사람의 거리도 적당한 간격이 필요하듯 자연도 그와 같은 이치일까?
하동이 가까워질수록 누런 보리밭이 즐비하다. 이제는 뉘 부르는 소리도 들릴 것 같지 않고 까끄래기 이는 보리밭에 숨어 들어 사랑을 나눌 처녀 총각도 없다. 수없이 지나가는 간판이 모텔 이름이니 무슨 소용이랴. 대실료니 숙박료니 계산기만 두드리면 되는 세상.
무논에 이모작을 하고 싶었던 할아버지가 고랑을 높여 보셨지만 결국 실패하고 만 보리농사였다. 얼굴이 하얗고 까만 정장을 입은 허수아비가 보리밭을 지키고 서 있다. 그도 시대에 부응한 모양인지 차림새가 꼬찔꼬질하지 않다.
산으로 상여가 들어 왔다 갔는지 띠가 엉성한 무덤이 보인다. 미루나무가 비에 젖어 후줄그레하다. 면서기가 무슨 큰 벼슬인 양 헛바람을 일으키며 미루나무 심기를 독려하던 팔순 아버지의 젊을 적 얼굴이다.
섬진강보다 한 발 앞서 낙동강이 나타난다. 운동장 만한 백사장에 수량은 미미하다. 수출물량을 실은 트레일러가 연락부질 고속도로를 오간다. 오십 대 후반에 물류 하도급을 받아 뛴다는 오빠의 현실이다. 호 시절에 흥청망청하지 말고 살림 간수나 잘 했으면 좋으련.
새로 생기고 넓어진 도로에 농토를 빼앗겼는지 논밭이 비좁다. 골안개가 산허리를 휘감으며 따라오는가 싶더니 안개비로 내린다. 몫돈 만들기에 제격이었던 담배농사도 이제는 품새가 초라하다. 밭 가엔 옥수수가 빙 둘러싸며 키재기를 한다.
진주가 가까워 오자 순옥이와 남강에서 놀았던 추억이 떠오른다. 둘이 원피스를 입고 자갈 위에 서서 박은 사진은 압권이다. 논개가 뛰어내렸다는 강물은 실망스러울 정도로 수량이 적었다. 그 물에 빠져도 죽을 것 같지 않았다. 진주 총각들이 돌멩이를 던지며 같이 놀자고 좀 보챘던가.
왜 얼라를 다섯명이나 낳았느냐고 어머니한테 되물었다는 새댁, 그 어머니의 대답이 걸작이다. "닭이 많으면 그 중에서 봉황이라도 하나 나올 줄 알았는데 말짱 헛일이었니라." 야산에는 소나무 꽃이 한창이다.
하동으로 들어서자 갈대밭이 무성한 섬짐강이 고운 자태를 드러낸다. 낙동강보다 수량이 넉넉하다. 여기저기 작은 나룻배가 운치를 더한다. 빗줄기는 더욱 세졌다.
나룻터 옆 식당으로 들어서니 섬진강에 몸을 반쯤 담근 아주머니들이 재첩을 고르고 있다. 남자들은 배 위나 나루터에서 어정거린다. 재첨 껍데기가 쫙 깔린 마당이 억척스런 삶 내음을 풍긴다. 넘실대는 강물이 여인들의 한을 감싸 안고 소리없이 흐른다.
시어머니 시집살이를 호되게 했다는 어느 새댁, 멀리 떠나와서인지 한풀이가 걸다. 백 년 안엔 다 갈 인생, 그 넘의 길들이기 내지 자존심이 뭔지.
섬진강 위로 물안개가 피어오른다. 낮삠을 하는지 비는 그쳤다. 재첩회와 국, 열무김치, 된장고추, 오랜만에 제대로 된 시골 음식이 입맛을 돋군다.
색시 같은 섬진강 오른 쪽으로는 너른 들이다. 최참판댁이라는 나무 표지판이 보인다. 목적지다.
차에서 내리니 좁고 가파른 골목이 나 있다. 함께 온 일행은 앞서 가고 혼자 뒤쳐져서 쉬엄쉬엄 오른다. 월선네란 간판엔 차, 식사, 민박이라는 글이 얌전하게 새겨져 있다. 용정에서 국밥집을 연 월선이가 금방이라도 걸어나올 것 같다.
'한 걸음만 느리게 살면 인생도 맛있습니다.’ 뻥튀기를 파는 가게다. 평사리 상회라고 적힌 구멍가게를 지나면 서희와 길상이의 앙징맞은 캐릭터를 파는 초가다. 새파란 풋살구에 침이 고인다.
마을 꼭대기 최참판댁 솟을대문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 본다. 올망졸망한 민초들의 삶과 너른 들이 한눈에 들어온다. 눈맛이 시원하다. 무량수전의 뜰을 묘사한 감성적인 글을 읊어 본다. 마침 비오는 날이다.
행랑채로 난 계단을 오르면서 나도 모르게‘이리 오너라’라는 말을 쏟을 뻔 했다. 대문을 중심으로 좌우에 노비들이 거처하는 방들과 농기구를 보관하던 곳이 있다. 광과 디딜방아, 쇠죽솥에 아련한 고향집이 교차된다.
안채로 들어서는 문을 지나 마루에 걸터 앉으니 직계존속만 출입하는 은밀한 곳까지 들어왔다며 금방이라도 윤씨부인이 꾸지람을 내릴 것 같다. 건넌방 대청 부엌 그리고 마당에 곳간이 있다. 뒤란엔 장독대와 대나무로 만든 살평상을 놓았다.
왼쪽으로 협문을 지나면 연못이 있는 별당이다. 안채에 딸린 건물이지만 안팎이 다 드나들 수 있는 공동 공간이다. 별당아씨와 김환의 사랑도 생각나고 엄마 찾아내라며 떼를 쓰는 어린 서희와 몸종 봉순이의 얼굴도 떠오른다. 자그만 누각이 앙증스럽다.
안채 뒤로 협문을 지나면 사당이다. 그 시대 유교사상이 고스란히 배인 곳이다. 조상의 혼백과 사대봉사를 했던 신주가 모셔져 있다.
문간채 앞에 우물이 있고 중문채 뒤의 협문을 지나면 사랑채가 나온다. 남자들이 가계를 계승하고 마음을 수련하던 곳으로 손님을 맞이하고 교류하던 장소다. 불 지펴라며 길상이를 부르던 치수의 까탈스런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사랑채 누각에 앉으니 넓은 들이 더욱 가깝다.
사랑채 뒤로는 아들부부를 위한 뒷채가 있다. 뒷채에서 대나무 길를 따라 언덕을 올라가면 자그만 초당이 나온다. 서화나 가야금 바둑 등을 두며 소일하는 곳이다. 김평산에게 치수가 교살된 장소다.
밖으로 나와 참판댁 솟을대문을 서성이다 용이와 월선이가 살았던 초가로 향한다. 이 터를 중심으로 소설을 구상한 작가의 안목에 새삼 고개가 숙여진다.
행동거지 가지런하게 하라고 하도 닦달을 당해서 어릴 적에는 양반이 무슨 벼슬인 줄 알았는데 커서 보니 별 것 아니더라는 동생의 푸념이 생각나 웃음이 난다.
평사리에서 쌍계사로 가는 길목엔 섬진강 안개를 먹고 자란다는 녹차밭이 한폭의 그림이다. 화개장터는 줄어든 농촌인구로 명성만 남은 듯하다. 소용보다 억지 관광단지로 꾸며서 그런지 어색하다.
강 건너 손에 잡힐 듯이 보이는 시적인 이름의 '바로물가' 모텔이 있는 곳은 전라도 땅이다.
비에 젖은 쌍계사는 한창 불사 중이다. 기왓장에 새긴 소원이 자못 경건하다. 건강, 영원, 좋은 인연과의 만남, 나쁜 인연은 피해감, 학업성취’ 외인출입금지라는 요사채도 보인다. 오래 전에 진감선사가 섬진강에서 헤엄치는 물고기를 보고 불교음악인 범패 어선을 지었다는 팔영루가 날렵하다.
화개장터에서 이어진 다리를 건너 남원 구례로 향한다. 피아골주유소, 지리산 반달곰이 있는곳, 행패를 부리던 반돌이 반순이는 잡히다, 토지초등학교, 토지주유소, 지리산 생명수, 악양루, 악양들, 자연을 닮은 사람들, 이데로 영원히 흐르겠습니다. 구만리라는 마을 이름에 걸맞게 지리산 줄기를 따라 토지와 관련된 상호들이 정겹다.
한 사람의 걸출한 문인이 끼치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지 절실히 가슴에 와 닿는다. 소설 토지가 훓고 지나간 자리마다 관련된 업을 하며 살아가는 그 고장 사람들이 진정한 문학의 수혜자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