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花潭의 <溫泉辨>에 나타난 陰陽論과 社會構造論 비판
涓庵 朴喜鎔
화담은 溫泉에 대한 글을 남겼는데, 글의 앞부분은 天陽과 地陰이 교통하여 온천이 생긴다는 내용으로써 오늘날의 온천학과는 비교할 없을 정도의 내용이나, 글의 後尾에서 <陽得兼陰 而陰不得兼陽 故陽全而陰半 陽饒而陰乏 陽尊而陰卑 是乃君統臣夫制婦 而君子得以役小人 中國得以服夷狄 豈不知陽始於一 而陰終於十 此陰陽之分 而理之必然者也>
<양득겸음 이음부득겸양 고양전이음반 양요이음핍 양존이음비 시내군통신부제부 이군자득이역소인 중국득이복이적 기부지양시어일 이음종어십 차음양지분 이리지필연자야>
<양은 음을 겸할 수 있으나 음은 양을 겸할 수 없다. 그러므로 양은 온전하나 음은 반쪽이며, 양은 넉넉하나 음은 모자라며, 양은 존귀하나 음은 비천하다, 그래서 곧 임금이 신하를 다스리며 남편이 아내를 거느리고, 군자가 소인을 부릴 수 있으며 중국이 오랑캐들을 복종시킬 수 있다. 어찌 양이 일에서 시작하고 음이 십에서 마침을 알지 못하는가. 이것은 음과 양의 분별이며 이치의 필연인 것이다.>라 하여 陰陽을 사회구조론에까지 확장하고 있다.
화담은 온천이 생기는 이유에 대하여 天陽과 地陰이란 고정된 틀을 벗어나 召雍의 말 ‘한 기가 나누어져 음과 양이 되었는데 음과 양이 반반이며 형체와 바탕이 갖추어지며, 음과 양이 치우쳐 짐으로써 性情이 갈리어 진다’를 기본 논거로 하여, ‘하늘은 처음부터 陰이 없었던 게 아니며 땅은 처음부터 陽이 없었던 게 아니고, 물과 불은 서로 그들의 장소에 갈무리져 있다,’라는 발전 논거를 제시한다. 이어서 ‘하늘의 양은 언제나 땅의 허공에 관통되고 있어서 땅은 그것을 받지 않을 수가 없다.’라는 논리의 근거로 易經 繫辭 上의 ‘하늘은 一인데 실지로 땅은 二이다,’을 제시하고 있다.
그 결론으로서 온천이 생기는 이치를 ‘허공의 양이 땅 속에 쌓이어 氣가 어쩌다가 한 곳으로 모여들어 쌓인 끝에 쩌 올라 서리게 되면, 샘물줄기는 그 쩌 올라 압박함을 당하여서 뜨거운 구덩이 속에 차게 되며 또 그 陽이 물 속으로 스며들게 되는 것이다.’라고 정리한다.
화담 온천론이 갖는 문제의 핵심은 지구지질학에 대한 지식이 전무하다는 것이다. 지구 내부가 수천도의 고온이고 지하수가 마그마 가까이 닿아 뜨거워져서 지표 밖으로 내뿜는 것이 온천이다라는 것에 대한 관찰이 부족했다. 화담이 지금도 온천수가 나오고 있는 백두산이나 한라산 같은 분화구를 보았다면 그는 소옹의 말이나 역경 계사에서 논거를 끌어오지 않았을 것이다.
가운데 부분에서 음과 양의 이치를 갖고 온천이 생기는 이치를 설명하느라 중언부언 했지만 이미 논거의 정치함을 잃어버렸으므로 괜히 자기 논리의 합리화를 위한 변명으로 일관하고 있다.
한마디로 말해, 天動說 時代답게 溫泉을 陰陽의 造化로 인식하고 있다. 그리고, 화담은 기철학을 자기 학문의 준거로 하고 있는데, 앞의 글에서 보듯 소옹의 말을 빌미로 하여 ‘하늘은 처음부터 음이 없었던 게 아니며 땅은 처음부터 양아 없었던 게 아니다’라고 해서는 양과 음을 자기 논리 전개상의 필요에 의해 이용하고 있는 것이다. 양이면 양, 음이면 음, 이렇게 뚜렷해야 논리가 서지 경우에 따라 또는 원래부터 半陰半陽이라고 해선 논리가 제대로 서지 않는다. 太虛論까지 들어가도 화담 등의 성리학자들은 양과 음 動과 靜 두 세계를 상정하고 性理를 풀어나가지 일원론부터 시작하는 게 아니지 않은가. 화담의 일원론도 이를 내포한 기를 중심으로 본질과 현상을 보는 것이지 이와 기, 양과 음을 한 덩어리로 보는 게 아니지 않는가. 이런 점에서 온천변에 나타난 화담의 논거와 논리는 중요한 모순을 이미 내포하고 있다.
글의 뒷부분은 온천변는 무관한 내용인데도 온천변에 포함된 까닭은 음과 양에 대하여 부연하다보니 그것을 사회 현상에 접합시키려는 경세가적 의식 때문이다.
화담은 위의 글에서 양은 ‘兼陰, 全, 尊, 統, 制, 役, 服, 始一’ 고 음은 ‘從, 半, 卑, 臣, 婦, 小人, 夷狄, 終十’이라 하여 양이 음을 지배함은 필연의 이치라고 말한다. 그의 氣哲學을 陰으로 대표되는 氣의 활성론으로 이해하는 후학들로 하여금 한참 동안 의아하게 한다.
화담은 크게 두 가지 면을 갖고 있다. <擬上仁宗大王論國朝大喪制不古之失疎>에서 보듯 매우 엄격한 형식론자, <溫泉辨>에서 보듯 매우 완고한 制度論者의 모습과 <原理氣>, <太虛說>, <理氣說>, <鬼神死生論>에서 볼 수 있는 현학론자적인 모습 등 두 가지 면을 볼 수 있다.
문제는 그러한 양면성을 역사상의 대부분의 성리학자들, 넓게는 유학자들에게서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공자가 원류를 연 유학이 지향하는 궁극적인 이상향은 大同世上, 즉 인간 차별과 統制가 없는 평등세상을 이루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유학이 수천 년 동안 정신계를 지배해온 동양사회에서는 말로는 대동세상을 논하면서도 실생활에서는 신분 차별과 봉건적 통제, 획일적인 정신 교육 -지극히 주자성리학적인 인생관과 우주관 주입을 위한-이 횡행하여 왔다.
이러한 양면성이 왜 발생하였고 그 속성이 무엇인가에 대하여 역사상의의 유학자들은 마음의 갈등을 느끼면서도 짐짓 오불관언하는 태도만 보였을 뿐, 그 양면성에 대해 궁구하여 이론적 근거 수립과 논리적 전개, 나아가 실천적 적용에 노력하려는 학자로서의 뚜렷한 태도를 보이지 않았다. 그들이 그러한 양면성의 문제점에 대하여 선뜻 궁구하려고 나서지 못한 까닭은 그 둘의 간격, 평등관과 차별관이 갖는 각각의 근거가 너무나 이질적이고 나아가 현실에 적용되었을 때도 너무나 현격한 결과를 가져오기 때문이다. 또, 현실에 발붙이고 사는 한 개체 인간으로서의 물질욕이 정신적 탐구욕보다 거세기 때문이었다.
先天의 순수한 性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타고 났다면서, 왜 등급을 매겨 차별하는가. 수많은 역사상의 성리학자들이 기껏 만든 논리가 ‘混雜’인가. 원래 기는 순수한데 현실 속에서 여러 가지 요인으로 해서 混雜해졌기 때문에 기도 차등이 잇고 나아가 사회에 적용하면 인간 차등이 성립한다는 말은 어디까지나 현학을 좋아하는 선학들의 조작 논리밖엔 되지 않는다. ‘乘’, ‘發’, ‘未發’, ‘兼’, ‘主從’, ‘先後’ 등의 말은 억지로 꾸며낸 말, 머리에서 만든 말일 수밖엔 없다.
화담의 이질적 양면성은 후학으로 하여금 그의 학문에 대한 근본적인 의아함을 갖도록 한다. 물론 天動說 시대, 王朝 封建時代라는 時空的 한계가 있었지만, 그의 氣哲學이 한국사에서 한 번 제대로 꽃을 피워보지도 못하고 化石이 되어버렸다. 율곡이 화담의 기철학 핵심을 어느 정도 이해하고 흡수하여 자기 학문을 심화 확장시킨 점이 있으나, 율곡 그는 학문의 初入期인 스물세 살 때 도산에서 한 학문을 이룬 노년기의 퇴계선생을 사흘 동안 면담하고도 생각의 근본이 달라 스승으로 모실 수 없다고 단언한 것처럼 워낙 학문적 자주성이 강하여 생전에 화담으로부터 정통으로 배웠다고 말한 바 없으며, 율곡학맥을 이은 기호학파 서인들은 화담을 율곡의 스승으로 때로는 모시기도 했다가 때로는 부정하기도 했다. 화담학은 철학적 심오함에도 불구하고 조선 중후기 내내 퇴계학과 율곡학이라는 두 흐름의 변방에서 소수의 제자들에 의해 겨우 명맥을 유지했을 따름이다.
퇴계학, 율곡학과는 차원이 다른 철학적 깊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끝내 비주류학이 된 원인은, <鬼神死生論>에서 보듯 치열한 궁구를 통해 얻은 氣哲學을 온전한 하나의 개념으로 확립시키지 못하고 理哲學에 대한 상대개념화 했기 때문이다. 氣哲學 본연의 깊이를 궁구하기 보단 이의 반작용으로서의 기를 생각하고, 눈에 보이는 현상인 春夏秋冬, 天星, 日行 등만을 관측하고 이론화하였기 때문이다. 천지자연의 겉모습만 보고 속모습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다 -물론 天動說 시대라는 경험적 한계가 있지만.
화담 그는 <鬼神死生論>에서 氣의 聚散을 말하며 귀신, 즉 개체를 떠난 영혼의 존재를 부정한다. 사람이 죽으면 영혼이 육체를 떠나, 즉 귀신이 되어 저승세계에 존재하는 게 아니라 氣의 散으로 영혼 자체가 있을 수 없다고 한다. 이것은 엄밀히 말하면 유물론으로서, 조상귀신 명당 모시기와 제사 성대하게 받들기를 중요시하는 유심론을 절대적으로 숭상하는, 유물론은 사문난적으로 극도로 혐오하는 조선 유교사회에서 도저히 용납될 수 없다.
화담 그도 소총명으로서 그러한 학문적, 사회적 풍토를 알기에 그의 유물론적인 기철학을 심화시키기엔 적잖이 부담스러웠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그의 논문을 보면 유물론의 핵심을 몇 번 슬쩍 스치고 지나갈 뿐, 치열한 학문적 추궁과 논거 비축이 매우 미흡하다. 율곡과 화담의 제자들도 화담이 제시한 기철학엔 공감하나 유물론으로까지 발전시키기엔 학문적 역량 부족뿐만 아니라 사회적 억압 때문에 상당한 제약을 받았을 것이다. 화담 기철학의 精髓 原石을 看取한 율곡은 그것을 가공하여 자기 것으로 만들어 흥행에 성공하였으나, 정작 화담의 제자들은 화담학의 껍데기만 대대로 이어받고 있다.
성리학은 완전무결한 하나의 太虛에서 출발하여 그 태허가 陰陽 두 개로 갈라지고, 다시 그 두 개 음양이 易變하여 삼라만상을 이룬다 라는 근본 개념을 갖는다. 퇴계는 主理從氣論者로서 陽을 理로, 陰을 氣는 보아 陽이 陰을 지배하는 게 당연하듯 理가 氣를 지배함은 마땅하다고 한다.
율곡은 시절에 따라서 학설이 묘하게 표변하는데, 대체로 理와 氣를 동등하게 보면서도 사회적으로는 理의 우선을 말하고 학문적으로는 氣의 오묘함에 호기심을 느끼고 있다. 그런데 그 호기심은 단순한 차원에서만 우왕좌왕 했을 뿐, 화담학을 정통으로 이어받아 사회적 애로를 감수하고서라도 학문적 성취를 이루겠다는 결기에까지 이르지 못하였다.
氣學을 심오하게 궁구한 화담은 살아생전엔 미관말직이었고 죽어서도 학문이 사회적, 역사적으로 소외를 당하였다. 반면에 理學을 궁구한 퇴계와 율곡 두 사람은 살아생전엔 고관대작이었고 죽어서도 그들의 학문은 융성하였다.
理學의 세계는 단순하다. 理의 근본 속성이 굳음과 강함, 즉 固體的 秩序이니 삼라만상 세상만사에 정신적, 현실적인 질서만 주면 온 세상이 조용하다. 간혹 기성 질서에 반항하는 자들이 있다면 학문적으론 사문난적으로 몰아 정신적 사형에 처하고, 정치적으론 당파를 동원하여 집중 성토한 다음 삭탈관직이나 사약을 내리면 만사가 깨끗하다. 그래서 조선 오백년 유학은 주자성리학이란 理學 하나만을 굳게, 완고하게 주장함으로써 끝내 지리멸멸 하고 말았다.
그에 반해 氣學의 세계는 복잡하다. 氣의 근본 속성이 부드러움과 약함, 즉 液體的 易變이니 삼라만상 세상만사가 시시때때로 변화한다. 周易에서 보듯 유학이 이러한 氣學 정신을 근본으로 하여 출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사회적, 봉건왕조적 질서 유지의 필요성이 급증하면서 理學이 발달하게 된 점은 일면 타당성을 갖는다. 그러나, 理學은 과장되어 존중을 받고 氣學은 왜소해져 천대를 받게 된 점은 기는 대지이고 이는 건물이라는 둘의 관계를 약화시켜 결국 사회와 역사를 약화시키고 말았다.
환언하면, 理는 고체이고 氣는 액체이다. 氣가 왜 생물 개체와 집합체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바탕원리냐 하면 액체인 물은 모든 생물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나아가서 생물인 인간들이 모여 사는 사회와 국가는 그 물의 속성, 氣의 속성을 바탕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氣를 천대해선 대동세상을 이룰 수가 없는 것이다.
유학이 원래의 부드러운 모습을 차츰 상실하며 굳어가고, 氣를 중시한 학자들은 소외되고 理를 중시한 학자들이 대우받는 사회가 계속 됨으로써, 대동세상의 이상을 담은 원시유학, 공자의 꿈은 고루해졌다.
우주 속 만물만사의 근본인 氣를 왜 천대하는가. 성냥불처럼 반짝 빛나고 사라질 한 시대만의 역사를 본다면 理學를 중시할 것이나, 연탄불처럼 오래 갈 시대가 엮는 역사를 생각한다면 氣學을 중시해야 한다. 氣는 인간과 세상을 이루는 눈에 보이는 근본이요 작용 원리이기 때문이다. 理는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성적 판단으로 하는 가장 바람직한 경우에 대한 상상일 뿐이다. 그 상상은 개체 인간과 사회의 유지를 위해 정치적, 사회적 집단권력이 만든 도덕, 법, 규율, 체면, 형식 등의 속에 理의 모습으로 구현되어 있다. 그 출전은 현실주의를 숭상하는 理學者들의 생각이다.
그러한 理의 모습들은 固定性만 강요할 것이 아니라 易變性을 가져야 한다. 氣가 물이라면 理는 배, 배는 물 없이는 뜨지도 가지도 못한다. 물의 원리인 易變性과 融通性을 갖지 못하는 理는 결국 枯渴하고 만다. 氣는 雜混하니 從으로 삼고 理는 순수하니 主로 삼아야만, 宗祖인 공자님께서 주창하신 대동세상을 내 살아생전에 이룰 수 있다고 철석같이 믿고 한 생애 동안 그 믿음을 충실히 수행한 先學들.
氣가 雜混하다니, 그렇기 때문에 從이라니, 왜 雜混한지에 대한 뚜렷한 설명도 없이 氣를 육체, 즉 욕망으로만 인식한 것은 단순한 관찰이 아닐 수 없다. 왜냐면 氣란 인간의 육체뿐만 아니라 모든 생물, 나아가 우주 속 모든 물질과 현상의 근본이기 때문이다.
비록 天動說 시대에 살았지만, 화담, 퇴계, 율곡 세 분의 선학들이 바친 학문과 사회에 대한 지극한 정열을 이어받되 케케묵은 먼지와 때를 산뜻하게 닦아내고 理學과 氣學 본연의 모습을 볼 수 있도록 하는 게, 그것을 地動說 시대에 적합하도록 몇 차원 발전된 窮究를 하는 게 이 시대를 사는 後學들이 할 일 아니랴.
( 2008년 7월 26일 양백산 열락연재에서 )