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올레길 .. 우장산 숲길과 인근의 작은 봉우리들
지난 여름, 서서울호수공원에 갔을 때 화곡동에서 온 몇몇 주부들로부터 애호박전과 커피 한 잔을 대접받으며 호수공원 주변 산에 대한 얘기를 나눈 적이 있었다. 호수공원 건너편 산들이 궁금하다며 이것저것을 묻자, 우장산이나 봉제산이 더 좋다며 우장산 숲길에 대해서 자세히 소개를 해주었다. 언젠가 발산역을 가는 도중에 지나쳤던 우장산역. 별로 낯설지 않아서 그 아주머니들의 안내대로 우장산 숲길을 찾았다.
5호선 우장산역 2번 출구로 나가 좌회전하여 곧바로 올라가면 우장산 주민센터가 나온다. 주민센터 바로 옆 아파트 옆길, 왼쪽으로 꺾으면 바로 골목 끝에 한국폴리텍1대학 강서캠퍼스가 나온다. 다시 좌회전하여 50m 정도 올라가면 이육사의 시 ‘청포도’가 가장 먼저, 그리고 김소월의 시 ‘산유화’도 바로 이어서 반겨준다. 우장산 조각의 거리 작품으로 전시된 ‘물결 이미지’는 상당히 도회적인 이미지로 세련돼 보였다. 이 조각 작품 바로 옆 나무계단을 따라 호젓한 오솔길 따라 올라가면 98.9m 높이의 원당산 정상이 나오는데, 공터에 '우장산 정상 만남의 장소'란 표시판이 있으며, 다양한 운동기구들이 잘 갖춰진 공원이었다. 전철역에서 불과 30~40분이면 산책이 가능한 곳이다.
우장산에서 웬 원당산이란 말인가? 정상 안내판에 소개된 내용에 의하면, 우장산은 2개의 봉우리로 돼 있는데 북동쪽(새마을 탑과 새마을중앙본부가 있는 산) 봉우리를 검덕산(또는 검두산, 검지산, 검등산), 서남쪽(정수기능대학 강서분교가 있는 산) 산을 원당산이라고 했는데, 지금은 2개의 산을 합쳐 우장산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우장산의 유래는 옛날 가뭄이 들었을 때 양천 현감이 양쪽 산에 기우 제단을 차려놓고 천신께 기우제를 지냈는데, 3회에 걸쳐 기우제를 지내면 세 번째 기우제를 드리는 날에 비가 쏟아지게 되므로 미리 비옷을 준비해 올라간다 하여 우장산(雨裝山)이라고 하였단다.
정상에서 잠시 주변 경관과 소나무 숲을 둘러보고 다시 산책로로 내려오는데, 흙길이 아니어서 순간 아쉽기는 했지만 많은 주민들이 이용하고 비나 눈이 내렸을 때를 생각하면 우레탄길 산책로가 발 딛기도 편하고 안전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곧게 자란 아름드리 소나무들이 울창한 숲을 이룬 산책길을 따라 내려오는데 중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려 자주 낭송했던 시들이 곳곳에 전시돼 있었다.
10분 정도 산책로를 따라 내려오는데, 검덕산으로 가는 길목에 '국궁장'이 있고, 국궁장을 돌아서면 폭 26m, 길이 18m의 규모로 조성된 원당산과 검덕산을 잇는 아치형의 생태육교가 있다. 발 아래는 차들이 쉴 새 없이 내달리는 차로지만, 다리 위는 스트로브 잣나무, 소나무 등의 상록 침엽수와 이팝나무, 조팝나무, 수수꽃다리, 팔배나무, 산수국, 중국단풍, 청단풍 등등이 보인다. 그리고 빨갛게 익은 열매가 주렁주렁 매달린 나무숲길이라는 사실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운치있는 ‘야생동물이동통로’이면서 산책길이다. 검덕산 역시 원당산과 다름없이 입구부터 송림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어 도시에서도 이런 숲길을 만날 수 있다는 사실이 실감나지 않을 정도였다.
10여 분밖에 오르지 않았는데 정상이란다. 검덕산에 가면 새마을 기념탑이 있다고 해서 두리번거렸다. 70년대 초반 온 나라를 이른 새벽부터 뒤흔들어 잘사는 나라로 끌었던 대한민국의 상징적인 운동이었던 만큼 기념탑도 있을 법하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찾았다. 대나무 숲으로 둘러싸여 희끗희끗 보였던 하얀 탑 앞에 서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아 눈을 의심했다. 현충탑도 이 정도의 규모를 본 적이 없다. 정식 이름은 '새마을지도자탑 건립 기념비'. 1987년 5월 20일에 세웠다고 하니 70년대도 아니고 80년대 후반에 세워진 기념비치고 그 규모가 대단하다. 중앙에는 직경 40m의 원형으로 돌로 단을 쌓고, 그 위에 15m 높이의 13층 화강석으로 탑을 쌓았다. 당시 전국 9개도와 1개 특별시, 3개 직할시를 뜻한다고 하는데……. 전국 어디에서도 만날 수 없는 새마을지도자탑을 검덕산에서만 볼 수 있었다.
누군가가 정상으로 올라가는 우장산 숲길과 산책로를 달팽이길이라고 했는데, 마침 새마을지도자탑에서 하산하는 길도 그랬다. 아파트가 보이는 산책로를 따라 내려왔더니, 뜻밖에도 KBS 88 체육관이었다. 체육관 앞에 서서 주위를 둘러보니까, 서 있는 위치의 현주소를 정확히 알 수 있었다. 10여 분만 걸으면 발산역이라는 이정표를 보고 얼마나 반갑던지.
이쯤해서 전철역 구간과 주변 산들을 한 번 정리해 봐야 할 것 같다. 까치산역에서 김포, 방화 가는 5호선을 타면, 화곡역, 우장산역, 발산역을 경유하게 된다. 우장산역에서 내려 우장산을 찾아가는 길에 인근 봉제산 얘기를 들었는데, 봉제산은 표고 116.8m로 인근에서 가장 높으며 그 서북쪽으로 해발 98.9m의 우장산이 있어 화곡로를 사이에 두고 봉제산과 우장산이 좌우 대칭을 이루고 있다고 한다. 다시 우장산에서 서남쪽으로 뻗은 작은 구릉이 72.3m의 발산이고, 봉제산의 서남쪽 작은 봉우리가 73.5m의 까치산인데, 기우제 설화가 있어서 우장산이 가장 잘 알려져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내친 김에 발산역에서 전철을 타고 다시 까치산역에 내려서 까치산과 봉제산을 둘러봤으면 좋겠는데, 일정 때문에 그냥 발산역에서 귀갓길에 오르고 말았다. 5호선을 타고 우장산, 발산, 까치산, 봉제산 네 개의 낮은 산들을 섭렵해 보는 것도 아주 재미있고 독특한 도심 올레길 체험이 될 것 같다.
봉제산·우장산 길 안내
강서구에서는 지역주민을 대상으로 건강한 도시를 만들기 위해 아름답고 걷기 좋은 강서길 9개 코스를 조성하여 이미 ‘우리 함께 걸어요’라는 걷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그 중 하나인 봉제산·우장산 길(10.53㎞) 코스는 다음과 같다.
강서구보건소를 시작으로 한국정보교육원 → 등촌중학교 우측산길 → 등서초등학교 → 그리스도대학교(뒷산) → 봉화터(정상) → 화곡초교 → 제일성심병원 → 우장산(한국폴리텍) → 우장산(정상) → 에코브릿지 → 88체육관 → 구청사거리를 거쳐 강서구보건소를 종점으로 하는 2시간 45분이 걸리는 걷기코스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