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바라기 - 그들이 걸어온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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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0-24 11:26 [크리스천투데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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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영원히 변치않을~’ 해바라기 아시죠? 씨씨엠팀으로 거듭난 해바라기 이광준·조성곤 집사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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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바라기의 조성곤(앞)·이광준(뒤) 집사 ⓒ 송경호 기자 | 옛날의 아련한 추억을 간직한 40대라면, 수채화 같은 포크송의 낭만이 다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그 중에는 해바라기의 ‘사랑으로’가 추억의 한켠에 채색돼 있을 지도….
1980년대 포크송의 전성기를 이끌며 많은 인기를 누렸던 해바라기. 4명의 혼성그룹으로 시작해 여러 명의 멤버 교체를 거치며 지금은 조성곤·이광준이 멤버로 있다. 그런데 엄밀히 말하면 해바라기는 두 팀이다. 이주호·강성운은 대중가요팀으로, 조성곤·이광준은 씨씨엠팀(CCM)으로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성곤·이광준의 해바라기를 지난 22일 서울 주님의교회(담임목사 문동학)에서 만났다. ‘사랑으로’의 잔잔한 멜로디가 마음 속에 흐르고 있는 기자에게 해바라기는 그 가사처럼 ‘변치않는’모습 그대로였다. 달라진 것이 있다면 이젠 주님을 위해, 그리고 잃어버린 영혼들만을 위해 노래한다는 사실이다.
해바라기의 이광준 집사가 처음 해바라기 멤버가 된 것은 지난 1983년. 기독교방송(CBS)에서 당시 해바라기 멤버였던 이주호와의 우연한 만남으로 해바라기를 시작하게 됐다. ‘사랑으로’ ‘이젠 사랑할 수 있어요’ 등 숱한 히트곡을 발표하며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그 땐 정말 최고였죠. 한 번 무대에 서면 출연료가 그 당시 가수들 중에서 아마 가장 많이 받았을 거에요. 지금 생각하면 언제 그랬나 싶을 정도에요”
그렇게 10년. 늘 하늘에 떠 있을 것만 같았던 해도 이젠 저 산 너머로 지고 있었다. 이 집사가 대마초 흡연이라는 혐의로 해바라기 활동을 중단하게 된 것. 후에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지만, 인기에 취해 있었던 이 집사에겐 크나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힘든 시기였어요. 아는 후배가 대마초 흡연 혐의를 받게 됐는데 그의 수첩에 제 이름이 있었던 거에요. 뭐 인기 있는 가수의 이름이 있으니까 언론에서도 크게 보도가 됐죠. 당시에는 한국에 대한 원망이 컸어요. 그렇게 사랑하다가도 허물이 보이니 금방 다 떠나더라구요”
그러나 한편으론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었음을 이 집사는 알고 있었다. “인기가 많아지면 사람이 교만해져요. 하나님도 잊어버리고…. 결국 하나님께서 그런 저에게 시련을 주셨던 것 같아요”
이 집사는 미국으로 향했다. 지친 심신의 안식과 새로운 출발을 위해서였다. 그리고 그곳에서 다시 하나님을 만났다. 비로소 하나님은 고개 숙인 해바리기에게 다시 찬란한 태양을 보이셨다.
7년 동안의 미국 생활을 끝내고 한국으로 돌아온 이 집사는 2003년, 헤어졌던 이주호와 다시 해바라기 활동을 재개했다. 하지만 신앙의 참 의미를 알게 된 이 집사는 이젠 자신만이 아닌 하나님을 위해 노래해야겠다고 마음 먹는다. 결국 해바라기의 매니저였던 조성곤 집사와 함께 씨씨엠팀인 해바라기로 거듭난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예전이 그립지는 않은지, 재정적인 어려움은 없는지 물었다. 하지만 역시나 기자만이 가진 유별난(?) 기우(杞憂)였다.
“이제야 진짜 마음으로 노래하는 것 같아요. 물론 그 때만큼 인기도 없고 돈도 많이 못 벌지만 그래도 정말 행복합니다. 저는 벌써 나이가 50이 넘었고, 조 집사도 곧 있으면 50이에요. 그래도 언제나 해만 바라보는 해바라기처럼 주만 바라보며 노래할 겁니다”
‘아아 영원히 변치 않을 우리들의 사랑으로~ 어두운 곳에 손을 내밀어 밝혀 주리라’ 예수님께서 등불을 들고 문 밖에서 문을 두드리는 성화를 보며 이 가사를 썼다는 해바라기. 10년도 넘은 이 노랫말을 지금에야 실천하게 됐다며 환한 웃음을 띠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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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우리모두의 삶이 그렇게 깨닫는것 같아요 ..그빛이 서산으로 넘어갈때라야 비로서 그빛이 눈이부시게 행복했었다는것을... 좀 더 일찍 깨닫지 못했음을 후회하면서...........그렇게.........그렇게.........

모두에게 많은 위로와 회복의 시간이 되었음 하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